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73화 (7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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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씨발. 뭐? ‘이리 만물 대여점에나 가 볼까? 소문의 이리 선인과 제자도 보고’? 이 새끼들이 지들은 탱자탱자 놀면서 그깟 하찮은 일 때문에 존나 바쁜 곳에 와서 사람 힘들게 만들려고 해? 너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어? 너네가 그러고도 지옥에 안 갔어? 지금이라도 확 지옥에 보내 버려? 어?”

전 직원을 정원에 집합시키고 무릎까지 꿇려도 화가 풀리지 않은 학문가가 분수대를 발로 쾅! 쳤다.

“내 말이. 선인님이 얼마나 바쁜지 알면서 술 더 마시겠다고 찾아오려고 해? 이 정도면 양심 다시 측정해보게 해야 돼. 오관대왕의 저울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

이해자는 학문가를 말리기는커녕 양옆에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끼웅. 끼우웅. 끼웅웅.

끼웅이도 도진의 어깨 위에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뭐라 잔소리했으나, 혼령들은 끼웅이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야, 너.”

잠자코 있던 도진이 혼령 무리 중 가장 앞에서 무릎 꿇고 앉은 이를 가리켰다. 복지관의 우두머리는 소 장군이고, 그다음 직급인 부팀장의 갈래는 바로 잡신이었다.

“예, 예. 말씀하십시오.”

안경을 쓴 마른 남자 잡신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 잡신은 그렇게 낮지 않은 갈래로, 장사와 동급이긴 하나 부팀장은 저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꿀리는 점이 많기도 하거니와… 상대는 나이 어린 장사지만 그 이리 선인의 소문이 자자한 제자고, 양옆으로 신령들도 끼고 있었기 때문에.

소 장군이 자리를 비운 지금은 무조건 자세를 낮춰야 했다.

“이거, 일주일 동안 우리 대여점에 온 복지관감 의뢰들이다. 어떻게 생각하냐?”

도진이 서류철을 부팀장에게 던졌다. 부팀장이 받아서 옆의 직원들과 함께 읽었다.

‘이사 가고 싶은데 풍수지리 좋은 곳 소개해 주세요.’

‘친우들이랑 씨름 내기를 할 건데 심판 좀 부탁드립니다.’

‘요 핸드폰이란 것으로 동영상은 어떻게 찍는가?’

변명의 여지 없는 복지관의 업무였다.

“크흠. 저희 복지관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곳이라서인지 고객들이 자꾸 대여점을 찾더군요…. 하하, 이 고객들에겐 저희 쪽에서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왜 홍보를 안 해? 위에서 홍보비를 안 줘?”

“그, 그렇습니다. 홍보 예산이 항상 적게 나와서…….”

그때 양팔에 문신을 한 허세 양아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웃기지 마! 복지관에 예산이 얼마나 많이 배정되는지 뻔히 아는데. 그리고 홍보하는데 뭐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그냥 잔챙이들한테 소문내면 알아서 퍼뜨려 주는데!”

“이해자 님, 그만 하세요.”

“뭘 그만해! 저거 순 거짓말이라고!”

“저도 압니다. 하지만 아랫것들을 족친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법입니다.”

“그럼 뭐 어쩌겠다는 건데?”

“스승님께서는 천 년 전의 전쟁을 하루만의 끝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죠. ‘전쟁은 우두머리가 나서면 졸개들이 죽을 필요가 없어.’ 저는 그 말씀에 매우 동의합니다.”

도진이 이해자를 말리기는 했으나 그도 차분한 상태는 아니었다.

“아랫것들한테는 참아야 합니다.”

퍼억! 그는 혼령을 때리는 대신에 물이 줄줄 새는 분수대를 한 번 더 걷어찼다. 물이 콸콸 쏟아졌다. 도진과 신령들은 간단한 결계를 펼쳐 물방울조차 튀지 않았지만, 혼령들의 옷은 흠뻑 젖어 버렸다. 부팀장이 슬쩍 물길을 피하려고 하는 그때 도진이 말했다.

“야.”

“네, 넵?”

“홍보비가 부족하다고 했지? 그래. 내가 위에다가 대신 말해 줄게. 소 장군? 아니지, 소 장군보다 더 위가 누구더라. 옥황상제나 마고할미? 아니, 아예 근원을 찾아가는 게 좋겠지.”

“그, 근원이라면….”

“왕.”

혼령들이 히익, 소스라쳤다. 도진은 입술을 비틀며 냉소했다.

“내가 마침 곧 기도식을 하거든. 그때 진현계 임금님이랑 마주한단 말이야. 그때 말해 줄게. 복지관 녀석들이 홍보비가 부족해서 홍보를 못 하는 바람에 대여점이 업무 과중 상태라고. 그럼 해결되겠네. 그렇지?”

혼령들은 도진이 적덕 중인 장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절대로 거짓 허세가 아니기에 크게 당황했다.

“잠깐만요. 생각해 보니까 홍보비는 충분합니다…!”

“아, 그래? 그럼 왜 지금까지 홍보가 부족했을까?”

“그, 그것이…….”

부팀장이 옆 직원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나 다른 직원들이라고 마땅한 변명이 있는 건 아니었다.

부팀장은 결국 변명을 포기하고 답삭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할 테니 제발 임금님께 고하지만 말아 주십시오!”

“너희는 안 갈군다고 말했잖아. 윗대가리를 갈궈야 한다니까.”

도진은 이미 실컷 갈구고 있으면서 시치미를 뗐다.

“소 장군은 어디서 뭐 하고 있냐?”

“지금은 다른 동네에 계십니다.”

“하동이 아니라?”

“네, 아마 강원도에 계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운도 좋은 새끼네.”

도진이 중얼거렸다. 이 발언에는 혼령들은 물론 같은 편인 학문가까지 기겁했다.

장군신은 선인과 동급인 갈래, 오히려 소 장군이 자리를 비워서 운이 좋은 건 도진 일행이다. 그러나 도진은 진심으로 소 장군과 한바탕 결전을 치러 이길 생각까지 하고 여기에 왔던 것이다.

학문가와 이해자가 눈을 마주쳤다.

‘저 녀석 오랜만에 보는데 철이 조금도 안 들었네.’

‘뭘 모르네. 지금 소 장군 찾아서 강원도까지 안 가는 것만으로도 철든 거야.’

‘설마 그런 짓까지 할까…?’

‘강림도령, 염라대왕이랑 대결을 펼친 미친놈이란 거 알지?’

‘아하…. 하겠네. 하고도 남겠어.’

신령들이 다 들리게 속삭이고 있건 말건 도진은 부팀장 혼령에게 다가가 양아치처럼 쭈그려 앉았다.

“야, 앞으로 잘해라. 홍보 존나게 하고. 발로 뛰어 다니고. 앞으로 우리 대여점에 쓰잘데기없는 의뢰하는 위아들 있으면 여기부터 찾아올 거야. 알겠냐?”

“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홍보 전단 제작해서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소 장군한테 혹시 불만 있으면 나한테 직접 찾아오라고 해. 나도 여기 직접 찾아왔으니까 소 장군도 그 정도는 움직여야지. 안 그래?”

“맞습니다. 그럼요. 옳은 말씀이시지요. 그럼요, 그럼요.”

도진의 표정과 말투, 자세, 모든 게 양아치 그 자체였다. 학문가와 이해자가 얼마나 강해 보이는 옷을 입고 왔든 중요하지 않다. 태초부터 위협에 재능이 있는 자는 이겨내기 힘들었다.

복지관에서 일 처리를 끝낸 셋은 바로 대여점으로 돌아갔다. 이 일이 이리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인지라, 이리가 누구에게 전해 듣기 전 실토하기 위해서였다. 신령들은 도망가지 않고 함께 이리의 앞에 서는 의리를 보였다.

“응? 학문가까지 오랜만이네….”

이리가 전혀 반갑지 않은 투로 인사했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탓이다.

이리는 도진이 탄 향이 좋은 차를 마시면서 제 수하 둘과 제자 하나가 복지관에 행패를 부리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인은 이마를 짚었다.

“그래…. 그렇게 협박을 하고 돌아왔다는 거구나.”

“그냥 분수대 하나만 망가뜨리고 다른 데는 건들지도 않았어요. 소 장군이 있었으면 씨름 대결이라도 걸어서 개쪽을 당하게 만들었을 텐데.”

학문가와 이해자는 이리의 눈치를 봤는데 도진은 당당하게 굴었다. 오히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증거 영상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복지관이 얼마나 한가한지! 홍보도 안 하고 얼마나 놀고만 있는지!

끼웅! 끼웅끼웅! 끼웅낑!

끼웅이도 얼마나 푸대접을 받았는지, 열변을 토했다.

이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선인은 어린애들은 일단 뒤로 미루고, 신령들부터 타박했다.

“너희는 이걸 안 말리고 같이 행패를 부렸어?”

“선인님, 저희도 오래 참았다는 걸 선인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행패라니요. 복지관 녀석들이 대여점에 한 짓이 행패입니다. 이건 정당한 복수… 아니, 복수도 아니고 그냥 정당하게 업무 이관을 하면서 그냥 몇 마디 던진 것뿐인데요.”

“그 김에 분수대도 부수고?”

“분수대 그거 하나 가지고. 제가 돈 줄게요. 배상금 줄게요!”

이리의 심복 중 가장 돈이 많은 이해자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처음엔 눈치 보는 척이라도 하더니, 도진을 크게 혼낼 기미가 아니자 당당하게 나오고 있었다. 이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천 년을 산 애들이 고작 스무 살짜리 어린애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저 어린애 아니에요!”

어린애가 대번에 펄쩍 뛰었다. 이리의 한숨이 짙어졌다.

“소 장군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제발 안 가만히 있으면 좋겠네요. 오늘 대결을 못 해서 정말 아쉬웠거든요. 팔씨름이든 그냥 씨름이든 닭싸움이든 힘으로 확 눌러 버렸어야 했는데.”

“소 장군은 역대 최연소로 장군신이 됐고, 아직도 나이가 어려. 만만히 봐서는 안 돼.”

최연소라는 말에 도진은 오히려 도발당한 듯 눈을 치떴다.

“언제 장군이 됐고 지금 몇 살인데요?”

“마흔에 장군이 되었고 이제 100년 정도 지났을 거야.”

“하, 전 올해 늦어도 내년에 선인이 될 거거든요? 제가 기록 깨 버릴 거거든요? 그딴 거 가지고 난리 났으면 제가 선인 되면 아주 난리난리 개난리가 되겠네요!”

이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 제자에게는 더 무슨 말을 하지 않고 학문가와 이해자만 지그시 쳐다봤다.

뻔뻔하게 나오던 신령들도 이리의 지긋한 시선에 땀을 삐질 흘렸다. 이리 선인은 좋게 타이르고 있었고, 결코 윽박지르거나 크게 화를 내지도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그냥 냅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복지관에 사과하고 올까요?’ 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학문가가 주먹을 꼭 쥐었다.

“선인님께서 탐탁지 않아 하실 거란 생각은 했습니다. 네, 솔직히 예상했어요. 하지만 저희는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소 장군이 30년이나 선인님을 농락하고 있는데, 더 봐주는 것은 저희의 자존심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맞아요. 저희는 선인님의 신령들이고, 저희에게는 진현계 임금님보다도 선인님이 더 중요하다고요. 상대가 소 장군이 아니라 임금님이셨어도 저희는 똑같은 짓을 벌였을 겁니다!”

신령들이 오히려 큰소리치자 이리는 더 골치가 아파졌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으로 비롯된 일탈인지라 어떻게 혼을 내든 학문가와 이해자는 스스로 당당하게 여길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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