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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24화 (2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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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들은 새카만 두루마기에 새카만 갓, 새카만 탈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두 팔을 넓은 소매에 넣은 채 공중에 부유 중이었다.

“어어. 이것 좀 봐라.”

그들은 곧 현관 바닥에 떨어진 짚신 인형을 발견했다.

“이 인형에 음기가 뭉쳐 있었어. 하지숙이 죽지 않으려고 애를 좀 쓴 모양인데.”

“무당들도 좀 공부를 하고 발전을 해야 돼. 때가 어느 땐데 요즘도 우리가 짚신 인형에 속아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지.”

17차사가 짚신 인형을 주워 들자 지푸라기는 바로 삭아져서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하지숙은 어디 있나……. 어?”

한 걸음 더 들어와 지숙을 찾던 차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팔을 뻗었다.

창백한 손을 활짝 펼친 그가 공중에서 무언가를 낚아챘다.

“이건….”

“뭐야. 뭔데?”

“하지숙 혼의 재네. 이미 다른 차사가 수거해 간 모양이야.”

재의 정체는 도진이 특별한 주술로 불태운 지숙의 머리카락이었다.

저승사자들이 혼을 수거하고 나면 재가 공중에 단시간 남아 있는데 그것을 흉내 낸 것이었다.

다른 차사가 재를 확인하고는 거칠게 욕했다.

“아이, 씨. 혼 맞네. 어떤 새끼가 체크 빠뜨렸어.”

“난 진짜 동료 직원의 무능 때문에 한 번 더 일하게 되는 게 너무 싫어.”

“나도. 지긋지긋해.”

무능한 저승사자들이 동료 험담을 하면서 뒤돌아 스르르 나갔다.

노량은 또 감개무량한 눈으로 기다리다가 도진의 오케이 사진이 떨어진 후에야 입을 열었다.

“성공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성공했다! 지숙이는 살았다! 지숙이는 손주의 손주의 손주의 손주까지 볼 거다!”

“은근슬쩍 손주 더 끼워 넣지 마라. 그리고 아직 기뻐하지 마. 세 번째가 남아 있으니까.”

“쟤네는 왜 이렇게 크로스체크를 하는 것이냐! 좀 대충 일하고 살면 안 되냐. 나쁜 사람 잡아가는 일이나 좀 잘했으면 좋겠다.”

도진이 툴툴거리는 노량을 빤히 쳐다봤다.

“너도 오늘 죽는 거 알지?”

“알고 있다. 나는 각오했다. 지숙이만 살아나면 미련도 없다.”

“…….”

노량의 말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눈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도진에게는 이리처럼 거짓을 구별해내는 능력은 없었지만, 지금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일어나. 세 번째 차사들이 오기 전에 할 게 있어.”

“뭐든 시키거라!”

짚신 인형은 차사들이 소멸시켜 준 덕분에 할 게 없고, 집 안에 널린 ‘혼 수거의 흔적’을 없애야 했다.

도진과 노량은 집안 곳곳을 폴폴 날아다니는 머리카락을 태운 재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회수했다. 도진은 주술을 써서 재를 복원하여 정말 다 회수했는지 확인까지 마친 후 재를 없애고 다시 은신했다.

마침내 시간이 되었을 때.

“8차사, 이곳이야?”

“응. 분명 명부에 체크는 되어 있는데 함은 비어 있어.”

“별다를 거 없어 보이는데 일단 들어가지.”

둘은 아까의 차사들처럼 노크를 세 번 하고, 이름을 세 번 부른 후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이, 이, 이게 무슨…!”

“세상에. 이곳에서 무슨 잔치라도 열렸었단 말이야?”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휘황찬란하게 차려진 잔칫상이었다.

고깃국부터 나물무침까지 하나같이 저승사자들이 좋아하는 식단으로만 짜여 있었다.

저승사자들은 홀린 듯이 식탁 앞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옷과 신발을 발견한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탈과 두루마기를 벗고, 새 두루마기로 갈아입었다. 신발도 새 가죽신으로 바꿔 신었다.

“역시 이승 옷이 좋아. 부드럽고 연해.”

“나 새 옷 입는 거 41년 만이야.”

“나도 그쯤 됐어. 8차사, 그 진홍색 두루마기. 진짜 잘 어울리는걸.”

“5차사, 너도 그 진녹색 두루마기 멋있다.”

서로를 칭찬한 둘은 나란히 앉고는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들어 고깃국부터 떠 마셨다.

“크으. 이 맛이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120년 만이야. 5차사, 내가 말했었나? 생전에 우리 어머니가 국밥집을 운영하셨다고.”

“8차사, 우리 아버지도 국밥을 기가 막히게 끓이셨어. 인간이었을 때가 생각나는걸.”

조금 희멀건 한 걸 빼면 평범한 청년 외모인 두 저승사자가 식사를 시작했다.

도진과 노량은 소파와 거실 사이의 구석에 은신한 채로 시간을 쟀다.

5분…….

10분…….

20분…….

이제 10분만 있으면 30분이 지나고, 그러면 저승사자의 명부에서 하지숙이라는 이름이 사라진다.

‘지연 시 취소의 원칙’

90분 이상 지연되면 혼 수거를 취소한다는 저승의 대원칙 중 하나였다.

예전에는 90분이 아니라 90시간, 90일이 지연되더라도 끝까지 혼을 추적해야 했는데, 일거리가 많아지면서 법률을 개선했다.

21분이 넘어가는 타이머를 보면서 노량은 가슴 졸이고, 도진은 이리에게 업적을 떠벌리는 상상을 하는 그때였다.

두우웅-!

차사들이 나타날 때와는 또 다른 기묘한 진동이 울렸다.

도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감동하며 한 입, 한 입 떠먹던 차사들도 불길함을 느꼈는지 행동을 멈췄다.

그들 앞에 입김이 나올 만큼 서늘한 안개가 자욱하게 끼더니, 안개 속에서 커다란 칼을 찬 사자와 뒷짐을 진 사자가 등장했다.

“네놈들 여기서 뭣들 하느냐!”

“히익!”

“허윽!”

칼을 찬 사자가 크게 꾸짖자 저승사자들이 기겁을 하면서 엎드렸다. 새로 나타난 사자들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탈을 쓰고 있지 않았다.

뒷짐을 진 차사는 몸매가 호리호리하면서 유려하고 매끈한 얼굴이었고, 칼을 찬 사자는 우락부락한 덩치에 험상궂은 얼굴이었다.

“가, 강림도령님. 월직차사님을 뵙습니다.”

“가, 강림도령님과 월직차사님을 뵙습니다.”

노량이 입을 쩍 벌리고 도진을 쳐다봤다. 도진은 맥이 탁 풀려서 주저앉아 버렸다.

여기서 강림도령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승의 주인인 염라대왕은 밑으로 세 수하를 거느리고 있다. 대별왕과 시왕들, 그리고 강림도령.

염라대왕의 직속 수하이자 49차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 강림도령이 이곳에 직접 강림하신 것이다.

일이 너무 커졌다.

도진이 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을 하는 사이 강림도령은 저승사자들로부터 이 잔칫상과 새 옷, 새 신발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하지숙을 살리고 싶어 하는군.”

강림도령은 소매에서 붓과 명부를 꺼냈다. 혹시 명부에서 지워 주나 싶었지만 어림도 없이, 혼의 수거 기한을 일천 시간으로 연장해 버렸다.

“모습을 드러내라.”

강림도령이 정확히 도진과 노량 쪽을 바라봤다. 노량은 안절부절못하며 도진과 강림도령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쪽이 아무 반응이 없자 강림도령이 손을 뻗었다.

도진은 들키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 그와 동시에 은신술을 풀었다.

둘의 모습이 나타나자 음식을 먹던 사자들이 몹시 놀랐다. 도진은 강림도령에게 태연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림도령님. 처음 뵙습니다.”

“가, 가, 가 아, 아, 안.”

노량 또한 인사했지만 너무 떨고 있어서 거의 문장이 되지 않았다.

“너희는 누구냐.”

“저는 이런 쪽에 나름대로 일가견을 지닌 사람이고, 이쪽은 저한테 의뢰한 노량입니다.”

강림도령이 노량에게 서늘한 시선을 던졌다.

“복배바리는 이제 곧 죽기로 되어 있군.”

“네. 대충 삼십몇 분 후에 죽을 예정이죠. 그런데 자기가 죽는 건 상관없고, 인간 하나만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 빌길래. 그렇게 되었습니다.”

“…….”

강림도령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도진을 바라봤다. 관찰하는 시선이었다. 도진은 어깨를 활짝 펴고 당당하게 시선에 맞섰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시선의 소유자인 이리 선인에게 단련된 덕분인지 전혀 떨리지 않았다.

도진의 단단한 체격을 훑은 강림도령은 “도사는 아닌데.” 하고 중얼거렸고, 잘생기고 오만한 얼굴을 훑으면서는 “요괴도 아니고.”라고 중얼거렸다.

옆에서 월직차사 또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웃거렸다.

“뭘까요? 퇴마사일까요?”

“퇴마사라기엔 음기가 부족하군.”

“하지만 기운이 요상시러운디. 뭔가 익숙하기도 하구 말입죠.”

“…됐다. 우리는 혼만 수거해 가면 그만이지.”

강림도령이 홱 등을 돌렸다. 그때 도진이 주술로 바람을 일으켰고, 바람으로 인해 강림도령의 소맷자락이 펄럭펄럭 흔들렸다.

“인간 새끼가!”

월직차사가 커다란 칼을 휘둘러 바람을 끊었다. 그전에 이미 강림도령의 손아귀에서 바람이 흩어져 명부를 빼앗는 것은 실패했다.

강림도령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다시 뒤돌았다.

“너는 퇴마사인가?”

“무당입니다만.”

“거짓말을 일삼는 걸 보면 분명 도사는 아닌데.”

덕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말을 조심하는 다른 도사들과는 달리 흩어져도 더 많이 쌓으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도진은 욕과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편이었다.

“나를 알면서도 하지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여기서 패배를 인정하고 하지숙의 혼을 가져가세요, 하는 건 내 성격이랑 맞지 않아서요.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제안?”

“대결을 해서 이기는 쪽을 따르는 겁니다. 대결 종목은 씨름. 월직차사님, 어때요?”

도진은 우락부락한 월직차사를 보며 말했다. 도발당한 월직차사가 코웃음을 쳤다.

“네놈이 인간계에서 힘을 꽤나 쓰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나랑 했다가는 네 팔이 으스러질 수도 있다.”

“글쎄. 누구 팔이 으스러질지는 해봐야 알지 않을까 싶은데. 뭐. 무서우면 다른 종목으로 바꾸고요.”

“하. 그래, 세상은 넓다는 걸 내가 친히 알려주지! 강림 님, 대결을 받아들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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