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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요괴…….”
요괴와 악신 사이에 있는 위아를 대요괴라고 부른다. 아직 악신화는 되지 않았으나 요괴의 경지는 넘어선,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위아들이었다.
“위험한 환자가 사고를 쳤는데 왜 포도청도 아니고 스승님을 찾아요? 무조건 스승님 찾을 때마다 저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도진의 붓을 거칠게 튕기자 구경하고 있던 끼웅이에게 염색약이 튀었다. 몸의 절반이 파래진 끼웅이가 얼른 세면대로 달려갔다.
“이번은 우리 일 맞으니까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돼. 화마가 지른 불이 이물을 고장 내서 우리에게 전화한 거거든.”
“의원에서 빌려 간 이물이라면… ‘금척’ 말이죠.”
병이 들었거나 크게 다쳐 죽어가는 생명의 키를 금척으로 재면 생명이 되살아난다. 어렸을 때부터 의원에 장기 대여 중이라 도진은 아직까지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
“이렇게 고장 내는 일이 종종 있나 봐요?”
“수십 년을 주기로 일어나곤 해.”
“그거 엄청 자주 아니에요? 위아 단위로 수십 년이면.”
“그런가.”
도진이 부글부글 끓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승님, 제발… 화를 좀 내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해서 고장 나면 좀 혼도 내시고 벌도 내리시고 하란 말이에요!”
“음. 고치는 법도 간단해서…. 그냥 고정틀 하나만 있으면 되고.”
“고치는 법이 쉽든 어렵든, 엄연히 남의 물건인데 장기 대여해 가서는 계속 주기적으로 고장 내고 있단 소리잖아요. 하, 씨. 전화 예절이 괜찮길래 좀 괜찮은 녀석들인가 했더니 역시 위아들이란 똑같아! 그리고 스승님은 화를 좀 내세요! 대체 스승님은 언제 무슨 일로 분노하신단 말이에요? 최근에 화를 낸 적이…!”
도진이 문득 말을 멈췄다. 천 년 전의 흑룡과 백룡처럼 불길을 뿜을 듯 날뛰던 도진은 갑자기 순한 양 같은 얼굴이 되었다.
“스승님은 제 일 말고는 화를 안 내셨죠, 참.”
도진이 쑥스러운 듯 손가락을 배배 꼬았다.
“물건 빌려 가 놓고 주기적으로 고장 내는 것들한테도 화를 안 내시는 분이 저 납치했다고, 저한테 생채기 좀 냈다고 그렇게 분노하시다니…. 대체 스승님에게 저란 존재란 뭘까요? 스승님은 언제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실 건가요? 스승님에게 김도진이 어떤 존재인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세요. 뭐든 시작이 어렵지 한번 인정하고 나면…….”
도진이 열심히 말하면서 눈길로는 이리의 손목을 훑었다. 이리는 뭔가 난감할 때마다 실팔찌를 만지작거리는데 지금 딱 그러고 있어서 도진은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스승님이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건 순 거짓말이야. 스승님은 그냥 부끄러움이 많으시고 인내심은 그것보다 더 많으신 것뿐이라고.’
앞에 왕이 있다면 당장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그렇게 홀가분하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 * *
다음 날 저녁, 도진이 진열대에서 금척의 틀을 챙겨 나왔다.
끼우웅….
어제 묻은 푸른 염색약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끼웅이가 이리의 손바닥 안에 얼굴을 비비며 퐁퐁퐁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도진은 끼웅이의 뒷덜미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고는 이리의 손바닥 위에 금척 틀을 올렸다.
“스승님, 의원 갈 건데 이 틀 사용 방법 좀 알려 주세요.”
“아, 나도 같이 가. 가면서 알려 줄게.”
“스승님도 직접 가시게요? 고치는 방법 쉽다면서요.”
“오랜만에 관조자도 보러 갈 겸해서.”
도진이 눈을 크게 떴다.
“관조자 님이 거기 계세요?”
“거기서 치료 받고 있어. 화마보다 더 오래된 장기 입원 환자란다.”
“그랬구나…. 전혀 몰랐어요. 어디가 아프신데요? 육신? 마음?”
의원은 본래 육신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이었다. 그러나 일단 ‘의원’이라는 이름에 위아들이 몸을 낫게 해주는 곳인 줄 알고 계속해서 방문하다 보니 점차 육신의 병도 다루게 되었다.
“관조자는 마음의 병이 깊어.”
이리가 씁쓸하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하고 나올게.”
“네, 스승님.”
도진은 손가락에 매달려 울고 있는 끼웅이를 대충 주머니에 집어넣고 먼저 나가 용마를 깨웠다.
[(∪.∪ )…zz]
“야, 일어나. 우리 의원 갈 거야.”
[(∪.∪ )…zzz]
“자는 척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라.”
도진이 수원에 있는 의원 주소를 입력하고는 미리 이리가 앉을 뒷좌석에 방석과 쿠션을 비치했다.
끼우웅….
반쪽이 시퍼런 끼웅이가 도진의 앞주머니에서 고개를 들었다.
[(⊙0⊙)]
끼우웅…. 끼웅. 끼웅웅. 끼우웅.
놀란 용마에게 끼웅이가 짧뚱한 손으로 도진을 가리키며 어제 있었던 일을 토로했다.
[(┬┬﹏┬┬)]
끼웅….
[ㅠ^ㅠ]
끼우웅….
끼웅이가 용마의 내비게이션에 달라붙었다. 용마는 쓰다듬는 듯한 이모티콘을 띄웠다.
“참 나. 둘이 아주 사겨라, 사겨.”
[(╯▔皿▔)╯]
끼웅웅!
“뭐 어쩌라고. 시끄러워, 이것들아.”
도진이 용마, 끼웅이와 신경전을 하는 동안 준비를 마친 이리가 다가왔다. 모연실 찻잎은 물론 대여점 정원에서 키운 과일과 채소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오길래 도진이 얼른 가서 선물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다 관조자 님 주시게요?”
“응.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얼마 만이신데요?”
“오백 년만인가….”
상상 이상의 긴 기간에 도진이 조금 놀랐다.
“왜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시는 거예요? 둘이 싸우셨어요?”
“싸우지는 않았는데 얘기하자면 길어. 얼른 타자.”
“길어도 얘기해 주세요. 저 들을 자격 있잖아요.”
도진은 그동안 관조자에 대해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
관조자는 아주 비밀스러운 신령이었다.
단챗방에는 포함되어 있는데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도 당연히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천지신명이 모두 모인 기도식에도 불참했는데 모두가 그 불참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해자 님, 관조자라는 분은 어떤 분이에요?’
‘어… 걔는 좀 어려운 애야. 그냥 관조자라는 신령도 있구나, 해라.’
‘보부상 형, 관조자라는 신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음. 말하기 복잡하다. 넌 왜 곤란한 질문만 하냐.’
‘스승님, 관조자라는 분은 어떤 분이세요?’
‘글쎄…. 언젠가는 만날 날이 올 거야.’
뭔가를 물어보면 곧잘 대답해 주던 이해자와 보부상도 관조자에 대한 언급은 피했고, 제자의 질문에 언제나 성심성의 설명하는 이리도 관조자에 대한 것만은 야박했다.
도진은 그게 ‘너한테는 아직 이르다’로 느껴졌다. 그래서 더 캐묻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바로 열흘 전 기도식을 올린 정식 제자가 되었으니까!
이리의 뒤를 따를 것이고, 이리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들을 자격이 있고, 들어야만 한다.
도진은 이번에는 넘어가 주지 않겠다는 듯 굳건히 서서 스승의 까만 눈을 직시했다.
“스승님, 저한테도 얘기해 주세요. 관조자 님과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저도 듣고 싶어요. 알려 주세요.”
“…….”
“저는 들을 자격 있다구요!”
이리는 실팔찌를 만지작거리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너도 들을 자격이 있지…. 이제 ‘그것’에 대해 알 때가 되었어.”
“그것…?”
“관조자에 대해 말하려면 ‘그것’부터 시작해야 해. 얘기하려면 기니까 일단 차에 타자. 가면서 설명할게.”
“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며 이리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일단 관조자의 갈래부터 말해줄게…. 그 아이의 갈래는 ‘구름’이야.”
“구름…? 구름이라고요?”
도진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게 가능해요? 구름은 초목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고, 사물도 아닌데….”
위아는 오직 인간, 사물, 초목과 짐승에서 탄생한다고 알고 있는 도진이기에 당연한 의문이었다. 이리도 이해한다는 듯 끄덕였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과거에는 구름, 햇살, 파도, 노을, 비 같은 자연 현상에서도 위아가 태어나고는 했어.”
“그 과거가… 얼마나 과거인데요?”
“수만 년 전이야. 아직 대다수의 인류가 돌도끼를 사용하고 있을 때지.”
정말 까마득한 시간에 도진은 더 놀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자연 현상에서 태어난 위아들은 모두 잔챙이로만 머물렀단다. 요괴, 영물, 잡신, 신령 등이 되지 못하고 아주 작고 애달픈 존재로서 살아가야 했어. 어느 새벽 산골짜기에서 태어난 어린 구름도 마찬가지였지.”
손발도 갖지 못하고 태어난 작은 구름은 산골짜기를 데구르르 굴러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새 지저귐에 눈을 떴다가 잎사귀에 매달린 이슬을 마시며 배를 채우고, 수풀을 데구르르 구르며 나무뿌리, 돌멩이, 축축한 잎사귀, 작은 쥐와 풀벌레랑 놀다가 해가 지면 나뭇가지 위에 매달린 채 잠이 들었다.
평화로운 시기는 짧았다. 계절이 변한 것이다. 날이 추워지면서 자꾸 몸이 얼어붙었고, 아침에 눈뜰 때마다 몸이 부스러지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구름은 점점 더 작아졌다. 이제는 나무뿌리를 건너갈 힘도 없었고, 돌멩이를 굴리거나 잎사귀를 접을 여력도 되지 못했다. 잘 때는 항상 나뭇가지에 걸쳐 잤는데 이제는 둥실 떠오를 힘도 없어서 뿌리에 기대 잠들었다. 구름의 친구인 작은 산쥐와 풀벌레가 옆에서 삐이삐이 울며 밤을 지켜 주고는 했으나, 그들 역시 추운 겨울을 버틸 힘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 어떤 태고의 선인이 우연히 그 울음소리를 들은 거야. 구름, 산쥐, 풀벌레 모두 이 혹독한 계절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질 운명이었는데 태고의 선인은 그것이 안타까워서 그들을 권속으로 만들었어.”
“태고의 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