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국경을 침범한 자들의 목을 베어 적국에 보냈다. 시체는 높은 창대 위에 꿰어 영지 밖에 전시했다.
까마귀가 시체를 뜯어먹는 모습을 보며 적국은 공포에 떨었다.
그의 왕은 왕국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는 적을 용서하지 않았다. 반드시 보복했다.
그리고 그가 보복하는 자임을 알리는 방식으로 왕국을 보호했다.
테오도어의 왕은 망가졌다.
“노인과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들은 무기를 들지 못하나?”
테오도어의 왕은 설득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폐하께서 살아 계시면 전쟁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분은 보복하는 분이시니까요. 하지만 보복은 보복을 부를 뿐이잖아요. 폐하께서는 또다시 복수하셔야겠죠…….”
현명한 마법사 사무엘이 말했다.
테오도어는 왕이 더 미치도록 둘 수 없었다.
그가 사랑하는 왕은 고통받고 있었다.
왕은 약자를 보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약자를 학살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테오도어는 왕에게 그런 죄를 짓게 할 수 없었다.
팔라틴의 반란군은 과부들과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테오도어는 그들에게 영지를 돌려주었다.
‘돌아가서 폐하께 죄를 청하자.’
테오도어가 목숨을 걸고 왕의 뜻을 꺾은 적은 없었다.
변명거리는 많았으나 실은 그저 왕의 미움을 받기 싫었을 뿐이다.
테오도어는 비겁한 인간이었다.
자신의 화상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왕을 위해 가면을 쓰고, 그 아래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테오도어의 화상은 왕이 타인을 증오하도록 했다.
그런 테오도어가 왕의 곁을 바랄 수는 없다.
왕은 그에게 평온만을 주는 상대와 행복해져야 했다.
‘이미 결혼한 분이기도 하지만.’
사실 화상은 심하지 않았다.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치유 마법사가 곁에 있는데 흔적이 크게 남았겠는가?
그러나 그 작은 흉을 보는 것만으로도 왕은 찔린 듯이 아파했다.
‘비겁한 놈.’
사실 테오도어는 왕이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좋았다.
죄책감과 같은 통증을 가슴에 불러일으켰다.
테오도어는 정말 왕의 곁에 서서는 안 되는 인간이었다…….
마법사에게서 연락이 온 건 그즈음이었다.
“폐하께서 돌아가셨어요.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으면 지금 달려오셔야 할 거예요. 장례는 서머에서 치르기로 했어요.”
테오도어는 정신없이 말을 달렸다.
따르는 병력도 없이 홀로, 이제 적진이 된 서머 왕성으로 들어갔다. 앞을 가로막는 기사들을 밀쳐 내고 왕의 시신을 확인했다.
왕의 마법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최후에 마법을 사용하셨어요. 그분은 완전히 돌아가신 게 아니에요. 다시 돌아오실 거예요. 테오 경, 환생해 주실 수 있나요?”
“…….”
“다시 깨어난 폐하 곁으로 가, 그분이 대륙을 전화에 휩싸이게 하는 걸 막아 주실 수 있나요? 수락하시면, 전 테오 경에게 마법을 걸 거예요.”
테오도어는 수락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분을 다시 뵐 수 있다면.
그의 영혼이 누릴 안식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마법을 걸자마자 테오도어는 검을 뽑아 스스로의 목을 꿰뚫었다.
.
.
.
“아아아아악! 폐하!”
어린 테오도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그는 분노와 상실감에 떨고 있었다.
테오도어가 파괴하고 싶은 건 자기 자신이었다.
목을 조르고 머리를 짓이기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최악의 형벌을 주고 싶었다.
그는 왕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됐다!
왕의 곁을 지켜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왕의 곁에 있어야 했다. 스스로의 어리석은 판단 때문에 그는 왕의 마지막도 지키지 못했다.
“으으으으…….”
그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삼켰다. 그는 고통받을 자격도 없었다.
“흐으으…….”
흐느끼는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밤마다 아바마마를 부르며 울지 마라. 이제 어린아이도 아닌데 무슨 짓이냐? 온 성의 사람들을 다 깨우려 드는구나. 왕자가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고 소문이 나야 좋겠느냐?”
키가 큰 남자였다.
테오도어는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했다.
남자가 다가왔다.
테오도어의 눈에는 꿈속의 자신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테오도어는 저 개자식을 죽여야 했다.
“컥! 어억……,”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남자의 목을 졸랐다. 그보다 더 크고 나이 많은 남자가 버둥거려도 놓지 않았다. 목을 조르고 고함을 쳤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궁인이 사태를 발견할 때까지.
테오도어의 악몽을 근심하던 부왕은 마탑에 연구 기금을 바치고 마법사를 불렀다.
마법사는 로브의 후드를 벗으며 어린 테오도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안녕하세요, 테오 경.”
얼굴이 젊은데도 어째서인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남자였다.
테오도어는 그가 익히 알던 사람처럼 느껴져서 이상했다.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얼마나 반가운지, 테오 경은 아마 짐작도 못 하실 거예요……. 정말,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렸어요.”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남자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아……. 정말로. 폐하를 이제 다시 뵐 수 있다니.”
.
.
.
악몽을 봉인한 테오도어는 평범한 기사로 성장해, 어느 날 왕의 명령을 받고 출전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왕국은 서머였다.
북부의 팔라틴과 달리 몹시 따듯하고 사람들이 느긋한 이 나라는 약간 통통하고 주책없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왕은 테오도어에게 자신의 아들을 소개해 주고 싶어 안달이었다.
테오도어는 여러 번 거절했으나, 억지로 방 앞까지 안내하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제 아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위스미아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여서요.”
“그렇습니까?”
그는 한숨을 참으며 왕자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왕자와 대면했다.
“얘야, 위스. 귀여운 잠꾸러기야! 누가 네 병문안을 오셨는지 보렴! 내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아들……!”
왕자는 창백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피로해 보였다.
입술에 피가 번져 있는 모습이 큰 병이라도 앓고 있는 듯했다.
테오도어는 심장이 내려앉았으나 그런 내색은 할 수 없었다.
다만 병약한 아들을 정략혼으로 팔아넘기려 드는 제레미아 왕에게 경멸감을 느꼈을 뿐이다.
‘아니, 적대감인가?’
그러나 왕자가 테오도어와 무슨 관계라고, 그가 제레미아 왕을 적대하는가?
“다 죽어 가는 환자를 식장에 세울 정도로 악취미는 없습니다만……. 제게 혼인을 제안하기 전에 아드님의 건강을 챙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테오도어는 무심을 가장해 말했으나 왕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왕자는 창백한 얼굴로 테오도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슴 아파서, 테오도어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곧 신관이 올 겁니다. 쉬십시오.”
그 순간 왕자의 코밑이 붉게 번졌다.
왕자는 손등으로 피를 막으면서도 테오도어를 쳐다봤다.
손님이 있어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모양새라, 테오도어는 서둘러 그 방을 떠났다.
“건강한 아들이라니…….”
그는 한숨을 쉬며 목의 옷깃을 느슨하게 했다.
‘…….’
돌아섰는데도 위스의 얼굴이 눈앞을 떠나지 않았다.
제레미아 왕은 적어도 하나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위스미아 왕자는 눈을 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와 결혼한 뒤 테오도어는 그 사실을 마음 깊이 절감하게 된다…….
⚜ ⚜ ⚜
테오도어는 눈을 떴다.
“위스미아 전하.”
호칭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전하?”
그는 위스가 자고 있을 침실로 향했다.
어쩐지 걸음을 서두르게 됐다.
그의 얼굴을 보고 따듯한 살결을 만지고 싶다.
고압적인 말투로 명령하는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그러나 침대는 비어 있었다.
병자가 혼자 침실을 이탈했을 리 없다.
테오도어는 궁인을 붙잡고 물었다.
“……전하께서 씻고 계신가?”
“아니요, 욕조를 준비할까요? 전날 밤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드리긴 했는데…….”
“전하께서 방에 계시지 않아.”
“예?”
“위스미아 전하의 행방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나? 위릭!”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위릭의 사색이 되어 나갔으나 위스는 왕자궁에 없었다.
그의 호위도 마찬가지였다.
테오도어는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약해서는 안 된다.
‘리엔델은 파티장에서 전하를 빼내 독대했다.’
그 사실을 지금 위스가 잠시 사라진 상황과 연결하는 건 비약이다.
정말 그런가?
‘질문했어야 했다.’
테오도어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위스에게 물었어야 했다. 리엔델이 그에게 뭐라고 했냐고.
리엔델은 적이다. 위스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적을 독대하는 선택을 원해서 했을 리 없다.
위스가 있던 곳은 사람이 많은 파티장 안이었다. 리엔델이 힘을 써 강제할 수 없는 장소다. 리엔델이 강제적인 방법을 취했다면, 위스가 따라갔을 리 없다. 소리라도 질러 이목을 모으고 위기를 모면했을 터였다.
그렇다면 리엔델에게 위스를 불러낼 다른 방도가 있다는 소리다.
위스가 제 발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위스가 리엔델을 따라가야만 했다면.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호위는 동행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호위는 형편없이 약했다.
쾅!
전혀 안심되지 않아서 테오도어는 벽을 쳤다.
그분에게서 시선을 떼어서는 안 됐다.
-위험한 일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했는데, 위스는 듣지 않는다.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닌가?
“폐하께서는 말로 하셔선 듣지 않으시지…….”
“……예? 대공 전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위릭이 되물었다.
자신이 뭐라고 했던가?
테오도어는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위릭에게 대답하는 대신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궁을 떠나기 전 명령했다.
“예센을 불러.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성에서 문제가 생기면……. 진입해도 좋다고 전해.”
“……예!”
위릭이 눈을 크게 떴다.
테오도어는 지금껏 선을 넘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 위스미아 왕자가 위험에 처한다면, 본성을 침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군사 대응을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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