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스 메리드 트러블 (14)화 (14/70)

16673017218811.jpg

#14

테오도어는 달려가서 쓰러진 위스를 안아 들었다.

코 밑에 손을 댔다. 위스는 숨을 쉬고 있었다.

테오도어는 안도했으나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위스는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었다. 얼굴이 백자처럼 창백해서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았다.

‘신관!’

그는 위스를 안고 달리려다 멈췄다. 위스가 괴로운 듯 몸을 뒤틀어서였다.

그러더니 위스는 피를 뱉어 냈다.

테오도어는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넘어진 사람이 피를 토하진 않는다.

위스는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신체 외부에는 손상을 입지 않았다.

‘지병?’

처음 본 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위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신에게 위험을 경고한 건가. 왜 이곳까지 따라온 거지?

위스가 리엔델과 손잡았다면, 테오도어를 연회장에서 끌어내려 했을 리 없다.

그가 어떻게 골렘을 상대하는 법이나 이곳에 술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테오도어를 따라왔다.

달아날 기회를 줬는데도 테오도어의 곁에 남았다. 목숨을 걸고.

테오도어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리엔델과 손잡은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위스도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용하려는 상대에게 목숨까지 거는 사람이 있던가?

위스가 눈을 뜬 건 산을 거의 내려왔을 즈음이었다.

“……대공.”

다시 들은 목소리는 그와 어울리지 않게 연약했다. 약간 코맹맹이 소리였다.

위스는 실제로 연약한 사람이긴 했으나, 성격과 신체가 잘 호환되는 편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고압적이어서 듣는 사람을 오싹하게 하는 쪽이라고 테오도어는 생각했다.

“제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습니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반말을 하지 않는군.’

테오도어는 아쉬움을 내색하지 않고 위스의 손목을 잡았다. 위스는 코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매만지려던 차였다.

의아한 듯 올려다보는 시선이 사랑스러웠다.

“건드리지 마십시오. 피가 멎은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점막이 약해져 있을 테니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대공은 괜찮으십니까?”

“왜 그러셨습니까?”

테오도어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물었다.

고민해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위스가 테오도어를 걱정해 이곳까지 따라왔을 리는 없다. 왜 위험 속에 스스로를 던졌단 말인가?

“습격한 게 골렘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곳에 술사가 되는 인형이 있다는 사실은요?”

“제 선조이신 위스 대왕께서…….”

위스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약간 지친 표정이었다.

“……남기신 기록이 있습니다. 전 어려서부터 마법을 좋아해 문헌 찾아 읽기를 즐겼는데, 오늘 갑자기 놀라운 상황을 겪으니 혹시 책에서 읽은 그게 아닐까 싶었고……. 예로부터 마법사들은 숲과 산에 숨어 스스로를 감추기를 좋아했다고 하니, 숨은 장소가 북쪽 산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테오도어는 깨달았다.

이 사람은 영리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곳에 술사가 있다는 사실을 정말로 확신하셨던 거군요. 왜 저를 보호하셨습니까?”

“……그게 대공을 노리고 있었으니까요.”

“…….”

테오도어는 말을 멈췄다. 위스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무뚝뚝하게 사랑을 주장하던 모습은 귀엽긴 했으나 믿음직하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 위스는 당황한 것 같았다.

대답이 당연한 질문을 테오도어가 하고 있다고 느끼는 듯했다.

물론 위스는 실제로 당연한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목적이 테오도어 말고 누가 있단 말인가?

이만한 위기에서 구해 줬는데, 테오도어가 다른 소리를 하면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걸 모르는 테오도어는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표적이어서, 나를 잡고 도망쳤다…….’

“그래서 다치시지 않았습니까.”

“뭐, 이 정도면 무난한데요.”

위스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가 테오도어의 표정을 보고 변명했다.

“어차피 거기 남았으면 골렘한테 맞아 죽었을 텐데요. 저만 죽는 것도 아니었을 거고.”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테오도어는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닫았다.

이 사람은 소문과 다르다. 자신만을 위해 책임을 회피할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테오도어도 이 사람을 오해했는지도 모른다.

위스는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했다. 테오도어는 습격의 배후를 물론 알고 있었다. 그의 형이다.

팔라틴의 왕 리엔델은 테오도어가 팔라틴으로 복귀하기 전에 끝을 보고 싶은 듯했다. 위스는 자신의 일에 휘말려 피를 보게 된 것이다.

‘설명을…… 하지 않으면.’

테오도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위스가 연관된 일이니까.

그리고 그건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 습격은 저를 노리고 일어난 일입니다. 리엔델 폐하는…… 경계심이 강한 분이라 동생의 충성을 의심하곤 하십니다. 그때마다 제 목숨이 붙어 있을지 그러지 않을지 또한 시험하신다는 게 제 불행이긴 합니다.”

그의 불행에 한 사람을 더할 생각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말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왕족이 사랑하는 상대와 결혼할 확률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이 운명의 주인처럼 느껴지는군요.”

위스는 떫은 듯 말했다. ‘저항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돌려서 까는 말에 테오도어는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대공 앞에서 그 나라 왕에 대해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 사람은 정말 특이한 사람이다. 저렇게 연약한 몸과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은 강하다. 보이는 인상과 들어맞는 데가 없었다.

“운명의 주인은 아니더라도 제 형님이시니까요.”

“…….”

“가족은 둘밖에 없으니 저라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스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실은 테오도어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이런 감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 가족은 중요한 것이었다. 배반해서는 안 되는 것, 약속을 지켜야 하는 대상.

기억도 안 나는 시절부터 그렇게 느꼈으니 아마 천성일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가족을 가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키지 못할 거라면 욕심내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사람은 강하다.’

테오도어는 문득 생각했다.

몸이 아니라 성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미래를 꿈꾼다면 이런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위험해집니다. 그래도 제가 좋으십니까?”

테오도어는 웃으며 물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결심에 금이 갔다. 이상한 일이다.

위스는 그의 품에 안긴 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산속은 어두웠다. 기사의 안력으로도 상대의 얼굴과 밟는 길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제 가족이 되길 원하십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짧았다.

“예.”

별 고민도 없이 튀어나온 듯한 대답이었다. 위스라면 그럴 줄 알았다.

테오도어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저도 좋습니다.”

⚜ ⚜ ⚜

위스는 생각했다.

‘됐다.’

고지식한 기사들은 이래서 문제였다. 목숨 한번 구해 줬다고 넘어오지 않는가?

사실 위스는 눈을 뜬 순간 큰일 난 게 아닌가 싶었다. 그가 기절하기 전까지 지껄인 말이 떠올라서였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본래 말투가 나온 건 뭐 그렇다 치자. 왜 저 새끼는 놀란 표정 한번 짓지 않아서 사람이 위화감도 못 느끼게 만든단 말인가?

‘그게 사랑에 빠진 사람 말투였나?’

아니다.

‘쌍욕은…… 안 했지.’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테오도어는 거기에 대해선 별말도 없더니 혼자 묻지도 않은 깊은 가정사를 털어놨다.

그러더니 위스에게 ‘그래도 저를 좋아하냐’ 따위를 물었다.

물론 위스의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예.”

테오도어가 웃어서 위스는 마주 웃어 줬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순조롭게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

이제 서로 협상할 자세가 갖춰진 것 같다.

그러고 내려왔더니 왕성은 대낮처럼 밝았다.

‘또 뭐냐.’

벽마다 횃불이 내걸려 길바닥엔 그림자도 안 질 정도였다. 손에 불덩어리 하나씩을 들고 뛰어다니던 병사들이 테오도어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대공 전하! 전하께서 돌아오셨다!”

“…….”

위스는 황당해졌다. 여기가 서머 왕성이 맞나?

왕자가 사라졌는데 그보다 타국의 대공을 먼저 찾고 있었다.

“위스? 얘야, 세상에! 대공과 함께 있었느냐?”

제레미아 왕은 대공을 맞으러 나왔다가 뒤늦게 위스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

위스는 그가 자신을 찾으리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단 찾을 능력부터 부족하지 않은가?

“대공께서 너를 지켜 주셨구나! 이런 감사할 데가!”

“그랬나 봅니다.”

위스는 한발 늦게 눈물의 해후를 하려고 하는 왕을 대충 상대했다. 왕의 품에 안겨 도닥임을 받고 있다가, 왕이 진정하자 물었다.

“범인들은 잡혔습니까?”

“그, 그래. 팔라틴군이 나서서 그놈들을 전부 구금했단다. 그런데…….”

“그 안에 모어 백작이 있다고요.”

“그렇단다! 어떻게 네가 그걸…….”

‘역시 붙잡혔군.’

팔라틴군은 서머군과 달리 허술하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