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31)

“아무래도 내가 주휴 수당을 너무 잘 챙겨 준 모양이지?”

“…….”

“비행기 티켓값이 장난이야, 인마? 취소했다가 다시 끊었다가 또 위약금 물고.”

내 앞으로 음료를 밀어 준 김재경이 툴툴댔다. 허리에 두른 앞치마에 손을 문질러 닦으며 내가 보고 있던 노트북을 힐긋대는 얼굴이 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지 알만해서, 난 삐뚜름한 말을 받아치는 대신 보고 있던 노트북을 덮었다.

김재경의 뒤의 유리창을 통해 카페의 내부가 훤히 보였다. 방금 날 따라 야외 테이블에 앉은 사장 때문에 카운터에는 알바생 한 명만 혼자 남았다. 난 김재경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뒤에 있는 알바생을 턱짓했다.

“혼자 둬도 돼?”

“어. 본인이 혼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고. 사실 아까 뭐라도 도와줄까 싶어서 옆에 서 있었더니 그걸 더 불편해하는 눈치길래 그냥 나왔어.”

지켜보고 있자니 김재경의 말뜻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주문을 받자마자 뒤돌아 빈 컵을 찾고 음료를 제조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여행으로 비는 내 자리를 채울 겸 뽑은 알바생이라고 들었는데, 과거 여러 카페에서 일해 본 경력자를 뽑았다더니 과연 그래 보였다.

커피를 제조하고, 진동 벨을 울리기 위해 숫자를 입력하고, 곧 카운터로 걸어온 손님에게 커피를 내미는 일련의 행동들을 바라보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네.”

“아무렴. 어떤 손님만 들어오면 정신 팔려서 실수 연발하는 알바생보다는 낫겠지.”

“…….”

“주라는 진동 벨은 안 주고 직접 서빙을 나가질 않나. 쿠폰을 10개씩 찍어 주질 않나. 하루는 밖에 지나가는 놈 넋 놓고 보다가 접시를 깨 먹고.”

과장되게 말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꼽는 김재경은 가만히 두면 밤새 이 이야기를 할 기세였다. 주의를 돌리기는커녕, 결국엔 원점이었다.

방금 김재경이 이야기한 것들이 죄다 이로빈과 관련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생각해 보니까 웃겼다. 난 피실 흐르는 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 김재경에게 물었다.

“형 나 왜 안 잘랐냐, 진짜.”

나야 이로빈에게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발버둥이었다지만, 친한 동생이라고 알바를 턱 맡긴 김재경은 그 꼴값들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웃으려 한 말인데 뱉고 보니 자조가 깊이 박혀 있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건 나뿐만이 아닌 듯, 날 보는 김재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연히….”

“…….”

“얼굴 때문이지. 그거 말고 너 뭐 예쁘다고 내가 그 손해를 감수하며 카운터에 세워 놔.”

“…그래서 손해보다 이익이 크긴 했고?”

“어허, 어디 사장님의 수익까지 알려고. 그런 건 다 극비 정보야.”

능구렁이 같이 웃은 김재경이 엄지와 중지를 붙인 채로 다가왔다. 꿀밤을 놓으려는 모양이었다. 귀찮아서 피하려다가 마음을 바꾸고 한 번 맞아 줬다. 한 학기간 불량 알바생을 데리고 있었던 사장님이라면 꿀밤 한 대 정도는 고플 것도 같아서.

따닥. 김재경이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손을 거두는 것을 보다 몸을 물렸다. 이마를 대충 문지르다 시선을 느끼고 앞을 봤다. 김재경이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월급 좀 더 넣었다, 이번 달에.”

“…쓸데없는 짓 했네, 또.”

“그래. 돈 많은 새끼한테 용돈 주는 거 쓸데없는 짓 맞는데.”

“…….”

“사장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 치고 받아. 접시값이랑 쿠폰값 빼고도 남는 금액만 넣은 거니까.”

어깨를 으쓱한 김재경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친한 형이라는 사심도 조금 넣었고.”

가끔은 김재경이 내 친형보다도 더 형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열일곱 살부터 쭉 그랬다. 새하얗게 질린 날 발견한 김재경이 처음 해 준 말이 생생했다.

‘야. 이 애새끼야.’

‘…….’

‘너 밥은 먹었냐?’

생각해 보면 지도 그땐 어렸으면서. 김재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 앞에서 어른인 척하기 도사였다.

난 김재경의 시선을 피하며 앞에 놓인 음료를 들었다.

“…뭐 사 올까.”

“뭘 사 와.”

“뭐든. 지금 생각 안 나면 나중에 메시지라도 보내. 사 올게.”

“두 달 뒤에? 됐네요. 그리고 네가 먼저 출발한다고 지금 잊은 모양인데, 나도 다음 주에 미국 가거든. 유럽에 있는 건 미국에도 다 있어 인마.”

당연히 아메리카노일 줄 알았는데, 입에 넣은 순간 인상을 찌푸릴 만큼 달았다. 난 인상을 찡그리며 김재경을 응시했다.

“형 진짜 미국 가?”

“그럼?”

“아무리 사랑에 미쳐도 그렇지 개업한 지 세 달 된 카페를 한 달 동안 비우는 사장이 어디 있냐, 대체.”

습관처럼 잔소리하다 말고 날 빤히 보는 김재경의 시선에 멈칫하고 말았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로 김재경이 조용히 물었다.

“네가 할 말이냐.”

내 무덤을 내가 파고 말았다. 더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깨달음이 뒤통수를 은근하게 압박했다. 김재경은 보채는 대신 가만히 날 기다렸다. 그래도 참을성이 없는 김재경답지 않게 이번엔 꽤 인내심을 발휘한 편이었다.

비에 꼴딱 젖어 집 앞에 선 나를 보면서도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줬고.

‘형. 제발.’

‘…….’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마.’

처량하게 지껄이는 나에게 말없이 수건만 던져 주고 더는 묻지 않았다. 결국 응급실을 다녀오던 순간마저 왜 그렇게 비를 맞고 왔냐는 말은 안 했다. 그럴 줄 알고 간 거였지만, 정말 그래 줘서 고마웠다. 입을 연 순간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마구 쏟아질 것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던 거라서.

난 잔의 표면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반도 먹지 못한 초코라테 위로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은 그 짧은 순간에조차 내 온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형.”

“왜.”

“이럴 줄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이로빈이?”

놀라지도 않고 되묻는 김재경은 세 달 만에 처음으로 이로빈의 이름을 제대로 불렀다. 한 학기가 지나서야 온전하게 이름이 불렸다는 걸 안 이로빈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졌다가, 그 짧은 새에 걔를 또 떠올리고 만 게 씁쓸해서 웃었다.

“아니, 내가.”

“…….”

“하루에도 미친놈처럼 기분이 널뛰어. 좋았다가, 다음 순간은 죽고 싶고. 걔가 뭘 해도.”

“…….”

“심지어 뭘 안 해도.”

살면서 좋아해 본 사람이라고는 이로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본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죽을 것 같은 게 흔한 일인지.

무의식적으로 짝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안으로 굴려 봤다.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 내가 이로빈을 사랑하는 일.

“그래도 괜찮았거든. 옆에서 보기만 해도 좋겠다 싶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같이 산다고 그러면 그 사실만으로도 좋아서 죽을 것 같았을 텐데.”

나만 이로빈을 사랑하는 일.

그건 마치 벽에 대고 지르는 고함 같았다.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봤자 그 벽을 넘지 않는다면 들리지 않는 말들. 내가 하는 말은 나에게 돌아오고, 넌 그 벽 너머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웃고.

표면에 배어 있던 물이 손가락 끝을 축축하게 물들였다. 마치 그날 우산 밑에서 나란히 젖어 있던 우리처럼.

“그날. 처음으로 원망했어.”

“…….”

“내가 가지 말라 한 건 처음인데, 왜 나한테는 그 처음도 없냐고 묻고 싶었어. 욕심낸 거 처음인데, 한 번쯤은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되냐고 따지고 싶었어.”

이로빈한테 그 말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걘 그 말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같이 사는 것뿐인 남자애가 갑자기 자기한테 그 한 번을 양보해 달라고 하면, 그 한 번이 절박하다고 이야기하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실소가 흘렀다. 멍청했고, 멍청하고, 앞으로도 멍청할 것이다. 걔 앞에서는 늘 그렇게.

난 김재경과 눈을 맞췄다. 그래도 나처럼 멍청했던 20대를 가진 김재경은 이 말을 듣고 날 혼내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알아서.

“나 우산 있었어.”

“…….”

“걔랑 쓰고 싶어서 없다고 거짓말했고, 그것도 모르는 걔가 나 먼저 가라고 우산 준다는데 싫다고 하면서 굳이 우산 쥐여 준 거야.”

“…등신.”

당연하게 넘어온 질책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속상해하는 얼굴에 대고 마저 고백했다.

“그날. 응급실 갔다가 새벽에 집에 들어갔는데… 걔가 거실에 있는 거야. 기다렸대. 걱정돼서. 잠도 못 자고.”

“…….”

“근데 내가 그 얼굴에 대고 뭐라고 한 줄 알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따끔거렸다. 저번 주에 본 이로빈의 얼굴이 가슴을 할퀸다. 조심해야 하는 건 나인데, 그 잠깐을 못 참아서 이로빈으로 하여금 그 말을 하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상처 주려고.”

“…….”

“신경 끄라 했어. 평범한 룸메이트는 그런 짓 안 하니까 적당히 좀 하라고.”

그 새벽, 악착같이 벽을 타고 올랐다. 그리고는 벽 너머에 있는 너한테 소리쳤다. 근데 이상하지. 이제는 벽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내가 오른 벽을 타고 흘러 다시 나에게 꽂혔다.

‘평범한 룸메이트끼리는 그런 거 안 해.’

이로빈, 그거 알아?

너랑 평범한 걸 하고 싶지 않은 날 너무나도 잘 아니까, 나는 그 평범함이 절실한 거야.

‘걱정돼서 잠 못 자고, 밤새워 가며 기다리고,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라고 껴안고 그런 거.’

‘…….’

‘다 안 한다고.’

지구 어딘가에는 룸메이트란 이유로 그런 걸 하는 사람도 있겠지. 근데 너랑 난 안 돼. 왜냐면 내가 그 순간을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괜찮으니 들어가서 자라고 쿨한 척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널 좋아하니까.

주석처럼 덧댄 말들을 문에 기댄 채로 혼자 꾸역꾸역 삼켰다. 이로빈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이내 옆 방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김재경이 보란 듯 인상을 썼다. 늘 달고 다니는 미소마저도 지운 채로 날 혼내는 얼굴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그 정도면 그냥 고백해. 고백하고 끝장 보라고.”

“…….”

“너 그거 걔한테도 못 할 짓인 거 알지. 걘 무슨 죄야. 냉정하게 보면 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있는 거야. 지금도.”

틀린 말은 아닌데, 그에 대한 대답조차 바로 떠올라서 슬펐다. 난 덤덤히 김재경과 눈을 맞췄다.

“…그러고 싶어.”

“그럼 해.”

“못 해. 걜 알아서.”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다시 만난 네가 그때랑 달랐다면. 조금만 덜 다정하고 그만큼 더 나에게 낯을 가렸다면. 그럼 나도 차라리 고백하고, 멋없게 차이고, 그러고 말았을 텐데.

다시 만난 이로빈은 어쩜 그리도 내가 알던 모습과 똑같은지.

난 시선을 떨어뜨렸다. 손을 괜히 쥐었다 펴 봤다. 한때 이 손에 잡혀있던 것들을 떠올리며. 그건 이로빈의 손일 때도, 이로빈에게 건네고 싶은 군것질거리일 때도 있었다.

“형. 내가 어렸을 때, 아몬드가 박힌 초콜릿을 되게 좋아했었거든. 그때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만 파는 불량 식품 초콜릿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맛있는 거야. 그래서 맨날 하굣길마다 하나씩 사 먹었어. 난 너무 그 초콜릿이 좋고 맛있으니까, 이로빈한테도 주고 싶어서 꼭 한 개씩 더 샀거든. 둘이 맨날 그거 까먹으면서 집에 걸어오고 그랬어.”

“…….”

“근데 어느 날 이로빈이 학교에 안 나온 거야. 하루 종일 수업에 집중도 못 하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울면서 ‘로빈이가 아프대’, 이랬더니 엄마가 그러시는 거야. 이로빈이 병원에 갔다고.”

헛웃음을 흘리며 난 김재경의 시선을 피해 중얼거렸다.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져서 그랬대.”

“…….”

“알고 보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레르기가 있었더라고. 아몬드에.”

근데 걘 그걸 알면서도 먹은 거야. 내가 좋아하니까. 자기가 안 먹으면 내가 섭섭해 할까 봐. 어렸을 때 내가 그랬거든. 이로빈이 뭘 하는 걸 봐야 안심하고 따라 하고, 이로빈이 좋다고 하면 다 좋은 줄 알고.

“형, 이로빈은 그때랑 똑같아.”

“…….”

“내가 걜 좋아한다고 하면.”

“…….”

“걘 그 순간부터 날 이해하려고 할 거야.”

짝사랑하는 사람을 잘 안다는 건 행운보다는 불행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난 내 고백을 들을 이로빈의 표정까지도 생생히 그릴 수 있었다. 충격받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어색하게나마 내 눈치를 볼 그 무해한 얼굴을.

두 손 사이에 얼굴을 파묻는 이 순간마저도 걔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걘… 그냥 그런 애라고.”

말을 마치고 확인한 김재경의 표정이 심각해서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나오냐?” 묻는 얼굴에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의 청중을 상대로,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처럼 결론이 술술 흘러나왔다.

“나 이번 해까지만 걔랑 살려고.”

“…….”

“어차피 엄마도 내가 다시 미국에 들어오길 바라시고.”

“왜 이번 해까지야. 갈 거면 빨리 가지.”

“…집 계약도 마음에 걸리고.”

“듣자 듣자 하니 별걱정을 다 하네. 올 때마다 옆에 다른 친구 끼고 오는 놈이 갑자기 너 나간다 해서 룸메이트 구하기가 힘들까?”

“…….”

“너 걔 걱정하는 거잖아. 갑자기 간다고 하면 상처받을까 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날 본 김재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답을 이미 눈치챘으나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하나만 해라, 하나만. 아예 도망갈 거면 도망을 가든지, 걔가 네가 갑자기 도망간다고 해서 상처받을 거 같으면 처음부터 상처를 주지 말든지.”

“…잠시야 속상할 수 있대도 나아질 거야.”

“…….”

“괜찮을 거라고, 걘.”

이로빈이야 괜찮을 테고, 나만 잘하면 된다.

이렇게 멀리 다녀오면 그래도 좀 나아질지 모른다. 예전처럼 얼굴을 못 보던 때로 잠시라도 다시 돌아가 보면, 얼굴만 보는 거에도 감사하던 그 시절처럼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걔 앞에만 서면 매 순간 끓어넘치는 마음을 조금 억누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난 고개를 들어 카페의 전경을 훑었다. 말없이 날 보는 김재경이나, 얼음이 다 녹아 밍밍해진 음료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바람이나.

이로빈을 피해 도망쳤던 그때와 같지만 다른 풍경 속에서, 난 또 한 번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그냥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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