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삼충(三蟲) (9)
수년간 비생들을 보아 왔고 또 그들을 퇴마해 왔으나, 제 몸에 부적이 붙은 것은 처음이다.
혹여나 이 부적을 보낸 이가 만일 그를 쫓아오기라도 했다면?
이준은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부적술을 사용하여 그를 공격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
이준은 구겨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그때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받아들인 이준이 입을 다물고 생각을 이어 나가자 승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승효는 말했다.
“첫째로, 정말 ‘우연히’ 선배님의 몸에 이 부적이 붙었을 경우죠.”
“우연히?”
되묻는 이준에게 승효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는 일반인이 선배님을 쫓고 싶어 ‘우연히’ 이 부적을 샀고, 마침 선배님을 발견하여 슬쩍 붙인 경우라고 할까요.”
한마디로 이준의 팬이거나 혹은 악질 스토커라는 소리다.
이준은 쓴웃음을 삼켰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준의 물음에 승효는 말없이 웃었다. 이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두 번째 가능성은?”
황당해하는 이준을 보고 미소 지은 것을 보면 전자의 의견이 무리라는 사실을 승효 역시 알고 있는 듯했다.
이준의 물음에 승효의 눈빛이 변했다.
“두 번째는 선배님이 견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일부러 접근한 경우입니다.”
이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저 역시 승효의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더 안 좋군요. 만약 선배님이 견자라는 것을 알고도 이런 걸 붙인 거라면…….”
승효의 연갈색 눈동자가 구겨진 종이 인형 부적에게 꽂혔다.
“선배님을 타깃으로 잡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니까요.”
* * *
[해서 선배님께 물어본 겁니다. 오늘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를 다녀오신 건지.]
매서워지는 구승효의 눈빛에 이준은 결국 술술 불 수밖에 없었다.
그날 하루, 그가 무엇을 했는지, 또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다녀왔는지 전부.
오전에 들렀던 클레몽 엔터테인먼트 사옥부터 시작하여 그곳에서 몇몇 기자들을 만났던 이야기, 귀가하는 길에 병원에 들렀던 이야기 등등.
‘완전 까발려진 느낌이군.’
다정한 가면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친근하기보단 대중과 나름의 거리를 두고 있던 이준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제 사생활을 낱낱이 알게 된 구승효란 존재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확실히 이 분야에 있어서 그 녀석이 나보다 한 수 위인 건 사실이니까.’
군말 없이 따를 수밖에.
이준은 제 대답을 듣고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승효를 힐끔거렸다.
한참 고심하던 승효가 말했다.
[크게 문제 될 만한 일은 겪지 않으셨군요.]
[그런 셈이지.]
[뭐, 조금 더 지켜보긴 해야 할 듯합니다만, 주의하십시오.]
[……으응. 고, 고마워.]
[별말씀을요. 그것보다 선배님께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뭐? 양랑이 있는데, 굳이?]
[아무리 선배님의 영기가 강하다고 해도 산군을 뜻대로 부릴 수 없다면, 선배님의 안전 또한 책임질 수 없으니까요.]
[…….]
[언제까지나 산군의 도움만 받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젯밤, 이준의 몸에서 종이 인형 부적을 발견한 이후 승효는 말했다.
이준이 견자로 지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훈련이 필요하다고.
자신이 그 훈련을 생각하는 동안, 각별히 주의를 하고 있으라며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승효에게 반기를 들고 싶었으나 종이 인형 부적이라는 증거가 나온 이상 계속 오기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여간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없어.”
《누구? 그 녀석?》
“그 녀석 말고 누가 또 있겠어.”
이준은 양랑을 향해 차갑게 대꾸한 후 입술을 삐죽였다.
물론 이준도 바보는 아니기에, 구승효가 자신을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누군가 붙인 그 부적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경계를 요구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누군가 날 통제하는 건 사양이라고.’
게다가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준은 구승효에게 클레몽 엔터테인먼트의 이적에 대해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지 않았던가!
‘말려들었어.’
갑자기 발견된 종이 인형 부적이 모든 상황을 바꾸어 버렸다.
이준은 벅벅 머리를 긁으며 입술을 삐죽인 후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인터넷 즐겨찾기 창의 한 아이콘을 클릭하자 평소 자주 염탐하던 한 커뮤니티 사이트가 시야로 들어왔다.
연예계와 관련된 수많은 글 중 유독 눈에 띄는 글이 존재했다.
[잡담] 알갱이들은 어떻게 생각해? 구 스타가 갑자기 소속사 옮긴 거 말이야.
이 커뮤니티 내에서는 보통 유저들을 ‘알갱이’라고 칭하곤 했는데, 그 글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저 역시 궁금해졌다.
이준은 잠시 망설이다 그 글을 클릭했다.
요즘 구 스타 관련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혹시나 했는데, 어제 아침 기사가 났더라고.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 클레몽으로 이적한다는 기사였지.
클레몽이면 ㅊㅎ가 있는 곳이잖아.
일도 더럽게 못해서 ㅊㅎ 빨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체 업계 이미지 1, 2위를 동시에 품게 된 이유가 납득이 안 가더라고.
혹시 우리 구 스타가 ㅋㄹㅁ한테 약점 잡힌 게 있나? 다들 아는 게 있으면 좀 풀어 봐.
‘약점이라니.’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구승효는 대체 무슨 의도로 클레몽으로 이적했을까.
이준은 코웃음 쳤다.
확실히 10대에서 20대 초중반이 주를 이루는 이 커뮤니티에서 이준은 놀랍게도 한물간 연예인 취급을 받았다.
단적인 예로 이 글쓴이 역시 자신을 무슨 이름을 불러선 안 될 마법사처럼 ‘ㅊㅎ’라는 초성으로 칭하고 구승효를 ‘구 스타’라고 부르지 않는가.
작게 입술을 삐죽이던 이준은 천여 개가 넘는 댓글을 찬찬히 훑어봤다.
Noname 1 대형인 ㅋㅇㅌ에서 갑자기 중소 쪽인 ㅋㄹㅁ으로 이적은 좀 이상하긴 했지. 원글러 말 들어 보니 뭔가 수상하긴 하네. 구승효가 차휘네 대표한테 약점 잡힌 게 있나?
⤷ Noname 1-1 말이 되는 소리를 해. ㅋㄹㅁ이 뭐 대단하다고 그쪽 대표가 구승효 약점을 잡아?
⤷⤷ Noname 1-1.1 22222 클레몽이 뭐 대단하다고
⤷ Noname 1-2 222 난 합리적 의심이라고 봄. 차휘가 미스틱 탈퇴하고 ㅋㄹㅁ 갈 때부터 수상했어. 그쪽 대표가 업계에서 한따까리 하나?
⤷⤷ Noname 1-2.1 ㅋㄹㅁ 대표는 차휘가 배우 데뷔 때 많이 도와줬던 당시 소속사 로드 매니저일걸? 그래서 의리로 ㅋㄹㅁ으로 간 걸로 알고 있음 ㅇㅇ
Noname 2 ㅈㄴㄱㄷ) 여긴 구씨 팬이 많아서 함부로 말하긴 좀 그런데, 난 우리 왕자가 불쌍하다. 왕자 짬밥이 얼만데 이제 막 올라오는 애 팬한테까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냐ㅡㅡ 안 그래도 우리 왕자가 뭐 할 때마다 구씨랑 엮여서 불쾌해 죽겠구만.
⤷Noname 2-1 22222 나 이 댓글에 공감. 우리 왕자 연예계 데뷔한 지 10년이 넘는데 이제 막 데뷔해서 이름 알리는 신성이랑 비교질당하는 거 매번 짜증 나 죽겠음
⤷Noname 2-2 3333 좀 엮지 마. 같은 소속사 배우일 뿐 우리 왕자랑 아무 관계 없어. 적당히 좀 해
Noname 3 내가 알고 있기로 구승효 이적은 구승효 쪽이 직접 나선 걸로 알고 있음
⤷ 원글 뭐? 진짜야? 구 스타가 직접 진행했다고?
⤷ Noname 3 ㅇㅇ 그래서 케인텍에서도 구승효 잡으려고 온갖 수단 방법 다 동원했는데, 구승효 쪽이 힘이 좀 더 세서 어쩔 수 없이 풀어 줬다네. ㅋㄹㅁ은 봉 잡았지. 구승효랑 차휘 둘 다 잡게 되었으니
⤷⤷ 원글 미쳤네…… 구 스타 무슨 생각이지?
⤷⤷⤷ Noname 3-1 혹시 구 스타가 일부러 ㅋㄹㅁ 간 거 아냐? 요즘 하도 ㅊㅎ랑 비교당하니까, 차라리 같은 소속사면 덜 비교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원글 ㅋㅋㅋㅋ그건 아닌 듯. 차라리 다른 소속사에서 발라 주는 게 낫지, ㅋㄹㅁ으로 가면 ㅊㅎ한테 당연히 좋은 대본이나 제안이 더 가지 않겠어?
Noname 4 맥락 파악 못 해서 미안한데, 난 왜 차휘랑 구승효가 같은 소속사라니 기대되냐. 나만 그럼?
⤷ Noname 4-1 222 나도 그럼ㅋㅋㅋㅋ
⤷ Noname 4-2 33333 구 스타! 차휘랑 커플 브이로그 찍어줘~
⤷ Noname 4-3 44444 둘이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뭔가 공통점도 많을 것 같은데
⤷⤷ Noname 4-3.1 초 쳐서 미안한데, 그건 기대 안 하는 게 좋아. 차휘가 구승효 안 좋아함.
⤷⤷⤷원글 엥? 이건 뭔 소리여? ㅊㅎ가 왜 우리 구 스타를 안 좋아해? 지가 뭔데!
⤷⤷⤷⤷ Noname 4-3.2 나도 Noname 4-3.1처럼 알고 있어. 요즘 차휘가 제자리 뺏길까 싶어서 구승효 견제 쩐다더라. 구승효랑은 한 프레임 안에 안 서려 한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