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2권) (6/31)

“…뭐?”

예상치 못한 말에 멍해 있길 잠시, 웃음이 터졌다. 생각할수록 엉뚱했다. 제 연애 잘되라고 행운까지 나눠 줬더니, 왜 내 연애를 걱정하고 있어. 그것도 저런 심각한 얼굴로.

난 웃음을 숨기지 않으며 남한결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소원을 빌라니까 뜬금없는 말을 하고 있어.”

“…….”

“너 방금 소원 낭비한 거야, 인마. ”

“…….”

“내 전 여친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부터 좀 힘내라. 그런 얼굴 하지 말고.”

남한결이 대답 없이 고개를 내렸다. 슬쩍 보이는 얼굴에는 다시 옅은 체념의 빛이 떠 있었다. 아마 방금 내가 한 말로 그 사람에 대해 또 생각하게 된 모양이었다. 나는 남한결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개를 내려 까만 눈을 찾았다. 남한결의 시선이 내게 돌아왔다. 눈동자를 마주 본 순간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될 거야.”

“…….”

“그리고 네가 내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너 진짜 괜찮은 애거든.”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십이 년 만에 만난 친구라서가 아니라, 남한결이 내 룸메이트라서가 아니라, 남한결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기에. 남한결이 내게 보여 주는 배려 같은 것들은 누구든 허투루 흉내 낼 수 없는 걔만의 섬세함과 자상함이라는 걸 안다. 그건 걔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닿을 수밖에 없는 것들.

‘형, 저 저번에 형 룸메 하는 분 카페 갔는데 쿠폰 두 개나 더 찍어 줬어요. 벌써 두 번째임. 이거 저랑 친해지고 싶다는 싸인 맞죠?’

‘아, 강재균 개오바…. 난 세 개씩 더 찍어 주거든. 저번엔 감사해서 샌드위치 두 번 더 시켜 먹음….’

‘그럼 결국 세 개 시켜 먹긴 한 거네….’

‘뭐, 씨발놈아.’

‘뭐가 됐든 우리가 형이랑 친해서 그런 것 같은데, 감사하다고 좀 전해 주세요. 제가 먹을 거에 약한 거 또 어떻게 아시고… 제 형 컬렉션에 넣을까 봐요. 이왕 한집 사는 사람들인데 같이 넣어 버리지 뭐.’

아까 술자리에서 재균이와 수진이가 전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저번 주 주말, 밥을 먹으며 지나가듯 둘에 대해서 물어보던 남한결의 무심한 얼굴을 떠올린 난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애들한테 자랑도 했다. 걔가 내 소꿉친구고, 요리도 잘하고, 몸도 좋고, 등등.

아, 그리고 걘 기억력도 좋아. 내가 기억 안 나는 어릴 적 이야기도 곧잘 기억하고, 내가 한번 한 말은 까먹지도 않는 것 같아. 대박이지 않냐.

칭찬을 들은 사람이 나라도 된 것처럼 들떠서 줄줄 늘어놓던 이야기를 남한결한테 줄여 말한 거였다. ‘괜찮은 애’라는 그 네 음절에 담아서.

“물론 같이 살려면 지켜야 할 건 더럽게 많지만.”

농담을 덧붙이며 과장된 표정을 지어 보이고서야, 남한결이 힘없이나마 웃었다. 난 따라 웃으며, 어깨에서 손을 뗐다.

“너랑 이어질 사람이라면 분명히 널 알아볼 거야.”

“…….”

“알아보지 못하면, 그냥… 그 사람은 네 인연이 아니었다고 치자.”

근데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

지금 네가 짓는 표정을 그 사람이 봤다면. 그럼 그 사람은 절대 너한테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할 텐데.

그러나 방금 말했던 것처럼, 그 사람이 정말 남한결과 잘될 사람인 거라면 분명히 그런 애절한 순간을 알아낼 수 있을 거다. 그 시기가 남한결에게는 조금 더 빨리 왔으면 하고 빌었다.

“…….”

남한결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꼭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남한결의 손바닥을 타고, 내가 쥐여 준 꽃잎이 흘러내렸다.

꽃잎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때마침 우리 옆을 지나간 남자의 운동화 옆에 달랑달랑 매달렸다. 오피스텔 앞에 어중간하게 멈춰 서서 마주 보는 우리가 이상했는지 유독 빤한 남자의 시선을 느끼고서야 조금 민망해졌다. 난 머쓱하게 돌아서서는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말할 땐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좀 오글거리네.”

“…….”

“근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우리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요새 젊은이들은 너무나도 많은 순간을 오글거린다는 말과 함께 놓친다더라.”

“…….”

“그냥 그렇다고. 그러니까 너도 오글거려도 ‘이 새끼 오늘 술 먹긴 했구나’ 생각하고 넘겨.”

남한결의 대답을 듣기 전에 걸음을 뗐다. 당연히 뒤에서 따라오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아 뒤를 돌아봤다. 남한결은 우두커니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잠시 기다리다가, 우리가 사는 오피스텔을 턱짓했다.

“가자.”

남한결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기껏 옷도 다 차려입고 나왔건만 남한결은 거실에 없었다. 굳게 닫혀 있는 방문을 보다가 잔상처럼 남은 남한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오늘 같은 날에는 혼자 있고 싶을 수도 있겠지.

난 오늘 밤만은 남한결을 귀찮게 하지 않기로 하고 방에 들어왔다. 시계를 확인하고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던져뒀던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미미한 진동이 계속 울리고 있는 걸로 보아서는 메시지 알림인 듯했다. 난 하품을 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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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잠만 이거내폰아닌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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