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가 네 주인이야 2
3. 안녕? 별잎소시지야
비엔나는 새로운 몸으로 변화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주인이 바깥으로 나갈 때 혼자서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비엔나는 꼬리를 마구 흔들며 까만 눈을 반짝였다. 당당하고 신난 걸음을 옮기던 비엔나가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비엔나, 기분 좋아?”
주인이 발갛게 상기된 뺨으로 미소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응, 너무 좋아! 주인도 행복한 거지?’
비엔나는 주인에게 대답하고 싶었다. 자신은 주인의 말을 알아듣지만 주인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웡! 왕!”
비엔나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짖었다. 주인에게 자신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인은 자신을 매우 많이 좋아하지만 조금 더 명확하게 자신의 기분을 전달하고 싶었다.
“비엔나, 저건 담쟁이덩굴이야. 아직 봄이 오지 않아서 저렇게 갈색인 거지. 원래는 엄청 진한 초록색이야. 그리고 저건 은행나무. 지금은 이파리가 하나도 없는데, 가을이 되면…”
자신을 향해 이것저것 주변의 식물들을 가리키며 알려 주는 주인의 환한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주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주인이 눈을 휘며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뭐 보고 있었어? 저거 본 거야? 담쟁이덩굴?”
“웡!”
주인의 다정한 목소리에 답하고 싶어 그냥 대답했다.
“아이구, 처음 보는 거라서 신기했쪄요? 우리 비엔나, 저거 마음에 들면 나중에 덩굴 식물 하나 키울까? 물론 나한테는 이미 반려 생물인 네가 있기는 한데, 네가 키우고 싶다면 일단 네 친구로 식물이 들어오는 걸로 하고 관리는 내가….”
주인이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얼굴을 크고 따뜻한 손으로 마구 부비면서 뭐라고 계속 말했다. 담쟁이인지 단쟁이인지 저 구불거리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으나, 주인이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이 좋아 끙끙거리며 얼굴을 비볐다.
그러다 문득 주인도 자신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고개를 든 비엔나는 환한 햇살을 받아 반투명하게 빛나는 주인의 검은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는 채로 자신을 보고 있음을 확인했다.
“꾸웅….”
비엔나는 숨을 쉬기 힘들 만큼 벅차오르는 느낌에, 꾸웅 울었다. 몸을 바꾼 지금이 정말로 훨씬 훨씬 행복했다.
* * *
방 안에는 온통 신음 소리와 질척이는 소리밖에 울리지 않았다. 비엔나는 정신없이 주인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드러난 살덩이를 핥았다.
“비엔나, 거기 지지야…! 지지… 흐아앙!”
주인의 다리 사이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붉게 물들어 번들거리는 살덩이는 핥아도, 핥아도 뭔가가 부족한 것 같았다. 주인의 좆을 맛봐도 욱신욱신 불끈거리는 비엔나의 성기는 가라앉지를 않았다.
적갈색의 두툼한 빨판이 불뚝대는 두껍고 긴 좆이 주인의 하얀 피부 여기저기를 뭉개며 탁탁 살이 부딪히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문대기라도 하지 않으면, 펑-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태어난 이래 느껴 본 적 없는 감각이 비엔나의 전신을 지배했다. 성기를 포함해, 온몸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아팠다.
비엔나는 고통스럽게 끙끙거리며 점점 야한 냄새를 풍기는 주인의 성기를 물고 잘근거렸다.
“비… 비엔나! 차라리 가슴, 아니, 젖꼭지 빨자? 응? 제발…!”
주인이 먹음직스러운 모양새의 젖꼭지를 움켜쥐어 비엔나에게 내밀었다. 비엔나는 통통한 젖꼭지를 보며 아주 잠시 갈등했지만, 코앞에 있는 축축하게 젖어 번들거리는 좆과 좆에서 흘러내린 침으로 질척하게 젖은 그 아래의 붉은빛을 띠는 구멍이 지금은 훨씬 더 먹음직스러웠다. 저 구멍이 갈증인지 배고픔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감각을 해소시켜 줄 것이라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비엔나는 끙끙거리며 다시 주인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으나 금세 주인에게 밀려났다. 비엔나는 주인이 자신을 밀어냈다는 사실에 잠시 충격을 받아 주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당황한 주인의 얼굴은, 눈가와 뺨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비엔나는 붉어진 주인의 얼굴에 안심하며 자꾸만 파르르 떨리며 오므라들려고 하는 하얀 허벅지에 앞발을 얹었다. 계속 찔끔거리며 감질나게 액을 뿜는 좆을 아프지 않게 잘근 물었다.
“흐… 아… 흐아앙!”
주인의 허벅지가 파르르 자신의 아래에서 경련했다. 듣기 좋은, 높은 신음과 함께 주인의 좆에서 울컥울컥 입 안으로 액이 터져 나왔다. 비엔나는 입을 떼지 않고, 입 안에 들어온 액체를 전부 삼켰다.
주인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고, 입 안에서는 온통 주인의 맛이 났다.
주인은 말린 멸치보다 훨씬, 훨씬 더 맛있었다. 혀로 훑은 액체를 전부 삼키자 갈증이 희미하게나마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엔나의 탁하게 가라앉은 눈이 흘러내린 정액으로 뿌옇게 젖어 드는 통통한 회음부와 움찔대는 붉은 주름을 응시했다.
비엔나는 끙끙댔다. 뭔가, 뭔가를 더 하면 이 욱신거리는 느낌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본능이 말하고 있는데, 주인의 향과 맛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비엔나는 결국 주인의 몸 위에 올라타 붉은색으로 물든 다리 사이를 정신없이 핥기 시작했다. 주인의 다리 사이는 금세 깨끗해졌지만, 비엔나는 통통한 살을 핥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두툼한 혀로 구멍을 핥고 혀를 세워 붉은 주름들 사이를 쑤셨다. 입을 크게 벌려 통통한 회음부와 구멍을 입 안에 전부 담고 흡입하듯 빨아 당겼다.
“흐아… 아…아아!”
아래에 깔린 주인이 자지러지며 몸을 뒤틀었지만 비엔나는 주인의 다리 사이를 불어 터지도록 우물거리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왠지, 이곳을 핥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비엔나가 고통스럽게 끙끙 울었다. 비엔나가 애처롭게 주인을 바라봤다. 주인은, 이 욱신거림과 허기를 해소할 방법을 알고 있을까?
“…비엔나, 주인님이… 안 아프게 해 줄까?”
“끼이잉…”
주인의 커다란 손이, 비엔나의 성기를 부드럽게 쥐었다. 연약하고, 아픈 부위를 아무런 의심 없이 주인의 손에 맡긴 비엔나는 끙끙 울며 주인의 턱과 입술을 마구 핥았다. 두툼하게 부푼 귀두를 주인의 구멍에 비비자 끄응거리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부푼 구멍에 비벼지던 뜨겁게 달아오른 좆의 끄트머리가 주름들 사이에 옴폭한 구멍에 맞춰지듯 문질러졌다. 비엔나는 이제 알 것 같았다.
여기다. 주인이 자신의 좆을 가져다 댄 구멍에 넣으면 이 욱신거림을 해결할 수 있다. 비엔나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좆을 주인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놀랄 만큼 물컹대기도, 데일 듯 뜨겁기도, 동시에 부드럽기도 한 주인의 내벽이 좆을 감싸 안으며 빨아들였다. 이제야 주인과 완전히 이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에게 짝으로 선택받았다는 확신이 비엔나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주인의 감정이 희미하게 흘러 들어왔다. 강한 쾌감, 그리고 애정. 비엔나는 쾌감과 따뜻한 애정에 푹 젖은 채로 정신없이 본능에 따라 허리를 움직였다.
“흐앗, 응, 앙!”
주인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내려다보이는 주인의 온몸이 붉었다.
“아아… 흐… 으응! 응! 아앙! 흐엉!”
주인이 정신없이 신음을 내질렀다. 온통 붉어진 채로 들썩이는 주인의 몸에서 유독 새빨간 색의 젖꼭지와 좆이 자신이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먹음직스럽게 달랑달랑 흔들렸다. 자신의 아래에 깔린 주인은 정말로 맛있어 보였다. 비엔나는 입맛을 다시며 더 세게 주인의 안으로 좆을 박아 넣었다.
“하악…!”
주인이 헐떡이며 허리를 휘었다. 허리가 휘며 공중으로 떠오른 몸 때문에, 먹음직스러운 젖꼭지와 좆이 비엔나를 향해 한껏 내밀어졌다.
비엔나도 자신의 것을 주인의 작은 구멍이 전부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까 핥으면서 본 주인의 먹음직스러운 구멍은 너무 작아 도저히 자신의 것을 삼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었다.
“아흐… 으흐읏… 흐앙…!”
접합부를 내려다본 비엔나는 더욱 흥분해 밑에서 헐떡이는 주인의 몸에 앞발을 올렸다. 주인의 붉은 구멍은 주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껏 벌어져 자신의 것을 뿌리까지 삼키고 있었다. 허리를 띄운 채 뒤틀리던 주인의 두꺼운 상체가 앞발에 콱 찍어 눌려져 바닥에 고정되고, 좆을 박아 넣기 조금 더 수월해진 구멍에 비엔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능에 따라 계속 허리를 움직이는데도 아까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좆은 욱신욱신 아팠다. 하지만 그냥 아프기만 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주인의 안에 좆을 박아 넣는 행위는 기분 좋음이 훨씬 더 컸다.
“흑, 흣… 흐아아앙…!”
그렇게 한참을 움직였을까, 주인이 앞발 아래에 깔린 몸을 파르르 떨며 좆에서 액체를 뿜어냈다. 주인의 납작한 배 위로 묽은 액이 튀었다.
정신없이 주인의 안으로 좆을 쑤셔 대던 비엔나는, 갑자기 더 강한 힘으로 좆을 꾹꾹 조여 물 듯이 경련하는 주인의 구멍에 마침내 주인의 안에 잔뜩 파정했다.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모두 주인 덕이었다. 자신을 선택해 준 자신의 짝.
그 순간, 머릿속에서 이전에도 들렸던 목소리가 울렸다.
‘반려와… 각인… 완벽… 영원… 같은 종… 공유…’
단어가 드문드문 끊어 들렸다. 이번 목소리는 유독 희미했다. 목소리를 들은 비엔나가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기회는 두 번.
비엔나는 잠시 동그란 머리를 갸웃거리며 고민했다. 모습을, 또 바꿔야 할까?
이왕이면, 주인과 같은 모습으로…
곧 비엔나의 동그랗고 북실거리는 머리통이 좌우로 휙휙 내저어졌다. 비엔나는 지금 이 상태로도 행복했다. 주인은 인간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비엔나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현재의 모습으로도, 주인의 짝으로 선택받았다. 주인이 직접 자신과 주인을 이어지게 했다. 굳이 모습을 바꾸지 않더라도 이대로 주인과 함께할 수 있다면 비엔나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비엔나는 주인의 안에 자신의 좆을 뿌리까지 깊이 묻은 채로, 정신을 잃은 주인의 가슴 위에 동그란 머리를 문댔다. 비엔나의 목에서 만족스러운 소리가 울렸다.
* * *
꾸르륵. 배 속이 울렸지만 비엔나는 앞에 놓인 말린 멸치를 듬뿍 얹은 사료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맛있는 냄새가 풍겼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비엔나는 침대에 올라가 앞발에 머리를 얹고 몸을 웅크렸다.
집 안에 있는 가구 중, 침대에는 유독 주인의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비엔나는 꾸물거리며 이불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주인의 냄새에 가득 둘러싸여 있으니, 조금 전까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처음에는 주인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 하지만 곧 비엔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주인을 믿었다. 게다가, 주인은 비엔나의 반려이지 않은가? 비엔나는 주인과 자신이 이어졌던 순간을 떠올렸다.
주인과 이어진 이후로는 왠지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 더 잘 알게 된 것만 같았다. 주인의 감정이 조금씩 자신에게로 흘러 들어왔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조금 전, 자신을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간 불쾌감과 분노는 뭐였을까? 주인이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이제는 주인이 밖에 나갈 때도 전부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강아지의 모습으로는 안 된다. 주인과 어디든 함께 가기 위해서는 주인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했다. 이렇게 집에 혼자 남아 주인을 기다리기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디든 주인과 함께 가고 싶었고 항상 주인의 옆에서 주인을 지켜 주고 싶었다.
남은 기회는 두 번. 머릿속을 희미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말해 주었던 기회는 총 네 번이었다. 그리고 비엔나는 그중 두 번을 사용했다.
한 번은 커다랗게 변해 수조 밖으로 나와 주인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주인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다른 한 번은, 주인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하지만 비엔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자신이 다시 모습을 바꾼다고 한들,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집 밖으로 나간다고 한들, 어디에서 주인을 찾는다는 말인가? 비엔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거짓말쟁이. 굳게 믿었는데. 자신을 혼자 두고 어디론가 나가 버렸다. 분명히 항상 함께 있자고 해 놓고.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면 말린 멸치 한 봉지로 용서해 줄게. 비엔나의 까만 깨를 닮은 눈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하지만 주인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비엔나는 계속, 계속 주인을 기다렸다.
입도 대지 않은, 말린 멸치가 쌓인 사료 그릇만이 싸늘하고 딱딱하게 굳은 채로 비엔나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
* * *
“흐… 흐아… 저리… 저리 가…”
주인의 거부에, 비엔나의 까만 눈이 마구 흔들렸다. 주인에게서 강렬한 슬픔이 전해져 왔다.
“미워… 비엔나, 밉다고… 흐앙, 흐… 나, 알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하악… 아프게… 하고…”
주인의 자신이 밉다는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그래도 비엔나는 끙끙거리며 계속 주인의 뺨을 핥았다. 주인이 숨도 쉬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뺨을 열심히 핥아도 눈물이 흘러내린 하얀 목덜미를 열심히 핥아도 자신의 냄새를 풍기는 젖꼭지를 핥아도 주인은 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핥을수록, 비엔나에게 전해지는 강렬한 슬픔에 점점 안도감이 섞이기 시작했다. 비엔나는 더 열심히 주인의 눈물을 핥았다.
그리고 마침내 느껴지는 안도감이 더 커진 순간, 주인의 꺽꺽거리며 우는 소리가 멎었다. 잠이 든 것 같았다.
주인을 이렇게 슬프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비엔나는 태어난 이래 이렇게 무겁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진득한 슬픔을 느껴 본 일이 없었다. 이 감정을 직접 느꼈을 주인이 얼마나 슬펐던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래서는 주인을 슬프게 했다는 다른 인간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마침내 잔뜩 부풀었던 비엔나의 빨판으로 덮인 두툼하고 긴 좆이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비엔나가 허리를 뒤로 빼자, 주인의 붉은색으로 부어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벌어진 구멍에서 미끈거리는 좆을 뽑아낸 비엔나의 몸을 하얀빛이 감쌌다.
잠시 후, 하얀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남자 한 명이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남자는 퉁퉁 부어 얼룩진 얼굴로 잠들어 있는 주인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주인의 끈적이는 몸 아래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장신의 거구인 몸을 두 팔로 가볍게 들고 일어났다. 남자가 품에 안긴 주인의 뺨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남자는 주인의 몸에 잔뜩 남은 끈적이는 액체들이 자신의 몸에 묻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의 입술이 뭔가 말하고 싶은 듯 달싹였지만, 남자는 끝내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
주인의 하얀 뺨에서 손을 떼어 낸 남자가 자신의 심장 위를 움켜쥐듯 손을 얹었다. 남자의 심장 부근에서 나온 은은한 빛이 주인의 색색 오르내리는 가슴 위로 이어져 있었다. 주인과 자신이 이어졌음을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남자, 비엔나는 생각했다.
주인을 슬프게 하기까지 한 데다, 설명도 없이 강제로 반려의 각인까지 맺어 버렸으니 분명히 미움받을 것이 틀림없다고.
이제 자신에게 남은 기회는 한 번.
주인은 사랑했던 인간이 전부 자신을 아프게 하고 떠났다고 했다.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자신은 주인을 사랑한다. 그래, 주인을 향한 자신의 감정은 사랑이었다. 주인을 수없이 아프게 했다던.
주인의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반려가 아니라 반려 생물이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다시 문어나, 강아지의 형태로 변하기에는 또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주인을 슬프게 할까 봐 걱정되었다. 비엔나는 주인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문득 비엔나의 머릿속을, 주인과 산책하면서 봤던 담쟁이덩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주인은 분명 자신이 원한다면 키우게 해 주겠다고 했었지. 그 말을 떠올려 보면 주인은 그렇게 덩굴처럼 생긴 식물에는 관대한 것 같았다.
결심을 마친 비엔나의 몸을 다시 하얀빛이 감싸기 시작했다. 주인의 침대 옆에 서 있던 남자의 몸이 전부 빛에 휩싸였다. 남자의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감싼 하얀빛은 오랜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얀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작은 별 모양의 이파리를 가진 작은 식물만이 남았다.
*
정말로 비엔나라고? 주인은 큰 혼란을 느끼며, 다리를 간질이는 작은 식물을 보기 위해 그대로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왜 이렇게 작지?”
주인은 아주 조심스럽게 가느다란 덩굴을 손에 쥐었다. 아주 작은 식물답게, 덩굴의 두께는 주인의 손가락 하나보다도 얇았다. 우둘투둘한 돌기가 돋은 적갈색 덩굴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실히 돌기가 돋은 것이 모양새 자체는 흉흉했으나 너무 얇아서 그다지 징그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 식물이 비엔나가 아닐 리는 없었다. 아니, 아니어서는 안 됐다.
비엔나는 모습을 바꾸는 생물이니, 이번에도 커다란 문어로 자라나고, 강아지로 변했듯 모습을 바꾼 것일 터이다. 빨판과 닮은 돌기들이 줄기에 달린 것도 그렇고, 주인은 이런 식물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다 큰 게, 아니었나?”
그런데 식물이 너무 작았다. 주인은 손톱만은 할지 의심스러운 조그만 별 모양 잎사귀를 들여다보며 고민했다. 맨 처음 만났을 때는 크기가 너무 작고, 몇 달이 지나도 전혀 자라지 않아서 아기 문어라고 생각했었다.
아주 커다란 문어로 자란 다음부터는 분명히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주인의 손에 만져지는 녹색의 작은 별 모양 잎은 너무 작았다. 주인은 손끝에 잡힌 손톱만 한 잎사귀에서 느껴지는 연하고 보들보들한 감촉에, 조심스럽게 손에서 작고 가느다란 덩굴을 내려놓았다. 주인의 손에서 떨어져 내린 가느다란 덩굴이, 살랑 살랑 화분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하아…”
주인은 쪼그리고 있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엔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니 모든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온통 걱정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에 슬슬, 그런 일이 있고도 자신에게 말도 없이 이렇게 또다시 변해 버린 비엔나에 대한 원망이 들었다.
주인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주인은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퉁퉁 부어 있는 얼굴을 손을 얹은 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너무, 너무 작잖아…”
하필이면 이렇게 작고 연약한 식물이 되다니. 이래서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주인은 비엔나가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옆에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눈물을 삼켰다.
* * *
“배양토랑 상토랑 다른 거라고? 아니, 대체 무슨 차인데? 마사토랑 분갈이 흙은 또 뭐야… 흙이 다 똑같은 거 아니었어?”
주인은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싸맸다. 주인의 옆으로는 식물을 처음 키우는 사람을 위한 입문서부터, 식물대백과 사전까지 여러 권의 두꺼운 책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비엔나가 식물로 변해 버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비엔나를 저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주인된 도리로 주인은 비엔나를 잘 돌봐주고 싶었다. 비엔나에게는 자신이 일종의 보호자인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주인은 비엔나가 세상에 단 하나 남은 개체라는 말을 항상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어쩜 저렇게 조그맣게 변했는지 어서 빨리 크기라도 조금 커져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저게 다 큰 모습이면 절대로 안 되는데.’
주인은 작고 가느다란 비엔나를 보며 불안하게 입술을 짓씹었다. 주인의 현재 가장 큰 걱정거리는, 설마 이게 다 큰 모습이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저렇게 조그마해서는 한 번 쓰다듬기라도 했다가는 비엔나가 자신의 손에 짜부라져서 납작해질 것 같았다.
비엔나가 수조에 나온 이후로는 항상 덩치가 커다랗게 변해 있어서 그렇지, 주인은 키가 190에 육박하는 데다 어깨가 넓고 가슴이 두툼한 덩치였다. 그런 주인의 앞에 주인의 손가락보다 가느다란 덩굴에, 주인의 손톱보다 작은 별 모양 잎사귀를 가진 식물이 있으니 확실히 금방이라도 땅으로 꺼질 것처럼 작아 보이기는 했다.
반려 생물로 식물을 들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 보지 못했던 주인으로서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애초에 주인은 식물에 대해 찾아보면서 이렇게나 다양한 식물의 종류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주인의 식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정도가 다였다. 아니면, 꽃과 꽃이 아닌 식물들 정도.
비엔나가 대체 무슨 식물인가 알아보려고 대충이나마 찾아보니, 허브는 물론 다육식물, 수생식물 등 종류가 양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궁금해 최대한 열심히 훑어보기는 했지만, 주인은 비엔나가 덩굴 식물에 가까운 것 같다- 정도 외에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에 나온 대로라면 덩굴 식물은 뭔가 지지대가 될 만한 것을 타고 올라가야 할 텐데 비엔나는 가느다란 덩굴로도 지지대 없이 제법 꼿꼿하게 서 있었다. 어떤 식물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주인이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기는 했다.
“음, 우리 비엔나가 제일 귀엽네. 무슨 식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비엔나가 제일 귀여운 것 같았다. 잎이 매우 작은데도 아주 완벽한 별 모양이고, 덩굴도 선이 참 매끄럽게 구불대며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있는 것이 탄력 있어 보였다. 색도, 별 모양의 잎은 선명한 녹색, 덩굴은 진한 적갈색을 띠는 것이 어찌나 생기 있어 보이고 예쁜지 몰랐다.
한 가지, 귀엽다고 하기에는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덩굴의 표면을 촘촘하게 덮고 있는 빨판과 유사한 모양의 돌기들이었다.
“일단, 창문도 채광창으로 바꿔 달아야 하고 또 흙도 한 포대 주문하고 또 삽이랑…”
빨판과 매우 유사한 모양을 하고 덩굴 표면에 볼록볼록 솟아 있는 돌기들을 외면하며 스르륵 눈을 다시 책으로 돌린 주인은 할 일의 목록을 중얼중얼 읊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신이 더 꼼꼼하게 비엔나를 보살펴 줘야 했다.
문어나 개와 비슷한 모양을 취하고 있을 때는 적어도 눈을 보거나 반응을 보면 비엔나가 싫은지 좋은지 정도라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식물이 되고 나니, 도무지 반응을 알 수가 없었다. 주인은 벌써부터 비엔나의 새까만 눈이 그리웠다.
“…뭐? 잎도 닦아 줘야 해? 먼지가 쌓이면 식물의 건강에는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 건강에 안 좋으면 안 되지. 황사 때는 사람도 밖에 마스크 없이 나가면 몸에 안 좋잖아.”
주인은 책에 쓰여 있는, 식물도 닦아 줘야 한다는 구절을 읽으며 인상을 찌푸렸다가 뒷부분을 마저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으로서는 살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식물이 된 비엔나를 보고 식물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 전까지, 주인은 식물은 동물보다는 키우기가 훨씬 쉬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동물처럼 세 끼 밥을 챙겨 주지 않아도 되고, 상대적으로 감정의 교류도 적지 않나? 라는 것이 주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보니 아니었다.
“책 안 읽어 봤으면 큰일 날 뻔했는데. 어디 보자, 반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이런 챕터도 있네. 식물도 감정을 느낍니다. 당신의 반려 식물에게 말을 걸어 주시고, 노래를 들려주세요. 으음… 음, 노래? 노래는 나도 잘 안 듣는데…”
주인은 처음에 두껍고 글자가 많은 책을 집어 들고 인상을 찌푸렸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식탁에 앉아 그대로 책장을 계속 넘기며 책에 빠져들었다.
식물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썼다는 것을 말해 주듯, 저자가 처음으로 맞이한 반려 식물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시작해 차례로 초보자가 키우기 어려운 식물, 쉬운 식물부터 식물에 대해 가지기 쉬운 오해까지 전부 경험담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우리 비엔나도…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내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았는데… 나보다 커져서는…”
주인은 저자가 처음엔 손가락만 한 크기의 선인장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쑥쑥 자라나 키가 자신만 해졌더라- 고 서술한 부분을 보며 비엔나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아, 맞아. 목욕.”
주인은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무심코 식탁 위에서 얌전히 별 모양의 무수한 잎사귀들을 늘어뜨리고 있는 비엔나를 쳐다보고는, 처음의 목적을 떠올렸다. 비엔나의 잎을 닦아 주는 방법을 보겠다고 책을 펴기 시작해서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공감 가는 내용에 정신없이 읽어 버린 모양이었다.
“으음, 한 번도 목욕시켜 본 적은 없는데. 식물이 되어서 목욕을 시켜 주게 될 줄은…”
주인은 미묘한 표정으로 작은 화분을 내려다보았다. 문어일 때는 더러운 것을 씻어 낸다는 목욕의 본래 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일종의 수분 보충을 위한 피부 미용이나 피부 관리에 더 가까운 것이었고, 강아지일 적에는 산책을 나갔다 돌아와 발을 닦아 준 것을 뺀다면 딱히 목욕을 시킨 적이 없었다.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강아지였던 비엔나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하지만 작은 화분은 주인이 미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든 말든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주인은 마른 수건을 집어 들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가느다란 덩굴을 들어 올려 비엔나의 손톱만 한 잎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줄기를 쥐고 있는 주인의 두꺼운 손이 혹여나 힘을 세게 줘 덩굴이나 잎이 상하기라도 할까 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전에 문어거나 강아지의 모습이었을 때에는 아마 아팠다면 아프다는 신호를 했을 것인데 식물은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주인이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식물이 된 이후로 비엔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주인이 자리를 옮겨 놓으면 옮겨 놓는 대로, 덩굴이나 잎을 움직여 놓으면 움직여 놓은 대로.
‘움직일 줄 알았는데!’
그래, 솔직히 말해서 주인은 비엔나가 식물이 되었기는 해도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비엔나는 평범한 상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문어인데 하룻밤 만에 사람보다 커다랗게 자라나기도 했고, 강아지인데 다리 사이의 좆에 문어 등 두족류의 다리에나 달려 있는 빨판이 달려 있기도 했다. 아니, 다 떠나서, 애초에 모습과 크기가 그렇게 짧은 주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것부터 주인이 지금까지 쌓은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주인은 비엔나가 변한 식물도 뭔가 다를 줄 알았다. 이전처럼 눈을 마주할 수는 없어도, 움직이는 등 어떻게든 자신과 교감이 가능할 줄 알았다. 이전처럼 자신에게 구애의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엔나는 정말로 며칠째 움직이지도 않았으며, 이전의 크기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주인이 한 손으로 쥐어 옮길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나마 손과 모양이 비슷해 보이는 별 모양의 작은 이파리들도, 너무 작아서 쥐고 악수라도 했다가는 자신의 손안에서 으깨질 것 같다.
‘아니, 뭐… 내가 꼭 비엔나랑 뭐… 야한 걸 하고 싶단 건 아닌데, 그렇게 싫다고 할 때는 고집 피우고, 말도 안 듣더니 이렇게 조용할 줄이야.’
주인은 멍하니 기계적으로 비엔나의 잎을 닦으며 생각했다. 처음 잎을 쥐고 닦아 주기 시작했을 때에는 힘 조절을 위해 손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는데, 계속 반복적인 작업을 하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의 힘으로 쥐어야 하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작은 별 모양의 녹색 잎들은 적갈색 덩굴 위로 촘촘하게 나 있었기 때문에, 작은 잎의 앞뒷면을 전부 닦아 주는 것은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었다.
토독. 주인은 멍하니 손을 움직이다가, 손끝에서 뭔가 약간 걸리는 느낌에 표정을 굳혔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아주 미세한 걸림이었지만, 자신의 손에 쥐여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이런 느낌이 나서는 안 되었다.
주인이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을 내려놓고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쥐어진 작은 잎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조심조심 손가락을 놨다. 그러자 주인의 손가락 사이에서 손톱 끝의 반달 모양만 한 크기의 아주 작은 이파리 조각이 포르르 식탁 위로 떨어져 내렸다.
“비엔나…!”
주인은 화들짝 놀라 비엔나를 살폈다. 자신이 닦아 주고 있던 작은 별 모양 잎 하나가, 끝이 아주 조금 찢어져 별의 다섯 꼭지점 중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하필 조금 찢어진 부분이 별의 꼭대기에 위치한 꼭지점이라, 꼭 작은 별의 목이 잘려 나간 것처럼 보였다.
“미… 미안해!”
주인은 당황해 허공에서 손을 휘저었다. 비엔나가 너무 작고 가늘어서, 괜찮은지 살피겠다고 손을 댔다가는 또 잎이나 덩굴을 상하게 할까 봐 걱정됐다. 주인은 여러 차례 작은 비엔나에게 사과했지만, 여전히 비엔나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괜찮다는 말은 안 바라니까, 아프다고 화라도 내주면 좋겠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두 배로 걱정되는 기분이었다. 결국 주인은 그 이후로는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주인은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비엔나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비엔나를 들여다봤지만 여러 번 본다고 주인이 식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잠들 시간이 될 때까지 미안함에 끙끙거리던 주인은 결국 식탁 의자 하나를 끌어와 침대맡에 두고, 그 위에 비엔나를 올려 두고 침대에 누웠다. 매일 옆에 눕던 따끈한 체온이 없으니 영 허전해 자꾸만 뒤척이게 되었다.
비엔나를 키우기 전 혼자서 잠들었던 날이 훨씬 더 많은데,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옆자리가 허전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야. 비엔나가 사라진 게 아닌 것만 해도 어디야!’
주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 * *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주인은 하룻밤 새 족히 두 배는 되는 크기로 자라난 머리맡의 식물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손을 들어, 눈을 한 번 비벼 봤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똑같았다.
‘내가 한 일주일쯤 잠들어 있었나?’
주인은 눈을 깜박이며 휴대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지만, 날짜는 하루밖에 지나 있지 않았다. 몇 차례 휴대폰과 비엔나를 번갈아 보던 주인은, 그냥 상황을 납득했다.
“…뭐야, 왜 이래.”
그리고 침대에서 내려가 비엔나를 자세히 들여다본 주인은 전날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싱싱함의 정도에 당황했다. 전날 잎을 닦아 줄 때 본 비엔나의 작은 별 모양 잎사귀들은, 크기는 크지 않아도 진한 녹색을 띠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아주 건강하고 생기가 넘쳐 보였었다.
그런데 하룻밤 만에 배는 두꺼워진 덩굴에 맞게 두세 배는 되는 크기로 자라난 비엔나의 별 모양 잎사귀들은 눈에 띄게 시들시들해져 있었다. 잎의 색은 더 이상 선명한 녹색이 아닌, 한 번 삶아서 데친 듯 시들시들한 노란빛 섞인 칙칙한 녹색이었으며 생기를 품고 탄력 있게 고개를 쳐들고 있던 덩굴과 잎들은 힘을 잃고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주인은 다급하게 비엔나를 들어 창문 쪽으로 옮기고 커튼을 활짝 열었다. 해를 쬐지 못해서인가? 하지만 어제도 충분히 창문을 열고 햇볕을 쬐게 해 줬는데. 주인은 안절부절못하며 식물용 영양제 통과 물뿌리개를 들고 와 비엔나의 앞에서 망설였다.
“…물을 줘야 하나!? 아니면, 영양제? 그런데, 어제 책에서는 또 너무 자주 물이나 영양제 주면 뿌리가 썩는다고 했는데… 아니, 그런데 애초에 비엔나는 무슨 식물이지? 식물 종류에 따라서 물을 주는 주기가 다르다고 했는데…!”
주인은 하룻밤 새 시들해진 비엔나를 보며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어떤 식물인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더 혼란스러웠다. 대충 생김새로만 보면 덩굴 식물 같기는 한데, 책에서 본 식물 중에는 생김새와 분류가 달랐던 식물도 많아 혹시 자신이 잘못된 조치를 취했다가 비엔나가 말라 죽기라도 할까 봐 쉽사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 방법밖에는…!”
한참을 비엔나의 앞에서 양손에 물뿌리개와 영양제를 들고 고민하던 주인은, 결국 절대로 취하고 싶지 않았던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다.
찰칵. 주인은 비엔나의 잎과, 덩굴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 안녕… 하세요, 저는 최근에… 반려… 식물을 들였… 습니다… ]
그리고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첨부한 주인은, 중얼중얼 쓸 내용을 읊으며 누군가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메일의 내용은 영어였다.
주인이 메일을 쓰는 사람은 어제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였다. 저자의 책 뒤에는 저자의 약력과 함께 식물을 키우는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나 저자도 모르는 새로운 식물에 대한 메일을 언제나 받고 있으니 이쪽으로 메일을 보내라며 저자의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주인은 호기심에, 한 번 책의 저자를 검색해 봤었다. 저자는 SNS 계정도 운영하며 다양한 식물을 키우는 일상, 후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비엔나가 걱정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비엔나를 어디 연구하는 곳에 데려갔다 빼앗길까 봐 겁이 났던 주인은 비엔나의 줄기와 잎 사진만 찍어, 비엔나는 어떤 종류의 식물인지만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비엔나가 어떤 종류의 식물인지라도 알면, 물이나 영양제를 주는 법 등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주인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자에게서 답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비엔나가 저대로 시들시들 말라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주인은 비엔나가 하룻밤 만에 저만큼 자랐다는 이야기는 빼고-이건 식물에 대해 잘 모르는 주인이 봐도 충분히 비정상적이었다-메일을 마저 작성했다. 줄기와 잎의 사진을 아예 따로 첨부하는 등, 나름대로 비엔나의 정체를 숨기려는 노력을 마친 주인은 전송 버튼을 눌렀다.
“…비엔나, 아프면 안 돼.”
주인이 간절한 눈으로 시들시들 늘어진 비엔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비엔나에게 서운한 점이 있었다고 한들, 비엔나가 아예 자신의 옆에서 사라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 * *
잠든 주인의 옆에서 비엔나의 가느다란 덩굴 하나가 꾸물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적갈색 덩굴은 작은 별 모양 잎사귀들을 짤랑이며 주인을 향해 뻗어 갔다. 주인의 코 밑에 잠시 작은 별 모양 이파리를 대고 있던 덩굴은, 주인이 잠든 것을 확인하자 다시 꼬물꼬물 움직였다.
작은 별 모양의 잎사귀 중, 그나마 큰 편에 속하는 잎이 주인의 뺨 위에서 팔랑이며 몇 차례 그 위에서 움직였다. 뺨에 닿을 듯 말 듯 움직이던 가느다란 덩굴은 결국 주인의 뺨 위에서 망설이듯 파르르 떨리다 그대로 원래의 자리인 침대 맡의 의자 위로 돌아갔다.
비엔나의 잎과 덩굴이 힘없이 추욱 늘어졌다.
일생에 단 네 번뿐인, 짝을 찾기 위한 기회를 전부 망설임 없이 주인을 위해 사용할 만큼 주인이 소중했다. 그렇게나 소중한 반려인데, 닿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반려의 각인으로 이어지기 전에는 오히려 주인한테 항상 붙어 있었는데, 오히려 이어지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닿는 것조차 망설이게 되다니.
그래도, 비엔나는 참을 수 있었다. 이제는 주인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주인에게서 나는 다른 수컷의 불쾌한 냄새에 거의 이성을 잃었다가, 본능적으로 주인과의 각인을 마치고, 남아 있는 두 번의 기회를 전부 사용해 식물의 모습으로 변하고 나자,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씨앗 형태의 자신에게 반려를 찾기 위한 네 번의 변신에 대해 속삭이던, 자신을 낳아 준 이들의 목소리. 우주에서 끝없이 떨어져 내리던 감각, 희미한 의식 속 옮겨지던 몸, 그리고 눈을 처음 뜬 순간 검고 커다란 주인의 눈과 마주쳤던 기억까지.
‘…!’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고통에, 비엔나는 줄기를 뒤틀었다. 가느다란 적갈색 덩굴이 파들파들 떨리며 별 모양의 작은 잎사귀 몇 장을 떨궜다. 잎사귀는, 거의 털과 같은 느낌이라 그에 따른 고통은 없었다.
몸 안에서, 반려의 종족으로 완전히 변하기 위해 모여든 커다란 에너지가 돌아다니며 고통을 유발했다. 빨판과 유사한 모양의 돌기에 덮인 적갈색 덩굴이 다시 한번 파르르 떨렸다. 떨리던 적갈색 덩굴과 녹색의 잎사귀들이 빛을 내며 깜박이더니,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얇았던 적갈색 덩굴이 두껍게 변하고, 줄기에 돋아 있던 돌기들이 한층 두툼하게 부풀었다. 별 모양의 녹색 잎들은 거의 사람의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라났다. 빛이 완전히 사라진 자리에는, 족히 몇 배는 두껍고 길게 자라난 덩굴이 있었다.
조금이나마 빠져나간 에너지에, 고통으로 부르르 떨리던 비엔나의 덩굴과 잎이 잠잠해졌다. 비엔나는 남아 있는 에너지를 가늠해 보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크게 자라나는 것은 불가피해도 버티면 식물의 모습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종족은, 일생 동안 총 네 번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이 기회를 사용하면 원하는 생물체의 모습과 거의 똑같이 변신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오직 반려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우주를 떠돌다가 반려를 찾기 전에 죽는 이도 많았고, 반려를 찾아 각인을 마치면 완전하게 반려와 같은 종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에 사실 남아 있는 다른 개체가 있기는 할지 비엔나 자신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이 행성에는 자신뿐일 것 같았다.
남은 변신 횟수와 상관없이 각인 이후에는 완전히 반려의 종족으로 변한다는 것을 미처 기억해 내지 못하고 본능을 따라 주인에게 각인을 한 뒤 식물의 형태로 변해 버린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비엔나는, 오히려 반려의 종족으로 완전히 변하기 전에 남은 변신 기회를 사용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었다.
비엔나는 주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계속 자신을 쓰다듬어 주고, 말을 거는 주인에게 안기고 싶었지만 비엔나는 꾹 눌러 참았다. 최대한 주인에게 무해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있고 싶었다. 지금은 꾹꾹 누르고 있어도 완전한 변신을 위해 흘러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몸에서 흘러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커다랗게 자라는 것은 불가피할지도 모르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했지만 주인에게 미움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역시, 주인이 자신을 만져 줄 때까지는 먼저 닿지도 못하고 주인이 어쩌다 먼저 만져 줄 때에도 손가락 하나 잡지 못한다니 영 기운이 나지 않았다. 비엔나는 시무룩하게 잎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 * *
주인은 비엔나의 깨진 화분을 더 큰 것으로 갈아 주고, 도시락을 데우던 중 울린 알람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서 꺼내지도 않고 서둘러 노트북을 올려놓은 식탁으로 가 앉았다. 노트북 구석에, 새로운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떠 있었다.
“빠르잖아? 시차 때문에 더 늦게 올 줄 알았는데.”
주인은 중얼거리며 서둘러 메일을 열었다. 그리고 메일을 확인한 주인은 급하게 메일을 닫고 메일을 스팸함으로 분류하고 메일 계정을 탈퇴하는 것까지를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실행했다.
주인이 보자마자 바로 삭제해 버린 메일에는, 어디에서 얻게 된 식물인지를 묻는 내용과 더불어 사진으로만 보기에는 완전히 새로운 종인 것 같으니 식물의 전체 사진이나 샘플을 보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왕이면 식물의 잎 뒷면 사진과 뿌리 사진도 보여 줄 수 있으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도 추신에 적혀 있었다.
“… 우리 비엔나는 절대로 못 줘.”
괜찮을 줄 알았는데, 줄기나 잎만 보고서도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니 오랜 세월 식물을 본 전문가는 뭔가 다르긴 한 모양이었다. 방금 메일을 계기로, 주인은 비엔나의 잎과 줄기가 시들시들한 현상은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저자의 반응을 보자니, 비엔나를 들고 나가 직접 보여 주기라도 했다가는 연구원들이 비엔나가 새로운 종이며, 나아가 사실은 특별한 생물이라는 걸 알아내고 빼앗아 버릴 것이 뻔했다.
주인은 비엔나를 조심스럽게 들고 와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어떻게든 식탁에 올라가는 크기였다. 주인은 작은 면봉을 집어 들었다. 원래도 작은 면봉이, 주인의 커다란 손에 들리자 더 작고 가늘어 보였다.
“비엔나. 아프면 안 돼…”
주인은 머릿속으로 비엔나가 혹시나 정말로 더 상태가 안 좋아지면 그냥 연구소에 데려가서 비엔나를 살리고 자신도 그 옆방에 머무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어야 하나- 까지 고민하며, 조심스러운 손길로 면봉을 움직여 비엔나의 수많은 잎을 전부 한 번씩 털어 줬다.
마침 비엔나의 잎이 크기도 커졌고 하니, 잎이 너무 작아 준비했던 면봉보다는 직접 손으로 잡고 면으로 된 손수건 같은 것으로 닦아 주고 싶었으나 그렇지 않아도 비엔나가 시들시들한데 괜히 자꾸 만졌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더 시들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만진다고 이파리가 오그라드는 미모사 같은 유의 식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으나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없으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주인은 정성스럽게 커다란 손에 쥔 면봉으로 먼지를 털어 주는 작업을 마친 뒤, 기지개를 켰다.
“으으- 요즘 좀 졸린 것 같네. 이제 봄이라서 그런가…”
별로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주인은 전자레인지에서 도시락을 꺼내 왔다. 비엔나도 상태가 좋지 않은데 혹시 밥을 굶었다가 자신까지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주인은 대충 입에 도시락을 집어넣다가 영 입맛이 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후우…”
최근에는 비엔나가 식탁 앞으로 와 까만 눈을 반짝이며 한 입만 달라는 듯 쳐다보거나, 자기 밥그릇을 끌고 와 옆에서 챱챱 소리는 내는 등 밥을 혼자 먹을 일이 없었다. 혼자서 밥을 입에 밀어 넣자니 영 맛이 없었다.
옆에서 시들시들 잎과 덩굴을 늘어뜨리고 있는 비엔나를 흘긋 본 주인은 다시 젓가락을 들어 밥을 마저 입에 넣었다. 도시락을 꾸역꾸역 비우고 찾아 놓았던 식물들이 좋아한다는 클래식 이십 선을 재생시키고 식탁에 앉으니 괜히 피곤했다. 비엔나의 상태에 너무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인은 귓가에 잔잔하게 울리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의자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으음… 으, 지금이 몇 시지…”
눈을 뜬 주인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도시락을 먹을 때만 해도 주변이 밝았는데 지금은 주변이 어둑하게 변해 있었다.
“응?”
긴 팔을 뻗어 식탁의 불을 켠 주인은 자신의 몸에 얹어진 별 모양 잎사귀를 보며 눈을 깜박였다. 주인의 맨가슴과 헐렁한 바지춤 위로 덩굴이 뻗어 별 모양 잎사귀가 불룩한 부위에 각각 얹어져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멀뚱멀뚱 자신의 가슴과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던 주인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고개를 돌려 식탁 위의 비엔나를 쳐다봤다. 식물이 된 이후로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고 상식적으로 식물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비엔나는 평범한 식물이 아니었으며 전적이 많은 생물이었다.
심지어 가슴 위에 얹어진 별 모양 잎사귀는 양 가슴에 각각 하나씩, 그것도 딱 젖꼭지를 덮는 위치에 얹어져 있어 얼핏 보면 주인이 가슴에 별 모양의 초록색 브래지어를 한 것처럼 보였다.
‘…이거 설마 안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얇으니까… 혹시 안 떨어지면 억지로 뜯어내지 말아야지.’
주인은 손을 들어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자신의 양 가슴에 얹어진 별 모양 잎사귀들과 다리 사이에 얹어진 잎사귀를 차례로 떼어 냈다. 주인의 걱정과 달리 별 모양의 잎사귀들은 가볍게 주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아닌가?”
비엔나가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던 주인은 가볍게 떨어져 나간 잎사귀들에 약간 멋쩍어졌다. 그냥, 자신이 자다가 뒤척이는 동안 바람에라도 날려서 우연히 절묘한 부위에 얹어진 걸지도 몰랐다. 하룻밤 새 크기가 배는 자라나기는 했어도, 여전히 비엔나의 덩굴은 가늘었다.
“잎이… 조금 싱싱해진 것 같은데.”
주인은 조심스럽게 손가락 사이에 쥔 별 모양의 잎사귀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완전히 싱싱한 녹색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까 아침에 일어나고 마주했던 노란빛이 돌던 칙칙한 녹색에 비한다면 조금 더 푸른빛으로 살아나 있었다.
주인은 안도했다. 클래식을 틀어 준 것과, 잎을 면봉으로 닦아 준 것 중 뭐가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비엔나가 시들시들하지 않고 생기를 띤다는 것만으로도 주인은 행복했다.
* * *
“하하… 건강하니 다행이네.”
주인은 오늘도 전날보다 더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비엔나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비엔나는, 주인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다랗게 자라 있었다. 일주일 전 시들시들 한 조그만 잎과 가느다란 덩굴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이제 비엔나는 주인보다도 더 커다란 키로 자라나 있었다.
자라난 길이에 걸맞게 이제는 덩굴이며 잎도 더 커다랗게 자라 별 모양의 잎은 정말로 주인의 손만큼 자라났고 덩굴은 어느덧 가장 두꺼운 부분이 주인의 손가락보다 굵을 정도로는 두꺼워졌다.
비엔나가 건강하다니, 앞으로도 이렇게 건강하게만 자라 준다면 주인은 바랄 것이 없… 아니, 없지는 않았다.
“하아…”
주인은 비엔나가 쑥쑥 건강하게 자라난 지난 일주일 새에 배달된 작은 테이블에 앉아 턱을 괴고 한숨을 쉬었다. 비엔나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것과는 달리 주인은 어제도 밤잠을 설친 터였다.
비엔나가 시들시들한 상태에서 점차 벗어나 쑥쑥 자라나기 시작했을 때는,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비엔나가 다시 건강해졌다는 사실 자체로도 기쁘고 행복했다. 그렇지만 비엔나가 다시 건강을 되찾고 무럭무럭 크기를 키워 나가기 시작하자, 이제 주인은 비엔나가 자신에게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비엔나가 항상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기억이 떠올라 더 그랬다.
‘…나한테 구애까지 해 놓고. 식물이 되면 단가?’
자신의 반려 생물인 비엔나가 있는데도 주인은 밥을 혼자 먹어야 했으며, 비엔나에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엔나는 이제 너무 커다랗게 자라 버려서 주인이 마음대로 들어서 옮길 수도 없이, 그저 침대 옆에 두는 수밖에는 없었다.
‘처음부터 식물이었다면, 나도 이런 생각 안 했을 거라고.’
아예 처음부터 반려 생물과 함께하는 일상을 겪은 적이 없다면 몰라도 항상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더니 이제는 자신이 불러도 대답조차 없다.
비엔나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위안 삼으며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작은 테이블을 들고 와 옆에서 책을 읽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비엔나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히 집에 비엔나와 함께 있는데도 외롭고 심심했다.
그렇다고 이제는 움직이지도 못하게 된 비엔나를 두고 오래 집을 비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주인은 이제는 아침에 젖꼭지를 핥으며 깨우던 비엔나의 행동까지도 그리웠다. 젖꼭지는 비엔나가 그렇게 건드려 대는 바람에 이렇게 집에서는 웃통을 벗고 있어야 할 만큼 크고 예민하게 변해 버렸는데.
주인은 불만스럽게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하얀 가슴 위로 두툼하고 진한 색으로 변한 자신의 젖꼭지가 내려다보였다.
가만히 자신의 커다랗게 변한 젖꼭지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이 젖꼭지가 어떻게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지가 주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처음에는 미끈거리는 빨판으로 문지르고, 빨판으로 문질러져 진한 붉은색으로 퉁퉁 부어오른 젖꼭지에 두툼한 빨판을 가져다 댔었다. 그리고 부어오른 젖꼭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집요하게 빨판으로 흡착해서 잡아당기고 뭉개듯 비볐었지.
“흐으…”
그때의 쾌감을 생생하게 떠올리니 젖꼭지와 가슴은 물론 아랫배가 욱신거리는 것 같은 기분에 주인이 희미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또 어떻게 했더라?
그러고는 더 크게 부풀고 새빨갛게 변한 젖꼭지를 비엔나가 뜨거운 혀로 자신의 젖꼭지를 핥고, 잘근잘근 씹고, 강한 힘으로 쭉쭉 빨아 당기는 것을 집요하게 반복했었지. 그리고 그 뜨거운 혀로, 자신의 좆도…
“하으….”
주인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주무르고 있었다. 가슴을 센 힘으로 주무르던 손바닥에 예민한 유두가 눌려 뭉개지자, 절로 입에서 더운 숨이 샜다.
헐떡이며 가슴을 주무르던 주인은, 흘긋 옆을 쳐다봤다.
비엔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아…”
주인은 입맛을 다셨다. 여전히 가슴에 올린 손을 내리지 않은 채였다. 주인의 좆은 이미 비엔나가 젖꼭지를 괴롭히던 감각을 떠올리는 동안 잔뜩 피가 몰려 드로즈 위로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은 가슴을 세게 쥐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을 드로즈의 밴드에 가져다 대며, 잠시 망설였다. 지금은 대낮이고, 비엔나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드로즈를 내려 좆을 꺼내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다.
‘…상관없지 않나. 다른 남자 만나서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빼는 건데.’
비엔나에 의해 거의 폭력에 가까운 쾌감을 수차례 맛본 주인은 이 정도의 자극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거기에다, 비엔나가 식물이 된 이후로는 너무 조그마한 비엔나를 걱정하느라 혼자서 뺄 시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미 더한 꼴도 본 사이잖아.’
이 생각을 마지막으로, 합리화를 마친 주인이 드로즈를 내리자마자 퉁 튀어 오른 좆을 손에 쥐었다. 손아귀에 다 담기지 못하고 튀어나온 좆 대가리는 유독 새빨갛게 물들어 액을 흘리고 있었다.
“흐으…”
그리고 주인은 가슴을 주무르며, 천천히 손에 쥔 통통한 좆을 잡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엄지로 뿌연 액이 반질거리는 좆 대가리를 문대기도 했고, 손에 묻은 액을 좆 기둥에 펴 바르며 부푼 좆을 주무르기도 했다.
“으응… 흣, 으흐응… 조금 더…”
가슴을 세게 쥐어짜며 좆을 만지는 주인의 뺨과 눈가가 점차 붉게 물들기 시작했으나, 원하는 만큼의 자극을 얻지 못한 주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주인은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결국 주인은 잠시 가슴과 좆에서 손을 뗀 채 침대로 걸어갔다. 주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잔뜩 부푼 좆이 단단한 배에 올라붙은 채로 흔들렸다.
침대는 비엔나의 바로 옆이라 주인은 침대에 앉으면서도 조금 망설였지만 주인은 그대로 침대 위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주인은 비엔나가 있는 쪽을 마지막으로 흘끔 쳐다봤으나, 비엔나가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드로즈를 완전히 벗어서 침대 아래로 던져 버렸다.
“으응…”
침대 위에 늘어진 주인이 다시 가슴과 좆에 손을 얹었다.
“흐으… 으으응…!”
주인의 납작한 배에 한껏 올라붙은 통통한 붉은색 성기가 다시금 주인의 손아귀에서 주물러지고, 다른 손이 하얀 가슴 아래를 받치고 도톰한 젖꼭지를 엄지로 꾹꾹 뭉개며 비비기 시작했다. 주인의 손이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주인의 뺨과 목덜미가 붉은색으로 달아오를수록 주인의 허벅지가 점점 넓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으… 읏, 흐으으…!”
주인은 미묘하게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쾌감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쾌감에 최대한 집중하느라 침대 옆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던 비엔나의 덩굴 중 잎이 거의 없이 유독 가느다란 적갈색 덩굴 하나가 꾸물꾸물 침대헤드를 타고 내려와 침대 위로 기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으… 조금… 조금만 더… 흐읏?”
주인은, 열심히 주무르던 좆을 뭔가 가느다란 것이 타고 오르는 감각에 반사적으로 허리를 튕겼다. 쾌감은 느껴지는데 뭔가가 조금 부족한 기분 때문에 갈 듯 말 듯 예민한 상태를 몇 분간 지속하고 있던 좆은 가느다랗고 오돌토돌한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타고 오르는 감각을 아주 생생하게 느꼈다.
붉어진 눈가를 잔뜩 찌푸린 그대로, 다리 사이를 내려다본 주인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적갈색의 가느다란 덩굴 하나가, 꾸물꾸물 자신의 좆을 휘감으며 타고 오르고 있었다. 가느다란 덩굴은 재주가 좋게도 좆을 흔들기 위해 살짝 헐겁게 쥔 주인의 손가락과 좆의 사이를 파고들어 주인의 좆을 빙글빙글 돌며 감싸고 있었다.
“너, 움직일 수 있… 하으…!”
그러나 주인이 채 말을 잇기 전에, 비엔나의 덩굴이 좆을 감싸고 조이는 것이 더 빨랐다. 진한 붉은색으로 물든 통통한 좆이 갈색의 거친 덩굴에 조여지며 터지기 직전의 모양새로 불룩하게 부풀었다.
이미 스스로 잔뜩 만져 놓아 예민하게 달아오른 좆의 표면을 오돌토돌한 돌기들이 문대고 지나가는 감각에 침대 위에 올려져 있던 주인의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비엔… 흐앙…!”
주인은 비엔나에게 움직일 수 있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이번에는 오돌토돌한 덩굴에 달려 있던 별 모양의 잎사귀가 찔끔찔끔 액을 흘리고 있는 새빨간 귀두를 문질렀으므로 주인은 침대헤드에 등을 비비며 허리를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들썩이는 주인의 움직임을 따라 붉어진 커다란 가슴과 덩굴로 터질 듯 조여진 좆이 함께 흔들렸다. 작은 별 모양의 이파리는, 작고 보드라워 보이는 생김새와는 달리 제법 빳빳하게 펴진 상태로 새빨간 좆 대가리 위로 액을 펴 발랐다.
“으응… 흐으응….”
침으로 젖은 입술을 짓씹으며 달뜬 신음을 내뱉던 주인이 결국 참지 못하고 가슴에 손을 얹어 이미 손자국이 남은 가슴을 터질 듯 센 힘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마구 가슴을 쥐어짜듯 주무르는 주인의 손가락 사이로 볼록볼록 가슴살이 비어져 나오고 동그랗게 뭉친 젖꼭지가 비벼졌다.
“아아… 흐… 비엔… 나, 나 갈 것 같…”
주인이 헐떡이는 신음과 섞여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미 주인이 잔뜩 만져 놓은 상태였으므로 주인의 새빨갛게 부푼 귀두와 그 위를 문지르던 작은 별 모양의 잎은 이미 쿠퍼액으로 질척질척하게 젖어 있었다.
“아흣…!”
주인은 싸기 직전이었던 좆의 끝부분이 무언가에 틀어 막히는 감각에 허리를 꺾었다. 동시에 예민한 좆 대가리로 뭔가가 파고들어 오는 날카로운 감각에 주인은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자신의 다리 사이를 내려다봤다.
가느다란 덩굴의 끝부분이, 꾸물꾸물 요도 구멍을 파고들어 와 있었다. 가느다랗다고는 해도, 표면이 돌기로 덮인 덩굴은 끝의 아주 가느다란 부분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하지만 흘러내린 액으로 반들거리는 새빨갛게 부푼 귀두에 덩굴이 쑤셔 박힌 광경은 주인을 기겁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히익… 이게… 뭐… 우븝…!”
깜짝 놀라 벌어진 입으로, 어느새 침대헤드까지 넘어와 있던 더 굵은 덩굴 중 하나가 쑤셔 박혔다. 덩굴은, 주인이 입을 아예 다물지 못할 정도의 두께는 아니었으나 주인의 혀 밑이며, 볼 안쪽 등을 빙글빙글 돌아가며 파고들었으므로 주인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우으응…!”
주인의 벌어진 입술 옆으로 침이 주르륵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인은 가슴을 주무르던 것도 멈추고, 손을 들어 입을 막고 있는 덩굴을 잡고 빼내려고 했으나 덩굴은 생각보다 미끄러웠고, 시들시들했던 비엔나의 모습이며 연약했던 작은 잎이 떠올라 도저히 비엔나의 덩굴을 거칠게 당길 수가 없었다.
“브읍… 하악… 학… 그만…”
겨우 달래듯이 입 안을 잔뜩 헤집던 덩굴을 빼내는 것에 성공했다. 주인의 손에 잡힌 적갈색 덩굴의 오돌토돌한 표면이 주인의 입에서 흐른 침으로 반들반들 빛났다. 주인의 붉은 얼굴 역시도 흘러내린 눈물과 침으로 엉망으로 젖어 있었다.
입 안을 헤집던 덩굴은 빠져나갔지만 터질 것 같은 좆을 틀어막은 가느다란 덩굴은 주인의 좆을 놔줄 생각이 없는 듯 여전히 주인의 통통한 좆에 칭칭 감겨 있었다. 이번엔 좆을 틀어막은 덩굴을 떼어 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제… 하악… 그… 만, 아아앙…!”
그리고 주인이 간절한 손길을 뻗는 순간, 조금 전까지 주인의 입 안에서 질척하게 적셔진 덩굴이 주인의 동그란 젖꼭지를 문대기 시작했다. 도톰하게 부풀어 있는 빨간 젖꼭지가 오돌토돌한 적갈색 덩굴에 문대지며 주인 자신의 침을 윤활제 삼아 질척질척 뭉개졌다.
주인의 침대헤드에 가만히 걸쳐져 있던 또 다른 덩굴이 주인의 두툼한 가슴팍을 꾸물꾸물 타고 내려오더니, 문질러지지 않았음에도 흥분으로 커다랗게 변한 주인의 다른 쪽 젖꼭지 옆에 멈춰 섰다. 가느다란 끝부분을 꼼질꼼질 움직여 도톰한 젖꼭지에 꽉꽉 조여든 덩굴이 그대로 주인의 젖꼭지를 당기기 시작했다.
계속 사정을 하지 못한 좆은 이제 새빨갛게 부풀어 오르다 못해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덩굴에 조여진 부분 주위로는 핏줄까지 돋아 있었다.
“흐윽… 흑, 제발… 흐아앙!”
주인이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거의 애원하다시피 신음을 내뱉었다. 쌀 수는 없는데, 젖꼭지와 좆에서 동시에 자극이 너무 강했다. 그리고 젖꼭지를 꽉 조이고 있던 덩굴이 주인의 부은 젖꼭지를 세게 잡아당기고 침으로 젖은 덩굴이 오돌토돌한 표면으로 주인의 단단하게 뭉친 젖꼭지를 가슴 안으로 꾸욱 눌러 파묻는 순간, 주인의 벌어진 허벅지가 파들파들 떨리며 허리가 꺾였다.
그리고 주인이 아직도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허리를 꺾은 채 파들파들 떨고 있는 동안, 주인의 아파 보일 만큼 부어오른 좆 구멍에 쑤셔 박혀 있던 덩굴이 뽑혀 나갔다. 가느다란 덩굴이 뽑혀 나간 새빨간 요도구가 뻐끔뻐끔 경련하듯 떨렸다.
좆 기둥을 빙빙 둘러 조이고 있던 덩굴이 떨어져 나가자, 표면에 돋았던 핏줄은 가라앉았으나 여전히 주인의 좆은 검붉게 부풀어 다리 사이에서 꺼떡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하으… 윽, 으응…!”
여전히 상체를 숙이고 정신을 못 차리는 주인의 좆을, 아까 주인의 미끈거리는 귀두를 문질러주며 정액으로 흠뻑 젖은 작은 별 모양의 이파리가 탁탁 두드리듯 치며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잔뜩 부풀어 있던 주인의 좆이 울컥 정액을 뿜었다.
“흐아…”
울컥울컥 뿜어져 나온, 진한 유백색의 액체가 배와 허벅지는 물론 숙이고 있던 주인의 커다란 가슴과 얼굴에까지 튀었다. 퉁퉁 부은 젖꼭지와, 침과 눈물로 범벅된 빨간 얼굴 위로 뿌연 액체가 튀어 그 위로 흘러내렸다.
허리를 들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는 주인의 축축한 뺨을 뭔가 차갑고 단단한 것이 툭툭 두드렸다. 주인은 눈에 잔뜩 고인 생리적인 눈물을 눈을 깜박여 털어 내고, 아직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허리를 간신히 세웠다.
그리고 고개를 간신히 주인이 마주한 것은, 여러 개의 좆… 아니, 덩굴이었다. 주인은 여러 개의 덩굴이 자신의 얼굴 높이에서 덜렁이는 것을 보고 기함했다. 주인의 뺨을 툭툭 두드린 것은, 여러 개의 덩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적갈색에 표면에 도톰한 돌기들이 촘촘히 덮인 표면을 보면 분명 비엔나의 덩굴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훨씬 더 두껍게 부풀어 있었으며 주인이 그 덩굴들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에도 덩굴은 불뚝불뚝 계속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두껍게 부풀어 오르자 덩굴에 달린 돌기들은 더더욱 빨판과 비슷해 보였다.
“히익…!”
주인은 자기도 모르게, 부풀어 오르는 줄기를 보며 기겁했다. 계속 부풀어 오르고 있는 줄기는, 대충 어림짐작으로 훑어봐도 이제는 거의 자신의 주먹 쥔 손과 두께가 비슷해 보였다. 분명히 자신의 가슴을 타고 내려오던 덩굴은 굵어 봤자 잘해야 자신의 손가락보다 조금 더 굵은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짧은 시간에 족히 열 배는 넘게 부푼 것 같았다.
‘히익, 저게 대체 몇 개야…!’
그리고 자신의 얼굴 앞에서 흔들리는, 강아지였을 적 비엔나의 빨판에 덮인 좆을 연상시키는 덩굴들을 마주했을 때부터 슬금슬금 침대에서 다리를 내리던 중이었던 주인은 급하게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와아. 몸이 더러워졌네. 어서, 욕실에 가서 씻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는걸? 하하, 하.”
주인은 크고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숨도 쉬지 않고 핑곗거리를 내뱉은 뒤, 혹시나 비엔나가 따라올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욕실로 달려갔다.
“허억… 헉… 비엔나가, 방금 한 말 들었겠지? …그건 절대로 못 넣어. 아니, 분명 죽을 거야.”
찰칵. 욕실 문을 닫고 걸어 잠근 주인은 그제야 주르륵 욕실 문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부피를 키우던 여러 개의 덩굴들은, 다시 떠올려도 등줄기가 서늘했다.
“…그런데, 움직일 수 있는 거였어?”
주인은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움직일 수 있었다니. 그럼 며칠간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이라도 좀 해 주지. 시들시들한 비엔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주인은 가쁜 숨을 따라 들썩이는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아니, 뭐… 오늘부터 움직일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악수도 할 수 있고… 또 움직이는 식물이랑 집에서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주인은 들떴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 반응해 줄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엔나가 앞으로 자신에게 반응해 줄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인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까 난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아까 뺨을 툭툭 두드린 두꺼운 덩굴을 생각하면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주인은 입에서 자꾸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 * *
“비엔나, 대체 왜 이래. 어디 아픈 거야?”
며칠간 쑥쑥 잘 자라고 어제는 움직이기까지 했다.
물론, 자신이 씻고 욕실에서 나온 다음에는 불러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인은 이제 한 번 움직였으니 앞으로도 움직일 것이라고, 처음 움직였으니 피곤했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게다가 움직여서 한 것이 자신의 자위를 도운 것이었으니 비엔나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굳이 비엔나를 잡고 앉아 추궁하기에는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지난번과 같이 크기는 더 커다랗게 변했으면서 또 시들시들해진 비엔나에 주인은 속이 상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에 비할 바 없이 하룻밤 만에 유독 커다랗게 자라나기는 했다. 아침에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가 침대 위로 무성하게 늘어진 덩굴들에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눈을 비볐었으니까.
이제 비엔나는 창이 있는 쪽의 한 벽면을 전부 뒤덮을 정도로 커다랗게 자라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면을 전부 뒤덮은 비엔나의 줄기와 잎들은, 쑥쑥 자라난 것치고는 전혀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며칠 전에 비하면 심각하게 시들지 않았고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연약했던 작은 식물일 적에 비한다면 훨씬 커다랗게 자란 상태였으므로 주인은 이번에도 잠시 내버려 둔다면 비엔나가 알아서 다시 건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고작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비엔나는 가장 커다란 크기의 잎사귀-이제 주인의 얼굴보다도 컸다-의 가장자리가 노랗게 말라붙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결국 주인은 비엔나의 잎을 하나하나 쥐어서 확인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본다고 비엔나의 상태가 좋아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비엔나가 너무 걱정돼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별 모양의 잎사귀들은, 어떤 것이 아주 조금 덜 시들고 더 시들고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전부 노란빛으로 가장자리부터 말라 들어가고 있었다.
“비엔나, 어디 정말로 심각하게 아픈 거야?”
주인은 비엔나가 잎사귀라도 하나 팔랑이거나 아니면 덩굴이라도 살짝 움직여 자신의 말에 대답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비엔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비엔나의 시들시들 말라 가는 별 모양 잎사귀와 덩굴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지 확인하던 주인은 결국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엔나, 너 움직일 수 있잖아. 내가 물어보면 제발 잎사귀 하나만이라도 흔들어 줘. 응? 제발…”
하지만 비엔나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주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어제만 잠깐… 그래, 잠깐 움직일 수 있었던 거였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아프니까… 못 움직일 수도 있지.’
주인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비엔나의 잎이라도 닦아 주기 위해 손수건을 가지러 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몸을 휙 돌린 주인은 눈에 잔뜩 고인 눈물 때문에 바닥까지도 일부 자라나 늘어져 있던 비엔나의 덩굴 하나를 보지 못했다.
“아…!”
주인의 몸이 휘청하며, 주인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주인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비엔나의 덩굴이 빠르게 뻗어 나와 주인의 허리를 감싸며 주인의 몸을 넘어지지 않도록 고정시켜주었다.
“…”
그리고 예상했던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눈을 뜬 주인은, 앞으로 쏠리던 몸을 받쳐 준 비엔나의 덩굴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말이 없었다.
“…비엔나, 움직일 수… 있었구나.”
주인의 허리를 감고 있던 덩굴이, 스르륵 풀리더니 빠른 속도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스르륵 움직인 덩굴이 어찌나 빠른 속도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는지 비엔나의 모습은, 조금 전 주인을 잡기 위해 움직이기 전과 완벽하게 똑같아 보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데!”
결국 주인은 또다시 아무런 반응도 없는 비엔나를 보며 울컥하고 말았다. 이렇게 잘 움직이는 것을 보면, 죽을 만큼 아픈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왜 움직일 수 있으면서 대답을 안 했어. 나는… 난…”
그동안 대답 없는 비엔나를 보며 쌓였던 서운함이 울컥울컥 목까지 차올랐다. 분명히 자신에게 구애한 것은 비엔나였다. 그런데 왜 자신이 이렇게 버림받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주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신에게 구애해 놓고, 옆에 평생 있어 줄 것처럼 굴어 놓고.
‘애초에, 나한테 남은 건 비엔나 너뿐인데.’
그래, 비엔나가 식물이 되어서 서운하거나 외로운 것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자위할 때 움직였으면서. 아주 세심하게 덩굴로 좆을 감싸고, 이파리를 움직였으면서. 그랬으면서 자신이 애원해도 움직여 주지 않다니.
주인은 급기야 비엔나가 자라나면서 발정기가 와서 자신의 몸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위할 때는 그렇게 음란하고 집요하게 움직여 놓고 자신이 제발 대답해 달라고 매달릴 때는 잎사귀 한 장 흔들어 주지 않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신만 비엔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고, 비엔나는 그만큼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도 명치쯤이 저릿하고, 눈가가 시큰했다.
“이런 식이면… 나도 그냥 나가서 새로운 남자 만날 거야. 날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좆도 엄청 큰 놈으로 만날 거라고. 너도 그냥 네 마음대로 해! 내 말에 대답도 안 해 주는… 하여튼, 그런 생물은 나도 필요 없어!”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내뱉기는 했지만, 주인은 중간부터 말이 꼬이는 것을 느꼈다. 그래, 비엔나와 자신의 사이는 뭐지? 비엔나가 자신에게 구애하는 듯 행동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비엔나와 짝이 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비엔나와 자신은 종(種)도 다르다.
‘이게 아닌데.’
주인은 충동적으로 내뱉고는 금방 후회했다. 주인은 그새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비엔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반응이 없는 상대에게 혼자서 화를 내다 보니 너무 흥분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서운했다지만, 비엔나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비엔나는 아기나 다름없는데 말이 너무 심했다.
‘하긴, 내가 비엔나를 손가락만 할 때부터 키웠는데…’
주인은 욕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라도 하고 열을 식히고 올 생각으로 현관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욕실이 주방과 현관의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지금은 낮인데, 방이 급속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주인은 자신의 위로 드리운 커다란 그림자에 당황했다. 주인이 미처 고개를 돌려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인하기도 전에, 조금 전 봤을 때보다도 더 두껍게 자란 우둘투둘한 돌기들이 주인의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비엔… 나?”
주인은 반사적으로 비엔나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주인의 앞을 빠르게 앞질러 간 덩굴들은, 현관문 앞까지 기어가 현관문 위로 달라붙어 문 위로 엉겨 붙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개의 덩굴들이, 계속 주인의 옆을 지나 현관문을 타고 올랐다. 덩굴들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현관문이 원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개의 덩굴에 두껍게 덮인 후였다. 덩굴들이 어찌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현관문이 완전히 봉쇄되는 것에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주인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현관문을 막고 남은 덩굴들이, 주인에게로 전부 일사불란하게 기어오고 있었다.
* * *
“우븝…”
‘왜 이러는 거야…!’
주인은 비엔나에게 묻고 싶었으나, 두꺼운 적갈색 덩굴이 입을 한껏 벌려 휘젓고 있는 바람에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말을 하기 위해 혀와 입술을 움직여 보려고 시도할 때마다, 자꾸 입 안을 가득 채우고 헤집는 덩굴 때문에 턱을 타고 침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우으음, 부읍…”
답답한 마음에, 주인이 허리를 뒤틀었다. 굵은 덩굴로 한데 묶여 머리 위로 고정당한 손 때문에 주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거나 허리를 뒤트는 것뿐이었다. 주인이 허리를 뒤틀 때마다, 팔이 위로 묶이는 바람에 앞으로 더 튀어나온 커다란 가슴이 주인의 움직임을 따라 출렁 흔들렸다.
주인의 몸에 걸쳐져 있는 것은 집에서 입는 헐렁한 반바지뿐이었다.
아까 홧김에 비엔나에게 쏘아붙이고 비엔나가 현관을 덩굴들을 움직여 몇 겹으로 막은 다음부터 이 상태였다. 비엔나의 굵은 덩굴들은 주인의 몸을 타고 올라 손과 발을 묶었고, 두꺼운 줄기가 주인의 입 안으로 틀어박혔다.
꼭, 아무 데도 보내지 않고, 아무 말도 듣지 않겠다는 듯.
아예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해서 그런가? 하지만, 그건 홧김에 내뱉은 말이었는데.
주인은 유일하게 자유로운 눈을 굴려 비엔나를 살폈다. 그새 또 자라났는지 이제는 한쪽 벽면 정도가 아니라 거의 온 집 안을 비엔나가 전부 채우고 있었다. 이제는 가장 가느다란 덩굴조차 두께가 거의 자신의 팔목만 한 것 같았다.
표면이 두툼한 빨판을 닮은 돌기들로 덮인 짙은 적갈색 덩굴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운 모습은, 분명 방 안 가득 식물이 들어찬 것임에도 빈말로도 싱그럽거나 평화로운 풍경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흉흉했다.
“으부읍…!”
주인은 헐떡이며 열심히 몸을 뒤틀었다. 어서 덩굴에서 벗어나 이 상황을 해명하고 싶었다. 흉흉한 방 안의 풍경이 주인의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우붑! 움! 부웁…!”
하지만 주인의 몸부림이 무색하게, 팔목을 칭칭 감싼 두꺼운 덩굴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덩굴이 많이 두껍고 튼튼한 것 같아 비엔나가 다치지는 않겠다- 싶었던 주인이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몸부림을 쳤는데도 그랬다. 상상 이상으로 튼튼하고 질기게 자라난 모양이었다.
“움! 우우읍!”
(비엔나! 우리 말로 하자!)
하지만 비엔나는 주인을 풀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인은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주인은 마구 몸부림치던 것을 멈추고, 최대한 비엔나에게 숨이 막힌다는 뜻을 전달했다. 턱에서도 최대한 힘을 풀었다. 덩굴의 표면을 덮고 있는 돌기들 때문에 볼 안쪽이며 혀가 자꾸 눌려 힘들었지만 몸부림을 치던 것을 멈추니 헐떡이던 숨이 점차 고르게 변해 조금 전보다는 할 만했다.
“푸읍…! 하악… 학…”
주인이 얌전히 매달려 있자, 입에 쑤셔 박혀 있던 두꺼운 덩굴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주인은 헐떡이며 숨을 들이마셨다.
“비엔나, 이거 풀고 말로 하자. 응?”
하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운 적갈색의 덩굴들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주인은 할 수 없이, 직접 해명하기로 했다.
“있잖아, 아까 내가 다른 남자 좆… 아앙! 아니, 다른…흐앙!”
그리고 주인이 말을 내뱉을 때마다, 이제 거의 사람의 손만큼 크게 자라난 비엔나의 별 모양 잎사귀가 주인의 빨갛고 큼직한 젖꼭지 위를 찰싹찰싹 내려쳤다. 주인은 마구 허리를 뒤틀었다. 팔과 다리가 완전히 묶여 버려 허공에 매달린 모양새라서,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젖꼭지를 찰싹찰싹 맞아도 허리를 흔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주인은 해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엔나, 일단 그건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내가, 다른 좆… 흐으하앙!”
이번에는 양쪽 젖꼭지를 찰싹 맞는 것에 더해, 얇은 반바지 위로 엉덩이까지 찰싹 맞은 주인이 비명처럼 신음을 내질렀다. 몸을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서 그런지, 유독 몸의 감각이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어제 자위를 할 때 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느낀 것이기는 했지만, 비엔나의 별 모양 잎사귀들은 생긴 것은 귀여운 별 모양에 질감도 보드라워 보이는 주제에 탄력이 너무 좋았다.
사실 그냥 따끔한 정도일 뿐 별 모양의 잎에 찰싹 맞는 것이 아프지는 않았으나 맞는 부위도 문제였고 맞으면서 신음을 내뱉었다는 이 상황 자체도 너무 수치스러웠다. 찰싹 별 모양의 잎에 예민한 젖꼭지를 맞을 때마다, 아랫배가 화끈거리고 눈앞에 일시적으로 별이 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해명을 위해 입을 열기만 하면 찰싹 내려치니 도저히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비엔나, 다른 남… 아아앙! 후우…”
주인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가 다시 젖꼭지를 찰싹 맞은 뒤로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 와중에 이런 상황임에도 자극에 반응해 얇은 반바지 안에서 욱신거리며 크기를 키우는 좆에 주인은 허벅지를 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날 그렇게 내버려 두고, 움직일 수 있으면서 움직이지도 않아 놓고 이 반응은 뭔데. 아무리 아무리 내가 더 어른이라지만, 진짜 너무하잖아. 난 뭐 서운한 거 없는 줄 알아?’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처음에는 자신도 말이 심했던 것은 맞으니, 비엔나에게 오해를 풀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수치스러운 자세로 매달려 젖꼭지며 엉덩이까지 맞고 나니 억울했다. 자신이 말실수 한 번 했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지 비엔나에 대한 원망이 주인의 커다란 가슴 안에서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주인이 서러워하며 잠시 힘을 빼고 늘어져 있는 사이 잠시 가만히 있나 싶었던 비엔나의 덩굴들이 주인의 헐렁한 바지 안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비엔나! 흐읏, 아니, 지금은 싫… 하윽…!”
트렁크 안을 파고드는 비엔나의 덩굴에, 주인이 나름대로 비엔나를 제지하기 위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팔이 위로 묶여 온전히 드러난 커다란 가슴이 주인이 움직일 때마다 마구 흔들렸다. 잠시 멈칫했던 덩굴은 주인이 내뱉은 싫다는 말에 다시 주인의 바지 안으로 파고들었다. 두꺼운 덩굴 여러 개가 파고들자, 주인의 얇은 바지는 금세 불룩불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얇은 천이, 바지 안을 꾸역꾸역 파고드는 덩굴들 때문에 우둘투둘한 덩굴들의 표면 윤곽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팽팽하게 당겨졌다.
주인의 얇은 실내용 반바지는 이제 몇 개의 덩굴들이 가득 찼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덩굴들은 바지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으… 흐윽… 으으응…!”
얇은 천과 피부 사이를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덩굴들에, 이미 반쯤 선 좆이며 연한 회음부, 구멍이 전부 우둘투둘한 돌기들에 꾹 압박당하듯 눌리는 감각에 미칠 것 같았다. 덩굴이 닿지 않은 아랫배부터 가슴까지를 저릿한 쾌감이 타고 올랐다. 가슴이라도 세게 쥐어짜면 조금 나을 것 같은데, 손이 묶여 전혀 손을 가져다 댈 수 없으니 더 애가 탔다.
결국, 뭔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팽팽하게 당겨졌던 얇은 섬유가 공중에서 산산이 찢어져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흐으읏…!”
주인의 아래가 공기 중에 온전히 드러나자마자 방금 바지를 터뜨린 덩굴들이 주인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거칠게 좆에 감겨들어 엉덩이 사이를 벌리는 덩굴에 주인이 신음을 내뱉었다. 좆과 엉덩이 골 사이에 들어가지 못한 덩굴들은 주인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들어, 먼젓번의 덩굴들이 움직이기 수월하도록 주인의 허벅지를 벌렸다.
비엔나에게 서운한 것과 별개로, 몸은 비엔나가 주는 익숙한 쾌감에 반응하고 있었다. 조금 전 이파리에 맞았던 주인의 젖꼭지가 차가운 공기 아래에서 더 단단하게 솟아오르고, 발목이 묶여 있음에도 허벅지 사이를 파고드는 덩굴들 때문에 마름모꼴로 벌어진 주인의 허벅지와 종아리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흐아… 으응, 응…! 흐으앙…!”
결국 주인은, 회음부와 구멍 주변의 연한 살을 문대며 좆과 불알을 전부 감고 흔들어 대는 덩굴에 울컥울컥 정액을 뿜어내고 말았다. 주인의 구멍 주변을 문대던 덩굴들이 움찔대며 정액을 뿜어내는 새빨간 좆 대가리 근처에 모여들어 주인의 정액을 받았다. 그리고 그대로 그 정액들을 주인의 구멍과 회음부 주변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으으… 흐…”
완전히 힘이 빠진 주인이 흐물흐물 덩굴에 매달린 그대로 늘어지자, 발목을 한데 모아서 묶고 있던 덩굴들이 꾸물꾸물 풀리기 시작했다.
주인은 이제 풀려나는 것인가 싶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으헉!”
하지만 아니었다. 잠시 주인의 발목을 풀었던 덩굴들은, 주인의 양쪽 발목에 다시 감겨들더니 주인의 다리를 한 짝씩 들어 주인의 다리를 엠 자 모양으로 허공에 벌려 놓았다. 갑자기 하체가 공중으로 붕 띄워진 주인이 외마디 비명을 내뱉었다.
“흐으…! 이거 싫어…!”
그래도 조금 전까지는 덩굴에 팔을 위로하고 묶여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머리를 위로 한 정자세나 다름없는 자세였는데 발가벗겨진 채 허벅지를 활짝 벌린 상태로 공중에 매달리게 되자 주인이 수치심으로 몸부림쳤다.
잠시 망설이는 듯, 주인의 통통한 회음부와 붉은빛을 띠는 구멍 앞에서 팔랑이던 별 모양의 잎사귀가 주인의 다리 사이를 아까 주인의 통통한 젖꼭지에 그랬듯 찰싹 내려쳤다. 통통한 회음부와, 부푼 좆, 주름진 작은 구멍이 작은 별 모양의 잎사귀가 한 번 찰싹일 때마다 움찔움찔 떨렸다.
“하앙! 흐앙, 흑… 아아앙!”
다리 사이의 부드럽고 민감한 부위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쾌감에, 주인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높은 신음만 내뱉었다.
회음부가 찰싹찰싹 별 모양의 잎에 맞을 때마다 조금씩 부어오르듯 진한 색으로 달아올랐다. 또 다른 잎사귀에 찰싹찰싹 내리쳐진 주인의 꺼떡이는 좆은 이미 주인의 납작한 배 위로 정액을 잔뜩 토해 내고 있었다.
“흐아으… 학…”
공중에 매달린 채로 느끼는 것은 훨씬 힘들었다. 평소에 사용한 적 없는 근육이 잔뜩 긴장했다 풀어지자, 사정 후의 나른함과 겹쳐 주인의 몸이 공중에 늘어졌다. 접혀 있는 하얗고 두꺼운 몸이 정액이 튄 채로 힘없이 헐떡였다. 주인이 완전히 힘이 풀려 늘어지자, 아까 주인의 정액으로 완전히 적셔진 덩굴 하나가 주인의 구멍 입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읏…!”
정액으로 푹 젖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작은 데다 최근 만진 적이 없어 뻑뻑한 구멍에 적갈색의 질긴 덩굴이 꾸물대자 주인이 숨을 들이켰다.
주인의 표정에 고통이 어리자, 다른 덩굴 하나가 다급하게 주인의 하얀 뺨을 톡톡 두드렸다. 하얀 뺨과 붉게 부은 입술 근처를 더듬는 굵은 적갈색의 덩굴은, 빨판이 표면을 촘촘하게 덮고 있던 강아지 때의 비엔나의 좆을 연상시켰다.
“으으… 읏, 비엔나, 뭐… 히이익!”
헐떡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주인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다급하게 숨을 삼켰다. 코앞에 입에 들어갈지 의심스러운 두께의, 심지어 별 모양의 이파리 하나 달리지 않은, 적갈색의 돌기로 덮인 매끈하고 굵은 덩굴이 흔들리고 있었다.
“히이… 읍, 으읍… 츄읍…”
가까이서 본 선명한 돌기의 생김새에 경악해 입을 벌린 틈으로, 두꺼운 덩굴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주인의 붉게 부은 입술이 벌어지고, 한껏 벌어진 입에서 나온 침이 턱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수… 숨 막혀!’
“우움… 우븝…”
주인은 숨이 막힌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 안을 한껏 벌리고 들어온 우툴두툴한 덩굴은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가슴 위로도 타고 올라간 덩굴들이 주인의 땀으로 젖은 가슴 위에서 볼록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젖꼭지 위를 문대기 시작했다.
둥근 엉덩이가 두꺼운 적갈색 덩굴을 박은 채로 허공에서 들썩였다. 주인의 하얀 엉덩이가 들썩일 때마다, 그새 또 부피를 키운 붉은색으로 달아오른 좆이 함께 적나라하게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 꺼떡거렸다.
이미 두 번의 사정을 하고도 또 좆을 세운 주인의 붉게 물든 눈가가 일그러졌다. 너무, 너무 힘들었다.
“우움…”
입 안에 들어온 덩굴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점차 침으로 젖어 들었다. 볼 안쪽의 연한 살과, 예민한 입천장, 미끈거리는 혀에 우둘투둘한 돌기가 돌아가며 비벼졌다. 부드러운 혀와 입천장을 제법 단단한 돌기에 꾹꾹 눌리며 자극당해 몽롱하게 풀린 주인의 눈가가 온통 붉었다.
일그러져 있던 주인의 눈가가 몽롱해진 눈과 함께 스르르 풀리자 침으로 범벅되어 번들거리는 입술에서 적갈색 덩굴이 주르륵 빠져나왔다. 이파리 하나 달리지 않은 매끈한 덩굴은 표면을 촘촘하게 덮은 우둘투둘한 빨판의 사이사이까지 전부 주인의 침으로 질척하게 젖어 들어 있었다.
“으우… 흐…”
힘이 빠진 주인이 가쁜 숨을 내쉬며 늘어지다시피 비엔나의 덩굴에 그대로 몸을 맡기자, 주인의 구멍 안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던 정액으로 푹 젖은 질긴 덩굴이 꼬물꼬물 빠져나왔다. 붉게 부어 빠끔거리는 구멍에서, 질긴 덩굴에 묻어 있던 주인의 정액이 주르륵 입구의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탁한 액체로 젖어 빠끔대는 구멍 위로, 이번엔 두툼한 빨판 사이사이까지 침으로 충분히 적셔진 좆과 유사한 모양새의 덩굴이 비벼지기 시작했다. 붉게 부어 빠끔거리는 주인의 구멍 입구에서, 주인의 정액과 침이 한데 뒤섞여 쿨척이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구멍의 크기를 가늠하듯 붉게 부푼 주름들 사이를 진득하게 문대던 유독 굵고 두툼한 덩굴이 역시 두툼한 끄트머리를 주인의 빠끔대는 구멍에 들이밀었다.
“아으… 아앗…!”
끝부분을 들이밀고 간을 보는가 싶더니, 한 번에 푹 쑤셔 박힌 덩굴에 주인이 미미하게 허리를 튕겨 올렸다. 너무나 지친 주인에게는 몸부림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액으로 더러워진 주인의 납작한 배가 느린 속도로 오르락내리락했다.
늘어져 있는 주인의 엉덩이 사이로 깊게 쑤셔 박혀 있던 적갈색의 덩굴은 끄트머리만 남기고 주르륵 빠져나왔다가, 다시 오돌토돌한 돌기로 덮인 굵은 몸체를 주인의 안으로 쿵쿵 박아 넣었다.
“아으… 흐…”
늘어진 주인의 몸이 허공에서 힘없이 흔들렸다. 힘없이 늘어져 흔들리는 주인의 몸 위에서 커다란 가슴이 출렁 흔들렸다. 덩굴의 움직임을 따라 불안하게 흔들리는 주인의 허리와 엉덩이 주변에서 팔랑이던 덩굴 중 몇 개가 모여들어 주인의 허리와 엉덩이 아래를 받쳤다.
덩굴들의 움직임은, 일견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힘든 주인의 눈에 안절부절못하며 자신의 주위에서 움직이는 덩굴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쾌감에 절여져 제대로 된 사고를 힘든 주인으로서는 이제는 거의 성고문이나 다름없는 현재의 상황이 그냥 버거웠다. 자신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비엔나가 이렇게까지 하는지 주인으로서는 그저 서러웠다.
‘너무해. 너무해, 비엔나.’
그리고 주인의 마음에서 비엔나를 향한 원망과 서러움이 넘쳐흐른 순간, 주인의 입에 들어가 있던 비엔나의 덩굴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주인의 입에서 스르륵 빠져나왔다.
“하악… 학… 허억… 흑… 흐어엉….”
헐떡이며 다급하게 산소를 들이켜던 주인이, 울기 시작했다.
“내가…흐윽…뭘, 뭘 그렇게 잘못… 흐어어어…”
주인의 다리 사이와 가슴 위를 넘나들던 덩굴들도, 주인이 울기 시작하자 움찔 움직임을 멈추고 스르륵 주인의 몸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 주인의 손목과 발목을 고정하고 있던 덩굴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흐엉… 이럴 거면, 왜 그렇게… 흑, 날… 졸졸 쫒아다니고…흐어어….”
하지만 주인은 비엔나가 덩굴을 거두어 가든 말든, 도저히 이 상황이 서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흐윽… 그렇게 좋아 죽겠다는 눈으로 보면서 따라다니더니… 허어어엉… 그냥 내 몸에만 관심 있는 거지… 어어엉, 큽, 흐으…”
안절부절못하던 비엔나의 덩굴이 멈칫, 움직임을 멈췄다. 주인의 뺨을 타고 쉼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앞에서 별 모양의 잎이 초조하게 팔락였다.
“왜, 왜 내가 말 걸어도 대답을 안 해…. 흑, 흐으윽…. 어어엉… 이럴 기운은 있으면서, 이파리 한 장 안 흔들어 주고…”
주인의 울음은 이제는 거의 꺽꺽거리는 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 너 때문에, 어차피 다른 남자는 만나지도 못 한다고…”
그래, 자신은 비엔나 때문에 젖꼭지도 이만큼이나 커지고, 웬만한 자극으로는 만족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 놓고, 식물이 된 데다 식물이 된 이후에는 완전히 찬밥 취급이라니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자신에게는 남은 것이 비엔나뿐인데, 비엔나한테는 자신이 유일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주인이 처음 만난, 까만 깨를 닮은 눈을 반짝이던 작은 문어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완전히 자라 버린 지금은 비엔나가 언제든 자신을 두고 가 버릴 것 같았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모습과 크기가 계속 바뀌는 비엔나가 언제든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서 자신의 옆을 떠나 버리면 어떡하지? 이번에 식물이 된 다음에는, 까만 눈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아서 강아지로 변했을 적보다 비엔나의 모습을 알아보는 것이 배는 더 힘들었었다.
이번에는 빨판 모양의 돌기라도 남아 있었지만 다음 변신 때는 이제 자신이 알던 모습 같은 것은 하나도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비엔나가 자신을 모른 척하면 끝이지 않을까? 자신이 애타게 불렀는데도, 비엔나가 이파리 한 장 흔들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떠오른 주인이 퉁퉁 부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혹시, 이제는 내가 싫어졌어? 내가… 내가, 네 구애를 모른 척해서… 그래서 그런 거야?”
주인은 목 끝까지 치민 울음을 꾹 눌러 참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주인에게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은 비엔나의 나이도 몰랐고 종족도 몰랐으며 말도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비엔나의 구애가 단순히 발정기의 본능에 따른 것일 뿐이라면?
주인은 비엔나에게마저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불확실한 감정에 기대느니 그냥 보호자로서 남는 것이 배는 나았다. 그렇다면 비엔나에게는 자신이 필요할 테니까. 자신에게 비엔나가 필요하듯.
하지만 주인은 정작 비엔나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다. 비엔나는 어차피 대답하지 못할 테니까- 라고 합리화하며, 비엔나의 행동을 그냥 모른 척했다. 그래서, 비엔나가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흐윽… 내가 잘못했어, 비엔나. 네가,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단 말이야. 난, 난 네가 없으면 안 돼.”
주인이 울먹였다. 지금 공중에 수치스러운 꼴로 매달려 있는 이 상황도 여전히 서러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간 함께한 정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비엔나도 원망스러웠다.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정말이야, 비엔나… 그리고, 너는, 너는 나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아무리 이제는 나한테 질렸어도, 전에… 전에 약속했잖아.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고 했을 때, 대답했었잖아. 나한테 반응하고, 내가 좋다고 따라다녔었잖아…! 꼬리를 흔들어 줬잖아… 제발, 제발 나한테 대답해 달란 말이야…”
주인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고, 이 상황이 창피하고, 그런데도 여전히 대답이 없는 비엔나를 향한 서러움과 원망은 자꾸만 크기를 키웠다.
‘날… 좋아해?’
그 순간, 주인은 머릿속으로 어떤 목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서 불안, 초조, 긴장은 물론 말 한 마디를 하면서도 이렇게 불안해할 만큼의 애정이 느껴졌다.
지금 주인의 심정과 꼭 같았다.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인은 자기도 모르게, 비엔나에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입에서 뱉었다.
“응, 응. 비엔나, 너랑 평생 함께하고 싶어. 그게 어떤 형태라도 좋아.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 네가 죽을 때까지 내 옆을 떠나지 말아 줘…”
‘응, 주인. 죽어서도, 주인 곁을 떠나지 않을게.’
그리고 주인은 다시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꼈다. 꼭, 비엔나에게 대답을 들은 기분이 된 주인은 서러웠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 목소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비엔나가 반응이 없었던 것이 너무 서운한 나머지 비엔나의 대답을 환청으로 들은 걸지도 몰랐다.
“악!”
주인은, 갑자기 팔과 다리를 묶고 있던 덩굴이 전부 사라지는 바람에 바닥으로 엉덩이부터 떨어졌다. 그리 높은 높이는 아니었으나 제법 긴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묶여 있었던 데다가, 지나친 쾌감으로 몸에 힘이 풀려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
살짝 화끈거리는 엉덩이를 느끼며 고개를 든 주인은, 눈을 덮치는 환한 빛에 힘겹게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주인은 분명 방금까지 자신의 팔과 다리를 묶고 있던 비엔나가 갑자기 사라진 것에, 비엔나를 찾기 위해 눈을 떠 보려고 노력했지만 빛이 너무 밝아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렇게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중 조금씩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빛이 사그라드는 것에 팔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그리고 주인은, 왠지 익숙한 까만 눈동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몇 차례 얼떨떨하게 깜박이던 주인의 눈이, 이내 커다랗게 떠졌다.
“안녕,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