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연이라면 악연-51화 (52/72)

51화

백호(白狐) (16)

삼족구 일족.

그들의 원신(原身)은 다리가 세 개밖에 없는 개로, 앞발이 하나이고 뒷발이 두 개 존재한다.

보통 구미호같이 인간을 해치는 비생들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데, 비생이면서도 인간에 협조적인 것으로 유명한 일족이다.

이준은 팔이 하나 없는 남자를 응시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후천적인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소문의 삼족구 일족은 대대로 외팔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와 시선이 마주친 건지, 검은 선글라스 아래로 눈빛을 감추고 있던 남자를 향해 이준이 입을 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피식 웃던 남자의 입이 열렸다.

“고현 차가에는 차 회장만 있는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괜찮은 인재도 있었군. 덕분에 우리 집 말썽꾼을 찾을 수 있었다. 감사를 표하지.”

검은 선글라스의 남자가 이준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역시 특급 비생이겠군.’

이준은 예의를 표하는 삼족구 일족의 남자를 보며 말없이 웃었다.

“괜찮은 인재는 무슨. 순 사기꾼이구만! 국민을 상대로 생쇼를 펼치고 있는 사기꾼이잖아, 너!”

이준과 삼족구 비생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보며 발끈한 백수호가 소리쳤다.

그러자 후우 한숨을 내쉰 삼족구 비생이 말했다.

“부인. 아까부터 말하지 않았느냐. 견자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내가 언제 피해를 줬다고…… 그것보다, 난 네 부인이 아니라니까! 왜 자꾸 헛소리를 하는, 우웁!”

“……!”

이준은 바득바득 우기며 외치던 백수호에게 홱 고개를 돌린 삼족구의 행동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시끄럽던 백수호의 목소리가 삼족구의 입술과 닿자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아니, 고요해지기보다는―.

“우우웁, 웁!”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백수호는 몸으로 삼족구를 밀어내기는커녕 두 팔로 그의 허리를 감싸며, 열렬히 응하고 있었다.

《예의라곤 없는 것들. 감히 누구 앞에서 뽀뽀질이야?》

삼족구 비생의 등장에 출현하지 않고 있던 양랑이 불쾌하다는 듯 이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존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여전히 백수호와 입을 대고 있는 삼족구 비생의 뜨거운 입맞춤이 끝날 때까지 이준은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

“후우.”

“하으으.”

두 비생의 입맞춤은 길고도 길었다.

흠흠, 헛기침을 흘리며 애써 시선을 피하던 이준은 3분 정도 뒤에야 신음을 뱉어 내는 그들의 음성에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친놈. 진짜 미친놈이 따로 없어…… 흐어엉.”

백수호는 기력이라고는 남지 않았는지,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이준은 엉엉 울기까지 하는 백수호를 내려다보더니 우뚝 선 채 입가를 닦고 있는 삼족구 비생을 쳐다봤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붙잡힌 내내 시끄럽게 굴던 흰여우 비생이 고요해지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삼족구 비생이 이준을 쳐다봤다.

이준은 흰여우를 묘한 눈길로 바라보던 삼족구가 자신을 응시하자 내내 품고만 있던 말을 꺼내기로 결심했다.

“백수호 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거라. 수호는 성심성의껏 대답할 거니까.”

“헛소리하지 마! 난 대답 안 해!”

“하지 않는다면, 조금 전의 일을 다시 당할 줄 알거라.”

“으…… 으으! 제기랄. 뭐야? 묻고 싶은 게 뭔데!”

삼족구의 말에 바르르 몸을 떨던 백수호가 눈을 치켜뜨며 이준을 올려다봤다.

이준은 품에 넣어 두었던 종이 인형 부적을 꺼냈다.

“부적이잖아.”

백수호가 인상을 쓰자 이준은 물었다.

“백수호 씨의 부적입니까?”

이준의 질문에 백수호가 얼굴을 구겼다.

“무슨 헛소리야? 그게 왜 내 건데?”

……뭐?

당연히 “그래.”라든가 “어떻게 알았냐?”라는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한 이준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이 몸은 그런 하찮은 것은 사용 안 해. 부적? 내 요력이 있는데 왜 부적을 사용해?”

이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결백을 주장하는 백수호와 그런 이준을 번갈아 바라보던 삼족구 비생이 “내게 보여 줄 수 있겠나?” 하고 물었다.

이준이 부적을 건네자 한참이나 예의 부적을 살피던 삼족구 비생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 부적에서 비생의 요기가 느껴지기는 하는군.”

“그럼…….”

“하지만 수호의 말대로, 녀석의 것은 아니다. 다른 자의 것이야.”

“……!”

“이걸 어디서 발견했지?”

* * *

[본디 너희 견자들이 ‘비생’이라고 부르는 우리에게는 요기가 존재한다. 그 요기로 우린 그대가 보여 준 부적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이 안에 든 요기는…… 꽤 무겁군.]

백수호의 보호자라는 삼족구 일족의 비생은 말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이 정도의 요력이라면 꽤 강력한 비생인 것 같으니. 만일 이자를 상대해야 한다면…… 그대들의 무운을 빌어 줄 수밖에 없겠군.]

그날, 강남의 스튜디오에서 포착된 이준의 사진은 백수호의 입맛에 맞는 구도로 찍힌 것이었다.

당시 보통의 반응 이상으로 흥분하던 남자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과 같아서, 당연히 백수호가 그를 조종했을 거라 여겼는데.

‘백수호가 만든 부적이 아니었다니.’

발끈하는 백수호와 조언하던 삼족구 비생의 말을 따르면, 그 부적은 백수호와는 무관했다.

‘결국 이번 일을 통해서 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거잖아.’

하아.

다행히 일이 잘 풀리기는 했으나 만약 꼬여 버렸다면 정말이지 헛된 힘을 쓸 뻔했다.

이준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다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

승효의 닫힌 방문이 시야로 들어왔다.

[승효 씨, 정신 차려. 승효 씨…….]

며칠 전, 흰여우 비생, 그러니까 백수호가 방출한 요기를 그대로 맞은 승효는 널찍한 등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그로 인해 한동안 의식까지 잃어 어찌나 아찔했는지.

똑똑.

모르는 척 지나갈 수 없었기에 이준은 승효의 방문을 두드렸다.

“네.”

승효로부터 대답이 들려오자 이준은 “나야, 들어갈게.” 하고 말했다.

“승효 씨, 좀 괜…… 헉!”

방 안에서 다음 말이 들려오지는 않았으나, 침묵이 곧 긍정이라 여긴 이준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다 흠칫 놀랐다.

“왜, 왜 옷을 안 입고 있어!”

승효는 긴 바지 하나만 입은 채 상의는 탈의한 상태였다. 이준이 놀라 눈을 가렸지만, 승효는 쓰게 웃을 뿐이었다.

“약을 바르던 차였습니다.”

“약?”

아…….

버럭 화를 내며 몸을 돌리려던 이준의 행동이 멈추었다.

그는 방을 나서려다, 다시 승효를 향해 슬금 몸을 바로 했다.

그의 시야로 들어온 승효의 등에는 대각선으로 난 긴 상처가 존재했다.

‘망할 여우 자식.’

얼굴이랑 몸으로 먹고사는 녀석인데 꼭 이렇게 큰 상처를 남겨야 했냐.

이준은 정확히 등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상처에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뒤로 뻗은 승효의 팔이 상처 부위에 닿지 않는 걸 발견했다.

“줘 봐.”

“네?”

“내가 발라 줄게.”

[수호에게 당한 상처는 이 약을 며칠 바르면 나을 것이다. 그래도 낫지 않는다면, 나를 찾아오도록 해라.]

백수호의 상처를 책임지겠다며, 삼족구 비생은 특효약을 주고 사라졌다.

백수호의 일이 있은 지는 벌써 사흘이 지났으니, 그때부터 꾸준히 약을 발랐던 것이 분명하다.

‘확실히…… 처음보다는 좋아 보이네.’

여전히 상처 자국은 그대로지만.

이준의 요구에 승효가 그에게 연고를 내밀자, 이준은 약통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선 승효의 등을 만지작댔다.

‘…….’

울퉁불퉁하다 못해 찢어진 상처가 시야로 들어왔다.

그의 상처 위로 약을 발라 주던 이준은 입을 열었다.

“승효 씨.”

“네.”

이준은 꾹 이를 악물며 소리를 냈다.

“다시는 이러지 마.”

승효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이준은 중얼거렸다.

“그런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본인부터 살펴. 다른 누군가를 구할 생각은 하지 말고.”

“…….”

“특히 그 상대가 나라면, 더욱더 그래. 난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할 만큼 나약하지 않다고. 게다가…….”

나 때문에 또다시 누군가가 상처 입는 건, 볼 수가 없어.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다.

이준은 울컥 차오른 감정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화를 삭였다.

“하지만 선배님.”

그때였다.

이준이 복잡한 심경 변화를 느끼고 있던 순간, 승효가 말했다.

“선배님을 지킬 수 없다면, 제가 선배님 곁에 있는 것이 의미 있을까요?”

뭐?

이준은 승효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승효 씨는 나와 협력을 하기 위해 있는 거잖아. 왜 날 지키겠다는……!”

승효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약을 발라 주던 이준의 손을 낚아챘다.

제 손목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생각한 이준이 미간을 좁히자, 승효는 말했다.

“모두,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입니다.”

승효가 그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열기를 담은 그 시선에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승효는 말을 이었다.

“선배님은 알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선배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 다짐했어요.”

뭐, 뭘……?

“제 목숨을 걸고라도, 선배님을 지키겠다고.”

승효의 눈동자가 이준에게 꽂혔다.

“그러니 선배님이 다칠 일은 만들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이준은 다짐하듯 말하는 승효를 보고 “그, 그 마음은 고맙지만 우리는 ‘파트너지’ 목숨을 걸 상대는 아니라고.”라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아, 앞을 봐. 아직 약 덜 발랐어.”

이준은 한참이나 그와 시선을 마주친 후에야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이준의 손을 꼭 붙들고 있던 승효가 쓴웃음과 함께 다시 등을 돌리자 예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이준은 손가락에 약통 안의 연고를 듬뿍 묻혀 그의 상처 위로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쿵.

제 손끝이 그의 등에 닿을 때마다.

쿵쿵쿵. 쿵쿵쿵쿵.

눈치 없는 심장은 미친 듯이 뜀박질했다.

‘뭐……야.’

이준은 자신이 연고를 바르는 건지, 아니면 그저 승효의 상처를 문대는 건지 자각하지 못한 채 얼굴을 찌푸렸다.

‘숨 막히는 이 기분은, 대체 뭐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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