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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카페 문이 열리며 종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어서 오세요” 인사하던 알바생이 손님을 보고는 입을 벌렸다. TV에서도 보기 어려운 미남이 들어오고 있었다. 키도 크고, 어깨도 떡벌어지고, 인상은 사나웠으나 이목구비가 시원하고 잘생겼다.
그런데 그 미남의 뒤로는 더 인상적인 사람이 있었다.
맑고 청초한 분위기의 예쁜 청년이었는데, 알바생은 어쩐지 그 청년을 보자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뛰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저 맑은 청년을 보고 싶은 마음 반, 당장 바 아래로 몸을 수그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반이었다.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인가 봐요.”
도진이 이리에게 속삭였다. 카페로 막 들어온 둘은 도진과 이리였다. 약속 때문에 오랜만에 인간 카페에 왔는데, 알바생이 이리를 보자마자 몹시 동요하니 이리는 마음이 쓰였다. 결국 숨어 버리듯 카운터가 보이지 않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카페 손님들의 시선이 따라오자 도진이 간단한 주술로 존재감을 흐트러뜨렸다.
“뭐 드실래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승님, 커피 말고 차 드세요. 따뜻한 차. 유자차나 모과차 이런 거.”
“그래….”
도진이 주문을 하러 일어났다. 이럴 거면 왜 물어봤는지. 이리는 속으로 웃었다.
도진은 음료 두 개에 디저트도 한아름 가지고 왔다. 둘은 오랜만에 인간의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시며 약속 상대를 기다렸다. 도진이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포크로 작게 잘라 쿡 찍은 후 이리의 입가에 내밀었다.
“별로 안 달아요. 한번 드셔 보세요.”
“응.”
이리는 야속하게도 예쁜 입술을 벌려서 먹어 주지 않았다. 도진에게서 포크를 가져간 다음 케이크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도진의 입이 튀어나왔다.
“너무해요. 그냥 받아먹어 주시지. 그렇게 철벽이실 필요는 없잖아요.”
“틈만 나면 이러는 네가 더 너무해.”
“제가 언제 틈만 나면 이랬다고 그러세요? 제가 그렇게 발랑까진 놈인 줄 아세요? 그냥 오랜만에 카페 데이트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라구요.”
“도진아. 데이트 아니야….”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대는 바로 도진의 동생 도희와 불고양이 사건 때 일방적으로 안면을 텄던 오민아였다.
바로 어제, 정신없이 고객 접대 중이던 도진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나 도희.’
‘어. 왜.’
‘존나 퉁명스럽네. 친동생한테 인사가 그게 뭐냐?’
‘용건 없으면 끊는다.’
‘아, 씨. 잠깐만. 나 할 말 있단 말이야.’
말투가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듯해 도진은 고객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도희가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요즘 민아가 이상해. 아니, 정확히는 우리가 이상해. 민아가 놀자고 하면 거부해선 안 된다는 느낌이 들고, 계속 민아 옆에 있고 싶어…. 학원에 빠지면서까지 민아랑 있고 싶단 말이야. 그렇게 절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
‘저번에 선인님이 그러셨잖아. 민아가 어설픈 주술을 따라한 것 같다고.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라고. 그래서 혹시나 해서 전화했어. 내가 좀 오바인가.’
‘오버 아니야. 잘 전화했어.’
도희는 도진과는 달리 영안도 트이지 않았고, 영감도 전혀 없었다. 다만 ‘육감’만은 보통 인간보다 몇 배로 발달했다. 그 이유는 도진 때문이었다.
도진은 어렸을 때 힘 조절이 서툴렀고, 세 살 차이인 도희를 몇 번 다치게도 했다. 이에 도희는 오빠와 장난치며 놀다가도 언제쯤 뒤로 빠져야 하는지를 빠르게 깨우쳤다. 생존본능이 육감을 발달시킨 것이다.
‘진짜 네 육감은 무시 못 하겠네.’
‘…어? 오빠 말투 좀 수상한데. 혹시 민아한테 이상한 일이 생긴 걸 알고 있었어? 알면 왜 나한테 말 안 해 줬어? 민아는 내 친구란 말이야!’
‘여기서 자세히 말하기엔 길고,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내일 시간 되냐?’
그렇게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오민아는 오늘 우리 만나기로 한 거 모른다네요. 혹시 경계할까 봐 얘기 안 했나 봐요.”
“글쎄. 널 보고 나면 경계하진 않을 것 같은데.”
“왜요? 저 잘생겨서요?”
틈만 나면 수작 부리는 도진이 바로 이리에게 끈적하게 어깨를 붙여 왔다.
“스승님이 보시기에도 제가 한 잘생김 하죠? 그렇게 오래 사셨어도 저보다 잘생긴 사람은 본 적이 없으시죠? 애인이 이렇게 잘생기면 사랑싸움을 해도 기분 좋을 것 같죠?”
“도희가 왔네.”
“아직 안 왔는데요.”
라고 답하자마자 카페 문이 열리고 도희와 민아가 팔짱을 꼭 낀 채 들어왔다.
“아, 여기 카페 비싼데. 네가 쏘는 거지?”
“당연히 내가 쏘지.”
도희는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도진과 이리를 향해 어색하게 손가락질했다.
“앗, 저기를 좀 봐. 나의 친오빠랑 오빠의 친구분이야! 이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야. 우연도 인연이라는데 합석을 한번 해 볼까?”
기계적으로 대사를 읊은 도희가 같은 쪽 팔다리를 흔들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민아가 ‘뭐야 이건?’하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뭐해? 이쪽으로 오라니까. 내 친오빠 일행과 합석을 하자니까.”
“합석을 굳이 왜 해?”
민아가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어휴, 저 망둥이.”
도진이 혀를 차며 일어났다. 저런 연기에 누가 속을까 싶었다. 민아가 수상하게 여길 게 분명하니 주술을 펼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 어……?”
민아가 도진의 얼굴을 보고서는 손가락질했다. 처음엔 눈을 빠르게 깜빡이더니 나중에는 입을 벌리고 그 다음에는 마치 전설 속 동물을 마주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퇴, 퇴마 영상……!”
민아는 지연과 마찬가지로 도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퇴마 영상에 나왔던 커다란 남자임을 알아챘다. 자연히 그 옆의 상대적으로 자그맣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청년 또한 영상에 나온 퇴마사라는 걸 짐작한 민아는 언제 경계했냐는 듯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도진과 이리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너무 신기해요. 전 2년이나 나타나지 않길래 어쩌면 귀신과 싸우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도희네 오빠였다니…….”
“우리 오빠가 찍은 관종 영상에 너도 빠져 있는 줄은 몰랐네.”
“알았으면 얘기해 줬을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민아는 도희에게 서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빛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이에요. 저희 연구회 언니, 오빠들이 여러분 알면 정말 좋아할 거예요.”
“새보르미 연구회 말이지.”
“네! 하, 저희 연구회를 아시다니 정말…. 석진 삼촌이 열심히 홍보한 보람이 있네요. 삼촌이 정말 좋아할 거예요.”
도희는 수상한 연구회에 대한 소속감이 대단한 듯했다.
“안 그래도 그 연구회 때문에 널 만나려고 했어. 너 그 사이트 회원, 맞지?”
“네!”
도진의 물음에 민아는 고개를 당차게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인터넷 어플을 열자마자 바로 첫 화면에 새보르미 연구회 사이트가 켜져 있었다.
“잠깐 우리가 좀 본다.”
“네. 보세요!”
민아가 핸드폰을 두 손으로 공손히 넘겼다. 도진은 핸드폰을 받아 이리가 보기 좋은 각도로 들었다.
학문가와 이해자는 새보르미 연구회 추적 결과를 이야기하면서 충격적인 말을 했다.
‘사이트에 침투할 수가 없습니다.’
혼령이라는 뿌리를 둔 이해자가 침입하지 못한다는 뜻은, 그쪽에도 혼령이 뿌리인 위아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위아의 갈래는 악신일 확률이 높았다. 신령인 이해자를 방어했으니까.
그런데 이아진이 받은 악신, 만인사는 뿌리가 짐승으로 인터넷을 다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또 다른 악신이 존재한다.
아마, 그자가 배리모스일 것이다.
구렁이로 둔갑해서 도깨비를 속였었기에 짐승이 뿌리인 악신인가 추측했으나 사실은 혼령이 뿌리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안 도진과 이리는 연구회에 잠입해야겠다는 작전을 짜고 있었다. 이해자가 전해 준 회원 리스트에는 민지연과 오민아가 있었고, 이들에게 접근하느냐 아니면 바로 이석진에게 접근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던 찰나 도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이리 형, 보세요. 익명 게시판에 꾸준히 주술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어요. 오민아, 너는 이 주술 글 올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민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희 연구회는 익명 글 작성자 추측이 금지라서 몰라요.”
“이석진 동생이 무당이잖아. 이석진이 동생한테서 얘기를 듣고 올린 건 아닐까?”
“석진 삼촌 동생분은 연구회 회원도 아니고, 석진 삼촌도 바빠서 이런 글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아니…. 그렇게 오컬트 좋아하고 주술 좋아하면서 왜 회원들끼리 누가 이런 글 남기는지 추측을 안 하냐?”
도진은 상대가 미성년자 여자애임을 감안해서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하지만 표정이 하도 험악해서 꼭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다. 민아가 어깨를 움츠리자 도희가 디저트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휙휙 휘둘렀다.
“민아 겁먹잖아. 오빠 너는 말하지 마라. 그냥 입 다물고 있어라. 선…. 이리 오빠, 그냥 오빠가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민아가 마음이 여린 애라서요.”
“그래, 알았어.”
이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이제 이리가 문답할 차례긴 했다. 진실만을 말하게 해야 했으니까.
“왜 회원들끼리 이 글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 추측하지 않아?”
이리가 도진이 한 질문을 똑같이 물었다. 민아는 이리의 새카만 눈을 보며 순순하게 대답했다.
“2년 전에 처음 정모했을 때 맹세했어요. 익명이 누구인지 추측하지 않기로.”
약속이 아니라 맹세.
17살 고등학생 입에서 나오기 힘든 묵직한 단어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