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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간 곳은 끼웅이가 가장 좋아하는 2층의 이리 침실이었다.
“아, 끼웅이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승님의 침실에 들어와야 하네. 이불도 뒤적여 봐야 하네. 아, 어쩔 수 없네.”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한 도진이 침실의 공기부터 들이마셨다. 으음, 스승님의 향기.
“끼웅아, 어디 있어.”
스승님이 덮고 자는 이불을 만지작거리고, 밤마다 스승님을 지켜 주는 인형들과 스승님의 작은 머리를 감싸 주는 베개를 쓰다듬고…. 옷장도 괜히 한번 열어서 킁킁거렸다.
‘스승님은 역시 베이직한 속옷을 좋아하신단 말이야.’
스승님의 취향을 재확인하며 마음도 몸도 뿌듯하게 부푼 채 방을 나왔다.
“김끼웅! 어디서 처자고 있는 거야?”
2층의 방들과 욕실까지 모두 훑고 1층의 작업대, 진열대, 창고도 수색했으나 어디에도 끼웅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화마처럼 쓰레기통에 있나 해서 쓰레기통도 뒤집어엎어 봤지만 쓰레기만 나올 뿐이었다.
정원에 나와 상수리나무 근처를 대충 찾던 도진은 용마의 헤드라이트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도진은 끼웅이의 둘도 없는 친구인 용마에게 달려갔다.
“야, 너 오늘 끼웅이 봤어?”
용마는 기다렸다는 듯 내비게이션에 표정을 띄웠다.
[ /)/) 〃 ̄ヽ
./・ ミ(ㅠοㅠ)
(_ノ\ ミ⊂ )
( .しノ⌒)~
.UJ~UJ ]
“아, 깜짝이야. 너 이렇게 긴 것도 띄울 수 있었냐?”
[ /)/) 〃 ̄ヽ
./・ ミ(ㅠοㅠ)
(_ノ\ ミ⊂ )
( .しノ⌒)~
.UJ~UJ ]
“뭐야? 이게 무슨 뜻이야? 끼웅이가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갔다는 거야?”
[┗|`O′|┛]
“너 지금 나한테 성질부리냐? 답답하면 사람 말로 해.”
[(╯▔皿▔)╯]
“뭐라는 거야.”
도진은 용마를 실컷 열 받게 만든 후 대여점으로 돌아왔다. 마침 이리가 막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도진아, 네 이름 조문객 명단에 넣었대. 이제 나가자. 한복집이 근처니까 걸어갔다가 바로 천지천해로 올라가면 될 것 같아.”
“아, 네. 가요.”
“끼웅이는?”
“어디 놀러 나갔나 봐요. 오늘 날씨가 좀 좋잖아요.”
이리의 표정이 대번에 걱정스럽게 변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혼자 대여점을 나간 적 없었는데.”
“걔도 이제 태어난 지 4개월이 지났으니 집 안이 답답할 때가 됐어요. 스승님, 저는 자녀는 일찍 독립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래야 보호자도 보호자들끼리의 알콩달콩한 생활을 즐기며 살죠.”
도진이 이리의 어깨를 감싸고 자연스레 정원을 가로질렀다.
“오늘 오랜만에 끼웅이 없이 저희 둘뿐이네요. 4개월 만에 처음이에요. 스승님, 발인이 내일이라고 했죠? 그럼 오늘 밤은 어디에서 묵어요? 거기 뭐 호텔 같은 곳 있나.”
“도진아. 끼웅이에게 메모라도 남겨 두자.”
도진은 이리와 둘이서만 밤을 보낼 생각에 벌써 설렜으나 이리는 아무래도 어린 잡귀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끼웅이에게.
우리는 일이 있어서 내일 낮에 돌아올 거야.
밥 잘 챙겨 먹고, 아무한테도 문 열어 주지 말고.
무서우면 용마랑 같이 자.
내일 보자.
-이리]
편지를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둔 후에야 안심하고 대여점을 나섰다.
큰맘 먹고 가출을 감행한 암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 * *
암인은 그동안 인간 사회를 몇 번이나 경험했다. 이리, 도진과 함께 카페도 가 봤고, 호텔 식당도 가 봤고, 테마파크에도 갔었다. 그래서 인간 사회를 만만하게 여겼다.
인간은 이동하기 쉬운 탈 것에 불과하지!
지나가는 아무 인간의 신발에 얻어 타서 멀리멀리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부아아아앙, 커다란 소음과 함께 커다란 바퀴가 다가왔다.
끼우웅!
암인이 옆으로 구르며 바퀴를 피했다. 그런데 그쪽에서도 바퀴가 다가오고 있었다. 끼웅이는 끼우우! 비명을 지르며 또 굴렀다. 빠아앙! 그 다음 번 바퀴는 피하지 못한 끼웅이가 납작해졌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4차선 도로를 건너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인도에 다다랐을 때 끼웅이는 장사가 발로 꾹꾹 밟은 찹쌀떡처럼 납작해져 있었다.
이리 선인과 함께 골랐던 소중한 미니어처 찻잔과 접시가 담긴 보따리도 진즉 잃어버렸고. 몸은 만신창이였다. 먹은 것도 없어서 굶주린 배가 계속 꼬르륵 소리를 냈다.
끼우웅….
몸도 마음도 힘든 끼웅이가 인도의 보도블록 틈 사이 핀 민들레꽃 줄기에 몸을 기대고 잠시 쉴 때였다.
애웅.
끼웅이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나무 아래에서 앞발을 혀로 핥고 있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인간 중 영안을 가진 존재가 백만 명 중에 한 명이라면, 동물 중 영안을 지닌 존재는 천 마리 중에 하나. 꽤 흔하다는 뜻이다.
애옹.
고양이의 노란 눈이 번뜩였다. 확장되는 동공을 보며 끼웅이는 불길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끼웅이가 눈물을 흩뿌리며 피했지만 고양이의 솜방망이에 얻어맞고 말았다. 고양이는 끼웅이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데리고 놀았다.
“뭐야? 고양이가 뭐 갖고 노는 거야? 벌렌가?”
“잘 안 보이는데. 귀신 아냐?”
“야.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지나갔다.
끼웅이는 한 시간을 고양이의 장난감이 되어 준 후에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
아무 인간한테나 얼른 올라타자고 생각하며 터덜터덜 걷던 암인은 또 다른 적과 마주했다.
구우구우.
바로 비둘기였다. 심지어 비둘기란 것들은 떼로 몰려다녔다. 한 마리가 끼웅이를 콕콕 부리로 쪼아 대자 다른 비둘기들도 한 번씩 머리를 쪼았다. 끼웅이는 저항할 기력도 없어서 그냥 쪼이며 얼른 흥미가 떨어지길 빌었다.
그러나 비둘기들이 떠난 다음에는 더 위험한 적이 나타났다.
“뭐야. 너 누구야? 여긴 우리 영역이거든? 꺼져!”
바로 또 다른 잡귀들이었다. 보아하니 인간이 버린 담배꽁초에서 탄생한 잡귀 같았는데, 크기는 끼웅이와 비슷했으나 성격이 매우 흉폭하고 험악했다.
끼웅웅, 끼웅.
“여기서 같이 지내고 싶다고? 너 음기 먹게 생기진 않았는데. 음기 먹어?”
끼웅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경멸 어린 시선이 돌아왔다.
“음기를 먹지 않으면 우리와 함께할 수 없어. 꺼져!”
잡귀가 끼웅이를 발로 찼다. 끼웅이는 도로에 떨어졌다가 식겁하고 허둥지둥 올라왔다. 서럽게 울면서 잡귀들 구역을 벗어난 끼웅이는 그 후로도 잔챙이 위아들을 만났으나 환영받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같이 ‘음기를 안 먹는다’는 것이었다.
끼웅이도 음기가 무엇인지는 알았다.
그건 인간이 내뿜는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시기, 질투, 슬픔, 분노, 우울, 짜증, 공포.
끼웅이는 그런 것들은 먹고 싶지 않았다.
김도진이 타 주는 모연실 차를 마시고 싶고, 이리 선인이 잘라 주는 약과를 갉아 먹고 싶었다.
미니어처 찻잔을 잃어버려서 어떡하지.
이리 선인이 다시 사 주겠지?
지금쯤 이리 선인이랑 손가락 그림자 붙잡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인데….
끼웅이는 정처 없이 떠돌던 발걸음을 멈췄다. 이리 선인이 보고 싶었다. 그 아늑하고 따뜻한 대여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죽하면 김도진의 손가락 튕김까지도 그리웠다.
“어, 어? 너, 너는.”
그때 누군가 끼웅이를 들어 올렸다. 암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명 인간은 날 볼 수 없는데!
끼웅! 끼우웅! 끼웅!
끼웅이가 바둥거렸지만 손가락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너, 너는 이, 이리 선인이랑 같… 이 있었던.”
이리 선인이란 단어에 암인은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그러고 보니 이 목소리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끼웅이는 용기를 내서 상대를 바라봤다.
덥수룩한 머리칼에 움푹 파인 눈 밑, 메마른 입술.
끼웅이는 이 인간이 누구인지 알았다. 이리 선인과 김도진은 이 자를 ‘퇴마사’라고 불렀다.
* * *
삐리릭- 철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흰 가죽 소파를 놔두고 굳이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 누워서 거실 전면창 바깥의 푸른 한강을 바라보고 있던 이석진이 몸을 뒹굴 굴려 동거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덥수룩한 머리의 사내가 나타나자 이석진이 빙긋 웃었다.
“한수 형, 이제 와? 떡볶이는?”
“아, 서, 석진아. 떠, 떡볶이 사 왔어.”
“아진이 깨울게.”
이석진이 벌떡 일어났다가 현기증 때문에 주저앉았다. 한수가 얼른 다가가 부축했다. 이석진은 오랫동안 악신이 빙의되어 있어 몸이 병약해졌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산을 타며 놀아도 지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주술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형편이었다.
“처, 천천히 움직여.”
“고마워, 형.”
이석진이 낮잠 중인 동생의 방으로 향했다. 한수는 그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보다가 검은 비닐 봉투를 들고 주방에 들어갔다. 이미 떡볶이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식탁에 떡볶이와 어묵 국물을 주위에 튀지 않도록 조심스레 부었다.
끼웅.
검은 봉투 안에 함께 들어가 있던 끼웅이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영차영차 빠져나온 끼웅이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퇴마사의 집은 딱 봐도 대여점과는 달랐다. 대여점도 넓긴 하지만 뭔가 물건이 많아서 복작복작한 느낌이라면 이곳은 넓은 집이 휑해 보일 정도로 깔끔했다.
“아, 저, 저기. 끼웅아. 떠, 떡볶이 머, 먹을 거지?”
끼웅.
끼웅이가 뭘 묻느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수가 얼른 주방 서랍을 뒤져 가장 작은 간장 종지와 디저트 포크를 꺼냈다. 떡볶이를 작게 잘라서 종지 위에 놓자 배가 고팠던 끼웅이가 얼른 앞에 와서 앉았다. 대여점이었다면 먼저 먹었겠지만, 예의를 아는 끼웅이이므로 사람들이 모이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