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연이라면 악연-66화 (67/72)

66화

금섬(金蟾) (3)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비극이 펼쳐진 병원에서의 사건은, 소식을 듣고 나타난 이준의 할아버지이자 고현 차씨 가문의 가주인 태모에 의해 수습됐다.

놀랍게도 매스컴의 보도 한 번 타지 않고 사건은 마무리됐다.

어떻게 그런 대형 참사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 만도 했으나, 하필 가해자가 인간이 아니었기에 더 이상 국가 기관이 할 수 없는 일은 없었다.

[전견협과 국가 기관 사이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경찰 등의 국가 기관은 국민들을 지키고, 전국 견자 협회는 그들이 볼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국민들을 지킨다.

이는 이준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 온 규칙이었고 수천 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특히 이준이 속한 고현 차씨 가문은 조선, 아니 그 이전 시대부터 비생으로부터 위협받는 나라를 보호하던 집안이었다.

“그놈이다.”

그런 고현 차씨 가문의 일원을 무려 셋이나 죽여 버린 비생을 두고, 태모는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사태를 수습한 후 가족들의 장례를 치르던 태모의 덤덤한 말에 이준은 멈칫했다.

태모는 말했다.

“분명해. 다름 아닌 그놈이야.”

태모의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는 울분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갓 태어난 네 동생에 빙의하여 네 아비와 어미를 죽이고 내 아들 현우까지 죽여 버린 놈……. 우리 가문이 수십, 수백 년 동안 쫓았지만 완벽하게 퇴치하지는 못했던 일생일대의 적. 그놈이, 이 모든 짓을 벌인 거다.”

제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혼자 중얼거린 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입술을 꾹 다문 태모는 분노하고 있었다.

“명심하거라, 준아. 그놈은 다시 찾아온다.”

이준의 어깨를 강하게 부여잡으며 피눈물을 흘리던 태모는 말하고 또 말했다.

‘일생일대의 적…….’

“대체 그놈이 누굽니까.”

“…….”

“뭐 하는 놈이기에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냐고요! 뭔가 알고 계신다면 말씀해 주세요. 네? 할아버지!”

차이준의 부모님을 살해했고, 그의 막내 삼촌까지 휘말리게 만들어 버린 잔인한 존재.

고현 차씨 가문의 오랜 적이라고 말한 태모를 향해 이준은 벌컥 화를 내듯 외쳤다.

그러자 복잡한 눈으로 이준을 내려다보던 태모는 곧 흐린 실소를 터트렸다.

“그놈은…… 어느 누구도 될 수 있지.”

당시의 이준이 바랐던 것은 명확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태모의 대답은 모호했고 그것은 이준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인상을 쓰는 이준을 향해 태모는 읊조렸다.

“그놈은 한때는 인간이었으나, 어느 순간 비생이 되었다. 가치 없는 무생물일 때도 있었고, 살아 있는 것이 되기도 했지. 이 세상의 진정한 악이며, 너와 나의 조상이 끝까지 쫓았던 목표이기도 하다.”

“…….”

“잊지 말거라. 그놈이 앗아 간 건, 비단 네 부모뿐만이 아니야.”

태모는 이를 갈았다.

“그놈은 조상들의 목숨을 앗아 갔고, 언제나 우리를 노리고 있다.”

“할아버지.”

“그놈은 특급 비생이다.”

* * *

“선배가 특급 비생을 보면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인 건, 전부…… 그자 때문이었습니까?”

이준에게 있어 16년 전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부모님과 삼촌의 끔찍한 죽음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온 세상의 어둠을 결코 집 밖의 누군가에게 뱉어 낸 적 없었고, 그것은 이준과 오랫동안 협력하고 있는 클레몽 엔터테인먼트의 식구라 할지언정 마찬가지였다.

“뭐, 그런 셈이지.”

이준은 제 말을 들은 이후 입을 연 승효를 향해 흐리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자 승효의 눈빛이 한층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제가 알고 있기로 견자의 ‘귀영 의식’은 총 두 번 일어납니다. 한 번은 태어날 때, 그리고 또 한 번은 약관을 전후하여. 보통 견자로 각성하는 것을 ‘귀영 의식’이라고 칭하는데 탄생 시 이뤄지는 ‘귀영 의식’은 크게 문제 될 게 없어요. 한데 어째서 그때는…….”

“글쎄.”

이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했던 다른 견자들도 그런 말을 영감님한테 했다더군.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어. 내가 ‘재수가 없었던’ 거지.”

놀라는 승효에게 이준은 담담히 설명했다.

“승효 씨 말대로 ‘귀영 의식’은 견자 집안에 태어난 아이가 견자로서 자질을 갖췄는지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지. 강한 영기를 지니고 있는지, 앞으로 비생들을 맞닥뜨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해. 그런데 나는 다른 녀석들보다 ‘귀영 의식’이 나타나는 시기가 빨랐대.”

그리고 하필이면 그게…….

“내 동생의 탄생과 겹쳐 버린 거고.”

씁쓸하게 읊조린 이준의 음성에 승효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이준은 빙긋 웃어 보였다.

“승효 씨. 오늘 내가 왜 승효 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겠어?”

이준의 물음에 승효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의문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준은 후, 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 관계가 진전되기 전에, 솔직히 털어 놓고 싶어서.”

물론 이미 몸까지 섞은 마당에 더 진전될 구석이 있는가 싶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말들이었다.

이준은 잔잔하게 일렁이는 승효의 눈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다 못해 완벽한 이 차이준 님도, 속을 뜯어보면 부족한 점이 많아. 이제 내년이면, 일생일대의 적과 부딪혀야 하고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장담하지 못해.”

비관적인 이준의 발언에 승효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난 말이야. 한번 내 사람이라 확신한 사람들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아.”

이준은 승효를 똑바로 바라봤다. 승효의 시야 속 자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괜히 가슴이 일렁이는 것을 느끼던 이준은 말했다.

“그러니 승효 씨가 내 사람이 된다면…… 난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드리워지든, 승효 씨와 함께할 거야.”

네 편에 서고, 너를 위해 행동하겠지.

‘일종의 맹세와도 같아.’

영혼의 계약보다는 덜하겠지만, 지금의 이 말은 마음을 내어 주는 약속이다.

이준은 입술을 꾹 닫은 채 저를 바라보고만 있는 승효에게 빙긋 웃었다.

“그러니 승효 씨.”

마음에 든 말을 뱉어 내기 위해, 천천히.

차분하게.

“나랑…… 정식으로 만나 볼래?”

* * *

“이게 원본이야?”

“그렇다니까.”

“신기하네. 정말 귀신이라도 나온 것 같은데.”

서울시 마포구 상운동에 존재하는 TVX 방송국 예능 본부의 한 편집실.

얼마 전, 성공리에 촬영을 마친 TVX 특별 기획 예능 <함께 가자!>는 오는 7월 말 제작 발표회를 가지고 여름 방학을 기점으로 정식 런칭을 할 예정이었다.

가수들을 제외하곤, 현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호도와 인기가 높은 두 배우를 섭외하여 진행한 ‘힐링 여행’ 컨셉의 특별 기획 예능이었지만, 웬일인지 촬영 원본은 ‘힐링’이라기보단 오싹하고 섬뜩한 분위기가 났다.

어떻게 두 톱배우를 모아 힐링이 아닌 호러 예능을 찍게 된 건지, 호기심을 자아내는 바람에 <함께 가자!>의 편집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 이게 누구야, 하 작가님 아니야?”

곧 TVX 드라마국에서 정식 발표를 할 내년 방영 예정 드라마 <역린>의 보조 작가로 활동하고 있던 하재희는 우연히 예능국 편집실을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었다.

“어딜 그리 바쁘게 가요? 요즘 통 안 보이던데, 곧 크랭크인 할 작품 때문이죠?”

“드라마국은 7층인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요?”

“맞다! 작가님도 들어간다는 드라마, 여기 두 사람 나오는 드라마 아니에요? <역린>이랬던가!”

재희는 편집실에 옹기종기 모여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세 명의 PD들이 제게 한마디씩 던지자, 어색한 미소를 짓다 멈칫했다.

그녀의 시야로 편집실 안의 모니터 속에 들어있는 두 명의 배우들이 보였다.

<승효 씨, 조심해!>

<괜찮으십니까, 선배님?>

마침 훤칠한 두 배우가 갯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다 휘청이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얘네 얘네 또 이러네. 저러다 진짜 정드는 거 아냐?”

“남녀라면 진작 눈 맞았지. 암.”

“둘 다 전봇대같이 커서 진짜 안 어울릴 거 같은데, 은근히 보기는 좋단 말이야.”

저에게 손짓하던 PD들이 모니터 속에서 일어난 사건에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재희는 어느덧 자신이 존재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세 명의 PD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얼굴을 구겼다.

또각, 또각―.

심부름을 위해 예능국 복도를 지나쳐 드라마국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하 작가. 너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 이런 식으로 해서 입봉은 할 수 있겠어? 이딴 걸 글이라고 쓴 거야?]

그녀의 대본을 보고 인상을 쓰며 외치던 선생님의 목소리도,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 재희를 바라보던 다른 문하생의 눈빛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흑.”

결국 위로 향하는 비상계단에 털썩 주저앉은 재희는 두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트렸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리고 그 물방울들이 모여 그녀가 입고 있던 청바지의 무릎 부분을 모두 적실 때.

“――!”

재희는 제게 다가온 무언가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왜 그리 힘이 없어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재희를 내려다보던 누군가가 물었다. 재희가 입술을 꾹 악물며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 하자, 그 사람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이거 줄게요.”

“이건…….”

“지금 상황을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네?”

그자는 그 말을 끝으로 제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얹고선 홱 몸을 돌려 버렸다. 재희는 미처 멀어지는 사람을 붙잡지 못했다.

“…….”

얼마 뒤, 재희는 고개를 아래로 내려 어느덧 동아줄처럼 강하게 움켜쥐고 있는 무언가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손에는 금으로 만든 작은 두꺼비 하나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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