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고등학생이 학교 옥상에서 투신했어요.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었어요.
발견 당시에 걔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대요. 퉁퉁 붓고, 피부도 다 까맣게 변해서. 온몸이 피멍이랑 화상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나 봐요.
나도 아는 애였어요. 엄청 착한 애였어요. 어디 가서 싫은 소리 한번 안 듣던 애였는데….
부검 마치고, 그 애 엄마가 울면서 전활 했더라고요. 그 애 몸속에서 사정한 지 하루도 안 된 정액이 발견됐다는 거예요. 충격이었지만, 범인은 쉽게 잡겠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그 애 억울한 마음은 풀어 줄 수 있겠다고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그 정액이 사람 몸에서 나온 게 아니라잖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어요? 짐승이요. 털이 수두룩한 네발짐승. 거기서 나온 정액이라는 거예요.
눈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어요. 뇌가 부글부글 끓다 못해 녹는 느낌이더라고요. 이성이 다 날아가서, 뭐든 때려 부숴야 직성이 풀릴 듯했어요.
내가 아는 한, 그런 짓을 할 놈은 딱 하나뿐이었어요. 그놈이 아니고선, 누구도 그 애한테 그렇게 잔인할 순 없었을 거예요.
집으로 달려갔어요. 기필코 죽여 버릴 거라고 다짐하면서.
그놈은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나한테 기다렸다는 말이나 태연하게 지껄이면서.
그놈이요? 놈하곤 쭉 한집에서 살았어요. 내가 8살인가, 9살 때부터요. 어머니가 같거든요. 그전까진 할아버지랑 둘이 살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온 거죠.
어머니 집은 정말 작더라고요. 한 건물에 문이 대여섯 개나 있었는데, 어머닌 그게 다 우리 집인 건 아니니까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중 두 번째 문이 우리 집이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부엌이 나오고, 그 옆에 작은 단칸방 하나가 딸려 있었죠.
그때 처음 만난 거예요, 그 자식하고. 온갖 살림살이로 어지럽혀진 방에서 낡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더라고요. 어머닌 그 자식도 나랑 마찬가지로 어머니 아들이라고 했어요. 나이는 내가 더 많았고.
처음 만났을 땐 반가웠어요. 같이 놀 또래가 생겼으니까, 전처럼 심심할 일은 없을 줄 알았거든요. 착각이었죠. 인사를 건네자마자 대뜸 베개가 날아오더라고요. 코피가 났어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놈은 작정하고 날 괴롭혔어요. 지나다닐 때마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건 예삿일이었죠. 내 입을 억지로 벌려서 바퀴벌레를 집어넣고 못 뱉게 한 적도 있어요. 그 후에 당한 일들이랑 비교하면 그것도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지만요.
서먹해서 괜히 짓궂게 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친구들하고 친해질 때도 시간이 걸렸으니까, 놈이랑도 언젠간 괜찮아질 줄 알았죠.
철없는 낙관이었더라고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다닐 때도,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도 놈은 날 가만히 두질 않았거든요.
이유요? 당연히 물어봤죠. 즉답하던데요? ‘그냥’이래요. 그냥. 그냥 내가 거슬리고, 그냥 내가 재수 없고, 그래서 그냥… 확 죽여 버리고 싶대요. 그게 열 살짜리 입에서 나온 말이에요. 정상이 아니었던 거죠, 애초에.
어린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생이 돼서도 변함없던 그 새끼가… 나만 보면 어떻게 못 해서 안달 난 그놈이 내 여자 친구라고 곱게 봐줄 리 없었는데. 내가 그걸 간과했어요. 결국, 다 내 잘못이에요.
눈앞이 하얘져서, 내 숨소리밖엔 안 들렸어요. 놈은 그런 나를 보면서 실실거렸어요.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선 그 애 자살 소식이 보도되고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사과나 잘라 먹더라고요. 그러면서 물었죠.
밤낮없이 쌌는데, 혹시 임신은 안 했더냐고. 저희끼리 내기를 했대요. 그러니까 알려 달래요. 그 애 배 속에 있는 게 사람 새끼인지, 짐승 새끼인지.
엄청난 소리가 났어요. 놈 턱이 나간 건지, 휘두른 내 주먹이 나간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소파가 뒤집히고 전화며, 그릇이며, 화분 같은 게 모조리 떨어져 박살 났어요. 놈과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뒤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죠. 잠깐 정신이 몽롱해졌는데, 놈이 달려들어선 목을 조르더라고요. 그때도 놈은 웃고 있었어요.
그대론 죽을 것 같았어요. 놈이 기어코 나를 죽일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죽을 순 없었어요. 난 정말… 그렇게는 죽기 싫었어요.
놈한테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어요. 마침 바닥에 떨어진 과도가 보이더라고요. 죽기 살기로 손을 뻗어서 칼을 손에 쥐었어요. 그러곤 악에 받쳐서 놈의 허벅지를 찔렀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던데요?
놈은 죽겠다고 악다구니를 써 댔어요. 고작 그 정도 상처로 죽겠다고요.
“…결국, 그래서군요? 자기 제어가 안 돼서. 오랫동안 피해망상에 시달리다 보니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거예요, 눈앞의 악마를. 그렇죠?”
의사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자를 대하는 눈빛도, 어조도 상냥했다. 하지만 그 어떤 폭력이나 비난도 그보다 무정하진 않을 듯했다.
지난 사정을 털어놓던 남자가 멍하니 그를 봤다. 앳된 얼굴이었다. 아직 혈흔이 선명한 손에 꾹 힘이 들어갔다.
“정당방위라고 주장할 마음은 없어요. 근데 피해망상인 것도 아니에요. 진짜, 전부 다 있었던 일이라고요. 선생님도 뉴스에서 보셨을 거 아니에요.”
“네, 뭐… 자세한 건 수사해 보면 나온다고 하니까요.”
의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절박하게 호소하던 남자의 몸에서 탁 힘이 빠졌다. 진실을 알아 달라 호소하던 두 눈도 텅 비었다.
벗어날 수 없다. 막막한 절망감이 남자를 덮쳤다. 질끈 입술을 물었다. 절레절레 고개도 젓는다. 남의 피로 물든 손톱이 애꿎은 손등 깊숙이 파묻혀 들어갔다.
“…아니야.”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합니다만….”
“아니, 난 안 미쳤어요! 여기 있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개새끼라고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분기 가득한 두 주먹으로 책상도 내리쳤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얼굴은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사뭇 험악해진 분위기에도 의사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호출 벨을 누를 뿐이었다. 곧장 가드들이 들어와 남자를 제압했다. 단숨에 시멘트 바닥으로 얼굴이 처박혔다.
“놔! 이거 놓으라고!”
의사는 몸을 일으켜, 씩씩거리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실린더 가득 정체 모를 약물이 채워졌다. 남자가 몸을 뒤치며 저항했지만, 별반 소용은 없었다.
“곧 편안해질 겁니다.”
스산한 한마디와 함께 차가운 약물이 스며들었다. 머지않아 사지가 축 늘어졌다. 포박된 남자의 눈꺼풀이 부들부들 떨리다 맥없이 감겼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메마른 시멘트 바닥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