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유연천리(有緣千里) 1권
황묘
目次
序章. 사당의 주인
一章. 다정한 사람
二章. 서녕호가의 막내 도련님
三章. 깃털, 유리, 솜인형
四章. 인연이 있으면 천 리를 떨어져 있어도 만나고
五章. 화오궁의 습격
序章. 사당의 주인
여름이라 해가 이르게 창을 넘었다. 조충도가 새겨진 여름 휘장 너머로 느리게 빛이 영역을 넓혀갔다. 유위람은 한쪽 팔에 얼굴을 괴곤 자고 있는 현서를 구경했다. 아침에 천천히 일어나는 현서를 보는 것은 유위람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고른 숨을 내쉬며 달게 자는 현서는 평온해 보였으나 유위람은 속지 않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유위람은 현서를 몸 위에 올려두고는 느긋하게 후희를 즐기고 있었다. 오늘 있을 외출 때문에 현서를 무리시키지 않는 선에서 끝냈다. 때문에 정사가 끝나고도 현서는 제법 팔팔했다.
유위람의 가슴팍에 기대 숨을 고르다 잠드나 했더니 한 번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셈한 모양이었다. 현서의 손이 음흉한 목적으로 유위람의 가슴을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일순 말릴까 하다가 기승위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아 유위람은 부러 모른 척하며 가만히 있었다.
굳이 유혹이라는 걸 할 필요도 없이 유위람은 현서 한정으로 아주 쉬운 남자라 현서가 손대는 모든 곳이 성감대나 마찬가지였다. 유두를 깨물며 실컷 희롱하나 싶더니 조금 차가운 손끝이 은밀한 목적을 띠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유위람은 기대감에 숨을 삼켰다.
그사이 완전히 발기해 축축해진 양물을 양손으로 잡힌 유위람은 저도 모르게 달뜬 숨을 내뱉었다. 고개를 슬쩍 들어 기대감 어린 눈으로 허리 아래에 있는 현서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해주는 것도 좋고, 현서의 것과 엉켜 문질러지는 것도 좋았다. 무엇을 하든 편히 하라고 허리를 들어주려 했던 유위람은 현서가 그 예쁜 입을 벌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몸을 뺐다.
손에 잡혀 있던 성기가 쑥 하고 도망가자 현서가 볼멘소리를 냈다. 일전부터 한번 해보고 싶어 머릿속에서 미리 상상까지 했다며 당장 양물을 내어놓으라고 항의했으나 유위람은 굳건했다.
아래를 흉흉하게 세운 채로 유위람이 다정하게 말했다. 현서의 목은 여전히 약했고, 자신의 양물은 평범한 크기도 아니라고. 자칫 목구멍을 찌를지도 모른다. 기침으로 끝나면 다행이나 그러다 피라도 뱉으면 큰일이다.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데 위험한 도박은 하고 싶지 않다고 조곤조곤 말했다.
양물이 터질 듯이 부풀어 귀두 끝이 번들거리며 꺼떡거리고 있었으나 유위람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현서가 원하는 일은 다 들어주고 싶지만 자신 때문에 다칠 수 있는 일은 안 되었다.
유위람의 절절한 호소는 타당했기 때문에 현서는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구음을 못 한다고 해서 즐기지 못할 이유도 없었으니 말이다. 유위람은 시무룩한 현서를 살살 꾀어 질척이는 자신의 성기에 현서의 성기를 겹치곤 허리를 흔들게 했다. 삽입하지 않았으니 기승위라 치진 않았으나 현서가 자신의 위에 올라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쩍쩍대는 소리와 열기가 번졌다.
흑단 같은 검은 머리칼을 길게 내려뜨린 흰 피부의 미인이 쾌락에 휩쓸려 입술을 깨물고 무아지경으로 허리를 흔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더욱이 그냥 미인도 아니고 사랑하는 현서였으니 두말할 것도 없었다.
절정에 올라 토정하고 나니 이번에야말로 체력이 바닥났다. 잠이 어려 가물거리는 현서를 품에 안고 씻길 때만해도 유위람은 모든 것이 다 잘 끝난 하루라고만 생각했다.
그것은 유위람의 오판이었다. 그날 이후로 현서는 멍하니 손가락을 두드리다가 유위람의 고간을 지긋이 보기를 반복했다.
‘무슨 생각인 건지.’
유위람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가끔 현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을 해 자신의 간을 바닥에 떨어뜨리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모양이었다. 현서가 위험한 것만 아니라면 자신의 간이든 심장이든 뭐든 바닥에 패대기쳐도 상관없었으나 마음의 준비는 해두어야 할 성싶었다.
그사이 햇볕이 휘장 안을 전부 채웠다. 이제 현서를 깨워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일어날 시간입니다.”
유위람이 이마와 눈가에 입을 맞추며 현서를 깨웠다. 간지러운지 미간을 슬쩍 찡그리던 현서가 곧 눈을 떴다. 아직 잠이 조롱조롱 매달린 눈이 두어 차례 끔벅이더니 곧 이지를 찾았다. 곁에 있는 이가 유위람임을 확인하자 눈꼬리가 예쁘게 접혔다. 매일 보지만 매일 가슴이 달콤해지는 광경이었다.
“좋은 꿈 꾸었습니까?”
사랑에 빠져 쓸개도 같이 빠진 남자가 화사하게 웃었다.
현서가 침상 밖으로 나오자 소세할 물을 든 시녀들이 들어왔다. 현서가 가볍게 씻는 사이 이사가 거대한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 유위람에게 건넸다. 세수를 마친 현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물었다.
“설마 저걸 전부 제 머리에 꽂겠다는 건 아니죠?”
“물론입니다. 저 중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걸 고를 겁니다.”
유월에 들어서면 항도에선 소두절까지 머리에 생화를 꽂는 풍습이 있다. 작년에는 이사가 해주었는데 올해는 유위람이 손수 하겠다며 벼르더니 이 꽃 무더기를 만들어 냈다. 여러 색의 꽃이 잔뜩 있었는데 작년에 했던 흰색과 산호색의 꽃들은 전부 빠져 있었다.
이사가 아침 식사와 입고 나갈 옷을 챙기는 동안 유위람이 빗을 들곤 현서의 뒤에 섰다. 현서의 머리를 빗어 예쁘게 묶어주는 것은 이미 손에 익은 일이라 금방 끝났지만 꽃을 고르는 게 어려운 모양이었다.
“오늘 도련님의 옷은 흰색에 옅은 물빛과 청색이고 자수는 회색이라 소인이 보기엔 여기 자색이나 푸른색의 꽃들이 좋을 듯합니다.”
현서의 식사가 미뤄질 것을 걱정한 이사가 조언했다. 이사가 추천한 꽃을 머리에 대본 유위람은 조언이 훌륭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사이 생선이 든 죽을 두 그릇이나 마셔 속을 든든히 채운 현서가 옷을 입었다.
항도식 여름옷은 얇은 비단을 여러 겹 겹쳐 입는 것이라 사치스러운 만큼 운치가 있었다. 올해엔 원하는 옷을 잔뜩 주문해 둔 이사가 콧노래를 부르며 매무새를 잡아주었다. 소매 안에 과자 주머니를 넣고 나니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어때요?”
현서가 고생한 유위람과 이사를 위해 한 바퀴 빙글 돌며 물었다. 좋다. 잘 어울린다 정도의 무난한 답을 기대했는데 어째서인지 두 사람 다 미간을 찡그린 채 현서를 보고 있었다.
“이상한가? 내 눈엔 좋아 보이는데.”
다시 머리를 하거나 옷을 갈아입었다간 외출하기도 전에 기력이 바닥이 날 게 뻔해 현서는 이상해도 갈아입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위람이 웃으며 말했다. 안 어울리는 게 아니라 너무 잘 어울려 문제라고.
“꽃 장식 때문에 몽수(蒙首)를 쓸 수가 없다는 걸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 면사로 얼굴을 반만 가려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지금 준비할까요?”
이럴 때는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유위람과 이사의 대화를 농담이라고 여긴 현서가 소리 내 웃으며 얼굴을 가렸다간 더위에 익을 거라고 손사래를 쳤다. 현서가 싫다고 하니 두 번 권하지 못하는 두 사람은 금세 계획을 철회했다.
“다녀오세요.”
올해도 이사는 따라오지 않았다.
항도는 길을 따라 촘촘하게 나 있는 수로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편해 이번에도 거룻배로 이동하기로 했다. 배에 태우기 위해 손을 잡아주는데 이번에도 현서의 시선이 유위람의 허리 아래에 머물렀다. 누가 보면 허리의 옥패를 보는 줄 알겠지만 유위람은 모를 수가 없었다.
현서가 보아주면 어디든 다 좋지만 저 예쁜 눈에 반짝이는 게 호승심이어서 유위람은 불길함을 느껴야 했다. 무엇보다 현서의 시선만으로도 능히 세울 수 있는지라 곤란해졌다. 벌건 대낮에 아래를 세우는 것이 신경 쓰여서가 아니라 앞으로 방문할 곳엔 경건하게 가야 해서였다.
다행히 배가 움직이자 현서는 유위람의 고간에서 시선을 떼고 냉큼 자리에 앉았다. 현서와 유위람이 뭘 하든 뱃사공은 묵묵히 노를 저었다.
“올해도 화려하네요.”
소두절을 앞둔 유월의 항도는 꽃과 물의 고향이라는 말에 딱 맞아떨어지는 화사함을 자랑했다. 항도의 촘촘한 수로를 오가는 배 위로 사람들이 곧 오는 명절을 맞이하기 위해 꽃을 뿌렸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현서와 유위람이 있는 배에는 더 많은 꽃들이 떨어졌다. 꽃 무더기 사이에서 웃고 있는 현서가 너무 예뻐 유위람은 가슴이 떨렸다.
현서가 개중에 마음에 드는 꽃을 찾아 들곤 유위람에게 손짓했다. 반사적으로 바짝 다가가 얼굴을 숙이자 현서가 유위람의 머리에 꽃을 꽂았다. 여덟 살부터 항도에서 살았지만 꽃을 꽂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뻐요.”
현서가 유위람의 눈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후다닥 멀어졌다. 하지만 유위람은 보았다. 현서의 시선이 이번에도 고간에 닿았다 떨어진 것을 말이다. 다행히 그 후론 더 이상 고간을 보는 일은 없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거룻배 위에 앉아 현서는 연신 주변을 구경했다. 지금 현서가 무슨 생각으로 주변을 살피는지를 유위람이 알았다면 가슴이 떨리다 못해 철렁했을 터이나, 유위람이 익힌 것 중에는 안타깝게도 독심술은 없었다.
배에서 내릴 때가 되자 반짝이던 현서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피곤합니까?”
유위람이 걱정스레 물으며 익숙하게 안아 올렸다. 현서는 피곤하진 않았으나 앞으로 피곤해질 걸 알아 가만히 유위람의 품에 안겨 있었다. 작년에 보았던 나무 그늘과 잘 정리된 돌길을 지나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호 공자!”
“현서야. 잘 왔어.”
화정, 곽나난, 소화리, 감윤 등 아는 얼굴들이 현서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허나 현서의 시선은 그들 뒤에 있는 팔작지붕의 정자에 꽂혀 있었다.
장정 키보다 큰 무엇인가가 커다란 천에 덮여 있었는데 현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검선 자문원을 칭송하는 두 번째 공덕비가 완성되어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니 말이다.
―저 독한 놈들, 기어이 저것을 다 만들었어. 저놈들은 정말 정도를 모르는구나.
사당에 가긴 싫지만 현서와 떨어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오전 내내 침묵했던 옥이 결국 한 소리를 했다. 저 천 아래 있는 비석에 무슨 말이 적혀 있을지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현서는 유위람의 어깨를 안으며 심호흡을 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방문하는 이곳은 항도 북쪽에 있는 검선(劍仙) 자문원의 사당으로, 말하자면 호현서의 전생을 기리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