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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약혼(3권) (8/13)

7장 약혼

사위가 어두웠다. 줄리안이 가장 먼저 인지한 것은 촉감이었다. 입술이 피부에서 미끄러지는 감촉에 줄리안은 음 하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자는데 귀찮았다. 그러자 상대가 쿡쿡 웃었다. 

졸려, 줄리안?

클로드의 목소리가 멀었다. 줄리안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잠에 빠져들려 했다. 그러나 클로드의 손이 움직였다. 촉진하는 것처럼 조심조심 피부 위를 누르던 손이 어느새 가슴에 도착해 있었다.

줄리안.

커다란 손이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 손은 거칠지만 능숙했다. 의지가 매우 확고한 손이었다. 줄리안은 이 손이 자신의 몸에만 능란할 것이라는 생각에 웃었다. 다른 사람의 가슴을 만지게 되어도 이런 식으로 할까. 멍한 머리를 깨우기 위해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닿은 적이 없었고, 계속 없을 테니까. 우린 결혼하기로 했, 맙소사. 줄리안은 눈을 번쩍 떴다.

그와 동시에 클로드가 그의 위로 올라탔다. 순식간이었다. 커다랗고 날렵한 생물에게 덮쳐지는 기분에 줄리안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뭐 하세요, 전하.”

클로드에게서 비누 냄새가 났다. 따뜻하게 데워진 피부가 닿는 것이 기분 좋았다. 나신인 클로드는 옷을 입고 있는 클로드보다 더 야만적이고 관능적이다. 줄리안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 이 남자와 결혼하기로 했었지.

홧김에, 어쩌다 보니, 욱해서 좋다고 해버렸는데 정말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리안은 팔을 뻗어 클로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보충.”

줄리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자 클로드가 줄리안의 목을 깨물었다.

“시발,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클로드가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서 진심이 덕지덕지 묻어나왔다. 줄리안은 클로드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손끝에 물기가 닿는 것이 기분 좋았다.

클로드의 입술이 줄리안의 목덜미를 눌렀다. 이가 가볍게 닿는 걸 느끼며 줄리안은 가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클로드의 몸에서 나는 여러 향들을 하나하나 느끼며 줄리안은 눈을 감았다. 샴푸와 비누 향 속에서 클로드의 체향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넣고 싶어.”

클로드가 줄리안의 피부에 코를 비볐다.

“네 냄새가 난다……. 다신 못 맡는 줄 알았어…….”

그래, 나 안 씻었다.

클로드의 몸에서는 비누 향이 나는데 자신의 몸에서는 자신의 체향이 나다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줄리안은 은근슬쩍 몸을 일으켜보려 했다. 클로드는 벌써 넣고 싶다고 하고 있었지만, 일단 씻고 준비도 좀 하고 싶었다.

이 애틋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줄리안은 애벌레처럼 등을 슬쩍 비비면서 몸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클로드가 양팔로 줄리안을 가뒀다.

“어딜 가.”

“좀 씻고 오려고요.”

“왜?”

줄리안은 대답할 말이 궁해졌다.

그게, 네 몸에서는 비누 냄새가 나는데 내 몸에서는 땀 냄새가 날 것 같아서? 네가 당장에라도 섹스에 돌입하자고 할 것 같은데 준비 좀 하려고? 줄리안은 왕실 시종으로 살아왔다. 즉, 무드에 밝은 남자였다. 무드를 지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산 지 7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 그냥요.”

“가지 마. 이렇게 있어.”

클로드가 속삭였다. 저음이 섹시했지만 그의 몸 어딘가가 닿고 있었다. 단단하고 뜨거운 것이 줄리안의 가랑이에 비벼지고 있었다. 매우 노골적인 움직임이라 줄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씻고 오겠습니다, 잠깐만.”

“같이 씻을까?”

비누 향을 폴폴 풍기며 클로드가 물었다. 줄리안은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클로드의 표정이 보였다. 그는 벌써 헐떡거리고 있었다. 씻기는 개뿔이, 당장에라도 자신을 벗겨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씹어 먹고 싶어하는 눈이었다.

“씻고 오셨잖아요.”

“한 번 더 씻음 되지. 내가 씻겨줄까?”

퍽이나. 더 더럽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줄리안이 몸을 비틀자 클로드가 더 바짝 제 몸을 붙여왔다. 거기가 더 노골적으로 닿았다. 흐읏. 클로드가 신음했다. 벌써 맛이 가려는 것 같았다.

“됐어요. 조금만 비켜주시면.”

“너 섰는데.”

“누, 누구 때문인데요. 좀 비켜주세요.”

“아, 나 때문이구나? 하긴, 당연하겠지. 나도 너 때문에 바짝 섰거든. 아플 정도야.”

아냐, 아냐. 이거 아니야. 싫어, 이렇게 섹시한 목소리로 그런 말 하지 마.

줄리안은 클로드라는 이름의 짐승이 아슬아슬한 선 앞에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목줄에 방해받고 있는 짐승은 으르렁대며 선을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줄은 팽팽하게 당겨져 당장에라도 끊기기 일보 직전이다.

여기서 나가 욕실까지 가야 하는데. 줄리안은 흘끔 욕실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며 몸을 빼내려 했다. 그때 갑자기 클로드가 줄리안의 트레이닝 바지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아직 촉촉한 손이 팬티 안까지 들어와 줄리안이 몸을 흠칫 굳혔다.

“전하, 손 빼주십시오.”

“싫은데.”

“전하!”

줄리안이 클로드의 손목을 잡았다. 자신의 옷에서 빼내려 했지만 클로드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보면서 줄리안은 난처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 이런 말 하기 싫은데.

그러나 종일 싸웠는데 또 클로드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줄리안은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게 속삭였다.

“아직 안 씻었으니까요.”

줄리안의 말과 함께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뒷말을 기다리고 있던 클로드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

“그게 다야?”

“네?”

“안 씻어서, 그래서, 뭐.”

클로드가 줄리안의 팬티 안에 있는 것을 붙잡았다. 아직 따뜻한 손이었다. 줄리안은 그 손의 체온으로 자신의 신체가 차가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가운 표피에 따뜻한 것이 닿아 소름이 돋았다. 줄리안이 고개를 젓자 클로드가 줄리안의 입술을 깨물었다.

“너도 반은 섰잖아.”

“반은 안 선 거잖아요.”

“지금, 세울게.”

클로드의 혀가 들어왔다.

너, 내가 처음이라며. 줄리안은 문득 억울해졌지만 클로드의 혀가 입안의 예민한 곳을 쓸자 정신이 없어졌다. 느릿하고 음탕한 키스였다. 내가 경험이 미천해서인가, 상대가 타고난 테크니션이어서인가. 곧 머리에 파도가 밀려들어 생각이 멈췄다.

응, 으응. 줄리안이 신음했다. 클로드는 키스를 하며 그 목소리를 들었다. 야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야해서 아래가 단단히 부풀어 올랐다. 줄리안의 성기도 단단해져 있었다. 입안만 빨아줘도 이렇게 잘 서는 성기가 귀여웠다. 성기고 구멍이고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했다.

클로드는 줄리안의 몸을 들어 그의 하의를 벗겨냈다. 바지부터 속옷까지 한 번에 끌어내렸다. 이불 안이라 춥지 않은 통에 줄리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뿐 제대로 된 반항은 하지 못했다.

이거 괜찮은데.

매일 이런 고무줄 바지만 입히고 싶어졌다. 아니지, 옷을 아예 안 입혀도 되잖아. 클로드는 씩 웃으면서 밑으로 내려갔다. 이불을 집어 던지자 갑자기 추워졌는지 줄리안이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그러나 클로드는 그가 반항을 하기 전에 입을 벌려 줄리안의 성기를 머금었다.

“싫어……!”

얜 ‘싫어’가 디폴트야, 야하게.

클로드는 혀를 움직이며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줄리안이 허리를 움찔거렸다. 성기에서는 벌써 선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쓰고 비린 맛인데 클로드는 그 맛을 더 보기 위해 줄리안을 몰아붙였다. 더, 더, 클로드가 달라붙었다. 거의 나가지 않은 채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줄리안이 길게 울부짖었다. 그 목소리가 머리를 질척하게 적셨다. 클로드는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외에는 사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줄리안이 야했고 그의 분신이 뜨거웠다. 줄리안의 것은 클로드의 것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성인 남성의 평균 사이즈는 되었다. 한마디로 사람의 목구멍에 넣을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숨이 막혔고 역겹기도 했다. 그러나 클로드는 잘 참아냈고 심지어는 즐기기도 했다. 줄리안의 성기에 숨이 막히기는커녕 그의 냄새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좋았다. 목 안에서 맡는 냄새는 마치 온몸이 그 냄새에 점령당한 기분이 들게 해준다. 클로드는 줄리안의 허리를 잡아 누르고 계속 빨아올렸다. 더, 먹고 싶었다.

문득 아까 깨물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떠올랐다. 이성이 거의 마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충동에 저항 없이 따랐다.

“하아읏! 하, 지…….”

줄리안이 깜짝 놀라 허리를 띄웠지만 클로드에게 다시 눌렸다. 클로드의 송곳니가 닿아 있었다. 아주 살짝 깨물렸을 뿐이지만 뾰족한 부분에 놀라 참고 있던 것이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 자신의 성기가 클로드의 목을 찢어발길 것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대단한 압박감과 함께 사람의 입안 깊숙이 목구멍에 닿을 것처럼 성기를 넣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늘 한계까지 참고는 했다. 게다가 최근 클로드와의 섹스가 없었기 때문에 쌓여 있는 것까지 있어서 사정은 길었다.

맛을 보겠다는 듯이 굳이 머리를 뒤로 물린 클로드가 줄리안의 성기를 입안에 넣고 빨았다. 그것이 창피해서 줄리안은 입술을 깨물며 클로드를 내려다보았다. 클로드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게 맛있을 리가 없다.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도 클로드를 보면 마치 맛있는 것만 같았다. 클로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움찔거리는 줄리안을 보며 아마 중간에 참고 있다고 여기는지 그가 한 번 더 이를 세웠다. 그 순간 줄리안은 그의 입안에서 자신의 것을 빼내었다. 이에 긁혀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상처가 날지도 모르지만 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클로드가 의아한 듯 줄리안을 올려다보았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림처럼 고고해 보였다. 빨고 있던 성기를 빼앗겨 불만에 가득한 얼굴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그런 얼굴.

“화, 화장실에 가야겠어요.”

이번에는 정말 화장실에 용무가 생겼다. 말을 더듬으면서 줄리안은 난처함을 숨기느라 얼굴을 굳혔다. 송곳니에 찔린 순간에 생리적인 공포로 배뇨감이 몰려왔었다. 입에서 강제로 빼내느라 송곳니에 긁혀 더욱 심해졌다. 하긴, 화장실을 못 간 지도 좀 되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내 끌려 다녔으니까.

“뭐, 지금?”

클로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줄리안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조각 미인을, 아니, 조각 미인의 탈을 쓴 거대한 야수를 밀어냈다. 클로드는 아주 조금 밀려났고 줄리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줄리안은 단숨에 클로드와 침대 사이의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줄리안?”

줄리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에 갈 생각이었지만 클로드가 빨랐다. 클로드는 손을 뻗어 줄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도망가는 거야? 아니면 날 자극하는 거야?”

“화장실, 가고 싶다니까요.”

줄리안은 그의 팔을 떼어내려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일단 요의를 자각하자 굉장히 심해졌다. 그는 몸을 바르작거렸다.

“거짓말.”

클로드가 관능적인 태도로 속삭여왔다.

“아니에요.”

아우, 좀 믿어라. 급하다니까.

줄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클로드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하나를 떼어내고 다른 하나를 또 떼어내면 어느새 아까의 손가락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거짓말이야. 나를 밀어내려고 하는 거짓말.”

클로드의 섹시한 목소리가 우울한 빛을 띠었다.

“아니라니까요. 전하, 이거 좀…….”

줄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 급하다고. 왜 갑자기 이렇게 사람 말을 안 믿는 거야?

클로드가 줄리안의 목덜미를 입술로 지분거리며 작게 속삭였다.

“안 믿어, 네 달콤한 입술이 하는 말 같은 건.”

“그게 아니라니까, 잠깐!”

줄리안이 고개를 홱 돌려 클로드를 돌아보았다.

“알고 있는 거죠?”

줄리안의 눈이 무시무시했다. 클로드는 줄리안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더니 줄리안의 뺨에 입을 맞췄다.

“모르는데.”

입술이 뺨에서 귀로 옮겨 갔다. 줄리안이 도리질 치며 클로드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급하다니까! 줄리안이 다급해져 클로드의 손을 손톱으로 긁다 못해 때리기 시작해도 클로드는 악마같이 웃으며 줄리안의 귀를 빨았다. 느긋한 애무에 줄리안은 다리 사이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흥분하니까 더 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허벅지를 오므리자 클로드가 귓가에서 키들거렸다. 줄리안의 허리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허벅지 사이를 어루만졌다.

“완전 조신해.”

“시발, 죽여버리기 전에 손 안 떼요?”

줄리안이 으르렁거렸다.

“너, 의외로 성격 있다. 장미 같은 매력이 있다니까.”

줄리안이 더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눈으로 장미를 본 적이 있긴 합니까?! 당장 손 안 떼요?!”

“당연히 봤지. 아, 시발, 너 달달 떠니까 완전 동한다. 나 지금 넣어도 돼?”

“어차피 시종직에서도 쫓겨났는데 내가 워드를 못 외울 줄 알아요? 나도 마법만 쓰면……!”

너 같은 거 한 방이거든?!

“마나 동났다며?”

클로드가 순진한 척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정말 악마가 따로 없었다. 줄리안은 저도 모르게 신성 주문을 외어볼 뻔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줄리안은 마나가 동났다. 사실 지금은 사소한 휴대전화 한 대도 허공에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로 마나가 엉망이었다. 최근 클로드를 만나지 않으면서 마나를 확보했었는데 그나마도 오늘 다 써버려서 아주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있지.”

클로드가 귀여운 척 말했고 줄리안은 뭐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러나 그는 대신에 흣 하고 신음하며 몸을 떨었다. 클로드의 손이 줄리안의 반쯤 선 성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 요즘 좀 이해 가는 게 있는데.”

히이익, 줄리안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경련했다. 납작한 배에도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며 클로드는 피식 웃었다.

“옛날엔 그 소리가 무슨 말인지 몰랐거든. 그런데 요즘 너랑 자보니까 알 것 같은 게 몇 개 있어. 좋아하는 애를 괴롭히는 심리 같은 거 있잖아.”

히잇, 읏. 줄리안이 짐승 같은 울음을 참으며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클로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클로드의 팔 안에 있는 줄리안은 이제 그의 손을 떼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몸을 떨고만 있었다. 덜덜 떠는 줄리안의 몸을 돌린 클로드가 줄리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줄리안이 휘청거렸다. 이 기회에 화장실로 달리고 싶은 듯했지만 이제는 아마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클로드의 생각은 정확했다. 줄리안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아래를 참고 있었다. 목에서 울음이 끓었다.

내가 이 상황만 벗어나봐, 너랑 꼭 헤어질 거야……! 결혼은 무슨 결혼, 개하고나 해라, 이 개새끼야……!

줄리안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 나오는 건 히익 하는 이상한 울음뿐이었다. 클로드가 줄리안의 허리를 잡은 채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줄리안에게 약간의 힘만 있었어도 주먹을 휘둘러 얼굴을 짓뭉개고 싶을 정도로 예쁜 미소였다.

“내 목에 매달려.”

이게 미쳤나!

“그럼 안아서 화장실에 데려다줄게.”

줄리안은 미심쩍은 눈으로 클로드를 올려다보았다. 클로드의 행동에서는 뭔가 의도적인 냄새가 났다. 그런 그가 얌전히 자신을 화장실로 데려다줄 것 같지 않았다.

“진짜야. 약혼자를 좀 믿어보라니까?”

줄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요의는 파도처럼 몰려들었다가 겨우 사라지고는 했다. 사라졌다 돌아오는 파도는 더 세지고 있었다. 줄리안은 클로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곧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또 오고 있었다. 아래에 힘을 주면서 겨우 참느라 떨고 있는 사이 클로드의 입술이 이마에 닿았다.

“자, 어서.”

줄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매달릴 수 없었다. 잘못 움직이면 쏟아질 것 같았다. 클로드가 한숨을 쉬더니 줄리안의 팔을 잡아 자신의 목에 둘렀다. 줄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 안 됩니다, 그만, 놔주.”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가야 하는데 하고 줄리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있는 화장실과 자신의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클로드가 “아, 이거 미움받을 것 같은데”라고 중얼거리더니 줄리안의 머리를 잡아 입을 맞췄다. 혀가 얽혔다. 줄리안이 밀어내려 하자 클로드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이거만 하고. 이 키스만 하고 데려다줄게. 책임지고.”

그리고 다시 클로드가 숨결을 삼키며 달라붙었다. 집요하게 빨아들이는 혀에 줄리안의 머릿속이 하얗게 번졌다.

그 순간 파도가 왔지만 키스로 힘이 빠진 줄리안에게는 막을 힘이 없었다. 줄리안은 클로드를 밀어내며 긴 울음을 토해냈다.

자신의 귀로 듣는 비명이 멀었다. 줄리안은 침실에서 선 채로, 태어나서 처음 사귄 애인의 앞에서 그의 강요로 실례를 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멈춰보려 했지만 소변은 멎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면서 클로드는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그는 소변을 뿜고 있는 줄리안의 성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줄리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은 얼굴. 입술을 깨문 채 바들바들 떠는 새빨간 얼굴을 보다 클로드는 줄리안의 이 아래에서 학대받고 있는 입술을 구해주었다.

“미안. 너무 갔다. 괜찮아? 지금이라도 안아다 줄, ――읏.”

퍼억, 소리와 함께 줄리안의 주먹이 클로드의 뺨을 스쳤다. 클로드는 피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맞아줄 생각이었지만 줄리안은 클로드의 얼굴 정중앙에 주먹을 꽂는 대신 주먹으로 따귀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는 욕실로 향했다. 달려가고 싶었는데 너무 힘을 주고 있었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그럴 수 없었다.

욕실에 들어와 문을 쾅, 닫고 잠근 줄리안은 세면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잔뜩 운 얼굴은 마치 어린애처럼 부어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다시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애인의 강요로, 침실에서, 선 채로, 실금. 줄리안은 너무 화가 나서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똑똑똑, 줄리안. 똑똑똑, 줄리안. 똑똑똑, 줄리안.

욕실 밖에서 클로드가 줄리안을 불렀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라고 떠올리며 줄리안은 입술을 씹어댔다. 그때 그 술을 마시지 말아야 했다. 이런 남자와 엮이지 않으려면 그날 블레서 중령의 말을 무시하고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자야 했는데!

줄리안은 클로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여유롭게 씻고 나왔는데도 클로드는 여전히 줄리안을 부르고 있었다. 똑똑똑, 줄리안. 그 목소리가 여유로운 게 더 화가 났다. 줄리안은 “죽어버려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영원히 열지 않을 테다, 이 개자식아!

그렇게 소리 지르려던 줄리안은 멈칫했다. 저 밖에는 자신이 만든 웅덩이가 있을 텐데 여기에 내내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줄리안은 천장을 노려보았다. 대공의 침실에 딸린 욕실은 천장조차도 아름다웠다. 그 천장을 가만히 쏘아보기만 하던 줄리안이 이윽고 한숨을 쉬며 두루마리 휴지를 들었다.

똑똑똑, 줄리안. 똑,

갑자기 문이 홱 열려서 클로드는 손을 재빨리 위로 올렸다. 그의 앞에는 좀 진정된 듯한 줄리안이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클로드가 난처한 얼굴로 줄리안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를 고깝다는 듯이 줄리안이 한 번 더 노려보고는 스쳐 지나갔다.

줄리안은 두루마리 휴지를 든 채 아까의 참상이 일어난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카펫이 좀 젖어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클로드를 돌아보자 클로드가 난처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아무래도 그가 치운 모양이었다. 줄리안은 두루마리 휴지를 통째로 집어 던졌다. 그 모습을 본 클로드가 하하 하고 웃으며 줄리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줄리안, 화났어?”

줄리안은 대답이 없었다. 클로드는 줄리안의 굳은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지금 자빠뜨렸다가는 백 퍼센트, 2백 퍼센트, 천 퍼센트 차일 것 같은데……. 그러나 흰 것도, 노란 것도 전부 시원하게 뺀 줄리안과는 달리 클로드는 아직이었다. 아래가 잔뜩 부푼 것으로도 괴로운데 심지어 줄리안의 화난 얼굴은 요염하기까지 했다.

“이봐, 줄리안. 줄리안?”

역시 눕히는 건 안 되겠지? 클로드는 자신이 차일 뻔했었던 과거가 고작 몇 시간 전이라는 걸 상기하려 애쓰며 줄리안을 불렀다. 아아, 그래도 안고 싶은데. 씻고 나온 줄리안은 따뜻하고 말랑해 보였다. 분명 안쪽도 흐물흐물 풀려 있을 것이다. 이대로 안고 침대로 가서 눕히면 쾌감에 약한 줄리안이 어영부영 따라와줄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차버리려고 할 것인가. 양쪽의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을 때.

“전하께옵서는 도대체.”

화가 난 줄리안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 사람을 갖고 놀면 즐겁냐. 그렇게 빈정거리려던 줄리안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클로드의 표정이 묘했다. 화가 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미묘한 표정. 화를 낼 사람이 누군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줄리안은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이윽고 클로드가 물었다.

“내가 왜 전하야?”

“……예?”

“내가 왜 아직도 전하냐고? 넌 화가 나야 꼭 여보 당신 소리가 나오니 내가 이렇게 심술궂어지는 거라고.”

클로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입으로는 불평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줄리안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의 눈이 흘끗 줄리안의 유두에 가 닿았다. 한창 할 때는 저 유두가 늘 부어 있었는데 오늘은 얌전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줄리안의 온몸이 거슬렸다. 줄리안의 몸에 남겨두었던 흔적들이 상당 부분 옅어지거나 없어진 상태였다.

“잠깐, 제가 언제 여보라고 했습니까?!”

당신이야 그렇다 쳐도 여보는 아니지, 여보는. 줄리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 눈을 빨면 무슨 맛이 날까를 궁금해하며 클로드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당신이나 여보나 그게 그거지.”

“전혀 다릅니다.”

“그래? 그럼 여보라고 부르도록 해, 우린 결혼할 거니까.”

“결혼 안 해요!”

누구 마음대로 결혼이야, 이런 짓을 해놓고!

줄리안의 고함에 클로드가 줄리안의 목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순식간이었다. 줄리안이 눈을 크게 뜨자 클로드가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잘못했다고 했잖아.”

분노하고 있는 청회색 눈동자. 줄리안은 잠시 굳었다가 지금 누가 화를 내야 하는 거냐며 소리 지르려 했다. 그러나 클로드가 빨랐다. 클로드는 손을 뻗어 줄리안의 뒷머리를 잡은 채 끌어당겼다. 입술이 닿고 혀가 얽혔다. 난폭한 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줄리안이 그를 밀어내려 하자 힘으로 제지당했다. 몸이 뒤로 밀렸다. 뒷걸음질 치면서 키스를 했다.

몸이 벽에 닿았을 때, 줄리안은 클로드의 목에 팔을 감고 있었다. 클로드의 혀가 너무 달아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등을 쓰다듬으며 내려온 손이 엉덩이를 쥐었다. 섹스를 받아들이는 부분이 이미 풀리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몸뚱어리 같으니.

머리는 아직도 화를 내야 한다고 펄펄 뛰고 있는데 몸은 이미 해롱해롱 녹아서 빨리 클로드와 섹스나 했으면 좋겠고 마음은 중립이었다. 아니, 곧 몸에 넘어갈 것 같았다. 줄리안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왜 이러십니까…….”

줄리안이 미치고 환장하겠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클로드는 줄리안의 한쪽 다리를 들어 자신의 허리에 감게 했다. 줄리안의 동그란 귀가 보이자 그는 그 귀를 빨아 당겼다. 잘근잘근 씹고 혀를 집어넣어 피스톤질을 해댔다. 귀에서 압박감이 느껴지자 줄리안이 흐으읏 하고 신음했다.

“헤어지자는 소리, 하지 마.”

자신의 귀로 들어도 처량한 목소리였다. 클로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은데 자신은 정말 시무룩해져 있었다. 심장이 지끈거리고 있었다. 도끼로 난도질당하는 기분이었다. 헤어지자니, 그런 말 그렇게 쉽게 하지 마.

“그럼, 흣, 이런 짓을 하지 마셔야죠…….”

클로드의 목소리가 아파서 줄리안은 저도 모르게 작게 소곤거렸다.

“안 할게. 그러니까 너도 다신 하지 마.”

줄리안은 고개를 들어 클로드를 올려다보다 눈살을 찌푸렸다. 클로드의 손가락이 입구에 닿고 있었다. 꾹꾹 누르는 움직임이 초조했다. 줄리안은 눈을 내리깔았다. 클로드의 얼굴을 보며 이 시간을 견디긴 어려울 것 같았다.

“아, 시발. 키스만 했을 뿐인데 이게 뭐야, 줄리안.”

클로드는 욕설을 내뱉었다. 줄리안의 뒤는 착실히 변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구멍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달랐다. 넣으면 넣을수록 벌어지기 쉬워졌다. 겉으로는 입을 꼭 다문 것 같아도 안쪽은 느슨해지는 게 느껴졌다.

“벌써 안쪽이 벌어져 있어. 쫀득쫀득하게 내 손가락을 빨고 있다고.”

클로드가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처럼 달콤한 어조로 음탕한 말을 했다. 줄리안은 클로드의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와 강하게 쑤시는 것을 느끼며 배에 힘을 주었다. 그냥 쾌감만 느끼고 싶은데 모든 것이 느껴졌다. 그의 손가락이 어디를 건드리고 있는지, 자신의 안이 어떻게 기뻐하고 있는지. 자꾸 조이고 싶어졌다. 그런 자신이 창피한 나머지 줄리안은 단정하게 입매를 굳힌 채 참았다.

그러나 클로드는 늘 그렇듯이 줄리안이 참고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움직이고 싶은 거면 움직여.”

“그런 거, 아니에요.”

“너 참으면 안쪽이 떨려. 부들부들 진동하는 게 느껴져.”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게 맞았기 때문에 줄리안은 그저 입을 다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클로드는 아, 시발, 되게 좋네, 라고 말하며 숨을 헐떡였다. 줄리안의 몸을 만지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탐험이며 정복이고 또 창조였다. 줄리안의 몸은 클로드에 의해 변형되고 있었다. 클로드를 받아들이는 곳은 물론, 유두나 피부의 흔적들도 그랬다. 처음 엉덩이를 때릴 때 줄리안은 비몽사몽 약에 취해 있었는데 요즘은 후배위로 하면 은근 그쪽에서 바라는 게 느껴졌다. 사실 클로드도 누군가와 섹스를 하며 엉덩이를 때리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나른하고 다정한 섹스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혹은 정말 딱 욕정만 푸는 섹스를 하든가.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고 클로드는 줄리안을 대상으로 짐승처럼 굴고 있었다.

온몸으로 줄리안을 즐겼다. 꽃밭에서 뒹구는 짐승처럼 오감으로 느끼고 싶어서 게걸스러워졌다. 박으면서도 줄리안의 허리를 조이고 엉덩이를 때리고 살을 주물러댔다. 유두를 꼬집거나 당기다 납작한 가슴을 아프도록 쥐어짰다. 이 몸은 무엇을 느끼는가. 이 몸은 무엇을 바라는가. 클로드는 줄리안의 몸에 집중했다. 이 몸에 대해 알고 싶었다.

“유두를 바짝 세우고.”

클로드가 줄리안의 유두를 어루만지고 밑으로 손을 옮겼다.

“허리에 힘 들어간 상태로.”

그리고 손은 더 내려갔다. 선액을 흘리고 있는 성기를 붙잡았다.

“여기도 질질 새지.”

줄리안은 참지 못했다. 클로드가 그렇듯이 줄리안 또한 욕망에 탐욕스러웠다. 클로드가 주는 모든 애무를 쾌감으로 치환해냈다. 쾌감은 언제나 줄리안의 한계치를 넘어섰고, 줄리안은 울면서 참고 애원하고 밀어내고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클로드를 위한 만찬의 일부가 되었다.

줄리안은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헐떡였다. 한쪽 다리를 클로드의 허리에 감고 있어 그는 자신의 몸을 한 다리로 버티고 있었다. 그 상태로 앞과 뒤를 모두 애무당했다. 쾌감은 이미 머릿속을 진창으로 만들어놓았는데 정신을 차려야 버틸 수 있었다. 힘들었다. 힘이 빠져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힘들어, 요.”

줄리안이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클로드가 응 하고 중얼거렸다. 그도 힘들었다. 쾌감으로 머리가 욱신거리고 아래는 이미 부풀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줄리안의 안은 요망했고 클로드는 그냥 처박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클로드는 일단 줄리안의 안에서 손가락을 뺐다. 그리고 옆에 있는 콘솔의 위를 팔로 쓸어버렸다. 와장창,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났지만 클로드도, 줄리안도 그쪽에 쏟을 정신이 없었다. 클로드가 줄리안을 콘솔 위에 비스듬히 앉혔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두 개가 와서 박혔다.

“줄리안, 다리 더 벌려.”

줄리안이 다리를 좁히려고 할 때마다 클로드가 험악하게 중얼거렸다. 안이 왜 이렇게 좁아. 그가 투덜거렸다. 아까 벌어져 있다고 한 주제에 지금은 좁다며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 시발, 안 되겠어. 나, 흣, 지금 넣어도 돼?”

“아직, 흣, 아직이지 않아요? 덜, 풀린 것 같은, 읏, 같은데.”

괘, 괜찮지 않을까. 줄리안은 아직이지 않느냐고 물으면서도 다리를 더 벌렸다. 며칠 동안 방치되었던 몸이 달아올랐다. 빨리 이어지고 싶었다. 그, 그래도 풀었으니까 찢어지지야 않겠지, 않을 거야, 않……, 에라, 모르겠다. 줄리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클로드를 올려다보았다.

아, 시발, 얜 진짜 뭘 먹고 이렇게 요망해. 클로드는 줄리안과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을 찡그렸다. 들어오라는 듯이 가랑이를 활짝 연 주제에 아직이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미친, 처음부터 이랬다. 내려놓으라면서 몸을 비비고 그만두라면서 바짝 세우고, 시발.

“풀리고 있는 건지 아닌지, 전혀 모르겠어. 쑤실수록 물이 나오고 쫄깃하고 맛있어서 내가 미칠 것 같다는 것밖에는.”

아, 모르겠다. 클로드가 줄리안에게서 손가락을 빼냈다. 줄리안의 양쪽 허벅지를 잡아 한계치까지 벌렸다. 구멍이 보였다. 조그맣게 숨구멍이 열린 채 정체 모를 액체를 흘리며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적갈색 주름이 통통하게 부어오른 것은 이미 남자를 가질 준비를 마쳤다는 증거였다.

“전하.”

신체의 가장 더러운 부분을 주시당하는 줄리안이 한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리며 조그맣게 클로드를 불렀다. 그만 보라는 뜻이었다.

“클로드라고 좀, 해. 전하는 무슨, 빌어먹을.”

이미 반쯤 눈이 풀린 클로드가 줄리안에게 바짝 몸을 붙였다. 아까부터 서 있던 성기 끝이 젖어 있었다. 젖은 끝으로 젖어 있는 입구를 문지르자 줄리안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넣는다?”

“하, 하지만.”

아직 덜 풀렸을 텐데, 라는 이성의 마지막 주장이 줄리안의 머리를 잠시 차지했다. 그러나 곧 이성이 사라지고 줄리안은 클로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 순간, 클로드가 단숨에 치고 들어왔다. 감은 눈 속에서 흰 빛이 길게 뻗었다.

흐아아아아―.

줄리안이 길게 비명을 질렀고 클로드도 압박감에 흣 하고 숨을 삼켰다. 안쪽이 확실히 덜 풀리긴 덜 풀렸는지 평소보다 물기가 없이 빡빡했다. 자신도 신체의 예민한 부분이 자극받아 아팠지만 클로드는 일단 줄리안부터 확인했다. 박은 성기가 아픈 것과 박힌 구멍이 아픈 건 차원이 다를 테니까. 줄리안의 턱을 잡아 그 얼굴을 들여다본 클로드는 설마 하는 얼굴로 물었다.

“넣은 걸로 간 거야?”

줄리안은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머릿속에서 계속 빛이 터지고 있었다. 피부 위에서 잔 경련이 계속 일어났다. 이게, 뭐야. 줄리안은 세게 머리를 흔들어보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쾌감과 뒤섞여 멍할 뿐이었다.

“하, 귀엽네. 아, 진짜 귀엽다. 미치겠네.”

클로드가 헐떡이면서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는 줄리안의 뺨을 길게 핥았다. 얜 진짜 아랫도리만으로 날 조종할 수 있을 거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줄리안의 입술을 빨았다. 백치 같은 얼굴로 움찔거리고 있던 줄리안이 눈을 질끈 감았다. 클로드가 줄리안의 성기를 어루만졌기 때문이었다.

“하, 진짜 야해서 환장하겠네.”

예민하게 달아오른 신체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 주물러지자 참을 수 없는지 줄리안이 쉰 목소리로 애원했다.

“만, 지지 마, 싫어. 클로드.”

하여간에 싫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는 연인이었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클로드는 줄리안의 살덩이를 주무르며 키들거렸다. 만지지 말라고 하면서 전하가 아닌 클로드라고 부른다. 열에 들뜬 목소리가 관능적이었다. 클로드는 천천히 허리를 빼며 말했다.

“난 네가 시종을, 흣, 그만두게 된 게 마음에 들어.”

“흐읏…….”

“이런 몸으로 그 빌어먹을 곳이라니, 날 어디까지 불안하게 하려고?”

“나, 난, 이런 거, 하읏, 전하와만.”

“또, 전하라지. 섹스는 초짜인 게 밀당은 전문가세요, 아주.”

콱, 처박혔다. 줄리안은 몸을 펄떡거리면서 눈을 떴다. 고여 있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머리까지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자 당연한 듯이 혀가 들어왔다. 입술을 막힌 채 아래쪽을 퍽퍽 박히며 줄리안은 숨을 헐떡이지도 못하고 우는 것처럼 몸을 떨었다.

키스가 끝나고 고개를 들자 클로드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거칠게 숨을 쉬면서도 눈이 마주치자 웃었다. 이마를 맞대고 비비며 “존나 귀여워”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도 이상하게 들떠 있었다.

“아, 이런 짓 하면 또 미움받으려나.”

클로드가 말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줄리안이 불안한 듯 그를 올려다보던 순간, 몸이 허공으로 들렸다. 크아으! 줄리안이 괴성을 지르며 클로드에게 매달렸다. 몸이 이어진 채로 허공에 들린 줄리안의 등이 곧 벽에 닿았다. 무서워서 줄리안은 클로드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안쪽이 잘못될 것 같았다. 지나치게 깊이 들어온 탓에 숨이 꺽꺽 막혔다. 그건 클로드도 마찬가지인지 부르르 떨면서 줄리안을 안고 있었다.

“시발, 좀, 무거운데.”

“흣, 그, 그럼 내려놔요.”

“아냐, 무거운 게…… 빌어먹게 좋아. 아, 시발, 더 달라붙어봐.”

퍼억, 위로 처박혔다. 줄리안은 벽에 등을 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계속 위로 처박혔다. 안쪽 어딘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통증은 희미했고 쾌감은 굉장했다.

“이거, 으…… 읏, 힘들, 어요.”

온몸이 성기가 되어 있었다. 꼬치처럼 꿰여서 사지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육체가 모두 섹스를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클로드가 헐떡거리며 속삭였다.

“아, 아아. 그러게, 그럴 것 같네.”

“전하도, 힘들잖아요.”

줄리안은 클로드를 달래려고 했다. 침대로 가자고 할 생각이었다.

“아아, 난 아니야.”

클로드가 웃었다. 아, 시발, 진짜. 그가 욕을 하며 덧붙였다.

“존나, 네가 야해서. 넌 힘들면 더 야해지거든.”

“흣, 그런 말…….”

“입술 퉁퉁 부어서 오물거리네. 응? 안쪽도 환장하고 있어. 그래, 이렇게 안까지 해주는 게 좋았구나, 응?”

아, 관두자. 이 인간을 어떻게 달래.

줄리안은 방법을 바꿨다. 그는 클로드의 턱을 잡아 입을 맞췄다. 클로드의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잠시 당황한 듯한 눈이 희열로 차는 걸 보면서 줄리안은 혀를 내밀어 클로드의 입술을 핥고 입술을 겹쳤다. 숨결과 소리와 타액을 모조리 삼켰다.

엉망진창인 남자. 심술궂고 재수 없고 제멋대로에 변태고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사랑스러운 사람.

줄리안은 클로드의 입술에 매달렸다. 클로드가 얌전히 입을 벌린 채 줄리안의 키스를 받았다. 아래쪽이 거칠게 파이고 있었다. 퍽, 퍽. 강하게 올려붙이는 그의 성기를 느끼며 줄리안은 클로드의 혀를 빨았다. 삼켜버리고 싶었다. 이 혀도, 저 성기도. 모든 것을 다.

안쪽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갖고 싶어. 줄리안은 망설이지 않았다. 클로드를 바짝 조였다. 허리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했다. 어서, 해. 내게, 어서. 클로드는 줄리안의 염원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가 더 거칠게 움직였다. 안쪽이 완전히 짓뭉개졌다.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된다. 줄리안은 어느 순간 키스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침을 삼키는 방법도 지워버렸다. 타액을 질질 흘리며 눈을 감았다. 클로드가 더 가까워졌다. 안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 뜨거운 빛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순간, 삼켜졌다.

절정이었다.

동시에 도달한 것 같았다. 안쪽이 채워지는 걸 느끼면서 줄리안은 입술을 깨물고 몸을 떨었다. 앞으로 나오는 것만큼이나 뒤로 절정에 오르고 있었다.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폭발했다. 눈물이 주룩 흘렀다. 클로드의 혀가 줄리안의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모든 게 충족된 얼굴 하지 마.”

클로드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아직이라고. 더 필요해.”

“더…….”

줄리안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클로드가 몇 번이고 그에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래, 더. 침대로 가자. 조금 편하게 해줄게.”

싫은데, 라고 줄리안이 말하려는 순간 클로드가 움직였다. 히이이익. 줄리안이 이상한 비명을 지르다 말고 삼켰다. 몸을 부들부들 떨던 줄리안이 클로드의 어깨를 퍽퍽 내리쳤다.

“아프다고요!”

“너에겐 불행히도 아파서 좋은 거랑 아파서 싫은 건 반응이 달라. 지금은 아파서 좋은 것 같은데?”

“클로드!”

그 순간 안쪽의 것이 좀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연결된 채 침대로 걷는 동안 안쪽이 쑤걱쑤걱 찔려서 줄리안은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가슴 위쪽에서 숨이 달랑거렸다.

줄리안이 화가 나 견딜 수가 없다는 듯 클로드의 어깨를 후려쳤다. 하지만 처음 두 번을 제외하면 주먹에는 힘이 없었다. 클로드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줄리안의 안은 자신이 내보낸 것들로 질척해져 있었다. 학대당한 내벽이 부어올라 열감이 한층 더 심해진 게 느껴졌다.

침대에 도착한 그는 줄리안과 이어진 채로 침대에 앉았다. 자리를 잡으며 줄리안의 얼굴을 보았다. 쾌감의 한계치를 계속 넘나든 줄리안은 지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여전히 쾌락에 빠져 지독하게 천박하고 음탕했다. 눈이 마주치자 줄리안은 손을 뻗어 클로드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전하는 정말 얼굴이 예쁘네요.”

의외의 말이었다. 클로드는 미간을 좁혔다. 물론 그도 자신의 용모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었다. 용모로 인한 장단점을 모두 겪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의 외모를 이렇게 순수하게 감탄해준 적은 없었다. 클로드가 느릿하게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줄리안은 클로드의 속눈썹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하늘을 담고 있는 듯한 눈동자. 붉은 입술. 욕정으로 흐트러진 얼굴이 어여뻤다. 이 남자에게 할 소리는 정말 아닌데, 그러나 눈이 삔 건지 정말 꽃다운 모습이었다.

“예뻐, 예…… 흐아아.”

줄리안이 울부짖어도 클로드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건, 흣, 네가 시작한 거야.”

클로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없이 교성과 신음만이 난무하는 섹스가 시작되었다.

새벽, 제이미 블레서는 침실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클로드가 거대한 짐짝을 든 채 방을 나서다 제이미와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었다.

“금붕어 똥, 계속 거기에 서 있었어?”

“줄리안입니까?”

하얀 시트로 둘둘 말린 채 어린애처럼 엉덩이를 받쳐 안긴 물건을 두고 제이미가 물었다. 아아. 클로드가 긍정의 고갯짓을 하며 걸음을 움직였다.

“화해는 잘하신 겁니까?”

“물론이지.”

“그래서 약혼은 계속 유지하게 되셨고요?”

“그래.”

참모들은 알아서 해산했고 남은 사람은 제이미와 경호원뿐이었다. 클로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들이 일제히 클로드의 앞뒤로 따라붙었다. 클로드의 약간 뒤에 서서 보폭을 맞추던 제이미가 클로드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클로드는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도 줄리안의 머리쯤에 잘게 키스하고 있었다.

“정말 결혼하실 겁니까?”

“어.”

“꽤 피곤해질 겁니다.”

“어쩔 수 없지.”

클로드의 말에 제이미도 더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상관이 결혼하겠다는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제이미는 하얀 시트에 싸인 줄리안을 흘끔거렸다.

단숨에 백작으로 뛰겠군.

백작가의 삼남이 백작이 되다니 흔치 않은 일이었다. 대공의 배우자라. 제이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줄리안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결혼은 어떤 식으로 언론에 공개될 것인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금붕어 똥, 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클로드의 말에 제이미가 고개를 돌렸다. 클로드는 여전히 그를 보지 않고 있었다. 줄리안을 안은 채 성큼성큼 걸으며 앞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 팔로 줄리안의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줄리안의 몸을 안고 있었다. 뭔가를 속삭이는 것처럼 시트 덩어리에 입술을 누르며 간간이 앞을 볼 뿐이었다.

“각하,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줄리안이 대마법사라?”

“S급 라이선스를 가진 자 중에서 20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각하의 약혼자뿐입니다. 이제까지는 군부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기에 조용했지, 사실 줄리안 일리드의 존재는 태풍의 핵과 같습니다. 피곤한 일이 계속될 겁니다.”

“형의 동의는 얻었어.”

클로드의 말에 제이미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왕이 동의를 해주었다고? 왕은 클로드와 우애가 깊었으나 경계심도 대단했다. 클로드는 종종 피곤한 일을 겪었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30년 넘게 지속된 전쟁을 승전으로 이끈 대장군에게 개선식 하나 마련해주지 않았다. 온 신문들이 그 점을 두고 떠들어대도 요지부동이었다. 알 만했다. 클로드의 전과와 그의 미모, 그리고 카리스마. 그것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왕이 결혼에 동의해주었다고?

“정말입니까?”

“상대가 에드워드인 만큼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건 각오해야겠지만, 그래도 한 번 약속을 하면 번복할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 줄리안과 결혼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클로드의 말에 제이미가 잠시 생각 끝에 말했다.

“일리드 백작 가문에서 엄청 싫어할 것 같던데요.”

“줄리안은 성인이야.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한 나이는 아니지.”

“스물다섯이면 많은 나이도 아니죠. 각하도, 줄리안도 결혼하기에는 좀 어린 편이시잖습니까.”

흠 하고 클로드가 코웃음 쳤다.

“더 빨리 만났어야 했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따뜻한 몸을 안고 더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줄리안을 모른 채 속절없이 보낸 세월이 아쉬워 클로드가 혀를 찼다. 제이미가 무슨 소리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쩌시려고요. 줄리안을 전장으로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각하께서 수도에 머무르실 수도 없는 상황이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클로드는 줄리안을 고쳐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만난 것에 감사할 일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빨리 만났다면 어땠을까. 클로드는 줄리안을 만나면서 외로움을 자각했다. 살면서 외로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순간에 불과했고 클로드는 자신이 외로움을 타지 않는 인간이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외로움을 타는 인간이었다. 단지 너무 외롭고 그 외로움을 떨쳐낼 길이 보이지 않아서 체념하는 법을 익혔을 뿐이다.

줄리안, 이상하게도 널 안고 있는데 난 더 외로워져.

줄리안이 멀쩡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으면 심술이 났다. 더 격렬해졌으면 했다. 화를 내거나 우는 모습을 자꾸 보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집중해주었으면 했다.

어린애 같은 소리라는 건 나도 알지만.

클로드는 차에 타면서 혀를 찼다. 어른스러워져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반. 줄리안에게까지 어른스러울 필요가 뭐 있나 하는 생각이 반. 클로드는 차가 움직이는 내내 줄리안을 무릎 위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제이미가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잠든 겁니까?”

거친 섹스 끝에 움직이지를 못해서 시트를 뒤집어쓰고 안겨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차에 타서도 줄리안은 미동이 없었다. 제이미의 말에 클로드가 아아 하고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제이미가 질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각하, 그러다 사람 잡으시겠습니다.”

“섹스한다고 안 죽어.”

클로드가 툭 내뱉었다.

사람이 다 각하 같지는 않을 텐데요, 특히 각하의 약혼자 되시는 분은요―라는 말을 꾹 참고 제이미는 가볍게 대꾸했다.

“왜 안 죽습니까, 복상사라는 게 있는데요.”

“얜 대체로 내 밑에 있는걸.”

“복상사가 있는데 복하사라고 없겠습니까?”

“아직 못 들어봤으니 들어본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섹스를 줄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제이미는 흘끔 줄리안을 본 뒤 클로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트가 답답하지 않을까요?”

클로드가 얼굴을 찡그렸다.

“금붕어 똥, 너 줄리안에게 반했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제이미의 얼굴이 뭐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가 “죄송한데요, 각하”라면서 입을 열었다.

“각하 눈에 예뻐 보인다고 해서 다 예쁜 게 아니거든요.”

“그럴 리가. 내 눈에 좋은 건 남의 눈에도 좋아 보이기 마련이야.”

묘하게 그럴싸한데?

제이미가 흐음 하고 말문이 막혔을 때 클로드는 흘끗 고개를 돌렸다. 새벽 도로에는 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밖을 바라보다 클로드는 피식 웃었다.

“이건 안개꽃으로 못 바꾸겠는데.”

눈송이가 너무 컸다. 오늘 같은 날 자신이 외로워지면 줄리안은 이 눈송이를 무엇으로 바꾸어줄까. 장미꽃? 솜사탕? 무엇이든 좋았다. 아니, 그냥 눈이어도 좋았다. 하얗고 차갑고 금세 더러워지는 눈이어도 줄리안을 끌어안은 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또 눈이네요.”

군인이란 윗대가리부터 말단까지 모두 눈을 싫어하는 족속들이다. 작전에 방해되고 인력을 소비하며 시설물에 피해가 간다. 특히 클로드처럼 평생을 군인으로 보낸 자들은 눈을 보면서 ‘아, 시발, 하얀 똥 온다’는 소리도 서슴없이 해대고는 했다. 클로드에게 눈이란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뻤다.

세상이 멈춘 듯한 눈송이들이 예뻐서 클로드는 줄리안을 안은 채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뻐.

아까의 정사 때 줄리안이 속삭이던 게 생각났다. 예쁘다는 말로 부추겨져 클로드는 정신없이 줄리안을 탐했다. 줄리안은 싫다고도 했고 그를 밀어내기도 했다. 배 속이 아프다며 그만하자고 하는 줄리안의 안을 억지로 비우게 한 뒤 다시 처박길 반복했다. 몸이 이어지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었다. 계속 줄리안의 안에 들이붓고 싶었다.

줄리안은 그만두라고 울부짖고 클로드를 때리고 도망가려다 끌려와서 박히기도 했지만, 정신이 들 때마다 예쁘다고 속삭였다. 그 말이 클로드를 미치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예뻐, 예뻐요, 라고 몇 번이고 반복했다.

―예뻐, 너무나. ……이 말이 좋아요?

―시발, 애인이 예쁘다는데 싫어할 놈이 세상에 어디 있어?

―전하는 남자시잖아요.

―남자 안 해도 괜찮으니까 더 말해줘. 줄리안, 더 말해봐.

기뻤다. 누군가가 자신을 순수하게 예쁘다고 말하고, 정말로 어여뻐하고 있었다. 줄리안의 몸짓에서는 그런 게 느껴졌다. 밀어내고 도망가도 줄리안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 때리는 손에는 힘이 없고 밀어내면서도 거칠게 굴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은 다리를 벌려 클로드를 맞고, 사지로 그를 감싸주었다.

더 할 걸 그랬나.

어차피 어느 순간부터 줄리안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클로드가 하는 대로 흔들리기만 했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줄리안은 마치 인형 같았고 그것도 좋았다. 평소와는 달리 더 거칠게 몰아붙였다. 줄리안이 느끼는 곳만 찍어 누르자 정신을 잃은 상태로도 안을 조이는 게 무척 음란했다.

“참, 줄리안을 밀고한 자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뭘 근거로 밀고한 거였지?”

“사진입니다. 루시드 레플래스와의 사진인데 둘이 일기장을 교환하는 장면이더군요. 그 외에도 많이 찍혀 있었지만요.”

클로드는 의아한 얼굴로 줄리안의 머리 위에 턱을 대었다.

“줄리안이 미행을 당했다……? 순순히 미행을 당해줄 사람이 아닌데.”

클로드도 줄리안의 미행을 지시한 적이 있었다. 정찰에 잔뼈가 굵은 놈들이었는데도 금세 따돌려졌었다.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 줄리안이 미행을 당할 리가. 미행을 한 쪽이 대단한 실력자였던 것인가, 아니면.

“루시드 레플래스 쪽이 당한 것 같습니다.”

“역시 그쪽이었군.”

제이미는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서 뒷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나중에 다른 루트로 클로드가 듣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 경우 경을 치는 건 자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루시드 레플래스와 줄리안은 연인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뭐?!”

“혹은 연인 사이로 가장하고 있었든지, 둘 중에 하나인 듯합니다. 자주 가는 카페 주인이 둘이 연인이라고 증언해주었습니다.”

“당연히 그런 척한 거겠지.”

클로드가 말이라고 하느냐는 얼굴로 코웃음 쳤다. 뭐, 그렇겠죠. 제이미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줄리안과 루시드가 애인 사이라고 하기엔 둘의 반응이 너무나 플라토닉했다. 정말로 애인 사이였다면 지금쯤 루시드는 머리가 날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줄리안은……. 

줄리안은 정말 어떻게 되었으려나?

제이미는 궁금해졌다. 클로드는 줄리안이 첩자라 할지라도 놓지 않겠다고 했었다. 의외의 발언이었다. 술값으로 군수품 좀 팔아넘긴 놈을 죽였을 정도로 클로드는 배신에 민감하다. 그 클로드가 첩자일지도 모르는 줄리안을 사랑해서, 첩자라고 해도 감수하겠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독한 늦사랑이었다.

“각하, 정말 줄리안이 루시드 레플래스와 그런 사이였으면 어쩌셨을 겁니까?”

클로드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대답했다.

“일단은 나 자신을 어필해야지.”

“……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될 거 아니야. 날 선택하게 해야지.”

사지를 자르고 어쩌구는 아니어도 발목에 쇠사슬 정도는 기대하고 있던 제이미가 피식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이런 상관이 좋았다. 마이너스 사고로 잘 치닫지 않는 상관이었다. 특히나 전쟁에서 그의 이런 모습은 독보적으로 빛났었다. 옛 생각이 좀 나서 제이미가 웃자 그 모습을 본 클로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아니요, 각하다우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미친놈.”

클로드가 내뱉은 말에 제이미가 민망해져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 차는 저택의 철문 안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눈 내리는 정원을 가로지른 차가 본관 앞에 멈추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몇몇의 하인과 함께 집사가 클로드를 맞았다. 클로드는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는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줄리안은 자신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어릴 때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다. 온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민망한 곳이 아픈 것은 물론이고 민망하지 않은 곳도 지끈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줄리안은 천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딱 봐도 궁은 아니었다. 줄리안은 궁에서 7년을 살았으니 구석만 봐도 그곳이 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궁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방이었다. 여성 취향의 방. 하늘하늘한 레이스. 고상하고 섬세한 로코코풍의 가구들. 너무 화려하지 않지만 여성스러움도 놓치지 않은 방을 보며 줄리안은 하품했다.

귀부인의 방인데 이런 데에 내가 왜 누워 있는 거지?

줄리안이 눈살을 찌푸렸을 때 하인과 하녀가 같이 들어왔다. 줄리안은 그 유니폼을 보는 순간 여기가 어딘지 깨달았다. 클로드, 즉 아리스트 대공 저택이었다. 줄리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몸을 일으켰다. 온몸의 뼈가 웨이브를 추는 듯했지만 꾹 참고 싱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줄리안의 인사에 하인과 하녀가 같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 일어나셨네요.”

하녀가 먼저 상냥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하인이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선생님이 다시 오실 겁니다.”

“예, 괜찮아요. ……선생님이라니요?”

“몸이 좀 안 좋으신 듯해서 집사님이 부르셨어요. 참, 주인님께서는 응접실에 계십니다. 회의 중이신 것 같던데요.”

의사? 줄리안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온몸이 미친 듯이 쑤시고 결렸지만 그와는 별도로 의사를 만나야 할 정도의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뒤가 찢어지기라도 했나. 줄리안은 흘끔 화장대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옮겨 하인과 하녀를 바라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됐습니다.”

“하지만 몸이 안 좋으신데요.”

“전 마법사입니다.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알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줄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줄리안의 말에 하인과 하녀가 의아한 듯이 그를 바라보다 시선이 마주치자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이윽고 하인이 멋쩍게 대답했다.

“마법사는 처음 봐서요. 흔한 직업은 아니잖습니까.”

하인의 말에 하녀도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텔레비전에서나 봤지, 실제로는 정말 처음 뵈어요. 마치 첩보원을 만난 기분이네요. 아, 그러고 보니 첩보원과 마법사는 어느 쪽이 더 숫자가 많을까요? 둘 다 살면서 한 번도 못 만나보겠죠?”

하녀가 두근두근하는 얼굴로 물었다. 순진하게 느껴지는 질문에 줄리안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왕실에서 일할 때는 받아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오늘 몸 상태가 나쁜 것이지 기분은 몹시 상큼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숫자로만 말하자면 첩보원 쪽이 더 많을 것 같네요. 하지만 만나기 쉬운 건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왕립 아카데미는 관광 코스고, 학생들이 생활하는 쪽은 못 들어가보시겠지만 마법사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가이드를 하기 때문에 들어가자마자 일단 마법사를 만나게 되거든요. 첩보원도 뭐, 사실 정보국 민원 센터에 계시는 분들 다 첩보원 출신이시라서요.”

“의외로 만나기 쉽네요.”

“예, 뭐…… 장소만 잘 고르시면 못 만날 사람이 없죠.”

“국왕 전하는 어렵잖아요.”

“예, 그분은 어려우시죠. 국왕 전하, 왕비 전하, 대비 전하, 이런 분들은 좀 어렵고요. 뭐, 나머지는……. 아, 대공 전하도 어려우시죠. 워낙 공사다망한 분들이시고 철저한 경호를 받으시는 분들이니까요. 그러게요, 그분들은 어렵겠네요.”

줄리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녀가 미소 지었다. 줄리안은 침대에서 나오려다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걸 깨닫고 멈칫했다. 나가달라고 하고 싶어서 시선을 흘끔 돌려봤지만 하인과 하녀는 뭔가 더 궁금한 것들이 많은지 눈을 빛내고 있었다. 부담스러워진 줄리안이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려고 했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클로드가 나타났다. 하인과 하녀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일어났네.”

클로드가 당연한 듯이 침대에 앉아 줄리안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열은 떨어졌군.”

“열이요? 제가 열도 났습니까?”

“응, 어제 좀 많이 앓던데. 의사는 스트레스와 과로가 겹친 거라더군.”

과로. 줄리안은 알 만하다는 얼굴로 클로드를 올려다보았다. 줄리안이 표정으로 비난하자 클로드가 키들거리며 웃었다.

“귀엽긴. 그렇게 좋았어?”

줄리안의 눈이 커지는 걸 보면서 클로드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 순간 하인과 하녀가 “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라며 허둥지둥 사라졌다. 말릴 틈도 없었다. 나가주길 바라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는데, 라고 줄리안이 생각하는 사이 문이 닫혔다. 그리고 당연한 것처럼 침대로 밀렸다. 누운 다음에 고개를 들자 어느새 클로드가 위에 앉아 있었다.

“전하.”

줄리안이 눈살을 찌푸리자 클로드가 “끝까지는 안 할 테니까”라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며 넥타이를 풀었다. 줄리안은 손을 뻗어 그의 손등을 감쌌다. 당장에라도 넥타이를 바닥에 집어 던질 것 같던 클로드가 의아한 눈으로 줄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가십니까?”

옷차림이 집에 있으려는 사람의 복장이 아니었다. 줄리안의 말에 클로드가 “아아. 왕궁에서 호출”이라고 중얼거렸다. 줄리안이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일어나십시오.”

“싫은데.”

클로드가 픽 웃었다. 그는 손을 뒤집어 줄리안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얽히자 클로드가 기분 좋은 얼굴로 줄리안을 잡아당겼다. 줄리안은 엉겁결에 손을 내주었고, 클로드가 그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잘 잤어?”

“예.”

꿈도 안 꾸고 기절한 것처럼 잤으니 잘 잔 거겠지.

“잘 자는 것 같더라.”

그렇게 대꾸한 클로드가 자꾸 줄리안의 가슴 부분을 흘끔거렸다. 줄리안은 아무 생각 없이 그의 눈길이 닿는 곳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황급히 시트로 가슴을 가렸다.

“전하.”

“존나 커졌네.”

입맛을 다시는 클로드를 보며 줄리안이 몸을 뒤로 뺐다. 다행히 클로드는 정말 그를 안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순순히 줄리안이 나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가 놔주었다는 것에 잠시 안도했던 줄리안은 곧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다 그가 놔주었다는 것으로 안심하게 되는 그런 인생을 살게 되었나. 줄리안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클로드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언제 나가십니까?”

“앞으로 40분 뒤?”

“그럼 기다리세요.”

응? 클로드가 의아해하는 사이 줄리안은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클로드는 어쩔 수 없이 침대에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기다린 지 5분쯤 지났을까, 전화가 울렸다.

“왜?”

액정에 뜬 이름은 금붕어 똥.

‘각하, 잡아냈습니다. 저스틴 모스. 줄리안의 부하였다네요?’

“첩자인 건 확실하고?”

‘예. 증거 전부 확보했습니다. 잡지로 사진을 유출했던 사람은 그가 아니고요, 다른 사람입니다. 취조한 결과 동기는 돈이었습니다. 첩자와는 좀 상관없는 거였고요. 저스틴 모스는 이셀란국의 장군을 외삼촌으로 두고 있습니다. 군사 기밀을 위주로 본인이 빼낼 수 있는 정보는 다 빼낸 모양입니다.’

“밀고자는?”

‘저스틴 모스입니다.’

“밀고자가 동일 인물이다? 그 새끼, 제법 본격적이었네?”

클로드의 입술에 냉소가 어렸다. 잡았다, 이 새끼. 그는 손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오랜만에 손을 좀 풀게 될 것 같았다.

‘예, 각하.’

“갑자기 줄리안을 밀고하게 된 계기는…… 아, 보안 점검 때문에 겁나서?”

‘예, 그렇지요, 각하.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셀란은.’

“줄리안의 논문을 가져다 쓴 나라지.”

클로드의 눈이 어두워졌다. 제이미가 전하 건너편에서 완고한 목소리를 냈다.

‘저스틴 모스는 줄리안의 부하였고, 이셀란은 줄리안의 논문을 가져다 썼습니다. 아직도 줄리안은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줄리안에게 그 논문에 대해서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겨우 분위기 좋아졌는데.”

칫, 클로드가 혀를 차자 제이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잖아요, 라는 말을 제이미 대신 침묵이 전하고 있었다. 클로드는 빌어먹을 하고 한 번 더 욕설을 지껄였다. 그때 욕실 문이 달칵거렸다. 클로드는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침 그의 약혼자가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클로드는 약혼자,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약혼자. 마음에 드는 말이었지만 역시 배우자, 라는 명찰이 더 예쁘고 귀해 보였다. 빨리 결혼을 해야지. 결혼 생각을 한 지 고작 이틀째인데 벌써부터 클로드는 초조해졌다. 그 초조함을 감추고 느긋하게 웃어 보이는데 줄리안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목욕 가운만 걸친 줄리안이 섹시해 보여서 클로드는 잠시 망설였다. 옷을 벗고 쟬 눕히면 화내려나? 아직 아래가 서진 않았지만 서기 일보 직전이었다. 네가 너무 야해서 그래, 라는 말을 하면 화내겠지.

‘각하 그러시다 진짜 차입니다. 설사 결혼을 한다고 해도 요즘 같은 세상에 이혼이 뭐 별거입니까? 살살 하세요, 살살.’

어제 줄리안의 옆에서 그를 집적대고 있자니 제이미가 결국 한마디 했다.

‘설마,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내 마누라지.’

‘남편 아닙니까?’

‘아, 뭐든.’

남편도 나쁘지 않지만 마누라가 더 어감이 사랑스럽다. 줄리안은 예뻤다. 목소리도, 손끝도 야하고 사랑스러웠다. 남편이라는 무뚝뚝한 어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제이미가 클로드의 앞에 서류를 내려놓다 말고 줄리안의 얼굴을 흘끗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뭡니까. 섹스하다 과로로 쓰러지게 만들다니요.’

‘얘가 야해. 내 탓이 아니야.’

‘와, 지금 뺨 맞아도 싼 소리 하신 거예요.’

‘진짜로 얘가 야하다니까.’

우리 상관이 이런 미친 꼰대인 줄 몰랐다며 제이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졸지에 꼰대 취급을 받은 클로드였지만 그는 줄리안이 야해서 자신이 이렇다는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그 말은 사과는 과일이다 수준의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울면서 조르고, 밀어내면서 다리를 벌린다. 심지어는 실금하는 그 순간조차도 무척 야하고 귀여웠다. 사람이 실금하는데 오줌이 나오는 성기가 아니라 얼굴을 보는 일이, 얼굴을 보느라 실금의 핵심 장면을 못 본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러나 정말 클로드는 알지 못했다. 클로드 자신밖에 모르면서도, 손길에 금세 질질 새는 그 헤프고 귀여운 성기가 어떤 식으로 노란 물을 터뜨렸는지 보지 못했다. 그는 그저 줄리안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수치스러워 미치겠으면서도 한껏 느껴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 얼굴을. 도저히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마 옆에서 사람이 죽었어도 줄리안의 얼굴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걔가 그렇다고. 걘 평범하게 야한 수준이 아니라니까. 먼로와 마돈나를 합치고 거기에 잉그리드 버그만의 미모를 올려야 한다고, 이 새끼야. 그리고 사랑스러움은 다른 데서 공수해 와서 붙여야 줄리안이 되는 거라고!

그러나 클로드는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팔불출이라고 비웃음을 살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줄리안이 그렇다는 걸 아는 놈이 많아지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흥 하고 코웃음 한 번 치는 것으로 대화를 끝내버렸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마돈나는 나신에 목욕 가운 차림으로 워킹 중이셨다. 흐물흐물 걸어도 참 귀여웠을 텐데 줄리안은 절도 있고 단정하게 걸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걷는 모습은 금욕적이었지만 옷은 목욕 가운 하나. 눕혀서, 목욕 가운을 잡아 벌리고 다리를 들어 올려서 삽입까지 몇 초나 걸릴까를 따져보는 사이 줄리안은 이미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줄리안이 “고개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전하”라고 사무적으로 말해서 엉겁결에 클로드는 고개를 들었다. 줄리안이 클로드의 머리칼을 스르륵 만져보더니 평했다.

“개털이네요.”

“그, 그래?”

“네. 타고나길 좋은 머릿결로 타고나셨지만 그래도 관리 부족이 느껴집니다. 에센스를 좀 사야겠어요. 팩도. 헤어 제품 쓰시는 걸 봤는데 좋은 제품이더군요, 하지만 각하의 취향은 아닌 것 같았어요. 집사님이 사두신 거죠?”

“그랬겠지?”

“제가 바꿀게요. 일단은 드라이부터 좀 하실까요.”

궁에 갈 거라면 드라이를 해야 한다는 기준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클로드는 얌전히 머리를 맡겼다. 내조인가, 이건. 그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줄리안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이 손길은 정말이지 기분 좋았다. 봄의 여신처럼 보드라운 손길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 푸석하다, 푸석해.

줄리안은 클로드의 머리를 능숙하게 손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번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클로드의 머릿결은 지나치게 혹사당한 티가 났다.

“이런 데 신경 쓰는 줄 몰랐어.”

클로드가 중얼거렸다. 마치 꿈을 꾸는 듯 나른한 어조였다. 거대한 짐승을 길들이면 이런 느낌일까. 조금 귀여워서 줄리안은 그의 머리를 손질하다 말고 클로드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클로드가 눈을 번쩍 떴다.

“키스하는 게 싫으세요?”

키스할 때마다 그가 이런 반응이었던 것 같아 묻자 클로드의 눈에 담긴 관능이 한껏 흐드러졌다.

“좋아…….”

그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이게 뭐라고. 줄리안은 피식 웃으면서 클로드의 코로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저도요.”

“시발, 설 것 같은데.”

그렇게 하고도 할 게 남았니.

줄리안은 한숨을 쉬었다. 그 숨결이 닿자 클로드가 입술을 벌렸다. 숨결을 삼키듯이 숨을 들이쉬는 모습이 퇴폐적이었다. 최상급의 얼굴인데. 줄리안의 입술이 클로드의 인중에 닿았다. 입술이 닿은 상태로 줄리안이 조곤조곤 속삭였다.

“혹시 몸속에 병이라도 키우는 거 아닙니까? 테스토스테론이 강제로 분비되는 그런 병이라도 있는 거 아닌지 걱정됩니다.”

클로드가 자신의 손을 가슴에 얹으며 입을 열었다.

“아, 걱정인가. 가슴이 존나 간질간질한데.”

목소리가 꿀에 절인 듯 달았다. 줄리안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클로드가 입을 열어 혀를 내밀었다. 마치 줄리안의 숨결을 맛보겠다는 듯이.

“앞부분에 주목해주세요, 전하.”

“병? 테스토스테론? 하지만 난 성적으로 담백한 편인걸.”

줄리안이 피식 웃었다. 조금 전까지 약에 취한 듯 육욕적이던 남자가 한다는 소리 봐라. 그는 클로드의 목을 손끝으로 간질이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 팔지 마시고요.”

“아니, 진짜로. 내가 정말 테스토스테론 분수였으면 쌓이는 정액을 다 어떻게 했겠어? 지금까지 동정일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그럴싸한데.

“아무리 전장이라지만 다들 하는 방법이 있다고. 그리고 요즘이 옛날도 아니고, 사내놈들끼리 눈 맞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도리어 남자들끼리라서 더 육체적인 쪽으로 흐르지. 그 와중에 고고하게 동정을 지킨 나를 봐. 당연히 금욕적인 인간이니까 가능한 거 아니겠어.”

금욕?

온몸이 결리고 쑤시는 가운데 듣게 된 금욕이라는 단어에 줄리안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했다. 그때 클로드가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키스가 파도처럼 달려들었다. 숨을 쉴 틈도 없이, 불편한 자세로 끊임없이 키스했다. 클로드의 혀는 줄리안이 약한 곳을 다 알고 있었고, 줄리안의 타액은 클로드를 미치게 했다. 탁,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힘이 빠진 줄리안의 손에서 떨어진 드라이어와 빗이었지만 둘 다 관심도 두지 않았다.

숨이 막힌 줄리안이 입술을 떼었을 때 둘 사이에는 반짝이는 은실이 이어져 있었다. 은실이 끊기고 줄리안의 얼굴이 명확히 보이자 클로드는 보란 듯이 혀를 날름, 움직였다. 줄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지간히 금욕적이십니다, 전하.”

“어쩔 수 없지. 넌 너무 야하고 난 순진한걸.”

순진이라는 단어에 줄리안의 얼굴이 헤식은 미소를 지었다.

“어련하시겠어요.”

“진짜야. 넌 네가 얼마나 야한지 몰라서 그래. 나처럼 섹스 한 번 못 해본 순진한 남자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고.”

“…….”

“그래서 묻는 건데, 이셀란에 논문은 왜 줬어?”

이셀란? 갑작스럽게 나온 적국의 이름에 줄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셀란이요? 우리와 전쟁했던 그 이셀란이요?”

“그래, 그 이셀란이 3년 전 네 졸업 논문을 바탕으로 날 엿 먹였거든. 약 두 달간.”

“그게 왜 갑자기 여기서…….”

“난 너한테 푹 빠졌고, 네 첩자 혐의는 아직 덜 풀렸거든. 그리고 난 엿같이 순진해서 너한테 해롱해롱하고 있으니까.”

“……으니까?”

“내 참모들이 걱정하고 있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줄리안은 아무 말도 없이 클로드에게서 멀어졌다. 줄리안이 바닥에 떨어진 드라이어와 빗을 들어 클로드의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잠시 눈을 뜬 채 줄리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클로드가 잠자코 눈을 감았다. 줄리안은 그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정말 첩자라면 전하의 목에 칼을 꽂을 수도 있어요.”

줄리안의 말에 클로드가 웃었다.

“그러게.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나 클로드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만이 감돌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방 안에는 시끄럽게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드라이어를 끄자 어딘가에서 새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이군. 줄리안은 클로드의 헤어스타일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며 생각했다.

새로운 아침.

줄리안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세 번째 빼앗겼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잘하는 가정교사였고 두 번째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있는 도서관이었다. 그때마다 줄리안은 울고불고 식음을 전폐하고 방에 틀어박히고 온 가족을 걱정시키다 새로운 즐거움을 찾은 다음에야 겨우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새로운 아침을 맞기까지 늘 시간이 걸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아침이 너무나 일찍,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다 됐어요.”

줄리안의 말에 클로드가 눈을 떴다. 예뻐. 줄리안은 자신을 울리고 섹스할 때 엉덩이를 때리고 화장실에 못 가게 하는 미친놈을 보며 생각했다. 예쁘다, 정말. 보석 같은 눈이라고 생각하며 클로드의 입술에 입술을 대었다. 살포시 닿기만 한 키스 끝에 줄리안이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생각났어요.”

그래서 줄리안은 클로드의 참모들과 마주 서게 되었다. 참모들과 마주 서기 전, 줄리안은 클로드의 옷을 입어보려고 했으나 키 차이가 너무 나서 입을 만한 게 없었다. 속옷 한 벌 없었기 때문에 줄리안은 결국 목욕 가운 차림으로 참모들을 만나야 했다. 클로드는 줄리안이 너무 섹시하다며 내키지 않아 했지만 줄리안은 자신이 확실하게 대답하겠다고 주장했다. 결국 클로드는 자신의 고집을 꺾고 줄리안을 참모들의 앞에 내보여야 했다.

그리고 참모들은 줄리안과 시선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있었다. 이틀 전의 발광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마법사한테 저주받아본 적 있습니까, 풀코스로?

이제까지 그들은 줄리안 일리드에 대해 차분하고 성실한 왕실 시종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껍데기를 벗어던진 줄리안은 뒤끝이 작렬하는 남자인데다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참모들은 정말이지 줄리안과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해밀턴은 더욱 그랬다.

“해밀턴 씨, 이틀 전에는 죄송했어요.”

줄리안이 아무리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걸어도 해밀턴은 “아, 아닙니다”라고만 말할 뿐 고개도 들지 않았다.

줄리안은 하, 하하 하고 헤식은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해밀턴에게 미움을 산 모양이다.

후, 내가 그날은 좀 그랬지.

어릴 때부터 가끔씩 그렇게 머리가 돈 채로 발광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딱 이랬다.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는 참 익숙했다. 줄리안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씩 웃었다.

“전하께서 이셀란 이야기를 하셔가지고요.”

줄리안의 말에 클로드가 “응, 금붕어 똥이 그러던데”라며 제이미를 가리켰다. 제이미가 펄쩍 뛰어올랐다. S급 마법사의 저주를 풀코스로 받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기에 그는 바로 옆자리에 서 있는 참모를 가리켰다.

“저도 들은 겁니다.”

제이미의 삿대질이 자신을 가리키자 참모가 깜짝 놀라 다른 참모를 가리켰다.

“보고서를 올린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내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순식간에 한 사람에게로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었던 해밀턴은 설마 하는 얼굴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나야?”

“네가 알아 왔잖아. 마법사 협회에 전화한 게 너였잖아.”

맞아, 너야. 네가 그랬어. 왜 그랬어? 네가 범인이다. 수많은 시선들과 마주하게 된 해밀턴은 입을 달싹거렸다. 그는 어제부터 제대로 잠도 못 잔 상태였다. S급 라이선스를 가진 마법사가 풀코스로 가하는 저주가 대체 어떤 것일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잠을 설쳤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해밀턴은 그냥 사과했다. 마법사 협회에 전화를 걸고 공문을 보낸 사람이 자신인 건 사실이었지만 그 일을 지시한 것은 클로드였다. 그러나 클로드의 탓을 할 수는 없었다.

여보, 나 제대할까……?

해밀턴은 울고 싶어졌다. 그러나 제대에 있어서는 아내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이제 전쟁이 끝났고 엄청난 포상금이 (언젠가는) 나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인제 와 제대라니, 아내가 찬성할 리 없었다. 애들 학비는 어쩔래?! 아내가 이렇게 나오면 게임 끝이었다.

“저는 그냥 나라를 위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기, 해밀턴 소령님, 저 정말 괜찮습니다.”

줄리안이 살며시 달래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정말입니까?”

“그럼요. 나라를 위해서 하신 일이고……, 그게 아니어도 마법사 협회에 물어보신 정도로 제가 소령님을 원망할 리 없잖아요.”

그저께 일을 돌아보면 원망하고도 남을 것 같았는데.

해밀턴은 줄리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줄리안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 괜찮아요. 제가, 그저께 좀 그랬죠……? 제가 원래 가끔 그렇게 될 때가 있어요. 자주 그러진 않거든요, 염려하지 마세요.”

어떻게 염려를 안 할 수가 있는가. 직속상관이 빠져 있는 애인이자 그의 약혼자, 곧 결혼할 상대였다.

줄리안은 해밀턴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반쯤은 넘어왔는지 해밀턴은 좀 안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줄리안은 해밀턴의 손을 잡고 “전 사실 저주 같은 거 내리지 않아요”라고 말해주었다. 한 번도 내린 적 없어요, 라고 말해주자 해밀턴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펴졌다. 아아, 역시 저주를 걱정하고 있었구나. 줄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저께는 정말 죄송했어요.”

“아니, 저야말로 죄송했습니다.”

줄리안이 한 번 더 사과하자 해밀턴도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갑자기 줄리안의 몸이 들렸다. 줄리안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클로드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줄리안을 어린애처럼 안아 올렸고 그 순간 줄리안과 해밀턴이 잡았던 손이 툭 떨어졌다.

저거구나.

모든 참모가 둘의 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을 때 줄리안은 “무슨 짓이세요?!”라며 클로드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추워.”

클로드가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를 하며 줄리안을 끌어안았다.

“내려놓으세요, 당장.”

“추워. 안고 있을래.”

줄리안은 클로드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내가 저주로 임포텐스로 만들어주기 전에 당장 내려놔요.”

클로드는 잠자코 줄리안을 내려주었다. 임포텐스는 좀 무서웠고 그게 아니어도 안아 올렸더니 줄리안의 허벅지가 드러나고 있었다. 목욕 가운을 입은 상태로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클로드는 후회했다. 그러나 그의 후회는 늦은 것이었고 줄리안은 이미 목욕 가운을 입은 상태였다. 다행이라면 그 가운이 클로드의 것이라 줄리안에게는 제법 길다는 것뿐이었다.

“이셀란 이야기인데요, 제가 졸업 논문을 이셀란에 보낸 건 아니에요.”

줄리안은 그렇게 말하며 참모들을 한 번 죽 둘러본 뒤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단지 이셀란 출신의 유학생에게 제 논문을 보여주긴 했었어요. 걔 이름은 세실이에요. 세실 예이딘.”

줄리안은 그리고 세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던 모든 이의 얼굴이 천천히 구겨지는 것을 보며 줄리안은 뇌가 맑은 사람처럼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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