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65화 (6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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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용이 정자 울타리 쪽으로 팔을 뻗자 마당의 돌멩이 하나가 그의 손으로 날아왔다. 뭉용은 고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졌다. 호수에 비해 너무 작은 돌멩이는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았다. 물거품조차 올라오지 않고…….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돌멩이가 빠지면 물방울이 튀는 게 당연합니다. 그게 자연이란 것이지요. 선인님은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함으로써 자연을 역행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역행한다.

이건 아주 모순적인 말이었다. 불로불사하는 선인이란 이미 존재만으로 자연을 역행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리는 뭉용이 저를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 모순을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내가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구나. 대여점을 운영하는 데에는 이쪽이 더 도움 될 테니 말이야.”

뭉용은 잠자코 호수의 환영을 거두었다. 이리는 손목의 검은 실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나는 밤에는 잠을 자야 해서.”

“그거 아십니까? 저는 당신이 이토록 난처해하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우치가 당신을 따라다닐 적에는 그토록 냉정하시더니.”

“뭉용…….”

쉽게 넘어가 주지 않는 뭉용에 이리가 미간을 좁혔다. 그럼에도 뭉용은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장사는 알다시피 힘이 강하지요. 장사가 던지는 돌은 우치와 제가 선인께 던졌던 한낱 돌멩이와는 다를 것입니다.”

“…….”

“언젠가 선인님의 호수에 큰 파문이 일 날이 기대가 되는군요. 거센 풍랑에 휩싸여 어찌할 줄 모르는 이리 선인. 정말 황홀한 문장이지 않습니까. 그날은 우치와 함께 잔치라도 열어야겠군요…….”

뭉용이 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이리는 순간 최근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물이 도진과 연인이 된다는 예언을 내놨을 때……. 그때 가슴 속에 얼마나 거센 파도가 쳤던가. 잠들기 직전까지도 계속 가슴이 술렁거렸다. 그런 기묘한 두근거림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뭉용은 이리에게 하고픈 말을 모두 쏟아 낸 후에야 만족스러운 듯 다시 곰방대를 허공에서 꺼냈다.

“여기까지 걸음 하신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드디어 본론에 들어가 주는구나.”

그가 뭉용을 만나러 온 이유는 기도식에서 있을 임금님의 ‘시험’을 묻기 위함이었다. 선인의 제자가 되려는 자는 반드시 임금님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임금님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진현계 주민이 될 수 없다.

“모두 알려 드리겠습니다. 선인을 위해서라면 못 해 드릴 게 뭐 있겠습니까.”

실컷 골릴 때는 언제고 뭉용은 예의 바른 태도로 설명을 시작했다.

* * *

다음 날, 이리는 오전 중 잠시 짬이 났을 때 도진을 앉혀 놓고 어제 들은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임금님이 세 개의 족자봉을 준비하실 거야. 각각 도술, 육체 능력, 정신력이 주제인데 겉으로 봐서는 똑같이 생겼다고 하더라고. 너는 내가 고른 주제로 시험을 치를 거야.”

“도술, 육체 능력, 정신력이란 말이죠…….”

“육체 능력을 골라야 유리하겠지. 이물을 이용해서 원하는 족자봉을 얻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스승님.”

도진이 이리의 찻잔에 차를 리필하면서 진지하고 엄격하게 말했다.

“무엇을 고르셔도 유리하니까 그냥 마음 놓고 고르세요.”

이리가 못 미덥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도진은 끼웅이용 미니어처 찻잔에도 한 방울 떨어뜨린 후 찻주전자를 받침대에 올려놓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실전에서 더 강하니까요. 그리고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도 나중에 또 도전하면 되잖아요? 설마 임금님이 재도전을 허가하지 않을 만큼 속 좁지는 않을 테고.”

“…….”

“…재도전 허가 안 해 줘요?”

이제야 도진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이리는 고개를 젓는 것도 아니고 끄덕이는 것도 아닌 애매한 각도로 기울였다.

“애매해. 내가 알기로는 태초부터 현재까지 기도식에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

“뭐야. 그럼 걱정할 필요 더 없잖아요. 보통 사람보다도 훨씬 뛰어난 저는 당연히 통과죠!”

“육체 능력이랑 도술 부분에서는 통과겠지만 정신력 부분에서 어떨지 모르겠네.”

이리는 어제 뭉용이 말해준 정신력 시험 내용을 떠올렸다.

“시험을 치르는 이가 살면서 겪은 일 중 가장 두렵고 끔찍한 경험을 겪게 한다더라고. 그것도 더 극단적인 환경에서 경험을 겪게 하는데 하루가 지나기 전 자력으로 빠져나와야만 한대.”

이리의 말에 도진은 턱을 쓸었다.

“가장 두렵고 끔찍한 경험 말이죠.”

끔찍한 경험이라면 머리를 굴려 고민하지 않아도 바로 떠올렸다.

힘 조절을 하지 못해서 어머니와 아버지, 도희를 다치게 한 것.

여기에 시험다운 ‘더 극단적인’ 요소를 추가한다고 하면…….

도진이 그의 스승을 바라봤다. 이리는 미간을 좁힌 채 걱정 많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도진의 시선에 눈을 맞춰 왔다.

도진은 아직까지 이리를 다치게 한 적은 없었다. 만약 임금님의 테스트에 ‘극단적으로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 나온다면 힘 조절을 못해서 이리를 크게 다치게 하는 것, 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도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주먹을 허벅지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오면 패닉에 빠질 것 같긴 하네요.”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줄래? 미리 타개할 방법을 찾아보자.”

“근데 그런 상황이 절대로 오지 않을 거라서요.”

“응?”

만약 이리를 다치게 한다면 공황상태에 빠질 테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겠지만…….

이리가 다친다?

저 이리 선인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청초한 얼굴을 하고서 공간을 갈라 주저 없이 팔을 뜯어내는 이 천지신명이?

만약 이리가 피칠갑을 하고 쓰러져 있는 환상 속에 놓인다면 현실과의 괴리감을 진하게 느끼고 바로 풀려날 것이다.

“네가 두려워하고 끔찍해 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거라서 뭐…. 타개책이 필요하지도 않아요. 그냥 걱정하지 마세요, 스승님. 저 못 믿어요?”

“나와 관련된 상황이구나.”

도진이 말을 돌리자 이리가 바로 알아챘다. 가만히 생각하던 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네 손에 다치는 건 현실에선 일어날 가망성이 거의 없는 일이긴 하지.”

“스승님, 독심술도 하세요? 지금 제가 무슨 생각하게요. 맞춰 보세요. 스승님은 맞출 수 있을 거예요. 상품은 뭐 드릴까요. 훗날 정인이 될 제자의 달콤한 뽀뽀는 어떠세요?”

도진이 의자를 이리 쪽으로 당겨 앉았다. 대화하는 내내 계속 슬금슬금 다가와서 이리는 이미 작업대의 가장 끝에 앉아 있었다. 더 갈 곳이 없는 이리가 한숨을 쉬었다.

“오후에 할 일 정리나 하자.”

“오후에 할 일이요?”

도진이 눈을 크게 떴다.

“스승님도 데이트 코스 짜셨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도진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이리의 두 손을 붙잡았다.

“오후에 할 일이면 둘만의 외출이잖아요! 저는 당연히 스승님은 아무 생각 안 해 놨을 줄 알고 어제 밤새 데이트 코스 짰는데 스승님도 짜셨으면 그대로 해요. 제 코스는 나중에 또 가면 되니까요!”

“…….”

이리가 무척 할 말 많은 눈으로 도진을 바라봤다. 도진의 초롱초롱했던 눈빛이 다소 죽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오후에 외출을 왜 하니. 일을 해야지.”

도진이 입술을 깨물더니 작업대 위의 스케줄표를 집어 들었다.

끼웅?

배부르게 마시고 스케줄표에 늘어져 있던 끼웅이도 딸려 왔다. 도진은 끼웅이를 대충 치우고 달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늘 5월 15일, 스승의 날. 그리고 내일은 5월 16일 성년의 날. 보이시죠?”

“응…….”

“그리고 오늘 상담이랑 작업을 오전 시간에만 잡은 것도 보이시죠? 오후 1시 이후로는 비어 있잖아요.”

“그건 오후에는 ‘멀리 나비’ 용지를 만들려고.”

“뭐라고요?!”

도진이 소리를 꽥 질렀다. 고함이 어찌나 컸던지 상수리나무 가지에서 졸고 있던 새들이 푸드덕 날아가고, 끼웅이는 이리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 버렸다.

“말도 안 돼요! 저는 당연히 오늘하고 내일이 기념일이니까 오후에는 데이트를 하려나 보다 생각했죠!”

“오늘이 대체 무슨 기념일…….”

“생각해 보세요! 어떤 연인이 있어요. 그런데 본래 존나 바쁘고 매일 야근하는 애인이 사귄 지 1년 되는 날에는 오전 근무만 한대요. 그러면 나는 당연히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문장이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로 끝났다. 그것도 아주 격렬한 느낌표였다.

이리는 자신을 무심한 연인 취급하는 도진에게 당황했지만 그에 앞서 가장 큰 의문점을 물었다.

“왜 오늘이 사귄 지 1년에 준하는 기념일인데?”

“스승의 날이랑 성년의 날이잖아요! 기도식만 안 올렸다 뿐이지 덕도 이만큼 얻었겠다 진짜 사제지간이 된 후로 첫 스승의 날, 게다가 내일은 저 성년의 날 기념일인데 이건 사귄 지 1년에 준하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크다고요! 이를테면 첫 결혼기념일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아니, 아직 기도식도 안 치렀고 너는 이미 올해 1월 1일부터 성인이었는데 무슨…….”

“저니까 용서해 주는 줄 아세요. 진짜 혼인을 올린 후에도 첫 결혼기념일을 잊으면 그때는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쨌든 제 말 알아들으셨죠? 진짜 사제지간이 되고 첫 스승의 날인데다가 생에 한 번뿐인 성년의 날이니까 오늘만큼은 제 말 들어주세요. 안 그러면 스승님은 스승님도 아니에요!”

이리는 성년의 날은 그렇다 쳐도 스승의 날에는 제자가 스승의 말을 좀 잘 들어야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도진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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