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삼충(三蟲) (17)
‘별 희한한 전화가 다 있네.’
싱어송라이터 이세현의 매니저 황기연은 제게 애원하다시피 말하던 남자의 말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과거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후배 녀석이 업계에서 톱클래스라 평가받는 연예인의 매니저가 됐다는 이야기는 언뜻 들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
특히나 자신이 데리고 있는 연예인과 과거의 인연이 있는 차휘의 매니저가 되어 버린 후배가 부탁한 것은 조금 황당했기에 더욱더.
[그럼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반드시 이세현 씨가 잠을 자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절대로 잠을 자면 안 돼요!]
‘대체 우리 세현이를 뭐 어떻게 보는 거야?’
이제 막 차휘의 뒤를 쫓아다닌다는 신입 매니저가 친히 전화를 걸어 세현의 행동에 대해 부탁하다니.
은근히 불쾌해지기까지 해서 입술을 삐죽일 때였다.
‘그 일 때문에 이젠 별 이상한 녀석까지 세현이를 바보 취급 하네.’
얼마 전 있었던 사고가 언론에 밝혀진 것이 크기는 했나 보다.
기연은 끊어진 전화를 응시하더니 흥 콧방귀를 뀌었다.
‘응?’
제 연예인이나 간수 잘하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한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기연의 등 뒤가 서늘해졌다.
놀라 고개를 돌리니 분명 소파에서 기타를 만지작대던 세현이 어느새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와 있었다.
기연은 설명했다.
“아, 미안. 연습에 방해됐지? 갑자기 차휘네 매니저한테서 연락이 와서.”
“차……휘?”
“어. 무슨 널 재워선 안 된다며 이상한 소리를 하잖아.”
“…….”
“제 사람이나 간수 잘할 것이지 왜 우리보고 이래라저래라야. 안 그래?”
툴툴거리며 세현을 응시하던 기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며칠 전까지 병원 신세를 졌던 사람임이 확실하게, 세현의 얼굴은 핼쑥해진 상태다.
‘저래 가지고 오늘 무대를 잘할 수 있으려나?’
세현은 숱한 루머를 무마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무대에 올라야 했다. 괜스레 그가 걱정이 된 기연이 다시 말하려 했다.
“어쨌든, 내가 네 연습에 방해된 거라면 잠깐 나가 있을게. 이제 막 2부 시작됐다고 들었……!”
어쩐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세현을 보고 말하던 기연은 돌연 번쩍 고개를 드는 세현의 눈동자를 발견하고선 멈칫했다.
“세……!”
툭.
놀랍게도 세현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당황한 기연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 세현이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요, 이봐요!”
기연은 두 눈을 번쩍 떴다.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던 기연이 “정신이 듭니까?” 하고 묻는 웬 남자를 발견한 건 몇 초 후다.
‘이 남자…… 분명 어디서…….’
헉!
“구승효?”
기연은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의 옅은 갈색 눈동자에 크게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벌떡 일어나자 고개를 끄덕인 구승효가 대답했다.
“이세현 씨는 어디 있습니까?”
오늘따라 정말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차휘 쪽에서 연락이 온 걸로도 모자라 구승효가 직접 세현이 대기실을 찾는다고?’
지난 몇 년 동안 세현을 케어하며 그의 매니저 활동을 했던 기연이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기이한 일이었다.
“구승효 씨가 왜 우리 세현이를…… 어? 이 녀석이 어디 갔지?”
곧 무대에 올라야 하는 세현의 모습이 대기실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섬뜩해진 기연이 세현을 찾기 위해 핸드폰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침(寢)>.”
스륵― 툭.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흠칫 놀라던 기연은 말을 하다 말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푸스스.
기연에게 붙자마자 재가 되어 사라진 부적을 내려다보던 승효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품에서 괴황지(槐黃紙)를 꺼내 들었다.
“<고(顧)>.”
승효의 입술 밖으로 붉은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곧 괴황지에 스며들었고, 그의 손끝에 있던 부적이 빛을 내뿜었다.
부적에서 흘러나온 으스름한 연기는 곧 두 인간의 형체를 이루었다.
[갑자기 차휘네 매니저한테서 연락이 와서.]
[차……휘?]
[무슨 널 재워선 안 된다며 이상한 소리를 하잖아. 제 사람이나 간수 잘할 것이지 왜 우리보고 이래라저래라야.]
‘제기랄!’
승효가 세현의 대기실 밖으로 뛰어갔다.
* * *
“어째서……야?”
이준의 앞에 선 세현이 온몸을 기괴하게 꼬며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소리가 왠지 모르게 섬뜩하다고 느껴진 것은 제 착각일까.
“세, 세현아.”
이준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왜!” 하고 버럭 외치는 세현의 음성에 그만 뚝 행동을 멈추어 버렸다.
“매번…… 매번, 형은 날, 방해하는군.”
“세현아, 뭔가 오해가…… 으윽!”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이준의 목을 조여 왔다.
“용서 못 해.”
세현이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더니 제 목에서 무언가를 떼어 내기 위해 애쓰는 이준을 노려봤다.
“나를 방해하는 자는, 용서 못 해!”
세현이 허공으로 뻗은 손으로 무언가를 움켜쥐듯 행동하자 이준의 몸이 붕 뜨더니, 강렬한 힘이 이준의 목을 부여잡았다.
‘커흑!’
젠……장할!
‘이 녀석, 왜 여기 있는 거야!’
구승효가 막으러 간 거 아니었냐고!
난데없이 나타난 세현에게 붙잡혀 버린 이준이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채 발버둥 쳤다.
《주인! 괜찮아?》
양……랑.
《본군이 돕겠다!》
이준이 허공에 뜬 채 고통스러워하는 건, 저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 세현이 원인이라고 확신한 양랑이 세현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앙!
쿵―.
‘윽!’
“콜록콜록!”
흰자위까지 검게 물든 세현은 온 힘을 다해 제게 달려든 양랑에 의해 뒤로 넘어졌고, 그사이 세현의 손에서 풀려나게 된 이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크르르.”
길게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준은 양랑 덕분에 잠시 멈춘 세현이 다시금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후우.
이준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이후 힘껏 소리쳤다.
“<박(縛)>!”
이준의 붉은 입술 밖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예의 연기는 순식간에 굵은 쇠사슬로 변해 상대를 향해 달려갔는데, 흑색 눈동자로 이준을 노려보는 세현을 포박했다.
“캬아악!”
이준은 굵은 쇠사슬에 붙잡히게 된 세현을 보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마 주변에 있을 양랑을 향해 말했다.
“양랑. 내가 여기서 세현이를 붙들고 있을 테니 넌…….”
“아까 카메라 동선 조금 이상하지 않았어?”
“그랬었나?”
“윤효선 잡으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시야 방해가 좀 있었던 것 같아. TV로 보면 시청자들이 바로 느낄 텐데, 말해 줘야 할 것 같네.”
……!
이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아직 TOKD 시상식은 계속 진행 중이었고, 이준은 그러한 TOKD가 열리는 케이블 방송국의 지하 대기실 복도에 서 있었다.
‘망할!’
세현을 상대하기 위해 영기를 해방한 상태였던 터라 이준의 귀에 걸린 귀걸이는 영롱한 보랏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의 오감 역시 발달된 상태다.
아직 일반인들과의 거리는 꽤 되지만, 그들이 모퉁이를 돈다면 틀림없이 기괴한 모습을 한 세현과 자신을 마주하게 될 터.
“양랑. 넌 지금 당장 구승효를 찾아.”
이준이 다급하게 말하자 양랑이 “뭐?” 하고 놀란 음성을 흘렸다.
이준은 덧붙였다.
“일단 세현이는 내가 유도할 테니까, 어떻게든 구승효를 찾아서 나한테 데려와. 알았어?”
《잠깐, 주……!》
바득―!
이준은 몸부림치는 세현을 묶고 있던 언령술이 풀리려는 걸 자각하고선, 있는 힘껏 외치며 주변의 비상계단 문고리를 확 잡아 돌렸다.
“지금이야! 당장 달려!”
* * *
쾅!
다리가 부러져라 달려온 이준이 도착한 곳은 M사의 옥상.
헉, 헉, 헉, 헉―.
아마도 타깃은 이준이었던 모양인지, 결박 언령이 풀리기가 무섭게 검은 눈을 한 세현은 그를 쫓았다.
‘내가 나서길 바란 건 사실이지만, 나만 쫓는 걸 바란 건 아니었다고!’
이준은 그극― 하고 기묘한 숨을 흘려 대며 제 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있는 세현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이제 어떡하면 좋지?’
옥상으로 미친 듯이 달려오는 동안, 일반인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기는 했으나 제 뒤를 쫓는 세현에게 날렸던 언령술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분명 어딘가…… 어딘가에서 삼충을 제거하는 방법을 본 것 같았어. 봤었는데…… 아!’
언령이 통하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세현의 몸에서 삼충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뿐이다.
아주 오래전, 그에 대한 글귀를 읽었던 것이 떠올라 기억을 더듬던 이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석류!’
삼충의 숙주가 경신일이 끝나는 동안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제거 방법이다. 게다가 석류에 든 성분을 싫어하는 삼충의 숙주에게 그것을 먹여 제거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었다.
순간 제 기억이 아직 멀쩡하다고 여기던 이준은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석류를 어떻게 구하냐고!’
뒤늦게 떠올린 해결책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준은 정면을 응시했다.
세현은 아까부터 무엇을 하는 건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준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던 순간.
“형…….”
세현이 제 머리를 있는 힘껏 부여잡더니 중얼거렸다.
“나…… 머리가, 너무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