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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1)화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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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스는 죽어 가고 있었다.

‘말이 되냐.’

침대에 누워서 위스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막사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신관의 말대로 심상치 않았다.

죽을 위기라면 수도 없이 넘어왔다. 애초에 페라 원정부터 안전한 길은 아니었다.

‘협곡에서 산사태에 깔렸을 때도 살아남았는데.’

그런 자신이 고작 풍토병에 쓰러진 것이다.

노예로 태어나서 생애 대부분을 전장에서 굴렀다.

지금의 위치까지 위스는 자신의 힘으로 올라왔다.

현재 위스를 부르는 호칭은 폐하였다. 맨손으로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좌에 올랐다. 그가 쌓은 업적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제 곧 죽겠지만.

운명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지도 모르겠다고 위스는 생각했다.

그의 인생은 아마 개처럼 고생하다 요절하도록 정해져 있던 모양이다.

노예로 태어난 것부터 답 없는 인생이었는데, 그건 그의 앞에서 울고 있는 제레미도 마찬가지였다.

제레미는 위스의 동생이었지만, 위스와 닮은 곳이라곤 얼굴밖에 없었다. 강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성격에 몸도 약했다.

위스와 함께 왕국을 세운 공신들은 제레미를 못 미더워했다. 위스에게 어서 빨리 후사를 보아야 한다고 재촉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스에겐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위스가 베타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일 년 365일을 전장에서 보내는데 아이를 만들 시간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대신 수도에서 머물던 제레미가 자식을 주렁주렁 낳았다.

위스는 제레미를 달랬다.

“그만 울어. 머리 아파.”

“어,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형이 죽으면 난 어떡하라고? 왕국은? 나라가 산산조각 날 거야. 나, 난 못 해. 형, 죽으면 안 돼. 신관이 뭐래?”

제레미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위스가 불러온 신하들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불손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을 뿐이다.

위스는 잘 돌아가는 꼴을 보며 한숨을 참았다.

“제레미.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네 자식 중에 있었지. 알파라던……. 걔 이름이 뭐지?”

“누구 말하는 거야? 도란? 포스티?”

“저번에 사촌 쥐어 팼다는 애가 누구야?”

“포스티야.”

“그럼 도란으로 하자.”

“뭘?”

‘뭐겠냐?’

위스는 휠체어에 앉은 제레미를 잠시 쳐다봤다.

“후계자.”

제레미의 입이 벌어졌다. 위스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걔가 몇 살이지?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네가 후견인으로 뒤를 봐줘. 국정을 배우게 하고 위험하지 않게 보호해. 결혼도 시키고.”

“폐하.”

신하들이 당황해서 입을 여는 걸 위스는 시선으로 막았다.

그러나 제레미가 울기 시작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아, 안 돼. 못 해, 형.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 혀, 형, 죽으면 안 돼. 응? 이러지 마. 형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알잖아…….”

위스는 머리가 아팠다.

속이 메슥거리고 몸이 한없이 무거웠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영원히 잘 것 같다.

하지만 죽을 듯이 울고 있는 동생을 외면하고 잠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위스는 약속했다.

“제레미, 그만 울라니까. 내가 너한테 못할 일 맡기는 거 봤어? 내가 세운 나라가 망가지는 꼴을 두고 볼 것 같아? 왕국이 위험해지면 돌아올게. 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눈꺼풀이 무거웠다. 입을 달싹이는 것도 힘들어서 위스는 천천히 말했다. 발음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온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다행히 제레미는 통곡을 멈춘 듯했다.

어느덧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서머 왕국의 초대 왕 위스는 스물여덟의 나이로 전장에서 요절했다.

친동생 제레미와 건국을 함께한 공신들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켰다.

이후의 일은 위스의 유언대로 이루어졌다. 도란 서머가 왕위에 오르고 제레미가 섭정에 앉았다.

그게 좋은 결정이었는지는 차치하고…….

다른 유언마저 실현될 줄 알았다면 위스는 입을 조심했을 것이다.

⚜ ⚜ ⚜

위스는 눈을 떴다. 가장 먼저 위화감을 느낀 건 냄새였다.

그는 말똥 냄새 나는 막사가 아니라 꽃향기 나는 공간에 누워 있었다.

침구는 부드럽고 공기는 따듯하다.

원정지는 가을이었다. 원정이 길어지며 그곳에서 겨울을 나게 될까 부관이 걱정하던 게 엊그제였다.

손을 까딱여 보자, 멀쩡히 움직였다.

‘죽을병이라지 않았나?’

위스는 병을 진단한 마법사의 목을 날려 버릴 생각을 하다가 그만뒀다.

사소한 일로 벌하기에 그 마법사는 세운 공이 많았다.

위스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가 깨어난 곳은 막사 안이 아니었다. 호화로운 침실이었다.

그가 병으로 쓰러져 원정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밖에 누구 없나?”

위스는 누군가 자신을 성으로 옮겨 놓았다고 판단하고 사람을 불렀다.

시종이나 부관, 혹은 제레미가 들어오길 기대하면서.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얼굴 모를 젊은 기사였다.

“그렇게 일어나자마자 소리를 지르시면…… 안 될걸요? 전하?”

젊은 기사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전하?’

위스는 그렇게 불려 본 역사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그를 부르는 호칭은 폐하였다. 그전에 반란 노예일 때는 ‘대장’이었고, 노예 시절에는 ‘이 개새끼 어디 갔어’ 정도였나.

위스는 말을 고분고분 듣는 노예가 아니었다. 마력을 깨우치자마자 주인의 목부터 날렸으니 그 성질을 알 만했다.

타고난 성격이 왕이 됐다고 변할 리 없어서, 위스의 기사들은 말조심하는 법을 알았다.

저런 버릇없는 기사를 호위로 붙여 놓을 리가 없는 것이다.

“저기, 전하. 일어나신 건 기쁜데요. 폐하께서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뭐 화나셨어도 전하께 뭐라 할 정신이 없으실 것 같긴 한데…….”

“뭘 뭐라 해?”

위스는 반사적으로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이 위엄 없는 목소리는 뭐란 말인가. 마치 소년 같은 목소리였다.

“예? 전하께서 그 뭐냐, 연인분과 야반도주를 한 게 잘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전하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요. 뭐 왕국이 망하고 있는데 왕자가 도주하면 다들 화내지 않나 싶고, 그렇습니다.”

젊은 기사가 종알거렸다.

위스는 머리를 만지다가 기사를 쳐다봤다.

이놈의 뒤통수는 왜 이렇게 아프단 말인가. 그리고 이 헛소리는 또 뭐란 말인가?

“왕국이 망해?”

“아. 제 말은, 망했다기보다 왕성이 점령을 당했다, 총사령관도 항복하고 폐하께서도 항복하셨다, 뭐 그런 뜻이었습니다.”

기사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X발, 그게 망했다는 소리잖아.’

왕성이 점령되고 왕이 항복했는데 멀쩡한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위스는 이쯤 돼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점을 눈치챘다.

때마침 위스의 손이 뒤통수에 난 혹에 걸렸다. 눈물 나게 아파서 위스는 이를 악물었다.

“아이고, 전하. 상처를 그렇게 막 건드시면 어떡합니까. 넘어지고 며칠간 일어나지도 못한 거 기억 못 하십니까? 기억 못 하시겠군요! 기절해 계셨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전하의 뒤통수가 아예 깨져 버린 건 아닌지 걱정했답니다…….”

위스는 이런 시끄러운 기사를 농담으로라도 곁에 둔 적 없었다.

“너 이름이 뭐냐?”

“예? 페더입니다, 전하. 머리가 많이 아프십니까?”

“……내 이름은 뭐라고?”

“서머 왕국의 유일한 후계자, 위스미아 피비 가르텐 네비아 막시밀리앙 오데트 서머 전하십니다.”

기사가 미간을 좁힌 채 위스를 쳐다봤다. 위스는 기사가 하고 있는 불충한 생각을 읽을 수 있을 듯했다.

‘이 왕자가 미쳤나?’

위스는 기사를 벌하는 대신 창문을 열었다. 실제로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위스가 깬 건물은 성이 맞았다. 그가 왕국을 건국하며 왕성으로 정한 서머 성이었다.

부관의 조언을 받아들여 성 내에 거대한 정원을 조성했던 일이 떠올랐다.

까마득히 넓은 정원 광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평시라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을 정원이 도열한 병사들에 의해 짓밟혀 있었다.

병사들의 투구가 반사하는 빛을 보다가 위스는 창문을 부서져라 닫았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왕 이름은 혹시 도란이냐?”

위스가 물었다. 제레미의 아들이 이 개판을 쳐 놓았냐는 물음이었다.

“……정말 어디가 아프십니까? 폐하의 존함은 제레미아 아니십니까.”

위스는 소름이 돋았다.

이 성은 서머 성이 맞고, 이 기사는 위스를 ‘어쩌고 서머 전하’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 이 나라가 위스의 왕국은 맞을 텐데…….

위스미아니 제레미아니 하는 이름이 불길했다.

위스의 이름은 ‘위스’였고 제레미의 이름은 ‘제레미’였는데 이름이 희한하게 길어지고 있다.

이름을 저따위로 길고 복잡하게 만드는 족속은 귀족뿐이었다.

중간 이름이 길어지는 것도 귀족이나 하는 짓이었는데, 가문의 역사가 오래될수록 그 이름이 더 길어진다는 특징이 있었다.

“올해가 몇 년이야?”

“서머력 310년이지요? 진짜 모르셔서 물으십니까? 저기, 전하. 실례지만…… 신관을 좀 불러와도 될까요? 폐하께는 천천히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 오락가락하신다는 얘기는 안 할 테니까 마음 편히 쉬고 계십시오.”

기사가 뛰어나갔다. 위스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거울 앞으로 갔다.

“하.”

‘이건 또 뭐야.’

위스 본인과 소름 끼치게 닮은 후손이 그곳에 있었다.

쓸데없이 곱상해서 어린 시절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킨 그 얼굴이었다.

위스와 다른 점이라면 피부가 희고 상처가 없는 데다, 열심히 만들어 놓은 근육도 온데간데없다는 점인가.

좋은 점 하나 없이 나쁜 점만 물려받지 않았나.

살면서 수도 없이 엿 같은 일을 겪어 왔지만 이런 일은 또 처음이었다.

죽었다 깼더니 후손이 되어 있다고?

짐작 가는 원인은 하나밖에 없었다.

-왕국이 위험해지면 돌아올게.

그 빌어먹을 유언.

그따위 것도 약속이라고 지켜야 한단 말인가?

위스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약속을 지키라고 할 거였으면 나라 망하기 전엔 불렀어야 할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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