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삼충(三蟲) (6)
‘빌어먹을.’
무엇보다 짜증스러운 점은, 정후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 회사가 가진 입지는 내 개인 소속사라 해도 무방하긴 하지.’
정후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몇몇 신인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폭망의 길을 걸었고, 매번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차휘가 아니었더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거라는 말까지 들은 한 후배가 클레몽에는 못 있겠다며 떠난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지 않은가.
장차 미래를 위해서는 ‘차휘’ 1인 기획사가 아닌 유망한 연예인들을 배출해야 했던 이정후 대표에게 있어 구승효와의 계약 기회는 달콤했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그렇지…….’
이준은 “네가 이해 좀 해 주면 안 되냐?” 하고 제 앞에서 손을 싹싹 비비고 있는 정후를 노려봤다.
물론, 구승효의 이적을 그저 ‘업무’의 일환 정도로 치부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이준은 보통 클레몽 사옥에 들르면 곧바로 대표실로 직행하여 정후와 담판을 나누는 경우가 잦았기에, 소속사 동료와 잘 부딪히는 편도 아니었으니 더욱더.
‘하지만 집은 물론이고 회사에서까지 마주친다는 사실이 싫단 말이다.’
이준은 바득 이를 갈며 얼굴을 구기다 멈칫했다.
‘잠깐. 이거 뭔가 이상하군.’
구겨진 얼굴을 펴지 않던 이준은 문득 상황이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승효가 FA라는 소리는 듣도 보도 못했어.’
만약에 FA 시장에 구승효 같은 대어가 나타난다면 시끄럽지 않았을 리도 없지.
‘그런데 너무 빠르게 클레몽이랑 계약을 했고, 또…….’
[나랑 승효 씨 소속사도 달라서 스케줄을 조정할 수도 없다고.]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말에 이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부, 계획적이었던 건가.’
하나부터 열까지.
아예 처음부터 클레몽으로 와서 일정 조정을 유리하게 만들 생각이었던 거네.
만약 구승효가 그 영감의 손을 빌린 거라면 충분히 이해된다.
“당했군.”
돌연 헛웃음이 났다.
그 말을 들은 정후가 “으응?”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준은 답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인간들.’
그 영감님은 원체 약삭빠르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지만, 새파랗게 어린 구승효라는 녀석이 생각 이상으로 만만찮다.
이준은 바드득 이를 갈았다.
“그, 그리고 사실은 이준이 너도 구승효, 그리 안 싫어하잖냐!”
눈치라고는 없었던 정후가 입을 꾹 닫고 있는 이준을 힐끔대다 툭 말을 던졌다.
이준의 검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왜긴.”
정후가 답했다.
“내가 그간 그렇게 승효 씨를 험담해도 오히려 말리던 게 너 아니었어?”
“…….”
“그러니까 잘못은 내게 있지. 그래, 이 형에게 있다. 형이 다 잘못했어. 너희 둘을 애초에 비교하는 게 아니었다. 하하, 어떻게 비교가 되겠니! 너는 하늘이고, 승효 씨는 그 하늘을 쫓는 별인데. 안 그래?”
“…….”
차가워진 이준의 눈길을 마주한 정후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너희 두 사람, 결국 한 식구가 됐으니 앞으로라도 잘 지내는 게 어때?”
“…….”
“이, 이 형의 얼굴을 봐서라도 말이야! 으응?”
살벌한 기운을 흘리고 있던 이준의 눈치를 보아 가며 한동안 정후는 계속해서 그를 설득했다. 그러나 뒤늦게 이준이 사옥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태경이 나타날 때까지도 이준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어라.”
정후가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의 대표실에서 대표 자리에 앉아 있는 이준의 튼튼한 어깨를 막 주무르고 있을 때.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개의치 않으며 태블릿을 응시하던 태경이 입을 열었다.
“또 이런 기사가 났네.”
“무슨 기사? 설마 우리 승효 씨 관련 기사야?”
이준이 더 이상 지적을 하지 않는다고, 정후는 이젠 아예 ‘우리’라는 수식어까지 붙였다.
그런 정후가 돌연 제 어깨를 세게 부여잡으며 외치자 이준은 얼굴을 구겼다.
“윽, 형!”
“아, 미, 미안. 아팠어?”
정후가 배시시 웃으며 이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인상을 쓰는 이준과 헤실거리는 정후를 번갈아 바라보던 태경이 들고 있던 태블릿을 그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가수 이세현 씨가 오늘 새벽 응급실로 실려 갔다네요. 이세현 씨라면 예전에 배우님이 계셨던 그 그룹 소속 맞죠?”
* * *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무더위가 찾아온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제발 좀 꺼져.’
흘러내린 땀방울이 결코 더위와는 관계없음을 오래전부터 자각하고 있었으나, 이준은 입술 밖으로는 그 말을 뱉어 낼 수 없었다.
스스슥.
리허설 전에도 후에도, 심지어 생방송 사인이 나온 뒤에도 제 곁을 맴돌며 사라지지 않는 검은 인영 때문에 이준은 몹시 예민해진 상태였다.
스슥. 스스슥.
‘가만히 있으라니까?’
스스슥.
‘제발!’
특히나 오늘 자정에는 멤버 전체가 출연하는 라디오 방송이 잡혀 있었다.
음악 방송을 마치고 곧바로 라디오 방송국으로 향하기 위해 밴에 올라타 있었던 이준은 창밖에 들러붙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검은 인영을 향해 있는 힘껏 외치고 싶었다.
“참. 그러고 보니 곧 휘 형 생일이지? 언제였더라? 내일모레쯤이었나?”
그때였다.
이준이 리더로 있는 그룹 ‘미스틱’의 멤버 중 한 명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그를 힐긋거리며 손뼉을 쳤다.
방송국으로 가는 동안 게임을 한다든가 아니면 웹툰 등을 보고 있던 멤버의 눈이 전부 이준에게 쏠렸다.
“뭐? 우리 큰형 생일이야?”
“와, 벌써 그렇게 됐네?”
“한진아, 그날 우리 일정 있었냐?”
“글쎄, 아직 매니저 형한테는 못 들었는데 라방이 하나 잡혀 있었던 것 같기도 해.”
“케이앱 전체 라방? 아니면 휘 형 단독 라방?”
“그건 모르겠어.”
“형들! 만약에 라방 전에 시간 비면 우리끼리라도 파티하자! 얼마 전 앨범 1위 찍었는데도 파티 못 했잖아!”
“파티라면 질색하는 서윤이 네가 웬일이냐. 그냥 케이크가 먹고 싶은 건 아니고?”
“뭐래. 나 그렇게 절제 없는 사람 아니……지 않지! 당연히 케이크 때문인 거 몰라? 휘 형, 형 케이크는 내가 먹어도 되지?”
“너 다이어트 진짜 안 하냐?”
이준을 제외한 다섯 명의 멤버가 쿡쿡 웃으며 뱉어 낸 말에도 그는 왠지 웃을 수가 없었다.
‘젠장할.’
여전히 창밖에는 예의 기분 나쁜 것들이 붙어 있었고, ‘저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밴 안에서는 차이준, 그뿐이었다.
“휘 형, 휘 형. 형이 좋아하는 케이크는 뭐야?”
“…….”
“내가 먹고 싶은 건 맞는데, 그래도 형 입맛에 맞아야 하니까. 특별히 주문하려고.”
“…….”
“형. 휘 형?”
마침 이준의 옆에 앉아 있던 그룹 ‘미스틱’의 가장 어린 멤버, 장서윤이 기대에 찬 얼굴로 이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왜 그래, 형? 안색이 안 좋은데?”
“아냐. 조금 피곤해서 그래. 케이크는 네가 먹고 싶은 걸로 골라.”
“헤헤, 그래도 돼?”
“응.”
“좋아. 그럼 나 초코케이크로 고른다?”
이준은 요즘 소속사로부터 다이어트 지시를 받은 서윤이 눈을 빛내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오케이, 초코케이크 주문 접수 완료! 으, 근데 오늘 왜 이렇게 덥지? 형들, 나 문 좀 잠깐 열게.”
“안……!”
드르륵.
스스슥!
‘제기랄!’
* * *
“차휘야. 정말 다시 생각해 볼 생각은 없는 거니?”
이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4년 차 남성 아이돌 그룹인 ‘미스틱’은 데뷔 직후부터 엄청난 화제를 몰며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총 여섯 명의 소년들로 구성된 그들은 소년에서 점점 성인이 되었고,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랩이면 랩, 무엇 하나 못하는 것이 없었다.
잠시 침체되어 있던 대한민국 아이돌계가 ‘미스틱’으로 인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업계 종사자면 모를 리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비평하길 좋아하는 언론조차 ‘미스틱’의 앞길에는 꽃길만 있을 거라며 치켜세우기만 했고, 팬들의 지지 역시 절대적이었다.
그런 와중 꺼낸 이준의 말은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것이 자명했다.
대표가 저리 어두운 얼굴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더는 버틸 수가 없어.’
열여덟에 데뷔를 하여 지금까지, 나름 내성이 생겼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차라리 그룹 활동보다는 솔로가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결심했고, 이준은 결국 대표에게 찾아온 것이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오랫동안 고민하고 말씀드리는 거라, 생각이 바뀌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던 대표는 다시 고개를 들더니 차갑게 말했다.
“파장이 클 거다. 난 막아 줄 생각이 없어. 너희 멤버들이 이해해 줄 거라고도 확신 못 하고.”
매정하다 싶은 발언이었으나 이준은 이해했다.
“그 친구들을 설득하는 건 제 문제니까요.”
“……빌어먹을 자식. 더럽게 고집불통이네.”
이준은 가감 없이 중얼대는 대표를 향해 쓰게 웃었다.
대표는 더는 대화를 하기 싫다는 듯 이준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고, 공손히 인사한 후 이준은 대표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
그리고 대표실 밖에서 우뚝 서 있는 한 소년을 발견했다.
이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현아.”
“형.”
그룹 ‘미스틱’에서 리드 보컬을 맡은 한 살 아래 동생이 이준을 불렀다.
“방금 대표님한테 한 말, 사실이야?”
이준은 얼굴을 찌푸리는 세현의 말에 숨이 컥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세현은 한 번 더 말했다.
“정말 내년에 탈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