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연이라면 악연-1화 (2/72)

1화

상극(相剋) (1)

[준아. 어디 있니? 준아!]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에 이준은 두 눈을 떴다.

‘어머……니?’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이는 틀림없이 어머니였다.

컴컴한 어둠 사이로 들려오는 희미한 음성을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던지라, 이준은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준아! 이준아!]

윽.

상냥하고도 보드라웠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쩐지 갈라진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벗어나 문고리를 잡아 돌린 이준은 문을 열자마자 몸을 휘청거렸다. 둔기로 머리를 후려친 것 같은 강한 충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준아! 이준아!]

어머니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돼.

이준은 바득 이를 악물며 후들거리던 다리에 힘을 줬다. 그러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저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겨우겨우 발을 내딛던 이준의 눈에 눈부신 빛이 보였다.

이준은 그 빛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감지하며 손을 뻗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뻗으면 ‘저것’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준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며 하나의 구슬처럼 뭉쳐 있는 빛무리를 손에 쥐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막 그것을 막 움켜쥐던 순간.

“큭!”

《찾았다. 차이준.》

[――해, 피해, 이준아!]

[여긴 내가 처리할 테니 강주랑 휘준이를 어서!]

[――에 있고 싶었는데, ――다, 이준아.]

[엄마랑 아빠는, 너희를 ――다. 그러니――.]

[네가 ――건, ――어.]

“안 돼!”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이준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주르륵.

투득, 투득.

그의 이마에서 코끝, 그리고 턱밑으로 떨어지는 굵은 땀방울과 등 뒤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느껴졌다.

“하아, 하아―― 후우.”

얼마나 생생했던 건지, 아직도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이준은 검은 눈으로 여전히 진동하고 있는 제 열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망할.’

16년.

벌써 16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 빌어먹을 과거는 마치 조금 전처럼 일어난 것처럼 선명하다.

“――님! 배우님!”

칠흑의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이준의 귀에 메아리처럼 웽웽 울리던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이준이 고개를 들자 사색이 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배우님! 괜……찮으세요?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119, 119라도 부를까요?”

새파랗게 질린 남자는 바로 태경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를 담당하게 됐다는 스물여섯짜리 애송이 매니저.

제 행동 하나하나에 이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보면 마치―.

‘겁에 질린 사슴 같네.’

풋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던 이준은 손까지 벌벌 떨며 핸드폰을 꺼내 들려는 태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저기…….”

“응.”

“죄송하지만, 그, 그렇게 보지 말아 주실래요?”

“왜?”

“그, 그게…….”

정말로 119를 부를 참이었는지 핸드폰에 1을 꾹꾹 눌러 대던 태경이 뜨거운 시선에 고개를 돌리다 중얼거렸다.

벌겋게 익어 버린 그의 얼굴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충은 짐작했으나, 괜히 놀리고 싶어졌다.

이준은 오히려 가까이 태경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결국 참지 못한 태경이 푹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부, 부끄러워서…….”

이준의 귀에 겨우 닿을 목소리로 대꾸하는 태경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이준은 끝내 풋 웃음을 터트렸다.

“119는 됐어. 정신 차렸으니까. 그나저나 왜 내가 여기에…… 아.”

분명 조금 전까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클레몽 엔터테인먼트 이정후 대표실에서 얼마 전 방송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째서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걸까, 떠올려 보던 이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전화 때문이군.’

그래, 모든 것은 그 망할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이준은 눈을 내리감았다.

[이준이 너, 한 달 전 T국 주차장에서 발생한 사건은 들었지?]

[아…… 뭐더라. 여자 PD 살인 사건이랬나?]

[그래. 듣기로는 음방 보조 PD가 살해당했다는데, 아직까지 용의자가 없어서 조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더라.]

[용의자가 없어?]

[응. 난도질을 당했다나 봐. 그것도 얼굴에.]

[흐음.]

[단서가 워낙 적어서 다들 쉬쉬하는 모양이던데, 그것 때문에 T사에 가기가 좀 꺼려지더라고. 너 이번 달 말에 T사 쪽이랑 미팅 있지 않았나?]

[그랬었지.]

[웬만하면 취소해.]

[……명령이야?]

[제안.]

[알겠어. 대표님이 그러라면 그래야지.]

[고마워.]

[고맙긴. 나야 케어해 주는 대로 움직일…… 아, 전화 왔다. 잠…… 노인네가 웬일이지? 네. 여보세―.]

‘그래, 그랬었네.’

재작년쯤, FA가 되었던 이준은 정후가 대표로 있는 클레몽 엔터테인먼트와 두 번째 재계약을 맺었다.

이유인즉, 간단하다.

정후는 거리를 헤매던 그를 캐스팅한 사람이었고, 아이돌과 배우의 길에서 고뇌하고 있을 때 역시 도움을 주었던 종사자였다.

이후로도 사건 사고가 생기면 훌륭히 차이준을 커버해 준 고마운 사람인 정후는 무엇보다도―.

[할아버님이셔?]

[……응.]

[가야 하는 거지?]

[미안.]

[미안하기는. 스케줄은 걱정 마. 대충 조정할 테니까.]

[매번 고마워. 아마 일주일 정도 연락 안 될 거야.]

[하하, 그게 어디 한두 번이야?]

[…….]

[차라리 네가 집에 박혀 있는 게 오히려 안심되겠다. 어이, 한 사원. 이준이…… 아니, 우리 차 배우 좀 본가에 데려다줘라.]

차이준의 특별하기 그지없는 ‘집안일’을 이해해 주는, 몇 없는 사람이다.

“……님, 배우님!”

“아, 미안. 뭐라고?”

다시금 회상에 빠져 있던 이준은 저를 부르다 못해 그의 얼굴 앞을 휘휘 손으로 젓고 있는 태경을 발견했다.

이준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던 태경은 어느새 열려 있는 엘리베이터 안을 가리켰다.

“엘리베이터요. 왔어요!”

* * *

「안녕하세요, 청취자 여러분. ‘달빛 가득한 창’의 창 지기, 윤혜석입니다.」

우연히 튼 라디오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누었던 남자의 멘트가 들려온다.

무척 들뜬 듯한 음성.

이준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마 오늘 밤 달빛창을 기다려 주신 청취자분들이 유독 많을 거라 예상되는데요, 하하. 맞습니다. 오늘의 초대 손님은 바로 여러분들이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바로 그분입니다!」

이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분?’

「대한민국의 ‘차세대 차휘’, 아니, 이제는 차휘 씨만큼이나 독보적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배우 구승효 씨! 어서 오세요, 승효 씨!」

저기요, 윤혜석 씨.

그렇게 구승효를 띄워 줄 거면 ‘차세대 차휘’라는 표현은 그만 쓸 수 없습니까?

“이거 은근히 기분 나쁘네.”

“예?”

“아냐. 아무것도. 그것보다 라디오 좀 꺼라. 거슬린다.”

본가로 가는 길은 항상 거북하기 그지없다.

바짝 곤두선 신경 때문에 예민한 상태인데, 앞쪽에서 들려오는 불쾌한 대화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 네네! 죄송합니다, 배우님! 얼른 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구승…….」

치직― 뚝.

어느새 해가 져 버린 하늘 아래서 이준의 본가로 운전을 하고 있던 태경이 놀라 라디오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이준은 살짝 좁혔던 미간을 다시 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구승효라.’

하필이면 창밖으로 보이는 옥외 광고에 그 빌어먹을 이름을 지닌 녀석의 커피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침 그를 태운 밴이 신호에 걸려 멈추어 섰기 때문에, 이준은 그 광고를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었다. 겨우 펴졌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주인. 너 저 녀석, 싫어해?》

‘글쎄. 싫어하고 말고도 없어. 그냥 관심이 없거든.’

《관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주인은 넌 저 녀석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함(喊)>.’

《――!》

‘조용히 가자. 괜히 입씨름하기 싫다.’

안 그래도 짜증이 가득한 상태였던 이준은 귀찮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다.

곧 귀를 울리던 소리가 사라졌다.

이준은 물끄러미 옥외 광고를 응시했다.

‘아아. 갑자기 열 받네.’

저 빌어먹을 옥외 광고를 쳐다보고 있으니 얼굴이 구겨진다.

문득 불쾌하기 짝이 없었던 구승효라는 녀석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쪽이 요즘 그렇게 핫하다는 구승효 씨죠? 반가워요. 나는―.]

연예계의 오랜 선배로서 라이징 스타라고 소문이 났던 구승효에게 인사를 건넸던 그때. 돌아온 답변은…….

[……누구라고?]

였다.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은 것은 ‘차휘’의 오랜 연기 내공 덕분이었다.

‘그 예의 없는 놈 따윈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도 않아.’

이준은 바드득 이를 갈았다.

“저기, 배우님.”

상념을 뚫고 태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준은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운전석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태경이 룸미러를 통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 말이에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태경이었기에 “안 돼”라고 할 수도 없다. 이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태경이 물었다.

“왜…… 운전을 못 하시는 거예요?”

슬쩍 입꼬리를 올리던 이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룸미러를 통해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태경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 무, 물론 제가 배우님 태우고 운전하는 게 싫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왜, 저번 주에 제가 감기 걸렸을 때 있잖아요. 그때 대표님께 듣기로 배우님이 다른 분이 차 태워 주실 때까지 촬영장에서 대기하셨다고 하셔서요.”

“…….”

“그래서 혹시 운전을 아예 배운 적이 없으신가 하고…… 아! 시, 실례되는 질문이었다면 죄송…….”

“태경아.”

“예?”

횡설수설 말을 이어 나가던 태경이 그제야 룸미러를 쳐다봤다.

이준은 저와 눈이 마주친 태경을 보고 빙긋 웃었다.

“난 말이야, 운전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는 거야.”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거든,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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