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연이라면 악연-32화 (33/72)

32화

삼충(三蟲) (15)

“휘 형! 휘 형! 이 기사 봤어?”

숙소에서 쉬고 있던 이준의 방을 벌컥 열어젖힌 ‘미스틱’의 멤버 해인이 들고 있던 태블릿을 이준에게 건네며 소리쳤다.

이준이 의아하게 그를 응시하자 두 눈을 치켜뜨던 해인이 바드득 이를 갈았다.

“이 기사 말로는 형이 우리 미스틱을 탈퇴한대!”

“……!”

“와, 씨. 진짜 미친 거 아니야? 탈퇴는 무슨 얼어 죽을 탈퇴야! 하여간 요즘 기자들은 발로 글을 쓰는 건지 뭔지. 완전 짜증 나지 않아?”

당장이라도 대표한테 고해야 한다고 씩씩대는 해인을 보고 이준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거, 사실이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결국 밖으로 튀어나오진 않았다.

[당장은 힘들어. 잡힌 프로모션도 많고, 팬들 반응도 걱정이 돼. 그러니 내년 단콘까지 1년만 참아.]

이준이 대표실을 찾아가 그룹 탈퇴를 언급했을 때, 당시 소속사 대표는 말했었다.

소속사 간부들이 모두 모여 한마디로 이준에게 요구했기에 하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지금껏 그의 탈퇴는 진행되지도, 그렇다고 끝맺지도 못한 상태였다.

‘미안하다.’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근래 들어 더욱 심해지는 비생의 문제는 둘째치고서라도, 이준으로서는 단체 생활이 너무도 힘들었다.

특히나 얼마 전 멤버들과 함께 출현했던 예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비생들로 인해 죄 없는 다른 멤버들에게까지 화를 입힐 뻔했다.

차라리 같이 출연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덜하겠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멤버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었다.

말을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었던 이준의 죄책감은 갈수록 커져 가는 중이다.

“여하튼 나 이 기자한테 정식 항의할 거야. 이번에도 말리면 안 돼! 알았어?”

그저 쓴웃음만 흘리고 있던 이준을 보며 해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형.”

해인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세현이었다.

이준의 검은 눈이 세현을 향하자, 문턱에 몸을 걸치고 있던 세현이 어두운 얼굴을 하며 입을 열었다.

“대체 다른 애들한텐 언제 말할 거야?”

“세현아.”

“형이 정녕 우릴 흩어지게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듣게 하지 말고 직접 말해야 해.”

“…….”

입을 꾹 다문 이준을 보고 짧은 한숨을 내쉬던 세현이 다가왔다.

“형이 말하기 힘들면, 내가 도와줄게.”

세현이 손을 내밀었다.

《……인, 주인!》

그 순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이준에게 다가온 당시 세현의 손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양……랑.’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양랑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나 웬일인지 감긴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제……기랄…….’

이준은 욕설을 삼켰다.

불행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이준이 쫓았던 존재는 세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세현이 아니었다.

‘비생……이야.’

지금껏 중하급 비생들을 주로 퇴치해 왔으나 그래도 한때는 촉망받는 견자 후보생으로 꼽혔던 터라 세현을 보자마자 단번에 눈치챘다.

흰자위마저 검게 물들어 있던 세현은 아마도 꽤 오래전 중급 이상의 비생에게 몸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도와줘야 해. 내가…… 내가 도와줘야…….’

[너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어!]

크윽!

목을 박듯 강하게 들려온 그 음성이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던 이준의 목을 옥죄여 왔다.

‘양랑…….’

양랑, 거기…… 거기 있어?

여전히 그의 눈은 감긴 상태였기에 주변은 컴컴하기만 하다.

이준은 몸을 웅크린 채 차가운 바닥을 짚으며 양랑을 불렀으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발.

“양…… 컥!”

마지막 남은 힘을 사용하여 한 번 더 양랑을 부르려 했다.

그러나 이준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에 그의 입 속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깜짝 놀란 이준이 그제야 눈을 뜨자, 벌레의 형상을 한 세 마리의 검은 기운이 그의 입 안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커컥!

‘안 돼.’

‘이것’한테 침식당하면 안……!

“우웁!”

캬아악!

세 마리의 검은 벌레들은 이준의 입 안으로 달려들며 기분 나쁜 숨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온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이준이 그것들의 공격을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않을 때―.

“……님.”

저 멀리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컴컴하던 천장이 쫘악 갈라지더니 눈부신 빛이 이준에게 쏟아졌다.

캬아악!

크키킥!

세 마리의 벌레가 갑작스러운 빛으로 인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이준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웬 팔 하나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이준이 망설이지 않고 그 손을 덥석 잡자, 강한 힘이 그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괜찮으십니까, 선배님?”

흐려졌던 시야가 맑아지자, 그 녀석이 보였다.

* * *

“삼충이요?”

이준은 놀라는 승효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분명 그거였어.”

깊은 어둠 속, 이준의 얼굴에 존재하는 구멍이라는 구멍으로 침투하려던 그 괴상한 것들은 틀림없는 비생이었다.

비생은 수많은 형태로 존재한다.

인간의 형상을 한 것이 있었고, 동물이나 무생물의 형상을 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것은 바로 벌레 형상을 한 것인데, 이토록 강한 기운을 흘리는 것이라면 아마도 삼충뿐이다.

게다가―.

“승효 씨, 오늘이 무슨 날이지?”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던 이준이 묻자 승효가 잠시 고민했다.

이준이 결코 날짜나 요일을 묻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그가 대답했다.

“……경신일(庚申日)입니다.”

경신일이라.

“그렇다면 더욱 확실히 삼충이네.”

일 년에 여섯 번, 많으면 일곱 번이 돌아온다는 경신일엔 평소 인간의 몸에 기거하며 그 인간의 죄와 행적을 기록하던 삼충, 혹은 삼시충(三尸蟲)이라는 벌레가 하늘로 올라간다.

상제(上帝)를 만나 자신이 들어 있던 인간의 죄에 대해 고한 삼충은 그 후 인간의 수명을 빼앗는데, 그들이 이러한 짓을 저지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삼충은 자신이 깃든 인간이 죽지 않는 한 완벽하게 인간에게서 벗어날 수 없고, 또 인간이 죽으면 예의 제삿밥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수경신(守庚申)의 풍습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지.’

과거 선조들은 매일 경신일이 되면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며 이 삼충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혹자는 신선이 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제 몸에 깃든 삼충을 제거한다고도 했다.

“선배님 말씀은, 이세현 씨가 삼충에게 제어당하고 있다는 거군요.”

삼충과 관련된 고사를 읽은 적이 있어 그에 대해 생각하던 이준은 들려오는 승효의 말에 그를 응시했다.

“승효 씨.”

이준은 제 부름에 반응하는 승효에게 말했다.

“세현이한테 기회가 없는 건 아니야. 아직 완벽하게 의식을 빼앗긴 건 아닌 것 같으니 어떻게 해서든 세현이가 잠들어선 안 돼.”

만약 이세현이 삼충에게 완벽하게 제압당한다면 이준은 세현을 구할 틈도 없이 잃게 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세현이를 찾아서 그 녀석의 몸에서 삼충을 꺼내거나 제거해야 해. 그러니까…….”

“선배님.”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승효의 옷자락을 잡으려던 이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승효가 먼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이준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준이 떨리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구승효는 고요한 갈색 눈을 이준에게 고정시키며 말했다.

“이세현 씨의 일은 제게 맡기십시오.”

“어?”

이준이 무슨 소리냐는 듯 인상을 쓰자 승효는 냉정하게 말했다.

“이번 일은 선배님은 한발 물러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뒤늦게 그 말뜻을 알아차린 이준이 얼굴을 굳혔다.

“이봐.”

“삼충이 하급 비생이라기는 하나, 오늘은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잖습니까.”

“…….”

“선배님은 이미 너무 많은 영기를 소모하고 있어요.”

물론 이준이 이번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평소 이상의 영기를 양랑에게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덕분에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는 것도.

하지만―.

“그거랑 세현이랑은…….”

“상관있습니다.”

승효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의 연갈색 눈동자가 조금 검게 일렁이자, 움찔한 이준은 입을 닫았다.

승효는 놀라는 이준을 내려다보며 싸늘한 말을 뱉어 냈다.

“전 선배님이 무리한 행동을 취하는 걸 용납할 수 없습니다. 견자로서도, 그리고 선배님의 ‘혼인 상대’로서도요.”

콜록!

뻔뻔하게 그 단어를 언급하는 승효를 보며 이준이 순간적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러다 곧 냉정해진 상태로 승효에게 말했다.

“잠깐만, 승효 씨. 나 무리하게 행동 안 할게. 안 하고 승효 씨 말 따르면 되잖아. 안 그…….”

“아뇨, 선배님은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차이준이면, 더욱이요.”

확신하는 구승효의 발언에 말문이 막혔다.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승효는 말했다.

“이번 일은 제 선에서 해결하겠습니다. 선배님은 정식 견자가 아닌 데다, 그렇다고 협회로부터 정식 의뢰가 온 것도 아니니 이만 물러나시죠.”

구승효가 선을 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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