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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41화 (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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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도진은 붉은 기가 도는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방안을 구경했고, 신령은 그런 도진을 구경했다.

부부는 가슴이 답답했다.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장사라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아는 천하장사 할 때의 장사가 맞는지. 이런 신기한 곳에 사는 신령보다 더 까마득한 존재라면 대체 어떤 존재인지…. 그래서, 우리 아기는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신비(神祕)의 한가운데에 들어온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들은 질문만 쌓여 갔다.

가끔 도진이가 웅얼웅얼하는 소리 말고는 고요한 시간이 이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도진이 불현듯 고개를 들더니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신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분이 오셨구나. 일어나서 인사하거라.”

“아…. 예.”

부부도 따라서 일어났다. 방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문이 드르륵, 저절로 열렸다. 나타난 이는 새카만 머리칼에 맑은 눈빛을 가진 예쁘장한 청년이었다. 언뜻 소년으로도 보일 만큼 어린 이였다. 윗분이라 해서 막연하게 노인을 상상했던 부부는 놀라서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선인님.”

“안녕, 이해자. 이 사람들이 그들이야?”

“예.”

선인이라 불린 청년이 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부부는 뒤늦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이 아이의 부모입니다.”

“그래, 안녕.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어.”

“…….”

‘고생이 많았겠어’라는 말 한마디에 부부는 울컥 솟는 뜨거운 감정을 억누르느라 입을 열지 못했다. 이것도 어떤 신묘한 능력일까. 아니면 지금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어떤 말이든 가슴에 와 닿는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청년은 곧장 유모차 앞으로 다가갔다.

서슴없이 손을 뻗는 청년을 보고 부부가 깜짝 놀랐다.

“조,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 아이는…….”

“이름이 뭐라고 했지?”

“도진…. 김도진입니다.”

“그래. 도진이. 아주 예쁜 이름이야. 얼굴도 잘생겼구나.”

청년은 부적을 하나하나 떼어 내고 밧줄도 부드럽게 풀었다. 아기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어서 꽁꽁 싸맸던 답답한 담요를 벗었다.

부부가 보기에, 가녀린 체구의 청년은 아기의 발길질 한 번에 나가떨어질 것만 같았다. 불안한 그들과 달리 청년은 오히려 귀엽다며 웃고는 도진의 통통한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안녕, 도진아. 나는 이리야. 이리 선인, 해 봐.”

“이리! 이리 서닌!”

“그래, 그게 바로 나야. 말도 잘하네.”

도진이 앙증맞은 손으로 이리의 손가락을 붙잡으려고 했다. 부부가 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도진의 손은 이리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몸이 환영이기라도 한 것처럼…….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힐 때까지는 손잡기는 뒤로 미루자.”

“우…….”

“볼이 말랑말랑해. 정말 귀엽다.”

이리는 어떤 신묘한 능력으로 도진은 저를 못 만지게 하고서는 자신은 도진의 말랑말랑한 볼살을 마구마구 만졌다.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는 부부에게 이리가 말했다.

“애를 굶기지 않은 모양이네.”

“아, 예…. 이유식을 먹이고 있습니다.”

“많이 다쳤겠구나.”

“…네.”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건 전투였다. 양 손목을 걷어차여 뼈에 금이 가고, 머리칼을 쥐어뜯기고. 그렇다고 굶길 수도 없는지라 보호구를 착용하고 꽁꽁 묶어 놓은 다음 밥을 먹였다.

“선생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우리 아기가 귀신에 씐 겁니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게. 일단 앉자.”

“예.”

“내가 도진이를 좀 안고 있어도 될까?”

김순호가 기겁했다.

“사, 상관없습니다만 그러다 다치면…….”

“나는 안 다쳐. 아까 봤잖아. 내 몸을 통과하는 거.”

“하지만…….”

“그럼 안을게.”

이리가 도진을 안아 들었다. 도진이 눈을 땡글땡글 뜬 채 이리를 바라봤다.

“애가 묵직하네. 장사가 다 그렇지만 도진이도 아주 크게 자라겠어.”

“이리.”

“그래, 내가 이리란다.”

“이리이리.”

이리가 도진을 안은 채 아까 신령이 앉았던 상석에 앉았다.

도진은 이리의 품 안에서 옹알이하며 몸을 움직였다. 이리의 품이 그리 넓지 않아 불편한 듯했지만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안에 파고들었다. 마치 어린 새가 온기를 찾아 어미 새의 품에 파고들듯이 이리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두 뺨은 발그레했고, 두 눈은 초롱초롱했다.

정은희가 눈물을 훔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품에 안겨 보는 아기였다. 그게 제 품이 아닌 점은 슬펐으나 누구라도 아기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궁금한 게 많을 텐데 뭐부터 설명해야 할까. 이해자야, 이들에게 아기장수에 대해서는 설명했어?”

“아니요. 아직 아무 얘기도 안 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주렴.”

“예.”

이해자가 부부에게 장사에 관해 설명했다. 위아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았다.

인간 중에는 간혹 괴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가 있다. 그런 아기를 아기장수라고 부른다. 하루가 한 달인 것처럼 빠르게 성장하는데, 대개 열서너 살을 넘지 못하고 단명한다. 그러나 위기를 벗어나 장성하여 성인이 되면 ‘장사’라고 부르는 종이 된다.

“종……? 그럼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겁니까?”

“이해가 빠르구나. 그렇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게 되지. 아프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고, 늙지도 않으므로 더는 인간 사회에서 살기 어렵게 될 것이다.”

“저희는… 도진이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괴력을 없애지는 못한다. 이미 영안 또한 열렸으니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다.”

부부는 괴롭게 침음했다.

인간이 아닌 채로 오래오래 살거나.

인간인 채로 단명하거나.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평범하게 살지 않아도 좋으니, 인간이 아니어도 좋으니 이 아기를 구해 주십시오.”

“그래. 아기를 위해 이분이 여기 오신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부부의 시선이 이리에게 옮겨갔다. 이리는 도진을 품에 안고 다독이고 있었다. 도진은 지금까지 뾰로통해지거나 토라진 적은 있어도 칭얼거린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히잉, 히응, 하며 칭얼거리고 있었다. 이리의 손가락을 붙잡을 수 없는 게 속상한 모양이었다.

신령이 이리에게 물었다.

“선인님, 아기를 데리고 가실 겁니까?”

부부가 숨을 들이켰다. 데리고 간다니. 어느 특정 장소에서 치료를 해야 하는 건가? 한번 안아 보지도 못하고 아기와 헤어져야 하나? 불안에 젖는 부부에게 안심하라는 듯 이리가 미소 지었다.

“그럴 필요는 없지. 이들은 부잣집이니까 말이야. 우리 대여점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 놓고 내가 왔다 갔다 하며 가르치면 돼.”

“아…….”

다행이다. 부부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신령은 흠, 하며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기장수가 권력을 누리는 부잣집에서 태어났네요. 흔치 않은 일 아닙니까?”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지.”

이리는 품 안의 아기를 간지럽혔다. 말랑말랑한 아기 볼살 촉감이 아주 좋아서 계속 손가락을 갖다 댈 수밖에 없었다.

“너는 정말 특별한 존재란다, 어린 장사야.”

도진이 이리를 빤히 쳐다봤다. 어떻게 해도 상대를 만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조금 부아가 치민 상태였다.

지금까지 도진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생명이 자신보다 약한가, 강한가를 계산했다. 부모님도, 푸른 불덩어리도, 모든 존재가 저보다 약했는데 눈앞의 존재만은 어떻게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 강했다.

까마득했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태어나자마자 머릿속에 자연히 떠오른 존재, ‘이리 선인.’

이 사람을 따라야 한다. 어린 동물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미의 품에 파고들 듯. 아기장수의 본능이 그렇게 외쳤다. 이 사람을 붙잡아야만 한다고.

* * *

도진은 그날의 첫 만남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던 아름답고 어여쁜 얼굴. 밤하늘을 옮겨 놓은 듯한 검은 눈동자에 별처럼 반짝이는 눈빛. 부드러운 미소와 다정한 표정. ‘도진아’하고 부르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까지.

그에게 이리는 밤하늘처럼 아득하게 멀리 있는 존재였다. 이만큼 거리가 가까워진 지금도. 손가락 정도는 마구마구 만지작거릴 수 있는 지금도 말이다.

신성하고 거룩한 그 존재는 감정의 폭이 좁다. 크게 화내지 않고, 크게 웃지도 않는다. 언제나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람.

그러나 그렇다고 아예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놀림 받으면 발끈하기도 하고, 당황하거나 난처해하기도 한다. 순수하게 기뻐하거나, 안타까움에 눈썹을 기울이거나, 깜짝 놀라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즐거움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인간적인 모습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봐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멀었다. 도진은 이리의 발끝에도 닿지 못했다.

위아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이리 선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나서는 더더욱 아득해졌다.

한 번도 연인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사실도 처음에만 좋았지 지금은 도진을 더 아득하게 만들었다.

정인도 두지 않았고, 짝사랑도 해본 적 없고, 이상형도 없다는 말은 이리의 ‘감정’이 그만큼 무색무취하다는 뜻이니까. 한번 몰래 부채를 훔쳐서 감정의 실타래를 꺼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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