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61화 (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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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야, 소리 지르지 마.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겠네. 이제 30분 남았는데 그거 서서 못 기다리냐?”

“그래! 못 기다리겠다, 왜!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대회에 참가하는데 태도가 그게 뭐야?”

“뭐! 누가 씨, 참가해 달랬냐? 집에서 평화롭게 게임하고 있던 사람 끌고 와서는 왜 지랄이야, 지랄이.”

싸움인가? 도진이 뒤쪽을 쳐다보자 율도국식의 한복을 입은 혼령 두 명이 서로 멱살을 잡고 서 있었다. 하나는 여자고, 하나는 남자였는데 절대로 연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원수 사이인 듯했다.

자리가 찼다며 힐난한 이가 남자, 평화롭게 게임하던 사람 왜 끌고 왔냐는 이가 여자. 남자 혼령의 손등에만 참가자 표식이 찍혀 있었다.

도진과 눈이 마주치자 여자 혼령이 화들짝 놀라더니 손사래를 쳤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앉아 계세요. 네네. 시끄러웠죠.”

여자 혼령이 남자 혼령을 다른 데로 끌고 갔다. 둘은 대회가 시작할 때까지 투닥대며 싸웠다. 싸움 구경을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도진은 그들에게서 관심을 껐다.

대회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도진은 1초 내로 승부를 가르며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너무 빠른 나머지 계속 먼저 출전을 확정 지은 후 상대가 결정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와아아아!”

“저렇게 작은데도 정말 대단해!”

어디선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가롭게 대전 상대를 기다리던 도진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흰 베일을 쓴 이가 내려오고 있었다. 흰 베일의 상대는 무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67번, 32강 진출이오!”

“와아아아!”

체구가 이리 선인보다도 작은데도 대단한 힘이었다.

도진은 시간이 남다 보니 다른 선수들의 시합을 구경하고 다녔는데, 눈에 띄는 선수들은 대략 넷이었다.

방금 승리한 흰 베일을 쓴 이와 도깨비, 일행과 투닥거리던 혼령, 그리고 수염을 기른 장한.

도진에게는 ‘장사의 본능’이 있다. 상대가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를 바로 파악하는 본능. 그가 판단했을 때 이들은 전부 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스승님, 미래에 연인이 될 제자가 100년치의 덕을 손에 넣습니다.’

이리가 직관하지 못한다는 점이 무척 아쉬워 제임스에게 영상을 찍으라고 할까 했지만, 촬영 금지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스태프 때문에 포기했다.

진행이 물 흐르듯 매끄러워서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대회장에는 단 다섯 명의 선수만이 남았다. 180번 도깨비, 175번 흰 베일, 101번 남자 혼령, 1번 장한, 201번 김도진.

준결승 진출 마지막 경기인 도깨비와 혼령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도깨비는 배가 볼록 튀어나오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영감 모습인 반면 혼령은 꽤 잘생긴 젊은 남자였기에 현대 한국에서 자란 도진이 보기엔 좀 불편한 그림이었다.

“이봐, 혼령.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꽤 힘을 쓰더군. 100년 전에는 왜 안 나오고 하필 내가 출전할 때 나왔는가?”

“그때는 덕을 얻지 않아도 됐고, 지금은 덕을 얻어야 할 일이 생겨서. 수다 떨 시간에 얼른 시작하자고.”

두 사람이 테이블 위에서 손을 붙잡자 심판이 손을 얹었다. 심판은 총 열 명이었는데 전부 갓을 쓰고 아무 무늬 없는 검은 장포를 입고 있었다. 도진에게 대회를 알려준 자와 같은 복장이었다.

삐익-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도깨비와 혼령이 동시에 힘을 줬다. 둘의 전완근과 이두근, 삼두근이 부풀었다. 팔씨름은 대개 순식간에 끝나는데 이번 시합은 꽤 오래 걸렸다. 마침내 도깨비가 핸들에서 미끄러지면서 힘이 풀리고 쿠션에 손등이 닿았다.

“101번 승리. 4강 진출이오!”

혼령이 팔목을 돌리며 내려오면서 다음에 맞붙을 상대를 쳐다봤다.

바로 도진이었다.

시선을 느낀 도진이 똑바로 마주치면서 신경전을 벌이자 관객들이 술렁거렸다. 그때 여자 혼령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야, 일호. 힘으로 싸우라니까 눈으로 싸우고 지랄이냐.”

“아니, 씨발. 저쪽에서 나 노려보잖아.”

“네가 먼저 노려봤잖아. 멍충아.”

“나한테만 뭐라 그래.”

혼령이 구시렁거리며 입을 오리처럼 내밀었다. 여자 혼령은 도진에게 이해하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꾸벅했다.

‘이름이 ‘일호’라고?’

도진은 뭔가 그런 이름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명확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4강전의 첫 대결은 장한과 흰 베일 쓴 이였다. 그러나 장한은 너무 큰 데 비해 베일을 쓴 이는 체구가 작아서 손깍지가 불가능했다.

“선수간의 체격 차이로 인해 이번 대결은 팔씨름이 아니라 바위 들기 시합으로 진행하겠소.”

심판이 손을 휘젓자 팔씨름 테이블 옆에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생겼다. 지름 2m 정도의 바위였는데 무언가 주술 처리를 해서 무게를 증량한 듯했다.

먼저 온몸을 흰 베일로 감싼 이가 나섰다. 날렵한 체격임에도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흐읍, 기합을 주고는 바위를 들어 올렸다. 흰 베일은 5초 유지하다가 흔들림을 감당하지 못하고 내렸다.

다음은 수염을 기른 장한이었다. 가로도, 세로도 2m도 넘을 법한 거대한 덩치의 장한은 흡, 하는 기합 소리 한 번에 바위를 번쩍 들었다. 양손으로 머리 위까지 높이 치켜들고는 10초나 유지한 뒤 내렸는데 조금도 힘든 기색이 없었다.

심판이 결과를 말하기 전 흰 베일이 장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졌소.”

지금까지 중 처음으로 말했는데 어린 여성의 목소리였다. 장한은 자그마한 손을 붙잡고 악수하며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낭자군’의 일원인가?”

“…수고하시오.”

흰 베일이 뒤돌아섰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낭자군이라니 설마 그 나림국의 군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낭자군은 전투 시에는 붉은 옷을, 비전투 시에는 흰 옷을 입는다던데.”

“어린 소녀가 어떻게 저리 강한가 했더니 나림국의 낭자군이라면 이해가 되는군!”

나림국은 ‘월백’이라는 대장군이 다스리는 여성들만 출입 가능한 국가로, 제주도 아래쪽에 있다. 나림국의 군대를 일컫는 낭자군은 한반도의 역사에 몇 번 개입하기도 했는데, 최근 이백 년간은 개입을 끊고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율도국보다 더 비밀스러운 곳에서도 100년의 덕은 지나치지 못하고 참가한 것이다.

‘스승님께 낭자군을 봤다고 꼭 말씀드려야지.’

촬영 금지만 아니었으면 달려가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을 텐데. 참으로 아쉬웠다.

이제 준결승 두 번째 시합이 시작될 차례였다. 바로 도진과 혼령. 혼령은 테이블 앞에서 어깨와 손목을 풀었으나 도진은 만사 귀찮은 사람처럼 두 팔을 늘어뜨리고 섰다.

“두 선수는 준비되었소?”

“예, 진즉 끝났습니다.”

“저도 끝났습니다.”

“그럼 손을 맞잡으시오.”

도진과 혼령이 한 손으로는 테이블의 핸들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이때 혼령은 낭패스러운 얼굴을 했고, 도진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일호! 화이팅! 이겨라, 일호. 이기는 편 우리 편!”

혼령의 일행이 시끄럽게 응원했다. 그러나 일호는 이미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고, 도진은 팔뚝에 힘을 주며 바로 상대의 손을 내리눌렀다. 혼령의 손등이 쿠션에 닿았다. 1초도 되지 않아 시합이 끝나 버렸다.

심판이 도진의 승리를 외치자 와아아아, 환호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끝났어. 굉장해!”

“아까부터 전부 1초 만에 끝내고 있어!”

혼령의 일행은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윽고 크게 외쳐 댔다.

“괜찮아! 괜찮아! 졌지만 잘 싸웠어. 잘했다, 일호!”

그 응원이 부끄러운지 혼령이 이마를 짚었다.

“야, 너. 인간 아니냐?”

혼령이 무대에서 내려가는 도진에게 물었다. 도진은 입꼬리를 올렸다.

“나 장사인데.”

“아, 미친…. 장사를 어떻게 이겨. 내가 아니라 월직차사님이 오셔야 했네.”

“…월직차사?”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이왕 날 이겼으니 꼭 우승해라. 그래야 내가 안 쪽팔리지.”

혼령이 구시렁거리며 내려갔다.

‘월직차사… 이덕춘?’

도진이 눈을 깜빡이며 혼령 일행을 훑었다. 혼령이 월직차사를 언급했다는 사실이 매우 불길했다. 왜냐하면 월직차사가 소속된 저승사자들은 죄다 혼령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저 남자의 이름이 일호라고 했다. 만약 저자가 저승사자고, 일호가 ‘1호’였던 거라면.

저승의 제1차사는 왕 후보를 등록했는데…….

기운 내라면서 어깨를 팡팡 치며 오히려 골려 먹고 있는 저 여자 혼령이 설마…?

‘제1차사의 혼령은 어때? 수련 잘하고 있고? 경쟁자한테 귀띔 좀 해줘.’

‘그 혼령은 철도 없고 골칫덩이에 사고만 치고 다니는 왈가닥입니다. 저승에서 천 년을 일했지만 그렇게 뻔뻔한 혼령은 처음 겪습니다.’

왈가닥에 뻔뻔한 혼령…….

‘에이, 아니겠지.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매우 불길하고 껄끄러웠다.

“마지막 시합을 시작하겠소!”

도진은 심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일단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 했다. 앞으로 한 명만 더 이기면 100년치의 덕을 꽁으로 얻으니까. 그럼 드디어 기도식도 치를 수 있다. 드디어 이리 선인과 자신이 정식으로 사제지간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상대가 쿵, 쿵 육중한 발소리를 내며 무대로 올라왔다. 커다란 덩치에 수염을 덥수룩 기른 중년 남성이 감정을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도진을 쳐다봤다.

도진은 장사의 본능이 있고, 그 본능이 말하건대 이 장한의 힘은…….

‘나보다 약하다.’

“201번, 테이블 앞으로 오시오.”

“알겠습니다.”

도진이 자신감 넘치는 넓은 보폭으로 걸어갔다.

“서로 인사하시오.”

“201번입니다.”

“1번이오.”

중년인은 참가 번호가 무려 1번이었다. 이 대회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참가 신청을 했다는 뜻이다. 그만큼 자신 있었다는 뜻이었고, 실제로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라왔다. 상대가 도진이라 안타깝게 되었다.

“준비하시오.”

심판의 구령에 맞춰서 두 선수가 자세를 잡고 손을 맞잡았다.

중년인의 손은 까슬까슬했는데, 손에 흉터가 많은 탓이었다. 장한이 손가락에 힘을 주면서 기 싸움을 걸어오자 심판이 어허, 하며 중재했다. 도진은 내내 여유로웠다.

삐이익.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도진이 팔뚝에 힘을 주고 상대의 손을 밀어붙였다.

“크읍!”

장한은 손목이 완전히 반으로 꺾였음에도 덩치빨로 버텼다.

‘제법 강하긴 하네.’

도진이 비릿하게 미소를 내걸자 중년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진은 이제 시합을 끝나기 위해 본격적으로 힘을 줬다. 그 순간.

“윽……!”

밀리고 있던 장한이 어마어마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도진은 반대쪽 손으로 핸들을 꼭 쥐고, 두 다리 근육에도 힘을 주고 버텼다. 그러나 완전히 꺾였던 장한의 손목이 제자리를 찾고, 이제는 도진의 손목이 뒤로 꺾이기 시작했다.

‘씨발,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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