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강림도령이 키우는 케르베로스의 뿔. 이를 얻기 위해서는 저승에 가야 한다.
저승은 출입국장을 통해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저승에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죽거나, 저승사자와 함께 가거나, 직접 삼도천의 문을 열거나.
당연하지만 삼도천의 문은 아무나 열지 못한다. 상당한 고난이도의 도술이기도 하고, 문을 열 자격도 필요하다. 도진은 그 자격이 없어서 이리가 미리 부적을 만들어 줬다.
도진은 구미호의 저택을 나서자마자 품에서 부적을 꺼냈다. 부적에 검지와 중지를 갖다 대고 도력을 불어 넣었다. 옛스럽고 멋있고 근사한 필체로 적힌 ‘삼도천문’ 네 글자가 번쩍번쩍 빛나더니 눈앞에 육중한 쇠문이 쿠궁! 하며 나타났다. 신령이 오오오 탄성을 내질렀다.
[삼도천 가는 문
※용암강이 흐릅니다!
화상과 실족 및 질식 주의 요망]
도진이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적힌 쇠문을 밀었다. 끼이익, 마치 귀곡성 같은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고 불길이 솟구치는 용암강, 삼도천이 나타났다. 문밖에까지 뜨거운 열기가 확 몰려왔다. 그들이 건너야 하는 다리가 삼도천을 가로지르며 놓여 있었다.
“다, 다리가 나무이옵니다.”
“그렇군요.”
용암강 위에 나무로 만든 다리 놓을 생각은 누가 했는지. 도진이 혀를 찼다. 심지어 발판이 타들어 간 부분도 있었다.
이군이는 겁먹었는지 꿀꺽, 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내 주먹을 불끈 쥐고 한 걸음 내디뎠다.
끼익, 끼이익. 발 디딜 때마다 위태로운 소리가 났다. 길기도 길어서 30분이 지나서야 다리의 끝에 다다랐다. 도착한 끝엔 문지기 도깨비들이 커다란 문을 지키며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저마다의 목적으로 저승에 방문하려는 긴 줄이 늘어졌다.
“모두 열 맞춰서 줄 서 주세요. 거기 152번째분, 왼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세요.”
“여기서부터 기다리면 두 시간입니다. 미리미리 방문 서류 작성해 놓으세요.”
혼령 직원들의 말에 이군이가 방문 서류 두 장을 받아 왔다.
[이름:
갈래:
사망 여부:
방문 목적: ]
“목적을 솔직하게 쓸 순 없는데…. 큰일이옵니다.”
“그냥 개인 사정이라고 쓰면 되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저 직원들도 분명히 세세하게 묻진 않을 겁니다.”
이군이는 불안해했지만, 도진의 말이 맞았다. 직원은 어떤 개인 사유인지 묻지 않고 둘을 저승 문으로 들여보냈다. 그저 ‘김도진’과 ‘장사’라는 글자를 보면서 뭔가 익숙한데, 하며 고개를 갸웃했을 뿐이었다.
저승도 사람 사는 곳이라 인간 도시와 비슷하게 생겼다. 고층 빌딩 대신에 고층 탑이 있고, 지하철과 버스 대신에 말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점만 좀 달랐다. 저승은 허가받은 고위 관리직만 전기자동차를 탈 수 있어서, 도로에는 말과 마차, 자전거와 킥보드가 혼재해 있었다.
“와…. 저는 처음 오는데 정말 대도시이옵니다.”
“그러게요. 뭔가 목가적인 대도시군요.”
“도진 님도 처음이옵니까?”
“네. 진현계와 하계 말고는 처음입니다.”
이군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도진 님은 진현계 왕 후보잖아요. 이제 임금님 하야까지 몇 개월 남지 않았는데 아직 칠계를 전부 방문하지 않으셨단 말이옵니까?”
“…대여점 운영하느라 바빠서 말이죠. 그쪽 같은 이물 관련 외 부탁도 의뢰라고 다 들어주고 있는데 뭐 어디 갈 시간이 나겠냐고요.”
“아…. 죄송하옵니다. 빨리 끝내고 보내 드리겠사옵니다.”
쩔쩔매는 이군이를 보며 도진은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둘은 저승 관광 행렬의 뒤꽁무니에 붙어서 따라갔다. 보통 저승 관광 일정에는 ‘49 차사청 관람’이 반드시 끼어있다는 걸 이리에게 들은 덕분에 둘은 손쉽게 49 차사청에 잠입(?)할 수 있었다.
번쩍번쩍한 샹들리에가 달린 화려한 로비. 포도청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포도청이 지상으로 높게 뻗었다면, 차사청은 지하로 낮게 뻗은 곳이었다.
왜냐하면 차사청 지하에 49 지옥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으니까. 그곳은 관람이 엄격하게 제한된 곳으로 이미 사망한 이가 아니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케르베로스는 바로 그 지옥 통로 입구를 지키고 있다.
“극락 선치 마을 여러분, 차사청 관람 끝났습니다. 이제 식사하러 가실게요.”
“거, 조금만 더 구경하면 안 되나?”
“시간 지체되면 감옥에 잡혀가요. 얼른 나오세요오.”
“허허. 이미 죽었는데 투옥되는 경험도 한번 해 보면 좋겠지.”
극락에서 온 관광객들은 말과는 달리 가이드의 말을 잘 따라갔다. 도진과 이군이는 화장실에 들어가는 척하면서 은신술을 사용하고 나왔다. 도진의 은신술은 수준급이라 로비에서 근무하는 안내 데스크 직원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둘은 빈 엘리베이터에 올라 지하로 내려가는 버튼을 연타했다.
“야, 저기 엘베 닫힌다. 얼른 와!”
“잡아 놔!”
그런데 하필 이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이들이 있었다. 신체 접촉이 일어나면 은신술이 풀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둘은 구석에 찰싹 달라붙었다. 급히 뛰어온 두 혼령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내가 10분 더 일찍 나오자고 했지. 일호 새끼야,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너 운동 너무 안 해서 일부러 운동 좀 시킨 거야. 고마워해.”
“뭔 개소리인지…. 너 조만간 강아지로 환생해라. 이미 강아지 언어도 할 줄 아는데.”
“너는 나무늘보로 환생해라. 그렇게 운동 안 하면 곧 나무늘보 되겠지만.”
티격태격하는 두 혼령은 일호와 홍연이었다. 도진은 인사할지 말지 잠깐 고민에 빠졌다.
“요즘 진짜로 너 책상 앞에만 앉아 있잖아. 왕 되면 운동할 시간도 없을 텐데 지금 근육 다 빼놓으면… 왜 그래? 뭘 그렇게 봐?”
“아니. 여기 뭔가… 어른어른한… 뭔가 일렁거리지 않아?”
홍연이 구석을 응시하며 말하자 일호도 같은 곳을 응시했다. 일호는 대체 뭐가 있냐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홍연은 점점 뭔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도진은 조금 놀랐다. 율도국에서 만났을 때, 그리고 기도식에서 만났을 때 홍연은 도술이 아주 서툴렀다. 도진과 비교할 게 아니라 끼웅이와 비교해야 할 정도로. 그런데 이 짧은 사이에 은신술을 발견할 만큼 성장한 것이다.
“앗, 역시! 뭐가 만져지잖아!”
팔을 뻗어서 이군이의 어깨를 만진 홍연이 외쳤다. 이군이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도진을 올려다봤다. 도진은 하는 수 없이 은신술을 풀었다. 홍연과 일호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 김도진?”
“오랜만이다.”
“김도진? 그리고… 이쪽 분은 누구지? 아니, 그런데 김도진? 네가 여기 웬일이야? 은신술까지 사용하고 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일단 가면서 얘기하지.”
도진이 뻔뻔하게 대답하며 엘리베이터의 지하 20층 버튼과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설명은 이군이에게 맡겼다.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렇다면 우리가 안 도와줄 수가 없죠. 도중에 우릴 만난 걸 행운으로 아세요, 이군이 신령님!”
홍연이 허리에 손을 얹고는 한껏 위풍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일호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미쳤냐. 왜 네 멋대로 정해? 강림 님한테 걸리면 너만 혼나는 게 아니라 나까지 혼나. 강림도령이 케르베로스를 얼마나 애지중지하시는데.”
“뿔을 뽑아가는 게 아니라 뽑힌 뿔 중 하나를 주면 되지.”
“뽑힌 뿔이라니?”
케르베로스가 아주 성질 사나운 요괴라는 것 말고는 아는 정보가 없는 도진이 물자 홍연이 머리 위에 손가락 네 개로 뿔 모양으로 만들어 보였다.
“케르베로스는 뿔이 총 8개가 있어. 그런데 가끔가다 아홉 번째 뿔이 자라거든. 인간으로 치면 사랑니 같은 건데 달려 있으면 케르베로스도 불편해하고, 놔두면 썩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뿔을 뽑아낸단 말이야.”
“그 뽑은 뿔은 안 버리고?”
“안 버려. 귀한 약재라 약재방에 보관해 두고 있어. 거기서 무게 달아서 신령님 덕이랑 물물교환해 가면 돼.”
“잘됐네. 바로 약재방으로 가자. 설마 다시 위에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아니야. 케르베로스 사역장 안에 있으니까.”
“가자.”
도진이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다는 듯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일호는 강림도령의 불호령이 벌써부터 걱정되는 눈치였지만, 홍연이 워낙 적극적이라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사역장은 지옥행 무인 열차를 타고 또 30분을 더 가야 입구가 나온다. 그동안 일호가 수다를 떨었다.
“내가 새끼 케르베로스를 한 마리 키우고 있거든. 체리베로스라고. 엄청 귀여운데 볼래?”
“딱히 안 궁금.”
“앗, 저는 궁금하옵니다. 보여 주세요.”
일호가 핸드폰을 꺼내 체리 사진을 보여 줬다.
“어때. 귀엽지.”
“아… 네…. 저, 정말 귀엽사옵….”
날카로운 이빨에서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근육질 개가 홍연의 품에 안겨 있었다. 누가 봐도 귀여운 쪽은 개가 아니라 홍연이었다. 곁눈질로 본 도진이 묻지도 않고 핸드폰을 꺼냈다.
“나도 키우는 잡귀가 있어. 너네도 이미 봤지만 또 봐.”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사진을 봤는데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는 어여쁘신 선인님 말고는 없었다.
“끼웅이 어디 있는데?”
“여기.”
도진이 키우는 잡귀는 사진 구석에 아주 흐릿하게 발만 조금 나와 있었다. 그냥 이리 사진이었다.
일호가 제법인걸? 하는 시선으로 도진을 쳐다봤다. 도진은 뚱하니… 다음 사진으로 넘기며 받아쳤다.
지옥 입구에 다다를수록 이군이가 무릎을 덜덜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수한 비명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