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처음 본 곳은 네 방이었다.
‘이모한테는 한결이랑 나이가 같은 아들이 있는데, 지금은 잠깐 심부름 갔거든? 곧 돌아오니까 그때는 같이 놀 수 있을 거야. 재미있겠다. 그치?’
10분 전에 본 자신을 서슴없이 이모라 친근하게 칭한 여자는 낯을 가리는 날 굳이 제 아들 방 침대에 앉혀 놓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상냥한 말투와 거침없는 실행력에 어느덧 난 파란색 로봇이 그려진 이불 위에 앉아 있었고, 살짝 열린 문으로 들려오는 엄마의 낯선 웃음소리는 내가 방 밖으로 나서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하필 그날 내가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마취가 덜 깬 몽롱한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렸던 난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름조차 모르는 타인의 방 안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을 정도로 사교성이 좋은 아이가 아니었기에.
‘…….’
그러나 그날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이뤄진 이상한 하루였으며, 내 또래 남자아이의 방은 언뜻 보아도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었고, 그 엉망진창의 풍경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난 뻘쭘하게 눈을 굴렸고, 주인 없는 방을 찬찬히 훑기 시작했다.
방 가운데에 깔린 러그 위의 기차놀이 세트가 보였고, 책상 위에는 쓰다 만 것처럼 펼쳐진 일기장과 형형색색의 색연필이 놓여 있었으며, 침대 옆 책장에는 삐죽빼죽 제멋대로 꽂힌 책들이 보였다. 얼굴조차 보지 못한 방 주인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흔적을 따라 다섯 번쯤 눈을 굴리다 보니 알아챘다.
기차놀이는 기차가 한 바퀴를 다 돌기 전까지 보는 것만 좋아하고, 일기를 쓸 때는 오늘의 날씨를 적기 전에 글부터 적고, 책 모서리가 닳고 책장에서도 삐죽 혼자 튀어나오게 할 정도로 <정말 웃겨! 깔깔 유머집!>이라는 만화책을 자주 보나 보다.
하나도 안 웃겨 보이는데….
만화책 제목을 심각하게 노려보고 있던 난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녀왔습니다!’
우당탕탕.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그 소리가 커서인지 뒤따르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뒤늦게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쏜살같이 방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 남자애와 눈이 마주치는 게 더 빨랐다.
‘어?’
날 발견하고 눈을 둥그렇게 뜨는 남자애의 머리 위에 걸린 벗다 만 보호용 헬멧을 본 나는 방금 현관문에서 들린 큰 소리가 자전거가 넘어지는 소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 대해서는 물어볼 시간조차 없었다. 난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그 아이에 놀랐고, 다음 순간 내 어깨를 붙잡은 환한 얼굴에 시선을 뺏겼다.
‘너구나! 이사 온다던 친구가!’
사전 정보도 없이 이곳에 던져진 나와 달리 얼추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첫 만남인데 마치 기다렸던 사람을 만난 듯이 내 어깨를 꼭 잡아 고정한 채로 눈을 휘는 얼굴이 반가워 보였다.
가까이서 서니 나보다 키가 큰 걸 알 수 있었다. 눈높이가 조금 엇갈렸다고 느낀 순간, 걔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 우리!’
당연히 맞잡아 줄 거라 믿는 듯 덜렁 내민 손부터 그 와중에도 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은, 눈앞의 아이가 한 번도 거절당해 본 적 없다는 느낌을 풀풀 풍겼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남과 손도 쉽사리 잡으려 하지 않던 내가 순순히 손을 내민 이유 역시 그걸 깨트려서는 안 되겠다는 본능 때문이었을 거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마주 잡은 손을 아래위로 출렁출렁 흔들던 남자애는 곧이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름이 불려서라는 건 한 박자 늦게야 알았다.
덩달아 고개를 돌리던 나는 뒤늦게 열린 문 사이로 우리를 흐뭇하게 보고 있던 엄마들을 발견했다.
‘이로빈. 엄마가 뭐 사 오랬지?’
장난스러운 얼굴로 들고 있는 봉지를 흔들어 보이는 여자를 발견한 순간, 앞의 남자애가 그때까지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뒤로 완전히 몸을 돌렸다.
‘소금!’
‘잘 생각해 봐. 엄마가 정말 그렇게 얘기했어?’
‘…설탕이었나?’
‘설탕이었지.’
듣다 보니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았다. 괜히 내가 눈치를 봤는데, 심부름을 잘못한 남자애는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다시 사 올게!’
그때까지도 삐뚤게나마 쓰고 있던 헬멧을 고쳐 쓰며 나갈 준비를 하는 남자애나, 그런 아들을 보면서 씩 웃고는 지갑에서 자연스레 돈을 꺼내 건네주는 그 애의 엄마가 신기했다.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풍경과 분위기였다.
돈을 건네받아 주머니에 넣은 그 아이가 나가는 것까지 지켜보던 나는 또 한 번 갈색 눈과 마주쳤다. 현관으로 나가다 말고 무언가가 기억난 것처럼 뒤돈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망설임 없이 물었다.
‘너도 갈래?’
씩 웃으며 묻는 얼굴은 이번에도 거절당할 거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애는 그때부터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응.’
앞으로도 내가 자신을 거절할 일은 없으리라는 사실을.
아들의 성정을 익히 아는 엄마가 놀라운 눈빛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난 그 아이가 내민 손을 잡았고, 그 아이가 벗어서 건네어 준 헬멧을 썼으며, 집 앞 두꺼비 마트에서 설탕을 사고 남은 오백 원으로 새콤달콤을 사 나눠 먹었다.
치과 선생님이 오늘은 군것질하지 말랬는데.
하필 새콤달콤에는 캐러멜이 7개 들어 있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한테 4개를 뚝 떼어 준 그 아이를 거절할 수 없었던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딸기 향을 한가득 물고는 집으로 돌아왔고, 돌아오는 내내 입 안으로 캐러멜 대신 그 남자애의 이름을 굴렸다.
이… 로빈. 이로빈. 이로빈.
그게 한평생 물고 지내야 할 이름일지도 모르고.
***
익숙한 냄새에 잊지 못할 방이었다. 눈을 뜨니 네가 있는 것까지도 그랬다.
코앞의 다갈색 눈을 바라보던 나는 눈을 깜박였다.
“…깼어?”
지나치리만큼 현실성이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 속닥대듯이 묻는 네 모습이 낯설었다.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문 사이, 네가 손을 뻗어 내 뒷머리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다행이다. 로운이 깨우다가 너 깨울까 봐 걱정했거든.”
“…….”
“눈떴는데 내가 옆에 없으면 놀랄 것 같아서.”
뒷머리로 손을 옮겨 내 귀를 만지작대면서, 말을 이어 나가는 목소리가 다정했다. 시계를 확인한 이로빈이 아래로 손을 뻗어 이불을 끌어 올려 줬다.
“조금만 기다려 줘. 좀 시끄러울지도 모르니까 귀는 꼭 막고.”
사부작대는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그게 귀 위로 이불을 덮어준 이로빈 때문이라는 걸 한 박자 늦게 알았다. 침대 옆에 쭈그려 앉아 있던 몸을 일으키는 이로빈을 따라 멍하니 시선을 올렸다.
몸을 일으키다 말고 슬쩍 아래를 내려다본 이로빈과 눈이 마주쳤다. 멈칫하다 말고 둥글게 휘어지는 눈. 피식 웃은 이로빈이 몸을 아래로 굽혔다.
“아, 귀여워.”
얼굴이 가까워졌다. 스킨 향과 더불어 옅은 치약 향이 느껴질 정도로.
난 이번에도 아무런 행위조차 하지 못하고 가만히 멈춰 있었다. 쪽. 쪽. 광대며 볼 부근에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는 입술이 선사하는 행위를 감히 무어라고 정의할 수가 없어서.
이로빈은 그러고도 한참을 더 내 볼에 제 볼을 붙인 채로 가만히 있다가 이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와. 이러다 나 로운이 지각시키겠다. 잠깐만. 나 진짜 금방 올게! 자고 있어도 돼.”
그 말을 남긴 채로 이로빈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난 이로빈이 방금 전까지 날 내려다보고 있던 자리를 쳐다보다가, 이불 아래 있던 손끝을 움직여 봤다. 어느새 주먹을 말아 쥐었던 모양인지 손톱에 눌린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서서히 손을 들어 방금 이로빈의 온기가 묻었던 볼 위로 얹었다. 따뜻했다.
쾅- 쾅-
정체불명의 큰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무언가가 시끄럽게 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 나고서야 난 이게 이로빈이 경고했던 소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참을 귓전을 두드리는 소리 다음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티격태격 싸우는 목소리들이 익숙했다.
“내가 냄비 두드리는 소리로 깨우지 말랬잖아.”
“형도 아침부터 주걱으로 냄비를 두드리고 싶진 않았어. 근데 안 그러면 네가 안 일어나잖아.”
“…진짜 짜증 나.”
“그래? 형 오늘 서울 올라갈 건데… 로운이는 울산까지 내려와서 깨워 준 형한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짜증 난다는 거구나….”
목소리들이 가까워진다 싶더니 이내 문 앞에 멈춰 섰다. 난 문가를 돌아보지 못한 채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한결이 형도 오늘 가?”
“한결이 형 온 건 언제 봤어?”
“어제 다녀왔다고 인사하려고 형 방문 열었는데 둘이 껴안고 자고 있던데.”
“그랬어?”
“어. 근데 형은 참 잠버릇이 안 좋은 것 같아.”
“…형이?”
“같이 자는 사람 숨도 못 쉬게 꼭 안고 자는 버릇 좀 고쳤으면 좋겠어. 한결이 형도 힘들어 보였어, 어제.”
잠깐의 침묵 후에 이로빈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말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알았으니까 얼른 신발 신어. 여기 용돈 줄 테니까 아침은 가다가 토스트 사 먹고.”
“알았어.”
“엄마 저녁에 오실 거야. 출장 다녀오셔서 피곤하실 테니까 말썽 부리면 안 돼.”
“응. 아, 근데 형.”
“응.”
“한결이 형 올라갈 때 껌 좀 줘.”
“껌?”
“형 저번에 여기 왔을 때 엄청 사 놨잖아. 그거 거실 서랍에 쌓여 있어.”
난 귀를 가리던 이불을 아래로 젖혔다. 상체를 일으키고는 문가를 돌아봤다. 문가를 지나친 모양인지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관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이제 한결이 형은 껌 안 줘도 될걸?”
“왜?”
“한결이 형은 이제 껌 말고 다른 게 더 좋대.”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도어 록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형이니까 알지.”
“뭐라는지 못 알아듣겠어. 나 갈래.”
여전히 잠기운이 묻은 목소리로 이로빈의 동생이 퉁명스럽게나마 인사를 했다. 엉덩이라도 두드려 준 모양인지 팡팡, 하는 둔탁한 소리와 짜증을 내는 목소리, 그리고 이로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귓가를 흘러 지나가는 것 같은 문장들을 들으며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나를 둘러싼 사면의 공간을 훑었다. 기차놀이 세트도, 쓰다 만 일기장도, 제멋대로 책이 꽂힌 책장마저도 없는 방을. 이제 그 자리에는 운동 기구와 큰 모니터가, 그리고 한때 네가 입고 다녔던 도복이 있었다. 온통 낯선 것들이었다.
“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왜 더 안 잤어?”
성큼성큼 방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널 보기 위해서.
“냄비 소리 때문이지?”
“…….”
“좀 봐주라. 로운이가 엄마 목소리 아니면 정말 잘 안 깨거든. 저번에 우리 아빠는 로운이 깨우려고 빨래판을 무슨 기타 치듯이….”
이 방에서 익숙한 거라고는 날 보며 씩 웃는 너밖에 없다는 사실은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너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된 정보가 있어야 꿈에 나타나는 네 모습이 바뀌었다. 너를 둘러싼 환경도, 네 모습조차 그랬다. 지금은 달랐다. 네 새로운 방을 본 적이 없었음에도 모든 건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에서 바뀌어 있었다.
그 사실은 내게 넌지시 일러 주는 것만 같았다.
이건 더 이상 꿈이 아니라고.
네가 지금 껴안을 수 있는 그 아이는 더는 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결아.”
떨리는 손으로 널 붙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순순히 끌려온 이로빈이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어깨에 볼을 누른 채 나만 들을 수 있도록 중얼거리는 네 목소리가 처음으로 생생했다.
“우리… 집에 갈까.”
네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숨을 들이쉬었다. 자꾸만 가빠지는 호흡과, 당장이라도 풀릴 것 같은 다리를 지탱하고 서 있으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축축해지는 어깨를 모른 척 내 등을 쓸어내려 주는 너와 드디어 같은 순간에 있기 위해서.
“우리 집으로 갈까.”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열일곱 살 때부터 이어진 달콤한 악몽 속에서 내가 한 번도 빌지 못했던 것을 빌었다.
제발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제발.
***
“재균아.”
“네.”
“나는 왜 4학년일까.”
전공책에 머리를 박고 있던 재균이가 고개를 들었다.
“…너무 대중없는 질문이라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뜬금없는 서론을 이해하지 못한 듯 둥근 눈을 끔벅대는 얼굴을 보다 30분 넘게 쓰는 척만 하던 펜을 내려놨다.
“왜 난 하필 이 시기에 4학년이어서 시험 기간에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해.”
재균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억울함을 어필하기 위하여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밥도 못 먹고.”
“무슨 소리예요. 카페 오기 전에 저랑 밥 먹고 왔잖아요. 그것도 두 그릇이나 먹었으면서.”
남한결이랑 못 먹었잖아.
“집에도 못 가고.”
“형이요? 어제 도서관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집에 가야 한다고 뛰쳐나간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남한결이랑 같이 못 가잖아.
“놀지도 못하고.”
“…형 지금 저랑 하는 잡담이 공부가 아닌 건 알죠?”
남한결이랑 못 놀잖아.
붙이는 주석마다 무시를 당한 재균이가 헛웃음을 치는 걸 보면서도 그에 신경을 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선은 지난 30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카페의 커다란 문과 카운터를 훑었다. 여전히 남한결은 없고, 찾지도 않은 김재경만 카운터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난 멀리 보이는 카운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재균아, 우리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한 시간 됐나? 그건 왜요?”
“뭐? 이제 겨우 한 시간 됐다고?”
차마 재균이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확인한 손목시계는 정말 우리가 카페에 앉은 지 한 시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음을 알렸다. 남한결이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까지는 여전히 한 시간이 넘게 남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와… 시간이 이렇게 안 가냐.
막막한 심정으로 들여다본 핸드폰에는 두 시간 전에 온 남한결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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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결: 응 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