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31)

형은 아버지랑 닮았다. 본인은 인정하고 싶지 않대도 사실이 그랬다. 어떻게든 주류에 머무르기 위해 쉴 새 없이 발버둥을 치는 것부터,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부터가. 모두의 앞에 서 있기 위해서는 옆을 돌아봐서도, 무리를 이탈해서도 안 됐다. 그래서 형은 늘 누군가가 그어 놓은 선 안에서만 살았다.

그나마 다른 걸 꼽자면 형은 아버지보단 정이 많았다. 꼴에 하나 있는 동생이라고 아버지의 성마른 질책 앞에서 날 감쌀 줄 알았다. 나는 머리가 클 때까지, 내 앞을 막아선 형의 등을 여러 번 목격했다. 이유야 매번 달랐대도 날 어떻게든 보호하고자 하는 이유는 같았다.

‘안녕.’

‘어….’

‘김재경. 맞지?’

‘…아. 네가 남한결 형이야?’

‘응, 미국에서 있는 동안은 네가 형이나 다름없었다며. 이놈이 웬만해서는 그런 이야기 잘 안 하는데, 네 이야기는 종종 들어서 기억하고 있지.’

‘…….’

‘고마워서 밥이라도 살까 하는데, 시간 돼?’

어색함이 잔뜩 묻은, 그래도 되나 하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날 돌아보는 김재경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어야 했던 걸까.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엉망진창의 꼴로 내 앞에 주저앉아 우는 김재경을 보고서야 그날을 후회했다.

나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이어졌던 우정은 남한별의 여자 친구 소개를 견디지 못한 김재경의 항복 선언으로 끝이 났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고백을 듣던 남한별은 그 말만을 반복했다고 한다.

재경아, 네가 무슨 소리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돼.

그럴 만도 하지, 생각이나 했겠는가. 같은 거 달린 놈이 저를 좋다고 할 줄은. 그건 남한별의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셋이 있던 단체 메시지 방은 더는 울리지 않았다. 김재경은 한동안 나조차 보지 않으려 했다. 미안한데 날 보면 형이 생각나서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심지어 형과 나는 별로 닮지 않은 편인데도 그랬다. 끝 글자 하나만 다른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날 보는 핼쑥한 얼굴에 대고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결국 죽만 건네주고는 집에 돌아왔다.

돌아온 집에는 형이 있었다. 형은 이상하게도 김재경과 그렇게 되고 나서는 날 더 많이 찾았다. 가끔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물었다.

재경이는 잘 지낸대? 재경이는. 그거 재경이 주려고 산 건데 내 연락을 안 받아서. 네가 줄래?

웃기는 건 내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 때면 형도 입을 다물었다는 거다. 그 이상으로 날 재촉할 수는 없다는 걸 아는 듯이.

둘을 따로 보는 게 익숙해질 무렵, 입대 날짜가 나왔다. 1년간 그렇게 기웃대고서도 이로빈의 얼굴조차 한 번 보지 못한 내가 학교에 미련이 있을 리 만무했다. 뒤늦게나마 동생을 챙기고 싶은 형만 집에 들르는 횟수가 잦아졌다.

‘어머니한테 들었는데 로빈이도 같은 학교 다닌다며. 군대도 너랑 비슷하게 입대할 거라고 들었는데.’

‘…….’

‘연락처 받았는데 줄까? 군대 가기 전에 둘이 얼굴이라도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여느 날처럼 밥을 먹다가 나온 이로빈의 이야기에는 도통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 없었다. 쪽지에 적힌 열하나의 숫자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쪽지를 보지 않아도 숫자를 욀 정도로 보고 또 봤다. 겨우 저장을 해 놓고는 차마 연락하지 못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용기는 없고, 널 보고는 싶은. 정문으로 들어서는데 옆에 붙은 편의점에 시선이 꽂혔다. 호빵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는데 웃기게도 네 생각이 났다.

네가 피자 호빵 좋아했는데.

어떻게 보면 지독한 기억력이었다. 네게 한해서만 그랬다. 오랜만에 연락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면서도 너에 대한 건 하나도 잊지 못했다는 데 헛웃음을 지으며 결국 호빵을 샀다.

하얀 포장지 속 호빵을 보니까 담배가 당겼다. 이름조차 기억 안 나는 담뱃갑을 뜯으며 정문 옆에 붙은 흡연 공간으로 발을 틀었다. 미대 건물과는 멀어서 몇 번 발을 들인 기억도 없는 곳이었다. 학교 학생회가 미화를 위해 만든 공간이라고 그토록 홍보해 댔던 곳답게 자체적으로 마련한 흡연실치고는 깔끔했다. 네모나고 반듯한 유리창의 문을 열고 발을 들였다.

그리고….

‘아냐.’

그곳에 네가 있었다.

‘내가 미안. 응.’

거짓말 같았다. 참석할 생각도 없던 과 행사에 따라가고, 실습실과는 거리가 먼 네 단과대 건물 앞을 서성이고, 별 지랄을 다 해도 털끝만치도 보이지 않던 네가 앉아 있었다. 내가 이곳으로 들어오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버리지는 못하고 들고 온 호빵 봉지가 부는 바람에 흔들렸다. 문 가까이에 있던 남자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날 흘끔댔다. 문을 잡은 채로 가만히 서 있기만 한 내가 이상해서 그런 걸 아는데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 안의 모든 세포가 네게만 반응하는 것 같았다. 흡연실 구석에 앉아서 롱패딩을 껴입고 모자까지 푹 눌러쓴 네가 단 일 초 만에 날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았다.

‘왜. 안 만나게?’

‘이 꼴을 하고 어떻게 만나.’

말을 쉬었다 뱉는 숨소리까지 내가 아는 너와 같았다. 숨이 막혀서 널 보고 있는데 네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게 열린 문 때문이라는 건 한 박자 늦게 알았다. 그제야 움직일 수 있었다. 차게 언 손으로 문을 닫고는 흡연실 안으로 들어섰다. 가진 온갖 용기를 끌어모아 네게 가장 가까이 있는 재떨이 주위에 섰다.

그제야 시야가 트여서 네 주위가 보였다. 불량한 자세로 담배를 문 우리 또래의 남자 하나가 내 옆에 앉아 네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너와 같은 롱패딩을 입고 있는 걸 보니 같은 과인 것 같았다.

‘왜. 여친이 속상해할까 봐?”

가벼운 말투에 인상을 찡그릴 새도 없이 심장이 쿵 떨어졌다.

‘엉, 뭐… 저번에는 울더라고.’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이 흘러나오는 네 목소리를 듣는데, 담뱃갑을 쥐고 있던 손이 자꾸 헛손질했다. 그 순간마저도 네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하긴, 씨발, 지금 이렇게 터진 얼굴 보면 울기만 하겠냐. 당장 그만두라고 하겠지. 저번에 성재 여친도 과 생활 안 하면 안 되냐고 그랬다더라. 이런 거 지켜보다가 자기가 죽을 것 같다고.’

‘…….’

‘야, 로빈아 근데. 너도 한 번만 숙여 주면 안 되냐? 솔직히 김성욱 그 새끼는 분명 네가 숙이는 척만 해 줘도 우쭐해서 이렇게까지는 안 할 텐데.’

‘…….’

‘막말로 지금 네가 다른 애들 기합받는 거에 뭐라고 할 군번이나 돼? 누나들이 너 아껴서 그런 거지, 아니었으면 너 이렇게 맞는 데서 안 끝났어.’

이로빈은 대답하는 대신 일어나서 재떨이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껐다. 다가온 놈의 얼굴이 그제야 보였다. 부어오른 볼 하며 터진 입가의 상처를 멍하니 보는데 이로빈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 죄송합니다.’

담뱃재가 튀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예의를 차리듯 고개를 꾸벅 숙이는 놈에게서 나는 향이 익숙했다. 우습게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느 순간부터 날 찾지 않는 널 보며 예상은 했다. 네가 날 잊었거나 아니면 더는 네게 내가 소중한 사람이 아니거나. 방금 네 눈빛에서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확인받았다.

난 네게 부어오른 볼이나 터진 입가를 보여 주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었다는 걸. 심장이 찢겨 나가는 중에도 네 볼과 입가를 보며 얼굴조차 모르는 누군가에 대한 살기부터 느끼는 내가, 네겐 더는 그 누구도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간다.’

‘야! 새끼야! 사람이 진심 담아 말을 하는데 듣지는 않고!’

‘우재야. 적당히 해.’

‘…뭐?’

‘너도 나한테 뭐라 할 군번 아니라고. 네가 같이 처맞기를 했어, 아니면 대들기를 했어. 그래도 난 너한테 뭐라 안 하잖아.’

‘야, 그건… 야! 이로빈!’

‘간다. 술 먹기 싫으니까 연락하지 말고.’

멍한 얼굴의 동기를 내버려 두고 이로빈이 떠났다. 난 이로빈의 동기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로빈의 뒷담을 줄줄 늘어놓다가 떠나는 것까지 지켜보고서야 그곳을 빠져나왔다.

차마 버리지 못해서 들고 온 호빵은 집에 도착하니 볼품없이 식어 있었다. 내가 봉지를 든 채로 문가에 우뚝 멈춰 섰을 때, 이삿짐 상자를 든 형과 마주쳤다. 곧 입대할 내가 며칠 후 형의 집으로 옮겨 둘 짐이었다. 상자 속 삐죽 솟은 긴 스케치북에 시선이 멎었다. 난 더는 어쩌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남한결?’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신발장에 놓인 형의 군화를 보며 읊조리듯 물었다.

‘왜 그랬어.’

평소였으면 무슨 말이냐고 묻고도 남았을 형은 말이 없었다. 난 고개를 들었다. 내게 걸어오던 걸음을 멈춘 채로 그 자리에 돌처럼 굳은 형과 눈을 마주하며, 지난 몇 달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기 위해서.

‘왜… 김재경한테 그렇게까지 했어.’

아무리 김재경이 형이랑 잘될 생각이 없었다지만 그렇게 할 필요까진 없었잖아. 얼굴 보자는 말에 네가 좋아 죽는 그 친구라는 허울은 지켜 주려고 꾸역꾸역 기어 나온 새끼한테 새로 사귄 여자 친구 얘기는 왜 했어. 그렇게 하면 김재경이 고백한 일이 없어지는 것 같았어?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

악의가 없는 누군가의 행위는 오히려 더 잔인한 사실을 확인받게끔 한다. 그 사람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깨달음. 그 사람이 그렇게 사고하기에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의 견고한 세상에 들어갈 수가 없구나 하는 그런 생각.

오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날 지탱하던 세계가 산산조각 났다. 그래도 내 사랑에서는 내가 주연이었는데, 네 사랑에서 나는 행인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닫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가….’

‘…….’

‘내가 이러고 있는데.’

목적어가 없는 내 말에 형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마치 김재경의 고백을 들었을 때 그러했을 것처럼.

‘이, 개새끼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형이 그렇게 아끼고 어떻게든 보호하려 드는 동생이 지척에서 이런 머저리 같은 짓을 하고 있는데.

따지자면 화풀이였다. 대상은 없었는데, 형은 그 자리에 있었기에 내 분노를 받아 내야만 했다. 형은 끝끝내 내게 무슨 말이냐고 묻지 않았다.

모든 게 반대인 우리 형제는 당장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을 마주 보지 못하는 성향만큼은 똑 닮아서 이후 그날을 언급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다뿐이지 잊지 못하는 건 서로가 더 잘 알았다. 형은 더 이상 내게 김재경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나는 이로빈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평생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뚜르르- 뚜르르-

“형.”

- 야. 복귀 10분 남겨 놓고 전화하기 있냐?

“…….”

- 덕분에 비행기 표는 이미 바꿨다. 같은 날에 미국 들어가기 힘들 것 같아서 내 건 따로 잡았어. 메시지 보냈는데 못 봤어?

따지자면 오랜만은 아닌 통화였다. 내가 미국으로 가지 않기로 한 것을 알릴 시간도 없었을 만큼. 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 미국 안 가.”

-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

- 남한결. 무슨 소리냐고 묻잖아.

형한테 이런 걸로 장난을 쳐 본 적은 없다. 그걸 아는 형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난 심각한 목소리를 모른 척 말을 이었다.

“이로빈이 있잖아, 한국엔.”

- …….

“가기 싫어.”

그것 말고는 댈 이유가 없었고, 대기도 싫었다.

- 그게 무슨….

티 날 정도로 형이 머뭇댔다. 불안정한 숨소리 사이로 우리 형제가 각자의 자리에서 억척 맞게 지켰던 것들이 침묵을 타고 삐져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처음으로 제자리에서 벗어나 그것들을 지켜봤다. 꼴사납긴 해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귀게 됐어. 이로빈이랑.”

뱉는 순간조차도 믿기지 않는 말을 뱉은 순간에야 내가 그간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난 이로빈의 이름이 주는 안정감으로 호흡하며 형의 말을 기다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형이 호모포비아든 아니면 그냥 내가 이러는 게 싫은 거든 상관 안 해.”

사실 알고 있었다. 이로빈이랑 사귀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형한테 이런 말을 해야 했었다는 걸. 형이 내 인생에 계속 머물러 있으려면 내 삶에서 이로빈을 덜어 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했으니까.

“형이 그것만 알았으면 좋겠어.”

- …….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손을 놓게 되는 건 형 쪽일 거야.”

누군가를 꼭 잡기 위해서는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이 필요하다. 난 두 손으로 잡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안다. 그건 형이 될 수 없었다.

형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을 것이다. 단, 그게 내가 아닐 뿐.

“그러니까… 나나 이로빈한테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지면 그 말부터 생각하고 이야기해.”

한참이 지나서야 형이 입을 열었다.

- 한결아.

형이 낸 용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난 조금 더 기다리다가 형이 맺지 못하는 끝마무리를 마저 했다.

“아니면 그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고.”

- …….

“끊을게.”

몇 년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했는데도 겨우 삼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생각만큼 시원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허전하지도 않았다. 난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얼굴을 보고서야 내가 방금 무슨 일을 한 건지를 온전히 실감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외치는 이로빈을 보고서야.

“밥!”

배고팠나 보다. 밥을 먹을 생각에 신난 건지, 같이 나가서 신나는 건지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걸음을 뗐다.

“손….”

“…….”

“손 잡아 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로빈이 내 손을 잡았다.

“안아도 줄까?”

날 바라보며 묻는 네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네 말이 틀렸다. 같은 편이면 다 적용되는 게 아니고, 난 오로지 네 손을 잡아야만 뭐든 다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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