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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18화 (1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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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라지게 하는 도술을 펼치며 대답했다.

“물건의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할 수 있고, 칠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문을 여는 능력. 오직 이리 선인만이 가졌지. 나도 이천 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리의 통로를 이용하는 건 이번이 딱 세 번째야. 임금께서 이리에게 통로 사용을 자제하라고 직접 명하셨거든. 이리는 이 일을 꽤 심각하게 여기는가 보구나.”

‘아, 그게 통로였구나.’

도진은 그제야 어렸을 때 이리가 사용했던 신묘한 도술이 ‘통로’였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예전에 도진이 집안의 적대 세력에게 납치되었을 때, 이리가 홀연히 나타나서 그를 구해 주고, 품에 안고 몇 걸음 걷자 바로 집이었던 적이 있었다.

도진은 이천 년을 산 나비 선인조차 통로가 이번이 세 번째인데, 고작 스무 해를 산 자신이 벌써 이번이 두 번째 경험이라는 게 퍽 뿌듯했다.

“가자.”

이리가 앞서 걸었다. 앞에는 어떤 문도 생겨 있지 않았고 그저 나무 화단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리가 두어 걸음 걷자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스승님!”

도진이 재빨리 이리를 따랐고, 나비와 장미토도 깊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뒤따랐다.

고욤나무 낙엽을 추적해서 도착한 곳은 인적 드문 시골이었다. 메마른 나뭇가지만 몇 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빈약한 고욤나무가 그들을 맞이했다. 차 한 대만 간신히 다닐 정도의 길이 나 있는 시골 동네를 주욱 둘러보던 이리가 주저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도진이 옆에서 걸으며 물었다.

“저기서 흉흉한 기운이 느껴지네. 좀 더 빨리 가야겠다.”

“제가 스승님 안고 뛰-. 악! 스승님!”

이리가 축지를 이용해서 한달음에 사라졌다. 도진도 어설프게 축지를 사용해 뒤를 쫓았다.

“으앗. 다들 저렇게 가 버리면.”

“어딜 가는지 대충 알겠어. 토끼로 변하렴.”

“옙!”

축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장미토가 회색 토끼로 펑, 하고 변했다. 나비가 회색 토끼를 품에 안고 나비처럼 팔랑팔랑 하늘을 날아 어느 허름한 폐가의 마당에 내려앉았다.

어흐어흐어흐…….

흐어으허으허…….

폐가에서는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다. 이리는 바위에 걸터앉아 엄한 표정을 지었고, 도진은 위아 둘을 이물일 것이 분명한 줄로 묶어서 무릎 꿇린 상태였다.

두 명의 위아는 인간 형태였는데 낯빛이 창백했고 입술은 보라색이었다. 둘 다 머리카락이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있었으며, 몹시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나비가 장미토를 쓰다듬으며 다가갔다.

“손님들이네.”

이들이 바로 역병을 퍼뜨리는 역병신, 호반손님과 각시손님이었다.

“역시 너희가 그 녀석들을 죽였구나. 왜 그랬지? 너희 동네 잡것들한테나 실컷 퍼뜨리지 왜 중간계에 와서 잘 살던 내 새끼들을 건드려?”

“아이고. 선인마마들.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소이다. 기껏해야 썩어 가는 나무들한테만 역병을 옮기며 착실하게 살았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무슨 횡포란 말이오.”

“찰마 공주도 너희가 이딴 짓을 했다는 걸 아나?”

“미, 미치셨소? 여기서 찰마 공주님이 대체 왜 나오는지. 우리 죽일 일 있소?”

“그만 좀 발뺌해라. 방금 너희 꼬리를 밟고 왔거든?”

나비가 고욤나무 낙엽을 흔들거렸다.

호반손님과 각시손님은 엎드려 도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내 발뺌했다. 도진이 포승줄을 붙잡은 채 이리에게 속삭였다.

“스승님, 이 새끼들 끝까지 모른 척할 삘인데 그냥 그 찰마 공주라는 분한테 직접 물어보시죠?”

손님들은 처음에는 이런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설마 진짜로 찰마 공주에게 연락할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리가 ‘멀리 나비’를 꺼내고.

[찰마 공주. 손님들에게 역병을 퍼뜨리게 시켰어?]

문장을 쓴 다음 종이를 접자 더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다 털어놓겠소!”

“제발 공주님께는 말하지 마시오!”

“공주님이 알면 우리는 끝장이오!”

“우리는 연좌제란 말이오, 제발!”

도진이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털어놓을 거 빨리 털어놓자. 괜히 시간만 끌고 있어.”

이리는 종이를 불태워 없애고는 역병신의 앞에 섰다.

“내 눈을 보면서 얘기해.”

“…그대는 이리 선인이 아니외까. 이리 선인과 시선을 마주하면서 거짓을 발설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맞아. 바로 그래서 내 눈을 보고 말하라는 거야.”

“…….”

호반손님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거미줄처럼 표면이 갈라진 까만 눈이 이리를 힘없이 쳐다봤다.

“알다시피 우리 하계는 살아가기 어려운 곳이라 끔찍한 환경에 견디지 못하는 미물들은 중간계로 많이들 도피해서 살고 있소이다. 이건 이리 선인과 임금님도 눈감아 주고 있다고 들었소.”

“맞아. 계속 말해.”

“그런데 얼마 전부터 중간계에 사는 우리 미물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생겼소.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것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세 번이나 거듭해서 일어난 것이오.”

“…….”

“우리끼리 사인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역병 때문에 죽은 것이었소.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오래전에 박씨 부인에게 문관손을 잃고 각시와 나, 둘이서만 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역병을 창조해 낸 적이 없단 말이오. 귀신인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니겠소?”

호반손님은 내내 이리의 눈을 직시하며 이야기했고 무척 억울하단 투였다.

“어찌 된 연유인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찰마 공주님께 말씀드리면 우리가 허락 없이 중간계에 들락날락한 게 들통나니 고민하다가 대적(大賊)께 말씀드렸소.”

“대적? 지하국 대적 말이냐?”

나비가 놀라며 확인했다. 호반이 침통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도진이 이리에게 물었다.

“지하국 대적이란 건 또 누군가요?”

“하계에 지하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서 사는 위아야. 아주 포악하며 강한 힘을 가졌지. 찰마 공주의 직속 수하 둘 중 하나이기도 하고.”

“갈래는요? 악신? 요괴?”

이리가 대답하지 않자 의아해진 도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조용히 있던 각시손님이 대신해서 도진의 궁금증을 해결해 줬다.

“대적은 악신도, 요괴도 아니오. 그는 장군이외다.”

“장군…….”

장군은 장사의 다음 갈래였다. 도진이 눈을 크게 뜨고 이리를 쳐다봤다. 호반손님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이리가 결국 도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짧게 한숨을 쉬고서는 설명했다.

“인간이 모두 착한 인간만 있는 게 아니라 악한 인간도 있듯이, 도사와 장사 또한 착한 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악한 도사와 장사도 존재해. 그 악한 자들은 악한 장군과 악한 선인이 되고…. 그중에 하나가 바로 대적이야. 그리고 찰마 공주 또한 본래 선인이었지.”

“그렇군요. 그런데 이게 뭐라고 대답하기 꺼려하세요? 제가 혹시 악한 장군에 끌릴까 봐 그러신 거면 마음 쓰실 필요 없어요. 저는 장군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니까. 선인이 되고, 임금이 될 테니까요.”

“…하긴 그렇지.”

이리가 옅게 웃었다.

사제가 서로 마주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닌 흉흉한 심문 과정에서 갑자기 말랑말랑한 분위기가 피어오르자 나비가 당황했다.

“이리야…. 너희 지금 너무 이상해.”

“매우 오묘하오.”

“아주 수상하오.”

삑삑. 손님들에 이어 토끼까지 한마디씩 던졌다. 도진은 뻔뻔하게 웃었으나 이리는 좀 민망해져서 다시 바위에 걸터앉았다.

손님들이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해졌으니 이제 더는 시선을 마주할 필요는 없었다.

“계속 말해 봐.”

“…대적께서는 우리의 보고를 흘려듣지 않으시고 진현계에 첩자를 보내 비슷한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알아보시었소. 그러다가 나비 선인에게도 근래에 비슷한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시고, 우리를 보내 알아보게 한 것이오. 아마 어젯밤 우리가 그곳에 알아보러 갔다가 낙엽을 흘린 듯하오.”

나비가 안고 있던 토끼의 긴 꼬리를 주욱 잡아당겼다.

“내 궁에 첩자가 있대! 대체 권속들이 하는 일이라곤 뭐냔 말이니? 첩자 하나 안 잡아낼 거면 내 궁에서 음식 축내지 말고 중간계에나 와서 살아!”

삐익…. 장미토가 나비의 품을 파고들면서 애처롭게 울었다.

“그럼 결국 네놈들도 역병의 원인을 모른다는 뜻이군.”

“그렇소.”

도진의 말에 호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진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그대는… 아까의 대화를 들어보면 장사 같은데 맞소?”

“장사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전염병이라도 퍼뜨리게?”

“설마 우리가 병을 퍼뜨린다고 통하기나 하겠소? 장사에게….”

“이리 선인께서는 신묘한 도술에 전지전능한 이물, 장성한 장사까지 가졌으니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겠소이다.”

각시손님이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말했다. 경외감과 적대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초리였다.

“이 역병신 새끼들이 감히 누구한테.”

도진이 당장에 눈이 시뻘게졌다. 그가 포승줄을 더욱더 조이자 호반과 각시가 비명을 질렀다.

“그럼 지들도 열심히 덕을 쌓고 선인이 되든가. 노력은 전혀 안 하면서 열등감이나 처먹고 그걸 또 자랑이라고 표출하고 있네. 어이없는 새끼들 아냐 이거. 스승님, 이 새끼들 어떡할까요? 퇴치할까요? 저 제령술 완전 잘하는데.”

“놔두고 우리는 이만 돌아가자. 상담 시간 다 됐어.”

“네에. 야, 이 역병신놈들아. 우리 스승님이 마음이 넓으셔서 산 줄 알아. 새끼들아. 앞으로 어디 가서 스승님 험담하다가 걸리면 내 손에 뒤진다.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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