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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52화 (5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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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이라든가 입맛 없는 위아들에게 도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또 이미 그런 종류는 몇 개 있어서.”

“하긴…. ‘놋쇠 그릇’은 심지어 용의 침도 안 들어가잖아요. 훨씬 만들기도 쉽고.”

“맞아. 이건 파기해야겠다.”

이리가 손가락으로 막대를 툭툭 두 번 가볍게 건드리자 막대는 푸스스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도진이 애도하는 시늉을 했다.

다음은 다섯 개의 조각이었다.

“제가 조립을 좀 잘해요. 저한테 맡겨 주세요.”

도진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조각을 조립했다.

각기 다른 모양의 조각들을 모두 끼워 맞추자 나온 것은….

“…….”

“…….”

30cm 길이로 길쭉하면서 끄트머리가 둥글고 한 손으로 채 감싸지지 않는 두께의 원기둥 물체였다.

어째서인지 온도도 따뜻했다.

도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도, 돌하르방. 하르방이죠? 하르방…….”

“하르방도 여기에서 기원한 것이긴 하지….”

이리가 예쁜 손에 흉물을 쥐려고 하자 도진이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얼른 손날로 내리쳤다.

흉물이 산산조각으로 분해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도진은 으아아아 경기를 일으키며 밟아댔다. 장사의 발아래에서 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리가 도술을 쓸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대체 이딴 이물이 왜 튀어나와요? 선인님의 고운 손에 이딴 걸, 씨발 천지만물 미친 거 아니에요? 이게 누가 필요해? 왜 필요해? 아니 필요하다고 쳐도 중간에 선인님 손을 거쳐야 하는데 으아악 이 변태 같은 천지만물! 선인님, 멀리 떨어지세요! 닿지도 마세요! 젠장! 죽어 버려! 사라져!”

이리도 사실 이런 흉물스러운 이물을 마주한 건 처음이라 속으로는 적잖이 놀랐다. 그런데 제자가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듯해서 오히려 침착해졌다. ‘스승님’ 대신 ‘선인님’이라고 하는 걸 보면 심히 충격 받아 이성을 잃은 게 확실했다.

끼웅.

암인이 오들오들 떨면서 이리의 소매 안으로 몸을 숨겼다.

잔뜩 성이 난 장사는 이물이 완전히 없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씩씩거렸다. 그 때문에 마지막 이물인 백지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이리는 소매 속에서 오들오들 떠는 암인을 쓰다듬다가 한참 후 도진에게 물었다.

“진정했어?”

“네.”

“그럼 일어난 김에 가서 미아를 좀 데리고 올래?”

“미아요?”

“딴또리가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어.”

“아… 네.”

도진이 씩씩거리며 신발을 신고 나갔다.

이리는 백지를 반듯하게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이건 유지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이물이나…….

그렇다고 또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없애기에는 아깝다.

도진에게 줘야 할지… 아니면 누구 필요한 자에게 줘야 할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 * *

딴또리는 열 살 정도의 어린아이 모습으로 둔갑한 상태였다.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닿았고, 앞머리가 눈을 가릴 만큼 길었다. 얼굴과 팔다리를 보니 마른 체구는 아니고 오히려 통통했다. 이웃 위아들이 여러모로 잘 챙겨 준 것 같았다.

“서, 선인.”

“안녕.”

귀여운 외모와 다른 육중한 음성에 흠칫할 법도 한데 이리는 다정하게 무릎을 굽히고 앉아 딴또리와 시선을 마주쳤다. 오히려 딴또리가 흠칫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지만 이리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황금색이구나.”

“…….”

샛노란 눈동자가 요동쳤다.

“옷은 어디서 났어?”

“오, 오다가 주웠는데, 나, 나는 이 옷이 싫어서… 나, 나는… 사내자식이다.”

연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사내자식이 주먹을 불끈 쥐며 열심히 말했다. 이리의 눈 밑에 도톰한 애굣살이 잡혔다.

“귀엽다, 진짜.”

결국 못 참고 아이를 껴안으려는 찰나 힘주어 어깨를 잡아 오는 손길이 있었다.

“스승님, 한시가 급하다면서요. 산신령 허락받길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빨리 밥 먹이고 탈피 들어가죠?”

투기와 노기가 함께 담긴 목소리였다. 이리는 가끔 도진이 질투하는 코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동물의 등을 쓰다듬는 정도로도 샘나 하니…….

어쨌든 급한 것도 사실이라 둘은 일단 상부터 차렸다. 딴또리는 이웃들이 정말 정성으로 챙겨 줬는지 숟가락과 젓가락도 사용할 줄 알았다. 조금 매콤한 도리뱅뱅이도 잘 먹었는데 자꾸 입가에 양념을 묻혔다. 이리가 티슈를 꺼내자 도진이 홱 낚아채서 딴또리의 입가를 닦았다. 질투로 인해 오히려 친절한 사람이 되고 만 도진이었다.

끼웅…….

암인이 자기도 식사를 하고 싶은지 자꾸 그릇 위에 올라왔다. 도진이 손가락으로 툭 치면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가, 다시 끼웅끼웅 영차영차 올라왔다.

이리가 웃으며 암인만의 식사법을 설명했다.

“암인아. 그림자를 먹어.”

끼웅?

“음식의 그림자를 흡수하라고. 자, 해 봐.”

이리가 도리뱅뱅이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공중에서 흔들거렸다. 암인이 밑에 생긴 그림자를 쳐다보다가 스멀스멀 기어들어 갔다. 도리뱅뱅이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꺼억-.

암인이 엎어져서 부른 배를 쓰다듬었다.

“이거 하나 먹고 배 찬 거예요? 참 나.”

“계속 먹다 보면 양이 늘 거야. 나중에는 이 집 전체도 삼킬 수 있을 걸.”

“…많이 먹이면 안 되겠네요.”

도진이 징그럽다는 듯 몸서리쳤다.

덕유산 신령은 식사를 마쳐 갈 때쯤 돼서야 도착했다.

집 주인이면서 초인종만 누르고 들어오지 않길래 나가 보자 동글뱅이 안경에 단발머리를 한 학생이 대역죄인처럼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근처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산을 비운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일 생긴 것도 아니니 죄송할 필요 없어. 어디 다녀왔어?”

“제가 본래는 자주 자리를 비우지 않는데 오늘은 피치 못할 사정이…. 샤머니들 3집 타이틀 컴백 무대…. 사녹 후에 바로 미니 팬미가…. 아아, 아닙니다. 모두 변명일 뿐입니다.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 통감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번 달은 가야산 신령이 하계의 문을 맡아서…. 아아, 죄송합니다.”

신령은 누가 봐도 즐거운 덕질 모임을 하고 온 사람처럼 보였다. 쇼핑백에는 응원봉과 플래카드, 귀엽고 깜찍한 솜인형 다섯 개, 목에는 포토카드 목걸이 다섯 개, 옷에는 예쁜 스티커로 꾸민 명찰 다섯 개.

“긴 삶을 살아야 하는 신령에게 취미 생활이 생긴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 잘했어. 일어나.”

“선인님…….”

신령이 울먹이며 일어나려다가 이리의 옆에 선 덩치 큰 부리부리한 남자를 보고 흠칫 놀랐다.

“누, 누구죠? 꼭 경호원처럼 생겼네요.”

“도진이야. 내 제자. 도진아, 인사해.”

“안녕하세요. 김도진입니다.”

“아…. 그 왕 후보…. 안녕하세요….”

신령이 떨떠름하게 인사했다. 이리가 몸을 비스듬히 돌렸다.

“그리고 이쪽은 딴또리.”

“나는 딴또리고… 사내자식이다!”

딴또리가 당당하게 외쳤다.

“아아, 새끼 융이란 정말이지…….”

신령이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딴또리가 너무 귀여운 탓이었다. 그때 이리의 소매에서 암인이 끼웅?, 고개를 내밀었다.

“아아아아아아…. 세상에 이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잡귀란 말입니까….”

신령이 너무 귀엽다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도진 안에서 산신령 이미지에 ‘하찮음’이라는 키워드가 쌓이는 순간이었다.

인원도 모두 모였고, 이제 딴또리의 탈피만 마치면 되었다.

덕유산 신령은 허물을 벗을 장소로 기꺼이 방 하나를 내주었다. 허물을 벗을 때는 안전해야 하기 때문에 신령의 집이 제격이었다. 대여점도 안전한 곳이긴 하나… 어떤 의미로는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진상 고객들이 흥분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도진이 ‘입의 문’에서 ‘은유리병’을 꺼냈다. 빛이나 어둠을 보관할 수 있는 이물인 은유리병에는 하늘이 가장 맑을 때의 햇빛을 담아 놓았다. 신령이 방 창문을 꼼꼼하게 틀어막는 사이 도진은 유리병을 천장 가운데에 매달았고, 이리는 방 안에 흰 소금을 뿌리며 큰 원을 그렸다.

“햇빛을 많이 저장해 놔서 다행이야. 한 병 다 쓰면 딱이겠어.”

“가방 정리도 안 해서 다행이죠?”

“그런 합리화는 하지 말자. 내일은 꼭 안쪽 정리하기야.”

“…….”

“대답 안 해?”

“내일은 꼭 할게요. 진짜로…….”

그동안 딴또리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이리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리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침대에 올라가 있어. 그리고 인간 둔갑은 이제 풀어도 좋아.”

“알았다!”

딴또리의 표정이 환해지더니 바로 모습을 바꿨다.

어린 융은 참새 모양이었다. 단, 전체 크기가 침대의 1/3을 차지한다는 것과 1m 남짓한 길이의 길고 하얀 눈썹깃 두 개가 이마에 달렸다는 점만은 달랐다.

허물을 벗고 나면 키는 좀 더 커지지만 몹집은 줄어든다. 날렵하고 매끈한 꿩 같은 모양새가 되는데, 지금의 어린 융은 배가 빵빵하게 부푼 참새 그 자체였다.

조금 큰 참새.

“귀여워….”

신령이 이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며 열심히 귀여운 어린 융의 탈피를 준비했다.

“너는 같은 융을 한 번도 못 봤어?”

“어, 어렸을 때 봤어서…….”

“부모님?”

딴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도 엄마랑 아빠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아빠가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아서, 엄마가 찾으러 갔는데 엄마도 안 왔다. 엄마가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는데, 버, 버섯이 형이 그러다 죽는다고 나를 끌고 나와서…….”

“버섯이 형?”

“버섯이 형이랑 누나들이다.”

딴또리가 버섯이의 생김새를 설명했다. 조그맣고, 다리는 여덟 개에 팔은 두 개, 몸통은 버섯 형태고 머리 꼭대기에 작은 녹색 이파리가 달렸다.

“음버섯이를 말하나 보네요.”

음버섯이는 주로 주차장에서 살아가는 잔챙이 위아로, 군집을 이루는 종이었다.

도진이 셔츠 앞 포켓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쿨쿨 잠든 암인을 가리킨 것이다.

“걔네 크기가 이만하지 않아요?”

“맞아. 조그맣지.”

“발톱에 치이면 바로 날아갈 것들이 지들보다 몇십 배 큰 개체를 애라고 돌봐 온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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