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삼충(三蟲) (7)
단기간에 급성장한 그룹 ‘미스틱’은 그룹이 결성된 지 4년 만에 해체했다.
물론 처음부터 해체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룹에서 가장 독보적인 인기를 끌던 리더 차휘가 데뷔 4년 차에 돌연 탈퇴를 선언하면서 그 파장이 커졌기 때문이다.
차휘 왕따설부터 시작하여, 멤버 간의 불화설, 소속사와의 노예 계약, 대형 사고를 친 차휘 등등의 여러 추론이 있었지만 완벽하게 밝혀진 것은 없었다.
혜성처럼 등장하여 불꽃처럼 사라진 ‘미스틱’은 길면 길다고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연예계에 한 획을 그었고, ‘미스틱’의 중심이었던 차휘는 그간 병행하던 배우 활동에 치중하여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그 나이대 톱을 달리는 배우가 되었다.
[‘미스틱’과 관련된 일에서는 차휘 씨가 비난에서 벗어날 순 없죠. 결과적으로 ‘미스틱’을 터트려 버린 장본인이 된 셈이니까요.]
[하지만 차휘 씨도 그룹 활동 당시 쉽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음방에만 다녀오면 고열에 시달리기 일쑤였고, 심하면 기절까지……]
[그거야 전부 변명 아니겠습니까. 방송이 어렵다면 애초에 연예계 데뷔를 해서는 안 됐죠.]
[그건…….]
[그리고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음방만 다녀오면 고열에 기절이라. 카메라 울렁증이 심하면 지금 활동이 말이 됩니까? 그렇게 ‘미스틱’을 탈퇴하고 개인 활동은 얼마나 잘했습니까? 안 그래요?]
[…….]
[그런 의미에선 남은 멤버가 안타깝네요. 그때 차휘 씨의 뒤에서 ‘미스틱’을 지탱하던 그 멤버들은 결국 살아남지 못했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이세현 씨 정도가 있기는 하군요. 이세현 씨도 뭐, 차휘 씨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요.]
“……님. 배우님!”
이준은 눈을 떴다.
“광한 병원 앞에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차를 세운 태경이 운전석에서 저를 부르고 있었다.
그간 잊고 지냈던 이름을 떠올리다 보니 과거의 일들이 물밀듯 떠올랐다.
한 연예 평론가가 인터넷 방송에 나와 한 말이 아직도 선명하게 귀를 맴돌아 얼굴을 굳히고 있던 이준은 태경을 응시했다.
그는 빙긋 웃으며 코끝까지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콧등 위로 올렸다.
“고마워. 그럼 가 볼게.”
“잠깐만요, 배우님!”
이준은 저를 저지하려는 듯 손을 들어 보이는 태경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태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로 가시려고요?”
이준이 소속되어 있던 아이돌 그룹 ‘미스틱’은 정확히 11년 전 해체했다.
당시 해체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구설수는 아직도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았다.
사건의 당사자들인 여섯 멤버는 아직도 연예계에 종사하거나 혹은 은퇴한 상태이긴 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당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경이 쓰이나 보네.’
[태경아. 미안한데…… 세현이가 쓰러졌다는 그 병원, 어느 병원인지 알아봐 줄 수 있어?]
가수 이세현이 자택에서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입원했다는 광한 종합 병원에 직접 이준을 데려다줬음에도 불구하고 태경은 걱정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걱정 마. 괜찮은지 살짝 얼굴만 보려는 거니까.”
“그래도…….”
“안 들키게 할게. 이거 봐. 꽉 눌러쓴다니까?”
겨울이 막 지난 초봄이라 다행이다.
아직 선글라스와 버킷햇, 그리고 목도리와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릴 수 있으니.
저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툭툭 치는 이준의 말에 태경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전 근처에 있을 테니 볼일 보시고 연락 주세요.”
이준은 고맙다고 한 번 더 말한 뒤 차에서 내렸다.
서울 광한 종합 병원.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병원 정문 쪽으로 향하려던 이준은 마음을 바꾸어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
‘이 통로로 가면 특실이랑 이어졌던 것 같은데.’
병문안은 정해진 시간이 있었고, 특히나 특실은 더욱 엄격하게 관리된다.
하지만 그런 곳이라도 허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때 모종의 이유로 광한 병원을 자주 이용하곤 했었던 그는, 정문과 후문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피해 세현을 만날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이세현이 정말 자살 시도를 한 거야?”
이준은 우뚝 멈추어 섰다.
이게 무슨…… 소리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살 시도라고?’
한때 이준이 속해 있던 그룹의 멤버인 세현에게 큰일이 일어났다는 걸 듣고 어렴풋이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 말을 실제로 들으니 숨이 막혔다.
이준이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을 때 다음 말이 들려왔다.
“아니. 자살은 아니래.”
‘……아.’
그 말을 들으니 아주 조금, 안심이 됐다.
이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 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긴 했나 봐. 그러고 보니 4집 준비에 한창이라고 했었잖아.”
“싱어송라이터는 괴롭겠네. 한 곡 한 곡을 평가받을 테니.”
“그래도 돈만 잘 버는걸. 그것보다 뭐 건진 건 있어?”
“글쎄. 아직.”
“이세현 여친 같은 건 없고?”
“야야, 그럴 리가. 얘 거의 몇 년째 솔로 아니냐.”
“크흠. 이럴 때 이전 멤버들이 한번 얼굴 비춰 주면 좋은데.”
“행여나. 차휘를 말하는 거라면 그 고고하게 구는 녀석이 이런 곳에 행차하겠어?”
“하긴. 그렇겠네. 제 성공을 위해선 가족 같다던 멤버도 버리는 놈이니.”
막 응급실을 지나 특실로 넘어갈 수 있는 직원용 복도를 배회하던 이준의 귀에 수상한 복장을 하고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자들의 대화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기자임이 분명했던지라 이준은 몸을 숨겨야 했다.
가만히 서 있다가는 저 녀석들에게 들키기 십상……!
“이쪽이에요, 선배님!”
몸을 돌리려던 이준의 손을 누군가가 덥석 잡았다.
달칵―.
“다행이에요, 선배님. 그 기자들, 간 것 같아요. 이제 숨 돌리셔도 돼요!”
비상계단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던 이준은 문을 닫고 저를 향해 외치는 남자를 빤히 응시했다.
생글생글 미소가 가득한 하얀 얼굴에 눈, 코, 입은 올바르게 다 붙어 있고, 연한 분홍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남자는 많아 봤자 20대 초반처럼 보였다.
‘어디서 많이 봤나 했더니…….’
소년과 성인 남자의 얼굴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 분홍색 머리의 얼굴이 낯익은 까닭이 생각났다.
[, 수 개월간 펼쳐진 선발전에서 국민 프로듀서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영광의 1위는…… 조명우!]
재작년 봄, 대한민국을 열기로 들끓게 한 케이블 TV 프로그램 에서 일곱 명의 소년들을 선발하여 아이돌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다.
무려 국민에게 선택받았다는 그들은 당연하게도 범국민적 인기를 구사했는데, 올해 초 그 활동 기간이 끝이 나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줬다.
이준은 그 프로그램의 본방송을 사수하지는 않았으나 클레몽 대표실의 유승아 비서가 광적인 팬이었던 게 기억난다.
[배우님, 배우님 번호로 문자 하나 돌려도 돼요?]
[예?]
[별거 아니에요. 투표 하나만 해 주세요. 해 주실 거죠?]
당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잠시 대표실에 들렀던 이준은 광기 어린 눈빛을 빛내며 제게 핸드폰을 요구하던 승아를 황당하게 응시했었다.
‘그러고 보니 유 비서님이 투표해야 한다던 소년이 바로 이 녀석이지 않나?’
이준은 “하여간 기자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네요.” 하고 중얼대고 있는 분홍색 머리의 청년을 향해 빙긋 웃었다.
“고마워요. 신세를 졌네. 그러니까…… 조명우 씨, 맞죠?”
천천히 몸을 일으킨 이준의 말에 문밖에서 혹 소리가 들려오진 않을까 귀를 대고 있던 명우가 저를 놀란 듯 쳐다봤다.
“제, 제 이름을 아세요?”
이준은 저보다 조금 낮은 눈높이를 지닌 명우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 나왔었잖아요. 1위 하지 않았었나?”
“헉!”
“맞다. 드라마도 하나 찍었죠? 주연은 아니었지만 시청률이 꽤 괜찮았던 것 같은데…….”
“<더 소울>입니다, 선배님!”
“아, 그래요. 그거. 여하튼 반가워요.”
20대 초반인 눈앞의 청년이 분홍색 머리를 하고 있는 것은 얼마 전 성황리에 끝이 난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
<더 소울>이라는 범죄 수사물 드라마에서 이 청년은 사이코패스 범죄자 역할을 맡았고, 생전 처음 도전했다고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잘 큰다면 영향력이 엄청나겠어.’
호감 있는 마스크에 체격도 좋고, 연기까지 잘하니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청년이었다.
이준은 구승효를 제외하고선 기본적으로 연예계 후배들에게 친절했다.
덕분에 후배들 사이에선 이준은 꽤나 인기가 있는 편에 속했는데, 저를 감격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분홍 머리 아이돌 역시 이준을 따르는 후배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녀석도 넘어갔네.》
양랑은 이준에게 “어릴 적부터 팬이었어요!”라든가 “선배님이 나오신 드라마는 다 봤어요. DVD도 소장하고 있는걸요!”, “선배님 노래들도 전부 들었어요!”라는 말을 쏟아 내고 있는 이준의 분홍 머리 후배를 향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