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래.”
“뭐? 진짜?”
“어.”
“와, 다짜고짜 커밍아웃한 너도 너지만 걔도 걔다. 시간을 달라는 건 뭐야. 누가 들으면 둘이 연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형.”
“아, 알았어. 엮는 거 하지 말랬지? 안 할게. 너 룸메이트 걔랑 엮는 거 안 한다고. 됐냐?”
항복하듯 두 손을 들어 보인 김재경은 그 와중에도 실실 웃고 있었다. 뭐라 한마디를 더 할까 하다가 그럴 기운이 없어서 말았다.
주의를 돌리기 위해 켠 노트북은 어제부터 사람을 빡치게만 했다. 프로그램 상단 바에서 실행 중임을 알리는 동그라미만 수없이 돌아갔다. 잠시 그걸 지켜보던 나는 이내 포기하고 마우스를 던지듯 내려놨다.
여러모로 되는 게 없었다. 한동안 잊고 살던 두통까지 되살아났는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따지자면 끝도 없긴 했다. 걔랑 같은 학교를 온 것, 비슷한 시기에 군대에 가고 비슷한 시기에 제대하고 비슷한 시기에 복학을 한 것, ‘그러고 보니 너네 어렸을 땐 정말 친했는데, 한번 만나 보지 그러니?’ 하는 말에 두루뭉술하게 대답한 것. 그리고….
“어린 게 까칠해서는….”
“늙어서 좋겠네.”
“어린 거 반대말이 늙은 거야?”
“그럼?”
“조금 덜 어린 거라고 해 주라.”
“꿈도 크다.”
영양가 없는 말장난이라면 절대 지지 않는 김재경이 웬일로 답이 없었다. 카운터로 돌아갔나 싶을 정도로. 알바생 혼자 주문하고 커피 만들고 생쇼를 한 게 삼십 분쯤 됐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 김재경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마주친 시선을 끊지 않은 채, 김재경이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걔가 생각해 봤는데 안 되겠다고, 너랑 못 살겠다고 하면 어떡할 건데, 너?”
사뭇 진지한 얼굴로 팔짱까지 낀 김재경은 전처럼 웃고 있지 않았다. 김재경이 답지 않게 형같이 굴고자 할 때의 얼굴이다. 난 김재경의 눈을 피해 노트북을 종료했다.
“뭘 어떡해. 같이 안 살면 되지.”
“어머님끼리 친하다고 하지 않았냐?”
“그게 뭐라고. 정작 걔랑 내가 안 친한데.”
“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친해질 틈이나 있었고?”
“…….”
“뭐… 하루는 같이 있었나? 걔가 집 도착해서 짐 푼 게 오늘 아침이랬지? 지금은 오후 8시니까… 한 열두 시간쯤 됐겠다? 심지어 만 하루도 안 됐네?”
정확히는 열한 시간이다. 걔는 정확히 9시에 집 문을 두드렸고, 아침 7시부터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바빴던 나는 그 순간에도 시계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실제로는 한 시간이 차이 난다는 걸 정정해 봤자 뭐가 달라질까. 하루 24시간조차 채우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는데.
문득 어젯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잠들었는지를 기억해 냈다. ‘아침에 온다니까 인사는 간단히 하고, 점심은 같이 먹어도 되겠다’, ‘오후에는 간단하게 장이나 보러 가자 할까. 냉장고가 너무 텅 비어 있긴 하던데.’, 따위의 생각들이었다. 처음 만난 룸메이트와 실행하기에는 딱인,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계획 중 ‘이로빈한테 커밍아웃하기’는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후회는 안 된다는 거다. 다시 돌아가도 이로빈에게 똑같은 말을 했을 것 같기에. 얼빠진 얼굴에 대고 너 나랑 살 거냐며 물어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재경은 모르니 말해 줘야만 했다.
“열두 시간 안에 답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 아냐.”
“그 답을 너 혼자 낸 게 문제라고.”
“…….”
“내가 걔면 자다가 뺨 맞은 기분일 것 같은데. 자, 봐라. 십이 년 만에 소꿉친구를 만났네? 근데 그 친구가 개싸가지….”
“누가 사심 담으래.”
“티 났어?”
“안 나겠냐?”
“그럼 다시 시작. 이번엔 내가 진짜로 각 잡고 네 친구 입장에서 말할 테니까 제3자의 마음으로 집중하고 잘 들어 봐.”
“…….”
“12년 만에 만난 친구랑 같이 살게 됐어. 당장 다음 주 월요일이 개강이야. 근데 걔가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앉아 보라더니 커밍아웃을 하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는데, 이해 못 하겠으면 같이 살지 말자고 하네? 부모님끼리 얽힌 사이고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서 시간을 달랬더니 삼 일 안에 얘기해 달라고? 이거 완전 제멋대로인 새끼 아냐?”
마지막 문장이 거슬리긴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입을 다문 나를 보며 김재경이 입꼬리를 삐뚜름히 올렸다.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이었다. 더는 한계였다. 김재경이 하는 카페 문을 열며 너무 자세하게 얘기하지는 말아야지, 다짐했던 내가 우스울 정도였다. 갑자기 커밍아웃한 이유를 빼고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도 김재경처럼 팔짱을 끼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딱딱한 의자가 불편해도 그럭저럭 무게를 실을 만은 했다.
“형. 내가 말 안 한 게 있는데.”
“뭘.”
“걔가 오자마자 덥다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는데.”
“…근데.”
“중간에 날 찾더라. 샤워타월이 없다고. 캐리어에 있는데 깜빡했다면서.”
김재경이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눈을 깜빡거린다.
“문 앞에 놓고 가려고 했는데, 걔가 그러더라고. 지금 자기 눈에 샴푸가 들어가서 안 보이니까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 손에서 잡히는 데에 놔 줄 수 있냐고.”
“옷 입고 샤워하고 있었으니까 가져다 달라고 한 거 아냐?”
“…….”
“오, 설마….”
“심지어 팬티도 안 입고 있었어.”
이쯤 되자 김재경도 내 말을 대충이나마 알아들은 것 같았다. 입을 합 다물고는 내 눈치를 살피는 얼굴을 보자 콧방귀가 나왔다. 심지어 내 얘기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그래, 뭐 그것까지는 그렇다 쳐. 남자들끼리 알몸 보는 게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잖아. 나라고 군대 안 다녀온 것도 아니고.”
“…그럼 왜?”
“그게 다가 아니니까 문제라고.”
“…….”
“소파에 앉아 있는데 냄새 좋다고 향수가 뭐냐고 사람 목에 코를 박고 킁킁대질 않나.”
너무 당황해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한 박자 늦게 흠칫 놀라 뒤돌아보는 자신을 쳐다보던 동그란 눈. 뭐가 잘못된 건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던 표정.
“점심 먹는 내내 여자 친구 있냐는 질문만 세 번을 하던데.”
“…….”
“없다니까 소개해 줄까? 묻더라.”
“…….”
“무슨 스타일 좋아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하고.”
김재경의 얼굴이 차분해진다. 평소에 무언가를 숨기는 것처럼 오버해 웃는 얼굴이 사라지고 나니, 익숙해 마지않는 스물한 살의 김재경이 불쑥 등장했다. 그 등장에 입이 쓴 건, 내가 김재경에게만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와 무관하지 못하다.
김재경은 안다. 내가 오늘 이로빈에게서 느꼈던 그 허무함의 출처를.
“…좆같았겠네.”
그도 나와 같으니까. 그리고 이로빈이랑은 다르니까.
“어.”
이럴까 봐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딱 하나의 짐을 더 얹고 살았으며, 이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어 또 상처를 받기에는 너무나 지쳐 있었으므로.
“좆같더라. 많이.”
난 그 시간 내내 그 좆같은 기분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나와 같은 공간에 있던 이로빈은 내내 태연했다. 태연하게 자신이 벌거벗고 있던 화장실 안에 들어오라고 하고, 태연하게 남의 향수가 좋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목에 코를 박으며, 태연하게 짜장면 위에 씌워진 랩을 뜯으며 물었다. “너 여자 친구 있지?” 하고.
그 태연함이 무엇보다 제일 좆같았다. 그래서 그랬다. 한참을 빨빨거리다가 드디어 제 방에 들어가려는 놈을 굳이 불러 세우고, 둘이 한 번 나란히 앉아 본 적 없는 식탁 의자에 앉혀 놓고, 다짜고짜 말했다.
‘미안한데, 나 게이야.’
그 순간 걔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왜 서두를 굳이 미안하다는 말로 열었는지를 자책하느라 걔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자존심이 상해서 그다음부터는 나를 피하는 걔의 눈을 진득하게 좇았지만 어차피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어쩌면 난 좀 두려웠던 것도 같다.
“근데 형. 생각하면 할수록 걔가 오늘 하루 한 행동들이 일반적인 남자 대학생들한테는 딱히 이상한 일로 여겨지지 않을 것 같거든.”
“…….”
“그 행동들에 이렇게 기분이 좆같은 내가 이상한 거지.”
“…….”
“내가… 다른 거지.”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려는 ‘틀렸다’는 말을 뭉개고 다른 말을 뱉었다. 스물한 살의 김재경이 내게 가르쳤던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그것일 테니까.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그 사실조차 모를 리 없는 김재경이 조용히 물었다. 친하게 지내는 게이 동생 상담해 준다고 바쁜 사장님 대신에 눈썹 휘날리게 바쁜 알바생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흘끔거린다. 분주히 움직이는 등을 보며 언젠가 김재경이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 여기서 알바할 생각 없냐?’
그때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잠깐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분주히 움직이는 등을 보니 살짝 구미가 동하는 것도 같다.
문득 김재경한테 말하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이 더 떠올랐다.
“근데 형.”
“…….”
“나 형한테 한 가지 더 말 안 했던 거 있어.”
멈칫한 김재경이 눈으로 묻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함께한 세월이 있어서, 날 바라보는 눈빛에 묻어나는 걱정을 소화제처럼 삼켰다.
분명 소화제를 삼켰는데, 미처 소화되지 못한 기억들이 울컥 입 밖으로 쏟아졌다.
“형이 걔랑 친했냐고 물었을 때, 기억도 안 난다고 했잖아.”
“…….”
“거짓말이었어.”
“…….”
“기억나. 걔랑 있었던 일들, 모조리 다.”
“…….”
“나. 걔 때문에.”
김재경은 이미 답을 눈치챈 것 같다. 벌어지는 입을 보며 난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손에 꼭 쥐고 있었던 아메리카노의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들이켰다. 작업 내내 달고 사는 커피인데도, 오늘만큼은 지독하게도 썼다.
“내가 남자 좋아하는 거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