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Escape The Dark (2/16)

“장 선생, 또 당직이야?”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더니, 동료 의사 김제국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장진우는 대답 대신 옅게 웃었다. 김제국에게서 절로 탄식이 터졌다.

“허구한 날 불철주야라니, 누가 알아준다고 그래? 이사장님한테 시위하는 거야?”

“어차피 누구든 당직은 해야 하니까요. 할 거면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게 낫죠.”

“아니, 대체 이 일이 왜 좋아? 말도 안 통하는 환자들 상대하는 게 뭐 그렇게 좋으냐고.”

김제국이 영 불가해한 표정을 짓는다. 장진우는 이번에도 소리 없이 웃고 말았다.

기실 장진우가 그렇게까지 병원 일에 몰두할 필요는 없었다. 그곳은 지방 소도시 외곽에 자리한 의원급 정신 병원에 불과했다. 전문의라곤 은퇴하다시피 한 병원장을 비롯해 김제국과 장진우, 세 사람밖에 없었다. 거기에 남자 간호조무사가 넷. 경비 겸 가드들을 모두 포함해도 인력은 채 스무 명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일반 진료는 보지 않고, 중증 환자 위주의 폐쇄 병동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큰 수익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성심껏 돌본다고 환자들이 금방 차도를 보일 리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거의 매일 당직을 자처하는 건, 아무래도 무의미해 보였다. 장진우가 외과 전문의인 데다 병원 이사장의 아들이란 점에서 더더욱.

장진우는 의약품 보관함에서 주사액 몇 개를 꺼내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또 회진하러 갈 모양이었다. 김제국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 먼저 간다. 장 선생도 혼자 너무 애쓰지 말고.”

“네, 들어가세요.”

손을 흔드는 김제국에게 깍듯이 묵례했다. 곧 문이 닫히고, 김제국의 인기척이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장진우의 얼굴도 싸늘하게 굳었다. 웃을 때면 부드럽게 휘어지던 눈매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안경에 가려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안경을 벗으며 눈가를 지압했다.

“남 일에 오지랖은… 누가 보면 지가 주인인 줄 알겠네.”

비릿하게 중얼거리며 차트를 집어 든다. 일간지도 하나 챙겼다.

바로 진료실을 나선 장진우는 긴 복도를 따라 폐쇄 병동으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주머니 속 주사액이 서로 부딪쳐, 찰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간호조무사가 꾸벅 인사했다. 장진우는 그에게도 예의 그 친절한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 곁을 지나치자마자 다시 낯을 굳혔다.

금세 병동으로 이어지는 자동문이 나타났다. 출입 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섰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탓에, 만성적으로 고인 공기가 자못 텁텁했다. 햇볕도 거의 들지 않아 곰팡내가 가득했다. 숨쉬기 버거울 정도로 호흡기와 폐부가 갑갑해졌다.

천장과 벽이 온통 새하얬다. 그 벽에 10㎝ 폭의 좁은 창문들만 띄엄띄엄 붙어 있었다. 복도를 따라 늘어선 병실들은 하나같이 밖에서 잠겼고, 층마다 가드들이 상시 대기 중이었다.

물론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딱히 없다. 간헐적으로 발작하는 환자를 제압하는 것 정도. 요즘은 그런 돌발 상황도 전무해, 한직도 그런 한직이 없었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가드의 발끝을 가볍게 툭 쳤다. 그러자 가드가 화들짝 깨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내 제 앞에 선 장진우를 발견하곤 허둥지둥 인사를 건넸다.

“…어이쿠! 선생님 오셨어요?”

장진우는 어김없이 온화한 낯빛을 했다.

“오늘도 고생 많으시네요.”

“고생은요, 무슨.”

“꽤 피곤해 보이시는데, 숙직실에서 편히 쉬시죠.”

“아닙니다. 그래도 엄연히 근무 시간인데….”

“괜찮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려고요.”

확실히, 장진우에게 반기를 들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당직 회진 때마다 늘 주위를 물리곤 했다. 담당 가드들이 지금처럼 염치없는 척하는 것도 매번 반복되는 일이었다.

가드는 오래 사양하지 않고 그럼, 하며 꾸벅했다. 점점 멀어지는 그에게서 옅은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을 무감하게 지켜보다가 411호실 안으로 들어섰다.

“박주완 씨, 오늘은….”

으레 안부를 묻다가 멈칫한다. 얌전히 침상에 머물러야 할 환자가 맞은편 벽에 뭔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진우는 단숨에 그 방의 주인, 주완에게 다가가 손을 홱 낚아챘다. 주완의 눈동자가 느리게 그를 담아냈다. 붙들린 손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처참히 물어뜯긴 손끝은 너덜너덜했다.

장진우가 드물게 언성을 높였다.

“지금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쓰고 있었어요. 내 이름이요.”

주완의 얼굴에는 표정이랄 게 없었다. 텅 빈 두 눈에도 생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에게서 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과연 그곳에 ‘박주완’이란 이름이 한가득 적혀 있었다. 새하얀 벽에 피로 휘갈겨 쓴 글씨가 섬뜩하기까지 했다.

몇 번이고 물어뜯었을 손가락에선 아직도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지혈하기 위해 상처 부위를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도 통증조차 못 느끼는지, 덤덤히 말을 잇는다.

“…잊어버릴까 봐.”

주완이 눈을 들어 장진우를 빤히 봤다. 그의 공허한 눈빛에선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차라리 원망이라도 하면.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었다.

주완의 발목을 확 잡아당겼다. 마른 몸이 맥없이 미끄러지면서 벽에 머리를 찧었다. 신음이 터질 만도 하건만, 주완은 눈살만 찌푸릴 따름이었다.

막무가내로 그의 바지를 벗겼다. 헐거운 바지와 속옷이 거스를 것 없이 발목을 통과했다. 핏기라곤 없는 허벅지를 움켜쥐고 벌리며, 성급하게 지퍼를 내렸다. 그러자 이미 곧추선 성기가 튕겨 나와, 주완의 볼기를 때렸다.

숨결이 급격히 거칠어졌다. 손에 침을 발라 마른 엉덩이 골에 대충 펴 발랐다. 그러곤 주완의 다리 한쪽을 제 무릎으로 크게 젖혀 올렸다. 자연스레 허리가 들리고, 구멍이 만져지는 상황에도 주완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두 눈도 멀거니 허공을 향했다.

그새 젖어 든 성기를 구멍에 잘 조준했다. 이어서 까마득한 날숨을 뱉으며 주완의 몸을 열고 들어갔다.

“…윽!”

성기는 온전히 삽입되지 않았다. 반쯤 물린 부위가 금방이라도 끊겨 나갈 듯했다. 질끈 감긴 두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숨도 자꾸 말려 들어가고, 양쪽 어금니마저 꽉 물렸다.

“…흐으.”

장진우는 힘겹게 끙끙대다가 밑을 팍팍 쳐올렸다. 늘 준비 없이 벌어져, 만성적으로 들러붙었던 피딱지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 덕에 갑갑하게 걸려 있던 성기도 일거에 뿌리 끝까지 쑤셔 박혔다.

“하아, 하….”

장진우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씰룩였다. 성기를 살살 빼냈다가 재차 한 번에 들쑤신다. 입구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프리컴과 뒤섞여 은근한 윤활제 역할을 했다. 서로 다른 살덩이가 뒤섞일 때마다 적, 적, 젖은 마찰음이 났다. 성기도 점점 붉게 물들어 묘한 단상을 불러일으켰다.

주완은 제 위에서 헐떡거리는 장진우를 고요하게 바라봤다. 희열도, 고통도 모르는 사람인 양, 그저 그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처럼.

밑을 치댈 때마다 목에 걸린 청진기가 달랑달랑 흔들렸다. 못내 성가신 손길로 청진기를 잡아 뜯었다. 그러곤 무릎을 세워, 주완을 좀 더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주완은 장진우와 차가운 벽 사이에 완전히 고정됐다. 그 직후, 안을 드나드는 속도와 강도가 더 빠르고, 맹렬해졌다.

그 과정에서 주머니 속 주사액이 깨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열락에 취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텅 빈 병실엔 거푸 그의 신음만 왕왕 울렸다.

공중을 헤매던 주완의 눈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진우가 들고 온 일간지가 보였다. 손을 뻗어 가까스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장진우에게 꿰어져 시야가 마구 흔들렸지만, 꾸역꾸역 인쇄된 날짜를 확인했다.

10년. 사방이 꽉 막힌, 새하얀 골방에 틀어박힌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반드시 이곳을 빠져나가겠다던 소망도 그만큼이나 케케묵었다.

“…하아아윽!”

폭주하던 장진우가 돌연 비명 같은 신음을 터트리며 자지러졌다. 연이어 그의 몸이 쭈뼛 굳으면서 미지근한 정액을 뿜어냈다. 장진우는 가늘게 전율하며 남은 욕망을 모두 털어 내려는 듯 몸을 비틀었다. 그 몸짓에선 다소 짜증마저 묻어났다.

볼일을 마친 장진우는 도로 차분해졌다. 바지의 지퍼를 올리고, 흐트러진 가운을 정리하는 손길에 거침이 없다.

주완을 일으켜 침상에 눕혔다. 그의 속옷과 바지도 다시 입히고, 그 위로 얇은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러곤 바닥에 떨어진 차트도 주워 들었다.

그로써 411호실은 처음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갔다. 더러 공기가 데워지고, 비릿한 냄새가 감돌았지만, 그런 것쯤은 상관없었다. 누구도 병실 안 사정엔 관심을 두지 않을 테니까.

그곳의 환자들은 병실이란 이름의 감옥에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버려진 물건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

체중을 쟀다. 그새 1.4kg이 줄었다. 채혈도 했다. 주사기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와도, 몇 번인가 애먼 곳을 찔러도 주완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안정제 효과였다. 엑스레이를 찍는 건 삼키면 안 될 것을 삼켰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신체검사가 진행됐다. 과정은 지극히 단조로웠다. 간단한 측정과 검사가 끝나면 담당의와의 면담이 이뤄졌다. 오늘도 별다른 건 없었다.

검사실에서 나와, 지정된 진료실로 이동했다. 그곳까지 동행한 간호조무사가 친히 문을 노크하고 열어 주기까지 한다. 그러도록 주완에게 말을 걸지도, 그와 눈을 맞추지도 않았다.

통화 중이던 김제국이 들어오란 말 대신 손을 까딱였다.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가,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아, 네. 네,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하하하.”

통화 상대를 앞에 둔 것처럼 연방 고개를 조아린다. 모처럼 낯빛이 환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이죠. 당장 오늘도 가능합니다. 네.”

김제국은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통화를 마쳤다. 하지만 맞은편의 주완과 눈이 마주쳤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뚱한 얼굴로 돌아왔다. 진료 기록을 확인하는 손길에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주완의 외상 이력을 훑다가 대놓고 한숨을 뱉는다.

“어젯밤에 또 말썽 피웠다면서요?”

“…….”

“어차피 있을 거, 좀 죽은 듯이 지내면 탈 납니까? 그러면 박주완 씨도 편할 거고, 우리도 번거로울 일 없고. 반항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어떻게 봐도 환자를 면담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꼭 진료실이 아닌 교무실에 끌려온 듯했다. 주완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대놓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더는 대화도 시도하지 않았다. 좁은 진료실엔 한동안 키보드 소리만 울려 퍼졌다. 오늘의 상담 기록도 적당히 꾸며 쓸 모양이었다.

주완은 김제국 뒤쪽에 놓인 골프 가방을 주시했다. 지난번에는 없던 물건이었다. 탁상 달력도 내려다봤다. 몇몇 날짜에 특정한 표시가 돼 있었다. 김제국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손목시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모르긴 몰라도 꽤 고가일 듯했다.

“그저께 310호 할머니가 그러던데… 308호 환자분이 안 보인다고.”

불현듯 운을 떼자, 김제국의 손이 우뚝 멎는다. 두 눈은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해 둔 채였다.

이내 그는 작은 한숨으로 정적을 깼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주완을 마주했다. 얼굴에는 애매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 노인네는 항상 누가 자길 잡아간다고 떠들어 대는 피해망상 환자잖아요. 정말 단단히 미쳤지. 그 써먹을 데라곤 없는 늙은 몸뚱이를 누가 좋아서 거둬 간다는 건지. 설마 그 망령된 소리를 곧이 믿는 건 아니죠?”

어이없다는 투로 되묻는다.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주완을 담아내는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제 신문을 읽었는데, 요즘 불법 장기 매매가 기승이라고 해서요.”

“그게 우리 병원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쓸데없는 망상 그만하고, 진료 끝났으니까 나가 보세요.”

김제국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손을 털었다. 필요 이상의 과민 반응이었다. 여느 때라면 조용히 지시에 따랐을 주완이, 이번만큼은 꼼짝하지 않았다.

“뭐 해요, 안 나가고? 나가라니까?”

“412호실 환자분이요. 해만 지면 살려 달라고, 누가 죽이러 온다고 계속 소리 지르고 그러셨는데… 요샌 좀 조용해서요. 어디가 많이 아프신 건 아닌지….”

“박주완 씨가 관여할 일이 아닐 텐데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원.”

“…살아 계시긴 한 건가요, 그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멱살을 잡혔다. 김제국은 제 코앞까지 끌려온 주완을 매섭게 쏘아봤다.

“미친 새끼… 뭘 안다고 떠들어? 너 같은 새끼가 그런 말 지껄인다고 누가 들어 주기나 할 것 같아? 죽은 듯이 조용히 좀 살아. 내장 따로, 살덩이 따로 분리당하고 싶지 않으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주완이 무슨 말을 해도 콧방귀만 뀌던 그가, 주완과 같은 정신병자 얘긴 아무도 들어 주지 않을 거라던 그가, 다시 입을 뻥긋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는 게.

곧장 진료실에서 쫓겨나 복도로 내쳐졌다. 평소라면 그 길로 411호실에 처넣어졌을 터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간호조무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언뜻언뜻 그들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한 환자가 휴게실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경황없는 얼굴로, 연신 손에 쥔 주사기를 휘두른다. 보이지 않던 간호조무사와 가드들은 그를 에워싸고 진정시키려 들었다. 다른 환자들은 멀뚱히 그 광경을 관망했다.

“205호 환자예요. 몇 주 전부터 안 보이더니, 어제 돌아왔나 봐요. 수술 자국이 있더라고요. 신장을… 떼인 것 같아요.”

느닷없이 가까워진 음성에 움찔했다. 고개를 돌리자, 한 중년 여자가 옆에 서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채였다.

한눈에 그녀가 주완 자신과 비슷한 처지란 걸 알 수 있었다. 눈빛이 체념에 물들었을망정 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끝내 제압되는 205호 환자를 보며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인간 푸줏간이 따로 없죠? 정말.”

***

백도운은 잠에서 덜 깬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시계는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은 아직 어두컴컴했고, 잠든 진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까마득한 한숨이 터졌다. 마지못해 한두 번 응해 줬더니, 이젠 아예 맡겨 놓은 것처럼 군다.

애먼 시계만 노려보다가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항상 제 사명감이 문제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의료 가방을 챙긴다. 따로 보관 중이던 혈액 백도 모조리 쓸어 넣었다. 외투는 걸치지도 못하고, 씩씩거리며 집을 나섰다.

집 밖엔 검은 세단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백도운이 나타나자,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사뭇 위압적인 덩치였다. 가까이 다가선 것만으로도 전신이 그의 그림자에 다 뒤덮일 정도였다. 그런데도 남자는 백도운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친히 뒷좌석 문까지 열어 주었다.

백도운은 잠자코 뒷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금방 운전석으로 복귀한 남자가 출발하겠습니다, 했다. 이어 차가 서서히 아파트 입구를 벗어났다. 거기까지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한번 속력을 높인 차는 신호와 차선을 무시하고 굉음을 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백도운은 익숙하게 안전띠를 채우며 입을 열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죠?”

“대표님께서 좀 다치셨습니다.”

그런 두루뭉술한 대답이라면 조금 전 통화에서도 들었다. 남자는 황색등에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차가 튕겨 나가는 통에 백도운의 몸이 뒤로 확 젖혀졌다. 짙은 탄식이 터졌다.

“하, 누가 그걸 몰라? 오늘은 왜 또 다쳤냐고요.”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네, 그랬겠죠. 문제가 있었겠지. 아무렴 지 혼자 다쳤으려고.”

“…….”

그 주인에 그 개였다. 정말 답답하고 꽉 막혔다. 미리 어쩌다, 얼마나 다쳤는지 얘기해 주면 치료하기도 수월할 텐데, 입을 꼭 다문다. 표정조차 변하질 않았다. 어찌나 한결같은지, 백도운으로서도 일찌감치 대화를 포기해 버렸다.

차는 곡예 운전을 거듭하며 어느 룸살롱 앞에 도착했다. 규정 속도를 지켰다면 족히 40분은 걸렸을 거리를 단 13분 만에 주파한 셈이었다. 신이 굽어살핀 게 아니고서야. 사지 육신이 멀쩡한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백도운은 곧장 룸살롱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초조하게 문가를 힐금거리던 덩치들이 얼른 다가와 꾸벅한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귀청 떨어지겠네. 그 새끼, 어딨어요?”

“이쪽입니다.”

덩치들을 따라 VIP 룸으로 향했다. 닫혀 있는 문을 열려다 지레 주춤했다. 문손잡이가 피범벅인 까닭이었다. 그뿐 아니라, 바닥도 뭔가에 젖어 질척거렸다. 장탄식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짜증 나네, 진짜… 들어간다.”

통보에도 대꾸가 없었다. 옆에 서 있던 덩치에게 문손잡이를 고갯짓했다. 덩치가 눈치껏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문은 반쯤 열리다 말았다. 그 뒤쪽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듯했다.

문틈으로 본 룸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술병이건, 잔이건 멀쩡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음식들도 테이블과 소파,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조명까지 깨졌는지 내부는 완전한 암흑천지였다.

문 앞에 쓰러진 남자의 맥부터 짚어 보곤 그를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본인 주변에 빈사 상태의 장정들이 널렸는데도 태연히 보드카를 들이켠다. 피가 줄줄 흐르는 옆구리의 상처는 지혈할 의지도 없는 모양이었다.

한달음에 그에게 다가가 유리잔을 후려쳤다. 손에서 미끄러진 잔이 소파 위로 굴러떨어졌다.

“권수혁. 넌 정말 미친 새끼야.”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권수혁은 개의치 않고 빙긋거릴 따름이었다. 꼭 약에 취한 사람 같았다. 피를 많이 쏟아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머지않아 그의 고개가 느른하게 뒤로 젖혀졌다. 사지도 확연히 늘어지고 있었다.

그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던 것도 잠시, 서둘러 움직였다. 상처 부위를 단단히 압박해 감아 놓고 준비해 온 수혈용 식염수와 혈액 백을 꺼냈다. 혈액 백에는 ‘RH-AB’라는 혈액형이 표시돼 있었다. 날카로운 바늘이 가차 없이 손등을 파고든다.

일련의 구급 조치가 끝나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완전히 맥이 빠졌다. 지친 백도운과 달리 권수혁은 시종 태평했다.

“담배 있어?”

“죽고 싶냐?”

으르렁거리자, 픽 웃는다. 압박 붕대가 선혈로 흠뻑 젖었는데도 그렇게 여유를 부렸다. 삶에 미련이라곤 없는 듯했다. 지금의 상황이 권수혁에겐 일상이나 마찬가지라 더 그럴 터였다.

말이 좋아 대표지, 그의 일은 조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쉴 틈 없이 이권을 다투고, 때에 따라 서로 해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언제든 달려올 주치의가 없으면 어느 길에서, 어떤 개죽음을 당할지 몰랐다.

더구나 하필이면 혈액형도 국내에선 수급하기 어려운 RH-AB형이었다.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지독히 무모한 삶이었다.

“너 이러다가 진짜 죽어. 알아?”

체념 어린 타박에도 권수혁은 재차 피식했다. 그러곤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푸줏간에 깨끗하고 뒤탈 없는 거로 하나 주문해 놨어. 그러니까 그런 잔소린 이제 안 해도 돼.”

***

철제 침상의 창살 같은 헤드를 쥔 두 손이 하얗게 질렸다. 주완은 그 녹슨 쇠기둥이 무슨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꽉 잡고 놓으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장진우가 허리를 잡아당기면서 허탈하게 미끄러지고 말았다. 장진우는 맥없이 끌려온 주완의 엉덩이를 양쪽으로 크게 벌렸다. 이미 풀어진 구멍은 다량의 정액과 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곳에 다시 뻣뻣해진 성기를 무지근하게 비벼 댄다. 주완이 몸서리치며 고개를 세게 저었다.

“읏… 그만!”

장진우는 소리가 새어 나갈세라, 주완의 머리를 베개 위로 꾹 짓눌렀다. 덜컥 호흡이 막히면서 주완의 얼굴과 목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살기 위해 퍼덕거리는 몸을 더 세게 누르며, 귀두를 쑥 밀어 넣는다. 거짓말처럼 주완의 몸이 움찔하며 굳었다. 삽입한 부위만을 뭉근하게 둥글리다가 불시에 반동을 실어 쿡 찍어 눌렀다. 단숨에 성기가 뿌리 끝까지 처박히면서 주완의 몸이 움찔 튀었다. 동시에 구멍 안에 가득 차 있던 점액이 밖으로 미어져 나왔다.

“하아….”

장진우는 한동안 고개를 젖히고 감미로운 쾌감에 전율했다. 그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씰룩였다. 지독한 통증에 바르작거리는 주완의 머리와 등을 꽉 누르면서 응징하듯 가차 없이 구멍을 쑤석였다. 성기가 귀두만 남겨 둔 채 빨려 나갔다가 단숨에 쑤셔 박히며 배 속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주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빠듯한 숨이라도 쉬어 보려 버둥거릴 뿐이었다.

육욕에 취한 장진우가 제 아랫입술을 진득이 핥았다. 이제 하루라도 거르면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동안 선한 가면 뒤에 억눌러 왔던 본성이 폭발한 듯했다.

아니, 이건 모두 주완 탓이었다. 그렇게 해 댔으니 제법 익숙해졌을 텐데, 자꾸 딱지도 못 뗀 것처럼 구니까. 늘 제게 반감을 품고 원망하듯 보는 그가 제 안의 가학성을 자극했다. 하루하루 손꼽아 장진우 자신만 기다리면서, 의지할 데라곤 저뿐이면서. 어떤 고통에도 무딘 반응을 보이니, 더 흐트러뜨리고 싶었다. 인간이라면 으레 그런 정복욕이 있지 않나? 그렇게, 합리화했다.

좀 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자 눈앞이 노래지면서 여릿한 현기증이 돌았다. 피와 열감이 중심부로 빠르게 솟구쳐, 연신 눈이 질끈질끈 감겼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살덩이가 녹아내릴 듯 저릿저릿했다. 어떻게든 신음을 참아 보려 했지만, 장진우는 차마 제 입에서 터져 나오는 포효를 삼키지 못했다.

“하아, 하아… 젠장… 크으읏!”

제 하반신을 내던지듯 주완에게 붙이고 있는 대로 비비적거린다. 주완의 머리를 누르던 손에도 부쩍 힘이 들어갔다가 서서히 빠졌다. 장진우는 그대로 주완 위로 무너져 참았던 숨을 토했다. 주완은 꿈지럭거리며 엉망으로 유린당한 몸을 웅크릴 따름이었다. 장진우는 만족스러운 듯 픽 웃으며 그의 허벅지를 토닥거렸다.

이내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그러곤 침상에 걸터앉아 주완의 몸에서 정사의 흔적을 샅샅이 닦아 냈다.

구멍 속에 남은 정액을 긁어내려 손가락을 집어넣자, 주완이 담요를 꽉 말아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벽을 삭삭 긁어냈다. 입구의 상처 부위를 한차례 소독도 해 뒀다.

모든 행위를 마친 후에는 속옷과 바지를 도로 입히고, 여느 때처럼 이불을 끌어다 덮어 주었다. 주완을 위해 챙겨 온 일간지도 한쪽에 슬쩍 올려 뒀다.

“선생님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해 봤어요?”

장진우가 막 병실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느닷없이 불거진 주완의 목소리가 발길을 붙잡았다. 장진우는 잠시 문을 보며 멈춰 섰다. 대답은 오래지 않아 흘러나왔다.

“박주완 씨는 안 죽어. 그걸 가장 잘 아는 게 바로 나예요. 벌써 잊었어?”

피식 웃으며 주완을 돌아봤다. 주완은 시체처럼 벽을 보고 누워선 꼼짝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곤 병실을 나갔다. 탁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까지 굳건히 잠겼다.

“…….”

이불을 잡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좁은 병실은 다시금 고요하고 깊은 어둠에 잠식됐다.

***

모처럼 볕이 좋았다. 바람은 얼마나 더 포근할까 아쉬울 만큼.

주완은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닿을 수 없는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그래 봤자 보이는 거라곤 인근의 야산 정도였다.

병원은 철저히 외부와 단절돼 있었다. 근처의 큰길이라곤 고속 도로뿐이었고, 그마저도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멀리 한두 채뿐인 인가의 사람들은 병원 쪽으로 올라올 일이 없었다. 계절의 흐름은 나무의 변화로 겨우 짐작할 따름이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얼마 전 잠시 얘기를 나눴던 중년 여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 그새 얼굴이 안쓰러울 정도로 수척해졌다.

“잠깐 옆에 앉아도 되나?”

대답 대신 한쪽으로 살짝 물러났다. 중년 여자가 고마워요, 하며 주완이 비워 준 자리에 앉았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딱 내 아들뻘인데… 얼마나 됐어요? 여기에 온 지.”

“…10년이요.”

“10년이나?”

“네. 저도 그렇게 오래 지난 지 몰랐는데, 얼마 전에 신문 보고 알았어요.”

“강한 사람이네요.”

“…글쎄요.”

“맞죠, 왜. 그 엄청난 시간 동안 자신을 잘 붙들어 왔다는 거잖아요. 이 미쳐 버리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곳에서. 난 이제 2년쯤 됐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요. 매일 악몽을 꾸는데, 눈을 뜨면 그보다 더한 악몽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여자가 허망하게 웃었다. 그 낯빛이 지독히 씁쓸해 보였다.

주완은 눈동자를 굴려, 여자의 앙상한 팔을 주시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주사 자국과 바늘과 손톱 따위에 긁힌 듯한 흉터가 즐비했다. 이곳에 들어온 지 1년쯤 지났을 때, 주완 자신의 팔이 꼭 그랬다. 묘한 동질감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어쩌다….”

“남편이 외도했어요. 아이들은 다 외국에서 공부 중이었고. 이혼하면 나눠 줘야 할 재산이 너무 많으니까, 사람을 정신병자로 몰더라고요. 도박 좋아하는 내 친정 동생까지 꿰어서. 그래도 애들이 돌아오면 달라지지 않을까, 첫째는 성인이 됐을 테니까, 내가 어디 있는지만 알면 꺼내 주지 않을까. 그런 미약한 희망으로 죽지 못해 살고 있죠. 그쪽은?”

주완은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저는, 두려워서 살아요. 무서워서 견뎌요.”

여자는 더듬더듬 중얼거리는 주완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두렵다고, 무섭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그런 감정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단지 제 소매만 조물조물 만지작거리는 손길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이곳에 온 지 10년이나 됐다고 했다. 어떻게 봐도 주완의 나이는 서른을 넘지 않았을 터였다. 다시 말하면, 그가 이곳에 갇힌 건 채 스무 살이 되기도 전이란 뜻이었다.

대체 무슨 기구한 사연이 있었던 걸까? 여자는 잠자코 주완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저 산을 보고 있으면요, 늘 그맘때가 생각나요.”

창밖을 보던 주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예전 일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제 사정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지금부터 자신이 하는 말을 들어 주지 않아도, 믿어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체념 어린 넋두리였다.

어린 시절엔 큰 한옥에서 살았어요. 나무랑 흙으로 만든 벽 위에 기와를 얹은, 그런 한옥이요. 무거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원이 먼저 보이고, 정원 뒤쪽의 문을 또 하나 열면 본채랑 사랑채가 있는 구조였어요. 본채 뒤로도 작은 쪽문이 하나 있었는데, 난 그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요. 할아버지가 들어가선 안 된다고 누누이 경고하셨거든요. 후원에는 내 키만큼 거대한 항아리들이 엄청 많았어요. 친구들하고 놀다가 그걸 하나씩 깨 먹고 혼나는 게 일상이었죠.

할아버지는 사시사철 한복을 입었어요. 옛날 사람들처럼 상투를 튼 건 아니었지만.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우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난 그 소리도, 매끄러운 옷감의 감촉도 다 너무 좋았어요.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품을 파고드는 어린 손자한테 늘 당부하셨어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늘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말라고요. 아무리 힘들고, 지쳤더라도 자기 자신을 먼저 놓아 버려선 안 된다고요. 난 그렇게 하겠다고 새끼손가락까지 걸었지만, 사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어요. 여섯 살한텐 꽤 어려운 얘기긴 했죠.

마을 어른들도 할아버지한텐 깍듯하셨어요. 다들 할아버지를 ‘어르신’이라고 불렀거든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꼭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의논하기도 했고요. 심지어 이장님조차도요. 난 그게 좋았어요. 단순히 기뻤다기보단 자랑스러웠던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죠? 저 산을 보고 있으면 그때가 생각난다고. 할아버지랑 같이 살던 마을에도 저런 산이 하나 있었거든요.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인심이 좋았어요. 크고 작은 행사마다 자기 일처럼 손을 걷어붙이고, 산삼이나 송이라도 발견하면 경로당에 스스럼없이 베풀곤 했을 정도로. 내가 부모 없이도 외롭지 않았던 건 마을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나를 잘 보살펴 줬기 때문일 거예요. 동냥젖을 얻어먹은 건 심청이가 유일할 줄 알았는데, 나도 그렇게 자랐대요.

할아버지는 너그러운 분이었지만, 한 가지에 있어서만큼은 완고하셨어요. 사람이요. 누구든 그 됨됨이가 나쁘면 다신 그 사람을 상대하려 들지 않으셨죠.

그래서였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쫓아낸 건. 날 데려가겠다는 젊은 여자가 1년에 두어 번씩 꼭 우리 집에 찾아왔었거든요. 할아버지는 상종도 하지 않았지만, 나도 눈치가 없진 않아서 그 여자가 내 어머니란 걸 어렴풋이 알았어요. 내가 봐도 많이 닮았었거든요, 나랑.

어머니는 할아버지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고 돌아설 때마다 나를 붙들고 말했어요. 언젠가는 엄마가 꼭 데리러 오겠다고. 멋대로 내 손가락에 당신 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었죠. 난 기다리지 않았지만, 정말 그 약속을 지키더라고요. 할아버지 장례식 날에요.

일흔의 연세였어도 정정하셨거든요. 다들 100세까지도 거뜬하실 거랬는데…. 사고였어요. 오일장에 다녀오신다던 할아버지가, 왜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길에서 사고를 당하셨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요.

정말 찝찝했던 건요. 할아버지를 발견한 사람이 레미콘 운전기사였다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곳이 그런 건설용 차량 말고는 지나다닐 이유가 없는 길이라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를 친 건 분명 일반 승용차였다는데 말이에요.

범인은 못 잡았어요. 의문스러운 구석이 많았지만, 정밀한 수사를 요구할 보호자가 없었으니까요. 마땅한 물적 증거나 목격자도 전무했고요. 그 당시엔 도시에도 CCTV랑 블랙박스가 드물었는데, 그런 시골이야 말할 것도 없죠.

할아버지의 혈육이라곤 나뿐이라, 몸에 잘 맞지도 않는 상복을 입고 문상객들을 맞이했어요. 어떻게 소식을 접했는지 어머니가 한달음에 달려왔고, 혼자 서 있던 날 꽉 끌어안았죠. 그때 어머니가 속삭였던 말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제 엄마랑 살자. 그때 어머닌 웃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수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고작 여덟 살이었지만, 그게 어머니를 흉보는 거란 것쯤은 알 수 있었죠.

상이 끝나자마자 집안일을 돌봐 주던 분들이 속속 떠났어요. 내가 장가가는 모습은 꼭 보고 눈을 감겠다던 강릉 할머니도요.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가는 길에도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계속, 계속 뒤를 돌아보셨죠. 지금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머니가 살고 있던 서울 집은 정말 작았어요. 거기엔 나 말고도 어머니의 다른 아들이 같이 살고 있었고요. 지금 그 자식 얘긴 하기 싫으니까 안 할래요. 해도 믿기 어려울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 그런 짐승이 인두겁을 쓰고 잘만 살고 있다는 거,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어머닌 오전 내내 잠만 잤어요. 그러다 해가 지면 그제야 일어나 화장을 하고, 옷을 빼입은 다음 집을 나섰죠. 어머니가 들어오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새 돌아와서 잠들어 있었거든요.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기면서요.

돈을 버느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1년도 안 돼서 그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집으로 이사한 후에도 그녀의 생활은 변함없었어요.

달라진 게 있다면 더는 어머니랑 한방에서 자지 않게 됐다는 거였죠. 이사하자마자 안방을 차지한 남자가 있었거든요. 험악하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어머니의 다른 아들은 그 남자를 ‘아버지’라고 불렀어요. 그러곤 나랑 둘이 있을 때랑은 다르게, 꼬리 내린 짐승처럼 온순하게 굴었죠.

어머니는 그 아저씨를 많이 사랑했던 모양이에요. 아저씨가 어떤 실수를 해도 다 못 본 척 눈감아 줬던 걸 보면. 언제 한 번은 어머니랑 외출했다가 돌아왔는데, 못 보던 신발 하나가 보이더라고요. 여자 구두였어요. 그때 안방 문도 조금 열려 있었는데, 거기서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내가 침대에 올라가서 폴짝폴짝 뛸 때나 나던 소리요. 거친 숨소리랑 신음도 섞여 들렸고요. 뭐였겠어요, 그게.

어린 나이였지만, 아저씨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때 어머니 낯빛이 굉장히 어두워졌었거든요.

어머니요? 아니요,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안방 문을 닫았어요. 말씀드렸잖아요. 아저씨를 많이 사랑하셨다니까요.

아저씨의 기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언제부턴가 잠을 잘 때마다 이질감이 들더라고요. 뭔가가 내 몸을 더듬는 느낌이요.

그래서 한번은 자는 척 눈만 감고 있었는데, 내 방 불이 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저씨가 조용히 들어오더라고요. 아저씨는 불도 켜지 않고, 내 이불을 슬쩍 걷었어요. 그러곤 내 바지 속으로 커다란 손을 집어넣더니, 나를 막 만졌어요. 벌레가 기어가는 기분이었어요. 너무 싫고 끔찍했어요. 그때도 난 그게 몹쓸 짓이란 걸 알았거든요.

무서워서, 아저씨가 없을 때 어머니에게 그 일을 털어놨어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잠시 표정을 굳혔다가 대수롭지 않게 절 타일렀어요. 아저씨가 나를 귀여워해서 그러는 거라고. 그러니까 소란 피울 것 없다고요. 이상하죠? 누구보다 나를 예뻐해 줬던 우리 할아버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내가 나이를 먹어도 아저씨의 한밤중 방문은 계속됐어요.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부턴 우리 집에 더는 외간 여자들을 데려오지 않았죠. 그게 어머니에겐 기뻤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겐 아니었어요. 그 이후부터 아저씨의 방문은 밤중으로만 국한되지 않았으니까요. 내게 가하는 행위도 만지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고요.

정말 무서운 일이 일어났던 건, 체육 시간에 발목을 삐어서 조퇴한 날이었어요. 현관에 아저씨의 신발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내심 안도했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아저씨가 돌아왔던가 봐요. 숨이 막혀서 눈을 떴더니, 아저씨 성기가 내 입 속에 들어와 있더라고요. 입 안이 막무가내로 들쑤셔져서 숨이 막히고, 입도 찢어질 것 같았어요. 그 끝이 자꾸 목젖을 건드려서 구역이 치솟았죠. 머리가 쉬지 않고 벽에 부딪히는 바람에 몽롱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괴로워서 눈만 계속 질끈 감았다가 뜨는데, 그때 보고 만 거예요. 벌어진 문틈 새로 내 방을 엿보고 있던 어머니를요. 어머니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어요. 목이 막혀서 목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난 어머니를 향해서 몇 번이고 절규했어요. 도와 달라고요. 제발 나를 구해 달라고요.

하지만 어머닌 그 언젠가 그랬듯이 조용히 문을 닫아 버렸어요. 막막하고, 두렵더라고요. 서러움이 복받쳐서 눈물이 났어요.

어머니는 어째서 그 아저씨만큼 날 사랑해 주지 않았던 걸까요? 어머니는 왜 어머니의 다른 아들만큼이라도 날 아껴 주지 않은 걸까요? 어머니인데. 그래도 내 엄만데.

아까 언급했었죠? 어머니한텐 나 말고 또 다른 아들이 하나 있었다고. 하는 짓이 정말 고약한 놈이었어요. 나만 보면 괴롭히고 싶어서 못 참는 놈이었죠. 그놈이 키우던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몸집이 거의 사람만 했거든요. 여기, 다리에 보면 그 개한테 물린 흉터가 못해도 서너 개는 될 거예요.

고등학교 때 만났던 여자 친구가 자살했어요.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고, 치가 떨려요. 그 이부동생 놈 패거리가 그 애한테 몹쓸 짓을 했거든요. 놈을 살려 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든 그 애 대신 복수해 주고 싶었어요.

저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 실실거리면서 질 나쁜 농담이나 하는 놈을 칼로 찔렀어요. 자기방어라고 변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난 정말 놈을 죽여 버릴 작정이었으니까. 지금도 가끔 후회해요. 놈의 다리가 아닌 목을 찔렀어야 한다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놈은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죠. 때마침 어머니가 나타났어요.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요. 그저 차분하게 구급차를 불렀고, 또 어디론가 한 통의 전화를 걸었죠. 긴급 입원을 원한다면서요.

경청하던 여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친어머니가 정신이 온전한 아들을 정신 병원에 처넣었다는 사실을 곧이 믿을 수 없는 듯했다.

주완은 여전히 덤덤한 눈길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응시했다.

“내가 두려운 게 뭔지 아세요?”

여자는 대답 없이 입을 다물었다. 정신 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다 그렇겠지만, 주완의 이야기는 듣고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혔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 자신을 다잡느라 애썼던 이유를 두려움 때문이라 했다. 두려워서, 무서워서 견딘다고.

“모든 게 이대로 굳어지는 거요. 나는 여기에 갇혀서, 존재 의미 없이 살다 죽고, 어머니랑 아저씨, 그리고 그놈은 죄의식 없이 잘만 살다가 죽어서 결국에는 우리 네 사람이 한 가족으로 묶이는 거. 나는 그게 가장 무서워요.”

모호하게 들렸던 ‘두려움’의 정체가 비로소 명료해졌다.

장진우는 커피를 마시며 주완의 신체검사 결과를 살폈다. 그새 또 몸무게가 줄었다. 조금이나마 제 환자에게 관심 있는 의사라면 눈여겨볼 만한 변화였다. 그러나 주완의 담당의인 김제국은 핸드폰이나 들여다보며 시시덕거릴 뿐이었다.

장진우는 그를 대신해 주완에게 영양제를 처방하고, 식단에도 고단백 식품과 탄수화물을 신청했다. 매사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노는 것도 지쳤는지, 김제국이 불쑥 다가와 고개를 들이밀었다.

“다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웃으며 그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 평소라면 “쓸데없이 성실한 놈.” 하고 핀잔했을 김제국이 대뜸 모니터를 자신 쪽으로 돌렸다. 그러곤 흥미로운 눈길로 주완의 검사 기록을 훑는다.

“그러고 보니 박주완 환자, RH-AB형이었지?”

어쩐지 모래 속에서 진주알이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

“…문제없을 겁니다. 10년 가까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으니까요.”

때아닌 음성이 복도를 울리자, 두 눈이 말끔히 떠졌다. 하지만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건 짙은 어둠뿐이었다.

잠자코 문 너머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대여섯 명의 기척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곧 문틈 새로 미미한 불빛이 스며들었다. 일정하게 복도를 울리던 발걸음 소리도 금세 멎었다.

그 직후, 돌연 밖에서부터 잠금장치가 풀리기 시작했다. 위기를 감지한 심장이 격렬히 펄떡였다. 벌떡 일어나 앉아, 덜컹거리는 문가를 노려봤다.

이윽고 문이 벌컥 열어젖혀지며, 눈부신 빛줄기가 쏟아졌다.

“……!”

LED 랜턴 불빛에 눈이 아려,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고개를 저었다. 괴로웠다. 그사이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들이닥쳐 주완의 사지를 붙잡았다. 삽시에 입에도 재갈이 물렸다.

몸을 비틀며 반항해 봤지만, 완전히 제압당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안대로 시야가 차단되기 직전에 본 건 문가에 서서 웃고 있는 김제국이었다.

고기가 돼서 팔려 나간다.

서늘한 예감이 뇌리를 꿰뚫었다. 이렇게 되려고 지난 10년을 버텨 온 게 아니다. 고작 이런 꼴이나 당하자고 모든 부조리를 참아 온 게 아니었다.

이를 악물었다. 아직 완전히 묶이지 않은 다리를 힘껏 내찼다. 발에 뭔가가 퍽 하고 충돌했다. 가까스로 억누른 신음도 잇따랐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내 뒷덜미에 격한 통증이 작렬하면서 몸에서 힘이 빠졌다. 의식은 희미하게나마 붙어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수상한 사내들은 주완의 몸을 완전히 포박했다. 그러곤 그중 하나가 주완을 가뿐히 어깨에 걸쳤다.

귓속이 너울거리는 가운데, 그들의 대화 소리가 언뜻언뜻 들려왔다.

“실례지만, 잔금은….”

“대표님께 물건부터 확인시켜 드리고,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아,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살펴 가시죠.”

짧은 대화를 마친 무리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주인을 잃은 411호실의 문이 육중하게 닫혔다.

나직한 노크 소리에 권수혁의 눈꺼풀이 말려 올라갔다. 깜빡 잠들었던 모양이다. 몸을 뒤척이자,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났다. 덩달아 욕조 가득 넘실대던 온수가 사정없이 넘쳐흘렀다.

다소 불편한 느낌에 내려다보니, 얼마 전 백도운이 봉합해 준 복부의 상처에서 스멀스멀 피가 새고 있었다. 당분간 상처에 물이 닿지 않게 하라던 경고를 무시한 대가였다. 권수혁은 제 복부를 무감하게 바라보다가 욕조 밖으로 나갔다.

거대한 몸에서 사정없이 물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젖은 흑발을 쓸어 넘기자, 또렷한 이목구비가 두드러진다. 어디 한 곳 모난 곳 없이 잘생긴 얼굴이건만, 묘한 위압감이 감돌았다.

문밖에서 대기하던 수하가 보고했다.

“대표님, 주문하신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가운을 걸치던 권수혁의 손이 멈칫했다. 금방 준비하겠다곤 했지만, 이렇게 속전속결일 줄이야. 과연 그 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할 법했다.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시커먼 사내들이 일제히 고개를 꾸벅했다. 그중 누구도 권수혁과 눈을 맞추지 않았다.

거실로 가려는데, 침실 쪽에서 황금빛 털로 뒤덮인 네발짐승 한 마리가 느긋하게 다가왔다. 유연하게 몸을 흔들면서 척척 거대한 앞발을 내디딘다. 앞다리부터 뒷다리까지의 길이가 족히 2m는 됨직한 놈은 다름 아닌 야생 재규어였다. 사내들은 행여 놈과 스칠까 바짝 긴장했다. 실제로 놈에게 물려 병원 신세를 진 조직원이 한둘도 아니었다.

그런데 눈앞의 재규어가 소문의 그놈이 맞는지 의문이었다. 놈은 덩치만 큰 고양이처럼 권수혁의 다리 주변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면서 몸을 비비적댔다. 권수혁은 놈이 그러거나 말거나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제거하며 걸어 나갈 따름이었다. 연신 애교를 부리던 재규어가 돌연 그를 앞질러 달려갔다.

권수혁이 거실에 도착했을 때, 재규어는 준비된 물건을 앞발로 딱 눌러서 제압하고 있었다.

“…….”

막 깨어난 주완은 저를 짓누르며 으르렁거리는 재규어를 멍하니 바라봤다. 입의 재갈은 진즉 풀렸는데도 헛숨조차 내뱉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 펼쳐진 탓이었다.

황망히 주위를 살폈다. 눈을 뜨면 차디찬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조차 없이 그대로 생을 마감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어느 집 안이었다. 그것도 고양잇과의 큰 짐승이 사는. 꿈을 꾸는 걸까.

“남의 물건에 눈독 들이지 마.”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재규어를 발로 툭 쳤다. 재규어는 주완을 예의주시하면서 천천히 옆으로 물러났다. 비로소 목소리의 주인공, 권수혁이 바로 보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주완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먹이를 발견한 먹빛의 재규어.

그게 권수혁의 첫인상이었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권수혁의 짙은 눈썹과 새카만 머리카락은 물기를 머금고 미끈거렸다. 오뚝한 콧대가 선명한 윗입술과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이어졌다. 그늘이 질 정도로 깊은 눈가, 거기에 흑요석처럼 짙은 눈동자가 특유의 날카로운 인상을 완성했다.

상당한 장신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그만큼 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 키에 걸맞게 넓게 벌어진 어깨와 흐트러진 가운 사이로 비치는 탄탄한 근육, 길고 곧게 뻗은 팔다리까지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다. 날이 예리한 조각칼로 세밀하게 깎아 놓은 것 같은 완벽한 모습이건만, 단순히 잘생겼다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저승사자 같은 거라면 모를까. 도저히 인간 같지가 않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그다지 신선해 보이진 않는데.”

한참 주완을 뜯어보더니, 한다는 말이라곤 그게 다였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잘 안 됐다.

다시금 집 안을 훑어봤다. 천장이 유난히 높았다. 한쪽에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조용히 대기 중이었다. 표범인지, 치타인지 모를 야생 짐승도 여전히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여러모로 비상하긴 하지만, 주거 공간인 건 분명해 보였다. 적어도 그 어딘가에 장기를 적출할 만한 시설은 없을 듯했다.

다시 권수혁과 시선이 맞물렸다. 그즈음 현관 쪽에서 요란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러도록 두 사람의 눈길은 어디로 이탈하지 않았다.

곧 의료 가방을 든 남자가 주완의 시야 한 귀퉁이에 들어왔다. 그를 뒤따르는 또 다른 남자는 다른 사내들처럼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놀랍게도 권수혁보다 덩치가 더 컸다.

“왜 또 자는 사람을 불러 대고 난리야?”

백도운은 발을 쿵쿵거리면서 있는 대로 불만을 표출했다. 권수혁은 대답 대신 주완을 턱짓했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백도운이 두 눈을 홉떴다. 환자복 차림의 주완이 손발마저 결박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잠시 그대로 얼어붙었다가 권수혁을 돌아보며 언성을 높인다.

“너 정말, 기어이!”

“어때? 좀 써먹을 만하겠어? 제법 비싼 값을 치렀는데.”

백도운은 머리를 감싸 쥐며 까마득하게 탄식했다. 산 사람을 데려다 사육이라도 하겠단 건가? 필요할 때 바로바로 피를 뽑아 쓰려고? 너무 비인간적이다. 그딴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전에 남은 게 하나도 없다고 했지? 그럼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겠네.”

“권수혁!”

“뽑아.”

권수혁은 백도운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서 따르라고 종용하듯 그를 고요히 주시할 뿐이었다.

백도운은 인상을 찌푸린 채 다시 주완을 봤다. 주완은 눈에 띄게 야윈 상태였다. 성인 남자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가느다란 목과 팔, 다리, 선이 또렷한 빗장뼈까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던 건 이런 상황에도 동요 없이 공허한 눈동자였다.

이런 사람한테 어떻게 그딴 짓을 하라는 건지. 백도운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가 침묵을 지키며 꿈쩍하지 않는 가운데, 살인적인 적막이 내려앉았다.

잠자코 기다리던 권수혁이 제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가 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내들이 서로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압도적인 덩치를 지닌 사내가 백도운에게 다가가 조용히 당부했다.

“선생님. 대표님 말씀대로 하시죠.”

“못 해. 아니, 안 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권수혁이 움직였다. 단숨에 백도운의 머리를 움켜쥐고 벽 위로 힘껏 내리찍는다. 곁에 서 있던 덩치가 얼른 그 사이로 손을 밀어 넣지 않았다면, 기어이 벽에 머리를 박았을 터였다.

찰나나마 끔찍한 고요가 찾아왔다. 백도운에게 꽂혔던 권수혁의 눈길이 저를 막아선 덩치에게 옮겨졌다. 백도운은 제 머리를 움켜쥔 그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저 사람 몰골 좀 봐, 개새끼야!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돈데, 어떻게 피를 뽑으라는 소리가 나와? 뽑아 봤자 뭐가 나온다고! 사람 하나 말려 죽일 셈이야?”

권수혁이 서서히 몸을 바로 하고 섰다. 그러곤 백도운을 옆으로 치우고 주완에게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주완은 전혀 기가 죽어 있질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어딘가 모르게 초탈한 느낌이었다. 어차피 인간도 한 부류의 동물일 뿐이고, 본능적으로 기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에 아주 무딘 사람 같았다. 초지일관 표정 변화라곤 없었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가.

권수혁은 덜컥 주완의 턱을 잡았다. 제법 아플 텐데도 신음을 흘리지 않는다. 미간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물건의 상태를 살피듯 주완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조목조목 뜯어봤다. 주완은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 크고 동그란 눈동자 가득 권수혁을 빤히 담아낼 따름이었다. 그의 턱을 놓아주었다. 그러곤 손을 미끄러뜨려 목, 가슴, 복부를 죽 쓸어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먹을 것 좀 사 와. 되도록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르는 것들로.”

‘포동포동’을 강조하며 이제 만족했냐는 듯 백도운을 돌아본다. 사내들이 네, 하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권수혁은 침실로 들어가려다 말고 조금 전 백도운을 응징하려고 했을 때 그걸 막았던 사내 앞에 섰다. 덩치 큰 사내는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짝, 가죽이 찢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고개가 왼쪽으로 크게 돌아갔다. 신음이 흐를 법한 상황에도 사내는 이를 악물고 통증을 견뎠다. 권수혁은 그런 사내를 똑똑히 응시하다가 침실로 사라졌다. 내내 주완 곁을 배회하던 재규어도 여유롭게 그를 따라갔다.

그런 권수혁을 끝까지 마뜩잖게 노려보던 백도운이 얼른 사내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괜찮아요? 어디 좀 봐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안에 터졌을 것 같은데, 뭐가 괜찮아.”

“정말 괜찮습니다.”

사내는 한사코 뒤로 물러났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백도운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 쉬곤 사내에게 부탁했다.

“그럼 저 사람 좀 풀어 줘요. 따뜻한 물에 목욕이라도 시켜야겠어요.”

사내는 잠시 머뭇거리다 순순히 주완을 포박했던 줄을 풀어 주었다. 백도운이 주완의 등을 떠받쳐 앉는 것을 도왔다.

“일단 이쪽으로 와요. 괜찮아요, 겁먹을 거 없어.”

주완을 거푸 다독이면서 그를 욕실로 이끌었다. 욕실에는 훈훈한 기운이 가득했다. 권수혁이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특유의 향기도 가득 차 있었다.

백도운이 욕조에 물을 받는 동안, 주완은 스스럼없이 옷을 벗었다. 헐렁했던 환자복을 탈의하자, 깡마른 몸이 감출 새 없이 드러났다. 몸을 숙이고 바지와 속옷도 마저 벗었다. 무심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도운이 돌연 멈칫했다. 수상한 흔적을 발견한 까닭이었다.

따뜻한 기운이 몽실몽실 기분 좋게 달라붙었다. 어서 몸을 담그고 싶었다. 뭔가에 이끌리듯 욕조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백도운이 덜컥 주완의 팔을 붙잡았다. 주완이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돌아봤다.

“엉덩이에 그거….”

말을 다 잇지 못한다. 주완의 엉덩이 안쪽, 구멍 주변에 검붉은 피딱지가 들러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거예요?”

막막하게 물으면서도 미안했다.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주완은 소리 없이 씁쓸하게 웃었다.

무기 징역을 사는 기분이었어요. 언제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지 기약 없이, 막연한 하루하루를 보냈거든요. 처음 1년은 진짜 죽을 것 같았어요. 날 병원에 집어넣은 어머니의 심정을 어떻게든 헤아려 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차라리 누가 날 이해시켜 주길 바랐어요. 어머니가 그럴 수밖에 없었단 걸 깨닫게 되면 그나마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병원의 누구도 내 말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거짓말이나 해 댔죠. 다 안다고, 내 마음 다 이해한다고요.

난 미치지 않았다고 소리칠 때마다 주사를 맞아야 했어요. 한번은 하루에만 열 번도 넘게 바늘에 찔렸죠.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려요. 몸도 처지고, 사고 회로도 느려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거기에 있으면 정상이든 아니든, 결국 다 정신병자가 될 거예요. 미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요.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몰라요.

오기로 견뎠어요. 정말 그거 하나로 버텼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날 얼마나 애지중지 키워 주셨는데. 내 마음 편하자고 날 놔 버리면 너무 죄송스럽잖아요.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억울하기도 했고요.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잘 모르고 살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난 게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거기선 하루에 한 번, 병실을 나와 휴게실에서 쉬는 게 허락됐어요. 그날도 휴게실에 갔다가 우연히 인문학 서적을 한 권 발견했어요.

혹시 상상해 본 적 있으세요? 수년 동안 말을 하지도, 듣지도, 글을 보지도 못하는 상황을요. 오랜만에 접한 한글이 너무 낯설더라고요. 소리 내서 읽어 보려고 하면 어떻게 발음했는지 헷갈리는 글자도 있었어요.

그러다 두려워졌어요. 내가 언제까지 내 이름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을지. 마음속에 품은 희망처럼 바깥세상으로 나간들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그 사람을 만난 건 그즈음이었어요. 전엔 한 번도 본 적 없던 얼굴이었어요. 아마 그때부터 그곳에서 일했던 거겠죠. 내 담당의는 아니었고요.

웃는 얼굴이 상냥해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정신 병원의 환자가 자기 책을 보고 있는데도 싫은 내색을 안 했죠. 오히려 그게 재밌냐고 묻기만 했어요.

그래서 기대했던 거예요. 어쩌면 이 사람이 나를 도와줄지 모른다고, 미련한 희망을 품었죠.

그냥 뱀처럼 간사한 사람일 뿐이었는데. 한 줄기 빛 같던 그 사람을 만나고 전보다 더한 지옥이 펼쳐졌으니까요.

장진우는 가로등도 없는 좁은 비탈길로 차를 몰았다. 센터패시아의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아침부터 아버지와 나란히 학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아버지에게 끌려다니며 여기저기 인사하고, 오랜만에 동창들도 만났다. 안부를 묻는 표정들이 가관이었다. 누군가는 동정하고, 누군가는 업신여기면서 “빨리 복귀해야지.” 했다.

모처럼 본가에 들러 어머니가 차려 준 저녁 식사도 했다. 그 뒤엔 다시 아버지에게 붙잡혀 언제까지 그 촌구석에 숨어 지낼 거냐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짜증스레 안경을 벗어 던졌다. 시종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신경질적으로 지압하기도 했다. 이런 날은 집에 가서 푹 자도 부족할 텐데, 고집스레 병원으로 향한다. 그 상태로는 쉬이 잠들 수 없을 듯했다.

어두운 새벽, 산에 둘러싸인 병원은 꼭 버려진 산장 같았다. 그 앞에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성큼성큼 걸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외투는 벗어 의자에 걸고, 가운을 입었다. 그러곤 책장에서 진료 기록부를 꺼냈다. 구실 없는 방문이 남의 눈에 띌세라 모양새를 갖추는 거였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된 기록지를 익숙하게 휙휙 넘겼다. 어차피 장진우가 찾는 건 중반 즈음에나 나올 터였다.

“……?”

얼마 안 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앞으로 넘겼던 기록지를 다시 끌어와 환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그 뒷장의 이름도 재차 살폈다. 하지만 몇 번을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박주완의 진료 기록지가 사라졌다.

멍하니 섰던 것도 잠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너무 피곤해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절치부심해 진료 기록부를 앞에서부터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겼다. 혹시 두 장이 함께 넘어갈까, 손으로 문질러 가며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나 모두 헛수고였다. 착각도 아니었다. 몇 번을 체크해도 주완의 진료 기록지만 보이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박주완 환자, RH-AB형이었지?’

불현듯 김제국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 그의 얼굴에는 얼결에 값비싼 보석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화색이 돌았다.

얕은 탄식이 터졌다.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를 부산히 굴리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곧바로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텅 빈 복도를 성큼성큼 걷다가 점차 내달리기 시작했다. 병동으로 들어서려는데, 패스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진료실 서랍에 넣어 뒀던 게 떠올랐다. 다시 돌아가서 챙겨 올 여력이 없었다. 당장 확인해야 했다. 지금 당장.

주먹으로 닫힌 문을 두드렸다. 문이 쉼 없이 덜컹거렸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어두컴컴하던 병동에 하나둘 불이 켜졌다.

머지않아 야간 근무 중이던 가드가 층계를 내려왔다. 숙직실에서 자고 있었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그러다 장진우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 뛰어왔다.

“아니, 선생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열어요.”

여느 때라면 빈말로나마 고생하신다, 했을 장진우가 닫힌 문만 노려보며 명령했다. 영문도 모른 채 문부터 열자, 가타부타 설명 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뭔가 큰일이라도 생긴 걸까. 가드도 서둘러 그를 쫓아갔다.

장진우는 4층에 이르러 걸음을 멈췄다. 그를 따라온 것뿐인데도 숨이 가빴다.

“선생님. 대체 무슨 일이신데, 그러시는….”

장진우는 가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출입 카드를 낚아챘다. 그러곤 그것으로 닫힌 411호실의 문을 열었다. 불길한 예감에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가 장황하게 울려 퍼졌다. 장진우는 숨도 쉬지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

좁은 병실로 들이닥쳐 주완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주인 잃은 침대 위 이불만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을 뿐이었다.

“안 돼.”

권수혁이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리란 걸 충분히 예상했는데도 맥이 풀렸다. 오늘 밤만이라도 주완을 백도운 제집으로 데려가 재우겠다고 했다가 퇴짜를 맞은 참이었다. 권수혁은 주완의 옷자락을 붙든 그의 손을 지긋이 보면서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피력했다.

“안 잡아먹어. 그러니까 놓고 가.”

권수혁이라고 객식구가 달가울 리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백도운에게 맡겼다간 다른 데로 빼돌릴 게 분명했다.

백도운은 무언의 항의를 하듯 권수혁 옆의 재규어를 봤다. 놈 핑계라도 대 볼까,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얄팍한 속셈은 금세 간파당했다.

“이놈도 배불리 먹이지. 그럼 당분간 군침을 흘리진 않을 테니까.”

“…그래도.”

“괜찮습니다. 여기에 있을게요.”

두 사람의 신경전을 지켜보던 주완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그렇게 실랑이할 기세였다.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백도운을 향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권수혁을 응시했다.

권수혁이 피식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그렇다잖아?”

“알았어요. 대신 내일 다시 올게요, 주완 씨.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영양 상태는 어떤지 확인해 봐요.”

“오지 마.”

“뭐?”

“이거, 포동포동하게 살찌울 때까지 오지 말라고. 성가시기만 하니까.”

‘이거’ 할 때 권수혁의 눈길이 주완의 뒤통수에 꽂혔다가 떨어졌다.

“이 미친… 사람한테 이거가 뭐야, 이거가?”

“잘 가라.”

분연히 반발하는 백도운에게 대강 손을 저었다. 그러자 아직 집에 남아 있던 사내들이 그를 데리고 나갔다. 상냥하게 끌고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이 닫히고 집 안에는 권수혁과 재규어, 그리고 주완만 남겨졌다. 권수혁은 다짜고짜 주완의 멱살을 잡아 거실로 데려갔다.

소파 테이블 위엔 사내들이 시내 곳곳을 누비며 사 온 음식들이 가득했다. 피자와 치킨, 김밥, 떡볶이, 닭발, 해물찜, 초밥, 족발에 온갖 빵까지. 거의 10년 만에 접하는 메뉴들이었다.

차려진 음식들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권수혁이 주완을 그 앞에 떠밀었다. 그러더니 자신은 1인용 소파에 앉아 팔짱을 꼈다.

“남기지 말고 싹 다 먹어.”

그렇게 될 때까지 모두 지켜볼 작정인 듯했다. 왠지 거역할 수가 없었다.

장진우는 몸부림 흔적이 여실한 침상에 주저앉았다. 환자복과 함께 지급한 흰 실내화는 한 짝은 침상 아래에서, 남은 한 짝은 문가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손을 들어 이마를 쓸어 올렸다. 저가 없는 사이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쉽지 않았다.

가드는 그런 그를 지켜보며 연신 고개만 갸웃거렸다. 장진우에게선 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에 없이 거칠고, 날이 서 있었다. 영 다른 사람 같아서 이상했다.

“…하고 있었습니까?”

“네?”

하도 목소리가 낮게 깔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환자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동안 당신들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냐고!”

장진우가 악에 받쳐 버럭 소리쳤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얼굴에도, 목소리에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선생님? 오늘따라 왜 이러시는 겁니까?”

너무 당황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장진우의 낯에 노골적으로 드리워진 적의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다.

장진우는 침상에서 일어서서 가드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안경을 쓰지 않아서일까. 부드러워 보이던 눈가가 유난히 매섭게 느껴졌다.

장진우가 거리를 좁혀 오자, 가드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얼마 못 가 가드의 등이 복도 벽과 맞닿았다. 그쯤에서 장진우도 멈춰 섰다. 그런데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감이 기묘한 중압감을 선사했다.

“누굽니까?”

“네?”

“나 말고 누가 당신한테 이 앞을 떠나도 좋다고 했냐고.”

“그게, 저….”

“김 선생이죠? 아닙니까?”

장진우를 마주하던 가드의 시선이 조금씩 옆으로 이탈했다. 추궁당하는 상황에서, 침묵은 곧 인정이었다. 이제 와 감출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순간 장진우의 얼굴에서 모든 감정이 걷혔다. 기가 막혀 하, 하자 가드의 고개가 푹 숙어졌다.

“근무 태만이네요. 오늘부로 당신이 속한 경호업체와 계약을 파기하겠습니다.”

“네? 아니, 갑자기 이러실 순… 저는 그저 김 선생님이 시키시는 대로….”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건 충실하게 자기 구역을 지키는 개지, 아무한테나 먹이를 받아먹고 잠만 자는 개새끼가 아닙니다.”

가드는 자신이 귀신에 홀린 거라 생각했다. 아니라면 장진우가 둘인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야. 정말 그렇지 않고서야.

“우욱….”

주완은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애써 먹은 것들을 게워 냈다. 폭식 때문에 위에 무리가 간 듯했다. 병원에 갇혀 지내는 동안 식욕이 급격히 떨어져서, 식사를 거를 때가 많았다. 그 여파로 쪼그라진 위장은 햄버거 반쪽에도 버거워했다.

물을 내리곤 잠시 숨을 골랐다. 목이 따끔거렸다. 시큼한 토사물 냄새도 괴로웠다. 화장실로 달려온 것만 벌써 세 번째였다. 아직 음식의 반의반도 먹지 못했는데. 기력이 떨어져, 다리에도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속이 진정되길 기다리면서 생각을 정리해 봤다. 아무래도 또 주완 자신에게 어떤 쓸모가 생긴 듯했다. 그게, 지긋지긋한 병실에서 벗어나 이곳으로 온 유일한 이유였다.

10년간 하얀 건물 밖 세상을 갈망했다. 일간지에서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하나씩 늘어 갈수록 절실함도 커졌다. 그 오랜 바람이 다소 기이하나마 현실이 된 셈이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면, 견딜 수 없는 건 없었다.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쏟아지는 물로 부지런히 입을 헹궜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 제 모습을 들여다봤다.

낯선 사람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 모습이, 지금의 저였다. 얼떨떨하게 손을 들어 거울 속 투영체를 쓰다듬어 본다. 영혼의 감옥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했던 것 같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열 번을 토해도, 위액이 다 역류해 나오더라도 몽땅 먹어 치우겠다. 그게 불완전하나마 자유를 얻은 대가라면, 기꺼이.

각오를 다지며 문을 열고 나갔다. 소파에 앉아 있던 권수혁은 보이지 않았다. 잠을 자러 간 걸까.

감시에서 벗어난 김에 집 안을 둘러봤다. 집주인부터 그렇더라니, 가구며 뭐며 온통 새카맸다. 10년을 백색 공간에 갇혀 지냈는데, 그곳을 탈출해 마주한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암흑천지였다.

망연히 드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인기척이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곧 주방 쪽에서 걸어 나오던 권수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모양은 얼핏 닭과 흡사하지만, 그보다 훨씬 컸다. 칠면조인가.

권수혁은 그 묵직한 고깃덩어리를 주완 앞에 툭 던졌다. 제법 둔탁한 소리가 났다. 순간, 뭔가가 빠르게 바닥을 차며 달려왔다.

재규어였다. 놈은 바닥의 고깃덩어리를 커다란 앞발로 꾹 짓눌렀다. 그러곤 반대편 발을 내디뎌 주완을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제 먹이를 지키기 위한 위협이었다. 주완은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녀석이 기세를 늦추고 고기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첩첩, 하고 굉장한 소리가 났다. 그 와중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빳빳하게 일어선 털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무자비하게 생살을 찢긴 칠면조는 금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착실하게 배를 채우던 재규어는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자신을 관망하던 주완에게 으르렁거렸다. 야생의 본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그런 놈을 반려동물 삼은 권수혁은 뭘 하는 사람일까 싶었다.

“이제 네 목을 무는 일은 없을 거야. 다른 데도 성할 거라곤 장담 못 하겠지만.”

불쑥 풍기는 서늘한 나무 향에 고개를 들었다. 권수혁이 기척도 없이 다가와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주완을 완전히 덮었다. 멍하니 올려다보자, 그가 주완의 팔을 덜컥 잡더니, 그대로 끌어당겼다. 정작 권수혁은 그리 힘을 준 것 같지 않은데, 버틸 새 없이 손쉽게 끌려갔다.

권수혁은 침실에 이르러서야 주완을 놓아주었다. 거실보다 넓은 방 안에는 큰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침대를 충분히 감싸고 흘러 내려온 시트조차 검은색이었다. 침실의 주인도, 침실도 블랙 일색이라, 눈동자의 광채가 더 도드라지는 느낌이었다.

“준비해 주신 음식, 다 못 먹었는데….”

“넣으면 도로 토하는 걸 계속해 봤자지.”

권수혁은 중얼거리면서 스스럼없이 가운을 벗었다.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의 윤곽이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났다. 크고 탄탄한 근육들이 오밀조밀 섬세하게 짜여 있었다.

저도 모르게 멍하니 보는데, 뭔가가 찰칵 소리를 내며 손목을 감쌌다. 수갑이었다. 이유를 묻듯 권수혁을 주시했다. 그는 수갑을 확 잡아당기더니, 반대쪽을 제 손목에 마저 채웠다. 그러곤 그러는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했다.

“나는 두 발로 걷는 것들은 안 믿어.”

그래 놓고 권수혁은 수갑을 안 찬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 탓에 그가 침대에 누웠을 땐 주완도 맥없이 끌려가 그 위에 엎어졌다. 배를 깔고 엎드린 권수혁은 곧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밤에 누군가의 곤한 숨소리를 듣는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척 생경한 기분이었다.

머지않아 식사를 마친 재규어가 터벅터벅 침실로 들어왔다. 놈은 침대 끝에 가까스로 걸쳐져 있는 주완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놈의 무게에 침대가 출렁거렸다.

재규어는 익숙한 몸짓으로 권수혁의 등 뒤에 제 몸을 포갰다. 샛노란 눈동자가 한참 주완을 감시하듯 하더니 눈꺼풀 뒤로 까무룩 사라졌다. 권수혁에 이어 재규어의 나른한 숨결까지 살갗에 닿아 왔다. 정말이지, 기묘한 동침이었다.

혹시 주완 자신이 긴긴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오히려 그쪽이 더 신빙성 있을 듯했다.

***

김제국은 콧노래를 부르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희소성이 높으면 부르는 게 값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주완을 넘긴 대가로 받게 될 금액을 헤아릴 때마다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몸이고 마음이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둥실거렸다.

날아갈 듯한 걸음걸이로 복도를 지났다. 도중에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좋은 하루 보내라며, 살가운 인사도 건넸다. 전에 없이 들뜬 그의 모습에 직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료실 문을 열다가 주춤했다. 책상 의자에 장진우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책상 위 명패를 봤지만, 거기 적힌 건 제 이름이 맞았다.

“어쩐 일이야? 아침부터.”

외투를 벗으면서 심상히 말을 걸었다. 장진우도 여느 때처럼 싱긋 웃었다.

“어젯밤부터 선배가 자꾸 어른거리는 게, 보고 싶어서요.”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아부는. 징그러우니까 때려치워.”

흰 가운을 걸치며 장난스레 질색했다. 장진우는 별반 반응이 없었다. 김제국은 의아해 고개를 돌리다 움찔했다. 장진우가 고요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에 습관처럼 고여 있던 웃음기도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장 선생?”

“어디 갔어요? 411호실 환자.”

낮은 목소리로 채근한다. 뭘 알고 그러는 걸까. 일단 모르는 척 잡아뗐다.

“다짜고짜 무슨 소리야? 411호실 환자가 뭘 어쨌는데?”

“박주완을 어디다 팔아 치웠냐고 묻는 겁니다.”

헛웃음이 나왔다. 장진우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나 보다. 살기등등한 얼굴이 영 다른 사람 같고, 낯설었다.

김제국은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나도 모르지. 왜? 없어졌어? 104호 환자 말마따나 외계인이 잡아갔나?”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자, 장진우가 덜컥 멱살을 움켜쥐었다. 장진우는 당황한 김제국의 두 눈을 천천히 번갈아 봤다. 입을 열어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콧등이 일그러졌다.

“감히 그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왜, 아버지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치게?”

“아버지가 아니라 경찰서로 가야죠. 엄연한 강력 범죈데.”

“해 보시지.”

김제국은 장진우를 도발하며 제게서 그의 손을 홱 떨쳐 냈다. 덜미를 잡힌 주제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아? 네놈이 정신도 온전치 않은 환자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네 잘난 아버지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경찰에 신고하면?”

맞불을 놓는다. 장진우의 얼굴이 탁 펴졌다. 느닷없이 뒤통수라도 맞은 것처럼, 두 눈에 미처 감추지 못한 당혹감이 어렸다. 더불어 약간의 의구심도 내비쳤다. 완전 범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김제국은 장진우를 밀치고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잠겨 있던 서랍을 열어 작은 메모리 카드를 꺼내 보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녹화해 뒀다고.”

예기치 못했던 전개였다. 김제국의 얼굴 가득 승리자의 미소가 번졌다.

***

남자는 폭력적인 인간이었다. 조금만 자신의 비위에 거슬려도 손찌검부터 했다. 크고 두꺼운 손으로 볼이라도 후려치면 누구든 그 힘에 날아갔다. 진짜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그는 겁에 질려 벌벌거리는 어린 자식을 다시 잡아 패고, 발로 짓밟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짐승도 그러진 않을 듯했다.

그 때문일까. 악마 같던 그놈도 남자 앞에서만큼은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사뭇 비굴해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도 남자는 툭하면 놈을 이불 털듯 패곤 했다. 되짚어 보면 무자비한 가정 폭력은 거의 늘 놈에게 한정돼 있었다. 놈을 길들이려는 거였을까. 놈의 눈빛이 늘 마음에 안 든다고 했으니까. 하루라도 놈에게서 피멍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어떤 구실이 있었더라도 열 살도 안 된 아이를 기절할 때까지 때릴 만한 명분은 되지 못했다. 아버지가 들어오는데 누워 있었다는 이유로, 바닥에 물을 조금 쏟았다는 이유로, 흘리면서 먹는다는 이유로, 웃는 모습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매를 맞았다. 놈만 그랬다.

입만 열면 어떤 놈 자식인지 알 게 뭐냐고 투덜거렸다. 놈과 남자는 그야말로 판박이였는데도. 어머니는 놈을 지켜 주지 않았다. 남자와 언성을 높이고 싸우면 집을 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날은 놈이 어머니 몫까지 죽도록 맞았다.

남자가 왜 주완 자신만은 그냥 내버려 두었는지 모른다.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신으로 인해 돈 걱정 없이 살게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에게 놈과 자신의 용도가 달리 구분돼 있었기 때문인지.

남자에게 맞고 나면 놈은 꼭 어딘가에 분풀이했다. 어머니가 키우던 새는 진즉 놈의 돌에 맞아 죽었다. 작은 연못에 풀어 놓았던 관상어들도 지느러미가 다 뜯겨 마른 흙바닥에 버려졌다. 남은 거라곤 하나뿐이었다. 좁은 집에 살 때부터 놈을 쫄쫄 따라다니던 똥강아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짐승의 앙칼진 울음소리를 들었다. 대문에 놈의 강아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올가미에 목을 묶인 채 네 다리를 고통스럽게 내차면서.

놈은 대문 안쪽에서 올가미와 연결된 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강아지가 버둥거릴수록 놈의 얼굴이 점점 환희와 희열로 물들었다.

‘그만둬! 가엾잖아!’

있는 힘껏 놈을 밀쳤다. 순간, 놈이 줄을 놓치면서 강아지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한달음에 달려갔을 때, 강아지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말랑한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굽은 앞발은 경련하듯 부들부들 떨렸다.

‘네가 죽였어.’

놈은 그렇게 남 탓을 했다. 가증스럽게도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 분한 얼굴로.

차마 제 아버지에게 대들진 못하고, 대상을 잃은 노여움은 저보다 약한 상대를 찾아 헤맸다. 처음에는 개미와 파리, 바퀴벌레 따위였다가 새, 잉어, 그리고 강아지에게까지. 종국에는 사람을 해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낳은 셈이었다.

노크 소리에 우형석의 눈이 뜨였다. 의자에서 잠들었던 탓에 온몸이 뻐근했다. 뒷덜미를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안 가 그의 발에 뭔가가 툭 걸렸다. 미간을 찌푸리며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발치에 여자들이 여럿 쓰러져 있었다.

발끝으로 여자들의 몸을 뒤적이듯 가볍게 툭, 툭 쳐 봤다. 피와 멍,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 자연광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게, 잘들 좀 하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여자를 넘어갔다. 그러곤 창문부터 활짝 열었다. 바깥 공기가 밀려들며 비로소 방 안 가득하던 피 냄새가 옅어졌다.

안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자, 문밖의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형님, 접니다.”

“들어와.”

이내 한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우형석을 향해 극진하게 인사부터 했다.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달려온 이유만 보고할 따름이었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형님.”

“찾았어?”

우형석의 시선이 단박에 사내에게 꽂혔다. 사내는 네, 하며 다시금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곤 우형석이 묻기도 전에 그가 궁금해할 소식을 소상히 전했다.

“지방에 중앙 정신 병원이라고, 거기 환자 중에 박주완이란 놈이 있었습니다. 입원 시기도, 나이도 형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일치합니다.”

“그래?”

우형석의 입가에 설핏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도 낯빛이 어느 때보다 스산해 보였다.

“궁금한데? 날 보면 박주완, 그놈이 어떤 얼굴을 할지.”

우형석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제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곳에는 생긴 지 오래된 흉터 하나가 또렷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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