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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45)화 (4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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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긴 여행 끝에, 팔라틴 왕성에 도착한 건 밤이 다 되어서였다.

위스는 녹초가 되어 마차에서 내렸다.

‘잘하면 죽겠군.’

마차 안에서부터 아랫배가 쿡쿡 쑤시더니 이상하게 아팠다. 몸에 미열이 돈 지도 오래였다.

티 내는 성격이 아니라 마차 안에서 끙끙거리진 않았으나, 덜컹거리는 마차를 벗어나니 좀 살 것 같긴 했다.

‘근데 왜 안내를 안 하냐.’

대공 부부씩이나 되는 사람이 도착했는데 맞이하는 사람이 없다.

팔라틴 왕이 나와 귀빈 대접하는 건 바라지 않아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었다.

“많이 피곤하십니까?”

“예, 좀.”

“안아 드릴까요.”

“됐습니다.”

테오도어는 웃더니 위스의 이마와 목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나 위스는 막지 못했다.

위스에게 열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테오도어는 일어났다. 그가 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쾅쾅!

문을 부술 기세로 몇 번 두드리자, 복도 밖에서 궁인들이 달려왔다.

“……대공 전하!”

“저,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늦은 시간인데, 우리를 붙잡아 놓은 건 그대들이군. 기다려 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아직 응대가 없으니 내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대공께서 이렇게 이르게 귀환하실 줄 몰라, 준비가 미흡합니다. 왕자궁을 급히 청소중이니…….”

테오도어가 쓴웃음을 지었다.

“팔라틴의 궁인들이 왕자궁을 청소해 놓지도 않을 만큼 게으르다는 점을 자랑하는 건가?”

“죄, 죄송합니다.”

“사과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네. 폐하께서도 이만하면 만족하셨을 거라는 뜻이지.”

궁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뭐냐.’

대화 내용에서부터 황당함을 느끼던 위스는 ‘폐하’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혈압이 솟았다.

‘가지가지 하는군.’

팔라틴 왕은 한가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동생이 귀환일부터 기분 상해하길 원해, 궁인을 시켜 문제를 만들 만큼.

궁인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테오도어와 위스의 짐을 들고 앞장섰다. 위스는 두통을 참으며 테오도어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손님을 맞는 꼴이, 승전을 올린 기사나 대공을 맞이하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서머에서 테오도어를 더 경외한 듯해 위스는 불쾌감이 치솟았다.

그런데 왕자궁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또 달랐다.

“대공 전하! 와 주셨군요!”

“아, 이분이 위스미아 전하!”

“피로하시지요? 여독을 푸실 수 있도록 목욕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먼저 씻으실까요? 아니면 간단히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

궁인들은 백 년 만에 찾아온 손님 맞듯 테오도어를 환영했다.

“대공 전하, 다녀오셨습니까?”

그 가운데서 차분한 남자가 나타났다.

테오도어가 놀란 듯 불렀다.

“위릭. 시간이 늦었는데.”

“예. 늦은 시간이니 대공 전하 부부를 모시는 데 더욱 모자람 없이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기쁜 듯이 웃은 위릭이 위스를 돌아봤다.

“위스미아 전하. 처음 뵙겠습니다. 대공 전하의 시종인 위릭이라고 합니다.”

그는 귀족이었다.

“방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목욕 시중을 붙여 드릴까요? 따로 시중을 들 하인이 있으십니까?”

“필요 없어. 쉬고 싶군.”

“예. 식사도 괜찮으십니까?”

“그래.”

위릭은 군말 없이 위스를 안내했다.

싹싹하고 일 잘하는 게 딱 테오도어 아래에 있는 놈다웠다.

거대한 침실을 배정받은 위스는 가장 먼저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자 두통이 한결 가셨다.

‘왕이 노골적으로 홀대하는데 귀족 시종은 붙어 있단 말이지.’

테오도어를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뜻이다. 왕의 뜻을 노골적으로 거스를 정도의 세력이.

위스는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절로 혀가 차졌다.

‘너무 쉽다.’

테오도어와 팔라틴 왕을 갈라놓는 건 너무 간단한 일이지 않은가?

사실 둘은 이미 갈라져 있었다. 테오도어가 갈라진 곳을 혼자 붙들고 깔고 앉아 있을 뿐이다.

착잡한 기분으로 침실로 나가니, 웅웅대는 소음이 들렸다.

복도에서 누군가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중 한 명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테오도어다.

‘그놈이 말다툼을?’

위스는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말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은 테오도어가 맞았다. 그 상대는 뜻밖의 인물이었다.

다부진 느낌의 여자가 팔짱을 낀 채 테오도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위스의 가운 차림을 보고 당황한 듯 팔을 풀었다.

“제가 사적인 시간에 무례를 범했군요.”

“예. 공작께서 어디까지 따라오시려나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테오도어는 겉옷을 벗어 위스의 어깨에 걸쳐 줬다.

“들어가 계십시오. 춥습니다.”

“소개 안 해 주십니까?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부터 제 배우자를 앗아 간 분이 누군지 궁금한데요.”

“음…….”

테오도어는 신음하더니 공작을 돌아봤다. 공작이 위스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위스미아 전하, 이쪽은 치라 공작입니다. 공작, 위스미아 전하께 인사하십시오. 리엔델 폐하의 초청을 받고 긴 여행 끝에 도착하셨습니다.”

“위스미아 전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치라 공작이 미소 지었다.

“이제 돌아가시지요.”

테오도어가 공작에게 다시 권했다. 위스는 둘 사이의 기류를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

“부부 침실 앞에 그렇게 서 계시는 것도 예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응접실로 안내해 주세요.”

공작은 고개를 치켜들고 웃었다.

주인이 나가라고 눈치를 주고 있는데 태도가 뻔뻔하다.

미인이긴 했다.

‘저런 취향인가?’

위스는 공작을 유심히 살폈다.

“나가는 길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테오도어는 다시 나가라는 신호를 주었으나 방식이 다정했다.

위스는 뒷골이 땅겼다.

‘뭐 하냐.’

정식 배우자 앞에서 애인을 에스코트하겠다고 해?

“같이 가시죠.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위스는 테오도어의 팔을 꿰차고 공작을 쳐다봤다. 공작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위스와 테오도어를 번갈아 쳐다봤다.

“어머, 감사해라. 그렇게 해 주시겠어요?”

그녀의 고개가 테오도어를 향한 채 딱 멈췄다. 만면에 미소가 감돌았다.

“흐으음……. 그렇게 된 거였군요.”

“……공작.”

테오도어가 경고했다.

“이건 예상을 못 한 건데요. 그래서 제게 그렇게…….”

“그만하십시오.”

치라 공작은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예. 물론이에요.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제가 무슨 득이 있다고 이런 말을 퍼뜨리겠어요?”

“……감사하군요.”

“하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제 입을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공작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하는 거냐.’

위스는 저들끼리 아는 얘기를 더 떠들게 놔두지 않았다. 그가 테오도어의 팔을 콱 잡아당기자, 테오도어는 몸을 낮췄다.

위스는 낮아진 귀에 대고 말했다.

“피곤한데요. 손님맞이 계속 하실 겁니까?”

“아니요. 돌려보낼 겁니다.”

“가시죠.”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 두 사람을 공작은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위스는 무표정하게 그녀를 마주봤다.

팔라틴이 서늘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밤이 되니 서머의 겨울 수준으로 바람이 찼다. 공작은 그에 걸맞게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긴팔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때문에 눈치채는 게 늦었다.

그녀는 기사였다. 체구가 길쭉하고 탄탄하다. 강한 성격까지 기사 그 자체였다.

‘건강한 쪽이 취향이라 이거지.’

하기야 테오도어도 체력이 좋았다. 집요하기까지 해서 한번 달라붙으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매번 정신을 잃는 상대보다야 건강한 쪽이 함께 즐기기 편하지 않겠는가?

이따위 생각을 하다가 위스는 테오도어를 노려봤다.

“……전하? 많이 피곤하십니까? 역시 침실로 먼저 바래다 드릴까요. 뜨거운 초콜릿을 방으로 올리라고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위스가 피곤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여겼는지, 테오도어는 헛소리를 했다. 위스는 무시하고 앞장섰다.

지켜보던 치라 공작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

“실례했습니다. 두 분이 너무 다정하셔서 그만……. 괜찮으시겠어요, 대공? 제가 입을 다문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사람들도 눈이 있답니다.”

“……제가 뭘 했습니까?”

테오도어가 무안한 듯 대답했다.

“의식하고 하신 행동도 아니란 말씀이군요. 뭘 하시지 않아도…… 대공 전하의 표정을 보면 다들 알아챌 텐데요. 아니, 두 분이 나란히 서 계시기만 해도요. 왕국에서 가장 눈치 없는 사람도 깨닫고 말 거랍니다.”

“…….”

테오도어는 대답 없이 얼굴을 문질렀다.

복도에서 싸우는가 싶더니 또 갑자기 분위기가 좋다. 오래도록 친밀한 관계를 이어 온 사람들 사이에 느껴지는 끈 같은 것이 둘 사이에 있었다.

‘정리된 관계도 아닌가?’

위스는 신경이 더욱 곤두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넘어갈 일이 아니다.

치라 공작은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들고 궁을 떠났다. 복도에서 대립할 때는 언제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위스는 손님이 멀리 떠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둥에 등을 기댔다. 그가 팔짱을 끼고 눈을 깜빡이고 있자, 테오도어가 다가왔다.

“왜 기분이 상하셨습니까?”

위스는 아니라고 반박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는 화난 게 맞았다.

근데 화낼 일도 맞지 않나?

“멋대로 손님을 들여 화나셨군요. 제가 받은 손님이 아닙니다. 억지로 밀고 들어와 박대할 수 없었습니다.”

테오도어가 변명했다.

“아니. 그거 말고요.”

“예. 말씀하십시오.”

테오도어는 젖은 위스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헤집고 뺨에 입을 맞췄다. 위스는 눈을 찡그렸다.

“비위도 좋으시군요. 옛 연인이 가자마자 법적 배우자에게 손을 뻗으실 수 있다니.”

“……예?”

“두 분 친밀해 보이시던데요. 왕자궁 침실까지 알 정도로.”

“…….”

테오도어가 갑자기 얼굴을 쓸더니, 위스의 어깨에 고개를 처박았다.

위스는 짜증스러웠다.

“뭡니까?”

“전하, 질투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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