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175화 (175/203)

“꼭 슬라임 같네요. 도희가 어렸을 때 갖고 놀던 슬라임 중에 이렇게 까만 게 있었는데.”

“꼭 문진 같군요. 예전 남자 친구가 선물했던 문진 중에 꼭 이렇게 생긴 게 있었는데.”

도진과 이해자가 자기식으로 해석했다.

“스승님, 이제 이 슬라임으로 뭐 하시려고요?”

“내 일부를 넣을 거야. 아무래도 너희만 보내기에는 불안하니까….”

“…일부라면!”

도진이 반색했다. 아니, 반색 정도가 아니라 눈이 광기에 젖어 갔다.

“언제나 스승님을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소원으로 이뤄지다니! 아아, 저 너무 행복해요. 날아갈 것 같아요! 아아! 조물조물해야지. 물고 빨아야지. 아아아!”

도진의 발광이 얼마나 거센지 아진과 한수가 눈물 어린 인사를 멈추고 쳐다볼 정도였다. 이해자가 끌끌 혀를 찼다.

“진정해라, 김도진. 그 뜻이 아니라 선인님의 능력을 일부 나눠 넣으시겠다는 뜻이다. 선인님이 직접 마경에 들어가시는 게 아니라 선인님의 능력의 일부가 같이 들어가겠다는 거야.”

“아…….”

“…그렇게까지 세상 무너진 얼굴을 한다고?”

제자가 절망에 빠지든 말든 이리는 허공에서 주머니 세 개를 꺼냈다. 파란색, 빨간색, 흰색으로 도진의 손바닥보다도 작은 향낭이었다.

“도진아, 정신 차리고 설명 들어.”

“네. 제자는 언제나 스승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어요.”

“한수, 너도.”

“아, 네…!”

“이 흰색 주머니에는 내 ‘통로’ 능력을 담았어. 마경을 나가고자 할 때는 이 흰색 주머니를 열면 바로 이곳. 대여점 정원으로 연결될 거야. 유지 시간은 10초니까 얼른 넘어와야 해.”

“네.”

“이 파란 주머니는 이석진을 발견했을 때 사용해. 아마 의식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아. 이석진을 향해 파란 주머니를 벌리면 이 안으로 빨려 들어올 거야.”

“예.”

“빨간 주머니는 위기의 순간에 열면 돼.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위기 없이 여유롭게 해치우고 올 건데요.”

“위기라는 게 꼭 네가 생각하는 방향이 아닐 수도 있어.”

이리는 아리송하게 미소 지었다. 빨간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정확히 얘기해 주지 않았다.

“이 세 개의 주머니를 사역마 안에 넣어 놓을게.”

“사역마는 주머니의 주머니 용도였군요. 그런데 그냥 이 향낭들을 허리에 매달고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설마 우리가 잃어버릴까 봐요?”

“주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야. 마경의 음기 때문에 들어가자마자 바스러질 테니까 잡귀 계열의 사역마 안에 넣어 두는 거야.”

“그럼 끼웅이 안에 넣어 가도 되겠네요.”

“…안전하게 다시 데려올 수 있다면 그래도 되지만.”

“김끼웅, 선인님한테 작별 인사해라.”

끼웅! 끼우웅. 끼우우웅!

끼웅이가 울면서 이리의 손가락을 꼬옥 붙들었다. 위험한 곳에 진심으로 데리고 갈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하여튼 조금의 건덕지가 있으면 바로 끼웅이를 놀려 대는 도진이었다.

“저기… 선인님, 이 사역마가 만약 무사히 되돌아오면 그 후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만든 사람 마음대로 처분해야지.”

한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옆에서 도진이 은근히 말했다.

“아, 이거 도희가 가지고 놀던 슬라임이랑 완전 똑같은데. 도희가 좋아하겠는데. 마침 이 녀석은 영안 없는 인간한테도 보이고. 가지고 놀기 딱인데 완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