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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190화 (190/203)

190화.

끼이이익, 쾅! 쿠우웅! 지상에서 추돌 사고가 연이어 이어졌다. 인간도, 위아도 서로 놀라서 상대를 위협했다. 조금만 침착하면 상대가 겁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텐데, 자신 또한 겁먹었기에 헤아리지 못했다.

배리모스가 다시 시커먼 덩어리들을 만들어 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덩어리들을 도진이 그물을 만들어 내 붙들었다.

“흐읍…!”

금검과 피웅도로 그물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도진에게 배리모스가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그림자 세례를 퍼부었다. 히이이힝! 용마가 단단한 비늘 날개로 모조리 튕겨 냈지만 파편 몇 개가 튀어서 도진의 뺨과 팔뚝에 생채기를 냈다.

배리모스는 이번엔 그림자 파도를 만들어 냈다. 건물 옥상을 전부 삼킬 정도의 집채만 한 검은 파도가 높이 치솟았다.

앞에서 파도가 다가오는데 결계를 뚫고 나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물을 놓자니 잡아 둔 부적이 풀려나는 상황. 고스란히 파도를 뒤집어쓰게 생겼다. 용마가 비늘 날개로 도진을 감쌌다. 도진은 눈을 부릅뜨고 검은 파도를 준비했다.

그때 용마의 검은 비늘 날개 사이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눈앞까지 다가왔던 검은 파도가 일시중지한 듯 멈췄다. 그리고 곧 분홍색과 하얀색의 꽃잎으로 변해 사라졌다. 하늘을 나부끼는 꽃잎을 보며 도진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스승님의 특기인데.

“용마, 내려가자!”

도진이 얼른 용마의 갈기를 잡아 옥상으로 내려섰다.

이리 선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감을 펼치니 스승님의 육신은 여전히 병실에서 잠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뭐였지?

단서라고는 푸른빛이 유일했다.

그 와중에 배리모스는 다시금 검은 파도를 만들어 내려는 듯 그림자를 꿈틀거렸다. 누가 도와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배리모스를 제압하는 게 우선이었다.

흐읍! 도진은 팔에 힘을 주고 그물을 끌어당겼다. 이렇게 전력을 다하는 건 오랜만이라 온몸의 근육이 터질듯이 부풀었다.

“김도진!”

때마침 이해자와 학문가가 옥상으로 올라와 도진에게 부적을 던졌다. 공간이동술이 담긴 부적이었다. 용마가 주둥이로 부적을 물었다.

“이쪽은 우리가 수습할게. 포도청에도 연락했고, 관조자도 오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얼른 가!”

도진이 붙잡고 있던 그물을 이해자와 학문가가 나눠서 받았다. 검은 파도는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도진은 용마의 주둥이에서 부적을 낚아채며 바로 술법을 펼쳤다. 옥상에 거대한 이동진이 만들어지고, 이동진에 발을 딛고 있던 도진과 배리모스가 즉시 이동되었다.

신령들이 싸울 만한 장소를 묻자마자 도진은 이곳이 생각났다. 격렬한 싸움으로 주위가 무너져도 되는 곳.

바로…….

“으아아악!”

“뭐야?”

“깜짝이야!”

당직을 맡은 복지관 직원들이 갑작스레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 악신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그렇다. 도진은 복지관으로 배리모스를 데리고 왔다.

아름다운 분수대가 있는 정원이나 깔끔한 건물이 더러 무너지겠지만, 세상의 평화를 위해 싸우다가 무너뜨리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마침 배리모스가 검은 파도를 완성했다. 용마를 타고 높이 떠오른 도진은 허공에 거대한 흰 손 두 개를 띄우고, 한 손으로 복지관 직원들을 쓸어 담아 다른 쪽 손바닥에 옮겼다.

쿠와아앙!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검은 파도가 휩쓸고 간 정원은 쑥대밭이 되었고, 건물 외벽마저 무너졌다.

역시 여길 선택하길 잘했다.

“이제 좀 본격적으로 싸울 수 있겠군.”

-건방진 것이…….

배리모스가 다시금 검은 촉수를 뻗어 왔다. 도진은 촉수를 피하며 직원들에게 물었다.

“소 장군 있어?”

“기, 김도진?”

“소 장군 있냐고!”

“지, 지금은 안 계십니다. 술 마시러….”

“얼른 불러!”

직원들이 허둥지둥 핸드폰을 꺼냈다. 도진은 소 장군을 부르라고는 했지만, 도움을 기대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전에 싸움이 끝날 테니까.

복지관 직원들을 전부 거대한 손에 안전히 집어넣고, 드디어 정원에는 배리모스와 도진만 남았다.

도진이 빠르게 뻗어 오는 그림자 촉수들을 금검과 피웅도를 휘둘러 베었다. 베리모스가 촉수 여러 갈래를 합쳐 굵게 만들어 공격했다. 도진은 금검과 피웅도를 교차해 결계를 펼쳤다.

쾅, 쾅, 쾅! 굵은 촉수를 막아 내는 사이 뒤쪽으로 그림자가 빠르게 뻗어 왔다. 도진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뒤로 손을 뻗어 맨손으로 잡아챘다.

무기 두 개는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이제 그는 직접 무기를 손에 쥐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었다.

치이이익- 그림자는 살갗에 스며들기는커녕 손 안에서 타들어 갔다. 어느샌가 양손에 빛 덩어리를 쥔 도진이 배리모스에게 그것을 던졌다. 배리모스가 그림자 장벽으로 빛 덩어리 두 개를 막아 냈다. 도진이 용마의 옆구리를 건드리자 용마가 높이 올랐다.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도진이 주먹만 한 빛 덩어리를 사방에 띄웠다. 족히 수백 개는 될 것 같았다. 빛 덩어리가 배리모스에게 쏟아졌다. 마치 아까 전 검은 덩어리 세례처럼. 배리모스는 장벽을 펼쳤으나 상당 부분 막지 못했다. 그림자 본체가 군데군데 타들어 갔다.

-이 자식…….

배리모스가 분노하며 입을 쩌어어억 벌렸다. 그러자 그림자 잡귀들 수천, 아니, 수만 마리가 쏟아져 나왔다.

-끼헤헤헤헤!

-흐히히히히!

-크흐흐흐흐!

잡귀들이 도진의 빛 덩어리들을 한입에 집어삼키고서는 서로를 지지대 삼아 위로 솟구쳤다. 도진은 용마의 발목을 붙잡은 그림자를 금검을 끌어당겨 잘라 냈다. 워낙 수가 많아 전부 막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쪽도 그만큼 만들어 내면 되지!

도진은 곧장 분신술을 펼쳤다. 수백 개의 금검과 피웅도가 잡귀들에게 날아갔다. 쿠우웅! 쾅! 퍼어엉! 잡귀와 이물의 충돌이 일으킨 충격파가 거셌다. 잘 꾸며진 정원이 뒤집히고, 건물이 후두둑 무너졌다.

배리모스가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의 그림자를 집어삼켜 도진에게 던졌다. 도진이 손을 휘젓자 콘크리트 잔해는 꽃잎으로 변해 사방에 흩날렸다. 배리모스가 다시 꽃잎의 그림자를 집어삼키자 꽃잎은 썩어 없어지고 진흙 덩이로 변했다. 도진이 후우, 가볍게 바람을 불자 진흙 덩이에서 새싹이 자라고, 그 새싹이 줄기가 되어 꽃을 피워 냈다.

다시금 꽃잎이 휘날리는 가운데 배리모스가 본체를 줄이기 시작했다. 지면에 음습한 음기로 가득찬 그림자가 퍼져 나갔다.

히히히히히- 끈적끈적한 그림자가 울부짖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용마와 도진의 그림자를 붙잡았다. 그림자의 힘에 점점 지면으로 끌려 내려갔다.

용마가 포효하더니 안광을 빛내며 입을 벌렸다. 도진이 얼른 팔뚝으로 시야를 가렸다. 용마의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 불길이 그림자를 불태워 없앴다.

그러나 이곳에는 둘의 그림자 말고도 배리모스가 이용할 그림자가 한가득이었다. 빛이 넘치는 이 세상에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악신은 그림자를 집어삼키며 영역을 넓혀 갔다.

잠깐 머리를 굴리던 도진이 양손을 높이 들었다. 무엇을 소환하나 했더니 바로 작은 태양이었다.

크크크크……, 악신이 냉소했다.

-멍청한 장사야. 빛은 그늘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법이다.

“멍청한 건 너야.”

빛은 그늘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도 이상의 빛은 그늘을 없애는 법이다.

도진이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손동작으로 작은 태양의 빛을 키워 갔다. 지켜보던 복지관 직원들이 감당할 수 없는 밝기에 건물 안으로 숨어들어 갔다. 용마 또한 흑비늘로 뒤덮인 날개로 눈을 가렸다.

그림자는 처음엔 더욱 짙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빛이 거세지자 그림자의 크기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으… 으아아아아아!

천지사방이 하얗게 물들어 보이는 게 없을 정도가 되자 끝내 배리모스는 본체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끝났군.”

용마에 탄 도진이 지상에 내려왔을 때 배리모스는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악신의 앞에 도진이 천천히 걸어왔다. 이 와중에도 배리모스는 계속 싸우겠다고 도진에게 그림자를 뻗고 있었다. 도진이 가차 없이 금검을 내리꽂았다.

-크으윽!

검은 배리모스를 관통해 땅에 꽂혔다. 악신이 꿈틀거렸다. 도진이 검자루를 쥐었다. 배리모스가 헐떡거렸다.

-크흐흐… 장사여…. 어째서 내 뜻에 반대하는가?

“어째서? 그야 자연에 역행하는 일이니까.”

-나 또한 자연의 일부이지 않은가? 왜 자연의 일부인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역행이 되는 것이지? 그 기준은 누가 정했는가? 고매하신 신선들께서? 왜 중간계의 존재들이 선인들의 뜻에 따라야 하는가. 중간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인데 어째서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가?

“지랄하네. 너는 자유 때문에 일을 벌이는 게 아니잖아. 탐욕스러운 퇴마사의 시대를 되찾고 싶기 때문이지. 그럴듯한 궤변으로 변명하지 마.”

차갑게 비웃은 도진이 뒤이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친절하고 다정한 이리 선인의 제자니까 대답해 주지. 왜냐하면 나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너를 막는 나도 자연의 일부니까 역행이니 뭐니 개소리는 집어치우라는 얘기야. 너도 자연, 나도 자연. 그러니 내가 널 여기서 죽이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 더 남길 말은 없고?”

-죽이지 마라.

배리모스가 양손을 부들부들 떨며 금검을 쥐었다가 그림자가 타들어 가자 얼른 손에서 뗐다.

-살려 줘.

“흐음.”

-어차피 나를 죽이면 이리 선인도 깨어나지 못한다. 이석진은 나와 약조를 맺었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이리 선인을 놓지 않을 것이다.

“잘 생각해라, 악신. 네가 지금 협박을 할 때인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할 때인지.”

-나는 살고 싶다. 살아야 해.

“왜 너를 살려줘야 하지?”

-아연 아씨가 보고 싶어.

“…….”

-천 년 동안 오직…….

문득 배리모스가 말을 멈췄다. 검에 관통당한 악신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악신이 바라보는 곳에는 이리 선인이 있었다. 그 뒤로 이석진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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