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34화 (34/203)

34

ㅇㄷ

혈육3

?? 오빠 맞아?

ㅇ ㅇㄷ

혈육3

어디긴 뭐가 어디야 학교지 당연히

혈육3

수업 중인데 왜?

“지금 수업 중이래요. 그런데 수업 중에 어떻게 핸드폰을 하지? 본래 압수하지 않나?”

“너도 학교 다닐 때 핸드폰 두 개 가지고 다녔잖아.”

“그랬죠, 참.”

도진이 빠른 속도로 메시지를 보냈다.

ㅈㅅ ㅇㅈ?

혈육3

??

혈육3

한국에서 살면 한국어 좀 해라

점심 언제냐고

혈육3

40분인데 왜?

혈육3

왜냐니까?

“1학년이랑 3학년이랑 점심시간이 20분 차이 날 거예요. 유재호는 12시부터가 점심시간인가 보네요.”

11시 40분에 도희가 쓴 편지를 받고, 그걸 12시에 아무 학생 통해서 전달하면 된다.

“완벽한 계획이죠.”

“그대로만 되면 좋겠지만…….”

“그대로 될 거예요. 걱정하지 마시라구요.”

지잉, 지잉. 도진의 핸드폰이 전화라도 온 것처럼 연신 진동했다. 둘의 시선이 화면으로 향했다.

혈육3

대체 왜그러냐고

혈육3

??

혈육3

ㅡㅡ??

혈육3

아니 설명은 안해주고 자기말만하네

혈육3

재수없어ㅡㅡ

도진이 인상을 와그작 구겼다.

“엊그제 중딩이었던 게 누구 보고 재수 없대. 재수 없게.”

이리의 입장에서는 도진이나 도희나 엊그제도 아니고 1초 전 태어난 갓난아기나 다름없었지만, 도진에게 3년 차이는 아주 큰 차이일 것이다.

“도희 삐치지 않을 만큼만 설명해 줘. 불고양이나 이물 얘기는 하지 말고.”

“네.”

도진이 귀찮은 티 팍팍 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승님이랑 같이 잠깐 너 보러 간다

혈육3

스승님?

혈육3

헉 그 선인님?

혈육3

이리선인님?

혈육3

오빠 일하는 골동품점 거기

혈육3

그 존나예쁜선인님도 오시는거야??????

혈육3

좀더일직말했어야지!!!

존나 예쁜 선인님이 민망함에 얼굴을 돌렸다. 이리는 대체로 여유롭고 나긋하고 부드럽고 다정한데, 가끔 이렇게 민망해하거나 난감해할 때마다 도진은 너무 귀여워서 심장을 부여잡고 싶었다.

“도희가 내 스승님 너무 좋아하네요. 내 건데.”

“내가 왜 네 거야…. 나도 도희 봐서 좋아. 그런데 왜 저장된 이름이 ‘혈육3’이야?”

“말 돌리지 말고요.”

“말 돌리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래. 너 동생 도희 한 명뿐이잖아. 왜 혈육3이지?”

“…….”

“설마…….”

이리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도진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혈육1은 엄마, 혈육2는 아빤데요.”

“…….”

이리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했다. 웬만해서는 이런 표정을 짓지 않는데…. 도진은 사실 이 한심하다는 표정마저도 귀엽고 예뻐 보였다. 가끔은 한심하다는 시선을 받는 것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앵앵.

불고양이가 꼬리로 탁탁 의자 시트를 치면서 도진의 한심함을 비웃자 도진의 이마에 혈관이 솟았다.

“야. 스승님만 날 비웃을 수 있어. 네가 뭔데 비웃어.”

애앵!

“애앵거리고 있네. 씨발,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해. 한국말을.”

도진이 불고양이의 꼬리를 붙잡고 뱅뱅 돌렸다. 그러나 불고양이가 앵앵앵 울며 이리 선인에게 호소하는 바람에 그마저도 몇 번 돌리지도 못하고 멈춰야 했다.

도진은 가족에게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다. 나름 아끼고는 있지만……. 가족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코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색함도 아니다.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 이유는 근원적인 부분에 있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고작 100년을 살다가 삶을 마감한다.

도진은 가족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 그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은 길어야 100년을 살고 죽는다고. 그러나 나는 100년을 수백 번, 혹은 수천 번도 겪을 거라고.

이 기나긴 삶에서 엄마도, 아빠도, 도희도 정말 찰나로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슴에 차가운 바람이 스미는 것 같아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조금 힘들었다.

마치 새드엔딩인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기분이었다.

애앵.

불고양이가 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상념에 빠졌던 도진이 정신을 차렸다. 불고양이의 뱃살을 주물럭거리던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운 것 같았다.

“아. 요괴 주제에 이게 뭐가 아프다고 엄살이야.”

“그게 아니라 네 복잡한 감정에 반응해서 운 거야. 불고양이는 인간의 감정에 예민하거든.”

이리가 도진의 품에서 불고양이를 가져와 제 품에 안았다.

“저 감정 막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는데요.”

“그래. 이제 들어갈까?”

“네.”

도진과 이리가 차에서 내렸다. 불고양이가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둘을 응원했다.

은신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교문을 가볍게 통과해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도희 몇 반이야?”

“3반 3번이요.”

“번호까지 알고 있구나.”

“아니, 3이라서. 반도 3인데 번호도 3번이라서 그냥 저절로 외워진 거거든요? 딱히 동생한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거든요?”

“알겠어.”

이리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도진은 쑥스러워져 볼만 긁적였다.

학교 건물은 깔끔하고 쾌적했으며, 잔챙이 위아들이 많았다. 산에 사는 잔챙이들이 다람쥐, 산토끼, 산새처럼 초목과 짐승에서 갈라져 나온 종류라면, 학교에 사는 잔챙이들은 색연필, 지우개, 각종 교구 등 사물에서 갈라져 나왔다. 모두 인간에게 무해한 위아들이었다.

뀨우뀨, 삥삥!, 삐익삐익.

한가롭게 복도를 돌아다니던 잔챙이들이 이리 선인을 발견하고 바삐 몰려들었다. 이리는 신발에 올라타거나, 옷을 잡고 기어오르거나, 안아 달라고 조르거나 하는 위아들을 하나하나 다 만져 주고 쓰다듬어 줬다.

“스승님, 이럴 때 보면 선거 유세하는 것 같아요. 유권자들에게 한 명, 한 명 악수해 주는…. 아, 아니다.”

도진이 말을 바꿨다.

“광신도들을 둔 종교 단체 교주가 맞겠네요.”

“…도진아. 차라리 정치인에 비유해 줘…….”

“네? 정치인이 영 별로라서 교주로 비유한 건데요. 사실 스승님이 신인 건 맞잖아요. 그것도 위로 단 하나의 존재밖에 없는 엄청난 천지신명이시잖아요.”

천지신명 중에서도 ‘가장 앞선 천지신명’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이리 선인. 그의 위에 있는 존재는 진현계의 임금님 단 하나뿐이다. 그나마도 예의상 위에 있다고 쳐 주는 거지 엄밀히 말하면 임금이 이리보다 아래였다.

“그만하자. 민망하네.”

이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민망했다. 천지신명 중에선 가장 앞섰다고 해도 태고의 선인들 중에서는 마지막이므로…….

“스승님 진짜 겸손하세요. 제가 스승님처럼 세계의 2인자, 이러면 엄청나게 자랑하고 다녔을 거예요.”

“1인자 되면 자랑하고 다녀. 얼른 내 위에 올라타서 나를 깔아뭉개렴. 나도 그날을 기다릴게.”

“…….”

“왜 그래?”

도진이 우뚝 멈추자 이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도진이 입술을 깨물고 이리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짝사랑 중인 20살 남자애한테 내 위로 올라와라, 깔아뭉개라 이런 말씀 하시면 안 돼요. 게다가 여긴 신성한 학교인데 어떻게…. 자각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진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도진이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귀가 빨개져 있었다. 무슨 마음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라 이리는 그저 옅게 웃었다.

3반 바로 옆에 있는 과학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자물쇠가 걸려 있었지만 간단한 주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대로 환기하지 않았는지 화학용품 냄새가 조금 나서 도진이 창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과학실을 구경하는 이리를 보고 웃었다.

“스승님은 이런 교실 탐방은 처음이에요?”

“학교는 몇 번 와 봤는데 교실에 들어온 건 처음이야. 학생들은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는구나.”

“위아들은 어디서 공부해요? 위아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생존에 필요한 건 스스로 깨우치고, 대부분은 주위의 위아들이 가르치지. 가족이나 아니면 이웃이나. 주로 산신령이 그 역할을 해. 자기 영역에서 위아가 태어나면 산신령이 책임지고 가르쳐야 한단다.”

이리가 의자에 앉았다. 도진은 이리가 교복만 입고 있으면 누가 봐도 이 학교 학생인 줄 알겠다고 생각하며 책상에 기댔다.

“그것도 임금님의 규율이에요?”

“규율까지는 아니고 암묵적인 규칙이야. 하지만 신령이 교육을 맡아도 인간들처럼 세세하게 가르치진 않아. 과학실에서 물 분자 구조를 가르치지도 않고, 두껍게 책을 만들어 우주를 가르치지도 않지. 대부분 위아들은 천문학에 대해서는 모를 거야.”

잔챙이 위아나 낮은 갈래의 위아 중에는 옛날에 태양이 두 개였는데 대별왕이 활을 쏴 하나를 꿰뚫었고, 그게 샛별이 되었다. 라는 설화를 아직도 믿는 존재들이 많았다.

“이렇게 교육에 열심인 종족은 인간과 인간형 위아들밖에 없어. 그래서 인간이 중간계를 지배하게 된 거겠지.”

예전에는 위아들이 함께 어울려 살았지만 이제 인간계에서 위아들은 숨어 사는 처지가 되었다. 명실상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오죽하면 중간계를 아예 인간계라고 부를까.

“사실 뭐 진현계도 인간이 지배하는 것과 다름없죠. 지금 왕도 인간 뿌리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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