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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49화 (4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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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진의 허탈한 중얼거림에 퇴마사가 움찔했다. 퇴마사는 깡마른 체격에 조금도 관리하지 않은 듯 안면에 수염이 덥수룩했다. 더벅머리에는 새치가 군데군데 나 있었다.

이리 선인이 누구인지 궁금한 듯 했으나 차마 물어볼 용기도 없어서 힐끔거리기만 하는 퇴마사를 이석진이 오른손으로 밀쳤다.

“내일까지 왼팔 만들어 놔.”

“어…. 어. 아, 알았어…. 배, 리모스.”

이석진의 몸에 깃든 배리모스는 힘들게 중심을 잡고 일어나 신당에 가득 찬 커다란 뱀을 발로 찼다.

“이제 좀 정신 차리지?”

-그윽, 그으으…….

“하, 씨팔.”

배리모스가 비틀거리며 신당을 떠났다.

만인사는 천 년을 넘게 산 악신이다. 무시무시한 전설의 중심이었던 놈이 저렇게 겁을 먹다니…….

한심하면서도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겁먹어 손이 떨리고 있었으니까.

CCTV 추적이 어떻게 되었나 싶어 왔다가 본 것은 덜덜 떨면서 허공에 대고 무언가와 얘기하고 있는 퇴마사였다.

-이리 선인…!

이아진에 빙의하고 있던 만인사가 크게 탄식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파악한 배리모스는 얼른 사역마를 회수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회수는 실패하고 오히려 이쪽의 위치만 들켰다.

사선으로 공간이 찢기자마자 만인사는 이아진의 몸에서 얼른 벗어나 신당 구석에 숨었다. 길이 100m에 몸통의 직경이 10m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크기는 어디 가고 피래미처럼 쪼그라져 있었다.

배리모스는 쓰러지는 이아진의 몸을 급히 받친 채 사선의 공간을 바라봤다. 고개를 숙이면 저쪽이 보일 것 같았으나…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다.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에.

퇴마사에게 저 기이한 공간을 닫으라고 지시하려는 그때였다.

흰 팔이 공간에서 쑥 뻗어 나왔다.

단정한 흰색 개량 한복 상의를 입고 있었는데 크기가 거인의 팔처럼 커다랬다. 그 손은 곧장 배리모스의 팔뚝을 붙잡고는 그대로 뽑아 갔다.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퇴마사가 비명을 지르며 얼른 지혈했고, 배리모스 또한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죄 없는 이들에게 혼란을 퍼뜨렸다. 요물과 영물을 고통스러운 저주 속에서 숨을 잃게 했으며, 도깨비를 속이고 도깨비방망이를 훔쳤다. 죄의 대가로 네 팔과 사역마를 가져가겠다.’

‘다시는 저주로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해라. 다음번에는 네 목을 가져갈 것이니.’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었고, 천둥 번개처럼 쩌렁쩌렁했다. 고막에 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개골을 갈라 뇌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중한 경고를 떠올린 배리모스가 진저리치며 몸을 떨었다. 몸의 추가 맞지 않아 자꾸 옆으로 기울어졌다.

“젠장….”

만인사가 몇 번 이리 선인에 대해 언급했다.

중간계를 다스리는 선인. 우리 요괴들의 세계에는 그를 모르는 자가 없다고. 태어나면서 자연히 알게 되는 존재라고.

그러나 이상하게도 배리모스는 이리 선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당분간은 휴식이다. 너무 짧은 시기에 연속해서 저주를 퍼뜨렸어. 게다가 이런 계획으로면 인간까지 죽을 텐데 그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분이라면 누굴 말하는 것이냐.’

‘이리 선인이지 누구겠는가.’

‘그자는 애들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인간이 죽으면 애들 싸움이 아니게 된다. 어리석은 것아.’

배리모스가 세 번째 저주를 계획할 때 만인사는 이리 선인의 이름을 대며 말렸다. 그러나 배리모스는 만인사로부터 이름과 유명세만 들었을 뿐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했다.

‘겁먹었느냐, 만인사야.’

‘배리모스. 상대는 태고의 선인이다.’

‘나는 그자를 알지 못하므로 두렵지도 않다. 어떻게 하겠느냐. 여기서 멈추겠느냐.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겠느냐.’

교활한 악신은 만인사를 꼬드겼고, 결국 계획을 강행했다.

배리모스가 빠득, 이를 갈았다.

‘이리 선인…….’

그는 새카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제 계획에 방해물이 될 자의 이름을 되뇌었다.

전지전능한 이리 선인.

분명 두려운 광경이었고 실제로 아직까지도 손이 떨리고 있었으나, 가슴 깊은 곳에는 희열이 맴돌았다. 2년 만에 드디어 그만한 거물을 끌어냈다.

목표가 멀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내가 그 녀석의 팔을 뜯어내 주지…….”

그러나 그때까지는 조심하는 게 좋겠다. 지금은 꼬리를 내려야 한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로 뒤로 물러날 필요가 있는 법. 당분간은 조용히…….

배리모스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다음 순간, 몸이 쓰러졌다. 쿵 하는 소리에 퇴마사가 급히 나왔다.

“으…….”

쓰러졌던 이석진이 신음을 내뱉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퇴마사가 그를 급히 부축했다.

“아…. 한수 형? 대체 여긴 언제…….”

이석진이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한수를 올려다봤다.

“워, 원래대로 돌아왔구나.”

“아. 내가 또…….”

이석진의 얼굴이 죄책감으로 물들었다. 이제 곧 그는 제 왼쪽 팔이 없어져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한수는 이석진을 끌어안았다. 눈물은 늘 그렇듯 속으로 삼켰다.

새카만 밤하늘에서 오직 달빛만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9. 수확의 날

[이석진 ‘겨울밤’, 캐스팅 확정->5월 2일 크랭크인]

[이석진 vs 이희재… 전자기기 광고 라이벌 대결전]

[배우 이석진 ‘겨울밤’ OST 직접 부른다]

도진이 핸드폰 화면을 껐다. 아무리 검색해도 인기 배우 이석진의 왼팔이 잘렸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주술로 팔을 만들어 낼 거라고는 도진도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그 팔은 수십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하루에 한 개씩 만들어야 한다. 평범하게 살아가기엔 퍽 불편할 텐데… 열흘이 지난 지금도 잘 버티고 있나 보다.

“진짜 악신이란 것들은 어디까지 관종인 거야. 배우 일은 죽어도 포기 못 하네.”

원혼과 악신은 관심을 좋아하다 보니 대중 노출이 많은 유명인에게 많이 붙는다.

이석진도 처음엔 평범한 배우였다가 악신이 붙으면서 변한 걸까. 아니면 악신 때문에 배우가 된 걸까.

사실, 사연을 알아본다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다. 도진은 이석진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다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대가를 치렀고, 경고도 했으니 이제 그만 손을 떼야 한다는 선인의 말에 참는 중이었다.

“덕 쌓는 일이 이렇게 고되다. 네가 이 힘듦을 아냐?”

끼웅?

“좋겠다, 넌. 끼웅거리기만 하면 돼서.”

끼웅.

암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던 짓을 계속했다. 그 하던 짓이란 콘솔박스 위에 비친 도진의 손가락 그림자를 붙잡는 일이었다. 가끔 붙잡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도진이 살짝 힘을 주면 바로 풀려났다.

암인을 잡귀 서식지에 한 번 데리고 갔었는데 너무 겁먹어서 손가락에 매달려 울기만 하는 바람에 그대로 다시 왔다. ‘왜 그 아이가 아직도 여기에 있니?’라는 얼굴로 바라보는 이리에게 도진은 당당히 해명했다.

‘얘는 너무 어리고 약한데 거기 사는 잡귀들은 다 덩치가 저만 하더라니까요. 그냥 한입에 잡아먹을 것 같던데.’

‘…….’

‘훈련을 좀 시킨 다음에 내보내야겠어요. 이것 보세요. 아직도 얼어서 제 손가락에서 안 떨어져요.’

그 후로도 도진은 훈련은커녕 그냥 이렇게 그림자 잡기 놀이만 하고 있었다. 잡힐 듯이 잡혀 주지 않으며 어린 잡귀를 놀려먹던 도진이 고개를 들었다.

이리가 대여점에서 나오고 있었다. 도진은 얼른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타세요, 스승님.”

“고마워.”

이리가 뒷좌석에 올라타고, 도진은 바로 핸들을 붙잡았다.

[(☆▽☆)]

용마가 기다렸다는 듯 바로 출발했다.

오늘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대여점을 비우고 전국을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일명 ‘수확의 날’이라고 해서, 5년간 새롭게 자연 발생한 이물들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날이다. 한마디로 외근이자 출장이었으나 도진 입장에서는 야외 데이트였다.

“들를 곳이 세 군데라고 했죠?”

“응. 부천, 괴산, 무주.”

“이물이 세 개나 추가되다니. 그만큼 더 바빠지겠네요.”

“세 개를 다 거둘지는 아직 몰라. 5년 전에도 세 개 만들어졌는데 하나만 거뒀거든.”

“왜요? 스승님만의 어떤 까다로운 기준이 있어요?”

“까다로운지는 모르겠는데.”

이리는 제가 타자마자 바로 끼웅거리며 힘겹게 뒷좌석으로 넘어온 암인에게 손가락을 내어 줬다.

암인은 요즘 이리에게 열심히 아양을 떨었다. 이리 선인에 대한 본능적인 호감과 애착 그리고…. 대여점에서 서열이 가장 높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내구성이 약한 이물은 테스트하다가 손상되기도 하고…. 쓸모없거나 위험한 종류는 그냥 내 선에서 파기하고 있어.”

“위험한 종류라면, 무기겠죠? ‘복숭아 나뭇가지’ 같은.”

이리 만물 대여점에는 이물이 721개나 있지만 무기류는 단 6개에 불과했다. 그중에 하나가 복숭아 나뭇가지로, 웬만한 잡귀는 그 나뭇가지를 갖다 대기만 해도 쪼그라든다. 만약 암인에게 가져다 대면 암인은 바로 소멸할 것이다. 도진도 아직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맞아. 이번에 만들어진 것들은 무기류는 아닌 것 같은데 하나가 조금 느낌이 안 좋아서…. 일단 가서 테스트해 보고 결정해야지.”

“그냥 세 개 다 탈락했으면 좋겠네요. 일 안 늘어나게.”

“도진아. 일이 많으면 그만큼 덕을 쌓을 기회도 늘어나는 거야.”

이리의 말이 맞았다. 실제로 도진은 19년 간 평생 쌓은 덕보다 대여점에서 일한 4개월간 쌓은 덕이 몇 배로 많았으니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할수록 많은 돈을 벌었다. 이럴 때는 인간 세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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