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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3)화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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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공!”

호위 기사가 기겁했다. 위스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아카젤 대공이라고 불린 남자는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젊은 기사가 명성을 얻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자신의 무예로 얻는 명성이었다. 지휘관으로서의 명성은 또 다른 것이다.

대군을 통솔하는 건 경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젊은 기사가 그만한 전쟁 경험을 어디서 쌓겠는가?

괜히 젊은 기사에게 지휘를 맡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예외라면 위스의 옛 부관 정도일까. 그는 타고난 지휘관이었다.

대공이 서머 왕을 돌아봤다.

“다 죽어 가는 환자를 식장에 세울 정도로 악취미는 없습니다만……. 제게 혼인을 제안하기 전에 아드님의 건강을 챙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게…….”

당황한 왕이 뭐라 하기도 전에 대공은 자신의 호위에게 명령했다.

“신관을 불러.”

호위는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행동이 재빠르고 두 번 되묻는 법 없는 부하였다.

위스는 자신의 기사를 쳐다봤다. 이런 데서 국력 차이를 느껴야 하다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곧 신관이 올 겁니다. 쉬십시오.”

그대로 나갈 것 같던 대공은 놀랍게도 위스에게 말을 걸었다.

위스는 대답하려 했으나 코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 입을 열 수 없었다.

대공은 잘생긴 얼굴을 찡그리더니 나갔다.

‘얕보였군.’

위스는 대공을 탓할 수도 없었다. 자신도 이 몸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이 꼴은 뭐란 말인가?

“대공! 아니……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왕은 대공을 따라가려는가 싶더니 결국 위스 앞에 앉았다.

위스는 그제야 서머 왕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이건 또 뭐냐.’

제레미의 후손임을 의심할 수 없는 외모였다. 다른 무엇보다 얼빠진 표정이 꼭 닮았다.

“얘가 왜 이러느냐? 그냥 기절한 거라 하지 않았어? 왜 다 죽어 가.”

“죽어 가는 건 아니고, 전하께서 마법을 쓰셨습니다.”

왕이 깜짝 놀랐다.

“뭐? 마력 중독을 앓고 있는 애가 왜 갑자기 그런 정신 나간 짓을?”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기사가 맞장구를 쳤다.

위스는 피가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그 말에는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마력 중독?’

“문제를 일으키는 애가 아니었는데 대체 왜 이러는지……. 그놈이 원흉이야. 순진한 왕자를 꾀어 도망을 치려고 했던 것부터가…….”

“아니, 전하께서 문제없는 분은 아니시지 않았습니까?”

왕은 듣지 않았다.

“설마! 위스, 너 나쁜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네 애인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겠다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위스는 피를 퉤 뱉고 말했다. 왕의 눈이 커졌다.

“그보다 마력 중독은 무슨 소리입니까?”

“너…… 너는 남들보다 마력 감응력이 떨어지잖니. 마력은 네 몸에 독으로 작용한단다. 제레미 섭정의 핏줄에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병 아니니. 이것 때문에 팔라틴에서는 ‘제레미 섭정이 위스 대왕을 배신하고 왕위를 찬탈했다, 서머 왕족은 대의를 잃었다’고 백 년도 넘게 트집을 잡아 왔는데…….”

“하…….”

“……네가 이걸 모를 리 없지 않니!”

왕이 벌떡 일어났다. 위스의 머리에 큰 이상이 생겼다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이 왕은 전쟁통에 군사들 사기를 돋우지는 못할망정 유령을 불러내서 왕국을 지키겠다는 생각이나 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위스가 진짜 강령했다는 사실을 알면 기뻐할 것인가?

‘그럴 리가.’

왕은 아들을 꽤 아끼는 듯했다. 위스는 눈도 깜짝 않고 말했다.

“이제 생각났습니다.”

“그러니?”

왕은 반신반의했다.

기사가 고자질했다.

“전하께서 자기 이름도 기억 못 하셨습니다.”

‘이 새끼가.’

“위스, 네 이름이 뭐니?”

“……위스미아입니다.”

위스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자기 입으로 위스라고 불러 놓고 모르길 바라는 건가?’

“나이는?”

위스는 입을 다물었다. 하필이면 모르는 정보였다.

“실례합니다.”

때마침 신관이 도착해서 대화가 멈췄다. 신관은 병자가 누구냐고 물으려다가 위스를 발견하고 안색이 파래졌다.

잠옷으로 입는 셔츠가 피로 푹 젖어서 위스는 거의 죽어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세상에.”

위스는 약간 긴장했다. 신성력은 치유와 파마의 힘이 아닌가?

신관이 치유하겠다고 힐을 썼는데 위스가 퇴치된다면 이보다 웃긴 일이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흰빛이 신관의 손에서 번쩍였다.

“끝났습니다. 어쩌다 속이 이토록 상하셨습니까?”

신관이 물었다.

위스는 손을 내렸다. 줄줄 흐르던 코피가 멎었다. 목구멍에서 역류하던 죽은피도 활동을 멈췄다.

남은 건 입안에 도는 쇠 맛뿐이었다.

위스는 퇴치되지 않고 이 비루한 몸뚱이에 남았다.

속을 진탕하던 통증이 사라지니 한결 살만했다.

위스는 일어나려다 현기증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처구니없게 가련한 꼴이었다.

“…….”

신관이 말렸다.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힐이 잃어버린 피까지 채워 주지는 못합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고 몸의 거부 반응을 경감시켰을 뿐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체 내부가 이렇게 상하는 경우는 드문데. 독이라도 삼키지 않은 이상…….”

“비슷한 일을 하시긴 하셨죠.”

기사가 중얼거렸다.

‘넌 해고다.’

위스는 기사를 쳐다봤다.

“약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신관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갔다. 방금 자살을 기도한 환자라도 치료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서머 왕이 탄식했다.

“다 끝났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네 결혼 말이다. 이제 왕실은 끝이야. 왜 그랬느냐? 대공께 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드릴 생각이었는데 다 틀렸다.”

왕은 절망에 빠져 얼굴을 가렸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위스는 인상을 썼다.

“그렇게 설명하셔서 이해하겠습니까? 제 모습을 대공에게 보이는 것과 결혼이 무슨 상관입니까?”

왕은 넋이 나가서 위스를 쳐다봤다.

“얘야, 너 말투가…….”

“머리를 다쳐 말버릇이 변했나 봅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폐하께선 대공과 함께 오셨습니다. 대공이 가치 없는 왕자를 괜히 보고 가지는 않았을 테니, 폐하께서 대공에게 청하셨겠군요. 왜 그러셨습니까?”

위스는 어지러워 침대에 기댔다. 한 팔을 시트에 걸친 삐딱한 자세로 왕을 내려다봤다.

침대 위로 올라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지금 일어서면 다리가 꺾일 것이다.

기절하기 전에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왕에게 무언가 대책이 있었단 말인가?

위스가 자랑하던 마법은 이 몸으로 펼치기 어려웠다. 감지 마법 따위에도 죽겠다고 끙끙거리는 몸이 대마법을 견뎌 낼 리 없었다.

무엇보다 아카젤 대공.

기사는 마법사의 천적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전술 병기인 그들은, 술식을 전개하는 마법사를 찾아 제거하는 데 특화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위스가 대마법을 펼칠 수 있대도 마법은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그 전에 대공에게 감지돼 파훼될 테니까.

‘빌어먹을 제레미.’

후손에게 무슨 병을 물려준 건가.

‘이런 몸으로 뭘 하란 말이야?’

그러나 배신자의 나라에 왕국이 넘어가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저놈들이 전쟁을 벌인 명분이 위스 자신이라니 치가 떨릴 지경이다.

왕이 놀라서 말했다.

“네가 국정을 궁금해하다니.”

“……?”

“정말 머리를 박은 곳이 잘못된 모양이구나! 그러게 야반도주는 왜 했느냐? 적군이 몰려오는데 성 밖으로 도망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할 수가 있느냐? 네가 담을 넘다 고꾸라진 건 천벌이 틀림없다!”

“…….”

위스는 뒤통수가 왜 이렇게 땅기는지 내막을 알게 되었으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 새끼 뭐 하는 새끼였지?’

하지만 중요한 건 위스미아 왕자가 얼마나 얼간이였는지가 아니었다.

“대공에게 천벌받은 놈 구경시켜 주러 오셨습니까?”

“아니! 그럴 리가 있겠느냐?”

왕은 더듬거리며 말해 주었다.

“팔라틴에서 요구한 배상금이 터무니없지 뭐냐! 팔라틴의 신왕은 서머를 대륙에서 뿌리 뽑고 싶은 것이 확실하다. 왕실에는 이제 배상금 대신 내어줄 영지도 돈도 없는데 무슨 수로 그 배상금을 갚겠느냐?”

‘전쟁에서 얼마나 졌길래 더 이상 영지가 없냐?’

위스는 분노를 참았다.

왕이 위스의 생각을 읽지 못하는 게 다행이었다.

“세금은 더 올릴 곳도 없어. 왕관을 팔아도 저 배상금은 갚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사정할 곳은 하나밖에 없구나.”

“……그게 대공입니까?”

“그래! 대공이 너와 결혼하면 설마 자기 처가를 핍박이야 하겠느냐?”

“저 남자인데요?”

위스는 왕이 이 사실을 말로 해야만 아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 얘야. 귀한 남자 오메가지. 게다가 넌 이 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메가잖니! 대공이 멀쩡한 너를 봤으면 한눈에 반했을 게 분명했는데…….”

“…….”

위스는 소름이 돋았다.

‘오메가?’

그는 이 몸이 베타 외의 다른 형질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을 베타로 살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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