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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72화 (7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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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웅이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암인은 여기 오기 전에도 이리 곁에 있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애걸복걸을 했지만, 도진에게 강제로 끌려왔다. 안 그래도 서럽고 슬픈 와중에 잠입까지 하라는 청천벽력에 그림자로 변해 셔츠에 스며들려고 했다.

“어딜.”

그러나 도진에게 단번에 막혔다.

집게손가락으로 어린 잡귀를 들어 올린 도진은 눈을 날카롭게 뜨고 협박했다.

“너도 대여점에서 지낸 지 한 달 반 째야. 나는 내 스승님과는 달리, 거지 잡귀 공짜로 밥 먹여줄 정도로 마음이 넓지 않은 놈이거든. 사람이라면 스스로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서 밥을 먹어야 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끼웅…….

“그동안 진상 고객들을 많이 봐 왔을 거야. 이제 네가 보고 배운 진상을 복지관에서 가서 잔뜩 부려. 완전 개진상. 진상도 이 정도면 병이다 싶을 정도 개개개진상 고객이 되란 말이야.”

끼우웅. 끼웅.

“자신이 없다고? 흠. 존나 쉬운 업무인데 이것조차도 못하면 대여점에서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는데. 근처에 잡귀들 서식처가 어디더라….”

끼, 끼웅!

끼웅이가 부랴부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해라. 내가 지켜본다.”

도진이 끼웅이를 초인종 옆에 붙이고는 은신술을 펼쳤다. 도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음, 이렇게 어린 존재를 협박하다니 마음이 불편하군.”

“우리가 협박한 게 아닌데 불편할 게 뭐 있어.”

학문가와 이해자도 모습을 감췄다.

혼자 남은 끼웅이 초인종으로 기어가 온몸으로 초인종을 꾸욱 눌렀다.

딩동, 소리가 울렸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끼웅이가 다시 한번 온몸을 내던졌다. 딩동!

끼웅…….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결국 두 번을 더 몸을 던진 후에야 “네, 나가요.”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귀찮음이 묻어나오는 말투였다.

“네, 복지관입니다아.”

문을 연 이는 역시나 인간의 갈래인 혼령이었다.

포도청, 복지관, 출입국장의 직원들은 대개 인간 갈래의 혼령과 잡귀, 잡신들이다. 초목과 짐승, 사물에서 뻗어 나온 위아들에 비해 이해력과 습득력, 적응력이 빠르고 대부분이 ‘노동’이란 개념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종의 혼령들에 비해 죽어서 노동하는 삶을 선택하는 비중도 인간 혼령이 더 높았다.

생전에 덕을 쌓으며 착하게 산 존재는 죽은 후의 삶을 선택할 기회를 얻는다. 환생하거나, 수호령이 되거나, 좀 더 덕을 쌓아 위아 세계에서 영생을 누리거나. 이때 덕을 쌓는 방법은 수련과 노동, 두 가지인데 인간은 대개 노동을 택한다. 저승, 극락, 하늘꽃밭 등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으므로 취업도 쉬운 편이다.

이 복지관에서 일하는 혼령들 또한 애매하게 착해서 덕을 쌓기 위해 취업한 이일 터였다.

“뭐야. 아무도 없….”

끼웅!

“으악.”

초인종에 달라붙은 끼웅이가 소리치자 문지기 혼령이 깜짝 놀랐다.

끼웅! 끼웅! 끼웅끼웅! 끼웅웅!

끼웅이는 초인종을 네 번이나 눌러 삭신이 쑤신 상태로, 일부러 진상 고객 흉내를 내려고 하지 않아도 화가 났다.

“아, 네. 네. 늦게 나와 죄송하게 됐습니다.”

혼령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객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끼웅이가 옮겨가자 혼령이 대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도진과 신령들은 이미 침입해 있었다.

“대여점보다 큰데?”

“어. 정원은 대여점보다 작은데 건물은 훨씬 크네.”

2층 주택인 대여점과는 달리 이곳은 12층 빌딩이었다.

정원도 대여점보다는 좁을 뿐이지 분수대도 있고 잘 정돈된 화단도 있는 깔끔한 곳이었다. 군데군데 복지관 명찰을 목에 걸고 산책하는 혼령과 잡신들이 보였다. 얼굴에 얼마나 기름기가 흐르는지 도진과 신령들은 당장 모습을 드러내고 달려들고 싶었다. 하지만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꾹 참고 증거 영상을 촬영했다.

1층은 로비였는데 카페가 있었다.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는 혼령 직원들이 보였다.

2층 민원실로 안내한 문지기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접수번호부터 뽑으시고요. 저기 가서 접수증 작성하고 안내받으세요.”

접수번호를 뽑을 필요가 없었다. 대기 고객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혼령은 기계적으로 안내를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끼웅이처럼 작은 위아를 위한 펜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암인은 제 몸에 비해 너무 큰 펜으로 힘겹게 접수증을 작성했다.

이름: ㄲ ㅣ 우

갈래: 자 ㄱ ㅣ

용무: 부 마 ㅇㅣ 이 소

ㄹ ㄴ ㅅ

번호표도 뽑고 기다렸는데 번호가 무려 ‘1번’이었다.

“1번? 이이이일번? 점심도 지난 시간인데 첫 고객이라고오오오?”

이해자가 너무 화가 나서 거품을 물고 꼴딱꼴딱 넘어갔다. 물론 아무도 부축하지 않았다.

대기인 수가 0명인데도 바로 번호가 불리지 않았다. 무려 10분을 기다려서야 벨이 울렸다.

“대기자도 없고 첫 고객인데도 10분이나 걸린다고오오?”

학문가가 거품을 물고 이해자의 옆으로 쓰러졌다.

도진 또한 화가 났지만, 까드득 이를 갈며 모든 것을 촬영했다.

접수 직원은 끼웅이의 접수증을 대충 훑고는 태블릿PC에 작성했다.

“네. 뭐가 불만이신데요?”

끼웅! 끼웅. 끼우웅. 끼웅!

끼웅이가 벨을 네 번이나 몸통 박치기한 후에야 문을 열어준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직원은 반쯤 눈을 감은 얼굴로 턱을 괬다.

“알았으니까 뭐 때문에 왔는지나 말해요.”

끼웅! 끼웅웅!

끼웅이는 작은 위아용 초인종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여점과 포도청, 의원에는 자그마한 위아들을 위한 초인종이 자그맣게 따로 있었다.

“아, 네. 그렇게 적어드리면 돼요? 위에 보고할게요. 안녕히 가세요.”

끼우우웅!

끼웅이가 진심으로 화가 나서 손가락질을 했다. 사실 손가락이 없었으므로 그냥 아등바등하는 것처럼 보였다.

끼웅. 끼웅! 끼우웅! 끼웅웅…!

열변을 토하는 끼웅이와 달리 복지관 직원은 심드렁하게 턱을 괸 채 가끔 네, 네 대답만 했다.

‘끼웅이가 생각보다 역할을 잘 해내고 있군.’

고객도 없고 직원도 없는 2층의 모습을 충분히 찍은 도진이 쓰러진 신령들에게 고갯짓했다. 신령들이 비척비척 일어났다.

3층 민원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셋은 오피스 공간인 4층으로 넘어갔다.

4층은 민원실보다 북적였는데, 결코 좋은 의미의 북적임은 아니었다.

“진수 씨, 뭐 해. 또 샤먼 영상 봐?”

“어제 자컨 하나 예고 영상 떴거든요. 납량 특집 하려나 봐요. 내가 가서 귀신 카메오 출연하고 싶다.”

“하하. 하게 되면 나도 같이 가.”

아이돌 덕질하는 직원들.

“아, 심심한데 코인 노래방이나 갈까.”

“어어. 가자. 샤먼 신곡이나 불러야지.”

“나도 같이 가요. 너무 심심해.”

대놓고 땡땡이치는 직원들.

“…….”

“…….”

아예 드러누워 자는 직원들.

그 외에도 게임 하는 직원, 영화 보는 직원, 예능 보는 직원 등등. 엉망진창이었다.

전부 영상으로 담은 셋은 나머지 층도 일일이 확인했다. 다 같은 풍경이었다. 마침내 잘 꾸며진 옥상 정원에 다다랐다.

광합성을 받으며 널브러져 있는 혼령들은 좀 피로해 보였다. 그러자 혹시나? 싶은 마음도 잠시.

“소(蘇) 장군님은 주량이 무슨 무한이야…. 아침까지 마시고 우리는 이렇게 죽어 있는데 또 변성대왕님이랑 술 마시러 가셨잖아.”

“괜히 장군신들이겠냐…. 우리 같은 일개 인간들이랑은 격이 다르지….”

“언젠가 꼭 이기고 싶다…. 이리 만물 대여점에나 가 볼까? 거기 취하지 않는 술도 판다던데.”

“오오, 그럴까. 소문의 이리 선인과 제자도 보고. 제자가 대단히 잘생기고 부리부리하다더라.”

“장사라잖아. 염라대왕이랑 팔씨름도 했대. 대왕은 나이가 드셔서 패배하셨지만, 우리 소 장군님과 겨루면 어떨까.”

“당연히 소 장군님이 이기지. 어디 일개 장사가 젊은 장군신한테…….”

“그렇지?”

혼령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도진은 자신을 까내리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아침까지 술이나 마시고 또 술을 마시러 가는 방자한 소 장군.

새벽부터 새벽까지 잠들지도 못하고 위아들을 위해 이물을 다루는 이리 선인.

너무 다른 두 관리자를 생각하자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개자식들이…! 지들은 농땡이나 피우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대여점에 업무를 가중시키려고 들어?”

“으아아악! 더는 못 참아! 야, 김도진! 영상 그만 찍어! 충분히 담았잖아. 나는 이제 더 못 참겠어!”

학문가와 이해자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날뛰었다.

“네. 저도 이제 못 참겠습니다.”

도진은 싸늘하게 대답하고는 핸드폰 화면을 껐다.

중간중간 열 받아서 핸드폰 내던지고 다 집합시키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잘 참았는데, 이번엔 그 또한 정말 눈이 뒤집힐 정도로 열 받았다.

도진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야, 이 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

사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해자와 학문가도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고 혼령들을 둘러쌌다. 혼령들이 놀라 까무러쳤다.

“허억, 뭐, 뭐야.”

“악, 깜짝이야. 누, 누구야 당신들!”

“내가 누구냐고? 내가 누구냐면 이리 만물 대여점의 부리부리한 직원이다. 이 귀신새끼들아아아아아!”

분노한 장사의 외침이 온 빌딩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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