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118화 (11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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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창 학교 다닐 나이인데 학교를 그만둔 특별한 이유가 있어?”

“돈 벌어야 해서요….”

“부모님은?”

“아버지는 본래 없고,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형제도 없고 저 혼자라서 돈 벌어야 돼요.”

알바 면접을 하다 보면 가끔 이렇게 가정 환경을 물어볼 때가 있다. 부모님 허락받은 척 몰래 알바를 했다가 나중에 부모님한테 들켜서 알바처도 곤란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수는 그때마다 딱 여기서 끝맺었다. 그러면 사장들도 더 캐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머니가 그냥 자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전날 밤에 같이 치킨을 먹었는데요. 닭 다리가 세 개인 거예요. 그래서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먹기로 했는데 제가 이겨서 두 개 먹고 엄마가 한 개 먹었어요.”

상대가 묻지도 않은 설명이 줄줄 나왔다. 지수는 자기가 왜 이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맑은 눈을 보며 계속 마음속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다음 날 엄마가 분명 출근 시간인데 안 일어나시는 거예요. 일단 밥 차려 놓고 기다렸는데 안 일어나서 방에 들어가 보니까 이미 죽어 계셨어요. 과로로 인한 심장 질환이라고 했고요. 그 후로 치킨 한 번도 먹은 적 없어요. 엄마한테 닭 다리 두 개 줄걸. 지금도 너무 후회돼요.”

“그랬구나…. 마음이 아팠겠네.”

이리의 말에 지수는 뭔가 울컥, 하는 기분에 입을 다물었다. 도진이 쯧, 혀를 차더니 티슈 몇 장을 지수에게 건넸다. 지수는 그제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오, 쪽팔려.’

지수는 고개를 돌려서 눈물을 벅벅 닦아 냈다.

내가 왜 내 이야기를 주절거렸지? 치킨 얘기는 뭐하러 한 거야? 면접 보러 와서 엄마 얘기를 하다가 울다니. 나라도 미친 사람인 줄 알겠다.

아무래도 이 면접은 망친 것 같다. 눈물을 닦은 뒤 휴지를 구겨서 아이스 초코 컵 뒤에 숨기는데, 뭔가 작고 검은 그림자 같은 게 아른거렸다. 인상을 쓰고 뚫어져라 보니 그 그림자가 꼭 사람 모양 같았다.

“지수야.”

“아, 네!”

지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금 뭘 보는 거야? 뭔가가 보여?”

당연히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다.

“작은… 그림자 같은 게.”

“원래부터 이상한 것들이 보였어? 아니면 최근 들어서?”

“최근 들어 보이기 시작했어요. 몇 개월 됐나…. 눈앞에 하얀 형체 같은 게 아른거리고. 가끔 자다가 눈뜨면 옆으로 홱 지나가는 느낌도 들고. 아, 그런데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믿어 주세요. 저 일 잘해요.”

“그래. 알아.”

이리라는 사장님의 시선이 지수의 옆으로 향했다. 빈자리였는데… 이리가 마치 눈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보여서 지수는 조금 소름이 돋았다.

부리부리한 남자가 이력서를 팔랑거리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모양인데요.”

“그러게.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어.”

“훈련을 시키면 될까요?”

“수행하면 확실한 영안을 갖게 되긴 하지.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 사는 쪽이 낫지 않을까?”

지수는 도진과 이리의 대화를 들으며 ‘사이비 종교 단체’라는 댓글이 생각났다. 매형의 처남이 겨우 탈출했다는 그 댓글이 진짜였나?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그런데 왠지 이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할 거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부리부리한 남자라면 몰라도 이리라는 특이한 이름의 대여점 사장은 세상이 좀비 아포칼립스가 되는 한이 있어도 항상 이렇게 맑고 깨끗하게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처음 보는데도 뭔가 친근하고… 그냥 신뢰가 갔다.

“그냥 이 녀석한테 선택하라고-.”

그때 대화하던 둘이 갑자기 멈추고 동시에 지수의 옆을 바라봤다. 이리는 하얀 미간을 조금 구겼고, 도진은 붉으락푸르락 성난 얼굴이 되었다.

지수는 뭐가 있나 놀라서 제 옆을 봤다.

뭔가 희미한 게 일렁이고 있었다. 요즘 들어 가끔 보였던 그것이었다. 눈에 뭔가 이물질이 끼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한테도 보인다면….

“헉, 귀신?”

지수가 기겁하면서 소파 끝으로 물러났다. 눈을 벅벅 닦고서 다시 보자 다행히 희미한 형체가 사라져 있었다.

“뭐, 뭐예요, 방금? 귀신이에요? 저한테만 보인 거 아니죠?”

“지수야. 빚이 얼마야?”

“……!”

지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빚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웃긴 건 이렇게 소름이 돋는데도 입은 얌전히 대답을 해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삼천만 원이었는데 2년간 천만 원 갚아서 지금은 이천만 원 남았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삼촌이 어렵사리 말을 꺼내 왔다.

네 어머니가 수년 전에 삼천만 원을 빌렸다고.

차용증을 보여 주었는데 정말로 어머니 필체가 맞았다. 도장도 찍혀 있었고. 지수도 그 시기쯤 어머니가 식당을 연다고 여기저기서 돈을 꿨던 기억이 났다.

삼촌은 이자는 받지 않겠다며 천천히 갚으라고 했지만, 지수는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빚을 진 상태라는 게 싫어서 빨리 갚고자 학교까지 그만뒀다.

선생님한테는 털어놓을 수 없었다. 우리 엄마가 가족한테 돈 빌리고 안 갚는 사람인 줄 알까 봐.

우리 엄마 그런 사람 아닌데.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데.

“야. 차용증은 삼촌이 가지고 있냐?”

김도진이 몹시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아셨어요? 뭔가 신기한 종교 능력으로…? 귀신이랑 대화해서…? 혹시 두 분 무당, 그런 거예요?”

“당장 삼촌 집으로 가자.”

“네?”

“주소 내놔.”

“지, 집 몰라요. 전화번호밖에는….”

“그래? 그럼 우리가 알아서 가죠. 스승님. 바로 ‘사해 목걸이’ 가지고 올게요.”

“도진아, 침착해. 일단 지수에게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 설명. 설명부터 좀 해 달라고!

지수가 고개를 강렬하게 끄덕였다. 벌떡 일어났던 도진이 다시 앉았다. 그러나 긴 다리를 떨어 대는 게 화를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지수는 빚진 사람은 나인데 왜 처음 만난 대여점 직원이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수야, 너무 놀라지 말고 들으렴.”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리둥절하기만 한 열여덟 살 소녀에게, 이리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 * *

영안(靈眼)

[명사] 영묘한 눈. 흔히 영적으로 살펴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이른다.

지수는 한 줄짜리 검색 결과를 수십 번 읽었다.

나한테 영안이 있다고 한다. 영적으로 살펴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처음에는 그 예쁜 사장님이 ‘너는 영감이 있어’ 이래서 ‘할아버지가 있다고요?’ 하고 놀랐는데 그 영감이 그 영감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귀신 보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요즘 까맣거나 희뿌연 게 보이는 이유가 영안이 열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한 전화번호를 본 것도 영안 덕분이었다.

‘평생 영감 따위 전혀 없었던 사람도 너처럼 간혹 영안이 열릴 때가 있어. 특별한 수련을 하면 계속 열려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닫힌단다.’

대여점에서는 평생 영안이 열려 있는, 어느 정도 영능력을 지닌 이를 알바로 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수는… 이대로면 면접 탈락이었다.

‘저 영안 안 닫혀도 돼요. 수련이란 거 열심히 할게요.’

‘괜찮겠어?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새벽 운동과 명상 후 6시에 아침 식사하는 생활을 수십 년은 해야 할 텐데….’

‘죄송합니다. 취소할게요.’

아침잠이 많아 바로 포기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쉬웠다.

“수련한다고 해 볼까….”

지수는 뒹구르르 매트리스에 누워 누런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대로 특이하고 이상한 것들을 보며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미래에 뭐가 될지 걱정인데 무당 되면 돈도 벌 테고.

방금도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고 왔는데 세 시간 일해서 삼만 육천 원을 벌었다. 무당은 이것보다는 많이 벌지 않을까? 대여점이란 곳에서도 월급을 300만 원도 넘게 준다고 공고를 올렸고 말이다.

지수는 ‘무당 월급’, ‘무당 수입’ 같은 걸 검색했는데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천장에 희뿌연 것이 아른아른 보였다. 지수가 일어나 앉았다.

“수호령…….”

요즘 보이는 저 희멀건 게 바로 지수의 수호령이라고 이리 사장님이 말해 줬다.

연기처럼 아른거리는 수호령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장님과 직원은 이것과 말도 통하는 것 같던데 지수는 형체를 알아보는 것도 힘들었다.

사실 수호령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물었다.

‘혹시 제 어머니인가요?’

그 질문에 이리는 빙그레 미소 짓기만 했다.

지수는 날 지켜 주는 귀신이 존재한다면 그건 엄마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엄마야?”

“…….”

“아니지?”

“…….”

가느다란 목소리가 한 칸짜리 작은 방에 공허하게 퍼졌다. 잠시 대답을 기다리던 지수는 머리를 거칠게 헝클였다.

내가 뭐 하는 짓이냐.

평생 이런 쪽에 관심도 없이 살다가 갑자기 귀신이니 수호령이니 하는 존재들을 겪게 되었는데. 공황에 빠지지도 않고 엄마 얘기나 꺼내고 있고.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적응력이 빨랐나 싶었다.

사실 빠르게 적응한 이유는 이리 선인의 ‘너무 놀라지 말고’라는 말 덕분이었으나 지수는 몰랐다.

한숨을 깊게 내쉰 지수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일단 지금은 삼촌에게 집 주소를 물어봐야 했다. 주소를 알아내고 나면 김도진이란 직원한테 연락해야 하고.

둘의 말에 따르면 삼촌은 지수를 속이고 있었다. 정확히 뭘 속였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빚 관련이 아닐까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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