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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금 생활 (5/6)

4. 감금 생활

서하는 하준의 손에 입이 막혀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숨이 막혀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반항으로 여겼는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이사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로운이 운전석에 다가오니 하준이 그제야 손을 떼고 운전석에서 내려 로운에게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이윽고 하준이 조수석으로 와 문을 열자 서하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딜!”

“놔! 개새끼야!”

하준이 튀어 나가는 서하의 허리를 잡아챘다. 하준이 튀어 나가는 서하의 허리를 잡아채 다시 조수석 안으로 밀쳐 넣었다. 어깨를 잡아 누르자 독기가 가득한 눈과 마주쳤고 하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서하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수갑을 채웠다.

“뒷문 좀 열어 주겠나?”

“알겠습니다, 이사님.”

하준은 서하를 안아 들어 올렸다. 행동이 제약된 상태에서도 서하는 반항하며 하준의 품에서 떨어지고자 했다. 하준은 인상을 쓰며 뒷좌석으로 옮겨 갔다.

서하는 입에 들어온 재갈을 풀어내고자 혀로 밀고 이로 씹었으나 풀리지 않아 이를 갈았다. 이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억울하여 서하는 묶인 손을 풀고자 움직였고 가해진 힘에 의해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으읍, 읍!”

수갑이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서하의 손목은 수갑이 파고들어 깊게 패여 있었다. 피가 남에도 행동을 멈추지 않아 하준은 서하의 두 팔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입과 손이 막힌 서하는 머리로 하준에게 부딪혔으나 하준은 동요하지 않고 손에 달린 수갑과 새로운 수갑을 연결해 천장에 고정시켰다.

팔을 내리지도 못하는 자세가 된 서하는 하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고, 하준은 서하의 주먹을 피며 상태를 확인하였다.

“손에 이 상처는 언제 생긴 거지?”

“…….”

“그게……. 죄송합니다.”

서하를 보며 한 질문이었으나 로운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준은 겁도 없이 알파를 핸드폰으로 가격한 서하가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하기야 자신에게도 이러는데 로운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누가 가르친 걸까. 원래 성격이 이랬나?”

“…….”

서하는 속으로 욕을 내뱉고 하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올려진 팔은 힘들었고 다사다난한 하루에 서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뜬 서하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여러 번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고 싶지 않았던 방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재갈은 없었고 몸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철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믿지 않더군. 얼마나 잘 세뇌를 시켰으면 말이야.”

하준이 전화를 하며 방 안으로 들어왔고 서하는 고개만 돌려 하준을 쳐다보았다. 전화를 끊은 하준은 침대 곁으로 가 서하와 눈을 맞췄다.

“다시 집으로 온 소감은 어때?”

“이거나 풀어.”

두 손이 포개져 수갑이 채워졌고 침대 헤드에 고정되어 있었다. 발 역시 발목에 족갑이 채워지고 침대 다리에 연결되어 있어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옷은 입혀져 있으나 성기는 속옷이 아닌 무언가에 묶여 있는 듯한 느낌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괘씸해서 말이지. 함부로 남의 손을 타기나 하고 말이야.”

하준은 꼼짝도 못 하는 서하에 만족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장 욕설과 함께 서하가 물고자 했으나 입질을 피한 하준은 서하의 목을 눌렀다. 서하의 목에 달린 초커가 거슬려 힘을 세게 주니 서하가 괴로워했다.

“으……윽…….”

“입질까지 하니 영락없는 짐승이군. 난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는데 말이야.”

숨이 막힌 서하의 반항이 잠잠해지자 하준은 목을 조르던 손을 떼어 냈다. 얼굴이 새빨갛게 된 서하는 연신 기침을 해 대며 괴로워했다. 하준은 윤서하에게 어떤 벌을 줄지 고민하며 손을 묶은 수갑을 풀어냈다.

“하……. 주먹질까지 배웠나.”

손을 풀어 주자마자 서하는 하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을 잡은 하준은 위협이 되지 않으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서하의 어깨를 잡고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놔! 놓으라고!”

“화나게 하지 마, 윤서하. 네 목숨에 도움도 안 되니까.”

어깨를 눌렀으나 하체를 버둥거리는 서하로 인해 짧은 길이의 족갑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급하게 주문한 수갑과 족갑은 윤서하의 여린 피부에는 적합하지 않아 하준은 혀를 차며 페로몬을 풀어냈다.

“흐윽, 싫어. 하지 마. 개새끼야…….”

“그래. 넌 그 모습이 어울려.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금방 안아 달라고 하니 놓아줄 수가 없지 않겠어.”

페로몬을 들이마시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지 않았다.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불쾌감에 서하는 입술을 씹으며 분해 눈물을 흘렸다. 하준이 족갑도 마저 풀어내고 서하를 안으니 스치는 것조차 자극이 되었는지 몸을 흠칫 떨어 댔다.

페로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지 서하가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고, 하준은 그런 서하의 턱을 잡아 들어 올렸다.

노려보고자 한 것 같으나 알파의 페로몬을 맡은 오메가의 눈은 독기를 담기기는커녕 애원하는 눈빛으로만 보였다.

“반항은 끝인가 보군. 뭘 원하지?”

“닥쳐, 닥치라고…….”

서하는 자신의 페로몬을 풀어내며 하준의 향을 덮고자 하였다. 하준과 지옥으로 떨어지겠다는 결심이 무색하게 하준의 페로몬으로 무너지는 몸뚱어리가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하준이 자신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성적 의도가 담긴 말을 계속하였다.

“마지막 기회야, 윤서하. 뭘 원해.”

“네가…… 죽기를 원해, 최하준.”

하준은 끝까지 반항하는 서하의 머리채를 잡고 눌렀다. 머리를 부딪친 충격에 눈을 감고 신음을 삼키던 서하는 침대가 아래로 꺼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비켜!”

하준은 서하의 몸 위로 올라타 가두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고개를 홱 돌리는 서하의 입술을 손으로 내리눌렀다. 콰득 소리와 함께 통증이 올라오는 손가락에 눈을 찌푸렸으나 손가락을 거두지 않았다.

“윤서하.”

“꺼져……. 만지지 마, 역겨우니까.”

민감한 몸을 가지고도 서하는 하준을 거부하며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뒤집고 위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그러나 그대로 하준에게 발목을 잡혀 끌려 내려왔고 허리가 손바닥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역겨운 사람한테 박히면 기분이 어떨까?”

“당연히 빡치지, 뭘 물어.”

“가출했던 사이에 버릇이 없어졌어. 단단히 교육해야겠군.”

하준은 서하의 하의를 잡고 끌어 내렸다. 바둥거리며 발버둥을 쳤으나 반항을 멈출 때까지 페로몬을 풀어내며 엉덩이를 때리니 곧 잦아들었고 서하는 아래만 벗은 상태가 되었다. 성기는 천으로 빠듯이 묶여 있어 움직이기가 녹록치 않았고 피가 몰린 성기는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역겹다고 하는 것치고는 아랫입은 원하는 모양이야.”

고개만 돌려 분노로 몸을 떨던 서하는 하준에게 침을 뱉었다. 한 번도 모욕을 당해 본 적이 없을 얼굴에 서하의 침이 흘러내렸고, 내내 여유롭던 하준은 표정을 굳히며 흘러내리는 침을 소매로 닦았다.

“지금 뭐 하는 거지?”

“그냥 앞에 있는 알파라는 새끼가 너무 짜증 나서 말이야. 기분 나쁘면 버리지 그래? 나 말고 아래에서 앙앙거리는 애들 많을 거 아냐……. 흡. 읏……. 개……새끼.”

하준에게 조잘조잘 말하던 서하는 갑작스럽게 밀고 들어오는 페로몬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서하는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면서도 욕을 멈추지 않았다. 하준은 윤서하로 인해 불쾌해져 페로몬을 더더욱 가득 풀어내고도 개운해지지 않아 욕구라도 풀어내고자 하였다.

“여길 드나든 좆은 몇 개지?”

“…….”

서하의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하준이 물었으나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새 박지 않아 처음인 듯 빠듯하게 손가락을 삼키는 구멍에 하준은 서하가 관계를 맺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으나 기를 죽이기 위해 재차 귓가에 속삭였다.

“히익, 읏.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메마른 구멍에 파고든 손가락에 서하는 고통만 느끼며 침대 시트를 쥐며 몸부림쳤다. 간사한 몸이 몇 달간 편했다고 침입자를 조이기만 하였다.

“꽉 조이는 걸 보니 막 굴리고 다니지는 않았나 보군.”

“…….”

“윤활제라도 넣어 줄까? 아양이라도 떨면 생각해 보지.”

“꺼져……. 너 같은 새끼 진짜 싫어.”

손가락 4개까지 구멍에 넣어 넓히던 하준은 바지를 벗으며 서하를 떠보았다. 애액도 나오지 않고 여전히 말라 있는 구멍은 자신의 성기가 들어가면 피를 볼 게 분명했다.

“언제든지 말해. 난 그 새끼하고는 다르게 겉과 속이 같거든.”

서하는 하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며 표정을 찌푸렸다. 손가락에 의해 억지로 넓혀진 구멍은 화끈거리고 욱신거리기만 했다. 하준의 성기가 들어오면 고통스러울 게 뻔했으나 하준이 좋을 대로 굴게 하기 싫었다.

구멍에 하준의 성기가 닿아 쿡쿡 찌르기 시작했고 서하는 입술을 더 세게 물며 신음을 삼켰다. 서서히 들어오는 성기에 구멍이 벌어지며 찢기는 느낌이 들었고 의도하지 않아도 눈물이 맺혔다.

“흐……윽. 아파, 빼……. 빼라고!”

“오물오물 잘 먹는데 빼 달라고 하니 빼 줘야지.”

깊게 들어온 성기가 내벽의 이곳저곳을 짓이기며 나갔다. 내벽이 딸려 나가는 느낌에 서하는 도리질하며 멈추라고 하였고 하준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냐며 서하의 배에 손을 올렸다. 대충 성기의 위치를 가늠하며 허리를 쳐올리며 전립선을 눌렀으나 여전히 고통스러운지 몸을 수그리려는 서하였다.

“힉! 싫어……. 너 끔찍해. 아파. 불쾌해……. 꺼져, 제발…….”

“불쾌한 놈한테 박히면서 앙앙거리는 게 더 웃기지 않나? 지금이라도 빌어. 도망가서 죄송하다 한마디면 다 용서해 주지.”

서하에게서 페로몬이 흘러나왔으나 여느 때와 같이 흥분한 페로몬이 아닌 겁에 질린 페로몬이었다. 하준은 오랜만에 맡은 파우더 향이었지만 더욱 기분이 나빠져 서하를 뒤집으니 눈물이 맺혀 있고 눈가가 빨개져 있었다.

“그냥 해……. 만족할 때까지 하고 그냥 놔줘…… 제발.”

“……앞으로 방 밖으로는 못 나가게 해 주지.”

하준은 서하의 상황을 봐주지 않고 그대로 허리 짓을 했다. 오랜만에 성기를 받은 구멍은 적응하지 못했고 몸의 주인도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뒤틀었으나 하준은 골반을 붙잡은 채 계속해서 움직였다.

“아파……. 아프다고……. 형…… 승언 형……. 무서워…….”

“시발.”

서하가 승언을 찾자 하준은 급격히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에 욕을 내뱉으며 허리 짓을 멈췄다. 숨을 몰아쉬며 서하를 내려다보니 골반은 푸르스름하게 멍이 올라오고 있었고 구멍은 결국 찢어졌는지 하얀 이불에 피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윤서하, 박승언 이름 꺼내지 마.”

“흐윽……. 아파, 구해 줘……. 승언 형…….”

“꺼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준은 서하의 머리를 붙잡아 일으켜 자신과 마주 보게 하였다. 코로 숨을 쉬는 걸 잊어버린 듯이 입을 벌린 채 숨을 몰아쉬는 서하에 하준은 해소하지 못한 성기에 더욱 열이 몰리는 걸 느꼈다.

“지금이라도 말해. 잘못했다고.”

“…….”

“박승언의 취향이 까탈스러운 오메가인가? 길길이 날뛰고 고통을 좋아하는 오메가가 취향이라니 더러운 놈이군.”

하준이 승언을 모욕하자 서하의 눈에 맺혀 있던 눈물이 그대로 흘러내렸다.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에 하준은 잠깐 동요하다가 서하를 밀치고 성기를 깊숙이 욱여넣었다.

“울지 마, 윤서하.”

“아…… 으윽. 죽어 버려, 최하준…….”

침대 시트를 긁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서하는 하준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박승언의 이름보다는 이 편이 나아,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며 서하를 자극하다가 사정했다.

“비켜……. 만족했을 거 아냐.”

“누구 맘대로. 몇 달간 사라진 값은 해야지? 도망친 벌은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하준은 서하의 구멍에서 정액을 긁어 빼내었고 손가락에 묻은 정액을 핥았다. 서하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지자 하준은 낮게 웃으며 서하의 골반을 붙잡았다. 멍이 든 골반이 욱신거렸다. 하준은 반응을 즐기는지 더 세게 누르고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 간지럽히기도 했다.

“변태 새끼…….”

“그동안 편했던 만큼 값은 치러야지?”

서하는 다 찢긴 입술을 다시 물으며 신음이 새어 나가지 않고자 했다. 긁어내리기는 했으나 정액이 남아 있는 내벽은 성기가 드나들 때마다 찰박거리는 음탕한 소리를 냈고, 구멍이 하준의 성기를 인지했는지 서서히 쾌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지 볼까.”

하준은 손으로 눈을 가린 팔을 치워 내고 입에 손가락을 넣고 허리를 쳐올렸다. 손가락이 물리기는 했으나 벌어진 틈 사이로 젖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히익! 그만! 싫어……. 괴로워! 흐윽…….”

“지조 없는 몸에서 유일하게 뒷구멍만은 주인을 알아차렸단 말이지.”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몸을 떨어 대는 서하에 하준이 만족하며 페로몬을 풀어내자 절망하는 눈빛과 마주쳤다.

“제발……. 페로몬 싫어……. 싫어…….”

부정적인 말만 쏟아 내는 서하에 하준은 대꾸를 하지 않고 서하의 몸을 탐했다. 윤서하 자체가 넘어오지 않는다면 몸이라도 함락을 해야 했다.

“그만. 힘들어…….”

너무 많이 울어 눈가는 쓰라리고 머리는 멍해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하준은 계속해서 성기를 박아 허리 아래로는 감각이 없어 속절없이 흔들리고만 있었다.

“흐읏……. 제발, 아파……. 놔줘…….”

“그럼 잘못했다고 말해.”

하준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워 주며 말했다.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저 서하가 자신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용서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서하는 침대 시트만 더욱 세게 잡을 뿐 하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고개 돌리지 말고 날 봐.”

“…….”

서하는 하준의 얼굴이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느새 날이 밝았는지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도 서하의 머릿속에는 승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윽……. 놔……. 박기만 하면 되잖아.”

하준은 참지 못하고 서하의 얼굴을 잡아 고개를 돌려 자신을 마주 보게 하였다. 물리적으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으나, 서하의 눈에는 자신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하준은 알 수 없는 분노가 몰려 올라와 화풀이하듯 허리를 움직였다.

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든지 끝내는 울먹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침대 시트는 서하의 구멍에서 흘러나온 정액으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 들어 갔다. 불쾌해 몸을 물렸으나 하준은 그것조차 용납 못 해 서하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몇 시간 동안 몸을 겹치고 있었으나 두 사람에게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 이거 풀어.”

전립선이 눌려 발기한 성기는 천에 의해 막혀 있었고 서하는 사출하지 못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가까스로 손을 들어 성기에 가져가니 그대로 잡혀 머리 위로 두 손이 눌렸다.

“제발……. 그만하라고, 개새끼야…….”

고개를 움직일 자유조차 뺏긴 서하는 서러워 울분을 토해 냈다. 신음을 내지르고 입으로 숨을 몰아쉬어 목이 갈라진 서하는 말을 할 때마다 기침과 쇳소리가 났지만, 하준은 그조차 기꺼웠다. 오히려 입술을 물거나 베개에 얼굴을 묻을 때 손가락을 넣어 입 안을 헤집으며 희롱했다.

똑똑.

“도련님. 들어가도 될까요……?”

밖에서 정웅이 문을 두들겼으나 서하와 하준 모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서하는 지쳐 할 수가 없었고 하준은 방해하는 정웅이 달갑지 않았다. 묵묵부답임에도 불구하고 정웅은 끊임없이 문을 두들겼고 결국 하준은 서하의 몸에서 성기를 빼냈다.

“흐윽…….”

“다시 넣어 줄 테니 기다려.”

성기가 나간 구멍은 다물리지 않고 아쉬워하듯 뻐끔거리고 있었다. 서하는 하준이 나가 최대한 늦게 돌아오기를 바라며 몸을 뒤집어 팔로 침대를 디디고 몸을 일으켰다. 몇 시간 만에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뼈 마디마디마다 욱신거리고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정하지 못한 성기에서 조금씩 정액이 흘러나왔다. 고통이 사그라들기보다는 만족할 만큼 나오지 않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성기가 진정되고 서하는 침대 아래로 발을 내디뎠으나 힘이 빠져 넘어졌다.

방어할 시간도 없이 넘어진 서하는 충격으로 허리와 구멍이 욱신거려 허리를 잡고 끙끙거렸다. 하준의 정액을 품고 싶지 않아 서하는 구멍에 손을 넣어 정액을 긁어냈다. 구멍 근처에 있는 정액은 금방 빼내었으나 깊은 곳은 손이 닿지 않아 앉은 자세로 중지를 밀어 넣었다.

***

“도련님, 집안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게 지금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나?”

가운을 걸친 하준은 정웅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정웅이 몸을 움츠렸지만 집안 어른들의 말이라며 멈추지 않았다.

“다시 놓치면 경영권은 생각하지…… 말……읍…….”

“그러니까 그게 나를 방해할 정도로 중요한 거냐고.”

하준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중요치 않은 말에 페로몬을 풀며 정웅을 압박했다. 사회의 눈을 의식하여 가만히 있었지만 집안은 사실상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자신이 아니고는 변변치 않은 알파들뿐이었고, 능력이나 형질로 보나 자신이 우위였다.

“다시는 내 앞에서 집안 이야기 꺼내지 마. 윤서하에게도 마찬가지고.”

정웅에게 말을 하던 중 방 안에서 쿵 소리가 나 하준은 닫힌 문을 보았다. 기력이 다한 것 같아 두고 온 것이 화근이었는지 그사이에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주제넘게 행동하지 말고 주어진 일만 해.”

하준이 정웅을 뒤로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고 정웅은 거실에 남았다. 자신은 최씨 일가에 충성한 몸이니 영원히 최씨 일가를 위해서 행동할 것이다. 만약 서하가 하준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가 된다면 하준에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서하를 제거하고자 다짐했다.

하준은 방에 들어와서 보이는 광경에 헛웃음을 지었다. 침대 아래에서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움직이는 서하의 의중이 무언인지 떠보고 싶었다. 하준은 가운을 벗고 서하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아쉬우면 부르지 그랬어. 잘해 줄 수 있는데 말이지.”

“네 정액이 몸속에 있는 게 역겨워서 말이야. 담고 있기 거북해서 빼내는 중인데 불만 있어?”

“하……. 네 머릿속에는 뭐가 있길래 이렇게 당당히 굴까. 박승언 그 자식이 구해 주러 올 것 같아?”

“……형까지 끌어들이지 마. 너랑 나는 그냥 이렇게 가는 거야. 난 네가 불행했으면 좋겠어, 최하준.”

순간적으로 승언이 자신을 구해 줬으면 하는 마음을 품은 서하는 침묵하다가 하준에게 말했다. 앞으로 자신의 목표는 하준의 불행. 단, 하나였다. 반면 하준은 서하가 승언을 놓지 못하는 게 못마땅했다. 도대체 박승언이 어떻게 세뇌했기에 윤서하가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빼면 다시 채우면 그만이지.”

하준이 서하를 눕히고 엉덩이를 들게 하였다. 무리가 가는 자세에 몸을 떠는 서하의 허리를 더욱 누르며 하준은 성기를 삽입했다.

“흐윽…….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박는 것밖에 못 해……. 읏, 최하준아…….”

“뭐겠어. 윽, 오랜만에 만난 오메가 재교육이지.”

처음에는 거슬렸던 반말도 계속해서 듣다 보니 새로워 하준은 서하가 반말을 하는 것을 놔뒀다. 상대조차 안 하다가도 욕을 할 때는 하준을 또렷이 보며 말했기에 그나마 나은 선택지였다.

침대에서는 그나마 푹신한 쿠션에 괜찮았지만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은 고통을 가감 없이 전해 줘 죽을 맛이었다. 위치를 알려 주겠다는 말이 진심이었는지 하준이 더욱 몰아붙였다.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 윤서하. 내기에서 이기면 풀어 주지. 주변 사람도 건들지 않고 말이야.”

“내가…… 으윽, 그 말, 믿을 것…… 같아……? 구라나…… 치는 주제에.”

“이번에는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안 믿어. 흡, 네 이름이 무슨 읏. 상관이야. 개새끼야.”

서하는 손을 들어 올려 하준의 목에 감고 반동을 이용해 몸을 뒤집어 하준의 위로 올라탔다. 놀랄 만도 한데 하준은 여유 있는 표정을 잃지 않았고 서하가 무슨 행동을 할지 지켜보았다. 서하는 몸속 깊이 들어오는 성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하준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힘을 주었다.

“위에 타고 싶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허리 아픈데 쿠션 생겨서 좋네. 근데 더 할 마음은 없거든.”

서하는 하준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켜 세우며 몸 안에 있는 성기를 서서히 빼냈다. 무식하게 큰 성기가 나오면서 참을 수 없는 쾌감을 주었다.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자 했으나 하준의 가슴에 올려진 손은 의지에 반해 사시나무처럼 떨어 댔다.

“아쉬운데 내숭을 떠니 주인이 도와줘야겠어.”

하준은 우위에 있는 듯 행동하면서도 실상은 쾌락에 잠식된 서하를 더 보고 싶어 페로몬을 풀어냈다. 박승언에게 들은 바로는 그사이 히트사이클은 오지 않았다고 했으니 머지않은 시일에 터질 것이다. 페로몬을 직통으로 마신 서하는 일으키던 그대로 주저앉았고 성기를 삼켰다.

“히익! 풀지 마! 으읏……. 움직이…… 찢…… 찢어, 아윽, 앗.”

“하기 싫다고 해 놓고 이러면 내가 오해하지 않나.”

페로몬에 취해 괴로워 벗어나고 싶었으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꼬챙이에 뚫린 물고기처럼 숨만 할딱거렸는데 숨을 쉴 때마다 배가 들어가며 성기의 윤곽이 보이는 것 같아 두려웠다.

“뭐 하는 거야……. 꺼져……. 잡지 마!”

“그렇게 싫으면 지금이라도 비키면 봐주지. 아니면 계속해도 되는 거로 알고.”

하준이 서하의 허리를 쓸어내리며 골반으로 손을 점차 내렸다. 예민해진 몸은 자신이 만질 때마다 몸을 잘게 떨며 반응했고 그럴 때마다 불쌍한 입술은 주인에 의해 찢겨 상처가 났다. 바닥에서 하는 건 처음이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허리를 쳐올렸다.

“개새……힉! 너…… 가만 안, 앗, 흐으응!”

“말은 끝까지 하라고 가르쳤을 텐데.”

앙칼지게 말하다 쳐올릴 때마다 눈이 유순하게 변하는 얼굴은 좋은 요깃거리였다. 하준은 부러 전립선을 피해 가며 찔렀고, 불만 있어 보이는 서하를 보며 웃었다.

“왜 그렇게 뚱한 표정이야, 알파를 깔고 앉은 주제에.”

서하는 전립선을 비켜 이리저리 찔러 대는 성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빼내고자 다시 한번 손목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이를 악물며 일어나 성기를 거의 다 빼낼 무렵 하준이 서하의 허리를 잡아 그대로 내리눌렀고 성기를 전립선에 사정없이 비벼 댔다.

“흑, 앗, 아윽……. 아흐……. 놔줘……아앗!”

서하는 얼굴에 열이 몰리고 누군가 뇌를 주무르는 것만 같아 허리를 숙였다. 쾌락을 피해 보고자 한 행동이었으나 빼곡히 가득한 성기로 인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준은 생리적으로 눈물이 맺힌 서하를 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윤서하, 나에게로 오면 편하게 해 주지. 단, 더는 나갈 생각을 하면 안 돼. 그때는 정말 자신이 없을 것 같거든.”

검지로 맺힌 눈물을 닦는 하준의 얼굴은 다정했으나,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서하에게 성의만 보이면 끝내 주겠다고 하니 갈등하는 듯 손이 움찔거리고 있다.

하준은 대부분의 오메가가 그렇듯 윤서하 역시 백기를 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싫어……. 내가 왜…… 너 같은 거한테 가야 해?”

눈을 감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서하의 눈빛이 돌연 독기를 띠고 하준을 쳐다보았다. 하준은 그런 서하가 가소로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 사이사이를 사르르 빠져나가 만족스러워하는 중에 손이 내쳐졌다.

“어딜 만져, 짜증 나게.”

손톱이 손바닥에 박혀 쓰라리자 정신이 맑아진 서하는 머리를 만지는 하준의 손을 쳐 냈다. 손과 손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간 손에 하준이 황망해하였고 서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성기를 빼냈다.

“이게 무슨 짓이지?”

하준이 못마땅해하며 서하에게 엄하게 말했으나 서하는 코웃음 치며 하준의 허벅지에 앉았다. 서로의 숨결이 닿는 거리지만 서하는 더 가까이 다가갔고 하준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서하는 하준의 웃는 낯짝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활짝 웃고 손을 들어 올려 그대로 하준의 머리채를 잡았다.

“와……. 이거 장관이네. 그게 내가 평소 느끼던 기분인데 좆같지 않아?”

“…….”

하준은 뒤로 꺾이는 목에 낮게 신음을 내뱉으며 손을 뒤통수로 가져가 서하의 손을 떼 냈다. 알파의 신체적 조건에 비해 연약한 오메가의 손은 가볍게 뗄 수 있었으나 자존심에 금이 갔다.

“제안은 없던 거로 하지. 그냥 평생 내 곁에서 울도록.”

“와……. 한 입으로 몇 마디 하는 거야.”

서하는 하준에게 굴복하지 않고 감정과 생각을 여과 없이 쏟아 냈다. 하준의 얼굴이 굳어 가는 게 보였으나 이상하리만큼 무섭지 않았다. 쌓인 만큼 다 풀어낸 서하는 결국 체력이 고갈되었고 시야가 암전되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

그 뒤로도 서하는 계속해서 하준의 신경을 긁는 말을 반복했다. 끝은 신체적으로 약한 서하가 제압되었지만 서하는 하준의 신경을 갉아 내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반면 하준은 기분이 점점 바닥을 치고 있었다. 언행도 문제였지만 목숨 줄처럼 차고 있는 초커가 가장 거슬렸다.

하준은 방구석에서 몸을 말고 있는 서하에게로 다가갔다. 도망을 방지하기 위해서 방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만 오른발에 족쇄를 채워 놓았는데 서하는 최대한 멀리 가고 싶은지 방구석에서 몸을 말고 앉아 있었다.

“다가오지 말고 거기서 말해. 얼굴 보기도 싫으니까.”

멈추라는 서하의 말을 무시한 하준은 서하에게로 걸어갔다. 자신이 피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사슬이 끌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어딜.”

“윽. 미친 새끼야, 놓으라고.”

하준이 사슬 중간을 밟으니 서하의 움직임이 막혔고 고통을 호소했다.

하준이 사슬을 손에 쥐고 움직일 수 없도록 원천 봉쇄를 하며 서하의 앞에서 몸을 낮추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상황에서 하준은 서하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짝.

목에 다가오는 손을 서하가 쳐 냈다. 방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하준이 무릎을 벌려 서하의 골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서하를 움직일 수 없게 가뒀다. 몸을 뒤로 물릴 속셈인지 두 팔을 뒤로 지탱하고 서서히 몸을 빼내는 서하의 두 손을 잡고 그대로 어깨를 밀어 눕혔다.

몸 위에 올라와 있는 하준은 커다란 짐승 같았다. 움직이는 순간 꼼짝없이 잡아먹을 것 같은 짐승의 분위기였지만 서하는 동요하지 않고자 하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았다.

“또 한판 하고 싶어? 근데 바닥에서 하는 취미는 없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란 말이지. 안심해, 지금은 건들 마음이 없으니까.”

서하는 하준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하준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자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집중했다. 하준의 손이 또다시 목으로 다가왔고 서하는 두 손과 발의 자유가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하준의 손을 물었다.

“정말 짐승 새끼가 따로 없군.”

이왕이면 잘리기 바라며 물었는데 통각도 없는지 하준의 반응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서하는 턱이 빠질 것만 같았지만 힘을 빼지 않았다. 하준의 말대로 타액을 떨구며 손을 무는 모습은 짐승이 다름없겠지만 자신이 물고 있는 손 역시 인간의 것이 아니기에 상관이 없었다.

“박승언이 채운 초커가 그렇게 소중한가?”

하준은 자신이 채운 목줄은 거부해 놓고 박승언이 채운 초커는 기꺼이 하고 있는 모습이 고까웠다. 초커가 약혼의 증표라는 걸 알고 있기는 하나 하준에게는 목줄이나 초커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하를 잡고 있던 손을 풀어 주고 남은 한 손으로 서하의 초커를 만졌다. 박승언의 페로몬이 다 빠진 초커는 무용지물이었다. 하준은 초커를 풀어내는 게 아닌 서하 스스로 풀어내게 하기 위해 자신의 페로몬을 초커에 채웠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하준의 손을 뱉어 낸 서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승언과 연결된 유일한 물건에서 하준의 페로몬이 흘러나와 끔찍했다. 서하는 초커를 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다가 손을 들어 초커를 풀어냈다.

“그러게 진작 풀지 그랬나, 초커는 이리 주고.”

“…….”

하준은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즐거워하며 초커를 받기 위해 손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서하가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초커를 만지작거렸고 하준은 기다리지 못하고 서하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

“…….”

초커를 빼낸 게 그렇게나 억울한 일이었는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물이 얼굴을 타고 내려왔고 하준의 손을 타고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준은 박승언이라는 존재가 서하에게 너무 깊게 들어와 있음을 알고 혀를 차며 초커를 힘으로 뺏었다.

“왜…… 그것까지 뺏어 가? 다 뺏어 갔잖아!”

서하가 하준에게 달려들어 초커를 가져가려고 했다. 하준은 손으로 서하의 이마를 누르고 창문을 열어 초커를 창밖으로 던졌다. 비척거리며 일어난 서하는 창가에 서 아래를 쳐다보았다.

하준이 서하의 허리를 붙잡고 정원에 배치된 경호원에게 초커를 치우라 명령했다. 경호원은 초커를 주워 대문 밖으로 나갔고 서하는 말도 나오지 않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준은 더 나가면 창밖으로 떨어질 것 같은 서하를 안으로 끌어당겨 문을 잠갔다.

“…….”

“윤서하.”

“돌려줘……. 형한테 데려다 달라고 안 하잖아……. 돌려줘.”

서하의 시선은 여전히 대문 밖에 머물러 있었고 하준은 그런 서하를 끌고 침대 위에 눕혔다. 초커를 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서하의 말은 하준에게 달콤한 제안이기는커녕 불쾌함만 가중시켰다.

“다녀올 테니 얌전히 있어.”

하준은 서하의 뺨을 툭툭 두들기고 방 밖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에게 서하를 주시하라고 이른 뒤 차에 올라탔고 승언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출발했다.

카페에 들어가니 승언이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고, 하준은 건너편에 앉았다. 인기척을 눈치챈 승언이 서류를 내려놓고 하준에게 미소를 지었으나 하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협정을 맺고 난 후 승언은 하준에게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자신이 서하의 페로몬을 맡을 수 있도록 각인을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일주일에 3번은 서하를 담은 영상이나 사진을 제공한다. 두 조건 모두 하준에게는 언짢았으나 일단 서하를 되찾을 수 있다는 말에 수락했고 승언을 만나고 있었다.

“이만 가 보도록 하지.”

“벌써 가시게요? 여기 음료 맛있는데 좀 마시고 가세요. 그런 김에 서하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좋고요.”

승언이 자몽에이드를 마시며 하준이 건네 SD카드를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영상 속에서 서하는 하준에게 까랑까랑 대들다가 하준에게 깔리고 신음을 내뱉었다. 하준에게 도망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항 한번 한 적 없는 서하였는데 할 말을 다 하는 모습도 새로웠다.

“이번에는 무슨 내용일까요? 다른 플레이도 나왔으면 좋겠는데.”

“쓸데없는 말이 많군. 넌 그냥 변태적인 성향을 충족시키면 되지 않나? 거기서 만족하고 납작 엎드려 있어.”

하준이 서하에게 접근하지 말라 경고하였고 승언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준은 승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자 짐짓 모르는 체하며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윤서하가 초커를 풀어내더군. 박승언, 너도 중요치 않은 모양이야.”

“뭐……? 웃기지 마시죠. 당신이 풀어낸 거 아닙니까?”

하준이 원하는 대로 승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고, 진실인지 파악하기 위함인지 질문을 해 댔다. 햇병아리 검사라도 검사인지 질문은 날카로웠으나 능구렁이들 사이에서 군림했던 하준은 심드렁하게 넘어갔다.

“역겹다는 듯이 벗어 버리던데. 네 성벽을 안 게 아니겠어?”

“그럴 리가요. 안다 해도 당신이 꾸민 일이라고 알지 않을까?”

승언은 다시 평정을 되찾고, 테이블을 딛고 몸을 일으키며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은 승언에게 굳이 사실을 말해 줘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승언의 성질을 긁는 말만 반복하며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만 가 보도록 하죠.”

“그래, 네 말대로 여기 음료수나 마시며 여유를 즐기도록 하지. 맛있으면 포장해서 윤서하에게도 주고 말이야.”

승언이 실소를 지으며 카페 밖으로 나갔고 하준은 커피를 받아 소파에 몸을 기댔다. 서하를 차지하고 같은 방을 쓰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언제든지 바스러져 사라질 것만 같은 생각에 서하를 더욱 옭아맸다.

박승언에게 있었을 때는 웃기라도 하였는데 자신에게로 온 다음부터 윤서하는 웃기는커녕 무기력하게 방구석에 기대 있었고 웬만해선 반응을 하지 않았다.

서하에게 케이크를 사 주면 웃어 주지 않을까 싶어 쇼케이스를 보았다.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와 디저트가 있었지만 디저트에는 문외한인 하준은 무엇을 사야 할지 몰랐다.

“말씀해 주시면 꺼내 드릴게요.”

“추천할 만한 디저트가 있습니까? 단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겁니다.”

카페 직원의 열렬한 설명이 시작되었고 설명은 들은 하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무리 들어도 그게 그거인 거 같았다. 그러자 직원이 딸기 케이크와 초코 케이크가 잘 팔린다고 추천해 주었고 하준은 초코와 딸기 케이크를 주문하고 다른 디저트도 주문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꽤 큰 상자에 놀란 하준은 상자를 받아 들었다. 케이크를 먹는 서하의 모습을 떠올리니 미소가 지어졌고 차에 올라탔다.

하준을 보필하기 위해 동행한 로운이 케이크 상자를 대신 받아 들었고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에 하준을 쳐다보았다.

“엄청 사셨네요. 이사님, 케이크 좋아하셨습니까? 아…… 서하 씨?”

하준이 대꾸를 하지 않자 머쓱해진 로운은 케이크를 차에 싣고 조수석에 탔다.

윤서하를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케이크로 점수를 따려는 하준이 우스웠다. 마음을 얻고 싶은 주제에 가두다니. 평생 윤서하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윙- 윙-.

하준은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경호팀장의 전화였다. 불길한 마음이 들어 전화를 받은 하준은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연실색했다. 로운은 몸을 돌려 하준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속도를 올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이사님.”

전화를 끊으며 하준은 핸드폰을 세게 쥐었다. 외출한 시간이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윤서하가 사고를 쳤다. 하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창문을 열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으나 조금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하준이 나가자마자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창문에 판자가 씌워지고 못이 박혔다. 초커에 미련이 있었던 거지, 떨어지고자 한 이유가 아니었는데 하준이 지레짐작하고 지시한 모양이었다.

“윤서하 님, 죄송하지만 잠깐만 참아 주세요.”

“내 몸에 손대지 마세요.”

사람이 들락날락거리느라 전과 같이 문을 잠그지 못했고 도망칠까 불안했는지 경호원은 서하의 한쪽 손에 수갑을 채우고 반대쪽은 자신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한 수갑을 타인과 나눠 낀 서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경호원을 쳐다보았다.

“이건 또 무슨……. 이거 풀어.”

“죄송합니다.”

존칭은 쓰지만 전혀 대우를 하지 않는 태도였고 서하는 침대에 앉아 막혀 가고 있는 창문을 보았다. 점차 방에 햇빛이 사라지고 있었고 서하는 속에서 올라오는 울컥함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갈 건데 따라오실 거예요?”

“네? 잠깐이면 됩니다. 이후에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냥 싸고. 아니면 같이 들어갈래요? 최하준이 그 새끼 표정 보고 싶다. 같이 들어가요, 우리.”

경호원은 순식간에 성격이 변하는 서하에 이질감을 느끼며 몸을 뒤로 물렸다. 자신이 몸을 뒤로 빼니 연결된 수갑에 의해 끌려간 서하가 표정을 찡그리며 손목을 어루만졌고, 하준의 귀에 들어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서하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쓰읍……. 상관없고 화장실 가고 싶다니까요. 풀든가 아니면 같이 가든가 해요.”

경호원은 난감해하며 경호팀장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답이 없었고 창문을 막고 있는 사람들은 서하와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는 척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경호원은 최선의 방안을 고민했다.

“하……. 진짜 못 참겠다고요……. 전화 줘 봐요, 최하준한테 전화하게.”

“아……. 같이 가시죠.”

전화를 넘겨주면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할까 경호원은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서하는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경호원을 끌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보지 마세요. 남한테 보이는 취미 없으니까.”

“당연한 걸 뭘 말하십니까!”

경호원은 일반적인 남자 화장실을 떠올렸다. 자신이 보호해야 할 윤서하가 오메가이기는 했으나 몸은 남자이니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 뭐라고 불러야 하지……. 경호원님……? 다시 입고 싶은데 너무 멀리 계시네요. 가까이 좀 와 주세요.”

“죄송합니다. 빨리 나가시죠.”

서하는 옷을 추스르며 수갑을 찬 손과 경호원의 손을 응시하다가 묘안이 떠올라 경호원의 귓가에 얼굴을 대고 속삭였다. 경호원은 처음에 서하를 밀쳐 내려고 했으나 묘하게 색기가 흐르는 서하에게 홀려 결국 거부하지 않았다.

“있잖아요. 당신들은 돈만 주면 뭐든 다 해요?”

“그, 그게 무슨…….”

“그렇잖아, 딱 봐도 알파 새끼가 오메가 가두고 있는 건데 왜 그냥 놔둬? 아, 오메가라서……? 그럼 멍청하고 아둔한 오메가가 무슨 짓을 해도 오메가라서 하고 끝나 주겠네?”

서하는 경호원을 밀며 세면대 쪽으로 넘어졌다. 경호원이 아래에 있어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치는 것을 피한 서하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경호원을 무감각하게 쳐다보았다.

“죽은 건 아니겠지?”

“으으……. 윤서하 님…….”

서하는 경호원을 죽지 않았음에 안심하며 수갑을 풀기 위해 경호원의 주머니를 뒤졌다. 열쇠로 수갑을 풀고 몸을 일으킨 서하는 경호원을 바닥에 둔 채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윤서하 님……. 어째서 혼자 나오십니까?”

“아……. 많이 뵌 분인데……. 경호팀장님……? 성함이 마호철 맞으신가요?”

호철은 서하의 손에 묻은 피를 보고 서하를 지나쳐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호철이 서하에게 정황을 물었으나 서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당신들이랑 뭐가 다른 건데……? 가뒀으면 이런 일도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꽃처럼 가만히 있을 줄 알았어?”

뒤따라 들어온 경호원들이 머리가 깨진 신입을 부축해서 방을 나갔고 호철은 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철은 서하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웠으나 서하는 베개를 끌어안고 막힌 창문을 볼 뿐이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설명해 봐.”

“윤서하 님이 도망치기 위하여 신입을 밀어 넘어뜨린 거 같습니다.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방에 들어온 하준이 상황을 물었고 호철은 하준에게 상황을 추리하며 말했다. 서하는 호철의 말을 듣고 있다가 흙탕물을 만들고자 입을 열었다.

“걔가 나 만졌어. 화장실 가려고 풀어 달라고 했는데 굳이 화장실까지 쫓아오더라. 너한테 허락받는다고 전화 달라고 했는데 안 주더라고.”

“…….”

“아, 그리고 옷 입는데 불편해서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갑자기 만지길래 놀라서 밀어 버렸어. 이거 내 잘못이야?”

경호원이 자신의 몸을 만진 사실은 없지만 경호원은 의식을 차리지 못한 상태이고 화장실에는 CCTV가 없었다. 하준은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편을 들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준이 호철을 노려보며 다시는 발을 들일 수 없게 하라 하였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짧지만 같이 일한 동료여서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아……. 그럼 내가 잘못한 거구나. 그래, 앞으로 누가 만져도, 아니다 누가 나한테 박아도 가만히 있을게.”

서하가 씁쓸하면서도 초연하게 말해 하준은 점점 서하 쪽으로 마음이 기울였다. 윤서하가 타인을 일부러 해쳤을 가능성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그만 나가 보도록 해. 그 새끼는 돈이라도 쥐여 줘서 내보내고.”

“이사님! 윤서하 님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호철은 하준의 등 뒤로 웃고 있는 서하를 보며 억울함을 토로했으나 하준에게 먹히지 않았다. 하준이 몸을 돌려 다친 곳은 없냐고 물어보니 금세 표정을 바꾸는 서하가 기가 막혔다.

“최하준, 나 저 사람 싫은데 그만 내보내.”

“그러지, 나가라고 하지 않았나?”

호철은 이를 악물며 방을 벗어났고 서하는 하준에게 관심을 끈 뒤 판자로 막힌 창문을 보았다. 하준은 많이 놀랐을 서하를 위로하기 위해 디저트를 사 왔다고 했다. 서하가 고개를 들어 하준을 쳐다보았다.

“여긴 싫은데. 답답하고 숨 막혀.”

“그럼 부엌에서 먹는 건 괜찮나?”

하준이 서하의 족쇄를 풀며 부엌으로 가라고 하였다. 갇힌 지 몇 주 만에 방 밖으로 발걸음을 떼 냈다. 타인을 상처 입혔지만 하준은 자신의 편을 들었고 심지어 자신을 위로하고자 같잖은 짓도 하였다.

하준의 주변 인물을 치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음을 터득했다.

“카페에서 추천하는 제품이라고 하더군.”

“…….”

식탁 위에 10개가 넘는 케이크와 마카롱으로 채워졌고 서하는 그것을 질린 눈으로 쳐다봤다. 카페를 쓸어 온 게 아닌가 싶은 정도였고 서하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집 안을 둘러보았다.

“필요한 건 없나?”

“밖에 나가고 싶어.”

“그건 안 돼.”

단칼에 거절한 하준에 서하는 심드렁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밖에 내보내 줄 거였으면 방 안에 창문을 막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먹는 케이크를 음미하며 하준의 말을 무시하니 하준이 애가 탔는지 다른 걸 말해 보라고 했다.

“음……. 밖 아니면 딱히 필요 없어. 아니면 사슬 거실까지 늘려 줘. 방 안은 너무 답답해.”

고민하는 듯한 하준을 뒤로하고 서하는 케이크만 먹었다. 흥미를 잃은 척하니 하준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허락했다. 경호원과 정웅이 수시로 감시하겠다고 했으나 별 상관 없었다.

“아……. 경호원 그분들 무서운데.”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다시 선별해서 배치하지. 그전까지는 경호팀장이 담당하는 걸로 하고.”

경호팀장이라는 말에 서하는 화색을 띠었다. 아까 분노한 표정이 가히 장관이었는데. 호철까지 다친다면 하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배신감을 느낄까 아니면 또다시 자신의 편을 들까. 사실 어느 쪽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평온한 하준의 생활을 흔들어 버리기만 하면 목적은 달성이었다.

“잠시 다녀오도록 하지.”

“…….”

하준이 나가고 호철이 서하게 다가와 전담하게 되었다며 서하에게 인사를 건넸다. 서하는 호철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다가 입을 뗐다.

“그 사람 어떻게 되었나요?”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아무 잘못도 없는 이한테!”

“그럴 리가. 많은 걸 했잖아. 근데 난 당신도 똑같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조심해요. 언제 공격할지 몰라.”

“제가 가만있을 것 같습니까?”

“말해 봤자 안 믿는 거 같던데요.”

호철은 사슬에 묶여 있는 가련한 오메가가 아닌 독기가 가득한 서하를 노려보았다. 그에 서하도 응수하듯 소리 내어 웃었다. 진짜 재밌는 쇼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ㅎㅇㅅㄹ

하준이 회사에 출근을 하면 집 안에는 호철과 정웅, 서하 단 셋만 남았다. 퇴근을 하면 발정 난 짐승처럼 곧바로 서하를 안는 하준이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몸에 기를 쓰며 몸부림을 치는 서하를 제압하던 하준은 호철에게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윤서하 님, 준비하시죠. 곧 이사님 돌아오실 겁니다.”

“…….”

호철이 계속해서 채근했으나 서하는 소파에 앉아 TV만 보았다. 서하의 선전 포고는 잘 이행되고 있었고 2주 동안 잘린 경호팀만 4명이었다.

최근에 잘린 경호원은 서하의 어깨를 잡았다가 끌어당기는 서하로 인해 얼떨결에 서하를 아래에 가둔 자세가 되었다. 하필 그 모습을 하준이 보았고 바로 내쳐지는 봉변을 당했다.

서하는 하준을 철저하게 이용하였으나 하준이 곁에 다가오는 것을 용납하는 건 아니었다. 심기가 불편하면 하준에게 욕을 하고 집 안에 물건을 파손하였으나 하준은 서하가 다치는 게 아닌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서하 님, 대체 왜 그러십니까!”

“제가 뭘요?”

호철이 TV를 가리며 말하자 서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 TV를 보았다. 하준이 없을 때면 슬금슬금 나와 소파에 앉아서 무기력하게 TV만 보는 서하였다.

호철은 그 모습에 안심하고 다른 경호원을 대타로 세워 두고 갈 때마다 돌변하는 서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

자신을 무시하는 서하의 태도에 질린 호철은 TV를 꺼 버리자 서하에게서 불평이 날아왔다. 서하는 소파에 누워 몸을 말고 쿠션을 껴안았다. 호철이 옆에서 뭐라 중얼거렸지만, 졸음이 밀려와 들리지 않았다.

“윤서하 님!”

“…….”

호철은 움직이지도 않고 나른한 고양이처럼 잠을 자러 누운 서하에게 고함을 쳤지만 서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핸드폰에는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날아왔고 호철은 초조한 마음에 서하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아씨……. 뭐 하시는 거예요.”

“장난칠 시간 없으니 당장 일어나시죠.”

쿠션을 빼앗은 호철이 표정을 굳히며 말을 하니 서하가 응수하듯 호철을 노려보다가 호철이 잡은 어깨로 시선을 내려 입을 뗐다.

“저번에 쫓겨난 분이 어깨 잡았던 거 같은데……. 실장님도 계속 잡고 있어 봐요. 최하준이 당신도 모가지 할지 궁금하네요.”

“하……. 정도껏 하십시오. 오메가 주제에.”

서하는 오메가를 언급한 호철을 보며 표정을 굳히고 말없이 쳐다보았다. 근래에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호철에게서 들으니 기분이 더러웠다.

“그럼 당신은 뭔데. 알파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베타 아니야?”

“…….”

서하가 소파에서 일어나 호철을 정면으로 보면서 말하다가 마지막은 활짝 웃었다. 호철은 뒷짐을 지면서 서하의 행동을 주시했다. 하준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줄 알았는데 거실 바닥에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보고하겠습니다. 당장 일어나세요.”

“…….”

서하는 호철을 도외시하며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사슬을 가지고 놀았다. 사슬끼리 마찰되며 나는 소리는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발목을 까닥거리는데 호철이 거슬렸는지 사슬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놔요.”

“강제로라도 준비시키겠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호철이 자세를 낮추고 서하를 일으켜 세웠다. 그에 서하는 바락바락 화를 내다가 호철의 종아리를 발로 찼고 중심을 잃은 호철이 넘어지며 탁자에 골반을 부딪쳤다. 충격에 탁자 위에 있던 화병이 깨져 바닥에 파편들이 튀었, 서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눈을 깜빡였다.

“파편을 밟을 수 있으니 움직이지 마시고 가만히 계십시오, 윤서하 님.”

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움직이자 호철은 불안해졌다. 실내화를 안 신는 서하는 다칠 위험이 높았고 서하를 잡기 위해 다가갔으나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서하는 파편을 밟고 말았다.

“윽…….”

“괜찮으십니까! 더 이상 움직이지 마시고 가만히 있으십시오.”

파편을 밟은 발이 욱신거렸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다칠 생각은 없었는데 호철이 너무 위협적으로 다가와서 몸이 조건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말았다.

“아……. 아프다.”

서하는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 시야에 가까워진 바닥을 쳐다보았다. 꽤 멀리도 파편이 날아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서하는 몸 상태보다 자신이 하지 않을 청소 걱정을 했다.

“아…….”

큰 파편은 괜찮겠지 생각하며 만지작거리다 손가락도 베인 서하는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구경했다. 파편을 대강 치운 호철은 서하를 안아 올려 소파에 앉혔다. 발이 흔들리는 거에도 쓰라려 서하는 인상을 쓰며 손을 발로 가져갔다.

“만지지 말고 보지 마십시오.”

“아픈데 어떻게 모르는 척합니까.”

호철은 서하의 왼쪽 발을 자신의 허벅지에 올려 파편을 제거하고 소독약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소독약을 보자마자 서하가 몸을 뒤로 물리며 거부했으나 호철은 평소 쌓아 놨던 악감정을 담아 배려 없이 소독약을 발에 부었다.

“아악! 흐, 으앗……. 놔, 놓으라고!”

“감염 예방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경기를 일으키며 왼발을 빼내고자 하는 서하의 발목을 세게 잡은 채 놔주지 않았다. 그러자 서하가 오른발로 호철을 차며 몸을 뒤틀었으나 호철은 꼼짝하지 않았다. 손으로 얼굴을 묻고 바들바들 떨어 대는 서하가 가여워 보이기는 했으나 자신의 부하들에게 한 짓을 생각해 호철은 무던한 척했다.

“이사님 곧 도착한다고 하니 저는 조금 물러나 있겠습니다. 말썽 부리지 마십시오.”

“…….”

붕대까지 감고 나서 발목을 놓아주니 서하는 몸을 끌어 앉아 눈물만 흘렸다. 호철은 그런 서하를 뒤로하고 남은 파편을 치우며 하준에게 보고했다.

“오늘도 사고 쳤다고 하는데 이번은 자해인가.”

“…….”

하준은 불도 안 켜 어두운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을 켰다. 소파에 몸을 웅크리며 앉아 있는 서하에게 다가가 고개를 들어 올리니 울었는지 눈가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마 팀장을 밀어서 그렇다는데 이번에는 뭐가 또 불만이길래 그런 거지?”

“…….”

하준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서하의 고개를 놓아주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여전히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은 서하에 하준은 사과를 깎아 서하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안 먹어.”

“뱉으면 어디로 들어갈지 잘 알 텐데.”

마지못해 사과를 먹는 서하 앞에 사과를 담은 플라스틱 접시를 올려 두며 다 먹으라고 하였다. 플라스틱 접시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죽는 게 두려운 건지 아니면 경호원들이 다치는 걸 꺼리는 건지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다 허용되지 않았다.

사과를 꾸역꾸역 다 먹자 하준이 서하를 소파에 눕혔다. 갑자기 변하는 시야에 어지러워 눈을 감으니 하준이 자신의 바지를 벗겨 내고 있었다.

“하기 싫어. 아무 준비도 안 했어.”

“마 팀장이 분명히 하라고 했을 텐데 거절했으니 책임도 스스로 져야지.”

하준은 배움이 느린 학생을 대하듯 서하의 볼을 두들기며 성기를 구멍에 가져다 댔다. 서하는 곧 닥쳐올 고통과 아픔에 체념하며 천장만 바라보았고 하준의 성기가 서서히 구멍을 넓히며 배를 가득 채웠다.

“으윽……. 아파! 잠깐 멈춰…….”

“그러니까 그건 네가 고스란히 가져가야지.”

하준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서하는 아래에서 죽을 맛이었다. 페로몬을 맡으면 편해질까 싶어 자신의 페로몬을 풀었으나 하준이 어림도 없다는 듯 무시했다.

“잔꾀를 부리면 더 고생할 텐데……?”

“그러니까……힛! 일부러…… 엉뚱한 곳 휘젓지 마! 앗, 으윽.”

교묘하게 비껴 나가는 성기에 서하는 몸을 조금씩 움직였으나 하준이 골반을 붙잡으며 막았다. 언짢아진 서하는 손을 들어 올려 하준의 어깨를 쳤으나 곧 하준이 손을 붙잡아 제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미……친. 으흣! 아……. 개……으흑, 새끼야. 뱉어!”

“난 또 빨아 달라는 줄 알고 그랬지.”

하준이 입 안에 퍼지는 비릿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며 서하의 손가락을 뱉어 냈다. 피는 자신이 다 먹었지만 베인 흔적은 여전했다. 하준은 몸을 함부로 하는 서하에게 벌을 주듯 움직였다.

“으읏……윽!”

서하는 하준의 배려 없는 움직임과 조금만 움직여도 찌르르 올라오는 발의 통증에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자 했다. 하준이 또다시 서하의 손가락을 입에 넣고 핥다가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미친놈아……. 씹지 마……흐앗!”

손가락은 아릿하고 구멍은 성기로 인해 버거웠다. 서하는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하준이 손가락에 흥미를 잃었는지 뱉어 내고 소파에 손을 올려 지탱하며 박차를 가했다.

“흐아앙, 아앗!”

서하는 전립선만 눌러 대는 성기에 자지러지듯 울며 하준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핀트가 나간 하준은 발기한 서하의 성기를 손에 굴려 대며 눈을 보라고 명령했다.

“순순히 행동하면 끝내 주지.”

“…….”

역시나 꿈쩍도 안 하는 서하였다. 하준은 뭉근하게 허리 짓을 하며 한 손으로는 서하의 성기를 문질렀다.

“으, 아흣……! 박기나 해!”

“만져 달라고 하는데 무시하면 서운하지 않겠어?”

하준의 허벅지로 인해 눌린 하체는 움직일 수 없어 서하는 상체를 들고 하준을 밀어내고자 했으나 바위를 미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끝내는 법을 알고 있잖아. 착하지, 윤서하?”

서하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들어 하준과 눈을 마주쳤다. 몰아붙이다가도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부르면 멈추는 하준이었다.

“멈춰, 최하준.”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놓아주지.”

참고 있던 모양인지 말을 멈추자마자 사정을 햤고 구멍에 정액이 한가득 차 불쾌해졌다. 빨리 하준이 위에서 비켜 줬으면 좋겠는데 비키기는커녕 아직도 자신의 성기를 문지르고 있었다.

“멈추라고.”

“내가 한 건 내가 마무리해야지.”

하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숙이더니 그대로 서하의 성기를 입에 담았다. 사고가 정지되었다가 성기에 닿는 축축한 혀에 기겁하며 하준의 머리를 손으로 밀어냈다.

“개새끼야! 뱉어! 뱉으라고!”

“으읍……읍!”

성기를 물고 있는 하준이 뭐라 중얼거렸고 성대에 떨림이 가감 없이 성기로 전해진 서하는 허벅지를 달달 떨어 대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평소에 미친 거 아니냐고 말은 했지만 정말로 미친 것 같았다.

하준은 부끄러움과 쾌락에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진 서하를 보며 웃었다. 선단에서 프리컴이 흘러내렸다. 사정을 참고 있는 건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떨었고, 하준은 그런 서하의 허리를 쓸어내렸다.

“무슨…… 비키라고……!”

자신의 머리를 잡고 밀거나 발로 허벅지를 차는 몸짓을 무시하며 하준은 요도구에 혀를 넣고 벌리듯 핥았다. 그러자 서하가 작게 몸을 떨어 얼굴을 들어 쳐다보니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는지 쥐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거 너무 큰 충격이었나.”

성기를 뱉어 내고 능청스럽게 말하는데 정액이 얼굴에 튀었다. 하준은 입 근처로 튄 정액을 혀로 핥아 내고 볼에 묻은 정액을 손으로 닦아 서하의 입에 넣었다.

“음? 나도 먹었는데 먹어 보지 그런가? 바락바락 대들어야지.”

“…….”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벌겋게 물든 서하는 수치심에 몸을 떨어 댔고 도끼눈을 뜨며 하준을 보았다. 그러자 하준이 서하의 눈을 손으로 덮고 귓가에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 눈은 나한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려 주지. 넌 결국 나를 선택해야 할 거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서하에게서 대량의 페로몬이 뿜어져 나왔고 페로몬을 맡은 하준은 서하의 맨목에 입을 대지 못해 아쉽다는 듯이 가까스로 물러났다. 조금만 늦었어도 본능의 이끌려 서하의 목을 물어 각인할 뻔했다.

***

승언의 요청으로 하준은 서하를 와이셔츠만 입고 지내게 하였다. 서하의 후폭풍이 엄청났지만 결국 품이 큰 하준의 와이셔츠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하준은 주말에는 외출하지 않고 집. 정확히는 서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안 나가냐? 회사 그러다 망해.”

“그렇게 심심하면 책이라도 읽지 그래.”

하준은 침대 헤드에 기대 있는 서하에게 책을 건네주고 책상으로 돌아와 업무를 보았다. 안경을 쓴 하준의 인상이 더럽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내려 하준이 두고 간 책을 보았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에 서하는 책을 잡고 하준에게 던졌으나 하준은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가뿐하게 피했다.

“좀 나가.”

“내가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일까 생각하며 발로 시선을 옮겼다. 의사가 집으로 찾아와 발을 치료해 주고 무리한 움직임을 피하라 주의를 주었다. 아픈 건 싫은 서하는 의사의 말을 착실히 따라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하준이 옆에 있는 건 신경에 거슬렸다.

따르릉.

“전화 좀 받고 오지.”

“…….”

하준이 전화를 받으며 방 밖으로 나갔고 서하는 하준이 돌아오기 전 방 밖으로 나가고자 했다. 같은 방에 있는 것만으로 신경이 곤두섰다. 침대 아래를 보고 아프지 않게 내려갈 방법을 고민하다가 오른발을 딛고 왼발이 땅에 닿기 전에 구르기로 하였다.

호기롭게 내려왔으나 무의식에 왼발로 땅을 짚은 서하는 아픔에 데굴데굴 굴렀다. 용건이 끝났는지 하준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고 서하는 아프지 않은 척 몸을 멈추고 고통을 속으로 삼켰다.

“왜……. 그러고 있는 거지?”

“어쩌라고.”

하준이 서하를 종잡을 수 없다는 듯이 내려다보았고 서하는 하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땅바닥에 누워 있는 서하를 침대에 올리고자 하준이 안으려고 하니 서하가 몸을 반대로 굴러 하준의 손길을 벗어났다.

하준이 잡을까 싶어 팔로 지탱한 채 방을 벗어났다. 엉금엉금 기는 걸 하준이 보는 게 느껴졌으나 서하는 어차피 다 보인 몸이니 상관없다고 여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무릎을 꿇고 방문을 연 서하는 발이 다시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지만 애써 참으며 문고리를 돌렸다.

“서하 님, 이게 무슨…….”

“막지 마요.”

점심을 준비하고 있던 정웅은 방바닥을 기며 나오는 서하와 그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는 하준을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서하가 가는 길은 호러 영화에 한 장면처럼 피 길이 생겼으나 상처가 터진 걸 알지 못한 듯했다.

“제가 일으켜 드리겠습니다.”

“너는 나 만지지 마.”

정웅의 목소리를 듣고 현관에서 있다 거실로 온 호철은 땅바닥에 있는 서하에게 다가갔으나 거부당했다. 소독약을 서하의 발에 퍼부은 뒤로 존대는 들을 수 없었다. 존대는 바라지 않아 상관없었으나 조금만 근처에 다가가도 경계했기에 호철은 제대로 된 경호를 할 수 없어 난감했다.

꾸역꾸역 거실 한가운데에 도달했고, 시원한 공간을 좋아하는 서하는 러그를 피해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하준은 기껏 깔아 놓은 곳을 피해 누워 있는 서하를 발로 밀어 러그에 안착시킨 뒤 식탁에 앉아 서하를 구경했다.

기껏 사슬을 늘려 줬건만 서하가 하는 일은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거실 바닥에 누워 나른한 고양이처럼 굴러다니는 게 전부였다. 하준은 유일하게 막히지 않은 거실 창문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맞는 서하를 멍하니 쳐다봤다.

“뭘 봐.”

“그러다 걷는 방법도 까먹겠어.”

붕대가 피로 젖어 하얀 곳을 찾아볼 수 없어 하준은 정웅에게 의사를 부르게 한 뒤 서하가 누워 있는 러그에 가 앉았다.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더 하얘진 서하의 피부에 하준은 손길을 뻗었으나 서하는 하준의 손길을 내치고 몸을 말았다.

“발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아프지는 않은가?”

“…….”

일상이 무료하고 무기력해진 서하는 잠으로 시간을 보냈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또다시 졸음이 밀려와 눈을 감았다. 하준이 중얼대는 게 들렸으나 그것조차 백색 소음으로 받아들이고 잠에 빠져들고자 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다가왔다.

“잠시 깨워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진료를 위해 하준이 서하를 흔들어 깨웠고, 서하는 잠에 막 빠져들기 직전이라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치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상처가 터져 있는 발에 의사는 새로운 붕대로 감쌌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무리하게 움직이는 건 삼가 주세요.”

“그건 저 아저씨한테 말해 주세요. 제일 큰 원흉이니까.”

입을 꾹 다물고 내려다보는 하준과 난색을 표하는 의사를 번갈아 쳐다본 서하는 입꼬리를 올렸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서하는 의사를 붙잡고 구해 달라고 했다.

“저 사람이 저를 납치했어요. 약혼한 알파도 있는데 갑자기……. 살려 주세요, 의사 선생님…….”

“그게…….”

의사는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방 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서하와 하준을 번갈아 보았다. SD회사의 유력한 후계자와 한낱 오메가. 누가 보아도 최하준의 편을 들어야 했다. 의사는 서하의 손을 떼어 내며 집 밖으로 나갔고 서하는 타격도 없는지 다시 러그에 누웠다.

“또 그 머리로 뭘 생각한 거야?”

“의사의 윤리성 테스트? 근데 돈 앞에서는 장사 없나 봐.”

나가 봐야 하는 하준은 방 안에서 수갑과 에그 2개와 튜브형 딜도를 꺼내 서하에게 다가가 서하의 왼쪽 손발을 수갑으로 연결해 허리를 지그시 눌렀다.

혹사당한 몸에 서하가 버둥거렸으나 손수건을 수갑 안으로 넣어 살갗에 파고들지 않도록 한 하준은 꼼짝도 못 하는 서하를 보며 작게 웃었다.

“영락없는 짐승이군.”

“짐승한테 욕정 하는 너도 짐승이냐?”

하준은 서하의 말을 무시하며 러브젤을 구멍에 짜고 골고루 묻도록 손가락을 넣어 만졌다. 뿌리치고 싶었으나 다친 발이 땅에 부딪히면 고통이 밀려 올라와 서하는 이를 악물며 하준을 때렸으나 살짝 밀려날 뿐이었다.

손가락을 빼낸 하준은 에그를 찬찬히 밀어 넣고 마지막으로 튜브형 딜도로 부피를 키워 스스로 빼낼 수 없게 했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펴졌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오물조물 딜도를 잘 품고 있는 서하의 엉덩이를 하준이 약하게 때렸다.

“으읏……. 변태 새끼…….”

수치심에 떠는 서하를 뒤로하고 하준은 호철에게 리모컨을 넘겼다. 하준에게 인사를 하고 호철은 서하에게 다가갔다.

“윤서하 님, 근처에 있겠습니다.”

“내 뒤에서 꺼져. 너도 관음증 있냐?”

“버릇없이 굴면 교육하라고 하셨습니다.”

호철이 리모컨으로 전원을 켜자 서하는 약한 자극에 허리를 뒤틀었다. 그러자 손과 발이 함께 움직이고 허리에 고통이 올라와 표정을 찡그렸다.

호철은 자신이 봐도 허리에 부담이 가는 자세에 잘못될까 하준에게 보고했으나 풀어 주지 말라는 지시만 돌아왔다.

“윽, 하윽, 허리, 윽……!”

쾌락과 고통이 공존하여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서하는 괴로워했다. 한편 호철은 와이셔츠가 가슴께까지 올라가고 손자국이 붉게 남은 엉덩이를 보지 않고자 고개를 돌렸다. 하준의 방과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집 안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발기라도 했다가는 자신도 부하들처럼 될 것이다.

“으,읏……. 힘들어……. 으흣! 풀어 줘…….”

만족할 만한 자극은 아니었으나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움직이는 에그에 성기가 서서히 발기되었다. 에그로는 사정할 수 없어 서하는 허리를 숙여 러그에 성기를 비볐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으나 푹신한 털로 이루어져 있는 러그에 성기가 쓸리니 고통을 상쇄한 자극에 허벅지를 떨며 사정했다.

“힉! 으으……. 이제 꺼…….”

“당신의 말대로 알파의 명령만 받는 베타여서 말이죠.”

호철은 유치하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서하의 말을 들먹이며 요청을 거절했다. 숨을 할딱거리며 떨고 있는 서하가 가여워 보이기는 했으나 억울하게 해고당한 부하들이 우선순위였다.

***

“흠……. 그동안 이랬단 말이지.”

“네, 다른 영상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처음에 있던 일도 서하 씨가 고의로 밀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박승언에게 영상을 넘기기 위해 카페에 도착한 하준은 로운에게 받은 영상을 확인했다. 가만히 있다가 돌연 경호원을 내리찍는 서하였다. 하준이 비릿하게 웃으며 끝까지 영상을 시청하고 있으니 승언이 도착했다.

“가서 대충 담아 와.”

윤서하가 먹을 디저트를 사고자 로운을 보냈고 자연스럽게 하준과 승언 둘만의 대화가 시작됐다. 승언 역시 경호원을 공격하는 서하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았다.

“서하한테 질 정도면 자격 미달 아닙니까? 왜 그런 자를 쓰세요.”

“그래서 다 바꿨으니 입 좀 다물지 그런가.”

“마호철 팀장은 쓸 만하지 않나요? 서하를 위해서 넘겨준 건데.”

하준은 호철의 능력을 인정하며 서하를 어떻게 버릇을 고칠지 고민했다.

승언은 컵에 맺힌 물방울을 만지다가 고개를 치켜들며 하준에게 경고를 날렸다.

“각인할 뻔했다는데, 그러시면 안 되죠.”

“…….”

“서하, 보고 싶은데 자리 좀 마련해 주시겠어요?”

“조만간 오메가 클럽을 점검하러 갈 건데 그때 동승하지.”

승언은 SD회사가 관리하는 오메가 클럽을 떠올렸다. 매일같이 테마를 정해 이벤트가 열리는 클럽은 오메가에게 가학적인 플레이를 했다. 때로는 자신들의 오메가를 데려가 기를 죽이기도 했으니 그곳에서의 재회도 나쁘지 않았다.

“이만 가 보지.”

집에 도착한 하준은 문을 열자마자 맡아지는 페로몬과 정액 냄새에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서하에게 다가갔다. 발버둥을 많이 쳤는지 기껏 넣어 놓은 손수건은 빠져 있었고 성기에서는 더 나올 것이 없는지 맑은 물만 흐르고 있었다.

“빼……. 죽여, 버릴 거야!”

숨도 간신히 쉬는 주제에 카랑카랑 대드는 서하를 보며 하준은 회초리를 꺼내 끝을 안으로 잡아당기며 서하에게 말했다.

“경호원, 네가 먼저 그랬나? 거짓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

짜악-.

“아악! 갑자기…… 으읏. 왜 지랄인데!”

하준이 서하의 허벅지에 회초리를 내리치며 재차 물었다. 서하가 대답을 회피하자 허벅지를 내리쳤다. 아픔을 승화시키고자 몸을 움직인 서하는 왼발이 바닥에 닿아 고통이 배로 커져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 네가 그랬나?”

“뭐가 다른데! 애초에 너희가 먼저 잘못한 거잖아. 왜 내가 잘못한 것처럼 말하는데……흐윽.”

하준은 사실을 인정한 서하의 머리채를 잡으며 경호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으나 서하는 단호히 거부했다.

“죄책감도 없는 건가? 원래 순한 성격이었는데 말이지.”

“무슨 개소리야……. 그건 너네가 나한테 느껴야지……. 이 상황이면 안 미치는 게 이상한 거야.”

하준이 눈을 부릅떴으나 서하는 점점 암전되는 시야에 무섭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야박한 하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머리에 뭐 든 건 있어? 왜 생각이 없어……?”

“허…….”

그대로 기절한 서하의 머리채를 놓아주며 하준은 로운에게 연락해 일정을 조절했다.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이 신선해 놔뒀더니 정도를 모르고 기어오르는 서하를 밟아 줄 필요가 있었다.

***

며칠 내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서하는 무기력하게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벌써 선거 기간이 되었는지 후보자들이 나와 토론을 하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하준이 소파에 앉았는지 소파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준도 따라 연설을 듣다가 독특한 경력을 가진 후보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어차피 저 오메가는 당선되지 못해. 보여 주기 위해 수를 맞춰 놓은 후보자 아닌가.”

“네, 잘 알고 계셔서 좋겠네요.”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서하는 하준을 비꼬았으나 하준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인권 운동을 하는 오메가 후보자가 어떻게 후보로 나온 건지도 신기했다. 오메가의 인권 신장을 바라는 사람은 오메가와 아주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 나가지 않겠어?”

“하……. 가두는 것도 네 마음대로고 나가는 것도 네 마음대로냐?”

뭐든지 제멋대로 하는 하준에 서하는 TV를 끄고 훽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걸어갔다. 하준은 서하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쇠사슬을 발로 밟아 눌렀고 자연히 걸어가던 서하는 자리에서 넘어졌다.

“미친…….”

“씩씩거리면서 가는 것치고는 연약한 풀처럼 나자빠지는군.”

하준은 재밌는지 웃으며 서하를 안고 일어났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하준의 얼굴을 손으로 밀었으나 하준은 놓지 않았다.

“이것 좀 풀어 주겠어? 윤서하랑 외출 좀 해야 해서 말이지.”

“잠시만요, 도련님.”

정웅이 족쇄를 열쇠로 풀어냈고 갑갑한 느낌이 사라져 서하는 오른발을 흔들었다. 구속하는 물건이 없어졌기에 서하는 하준을 밀쳐 내고 떨어지고자 했으나 하준은 서하를 더더욱 품에 가뒀다.

“미아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밖에서는 가만히 있어.”

“너 혼자 나가라고 왜 나한테 난리야.”

“계속 그렇게 땍땍거리면 그 꼴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와이셔츠만 입고 생활했던 게 습관이 되어 서하는 처음에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으나 자신의 맨다리를 본 뒤에야 스스로 미친 게 아닐까 싶어 입을 벌리고 놀랐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서하의 얼굴을 보다가 하준은 정웅에게 옷을 가져오라 일렀다.

“이거 입도록.”

“웬일로 정상적인 옷 주지? 어디 아픈 건가?”

서하는 옷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하자가 있는 점을 찾았으니 멀쩡했다. 하준은 보는 앞에서 옷을 갈아입게 하였으나 서하는 불평불만 없이 옷을 입었다. 다리를 스치는 섬유의 옷감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거 간지러워. 이상한 거 아냐?”

“음……. 다른 걸 가져와 보지.”

하준이 직접 드레스룸으로 들어갔고 서하는 옷을 벗어 던졌다. 거실 창문으로 경호원들과 눈이 마주쳤고 서하는 웃으며 다가가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경호원들이 질린다는 눈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하준이 반바지를 가져왔고 여전히 허벅지가 간지러웠으나 종아리는 닿지 않아 옷을 입었다.

정웅이 현관문을 열어 주었고 서하는 오랜만에 맡은 바깥 공기에 움직임을 멈췄다.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지만, 집 안과는 달리 막힌 느낌이 없는 공기에 홀리듯 허공을 쳐다보았다.

“따라붙겠습니다, 이사님.”

“이미 전했을 것 같지만 네 주인한테 지금 출발한다고 전하도록.”

하준은 호철이 이미 승언에게 상황을 보고했을 것 같았으나 다시 한번 언질 해 두었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묵묵히 서 있는 호철이었다.

호철은 하준의 품 안에 있는 서하를 보았다. 자신이 앞에 서 있음에도 무시하듯 허공만 쳐다보고 있기에 서하의 눈 근처에서 손을 휘저으니 그제야 눈이 마주쳤다.

“어쩌라고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서하는 호철이 언제 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팔린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호철에게 톡 쏘며 말했다. 처음에는 광견처럼 화를 내 즐거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평온하게 받아치는 호철에 무색해져 입을 삐죽거렸다.

“안녕하세요, 서하 씨.”

“반대쪽 눈가도 찢어지기 싫으면 건들지 마요.”

로운은 서하의 볼을 찌르기 위해 가져가던 손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통증이 올라왔다. 서하의 행적을 하준에게 들었을 때는 고양이가 하악질 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무슨 요괴였다.

“출발하지.”

“네, 이사님.”

조용히 운전석에 올라타 룸미러로 서하를 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로운은 시선을 내리고 운전에만 집중했으나 노려보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하 씨,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

말없이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는 서하에 로운은 침을 삼키고 운전만 하였다. 하준은 로운을 놀리느라 즐거워하는 서하를 보다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내려놔, 미친놈아.”

“그러면 눈 예쁘게 떠야지.”

하준은 여전히 로운을 향해 튀어 나가려고 하는 서하의 머리통을 잡고 좌우로 흔들었다. 발길질이 날아왔으나 발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서하는 순식간에 무너지는 중심에 등 뒤로 손을 옮겨 지탱했다.

“지금 어디 가는 줄 아나?”

“내가 어떻게 알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네 마음대로 하는데.”

발목을 빼내고자 잡아당겼으나 더욱 세지는 악력에 서하는 하준을 노려보았다. 저 잘난 얼굴을 언젠가 한 대 패 주겠다는 다짐을 세웠다.

“이거 놓지 그래.”

“지금 가는 곳은 우리 회사에서 관리하는 클럽이지. 정확히는 오메가들이 쇼하고 자신의 위치를 각인해 주는 곳 정도 되겠군.”

하준은 서하의 발목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라갔다. 간지러운지 서하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쳤으나 하준은 놓아주지 않은 채 발목을 어루만졌다.

“으윽…….”

“이거 곤란해. 차 안에 하기에는 너무 힘들거든.”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개져 하준에게 할 마음 따위 없다고 항변했으나 하준은 믿지 않는다는 듯 소리 내어 웃으며 서하를 놓아줬다.

어이가 없던 서하는 룸미러로 흘끔거리는 로운을 공격하고자 했으나 하준에게 붙잡혀 움직일 수 없었다.

“이사님……. 제발 서하 씨 잘 잡고 계셔 주셔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하준은 로운만 쳐다보고 있는 서하의 고개를 잡고 창밖으로 돌렸다. 그러니 언제 로운을 쳐다봤냐는 듯 창밖 구경에 여념 없는 서하를 보며 하준은 서하가 정말 동물이 된 것인가 생각했다.

서하는 서서히 해가 지면서 불빛이 들어오는 건물들을 구경했다. 야경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몰라 구경하다가 차손잡이를 보았다.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서하는 달리는 차라는 것을 망각하고 손잡이를 잡았다.

“윤서하!”

하준은 손을 뻗어 서하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고 눈을 손으로 가렸다. 최근 들어 돌발 행동을 하지 않는가 싶더니 또 말썽이었다.

“야, 놔라.”

서하는 하준을 밀치고 제대로 앉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왜 갑자기 뛰어내리고 싶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황을 인지하고 나니 심장이 빨리 뛰었으며 손은 떨리고 있었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주무르며 진정하고자 하였으나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사님,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건물을 올려다보니 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클럽 같지는 않았다. 서하가 건물만 물끄러미 보고 있는 사이 지배인이 나와 하준에게 허리가 접힐 정도로 절절매고 있었다.

“이분은……?”

“…….”

하준이 답을 하지 않고 지배인을 내려다보니 자세가 더욱 내려갔다. 서하는 저러다가 땅에 닿지는 않을까 생각하는데 로운이 들어가자며 서하의 등을 밀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나체의 오메가들이 즐비해 있었고 서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하준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쳤다. 하준은 얼굴이 굳히며 등을 돌려 서하를 봤다.

“…….”

“뒤에는 눈 안 달렸나 봐? 안 아프지? 잘난 알파여서.”

“…….”

로운은 사고는 서하가 치고 감당은 자신이 해야 함이 억울하여 서하의 뒤에서 주먹을 쥐었다. 하준이 침묵하고 있으면 꼬리를 내릴 만한데 서하는 신경을 긁으려는 건지 실실 웃으며 도발했다.

지배인은 하준과 동행한 서하가 오메가임을 눈치채고 버릇없는 행동을 바로잡고자 했으나 하준이 가만히 있어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이사님……. 오메가를 많이 아끼시나 봅니다.”

“빨리 끝내고 갈 생각이라 자리로 안내해 주면 고맙겠군.”

한없이 오만한 하준의 태도에도 지배인은 웃는 낯으로 상대하며 자리로 안내했다. 하준이 서하에게 시선을 돌리니 유린당하고 있는 오메가들을 보고 있었다. 유독 한 오메가만 보고 있어 아는 사이인가 했지만 감흥 없이 고개를 돌리는 서하에 하준은 관심을 거뒀다.

“착하게 굴면 저렇게 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

지배인의 안내에 2층에 올라 들어가니 고귀한 척은 하고 싶은지 프라이빗한 룸이었다. 룸마다 벽이 있었으나 교성을 막지 못해 여과 없이 들려왔다.

“여기 데리고 온 이유가 뭘까. 기죽으라고?”

“그것도 있기는 하지만 메인은 그게 아니어서 말이지. 다리 아프니 여기에라도 앉지.”

“……”

“서하 씨, 여기 앉아 볼까요? 와……. 안 건들게요.”

로운이 분위기라도 풀어 볼까 싶어 서하의 등을 미니 서하가 도끼눈을 하고 쳐다보아 로운은 양손을 들어 보였다.

하준이 한심하다는 듯 눈초리를 보냈으나 로운은 눈이 소중했기에 마실 것을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알파들은 하나같이 변태인가 봐. 소리를 막으려는 의지도 없어 보여.”

“저기 오메가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나?”

“내가……? 아는 사이도 아니고 내가 그래야 하나.”

서하가 벽을 두들기며 말하니 하준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서하를 소파에 앉혔다. 잠시 뒤 사회자의 말을 시작으로 막이 올라갔다.

“모여 주신 알파와 베타 분들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오늘의 시작은 우리 클럽의 최고 인기 오메가 노을입니다! 노을이가 여러분께 목마를 잘 탈 수 있다고 보여 주고 싶다고 하니 박수로 맞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가 말을 마치자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서하는 룸에서 고개를 숙여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노을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여 설마 싶어서 내려다본 것이지만 눈에 들어온 건 자리에 앉아 가면을 쓰고 있는 알파들과 알파들의 발밑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오메가였다.

“다들 가면 쓰고 있는데 넌 안 쓰냐? 하긴 더 팔릴 쪽도 없겠지.”

“계속 그렇게 나불거리다가 울 텐데, 뭘 믿고 그러는 걸까.”

하준은 로운이 가지고 온 양주를 마시며 대꾸했다. 저렇게 기어오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뒀다.

“노……을, 이노을. 미친.”

“무슨 일인가요, 서하 씨.”

서하는 목마와 함께 나온 오메가의 얼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했지만 고등학교 동창을 이곳, 저런 꼴로 볼 줄은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 서하는 실성을 한 듯 웃었고 하준이 인상을 쓰며 난간에 기대고 있는 서하를 소파에 강제로 앉혔다.

“노을이가 평범한 목마는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고로 말이 유명한 이유는 커다란 좆 아닙니까!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지?”

“네! 으흣……. 잘할 수 있어요. 빨리 넣어 줘요.”

룸에 설치된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노을의 모습이 생생히 보여졌다. 안장 위에 과연 들어갈까 싶을 정도의 딜도가 장착되었고 노을에게 앉으라 하였다. 거부할 만하나 이미 익숙해졌는지 노을은 반항 없이 목마 위에 올라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으윽. 잘 봐 주세요……! 힉!”

역시나 버거운 크기에 삽입하는 속도가 느려지자 야유가 퍼졌고 사회자는 손짓으로 직원을 불렀다.

“언짢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아직 승마 연습이 부족해서 그러니 양해 부탁드리고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도록 이 자리에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잠……아니! 못 해…….”

노을의 팔을 한쪽씩 잡은 두 직원은 노을의 어깨를 누르자 딜도는 노을에게 빨려 들어가 삼켜졌다.

“아악! 와…… 주셔서, 으읏. 감사합니다……!”

딜도가 완전히 들어간 배는 육안으로 봐도 튀어나와 흉측했으나 모인 사람들은 만족했는지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 그 뒤로도 목마를 관객석 주위로 끌고 다니며 노을을 가까이에서 보게 하였고 너도나도 노을을 만져 대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더러워.”

“그치, 더럽지. 그래서 느낀 점은 그게 단가?”

“너도 똑같아. 아니다, 더 더러워.”

서하는 감정 없는 눈으로 하준을 쳐다보았고 술잔을 세게 쥐는 손에 날아올 것을 예감했다.

“너도 똑같은 꼴이 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버리려면 버려. 여기나 너랑 같은 공간에 있는 거나 별반 다르지 않아.”

하준이 술잔을 쥐고 일어나 서하에게 다가갔고 뒷걸음치던 서하는 난간에 허리가 닿자 뒤를 쳐다보았다. 더 물러날 곳이 없는 상황에서 하준은 서하의 뒤통수를 잡고 쥐고 있던 술잔을 부어 서하에게 술을 마시게 했다.

“흐읍……읍.”

“처음 구멍이 뚫렸을 때가 생각나서 마시지 못하나? 근데 이거 어쩌지, 오늘은 봐줄 마음이 없거든.”

하준은 병째로 가져와 서하의 입에 술을 들이부었다. 반 이상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강제로 넘어간 술은 식도를 태우는 듯했다. 점차 의식이 몽롱해져 갔고 서하는 술을 마시지 않고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만 마시고 싶어?”

“…….”

“대답하면 멈추지. 윤서하, 그만하고 싶은가?”

서하가 손을 거두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눈이 풀린 채로 손을 하준에게 뻗는 서하에 하준은 하찮은 애완동물 같아 고개를 숙였다. 서하는 하준의 목에 팔을 두르고 웃으며 말했다.

“좆 까.”

하준은 서하의 어깨를 밀어 떨어뜨린 뒤 내려다보았다. 눈이 풀려 취한 상태에서도 실실 웃으며 입을 나불거리는 건방진 오메가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했다.

“로운.”

“네, 이사님.”

서하와 하준 둘 다 눈이 맛이 가 있어 로운은 한시라도 빨리 퇴근을 하고 싶었다. 퇴근 전에 만나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곳에 있는 자신이 너무 처량했다.

로운은 하준이 원하는 대로 룸을 나가 약을 받아 왔다. 히트사이클을 일으키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와 맞먹는 수준의 발정제였다. 몸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하준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처지여서 군말 없이 약과 양주 한 병을 가지고 룸 안으로 들어갔다.

“…….”

룸 곳곳에 퍼져 있는 하준의 페로몬에 로운은 숨을 참으며 약을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약만 먹으면 부작용이 클 것 같아 양주도 같이 두고 하준과 서하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눌려 있으면서도 눈빛 하나 죽지 않는 서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준은 서하를 누르고 있다가 로운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약만 가져오랬더니 쓸데없이 양주도 같이 들고 와 혀를 차며 로운을 내보냈다.

“나가 봐.”

“네, 알겠습니다.”

로운은 오늘 처음으로 행복한 기분이 들어 신나는 발걸음으로 룸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서하와 하준 둘만 남았다. 사회자의 말과 오메가의 교성 소리로 지옥이 따로 없는 곳에서 둘이 있는 공간만 따로 있는 듯 침묵만 맴돌았다.

“비켜.”

“…….”

카랑카랑하다가도 힘이 드는 듯 숨을 몰아쉬는 서하를 보면 정복감이 돌았다. 결국은 윤서하도 알파의 페로몬만 맡으면 울고 이성을 잃는 오메가였다. 히트사이클이 왔을 때 바락바락 대들지 아니면 교태스럽게 허리를 흔들며 박아 달라고 애원할지 호기심이 동했다.

“힉, 하지 마!”

하준이 서하의 머리채를 잡고 자신의 무릎에 앉힌 후 귀를 깨물었다. 단순히 깨물기만 하지 않고 반복해서 잘근잘근 씹고 핥아 무릎 위에 있는 서하가 떨며 떨어지고자 했다.

“어딜 그렇게 가고 싶어 해, 윤서하.”

“미친……놈……. 너 아주 단단히 돌았구나?”

두 손으로 하준의 어깨를 잡고 밀어내려는 반항은 하준에게 막혔지만 원하는 대로 해 줄 수 는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가며 피했다. 피하고자 슬금슬금 움직이면서 본의 아니게 하준의 아랫도리에 자극을 가했고 하준의 성기가 발기하기 시작했다.

“…….”

“표정 한번 장관이란 말이지. 그것보다 지금 자세, 화면이랑 비슷하지 않나.”

하준이 서하의 허리를 잡고 돌려 화면을 보게 하였다. 뒤에서 느껴지는 하준의 숨결과 엉덩이에 닿은 하준의 성기가 거슬렸다.

“다음으로는 오메가 제비뽑기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어느 자리에서 딜도가 나올지 맞혀 주시면 됩니다. 우리 오메가들 아주 예쁘게 떨고 있네요.”

오메가 5명이 밑이 뚫린 의자에 앉아 있었고 화면은 의자 아래를 잡아 줬다. 객석에 있는 알파와 베타들은 보지 못하지만 VIP룸에서는 정답을 공개하는 모양인지 4번 오메가가 앉은 자리에 돌기가 달린 딜도가 장착되어 있었다.

“싫어……. 싫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오메가의 덕목은 알파를 행복하게 해 주는 건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말 안 듣는 오메가는 벌을 줘야겠죠?”

2번 오메가가 싫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보냈고 사회자는 직원들을 시켜 오메가를 의자에서 끌어 내려 무대 한가운데로 끌고 왔다. 나체인 오메가의 오른쪽 유두에는 피어싱으로 이름표가 매달려 있었으나 서하는 읽을 마음이 없어 고개를 내렸다.

“기껏 보라고 데려온 건데 안 보면 섭섭하지.”

“저걸 즐겁게 보는 사람이 비정상인 거야.”

따박따박 말을 하고 있지만 서하의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어 하준은 흡족하여 서하의 어깨에 얼굴을 올리고 화면을 보았다. 구멍으로 받는 걸 두렵지 않게 해 주겠다며 사회자들은 2번 오메가에게 작은 크기의 딜도 3개를 넣었다.

“찢……으윽, 어져요……. 싫어요…….”

“역시 오메가는 말로 해서는 못 알아듣는 족속인 거 같군요. 빨리 깨닫기 바라면서 하나 더 넣도록 하겠습니다.”

공간이 없는 곳에 딜도 하나가 비집고 들어갔고 서하는 자신의 엉덩이가 아님에도 고통스러워 표정을 찡그렸다.

사회자가 반성했냐고 묻자 상황을 판단한 오메가는 울면서 교육을 해 줘서 감사하다며 객석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다가 몸을 돌려 엉덩이를 보여 줬다. 사회자는 웃으며 딜도의 모든 전원을 최고로 올렸고 오메가의 비명과 교성이 섞인 비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으읏……. 하, 읍. 좋아요……. 앙! 더, 아흐흥, 해 주세요.”

딜도끼리 부딪히면서 덜컥거리는 했으나 구멍에서 빠지지 않고 무자비에게 돌아갔다. 눈을 뒤집으며 꺽꺽거리다가 기절한 오메가 대신 2번 자리에는 새로운 오메가로 대체되었다.

서하는 허리를 감고 있는 팔이 강도가 약해져 내려오고자 했지만 하준이 한발 빨리 허리를 세게 껴안았다.

“구멍 가득히 박아 줬으면 좋겠어? 난 4개나 넣는 취미는 없는데.”

“그래. 대신 볼펜 11개를 꽂는 취미는 가지고 계셨지. 네가 저기 사회자 하지 그렇냐. 더 잘할 거 같은데.”

하준은 서하를 가볍게 들어 올려 소파에 눕혔다. 시야가 한순간에 바뀌어 속이 울렁거린 서하는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속을 진정시키기보다는 성적 의도를 담고 있어서 서하는 하준의 손을 쳐 냈다.

“자, 마지막 기회야 윤서하. 얌전히 우리 집에서 생활하겠어? 아니면 누군지도 모르는 알파들이나 변태 베타들에게 돌려지는 삶을 살래?”

“아까도 말했잖아. 네가 더 더럽다고……읍.”

더 이상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 하준은 테이블 위에 있는 알약을 꺼내 서하의 입에 넣었다. 필사적으로 뱉어 내려는 혀를 알약으로 누르며 하준은 알약이 녹을 수 있도록 혀에 문질렀다.

“으으읍.”

“이런 상황에도 반항하는 건 어찌 보면 칭찬할 일이군.”

침에 의해 약 성분이 들어가는 와중에도 서하는 하준의 손가락을 끊을 요량으로 턱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깨물었다. 무슨 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이 몽롱해져 가 삼키지 않고자 손바닥을 파고들 때까지 손톱을 박아 넣으며 하준을 노려보았다.

“무슨 약인 줄 아나? 저기 있는 오메가들이랑 똑같아지는 약이지. 구멍 안에 무엇이라도 넣어 달라고 천박하게 허리나 흔들고 기력이 다할 때까지 사라지지도 않지.”

약 효과가 슬슬 돌기 시작하는지 호흡이 빨라지는 서하를 보며 하준은 몸을 일으켰다. 하준이 일어나자 소파를 디디며 일어나려고 했던 서하는 시야가 흔들리고 몸에 열이 몰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소파에 쓰러졌다.

테이블에 앉아 양주를 마시던 하준은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쉬고 있는 서하를 감상했다. 붉은 혀 사이로 가루가 남아 있어 하준은 양주를 입에 머금고 서하의 입으로 흘려보냈다. 소파에 머리를 부딪치면서도 하준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서하의 뒤통수를 잡고 고개를 올리니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삼키는 소리가 났다.

목적을 이뤘음에도 하준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아 서하의 입 안을 포기하지 않았다. 질척거리는 소리와 중간중간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 룸 안에 울려 퍼졌다. 눈에 띄게 힘들어하는 서하였지만 하준은 서하의 호흡이 진정되기도 전에 또다시 서하의 입을 탐했다.

도망갈 수도 없이 몸을 구속하고 혀를 옭아매는 하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숨이라도 편하게 쉬고 싶었지만 아주 잠깐의 텀만 두고 다시 혀를 겹치며 허리를 쓸어내렸다. 하준이 먹인 약 때문인지 스쳐 지나가는 곳마다 억눌린 신음이 여과 없이 튀어나왔다.

하준은 승언과의 약속을 깨고 이제로 서하를 안을까 고민했다. 승언이 내건 조건은 욕심이 났으나 아직도 윤서하를 공유하자는 제안은 탐탁지 않았다.

똑똑.

“이사님, 모셔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주인은 나라는 걸 명심하도록.”

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철이 약속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오지 않은 하준을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서하의 신음이 들려 들어왔다. 자신의 주인이 곧 도착할 시간이니 미리 가서 준비를 해야 했다.

“서하 님, 잠시만 참아 주시길 바랍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서하를 호철은 담요로 둘러싸고 어깨에 들춰 멨다. 자세가 불편한지 서하가 담요 속에서 꿈틀거렸고 호철은 떨어지니 가만히 있으라며 주의를 주었다. 허리와 엉덩이를 받친 호철의 손과 걸을 때마다 반동에 의해 성기에 자극이 가 몸을 뒤틀었다.

“떨어진다고 했을 텐데요.”

짜악-.

“히익! 개새끼야, 왜…….”

호철은 주의를 줄 요량으로 가볍게 때렸다고 생각했지만 단련된 몸은 약한 세기를 내기는 불가능했다. 예민한 상태에서 엉덩이를 직격으로 맞은 서하는 맞으면서 사정했다는 수치심과 하필이면 호철에게 보였다는 점에서 분노해 호철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서하의 상황을 모르는 호철은 매가 약이라고 생각하며 상층으로 올라가 룸에 서하를 내려놓았다. 승언이 오기 전까지 준비를 하고자 호철은 손이 하얗게 셀 때까지 담요를 쥐고 있는 서하의 손을 떼어 내고 벗겼다.

“비켜! 건들지…… 마.”

“혼자서 하기에는 무리이니 도와드리려고 그럽니다.”

눈은 초점조차 못 맞추는 주제에 소리를 질러 대는 서하를 호철은 말 안 듣는 어린애 정도로 생각하고 배려 없이 옷을 벗겨 냈다. 하의를 벗겨 내다가 축축한 느낌에 호철은 소변이라도 쌌나 싶어 속옷까지 벗겨 확인하니 정액이 늘어지고 있었다.

“아까 맞으면서 싼 겁니까?”

“…….”

부러 호철이 엄지와 검지로 정액을 비벼 떨어지는 걸 서하에게 보여 주니 안 그래도 물들어 있던 얼굴이 이제는 터질 듯이 붉어져 통쾌했다.

욕실에 서하를 데리고 가 샤워기로 하반신을 향해 물줄기를 쏴 허벅지에 묻은 정액이 씻기고 밖으로 나왔다.

“또 사정하시면 안 됩니다. 예쁜 모습 보여 줘야죠.”

“…….”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 주는데 작은 성기가 존재감을 과시하듯 위로 서 있었고 호철은 엄하게 타이르며 성기를 툭 쳤다. 민감한 성기에 딱밤을 맞은 서하는 성기를 손으로 가리며 몸을 웅크렸다.

“흐으……. 하지 마. 건들지 마!”

[마 팀장님, 우는 모습 더 보고 싶은데 거기서 멈출 건 아니겠죠?]

인이어로 승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호철은 명령에 따라 서하에게 무슨 짓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승언이 허락해 줬으니 부하들의 억울함을 풀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호철은 서하의 상반신을 침대에 엎어지게 한 후 허리를 눌렀다.

“이렇게 맞이했다가는 노여움만 살 것 같으니 교육을 해 드리겠습니다.”

“네가…… 뭔데. 당장 꺼져.”

[마 팀장님.]

호철은 이를 악물며 서하의 엉덩이를 때렸다. 성적 의도로 오메가를 때려 본 적이 없어서 호철은 세게 때리면 되는 줄 알고 힘을 실어 때리자 서하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흐허어엉! 왜 이러는데……. 최하준이 흐윽, 윽, 시켰어?”

짜악-.

“아악! 그만……. 그만해 줘! 아파……. 아프다고.”

호철은 서하에게 당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아 점차 망설이지 않고 엉덩이를 때렸다. 흐릿한 불빛에도 엉덩이에 붉은색 손자국이 보였다.

[마 팀장님, 때리기만 하면 그게 교육인가요. 잘못했으면 빌게 해야지.]

“맞으면서 싼 거에 대한 교육이었는데 잘못을 빌지 않는 걸 보니 더 맞고 싶으십니까?”

“싫어……. 아파……. 터진 것 같아……. 히익! 따가워, 흐으윽.”

호철이 잘못을 빌라고 재차 말하니 서하가 몸을 떨며 억지로 사과를 했다. 승언이 인이어로 상으로 사정하게 해 주라 했고 호철은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서하의 성기를 위아래로 쓸어내렸다.

이미 사정을 해 예민한 성기가 만져져 서하는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에 바르작거리다가 사정했다. 이상하게 사정을 해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더 했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다.

“흐윽. 그, 그만……. 안 괴롭힐게……. 건들지…… 마.”

저자세로 떨고 있는 서하를 보며 호철은 발기하였고 카메라로 보고 있을 승언에게 들키지 않고자 재킷으로 앞섶을 가렸다.

승언이 마무리를 하고 나가 보라고 했고 호철은 행동을 조심하며 서하의 눈에는 안대를 씌우고 팔을 뒤로 해서 수갑을 채웠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랍니다.”

에어컨 바람에도 흠칫거리며 신음을 내뱉는 서하를 두고 호철은 방을 나섰다. 방 밖에는 승언이 있었다. 승언은 방문을 잡으며 호철에게 한 번만 봐주겠다고 이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야가 차단되니 작은 소음조차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수갑을 풀어 보려 했으나 조금의 틈도 없는 수갑과 시트에 몸이 스쳐 움직임을 멈췄다. 점점 숨이 가빠졌고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아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고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았으나 안대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걸음이 점차 다가왔고 서하는 몸을 뒤로 밀며 최대한 떨어지고자 하였다. 호철이 데리러 오기 전 최하준이 했던 말로 미루어 볼 때 진심으로 자신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떠보기 위한 행동인지 아니면 정말 다른 알파들에게 자신을 돌리고 기가 죽길 바라는 건지 생각해야 했다.

“누구……야?”

꽤 큰 손이 얼굴을 만져 서하는 경계심을 담아 상대방에게 물었다. 알파인가 베타인가. 서하의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가설들이 세워지고 있었으나 승언은 서하의 상황을 봐주지 않았다.

얼굴을 쓰다듬던 손이 목을 타고 내려와 유두를 잡고 손에서 굴렀다. 손을 떼어 내고 싶었으나 수갑에 막혔고 남자가 웃는 소리만 들려왔다.

“뭘…… 처, 웃어.”

목소리를 따라 비장하게 말을 했으나 허공에다가 말했는지 남자가 고개를 잡고 돌렸다. 서하는 알아서 위치를 알려 주는 남자에게 미소를 지었고 승언은 서하가 환히 웃기에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서하의 볼을 톡톡 쳤다.

“하……!”

서하의 타액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승언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자 만족했는지 서하가 숨이 넘어갈 듯 웃어 젖혔다.

약을 먹은 상태에서도 지치지도 않고 날뛰는 서하가 신기했으나 오랜만에 만난 형에게 보일 태도는 아니었다.

“너, 누구, 야……?”

페로몬을 푸니 일그러지는 서하의 표정을 승언은 얼굴에 침을 닦으며 감상했다. 그래, 이거였다. 자신의 페로몬을 기억하고 있는지 눈이 가려져 있었지만 그 속이 보일 정도로 당황스러워한 게 보였다. 불쌍하고 가련한 서하는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믿을지 아니면 배신했다고 믿을지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서하는 승언과 꼭 닮은 페로몬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사고가 마비되었다. 같은 향을 가진 알파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정교하게 페로몬을 갈무리할 수 있는 알파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승언인가 그렇다면 자신을 구하러 와 준 건가, 희망이 생겼다. 몸을 지분대는 게 이상했지만 하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라 여겼다.

승언이 자신이 납치당한 걸 알고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 구하러 온 게 분명했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승언이 분명해 서하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돌아갈 수 있었다.

“승언, 형. 형이야……?”

“…….”

유두를 만지던 손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쓸어내리고 있었고 페로몬도 내뿜고 있었다. 서하는 무릎을 꿇고 승언에게 다가간 허벅지에 고개를 묻고 서하라고 말했다.

“으흑. 형…… 괴로워. 멈춰 줘…….”

승언이 맞다면 지금 같은 짓을 자신에게 할 리가 없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고개를 들 수 없게 목덜미를 강하게 누르는 손에 서하는 이도 저도 못 하고 승언의 앞섶에 볼이 비벼졌다.

지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볼에 뜨겁고 단단한 무언가 닿았다. 불쾌한 감각에 몸을 뒤로 물렸지만 뒷목에 손이 머리로 올라와 머리채를 잡고 성기 쪽으로 가져갔다. 승언이 아니다. 아니어야 했다.

입에 들어오면 잘라 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입에 들어오기는커녕 볼 근처에서 문지르기만 하였다. 핏줄이 느껴지는 성기에 서하가 욕을 내뱉으며 잘라 버리고자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눈치챘는지 뺨을 때리며 침대에 고개를 눌렀다. 화끈한 고통에 서서히 정신이 맑아져 서하가 발버둥을 치니 남자가 혀를 차며 꺼진 침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곧 있어 호철의 목소리가 들렸고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약이 안 듣는다고 하셨는데 몇 알을…….”

승언은 대답을 하는 대신 손가락 2개를 펴서 호철에게 보여 줬다. 베타에서 발현한 돌연변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서하에겐 약이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약을 먹고 반항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입 안이 건조하여 서하는 침을 삼키면서 주위를 살폈다. 호철이 들어오면서 조금 밝아진 시야에 방문에 위치를 파악한 서하는 어깨를 잡는 호철의 손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으윽…….”

침대에서 잘못 내려와 발을 삐끗했지만 호철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 서하는 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문에 기대 있던 승언은 호철을 농락하는 서하에 감탄을 내뱉다가 달려오는 서하를 안아 주었다. 몇 달 만에 안아 보는 서하는 많이 말라 품에 들어오고도 한참 남았다.

“이……거, 놔!”

무의식적으로 말을 할 뻔한 승언은 답답해서 입이 근질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서하를 예뻐해 주는 게 급선무였다. 호철에게 눈짓하니 서하를 잡으러 다가왔고 서하는 앞과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초조해 발만 굴렀다.

“서하 님, 난폭하게 굴기 싫으니 일로 와 주십시오.”

“너 같으면…… 가겠냐?”

반말하는 서하라니. 승언은 수줍은 듯이 웃었고 호철은 표정을 갈무리하며 서하의 팔목을 잡고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하였다. 승언은 서하가 움직일 수 없도록 어깨에 팔을 감았다.

호철의 손가락이 입을 강제로 벌렸고 알약 2개를 넣었다.

서하가 뱉어 내려 혀로 알약을 밀었으나 뒤에 있던 승언이 서하의 입을 막고 턱을 잡아 고개를 돌려 올렸다. 삼키지 않고자 하였으나 가만히 있으니 침이 입 안에 고였고 턱을 잡은 손아귀에 결국 알약을 삼켰다.

“아…….”

승언은 서하의 입에 손가락을 넣고 휘저으며 입 안에 약이 남아 있지 않은지 확인했다. 약을 먹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서하를 안아 올려 침대 위에 눕혔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효력이 있는 약을 총 3알을 먹었으니 한동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었다.

벌써부터 흐물흐물해져 허벅지를 조물거려도 신음만 내지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승언은 고개를 숙여 서하에게 입을 맞추었다. 약을 먹은 오메가의 체온은 평소보다 높았고 연약한 입 안은 축축하고 뜨거웠다.

“흐으, 읍……윽.”

어느 영상을 보더라도 지금의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황홀했다. 혀를 옭아매도 가만히 있었고 입천장을 긁어내리면 몸을 떨어 댔다. 승언은 또다시 발기하는 서하의 성기를 보았다.

도망은 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정신이라도 유지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알파의 페로몬이 몸에 붙어 돌아다니는 것 같아 간지러웠다.

침대 시트에 몸을 비비며 간지러움을 해소하고 있는데 커다란 손이 허벅지를 벌렸다. 오므리려고 하니 페로몬이 더 뿜어져 나왔고 서하는 자신도 모르게 애처로운 목소리가 나왔다.

“으……. 싫어. 그……만.”

페로몬이 뇌를 주무르는 것 같았다. 구멍이 간지러워 허리를 띄우고 허벅지를 마찰시켜 쾌감을 느끼고자 하니 승언이 웃으면서 허벅지 사이에 손을 넣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박아 주지 않으니 천박하게 허공에 허리 짓이나 하는 서하를 벌주듯 허벅지 안쪽을 때렸으나 쾌감으로 받아들였는지 교성을 내질렀다.

“힉! 거기 아니야……. 하읏.”

“그럼 어디야? 말해 주면 해 줄 마음 있는데.”

이미 이성을 잃은 서하는 승언의 목소리를 듣고도 의심하지 않고 구멍에 성기를 넣어 달라고 했다. 승언이 짓궂게 성기를 어디에 넣어야 하냐고 되물으니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입을 벌렸다.

“천박한…… 오메가의…… 뒷구, 멍에…… 알파 님의 자지를 넣어…… 주세요.”

“그래, 최하준은 이런 거 안 시켰다는데 아쉬웠어.”

언뜻 하준의 이름이 들릴 것 같았으나 서하는 구멍의 간지러움을 해소해 줄 성기만을 기다렸다. 곧 있어 구멍에 한 번에 들어오는 성기에 힘겨워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었으나 발정 난 구멍은 성기를 무리 없이 삼켰다.

“히익! 으윽, 좋……아. 더, 더 해 줘.”

승언은 서하의 반응을 즐기며 허리 짓을 하였다. 오메가를 안는 취미는 없지만 자신과 서하의 영상을 하나쯤은 간직하고 싶었다. 서하와 한집에 살았을 때도 충분히 가능했으나 다정하게 하는 것보다는 서하를 데리고 여러 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서하야, 어디에 찔러 줬으면 좋겠어?”

“흐아,아! 깊이…… 더, 깊이…… 멈추지…… 마.”

행동을 멈추자 허리를 흔들며 쾌락을 찾아가는 서하였고 그럴수록 승언은 더욱 애타게 약간씩 쳐올리기만 하여 수치스러운 질문을 했다. 대답하기 부끄러운 질문을 했음에도 서하는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고분고분 대답했고 승언은 상을 주듯 전립선을 찌르며 서하가 벗어날 수 없도록 껴안았다.

“좋……아! 더, 아니……. 싫, 어……. 좋아!”

“하나만 해야지, 서하야. 구멍은 놔주기 싫다고 오물오물 잘 말하는데 왜 윗입은 솔직하지 못할까.”

인지 부조화라도 왔는지 서하는 좋다와 싫다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구멍은 승언의 성기를 자를 기세로 조이고 있었다. 곧 사정할 것 같아 승언은 속도를 늦추며 서하에게 질문했다.

“서하야, 최하준이 좋아 내가 좋아?”

“흐윽, 흑! 몰라……. 너, 몰라…….”

최하준이 싫다는 대답을 바랐는데 낯선 사람이 더 싫은지 입을 다무는 서하였고 승언은 답을 바르게 하지 않은 아이에게 사탕을 뺏듯 성기를 서서히 빼냈다.

“싫어. 빼지…… 마. 네……가 좋아! 최하준…… 싫어.”

“구멍 안에 싸 주길 원해? 좆물 넣어 줬으면 좋겠어?”

“으응. 가득, 간지러……워. 빨리!”

“그러다 임신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최하준이 남의 새끼를 밴 오메가를 살려 줄까?”

“히……익! 몰라. 빨리…… 힘들어…….”

움직임이 격해지자 안대가 서서히 내려왔고 눈물점이 있는 오른쪽 눈이 보였다. 붉어진 눈가와 유순하게 처진 눈매에 승언이 속도를 올려 허리 짓을 하니 새된 교성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잘 받아먹어야 해. 우리 서하.”

많은 양의 정액이 구멍 안으로 쏟아져 내렸고 본능적으로 정액을 흐르게 하지 않고자 구멍을 조이는 서하였다. 성기를 빼낸 승언은 수갑으로 인해 불편한 자세로 쓰러진 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그만…… 힘들어…….”

“네가 먹은 약 앞으로도 효과가 지속하는데 형은 지금 바빠서. 외롭지 않게 장난감이라도 붙여 주고 갈 테니까 재밌게 놀아.”

승언이 룸에 구비되어 있는 도구를 보다가 구슬 여러 개가 연결된 애널비즈를 꺼냈다. 산란플을 하고 싶은 알파들이 많이 사용한다는데 룸에도 구비되어 있을 줄 몰랐다. 승언은 호기심에 비즈 하나를 서하의 구멍에 넣었다.

“빼…… 빼 줘. 아……파……. 아파!”

“잘 먹어야지. 형이 주는 건데.”

서하는 아까부터 자신을 형이라고 말하는 알파가 역겨웠다. 오른쪽 눈이 흐릿하게 보이기는 했으나 약 기운 때문인지 얼굴이 인식되질 않았다.

“으, 으윽! 찢어……져. 터질, 것 같아…….”

“예쁘다, 우리 서하. 형 봐 볼까?”

애널비즈 8개를 모두 삼킨 구멍은 부어 있었다. 승언은 거의 흘러내린 안대를 내렸다. 서하는 초점이 맞지 않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더 오래 속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승언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찰칵- 찰칵-.

플래시가 터지면서 촬영 소리가 났고 서하는 몸을 움츠리며 피하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눈물만 흘렸다. 배 속이 터질 듯해 비즈를 남자가 빨리 빼 주길 바랐으나 변태같이 실실 웃으며 지켜보더니 목 쪽에 무언가 채울 뿐이었다.

“어……?”

목을 조이는 물체에 서하는 사고가 마비되어 애널비즈도 잊고 몸을 멈췄다. 이 감촉은 하준이 자신에게 목줄을 채웠을 때와 똑같았다. 남자가 룸을 나갔고 서하는 흐릿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하준이 올 때까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

거울을 보니 피골이 상접한 얼굴이 있었다. 눈은 생기를 잃어 탁하기 그지없었으나 서하는 얼굴보다는 목에 걸린 목줄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목을 빼곡하게 조이는 목줄은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게 했으며 그날의 일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던 촉감과 함께 승언의 다정한 목소리를 흉내 냈던 목소리까지.

거울을 보지 않으면 괜찮을까 싶었지만 모습을 확인하지 않으면 누군가 만지고 있는 것만 같아 거울을 통해 홀로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긁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언제 손이 목을 긁고 있었는지 하준이 손목을 잡고 나서야 알아차렸고 거울로 보니 붉게 생채기가 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려 오는 상처에 눈을 찌푸리니 하준이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귀를 스치고 흘러갔고 거울 속에 있는 자신에게만 집중했다. 하준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일어나.”

“건들지 마!”

눈을 잠깐 감은 사이에 하준이 허리에 손을 대고 일으키려고 하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어 소리치며 하준이 손을 떼어 냈다. 눈을 감는 잠시의 시간도 억겁과 같았다.

눈을 감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하준을 경계하기를 택했다.

“치료라도 하게 침대로 와.”

“…….”

한 번 긁으니 계속해서 긁고 싶었고 무의식적으로 손이 목으로 올라갔지만 다른 손으로 잡아채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감정도 조절되지 않았고 분명 자신의 몸인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미쳐 가는 게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어……?”

“안심해.”

명치 부분에서부터 하준의 손이 움직였다.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니 얼굴까지 손이 올라와 머리에 안착했다. 손을 보지 못한 서하는 손 대신 하준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에 얼굴을 찌푸렸다.

“치워.”

“경계심이 많을 때는 이렇게 하라고 책에서 나오더군.”

또 무슨 같잖은 짓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손이 뻗어져 나와 허리를 감았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무엇이 다른 건가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새 하준의 품속에 안겨 있었다. 내려 달라고 말해 봤자 들어주지 않을 게 뻔해 하준에게 머리를 박으니 질책은 하나 내려놓지는 않았다.

“손을 묶어 놓아야 하나.”

“물어 버릴 거야.”

“재갈도 채워야겠군.”

“발로 차 버릴 거야.”

“다리도 묶이고 싶은 건가?”

“…….”

영양가 없는 대화에서 본전도 못 찾아 입을 다무니 피곤함이 몰려와 눈이 절로 감겼지만 두려움이 엄습해 올까 눈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러나 의지에 반한 몸은 눈이 감겼고 바로 떴다고 생각했는데 정웅이 목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게 보여 뒤로 물러나며 손을 쳐 냈다.

탁.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

휘둥그레진 서하의 눈에 정웅이 한 발짝 물러나며 치료를 하기 위함이니 경계를 풀어 달라고 했지만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침묵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정웅이 다가왔고 정웅의 발소리와 숨소리, 손에 들린 약까지 본 서하는 안쓰럽게 몸을 떨어 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후……. 두고 나가 봐.”

“하지만……. 네, 알겠습니다.”

정웅이 방을 나갈 때까지 빤히 쳐다보던 서하는 나가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침대에 누워 베개를 껴안았다. 하준도 나갔으면 좋겠으나 나가지 않을게 뻔했기 때문에 누워서 하준을 감시하듯 쳐다보았다. 침대 시트에 쓸린 목이 기분 나쁜 고통을 전달했지만 제대로 자지 못한 몸은 고통을 무던하게 했고 하염없이 가라앉게 했다.

서하가 잠들어 가는 걸 보던 하준은 잠을 재워야 할지 상처를 치료해야 할지 망설였다. 밥을 먹지도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몸은 조금만 부딪혀도 멍이 들었고 억지로 먹이면 토하기 부지기수였다. 호흡이 느려지기 시작하니 곧 있으면 잠에 빠져들 것 같았으나 침대 시트에 쓸려 더 벌어지는 상처에 하준은 서하를 억지로 일으켜 앉게 하였다.

“짜……증 나. 건들지 좀 마.”

“살이 썩고 싶은 게 아니면 가만히 있어.”

한계가 왔는지 몸은 계속 축 처졌으나 정신은 자면 안 된다는 강박에 혼란스러워져 머리를 흔드니 골이 울려 어지러워졌다. 되는 일이 없어 화준에게 화풀이를 하며 저번과 같이 한 대 맞을 각오를 했으나 때리지 않았다.

“어차피 발라도 또 긁을 거야.”

“안 긁으면 되겠군.”

소독약으로 상처를 닦아 내자 아픈지 몸을 뒤로 물리는 서하를 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으나 몸부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상처에 닿아 부글거리며 기포가 올라오는 걸 보며 하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흐윽. 아……파. 놔둬…….”

“…….”

클럽에 다녀온 후 얌전해진 건 좋았으나 눈에 띄게 정신이 불안해진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박적으로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었고, 한눈을 파는 사이에 목줄을 풀어내려고 한 건지 목을 헤집어 놓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호철에게 서하를 부탁하고 회사에 다녀오니 상처는 치료가 되기는커녕 더 심해져 있었고 진물이 흘러 목줄과 엉겨 붙어 있었다. 아픈 와중에 긁으면 순간적으로 시원한지 계속해서 긁어 댔으며 고통이 몰려왔을 때는 표정을 찌푸리며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얻은 것보다 손해가 더 큰 클럽 방문에 하준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클럽에 왔던 알파들이 윤서하를 보고 더 이상 오메가를 들이미는 일은 사라졌으나 윤서하는 망가지고 있었고 천하의 알파가 오메가의 시중을 들고 있는 꼴이 되었다.

“윤서하, 시간 끌수록 너만 아파.”

“안 하면 되잖아. 어차피 또 덧날 거야.”

몸서리칠 정도로 싫은지 기어코 침대 헤드까지 기어가 시트를 쥐어뜯는 서하를 보며 하준은 한숨을 쉬었다. 다친 오메가를 안는 취미는 없으니 치료가 급선무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계심을 풀어내는 게 관건이었다.

“빨리 끝내 줄 테니 협조하지.”

“…….”

앞으로 다가오는 서하에 안도했으나 거실로 홱 하니 나가 하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종잡을 수 없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며 사슬을 쫓아가니 서하는 거실 구석에 앉아 있었고 옆에서는 호철이 서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켜.”

“그럴 수 없습니다. 서하 님이 방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저는 서하 님 곁에서 떨어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불안한지 목을 긁으며 상처를 헤집는 서하에 걸음을 바삐 옮겨 서하 앞에 선 하준은 호철에게 가 보라고 지시했다. 하준의 명령에 알겠다고 하면서도 서하를 끊임없이 지켜보는 호철에 언짢아진 하준이 몸을 돌려 서하를 볼 수 없게 하니 마지못해 호철이 뒤로 물러났다.

“이거야 원. 다시 소독을 해야 하지 않나.”

머리채를 아프지 않게 쥐고 고개를 들게 하니 마르지 않고 남아 있는 소독약과 흐르는 피가 만나 연분홍색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목줄로 인해 2차 감염이 우려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는지 눈을 굴리며 벗어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씻기고 올 테니 의사를 불러 놔.”

“알겠습니다.”

씻긴다는 말에 자리를 피하는 서하의 사슬을 발로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자연스럽게 승언에게도 연락을 취할 테니 자신의 행동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기를 바랐다. 치기 어린 행동으로 오메가의 정신을 무너뜨리다니, 어린 알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 온도는 맞나?”

“…….”

따듯한 물에 넣어 놓으니 노곤하게 풀리는 얼굴을 보고 한숨 돌리며 머리에 물을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서하는 눈에 물이 들어가는데도 감지 않고 하준의 손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야가 암전이 되었다.

“아악! 싫어, 싫다고……. 놔…….”

“……괜찮아, 윤서하……. 쉬……. 착하지.”

비명을 지르는 서하에 당황한 하준은 샤워기를 놓치고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며 서하를 안아 주었다. 서하가 우는 것을 볼 때마다 클럽에 데려간 것도 자신이고 기가 죽길 바란 것도 자신이었으나 후회하고 있는 것도 자신이어서 하준 역시 혼란스러웠다.

며칠 전 클럽에 데려간 자신을 탓하며 달려드는 서하에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고개가 돌아갔고 뺨이 부어올라 상태를 보기 위해 다가갔으나 냉정한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누군가 심장을 잡아 뜯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었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샤워기에서 물이 끝도 없이 나와 서하는 물론이고 하준도 젖게 했지만 하준은 서하가 진정될 때까지 껴안고 놔주지 않았다. 욕조의 물이 차게 식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진정한 서하에 하준은 물의 온도를 맞추고 벽에 기대 서하가 씻도록 물러났다.

일어나는데도 현기증이 나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몸 곳곳에 거품을 묻히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서하에 하준은 샤워기로 거품을 씻겨 냈다. 처음에는 길길이 날뛰었으나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거품칠까지만 하고 하준이 오기를 기다리는 서하였다.

“더 있을래.”

“안 돼. 물에 너무 오래 있었어.”

물을 찰박거리는 서하에게 가운을 입히고 화장대에 앉혀 고개를 들게 하였다. 피는 물에 씻겨 나갔지만 상처에 물이 닿아 부르터 있었다. 머리를 말려 주는데 드라이기 선을 꼬아 대며 노는 서하에 하준은 착잡해졌다.

“도련님, 오셨는데 들여보낼까요?”

“싫어.”

“아니, 나갈 테니 준비하라고 해.”

그나마 방은 안전한 곳이라고 인식했는지 타인이 들어오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으나 자신은 허락해 주는 것 같아 하준은 미소를 지었다. 승언이 아무리 목줄을 채워 놓고 가 봤자 서하는 승언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자신에게 스며들어 있었다.

“웃지 마.”

“나가지.”

잡아 주려고 하니 손을 뿌리치고 거실에 나가더니 잠깐 사이에 의사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의사 윤리를 언급하며 두고 갔기에 지금의 꼴이 된 거라며 화를 내다 어지러운지 비틀거리는 모습에 자동으로 몸을 움직여 서하를 붙들었다.

“이게 무슨…….”

“지가 처잡고 뭐라는 거야…….”

손을 놓고 왜 서하에게 다가갔는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서하는 타깃을 바꿔 하준에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의사만 가운데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니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소파에 앉아 서하를 무릎 위에 앉히고 허리를 붙들어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놔. 대가리 깨지고 싶어?”

“…….”

고개를 뒤로 젖히며 박으려고 시도하는 서하를 피하고 한 손은 풀어 서하의 턱 아래를 잡고 고개를 젖히고 있게끔 했다. 육두문자를 내뱉는 서하에 익숙해진 하준은 타격이 없었으나 의사는 당황했는지 자리에 멈춰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구경하러 온 거면 나갔으면 좋겠군.”

“아닙니다……. 너무 젖히지는 말아 주십시오. 상처가 더 벌어집니다.”

손에 힘을 푸니 숨을 크게 들이쉬는 서하에 하준은 힘을 세게 주었음을 알았고 미안하다는 의미로 검지로 볼을 쓰다듬었다. 바로 물려고 하는 서하에 피하지 않고 물리니 서하 본인이 더 당황했는지 행동은 멈췄으나 문 손가락은 놓아주지 않았다.

“빨리해.”

상처를 본 의사는 눈을 찌푸리며 소독을 했고 서하의 버둥거림에 멈추자 하준은 계속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의사는 목줄이 있으면 계속해서 덧날 게 분명해 하준에게도 언질을 주었으나 목줄은 여전했다. 하지만 알파들의 일에 깊게 끼어들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으윽……. 읍.”

“혀 씹지 말고.”

연고를 바를 때까지 하준은 손가락을 빼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쓰라린지 상처가 건드려질 때마다 손가락을 무는 힘이 강해졌으나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작게 앓는 서하를 다독이다가 소파에 눕히고 의사에게 다가갔다.

“무슨 할 말이라도?”

“확실히 치료할 방법은 없나?”

“긁지 않는 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게 어렵다면 손이라도 묶어 두심이…….”

쿠션이 의사에게 날아왔으나 호철이 쿠션을 잡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날릴 사람은 서하가 유일해 쳐다보니 분한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화가 난 걸까 싶어 곰곰이 생각하니 의사가 제안한 방법 중 손을 묶으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여 서하와 눈을 마주쳤다.

“왜 이렇게 화났어.”

“…….”

자신은 쳐다보지 않고 여전히 의사를 노려보고 있는 서하의 눈길을 돌리고자 턱을 잡았다. 손짓으로 나가라고 하니 허둥지둥 짐을 싸는 의사와 쿠션을 소파에 내려놓는 호철까지. 하준은 윤서하의 시선을 앗아 가는 존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하를 달랙고 허옇게 질려 있는 의사에게로 갔다. 할 말이 있다면서 입을 뗐으면서 서하의 눈치를 보는 의사에 한숨을 작게 쉬며 자리를 옮겼다. 서하와 거리가 벌어졌으나 호철과 정웅, 하준까지 총 세 사람이 서하가 돌변하지 않을지 감시하였다.

정작 서하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기에 경계를 낮추며 의사를 보았다. 아직도 땀만 흘려 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서하의 말대로 능력만 좋지, 줏대도 없고 자기주장도 없어 보였다.

“빨리 말하고 가 줬으면 좋겠군.”

“조만간 히트사이클이 올 것 같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히트사이클? 베타인데 어떻게 아는 거지?”

형질을 속였나 싶어 의사를 훑었지만 페로몬은 느껴지지 않았고 의중을 떠보기 위해 눈을 맞추니 겁은 먹은 채로 오랜 기간 의사를 하면서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하준이 묵묵히 쳐다보자 히트사이클이 오기 전에 감정 기복이 심하고 조그마한 자극도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 뒤 부랴부랴 떠났다.

“들어갈래.”

하준은 대화가 끝난 걸 알아차렸는지 소파에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가는 서하의 뒤를 따랐다. 거울 앞에 앉아 목줄을 만지작거리는 서하를 응시하고 있었으나 서하는 하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누구였어?”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박승언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너한테서 도망쳤을 때도 승언 형이 도와줬어. 근데 네가 처넣은 방에 승언 형이 들어온 게 말이 돼?”

정확히는 채운 걸로 끝난 게 아니었으나 서하는 하준에게 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 싫어 생략했다. 하준이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자신을 속이기 위한 계략이라 생각하며 끊임없이 부정했다. 방에 들어왔던 알파는 언뜻 목소리가 승언 같았지만 눈이 가려져 있어 판단력이 떨어진 거라 생각했다.

“왜 받아들이지 못할까……. 영상이라도 보여 줘야 믿겠나?”

하준이 방을 나가더니 USB를 손에 쥐고 돌아왔다. 미심쩍게 보고 있는데 노트북이 무릎 위에 올려졌다. 영상 속에는 눈이 가려져 있지만 자신의 모습이 맞았다. 지옥 같았던 날이 영상으로 남아 있어 정신이 아득했고 의미 없는 웃음만이 새어 나왔다.

“다 알고 있었어……? 근데 왜 모르는 척해. 왜 또…… 나만…….”

“믿지 않는 거 같아서 말이야. 재생하고 박승언의 얼굴을 보면 되겠군. 못 틀겠으면 대신 해 주고.”

하준의 검지가 노트북을 향했고 마우스패드를 눌러 재생할 것 같아 노트북을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더더욱 승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승언이 맞는다면 모든 걸 포기할 것만 같았다. 부모님과 사훈, 지호까지 승언과 엮이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에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욱이 승언이 자신의 부모님을 지켜 주고 있다는 것만 믿고 있었다. 하준과 승언이 한편이라면…….

떨어진 노트북을 주워 화장대에 올린 하준은 서하를 내려다보았다. 충격을 많이 받았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과 대조적으로 열이 올라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페로몬을 조절하지 못하는 오메가는 구미를 당기게 했다. 히트사이클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이다. 5년간 기다려 온 일이었으니 길어야 2주 남짓 정도 되는 시간은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었다.

“불 꺼 줄 테니 조금은 눈이라도 붙이는 게 어떤가?”

“…….”

불을 끄려고 하니 노려보는 서하에 하준은 어깨를 들썩이며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막힌 창문은 햇빛 한 점 들지 않아 유일하게 방을 비춰 주는 건 형광등뿐이었다. 어둠에 트라우마라도 걸렸는지 서하는 불을 끄는 걸 견디지 못했다.

쓰러지면 재우고자 싶어 문에 기대어 주시하고 있으니 서하는 머지않아 바닥으로 몸이 추락하였고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 안아 들었다.

파우더 향에서 달큼함이 느껴져 하준은 서하와 함께 침대에 누워 페로몬을 힘껏 들이마셨다. 대놓고 유혹적인 향을 풍기는 오메가들보다 풋풋한 향기를 풀어내는 서하에게 더 마음이 갔다.

“명심해, 윤서하. 넌 박승언이 아닌 나를 택해야 하는 거야.”

잠든 사람에게 혼잣말을 하는 꼴이 여간 이상한게 아니었으나 세뇌를 시키듯 되풀이했다. 박승언의 계약을 따라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약점을 쥐고 있어 건들기에 녹록치 않았다.

“싫……어.”

“…….”

꿈에서조차 고통스러운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어 손가락으로 미간을 문지르니 표정이 풀어졌다. 페로몬이 새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많이 망가진 서하를 두고 하준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방 밖으로 나오니 정웅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도련님, 회장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당장 연락하라고 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할 참이었으니 기다리라고 해. 곧 관짝에 들어갈 노인네가 기운 한번 좋군.”

욕심 가득한 양반이 만족하지 못하고 일을 벌였고 화살은 고스란히 하준과 회사에게로 날아왔다. 전화를 걸자마자 호통부터 치는 영준에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리며 건강 관리에 유의하라고 하니 화를 삭이지 못하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오메가 하나 관수 못 하는 놈을 내가 후계자로 인정할 것 같아!]

“저 말고는 변변찮지 않은 놈들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회장님 덕분에 곤란한 상황에 처한 건 저인데 말이죠.”

찔리는 게 있는지 헛기침을 하는 영준에 비소를 날리며 하준은 경거망동하지 말라 경고했다. 나이로 보나 직위로 보나 하준보다 한참 높은 영준이었으나 하준의 말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단순하고 아둔한 사람이 회사를 설립하고 유지한 게 놀라웠지만, 그 당시에는 형질의 우월함만 보여 줬으면 된다는 걸 떠올리니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난 양반이라 여겼다. 영준에 대한 존경심은 없었지만 연장자의 대우는 해 주고자 하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쓸데없는 짓을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 절 선두에 세웠으면 그에 합당한 대우는 해 주셔야지요.”

[크흡. 박씨네 그놈들이 잡고 흔들어 봤자 나랏밥 먹는 족속인 것을……. 신경 쓰지 말거라. 넌 윤서하, 그 아이 마음만 얻으면 된다. 그것도 이 할아비가 다 해 뒀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세히 알 것 없다. 부모 잃은 오메가가 기댈 수 있는 게 알파밖에 더 있겠느냐.]

비열하게 웃는 영준의 웃음소리를 듣기 싫어 하준은 전화를 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새 이불을 팽개치고 몸을 웅크리며 자고 있는 서하의 몸을 펴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서하는 목의 상처는 아물어 갔지만 여전히 몸은 무거웠고 숨을 쉬기도 벅차 편한 자세를 찾고자 몸을 뒤척였다. 공기가 너무 습하고 뜨거웠으며 몸에 붙는 옷의 감촉조차 거슬려 떼어내 고 싶었으나 손을 묶고 있는 끈을 풀 수 없었다.

“일어나 있었나.”

“풀어.”

양손을 하준에게 내밀었으나 풀어 주기는커녕 얼굴로 오는 하준의 손을 물었다. 묶인 뒤로 하준을 종종 입으로 물었으나 새로운 취향이라도 생겼는지 물린 채로 반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쳐 가는 게 자신이 아닌 하준인가 싶어 전의를 상실한 서하는 손을 뱉어 내자 잘못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

“변태 새끼야……. 손 풀라고 했지. 누가 만지라고 했어……?”

“손을 내밀고 올망졸망하게 쳐다보기에 만져 달라고 하는지 알았는데 말이지.”

손을 풀어 주며 페로몬을 풀어내는 개수작에 하준의 허벅지에 발길질을 했으나 발목이 잡혔다. 조금만 움직여도 바닥에 끌려 소리가 나는 사슬에 행동이 읽혀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몸은 어떻지? 의사를 부를까 하는데.”

“평소랑 같아. 덥고 축 처지고…… 더위 먹은 것 같아. 아…… 눈이 잘 안 보여.”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다가갔더니 자신의 손길은 피하지 않았다. 가끔 놀랐는지 입질을 할 때가 있었지만 피하지 않고 물려 주니,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축 처져 있다가도 생기가 돌았다.

로운에게 받은 『반려동물에게 다가가기』를 읽고 서하를 대할 때 사용했더니 잘 먹혀 성깔 있는 고양이를 침대에 들인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열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안 보이는 걸 수도 있으니까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특히 넘어지지 말도록.”

“사슬 채워 두신 분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고개를 치켜들며 뻔뻔한 것도 유분수라며 중얼거리는 서하의 다리는 멍으로 가득했다. 장해물이 없음에도 혼자서 넘어졌으며 그나마 호철과 자신이 잡아서 얼굴에는 멍이 없었다. 히트사이클이 오기 전에 오메가는 외부 환경에 너무도 약했다.

“페로몬 때문에 숨쉬기 힘드니까 풀지 마.”

“나 때문이 아니라 네가 페로몬을 질질 흐르고 있으니까 회복이 안 되는 거지. 어려서 잘 모르는 건가?”

28살을 먹고 어리다는 말을 들어 황당해 쳐다보니 일부러 농을 한 듯 하준이 재수 없게 웃고 있었다. 하준이 이렇다 할 위협도 가하지 않았고 감금에 익숙해진 건지 이제는 두려움도 들지 않아 반 체념을 한 서하는 가족도, 승언도 안전해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합리화했다.

바깥에서 몸 상태가 이랬다면 대다수는 병원에 데려가는 게 아닌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찍어 누르고 욕망을 채우기 급급했을 거다.

“딴생각 그만하고 저녁 먹으러 나가지.”

“벌써 밤인가……? 아닌데 더운데……. 낮이지?”

하준을 방에 두고 홀로 거실로 나간 서하는 창문 사이로 보이는 어둠에 혀를 찼다. 하루하루 의미 없이 보내다 보니 시간 감각이 둔해지고 있었다.

“서하 님. 저녁 드시러 나오셨습니까?”

“오늘 며칠이에요?”

“7월 12일입니다만……?”

정웅이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물어봤지만 서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이 편하다고 현실에 안주해 버리고 안도한 자신이 역겨워 입을 틀어막고 웃어 댔다. 흐린 시야로 호철의 경멸이 담긴 눈빛이 보인 것 같았으나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뭐가 문제야, 윤서하.”

“나 여기 온 지 얼마나 지났어?”

흔들리는 눈으로 팔목을 잡고 떨고 있는 서하에 하준은 서하가 온 날을 계산해 보았다. 오메가의 날로부터 대충 두 달이 지났다고 하니 욕을 내뱉으며 주저앉는 서하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정신이 나간 서하를 눕히고 거실로 나가 정황을 물으니, 정웅이 서하가 날짜를 듣고 충격을 받은 듯 방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자신에게 드는 혐오감으로 인해서라고 판단한 하준은 서하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자고 있는 줄 알고 쓰다듬으려고 하니 눈을 뜨며 매섭게 쳐다보았으나 묘하게 초점이 빗나가 있었다. 서하는 하준의 멱살을 잡고 침대에 눕힌 뒤 위에 올라타며 하준을 원망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래. 그러니, 넌 이제 못 나가.”

호기롭게 깔아 두고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서하를 하준은 안타깝다는 듯 눈물을 훔쳐 맛을 보았다. 페로몬에 온몸이 절여져 있으니 눈물에도 맛이 날 줄 알았으나 짜기만 했다. 몇 시간 뒤면 생일이니 마음껏 하게 두고 있었는데 갈수록 복받치는지 진정하기는커녕 더 서럽게 울어 댔고 주인의 기분을 반영한 페로몬이 울렁거리며 방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진정해야지.”

“다, 너, 때문이야…….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왜! 왜…… 비참하게 만들어……. 나도 인간인데…….”

배에 올라탄 서하가 울 때마다 하반신이 비벼졌고 페로몬도 강하게 맡아져 하준은 위치를 바꿔 서하를 침대에 눕혔다. 눈물이 눈가를 타고 흐르고 있었고 곧 있어 반항할 거라 여겼지만 조용히 눈을 감는 서하에 하준은 도리어 언짢아졌다.

어째서, 이제 와서 체념한 것인가 생각을 하다가 숨조차 작게 내쉬는 서하에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진 하준은 서하의 옷을 벗겨 내며 몸부림치기를 기대했다.

“어째서 가만히 있는 거지?”

“으읏. 어차피…… 마음대로 할 거잖아. 숨 막혀, 놔……. 차라리 감금된 걸 느끼는 게 나아. 나는 안주한 게 아냐……. 그냥…… 그래, 네가 나쁜 거야.”

가슴에 올라와 있는 손에 압박되어 호흡이 힘든지 말이 끊겨서 나왔지만 결론은 의지를 잃고 체념한 것이었다. 분명히 원하던 상황이었고 기뻤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기분은 한없이 더러워졌고 나락으로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왜, 안…… 해?”

“…….”

몸이 찌뿌둥한 게 사라지지 않았다. 허공에 떠 있는 듯했고 근육통처럼 미약하게 욱신거렸고 시야는 뿌옜다. 하준의 페로몬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몸 구석구석을 훑으며 손톱으로 긁고 가는 듯했으며, 하준의 숨결조차 자극으로 다가왔다.

똑똑.

“도련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일전에 도련님께서 알리라고 했던 분이라…….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정웅의 목소리에 하준은 서하의 위에서 내려와 방문을 닫았다. 비디오폰으로 확인을 하니 웃고 있는 승언의 얼굴이 보여, 하준은 호철을 보내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짠! 생일 파티라도 해 주는 거 아니었어요? 여기 대우 별로네. 그렇지 않아요, 마 팀장님?”

“…….”

딱딱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정웅에게 케이크 상자를 건넨 승언은 하준의 방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준에게 곧장 막혔지만 방 안에서 페로몬이 넘쳐흐르는 걸 보니 히트사이클이 머지않은 것만 같아서 하준을 떠보았다.

“생일날 히트사이클이라니 신기하지 않아요?”

“지금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군.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거 같아서 말이지.”

“저보고 변태라고 하면서 안아 달라고 하는 오메가를 가만히 두고 보라니……. 참다가 싸는 게 취미이신가?”

승언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하준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서하가 승언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으나 만약에 승언이 좋다고 안긴다면 제정신으로 있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안녕, 서하야. 이런……. 안대가 없어도 잘 보지 못하네.”

“…….”

흐릿하게 승언의 형상이 보여 서하는 고개를 젓고 발로 시트를 밀며 헤드에 등을 기댔다. 하준의 말이 사실인가 싶어 숨이 막혀 왔으나, 비슷한 사람을 보고 착각을 했을 수도 있기에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승언 형이야. 잘 지냈어?”

“하, 하하……. 장난이지? 다 짜고 이러는 거지……. 너, 승언 형 아니잖아…….”

속에서 무언가 올라와 참아 보려고 삼키었으나 계속해서 올라왔고 결국 바닥에 뱉어 냈다. 토를 했음에도 끝나지 않고 울컥 올라왔고 쓸개즙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입 안에 비릿한 맛이 맴돌아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가까이 왔는지 남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넥타이핀 정말 잘 쓰고 있어. 다음에는 직접 끼워 줄 거지?”

“하…….”

이 세상에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지 자신을 통해서 실험을 하는 것만 같았고 설상가상으로 두 알파의 페로몬을 맡아 발정 난 몸에서 애액과 울컥 터졌고 온몸이 간지러웠다.

서하의 표정을 보고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전율이 울려 퍼졌고 기분에 맞추듯 페로몬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오메가와 알파의 페로몬이 한데 뒤섞여 있는 방 안 공기는 무거우면서도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초점이 약간 빗나간 시선이 오히려 배덕감을 주었고 아름다운 조각상을 감상하듯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니죠……. 승언 형……. 구하……러, 읍, 와 주신 거…….”

“더 울어 볼래, 서하야?”

간신히 웃고 있었는데 180도 달라진 승언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 몸이 안 좋아서 환청이 들리는 게 틀림없었다. 승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떨리는 입꼬리를 들어 올렸으나 얼굴을 매만지는 손길이 거칠어졌다.

“그게 아니지, 서하야. 형이 지금 울어 보라고 했잖아.”

“…….”

빌어먹을 환청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안했으나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주먹으로 귓가를 쳤다. 승언이 머리를 때리고 있는 자신의 손을 붙잡아 승언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돌아오는 건 손목의 고통뿐이었다.

“아파요……. 형……. 장, 난 그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고개를 숙이고 침대 시트를 응시했다. 승언의 페로몬은 편하게 해 주기는커녕 몸을 천천히 옥죄어 오는 것만 같았고 역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하준이 들어와 상황을 정리하기를 바랐고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에 방문을 쳐다보았다.

“최……하.”

“서하야, 그래 형이 그렇게나 보고 싶었어?”

“…….”

승언은 서하를 품에 안고 감동스러운 재회인 척 눈물을 훔치며 서하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몸을 흠칫 떨며 빠져나가려고 하는 서하가 마음에 들지 않아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니 낮게 신음을 내뱉으며 바르작거리는 것을 멈추었다.

“뺨이라도 맞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러기에는 너무 친밀한 사이여서 말이죠. 지금도 감동의 재회 하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뭐……. 아는 사이야? 그럼, 형이 진짜…… 제 사진…….”

하준에게 잡혀 오기 전 승언의 방에 있던 사진들은 모두 승언의 것이었다.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형이 사실은 더러운 눈으로 보고 있음을 깨달으니 눈물이 맺혔고 막을 새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 사진부터 클럽에서의 알파까지 모두 승언의 짓이었다. 가증스럽고 기가 차 말문이 막혔고 한편으로는 승언을 좋아했던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꺼져.”

“응?”

“역겨우니까 꺼지라고. 그동안 재밌었어?”

서하는 손을 올려 승언의 뺨을 내리쳤다. 행여나 빗맞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방 안을 울려 퍼지는 소리에 조소를 지었고, 미약하게나마 하준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웃겨? 웃지 마.”

“이게 바로 윤서하지. 한 대 패고 싶었던 면상이었는데 윤서하가 해 줄 줄이야.”

“…….”

하준은 굳어진 승언의 얼굴을 보며 통쾌함에 박수를 쳤고, 윤서하에게로 다가갔다. 미약한 정신 줄을 용케도 붙잡고 있어 노력은 가상하다만 알파 두 명의 페로몬을 윤서하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손을 올리는 승언에 서하는 때리려는 줄 알고 몸을 뒤로 물렸으나 어깨를 잡혔고 그대로 침대에 처박혔다. 울렁거리는 시야에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승언의 페로몬이 난폭하게 퍼져 나왔다.

“최하……준!”

“서하야, 그게 아니지. 지금 형이 눈앞에 있잖아. 네 생일 선물도 준비해 왔는데?”

주머니에 손은 넣은 승언은 사진을 꺼내 서하의 가슴 위에 올려 두었다가 볼 생각이 없는 서하에 친절히 눈앞에 가져다 댔다. 사훈과 재호의 결혼식 사진을 보니 정신을 제대로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사훈이가 많이 찾더라. 결혼식 당일까지 지호랑 네 걱정을 하는데 너무 안돼 보여서 말할 뻔했지 뭐야.”

“으읏……. 하, 두 사람한테서…… 당, 윽, 장 떨어져.”

“오랜만에 만난 형한테 태도가 이게 뭐야. 우리 서하는 착했는데 말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승언을 보지 않기 위해 천장만 응시하며 언제부터 자신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는지 고민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오메가가 되었고, 사훈처럼 되고 싶었으나 자신의 처지는 너무나 비참했다.

“윤서하, 그렇게 울면 몸에 무리가 갈 거다.”

“흐윽……. 싫어. 페로몬…… 풀지 마. 다…… 꺼져.”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웠고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승언을 치워 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기에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았다. 청하하게 들렸던 웃음소리는 비열하게 들렸으며 다정했던 손길은 욕정이 가득한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한참을 노려보고 있는데 머리맡에 침대가 꺼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니 하준이 자리를 잡고 앉아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의 알파를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미치자 자신의 처지가 퍽 가여워 웃음이 나왔다.

“그래그래. 우리 서하도 형이랑 놀고 싶었구나.”

“…….”

“형이 대신 옷 벗겨 줄게. 근데 계속 찡그리고 있을 거야? 그럼 형이 속상하잖아.”

와이셔츠의 단추가 위에서부터 풀렸고 공간이 벌어질 때마다 살갗에 바람이 닿아 오스스한 느낌을 주었다. 생각을 바꾸어 알파들에게 겁탈을 당한 게 아닌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하준과 승언을 이용한다고 여기기로 하였다.

하준은 서하의 허리 아래로 손을 넣어 일으키고 뒤에서 껴안았다. 부드러워 보이는 머릿결과 곧은 목선을 가리고 있는 목줄을 보며 입맛을 다시다가 어깨를 이로 물었다.

“으윽. 뭐. 으읏……. 하, 지 마!”

“와……. 정말 예쁘다 서하야.”

어깨를 물고 핥아 대는 하준으로 인해 간지럽고 소름을 끼쳐 어깨를 뒤틀었으나 앞에 있는 승언이 움직이지 못하게 허벅지를 누르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해 대기 시작했다.

하준은 승언의 소리를 듣고 넋이 나간 듯 미동도 하지 않는 서하를 보다가 손을 뻗어 러브젤을 잡았다. 히트사이클이 온 오메가니 딱히 필요는 없겠으나 만약을 위해서라도 준비해 두는 게 좋았다.

하준은 서하의 다리를 넓게 벌리고 손에 러브젤을 짜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차가운 느낌에 놀랐는지 흠칫 떨어 대는 서하의 허리를 어루만져 진정하게 하고 두 번째 손가락을 넣었다. 무리 없이 잘 받아먹는 구멍에 하나를 더 넣으려고 하는데 승언과 눈이 마주쳤고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져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말았다.

“읏……. 아파! 차가워……. 저리 비켜.”

“서하는 바로 박아 주는 게 취향이야? 하긴 구멍에서 질질 새고 있으니 필요는 없겠다.”

승언의 모진 말에 눈물이 팽 돌아 고개를 휙 돌리고 두 손을 모아 쥐었다. 구멍 안에는 하준의 손가락이 숫자를 늘려 이리저리 헤집고 있었다. 서하는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고자 입술을 꾹 깨물었으나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빠져나왔다.

“하으응! 앗, 하, 그만, 윽!”

“여기도 만져 줄까?”

빨갛게 물든 얼굴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신음을 내뱉어 좋은 요깃거리가 되었다. 승언은 하준의 손가락을 자위 도구처럼 붙잡고 놔주지 않은 구멍을 보며 동하였고 벨트를 풀고 발기한 성기를 꺼냈다.

“더럽군. 그 와중에 이겨 보겠다고 있는 힘껏 페로몬을 푸는 꼴도 같잖고 말이야.”

“네, 잘 들었습니다. 그러는 댁이야 말로 아까부터 페로몬이 넘쳐흐르시는데 혹시 조절 못 하시나요? 늙어서 그런가?”

“으응! 앗, 아파……. 네, 네 개는…… 흐윽, 앗, 으…… 힘들어…….”

하준은 승언의 도발을 무시하며 손가락 하나를 더 추가하여 구멍을 넓혔다. 만지는 곳마다 허리를 떨며 반응하는 서하를 보니 더욱 울게 하고 싶어 부러 엉뚱한 곳을 누르며 확장하는 데만 집중했다.

여전히 부족한 느낌과 엉뚱한 곳만 휘젓고 가는 손가락은 불만스러웠으나 입으로 수치스럽게 말을 할 수가 없어 벌려진 다리를 오므리며 압박 자위라도 하여 부족함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그럼 안 되지.”

“윤서하.”

앞에서는 승언이 뒤에서는 하준이 엄한 목소리로 행동을 제지하며 오므라진 다리를 벌이라도 주듯 전보다 활짝 벌리게 하였다. 왼쪽 허벅지는 하준이, 오른쪽 허벅지는 승언이 눌러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는데 승언이 원하는 게 있다면 말로 표현하라고 하였다.

“형이 예전부터 말했잖아. 원하는 게 있을 때는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고.”

“닥쳐. 흐으…….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줄……히익!”

손가락으로는 구멍을 넓히고 있던 하준은 서하의 애원이 듣고 싶어 놀고 있던 엄지손가락으로 서하의 성기를 톡톡 두들겼다. 앙증맞은 성기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게 기쁜 듯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주인을 닮은 성기를 쓰다듬었다.

“힉! 아, 놔……. 놔줘! 싫어……. 하, 하지…… 마.”

“윤서하. 그동안 잘해 왔잖아? 뭐라고 해야 할까.”

자존심을 부려 봤자 알파들은 즐거워한다는 진리가 생각났고 잠깐의 수치를 견디고 편해지자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입을 뗐으나 언어로 구현되지 않았고 한참을 입만 달싹이고 있는데 입 속으로 승언의 손가락이 들어와 헤집었다.

“으,읍! 뭐……. 손,가락……, 빼.”

따뜻하면서도 축축한 입 안에 박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경기를 일으키는 서하의 반응에 섭섭한 마음이 올라왔다. 구멍에 넣은 손가락은 기쁜 듯이 받아먹으면서 입 안에 넣으니 손가락을 물며 빼내고 노려보고 있었다.

“자, 윤서하. 말해야지 착한 아이지?”

“서하야, 형이랑 재밌게 놀아 보지 않을래?”

구멍을 긁어내는 손가락에 몸이 파드득 튀어 올랐고 힘을 조절하지 않고 있는 힘껏 승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평소보다 잘 느껴지는 쾌감과 화끈거리는 열기에 몸을 떨다가 턱이 붙잡혀 승언과 시선을 마주 보게 되었다.

“아까부터 형이 너무 섭섭해서 그런데 예쁘게 울어 보자, 서하야.”

“…….”

승언은 서하의 뒤통수를 눌러 자신의 성기를 보게 하였다. 입에 넣으면 보나마나 물 게 뻔하여 성기를 흔드는 모습을 보여 주며 눈을 감을 때마다 붙잡고 있는 허벅지를 내리쳤다. 찰싹거리는 소리와 고통조차 쾌감으로 승화하여 프리컴이 흐르는 성기에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형이랑 비교해 보니까 서하 성기는 정말 귀엽다.”

“쯧……. 저런 거 보지 말도록.”

승언의 손안에 자신과 승언의 성기가 겹쳐 쥐여졌고 서하는 승언의 말로 인해 얼굴이 달아올랐다. 핏줄이 흉흉하고 굵은 성기와 어린아이라고 봐도 무방한 성기가 붙어 있으니 육안으로 봐도 너무나 비교되었다.

행여 눈이라도 감으면 또다시 허벅지를 맞을까 봐 떨리는 눈으로 보고 있는데 허벅지를 붙잡고 있던 하준의 손이 완전히는 아니었으나 시야를 차단했다. 승언은 사사건건 방해하며 서하를 차지하려는 하준이 고까워서 서하가 제 손에 의해 자지러지도록 두 성기를 겹쳐 비볐다.

“이걸, 왜, 아앗, 윽. 흐으으, 뜨, 뜨거워.”

“기분 좋아, 서하야? 같이 자위해 보는 건 처음이다. 그치?”

하준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걸 보며 작은 성기가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부드럽게 만지기도 하고 요도구 근처를 손톱으로 긁어내리기도 하였다.

“히이익! 싫어! 제발…… 그만……. 형! 승언 형! 나…… 힘들어.”

유두까지 만지고자 했던 승언은 애처롭게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전율이 느껴 그대로 사정했다. 분홍빛의 유두를 가진 판판한 가슴팍에 정액이 흘러내리는 걸 감상하다가 안쪽 허벅지를 떨며 성기를 붙잡고 있는 손을 구원 줄처럼 붙잡고 있는 서하를 보았다.

“형이 어떻게 해 줄까?”

“싸게…… 싸게 해 줘. 승언 형.”

손아귀에 들어오고도 한참이나 작은 성기는 호불호라는 게 없는지 만져 주는 대로 좋다고 반응했다. 목에 핏줄이 나올 정도로 고개를 젖히고 몸 전체를 뒤트는 서하에 승언은 요도구를 막으며 기둥 전체를 위아래로 쓸어내렸다.

“쌀래……. 싸고 싶어……. 혀, 형아.”

“최하준이랑 나랑 누가 좋아?”

“형……. 형이 좋아. 쌀래…….”

앞과 뒤로 쾌감을 느낀 서하는 뒤의 일이 걱정되지도 않고 당장의 쾌락을 쫓아 승언에게 매달려 사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요도구를 막은 손을 떼어 내자 크게 숨을 내뱉으며 성기에서 정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서하는 갈라진 목에 침을 삼키며 힘을 풀었고 머리가 단단한 가슴팍에 닿자 그제야 하준의 존재를 인지하였다. 고개를 까닥거리며 한쪽 입꼬리만을 올리는 하준의 서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형이 좋은 윤서하. 이번에는 나랑 놀아 볼까? 나는 위아래 둘 다 만족시킬 수 있거든.”

서하의 얼굴을 쓰다듬던 하준은 승언에게 눈짓하자 승언이 서하를 놔주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고 했으나 승언에게 붙잡혔고 그대로 승언의 혀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질척하고 물컹한 혀가 입 안 곳곳을 누르고 쓸어 혀를 빼기 위해 상체를 뒤로 물리고자 했으나 더더욱 혀가 깊게 들어왔다. 숨을 쉴 틈도 주지 않은 배려 없는 키스를 멈추고자 승언의 어깨를 치니 그제야 멈춰졌다.

“하아……. 하.”

“키스 진짜 못하는구나. 코로 숨을 쉬어야지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참고 있으면 어떡해.”

승언은 키스가 미숙한 서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허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서하는 속수무책으로 이끌렸고 두 손과 무릎으로 침대를 디딘 자세에 개가 된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뒤에서 하준의 시선이 느껴져 부담스러웠다.

“짖어 볼래, 서하야?”

“…….”

비단 자신만 생각하던 게 아닌지 승언이 활짝 웃으며 귀여운 강아지 같다고 하였다. 예전에는 승언이 웃는 것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지만, 지금은 상판대기를 보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너나 짖지, 박승언.”

“잠깐……! 흐읏.”

잠자코 승언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하준은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서하의 정액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허벅지부터 손가락을 쓸어 올리니 정액이 모아졌고 어느새 손은 성기까지 올라왔다. 하준은 정액이 묻은 손으로 서하의 성기를 쥐었다.

또다시 성기를 잡혀 입술을 물으며 허리를 들썩거렸으나 하준은 서하의 허리를 지그시 누르며 미약한 반항을 잠재우고 성기를 툭툭 두드리며 서하에게 물었다.

“형이 만져 주니 그렇게 좋던가? 주인도 못 알아보고 말이야.”

“아, 아니……. 잠만! 만지, 지 마……. 힘들어.”

“엄연히 말해서 서하를 먼저 찾은 건 전데 말이죠?”

방금 사정하여 한껏 예민해진 성기를 만지는 하준에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몸뚱어리는 주인의 의지를 반하고 떨어 대기만 하였다. 위에서 하준과 승언의 설전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으나 쾌락에 벗어나기 힘들어 무슨 말을 하는지 인지할 수 없었다.

그사이에 허리가 하준의 팔에 감겨 들어 올려졌고 승언과 시선이 엇비슷해졌다.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고통이 느껴졌다.

“아악!”

“자, 네가 좋아하는 형한테 박히면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여 줘야지?”

서하가 자신의 것임을 공공연하게 하고 싶었으나 한편으로는 승언과 서하가 눈을 마주 보는 게 불쾌하여 어깨를 물었다. 느껴지는 고통에 반응하며 토끼 눈을 하고 쳐다보는 서하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성기가 발기했다.

무릎에 서하를 앉히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고 넘어지지 않도록 허리를 잡으니 몸을 웅크리는 모습조차 음욕을 자극했다. 사소한 행동조차 만족스러웠고 발기한 성기를 구멍 근처에 대고 뭉근하게 움직이니,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도 못했다.

“윤서하, 넣어 줄까?”

“…….”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은 들었다. 정신이 조금 돌아오니 자신이 위에서 쏟아 냈던 토사물이 시큼하게 맡아졌다. 두 사람은 느껴지지 않은 것일까. 이 공간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은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두 알파는 자신을 인간으로 여기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었다.

“딴생각할 여유가 있나 봐?”

“댁이 시원치 않으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요?”

하준은 서하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자신의 눈에는 서하의 표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자신의 현재 처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우스웠다. 하준은 구멍에 성기를 맞추고 서하의 허리를 눌러 삽입했다. 작게 앓은 소리가 들려왔다.

서하는 무릎을 누르며 일어서려는 반항을 했으나 골반을 잡고 눌러 더욱 깊게 삽입하니 무릎에 올려져 있던 손이 미끄러졌고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파, 아으, 아……. 이거 싫어……. 찢어져, 읍……윽!”

“찢어지다니 더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안, 히익! 안…… 들어가, 앗…….”

하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허리를 감고 있는 하준의 팔을 밀어낼 수 없었다. 오히려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욱 옥죄어졌고 구멍에 드나드는 성기는 흉포하게 드나들었다. 구멍에서 흘러나온 애액과 정액으로 인해 무리 없이 받아들였으나 공포감은 여전했다.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내렸고 시야를 방해하는 눈물에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서하야, 쌍꺼풀 생겼다.”

꼬챙이에 꿰인 거처럼 움찔거리고 얼굴이 빨개져 눈물을 흘리는 서하의 모습을 안주 삼아 자위를 하고 있는데 고개를 흔들고 눈을 뜨니 쌍꺼풀이 생겨 있었다. 무쌍은 세상에 미련이 없어 보여 매력이 있었다면, 이건 뭐랄까 가련하고 동정심이 들게 생겼다.

“만지지 마!”

“서하야, 앞이랑 뒤 중 어디가 좋아?”

승언이 호기심을 느꼈는지 손을 뻗어 유륜 근처를 손가락을 돌려 가며 움직였다. 뒤에는 성기가 드나들고 있고 앞에는 승언이 가슴을 희롱하였다. 아득해지는 정신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승언이 유륜 주위만을 맴돌다가 유두를 세게 꼬집었다.

“아악! 하지, 마!”

“그러기에는 너무 좋아하는 거 같은데?”

“두 개 넣고 싶나 봐?”

“아, 아냐…….”

유두를 잡은 승언에게 집중하면 뒤에서 하준이 허리를 쳐올렸고, 하준에게 집중하면 승언이 유두를 꼬집고 잡아당겼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안 그래도 멍한 정신은 사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끝내는 억울한 마음이 물밀듯 밀려 올라왔다.

“평소보다 더 조이는데, 이게 좋은 건가?”

“안.아니야……. 으읏, 그럴 리가.”

“음……. 서하야, 우린 인연인가 봐 그치?”

다들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신을 놓으면 차라리 편해지지 않을까, 이제 세상에서 자신을 윤서하로 대해 줄 사람은 있지 않으니 그만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저 뺀질거리는 새끼 얼굴 보고 박히니까 좋냐고, 대답해야지 윤서하?”

“…….”

“우리 착한 서하, 형 봐야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사이가 좋지도 않으면서 한 공간에서 뭐 하는 것인지. 자신을 두고 내기라도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한 가지만은 알았다. 둘 다 역겨운 건 다름이 없으니 둘 모두에게 저주를 퍼부어 주리라.

생각하고 있던 도중 머리채가 붙잡혔고 그대로 고개가 뒤로 꺾였다. 두피가 뜯기는 고통에 표정을 찡그리는데 입이 불편하게 벌려졌고 숨은 쉬기 어려워졌다.

“놔.”

머리를 뒤로 젖혀 한껏 날카로운 눈매를 감상했다. 자신은 서하의 눈이 제게 오고 있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웃고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뭐 지금은 아무렴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박승언을 몰아내고 윤서하를 차지하고 마음을 돌리면 되었다.

벌려진 입에 손가락을 넣고 허리 짓을 하니 윤서하의 신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유두를 꼬집힐 때는 비명을, 허리를 쳐올릴 때는 앙앙거리는 모습에 정복감이 피어올랐다.

더 음탕하고 더 문란하게 되어 자신만을 기다리는 윤서하를 생각하니 핀트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으아앗! 그만, 힘들, 어. 천천, 히! 히익…….”

하준이 잠시 멈추며 성기를 빼내더니 빠진 만큼 성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서하는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파르르 떨고 입을 다물며 울기 시작했다. 입 안에 넣어 놓은 손가락에서 미약한 고통이 느껴졌으나 잘 물고 있으라고 한 뒤 구멍에 사정했다.

“히익……. 흐읏. 그만, 나, 나…… 히트……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임신이라도 하면 최소한 발발거리면서 돌아다니지는 않겠군.”

“정말 쓰레기같이 말씀하시네요.”

입에서 손가락을 빼니 입을 벌린 채로 서하가 정신이 나간 듯이 주저앉아 혼잣말을 내뱉었다. 오메가임은 자각하고 있는지 배를 누르면서 정액을 빼내려고 하고 있었다. 승언은 서하의 기이한 행동과 하준의 썩어 가는 표정을 보고 활짝 웃으며 서하에게 다가가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불신이 담긴 눈빛을 마주했으나 승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서하의 허리를 누르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자세를 취하게 했다.

구멍에서 정액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른 알파의 정액이어서 불쾌한 감정이 약간 들었으나 패닉에 빠져 있는 서하의 표정을 보는 건 좋았다. 예민한 내벽을 손톱으로 긁어내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쓸데없는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담아 두면 배앓이밖에 더 하나요. 어차피 곧 다시 할 것 같은데 질퍽거리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요?”

대놓고 한 번 더 하겠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었으나 임신은 하기 싫다는 말만 내뱉고 있는 서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욕을 내뱉더니 지금은 몸을 만지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서하야, 최하준 애 가지고 싶어?”

“임신은 안 돼……. 싫어, 죽을 거야…….”

짜악-.

“읏……!”

“형 말에 대답해야지. 지금 안 빼내면 임신할 텐데 애라도 가지고 싶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싫다는 말만 반복하는 서하에 승언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하준은 표정을 구긴 채로 승언과 서하를 지켜보았다. 정신을 망가뜨리는 일만 골라서 하는 승언을 보자니 한숨이 나왔지만 엉덩이에 손자국이 난 채 벌벌 떨고 있는 서하는 봐 줄 만했다.

승언은 검지와 중지를 모아 서하의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최하준의 무식하게 큰 성기를 받아먹었던 구멍은 손가락 따위는 우습다는 듯 받아들였다. 손가락에 닿는 질척한 정액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유흥을 위해 참기로 하였다.

“으흥. 휘……젓지 마.”

“서하야, 다리 벌려야지. 지금 형이 도와주고 있는데 누가 보면 내가 강제로 하는 줄 알겠어. 서하가 임신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건데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도와줄 마음이 사라지잖아.”

벌려진 다리를 모으고 엉덩이를 서서히 내리던 서하는 승언의 손가락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미안하다고 말하며 전보다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한시라도 빨리 배 속에 담긴 정액을 빼내야 하는데 승언이 움직이지 않아 초조해졌다.

“빨리……. 빼야 해……. 빼, 줘.”

“서하야, 형이 구멍에서 긁어내 주고 있는데 서하는 뭐 하고 있는 걸까? 빼내려는 노력을 안 보여 주니까 빈말인가 싶기도 하고……. 실은 정액 빼기 싫은 거 아니니?”

승언의 손가락이 구멍에서 완전히 빠져나갔고, 서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뒤에 있는 승언과 화장대 의자에 앉아 있는 하준까지 두 사람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의지를 보이라고 했으니 보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잠깐의 수치심을 견디기만 하면 임신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침을 삼키고 양손을 들어 엉덩이를 붙잡고 양옆으로 벌렸다. 승언의 웃음소리가 들렸으나 서하는 애써 무시하며 승언에게 애원했다.

“빼 줘……. 빼고 싶어.”

“음……. 아직 잘 모르겠는데.”

하준이 승언의 행각에 기함하며 웃으니 서하가 깜짝 놀라며 하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준의 아이를 밴다면 영원히 이 집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손으로 엉덩이를 벌린 상태에서 좌우로 흔들었다.

“자, 다시 들어간다.”

“흐으……읍.”

승언은 부러 이리저리 휘젓고 때로는 깊숙이 집어넣어 내벽을 꾹꾹 눌렀다. 구멍을 벌리고 있는 손이 떨려 왔으나 승언은 손을 빼지 않고 얼굴이 새빨개진 서하를 구경했다. 조금만 더 골리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아 승언은 불시에 손가락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히익! 잠, 잠만……. 천……천히.”

“여기 뭉쳐 있는 거 같은데……. 움직이지 말아 봐.”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나가는 서하의 어깨를 붙잡은 채 승언은 손가락을 깊숙이 넣었다. 성기보다 길이는 짧지만, 내벽을 더듬는 데는 무리 없는 길이라 전립선을 문지르니 서하가 파드득 떨며 울어 댔다.

너무 몰아붙이면 재미가 끊길 것 같아 승언은 내벽에 붙어 굳어 가는 정액을 긁으며 손가락을 빼냈다.

퐁 하며 손가락이 빠지는 소리와 더불어 빼낸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흐르거나 뭉쳐 시트 위로 툭툭 떨어졌다. 다 끝났다는 의미로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니 서하는 구멍을 벌리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 침대 헤드 쪽으로 기어가 몸을 웅크렸다.

하준과 승언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평소에는 의견이 달랐지만, 지금만큼은 의견이 일치했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베개를 끌어안고 있는 오메가를 좀 더 울리고 억압하고 싶었다. 곳곳에 묻은 정액과 애처롭게 떠는 몸, 입을 닫는 걸 까먹었는지 약간 벌려진 입까지 모든 곳을 씹고 맛보고 싶었다.

하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 헤드 쪽으로 걸어가니 토사물이 있는 바닥 쪽으로 서하가 시트를 발로 밀며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뒤로 가면 떨어질 듯한 행태에 하준과 승언은 손을 뻗었다. 서하의 발목을 잡은 하준과 어깨에 팔을 두른 승언으로 인해 떨어지는 불상사는 막았지만 떨어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두 알파의 손이 몸을 감싸고 있었고 서하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침대 가운데로 왔으나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에는 하준, 옆에는 승언이 있어 심장이 세차게 뛰었고 숨은 잘 쉬어지지 않았다. 호흡을 갈구한 몸은 입을 벌리게 했다.

“입이 벌려져 있으니까 힘든가 보다. 막아 줄까?”

“으……? 읍!”

승언은 서하의 목줄에 손가락을 걸고 잡아당겼다. 큰 힘을 주지 않았으나 종이쪽처럼 딸려 오는 서하를 붙잡아 품에 안은 승언은 숨이 막혀 컥컥거리는 서하의 등을 쓸어내려 줬다.

호흡이 고르게 된 서하를 확인한 승언이 목줄의 겉면을 만지기만 하였는데 서하가 손을 떨고 있었다. 아까의 행위가 퍽 고통스러웠던 것일까 생각하며 목줄을 잡은 손을 천천히 내려 성기 근처에서 멈췄다.

승언은 서하의 머리채를 붙잡아 입에 성기를 욱여넣었다. 입 안을 가득 메우는 살덩어리에 비릿함과 불쾌감을 느낀 서하는 물어 버리기 위해 턱을 움직였다.

“저런……. 씹으려고 하면 안 되지. 형 다치는 거 보고 싶어?”

다치는 정도에서 끝날 게 아니라 잘라 버릴 수만 있다면 자르고 싶었으나 턱을 붙잡은 손에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입 밖으로 성기가 나왔으나 승언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세지는 악력에 고통에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참지 못한 통증에 눈을 감으니 그제야 턱을 잡은 손이 떨어져 나갔다.

“서하야, 구멍에 두 개가 들어가면 어떨까? 그때는 정말 찢어지겠지?”

“…….”

“물론 형은 서하가 다치는 건 원하지는 않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어쩔 수가 없겠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상냥했으나 담긴 의미는 주제를 알고 스스로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머뭇거리며 승언의 성기를 손으로 잡기는 하였으나, 맨정신으로 입에 넣지는 못하고 있었다. 망설이는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머리를 지그시 눌렀고, 고개가 숙여져 서하는 승언의 강제적인 행동이라고 합리화를 하며 성기를 입에 담았다.

“그래……. 그렇지……. 더 깊숙이 넣어 볼래?”

“우욱……읍!”

“왜 빼려고 해.”

승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침대에 올라온 하준이 예고도 없이 성기를 밀어 넣었다. 하준의 성기가 깊숙이 들어가다가 빠져나왔고 힘이 풀려 승언의 성기가 입 안 깊숙이 들어왔다. 입술이 찢어지는 느낌과 함께 목젖을 찌르는 성기에 구역질이 몰려와 빼내고자 했으나 뒤통수를 누르고 있는 승언의 손으로 인해 고개를 물릴 수 없었다.

“삼키기만 하고 있으면 펠라가 아니잖아. 혀도 써야지?”

혀가 움직일 만한 공간도 남아 있지 않아 머금기만 하고 있으니 불평을 하는 승언이었으나 말과는 달리 성기는 더 커졌다. 더 물고 있기 버거웠고 코로 숨만 내쉬고 있는 서하에 지루해진 승언은 서하의 머리채를 잡았다.

승언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위아래로 흔들렸다. 성기가 목젖을 찌르고 입천장과 혀, 잇몸 곳곳을 긁고 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승언의 허벅지를 때렸으나 미동도 없었다. 승언은 같잖게 반항하는 서하의 목을 지그시 눌렀다.

“서하야, 물 많이 마셔야겠다. 많이 부어오를 거야.”

“더럽군. 어찌 하는 짓도 그렇게 천박하지?”

“으으……읍.”

아래로 향한 고개로 인해 침이 새어 나왔고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입 안이 성기를 꽉 조여 만족한 승언은 서하의 고개를 들어 올려 입 안에서 성기를 빼내고 얼굴에 조준하여 사정했다. 정액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입을 다물려고 하는 서하의 입술을 짓눌러 벌리게 하니 입 안으로 정액이 들어갔다.

“오……. 엄청 야하다.”

“힘들어……. 그만, 그만, 할래……. 응? 최하준……. 나 힘들어.”

서하는 미친 소리를 해 대는 승언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하준을 쳐다보며 애원했다. 이상한 행위를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 그나마 말이 통하는 하준을 채근했다.

하준은 정액과 타액이 실처럼 길게 이어진 채 올망졸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서하에게 동정심이 갔으나 지금은 역효과였다. 두 명의 알파가 있는 공간에서 물러나는 건 알파들의 세계에서는 비웃음을 살 만한 일이었다.

땀에 젖어 붙은 앞머리를 정리해 주며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 고개를 뒤로 물렸다. 성기를 빼 주리라 생각했는지 살포시 미소를 머금는 얼굴에 가학심이 피어올랐다.

“그러기에는 너무 버릇이 없는 거 같아서 말이야. 아까부터 말도 안 듣고 자기 좋을 대로만 하지 않나?”

“아냐……. 나, 그런 적……하.”

“예쁘게 울면 빨리 끝내 주지.”

계속해서 울어 대고 섬세하지 못한 주인에 의해 벅벅 문질러진 눈은 살갗이 일어났고 뜨거웠다. 하준은 서하의 양쪽 눈가에 입을 맞추며 성기를 넣은 상태로 무릎을 꿇었고 서하의 허벅지를 손으로 넓게 벌렸다. 하준에 의해 허벅지가 넓게 벌려지자 움직임이 제한되었고 오른쪽 발목은 하준에게 붙잡혀 발버둥도 제압되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고자 하더라도 작은 반항에 불과했다. 사소한 움직임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듯 하준이 발목을 움켜쥐었다. 악력을 조절할 마음도 없는지 멍이 든 발목에 미간을 찌푸리며 멈추니 하준의 힘이 약해졌다.

“잠…… 잠깐만. 으응, 더 이상…… 죽어, 죽……. 아흐. 못 해…….”

“할 수 있어.”

디딜 곳이 한 군데도 없어 허공에 손짓하고 있으니 승언이 다가왔고, 차악으로 승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배려 없는 하준의 몸짓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데 승언이 입을 맞춰 왔다. 정신을 흩트려 놓으면 아래에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 어설프게 혀를 섞었다.

조금은 무뎌진 것 같았는데 하준이 목에 손바닥을 대더니 뒤로 당겼다. 목줄이 잡힌 것보다는 아프지 않았으나 이리저리 휘둘리는 느낌은 불쾌했고, 한계를 직감하여 하준에게 재차 애원했으나 이번에도 처참히 무시당했다.

“으……? 그만, 아앗! 살, 려…… 으흐, 줘. 하, 하준 형 힘들어…….”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데 승언이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듯 톡톡 치면서 쓸어내렸고 소리를 낼 기운이 없어 억눌린 신음만 내뱉었다.

“갈…… 갈 것 같아…….”

방전된 와중에도 알파들의 심사가 뒤틀리지 않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오메가의 버릇에 실성하듯 짧게 웃음을 내뱉었다. 잠깐 몸을 멈춘 하준이 허리를 흔드는 속도를 높였고 서하는 눈을 감으며 쾌감을 온몸으로 받아 내자 하준이 칭찬하면서 성기를 잡아챘다.

하준이 사정을 하고 성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익숙해지지 않아 숨을 크게 들이켰다. 구멍 깊숙이 느린 속도로 흘러 들어가는 정액에 소름이 끼쳐 몸에 힘을 주자 하준이 잘 머금고 있으라고 하였다.

정액을 내뱉기 싫다는 듯 꽉 맞물리는 구멍을 보며 상을 주듯 성기를 흔들어 주자 서하가 비축해 놓은 마지막 힘을 쏟아 내듯 정제되지 않은 신음을 흘리더니 사정을 했다.

힘 있게 나오지 않고 성기 표면을 타고 흐르는 정액을 보고 웃으며 발목을 놓아주었다.

자유로워진 서하는 눈에 초점도 맞지 않아 어지러워 침대에 엎어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고개를 힘도 없고 다 끝난 것 같아 눈을 감았다.

정신을 잃으려는 찰나 승언의 손가락이 입 안으로 들어왔고, 무시하려고 했으나 혀를 누르고 목젖을 건드리는 손가락에 고통을 느낀 서하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승언을 쳐다보았다.

“자, 물 마셔야지?”

“…….”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꽤 오래 흐른 것인지 깔끔한 차림의 승언이 서 있었고, 바닥에 있던 토사물은 흔적조차 없었다.

물을 마실 마음이 없고, 목 안이 아파 대답하지 않고 시트에 고개를 묻는데 승언이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몸을 일으켰다. 반강제로 일으켜진 몸은 지탱하지 못하고 픽픽 쓰러지자 승언이 어깨에 몸을 기대게 하였다.

하준은 씻으러 들어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방 안을 보는데 입가에 물병이 닿았다. 마시지 않고자 입을 열지 않았음에도 승언은 개의치 않게 병을 기울였고 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뭐……쿨럭, 큽!”

비키라고 하려고 했으나 승언이 물병을 치우지 않아 기도로 물이 넘어갔고 사레가 들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콜록대다가 진정했는데 또다시 들이밀어지는 물병에 승언을 쳐다보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웃으며 물병을 기울였고 얌전히 입을 벌렸다.

“옳지……. 잘 마시네, 우리 서하.”

키우는 동물에게 물을 먹이는 것처럼 승언이 물도 잘 마신다며 칭찬을 하였다. 물병의 물이 없어질 때 즈음 하준이 물병과 수건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사람이 주는 건 함부로 주워 먹지 말라고 했을 텐데?”

“…….”

하준이 침대로 다가왔고 머리로는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고 신호를 보냈으나 몸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었으나 이미 하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눈에서 빛이 사라져 서늘한 눈빛과 마주쳤다.

도망가고 싶다. 무섭다. 기절하고 싶다. 물병을 침대 위에 던진 하준은 서하의 눈높이에 맞추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윤서하, 가족들이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나 보지?”

하준의 입에서 나온 가족이라는 단어를 듣고 서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승언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하준을 막 대해도 안심한 이유는 승언의 말을 믿어서였다. 하준과 승언이 같은 편이라면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잘…… 잘, 잘못했어…….”

승언은 하준의 손목을 붙잡고 매달리는 서하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는 하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그러했지만 가족을 빌미로 서하를 붙잡아 둔 모양이었다.

“비겁하시네요. 안쓰러워라, 우리 서하.”

“몇 년 동안 윤서하의 사진을 방에 도배한 놈한테는 듣고 싶지 않아. 게다가 회사에 사람까지 심어 두다니. 소름끼치게 하는 재능이 있어.”

고개를 하준의 손목에 묻고 가족만은 건드리지 말라며 중얼거리는 서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준은 승언과 말을 주고받았다. 하얗게 질려 목뼈가 도드라졌고 몸은 잘게 떨어 대고 있었다.

“제발…….”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하준이 시키는 대로 하던 서하는 대답을 종용하는 하준의 말에 얼빠진 표정으로 하준을 바라보았다. 눈물을 머금어 투명한 눈동자가 애처롭게 떨리는 것을 보았으나 하준은 짐짓 엄한 눈빛으로 서하를 묵묵히 응시했다.

두 사람의 행태를 지켜보던 승언은 걸음을 옮겨 서하에게로 다가갔다. 하준에게 오롯이 신경이 쏠려 있는 서하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한술 더 떠 하준이 서하를 품에 안고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지? 볼일이 없다면 나가 줬으면 하는데.”

“볼일이 왜 없겠습니까. 애초에 본래 목적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걸요.”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자 했지만 말을 따라 하는 승언에게 코웃음을 치며 하준은 손을 서하의 볼에 가져다 댔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잔 떨림을 느끼고 있는데 승언이 서하의 이름을 불러 감상을 방해했다. 움찔거리며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 서하의 턱을 잡고 막고 있으니 승언이 볼멘소리를 했다.

“너무 유치하신 거 아닙니까. 애도 아니고…….”

“나가라고 했을 텐데? 지금 윤서하는 네 말을 들을 여유가 없어서 말이야.”

턱을 위로 들어 올려 동의를 구하니 다급하게 고개를 흔들며 맞다고 하였다. 하준이 행여 가족을 건들까 봐 서하는 숨을 죽이고 하준이 거슬리지 않게끔 행동했다. 하준과 승언 중 우위가 결판나지 않았으나 지금 상황으로만 봤을 때는 승언보다 하준의 손을 잡는 게 신상에 이로웠다.

승언을 철저히 무시하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고 괜한 불똥이 튈까 하준에게 밀착했다. 하준과 승언의 신경전이 오가고 서하는 자신에게서 관심사가 멀어지길 바랐으나 하준이 어깨를 쥐며 대답하라고 하였다.

“잘, 할게요. 잘할게요.”

“뭘 어떻게 잘하겠다는 걸까?”

아무래도 하준은 대답을 내놓을 때까지 물어볼 심산이었다. 어떻게 해야 넘어갈 수 있을지 생각했으나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승언의 기분이 나빠졌는지 페로몬을 뿜으면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서하야,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맞히지 못하면 무슨 짓이라도 할 듯한 눈빛이었다. 하준이 막아 줄 가능성도 있으나 알파는 믿을 만한 족속이 아니다. 페로몬에 취하지 않기 위해 숨을 참으며 모른다고 하니 눈물을 흘리지도 않으면서 승언이 눈가를 훔쳤다.

맞히면 선물을 주겠다는 승언의 말을 듣고도 감을 잡지 못했고 방관하고 있던 하준도 잘 기억해 보라며 부추기더니 볼에 얹어져 있던 손이 몸을 타고 내려와 가슴께에서 멈췄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이 가슴만은 아쉽단 말이지.”

“잠……흐, 읏, 누르지 마……요.”

유두가 작아 만지는데 아쉽다며 꾹꾹 누르는 손길에 반항하다가 하준의 굳어지는 얼굴을 보고 반항을 멈추었다. 얼굴을 유두에 가까이 대고 품평하던 하준은 반응이 궁금하여 유두를 입 안에 넣고 굴렸다.

“히익! 뭐 하는…… 하지 마! 싫, 어.”

발가락이 안으로 굽어지고 몸을 뒤틀며 엄청난 반응을 보이는 서하에 흥미로워져 어금니로 살짝 힘을 줘 물었다. 서하는 아까는 간지러웠다면 이번에는 고통스러운지 짧게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밀어 댔다.

입을 떼니 붉게 물든 유두는 보기만 해도 쓰라릴 것 같았다. 가슴 근처에 손이 왔으나 차마 만지지 못하고 떨고 있는데 승언이 팔목을 잡고 내려 가슴을 손으로 붙잡게 했다. 주무르라는 말에 눈을 질끈 감고 손에 힘을 주니, 수치스러웠고 유두는 따가워서 만지고 싶지 않았다.

훌쩍이는 서하를 보던 하준은 고개를 돌려 승언을 보았고, 시선을 눈치챈 승언 역시 하준을 보았다. 승언은 아까부터 답지 않게 신경을 긁는 하준의 저의를 알아내고자 하였다. 서하의 속도가 느려지자 하준이 작은 목소리로 잘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 훌쩍이며 가슴을 잡고 주물렀다.

“윤서하, 지금 만지고 있는 건 뭐지?”

“……유두.”

“그래?”

“젖꼭지…….”

바라는 대로 말을 정정하니 풀리는 하준의 얼굴을 보며 서하는 안쪽 입술을 짓씹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엎고 싶었으나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스스로 용서받을 기회도 정하지 못하니 내가 정해질 수밖에 없지. 안 그런가?”

시간을 끄니 하준에게로 결정권이 넘어갔다. 이미 생각해 놓은 악취미가 있어 보이는 얼굴에 서하는 꾹 참으며 잘하겠다고 하였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하준을 눈으로 좇는데 승언이 뒤에서 껴안았다.

“이거 놔!”

“형이 오늘 선물 주려고 왔는데……. 섭섭해, 서하…….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까먹었어? 네 생일이잖아.”

생일인 줄 꿈에도 몰랐는지 표정이 굳어 가는 서하를 보며 승언은 챙겨 주는 건 자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품 안에서 선물을 꺼낸 승언은 서하가 좋아하길 바라며 손바닥 위에 올려 두었다.

지금 승언이 입 밖으로 꺼낸 말이 정상적인 사고로 이루어진 말인가 생각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옷을 다 갖춰 입은 두 알파와 옷은커녕 정액이 흐르고 유린당하는 오메가 한 명. 가둬 둔 주제에 생일 축하하니, 홀로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미친 새끼 아니야?”

손에 올려진 보석함을 승언에게 던졌으나 피한 승언에 땅바닥 떨어진 보석함은 몇 차례 바닥을 구르더니 함이 열렸다. 작은 푸른색 보석과 은색 핀으로 된 귀걸이에 서하는 표정을 찡그렸다. 귀걸이는 해 본 적도 없는데 이 자리에서 뚫은 속셈인가 싶어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퍼졌다.

“마음에 안 들어? 페로몬이 너무 날뛴다.”

바닥에 떨어진 함을 주운 승언이 서하에게 다가가니 침대에서 내려와 귀를 손으로 가리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술래잡기를 만끽하고 있던 도중 하준이 서하를 잡아채 침대에 눕혔다.

“무시하라고 했을 텐데.”

“박승언이…… 내 귀…… 봤잖아, 요.”

귀가 생으로 뚫릴 뻔했는데 이 냉혈한은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며 강압적으로 굴고 있었다. 언젠가 저 귀를 뚫어 버리고 말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하준이 갑자기 호탕하게 웃어 댔다. 무엇이 웃음을 터뜨린 요인이 되었는지 몰랐다. 귀걸이라고 말한 부분 이외에는.

“그러기에는 내 선물도 같은 거라서 말이야.”

“…….”

“마음에 안 드나? 앙증맞게 달려 있으면 더 예쁠 것 같아서 준비한 건데.”

역시 보석함이 눈앞에 보였고 열린 함 안에는 붉은색 귀걸이가 있었다. 하준이 원치 않으면 다른 선택지도 있다고 했으나 귀를 뚫지 않으면 낭패를 볼 게 뻔했기에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다칠 수도 있으니 붙잡을 사람이 필요하겠군.”

“괜, 찮습니다.”

하준은 귀걸이로 오인할 수 있는 유두 피어싱을 보며 단호하게 서하의 말을 부정했다. 박승언이 같은 선물을 준비한 건 예상에 없었고, 윤서하에 유두에 푸른색 피어싱이 달린다 생각하니 거부감이 들었다.

“아까 가슴 씹어 댈 때부터 예상했는데, 역시 맞았네요.”

“네 물건을 달게 할 생각이 없으니, 가지고 나가. 생일 주인공도 받기 싫어하니.”

서하가 던진 건 사실이기에 승언은 대꾸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굳이 약점을 보일 필요는 없었고, 가지고 있는 패에 집중하게 하면 된다. 승언은 넥타이에 꽂혀 있는 넥타이핀을 하준에게 보여 줬다. 호철에게 건네받은 물건이니 하준도 서하가 직접 고른 자신의 선물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계약을 생각하셔야죠. 그렇죠, 최 이사님?”

“같잖은 놈이……!”

다른 일은 냉철하나 서하에 관련된 일에는 길길이 날뛰며 이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하준이었고, 잘 먹혀들었다.

하준이 정웅을 부르자, 정웅이 소독 키트를 가져왔고 호철이 따라 들어와 서하의 뒤로 갔다.

“꽉 잡고 있으세요. 실장님. 잘못하면 크게 다치니까.”

“알겠습니다.”

뒤에 앉은 호철이 이마를 누르고 허리를 앞쪽으로 밀었다. 가슴이 팽창된 자세에 어리둥절한 서하는 뚫는다는 게 귀가 아닌 유두인 것을 깨달았다. 싫다고 거부하자 승언이 이제야 알았냐며 예쁘게 해 줄 테니 보채지 말라고 하였다.

“흐읍……. 싫어……. 제발, 이, 이건 아니야.”

소독약이 양쪽 유두를 문질렀고, 하준의 치아에 씹힌 유두가 따가웠다. 겁에 질린 몸이 떨고 있는데 호철은 그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체중을 실어 눌렀다. 승언과 하준이 대화를 하더니 승언이 기다란 바늘을 가지고 앞에 앉았다.

“왜 울어. 하고 나면 마음에 들 거야.”

“미안해, 형. 내가 잘못했어……. 싫어, 싫어. 형 제발…….”

“위아래로 흔들리는 모습도 예쁠 거야.”

승언은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봉긋 솟은 유두에 단번에 바늘을 관통시키니 단말마에 비명과 함께 서하의 상체가 숙여졌다. 호철이 잡고 있음에도 몸부림이 심한 서하에 정웅도 합세하여 서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으헝, 어, 엉. 아파…….아파! 하지 마!”

바늘을 서서히 빼낸 승언은 상처가 아물기 전에 피어싱을 통과시켰다. 손자국이 난 오른쪽 가슴에 푸른색 보석이 달리게 되었다. 위아래로 보석을 튕긴 승언은 서하의 표정을 감상하기 위해 하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아파요……. 싫어……. 그만해 줘, 말 잘 들을게.”

“…….”

이번에는 바늘이 왼쪽 유두로 오더니 관통했다. 투두둑 소리를 내며 들어가는 바늘에 혀를 깨물 뻔했으나, 하준의 손에 의해 간신히 깨물지는 않았다. 입 밖으로 형체를 알 수 없는 신음이 내뱉어졌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바늘이 나가고 피어싱이 들어왔다.

왼쪽에는 붉은색, 오른쪽에는 푸른색 피어싱이 달렸고, 서하의 흐느낌에 따라 보석이 작게 흔들렸다. 가슴에 달린 피어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하준과 승언이 양쪽에 앉았다.

“생일 축하해, 서하야.”

“생일 축하한다.”

끔찍했던 생일을 기점으로 하준은 정액을 빼지 못하게 구멍의 마개를 넣고 지내게 했고, 충격적인 일을 연속으로 겪었던 서하는 눈에 띄게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눈을 떠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눈을 다시 감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언제까지 잘 생각이지?”

“…….”

“때 되면 일어나겠죠.”

하준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들어 있는 서하를 보며 착잡해했으나, 승언은 개의치 않은 듯 때가 되면 일어난다고 하였다. 미약한 페로몬만이 흘러나오는 것에 위안을 얻은 하준은 승언과 함께 방을 나섰다.

“그래서 정확히 원하는 게 뭐지? 대를 잇고 싶은 건 아닌 거 같고.”

“이을 생각은 없어요. 재미를 위해서죠. 서하 재밌지 않아요?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쯤 길길이 날뛰는데 보통 오메가들은 안 그러잖아요. 근데 그것보다, 의사는 언제 부르실 생각이세요?”

점점 미약해지는 페로몬에 희망을 품던 하준이었지만 승언에게 내색하지 않고자 심드렁하게 부르지 않았다고 대꾸했다. 대신해서 의사를 불러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하준은 승언에게 나가라고 문을 가리켰다. 서하가 자고 있어 때마침 무료했던 승언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준에게 인사를 한 뒤 집을 나섰다.

방으로 돌아온 하준은 숨을 쉬고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미약하게 숨을 쉬는 서하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 덮여 있는 이불을 치운 하준은 서하의 배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있었다.

음식물을 잘 섭취하지 않아 마른 몸에 영양분을 주입하기 위해 팔목에 바늘을 꽂았다. 처음에는 바늘을 꽂을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났지만 바늘이 몸을 뚫는 것에 적응을 했는지 일어나지도 않았다. 힘든 일도 임신을 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서하와 자신 모두가 행복해질 일이었다.

***

일어나고 싶지 않다. 몸이 물을 머금은 듯 손가락 하나를 까닥하기도 힘들었다. 영원히 잠에 빠져 살고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 계속 몸을 흔들어 댔다. 잠을 방해하는 존재가 거슬렸으나, 끊임없이 정신을 갉아먹어 힘겹게 눈을 떴다.

“윤서하.”

“…….”

흐릿하게 보이는 인영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니 시야가 점차 선명해졌다. 하준의 얼굴이 보였고, 서하는 겪었던 일이 떠올라 짧게 숨을 내뱉으며 실소를 지었다. 몸의 감각이 둔했으나 유두와 구멍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어깨를 받치고 일으키는 하준의 손을 쳐 내고 싶었으나 몸이 따라와 주지 않아 침대 헤드에 기대게 됐다. 곧 있어 의사가 방 안으로 들어왔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을 꺼내기에 물끄러미 바라봤다.

“몇 주 전부터 계속 이 상태던데 별 이상은 없는 건가?”

“네, 오랜만에 깨어나셔서 몽롱한 상태일 뿐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상태가 좋지 않은 서하와 한층 더 예민해진 하준을 보며 의사는 빨리 진료를 하고 벗어나고자 속도를 올렸다. 히트사이클을 맞았다고 하니 하준이 원하는 소식이 있길 바랐으나 검사 결과는 임신이 아니었다.

의사는 두려운 마음에 침을 한 번 삼키고, 목을 가다듬으며 정확히는 아니지만 임신이 아니라 알렸다. 일정한 속도로 탁자를 두들기는 하준을 보며 의사는 잘못이 없음에도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히트사이클인데 임신이 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간혹 되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힉!”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니 놀란 의사가 비명을 질렀고, 서하 역시 큰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을 보니 임신이 되지 않았고 하준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성하듯 웃었다. 갈라진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고, 피 맛이 났으나 너무나 즐거웠다.

방 안에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하준은 개의치 않으며 의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주의할 점은 더 없나?”

“한동안 식사를 하지 않아 소화 기관이 약해졌으니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의사가 방 밖으로 나가는 걸 지켜보는 걸 하준이 몸으로 가려 막자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창문이 막혀 있는 방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계절감을 느끼지 못해 얼마나 잠이 들었는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지럽지는 않나?”

“…….”

이마에 서늘한 손이 닿았고 시원함을 즐기던 서하는 문뜩 하준의 손임을 자각하고 손을 들어 팔을 쳐 냈다. 서서히 힘이 돌아오는 몸을 움직이던 서하는 오른쪽 팔목에 뚫려 있는 구멍을 보며 오랜 시간 잤음을 알아냈다.

침대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발을 딛는 순간 땅이 무너지는 것처럼 시야가 핑 돌았고 그대로 바닥에 부딪혔다. 통각도 퇴회됐는지 부딪히고 한참을 지난 후에야 고통이 느껴졌다.

“아……!”

“윤서하!”

하준은 미처 잡지 못한 서하를 일으켰으나, 텅 비어 버린 눈동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다리 근육이 떨리는 것을 보던 서하는 단기간에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몸인데도 제삼자의 몸처럼 걱정이 되지 않아 이상함을 느꼈다.

“비……켜. 나, 나갈 거야.”

“…….”

말을 할 때마다 기침을 내뱉으면서도 꿋꿋하게 입 밖으로 내뱉으며 비키라고 하였고 하준은 잡은 서하의 팔을 놔주었다.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서하는 구멍에 있는 마개를 빼내고, 유두에 있는 피어싱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물건에 이리저리 건드려 보았다.

결국 빼내지 못하고 붓기만 한 유두에 훌쩍이는데 목줄을 걸고 유두에는 색이 다른 피어싱을 하고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췄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에 충동적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욕실 물건을 거울에 던지니 파열음과 함께 파편이 튀었다. 파편이 살갗을 찢고 고통이 느껴졌고 서하는 속에 담긴 응어리를 풀어내고자 소리를 질렀다.

“윤서하!”

“아악! 꺼져! 다, 사라져……. 다, 읍. 흐윽…….”

하준은 머리를 쥔 채 소리를 지르는 서하를 안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몸부림을 치는 서하를 힘을 주어 안은 하준은 이불로 서하를 감싸 안고 진정이 될 때까지 토닥거렸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는지 이내 다시 잠이 든 서하를 하준은 한참 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승언에게 전화를 건 하준은 목줄을 풀라고 했으나, 하준이 목을 깨물어 각인을 할 것 같다며 거부했다. 전화 소리에 몸을 뒤척이는 서하에 하준은 정웅을 불러 서하를 지켜보게 하고 서재로 갔다. 하준은 승언과 협상을 하고자 했으나 승언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전화가 마무리되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로운에게 전화가 왔고,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말에 하준은 한숨을 쉬며 정웅과 호철에게 서하를 맡기고 회사로 갔다.

잠에서 깬 서하는 익숙한 천장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웅이 옆에서 안부를 물으며 밥을 가져오겠다고 하였고, 몸을 일으켜 앉은 서하는 하얀 벽을 쳐다보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정웅이 쌀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미음을 가져와 건네줬으나, 서하는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벽을 응시했다.

“서하 님, 드셔야 해요……. 그동안 아무것도 안 드셔서 몸도 상해 있을 테고…….”

“오늘은 몇 월 며칠이에요?”

정웅은 날짜를 묻는 서하에게 답을 해 주지 않았다. 저번에 날짜를 묻고 미친 듯이 웃던 서하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더욱 악화된 서하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어 의미 없이 웃자 서하가 따라 웃었다.

“웃겨요?”

“…….”

이내 웃던 걸 멈추고 표정을 굳히는 서하를 보며 정웅은 소름이 끼쳐 의자에서 일어났다. 반동에 의자가 넘어졌고 의자와 정웅을 번갈아 보던 서하가 다시 빈 벽에 시선을 두자 정웅은 허겁지겁 방을 나섰고 호철이 들어왔다.

“…….”

“…….”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고, 침묵만이 맴돌았다. 호철은 정신이 나간 듯한 서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정웅이 호들갑을 떨기에 과장한다고 생각했으나, 경호 생활을 하면서 미련이 없어 보이는 눈빛을 가진 자가 더 위협했음을 경험으로 알았기에 호철은 숨을 죽이며 서하를 예의 주시했다.

“최하준은?”

“회사에 가셨습니다. 곧 돌아오실 겁니다.”

“아…… 형, 아니지, 박승언은?”

“마찬가지로 출근하셨습니다. 깨어났다고 알렸으니 오늘 오실 겁니다.”

남의 일상은 송두리째 망가뜨렸으면서, 본인들은 태연하게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승언과 하준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서하는 명안이 떠올라 생긋이 웃었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호철과 정웅의 감시를 누그러뜨려야 했기에 서하는 탁자에 올려져 있는 미음을 집어 들었다. 속이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중간중간 신물이 올라왔지만 꾸역꾸역 미음을 먹는 서하를 확인한 호철은 하준과 승언에게 보고했다.

“다 드셨습니까?”

“네, 근데 목말라요. 가지고 올게요.”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서하를 만류한 호철은 방을 나가 물을 가지고 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행여나 서하가 돌발 행동을 할까 걸음을 빨리했는데 서하는 미동도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얌전히 있었다. 무해한 분위기를 풍기는 서하에 기우였나 싶어 물을 건네준 호철은 뒷걸음질 치며 서하와 거리를 확보했다.

자신이야 경호가 주 업무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게 익숙하지만 일반인이 서하가 핸드폰도 TV도 없는 공간에서 평온하게 가만히 있으니 오히려 자신이 불편했다. 게임기라도 가지고 오겠다고 했으나, 서하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음……. 전화하고 싶어요.”

“안 됩니다. 다른 걸 부탁하시면 들어드리겠습니다.”

“이사님이랑 형한테도 안 되는 건가요?”

처연하게 눈매가 내려가는 서하를 보며 호철은 망설이다가 화상 전화와 무선 이어폰을 줄 테니 핸드폰은 건들지 말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서하를 믿으며 호철은 맨 처음 승언에게 전화를 걸었고 몇 번의 수신음이 가더니 액정에 승언의 얼굴이 찼다.

[서하……? 형 보고 싶었어?]

“응……. 형, 나 혼자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 오늘 나 보러 올 거야?”

눈에 띄게 동요하는 눈동자에 만족하며 서하는 고등학교 때 추억을 꺼냈다.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의심하던 승언이었으나 회유하기 위해 손을 떨며 눈물을 흘리니 6시쯤 도착하겠다 약조하였다. 전화가 끊기자 하준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한 서하는 눈물을 닦아 냈다.

[…….]

“…….”

최하준의 호칭을 고민하다 보니 처음부터 공백이 생겨 버렸다. 자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하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호철은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나 싶어 서하에게서 핸드폰을 돌려 화면을 확인하는데 하준의 얼굴이 보였다.

[돌려.]

“죄송합니다.”

다시 서하에게로 핸드폰을 돌린 호철은 두 사람의 침묵이 언제 깨질지 지켜보았다. 결국, 하준이 먼저 서하의 이름을 불렀고 서하는 입을 달싹이다가 말을 했다.

“형.”

[…….]

통화가 종료되어 꺼져버린 액정을 황당하게 바라본 서하는 호철에게 전화가 끊겼다고 했다. 너무 중간이 없었나 싶어 이사님으로 수정하기로 하고 서하는 호철에게 다시 부탁하니 수신음이 울리기도 전에 하준이 화면에 나타났다.

“오늘 몇 시에 퇴근하세요. 이사님?”

[글쎄……. 최대한 빨리 가고 싶지만 오후 8시쯤은 돼야 할 거 같군.]

“아……. 좀 더 빨리 올 수는 없나요?”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이자 하준이 한숨을 쉬며 7시에 가겠다고 했다. 하준과 승언이 동시에 와야 했기 때문에 서하는 하준의 역린을 자극하기로 했다.

“그럼……. 승언 형이랑 기다리고 있을게요.”

[박승언……? 그놈한테도 연락했나?]

바로 미끼를 물어 기뻤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불안하고 답답해 승언에게 연락을 했다고 얼버무렸다. 사실 전화 내용은 그게 전부였지만 하준이 계속에서 다른 말은 무엇을 했냐고 캐물었고, 서하는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않으며 6시라고만 반복해 말했다.

[하……. 시간 맞춰서 가지. 뭐 필요한 건 없나?]

“음……. 케이크요. 사실 축하받고 싶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 하준을 보고 꼴값을 떤다고 생각했다. 겨우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인 서하는 통화가 종료된 걸 확인하고 귀에서 이어폰을 빼 호철에게 미련 없이 건네줬다. 아까까지는 밝다가 순식간에 침울해지면서 침대에 눕는 서하에 호철은 안절부절못하며 서하에게 말을 걸었다.

“올 때까지 자고 싶은데 나가 주실 수 있나요?”

“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조용히 있을 테니 주무십시오.”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 예상을 했기에 서하는 알았다고 한 뒤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까지 덮었다. 규칙적으로 이불이 오르고 내려가는 걸 확인한 호철은 침대에 다가가 이불을 끌어 내렸다. 얼굴까지 덮어서 그런지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었고, 호철은 서하를 내려다보며 연민을 느꼈다.

“잘 자.”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한 호철은 편히 잘 수 있도록, 방에 불을 끄고 벗어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뜬 서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잘 자라니, 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준과 승언이 올 때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30분, 재밌는 쇼를 구상하던 서하는 미음이 담겨 있던 그릇을 보았다. 그릇을 사용해 볼까 하다가 행여나 실패할 위험이 있기에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다른 물건을 찾았다.

“아, 찾았다!”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 수는 없겠지만, 뭐든 웃는 표정은 되지 못하리라.

***

전화를 끊은 하준은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고 만지작거렸다. 윤서하가 형이라고 불러 당황해 순간적으로 전화를 끊고 말았다. 좀 있어 다시 전화가 왔고 이사라고 호칭이 수정됐으나 오랜만에 깨어나 말을 하는 서하였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이사님,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무것도 아냐. 그것보다 오늘 일찍 들어가야겠어.”

로운은 몇 주 만에 회사에 얼굴을 비췄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으나 을이었기에 머릿속으로만 실행했다. 서하에게 푹 빠진 하준은 평소 이미지와 달라 괴리감이 들었으나 로운은 미소를 지으며 이른 퇴근을 넌지시 반대했다.

“날 막으면 후회할 텐데?”

“전 걸릴 게 없습니다. 오늘 절대로 일찍 퇴근 못 합니다. 할 일이 엄청나게 밀려 있다고요.”

“클럽에 그 애.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릴까?”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비열하게 미소를 지으며 하준이 말했고, 로운은 눈물을 머금으며 남은 일은 맡겨 달라고 했다. 로운의 어깨를 두들기고 회사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다. 오후 5시 20분, 서하와 약속한 시각까지 여유가 있었다.

제과점 앞에 주차한 하준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형형색색의 디저트들이 쇼케이스 안에 가득 차 있었고 하준은 서하가 좋아할 만한 케이크를 둘러보았다. 축하를 받고 싶다니 아이 같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며 하준은 조각 케이크가 아닌 과일이 잔뜩 올라가 있는 케이크를 샀다.

“감사합니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28개로 부탁드립니다.”

묵직한 케이크 상자를 조수석에 내려놓은 하준은 차를 출발시켰다. 퇴근 시간이라 막히는 길에 핸들을 손으로 두들기며, 길이 한산해지길 바랐다.

오후 5시 55분, 집에 도착한 하준은 주차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정원에서는 여름 특유의 싱그러운 향이 맴돌았다. 풀잎의 상쾌함도 좋지만 파우더 향을 내뿜으며 케이크를 먹는 서하를 상상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둘 다 왜 거실에 있는 거지? 윤서하 지켜보라고 했을 텐데.”

“곤히 주무시는 걸 확인하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주무시고 있을 겁니다.”

호철이 자고 있다고 했으나 이상하게 불안감이 들었다. 하준은 걸음을 바삐 옮겨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이 들었다고 한 서하는 침대 위에 서 있었다. 목에 무언갈 매고 있는 상태로.

“윤서하……?”

“아……. 왜 빨리 왔어? 아직 시간 안 됐는데.”

“지금…… 움직이지 마…….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기만 해 봐.”

“어쩔 건데? 난 이미 다 준비가 끝났는데. 뭐, 박승언이 못 봐서 아쉽지만……. 최하준, 네 머릿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을 마친 서하는 침대 아래로 발을 뻗었고, 동시에 목줄에 걸어 놓은 벨트가 목을 졸렸다. 숨이 막히고 목을 조이는 고통에 컥컥거리면서도 서하는 하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툭-.

케이크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린 하준은 침대에 올라가 서하를 받쳐 들었다. 밖에 있는 호철과 정웅을 불렀더라면 쉬이 해결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윤서하를 들어 올리는 데에만 급급했다.

“도련님! 이게 무슨…….”

“비켜 주십시오!”

호철은 정웅을 밀치고 침대 위에 올라가 전등과 벨트를 고정시킨 고리를 풀어냈다. 추락하는 서하를 받아 낸 하준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목뼈가 다쳤을 수도 있으니.”

“…….”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는데 승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정웅에게 상황을 들었는지 손을 떨며 침대에 다가오는 승언에게 하준은 소리를 지르며 책망했다.

“그러니까 목줄을 풀라고 하지 않았나. 자살하려는 구실만 만들어 줬군.”

“…….”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승언은 막 받아치지 않고 서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방 안에 있는 사람 모두 침묵했고 시간이 지나서야 구급차에 의해 서하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사는 병원에 입원한 서하와 두 알파를 보고 비지땀을 흘렸다. 흉흉한 기색의 두 알파와 알파가 아니나 건장한 체격의 호철까지 실수라도 한다면 서하보다 자신이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진료하기 위해 목을 보는데, 목줄이 채워져 있었다. 목을 매달아 자살하려고 한 오메가에게 여전히 목줄을 채워 둔 알파의 잔혹함에 혀를 내둘렀다.

“원활한 진료를 위해서 목줄을 풀어야 합니다.”

“아……. 네, 잠시만요.”

멍하게 있다가 호철이 어깨를 건들자 정신을 차린 승언은 목줄에 손을 대고 페로몬을 흘려보냈다. 몇 개월 만에 목줄이 풀렸고, 완전히 빼내니 서하의 처참한 목이 훤히 보였다. 보랏빛으로 멍든 목에 충격받은 승언이 움직이지 못하고 멈추자 승언을 뒤로 밀은 하준은 의사에게 진찰하라고 했다.

검사실로 들어가는 서하와 밖에서 기다린 승언과 하준은 말을 하지 않았으나 날이 서 있었고 일그러지며 뻗어 나가는 페로몬이 두 사람의 심기를 대변했다.

“목뼈는 이상이 없습니다……. 다만, 기도가 상했으니 한동안 말을 자제하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지. 집에서 치료를 받게 하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한가?”

내일이면 수속을 밟고 퇴원하라고 한 의사는 안정제를 놓으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긴 줄의 형태로 패이고, 푸르게 멍이 든 목을 보던 하준은 호철에게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호철은 피하지 않고 견뎌 냈고 보다 못한 정웅은 하준의 어깨를 붙잡으며 진정시켰다.

“안정을 취하라고 하셨는데 병실에서 소란스러우면 안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눈을 떼다가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때는 각오해.”

“죄송합니다.”

승언이 손짓으로 밖으로 나오라고 하였고, 호철은 승언을 따라 복도로 나갔다. 웃지도 않고 무언갈 고민하는 승언 앞에서 뒷짐을 지고서 승언이 말을 하길 기다렸다.

“팀장님, 제가 팀장님만 믿었는데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니 굉장히 어이가 없네요. 전 오늘 사랑스러운 서하를 잃을 뻔했어요. 게다가 조금만 늦었어도 죄책감에 빠져 한동안 빠져나오지도 못했겠죠. 그걸 노린 건가요?”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화를 삭이는 듯해 호철은 무표정을 유지하며 승언을 쳐다보았다. 긴 한숨과 함께 승언은 호철에게 다가가 왼쪽 어깨를 붙잡으며 입을 뗐다.

“변명이라도 하면 알파들한테 던져 주려고 했는데 팀장님은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아시네요. 그치만 더는 기회가 없음을 명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부진 몸매로 알파들에게 깔리는 베타는 눈요깃거리가 되겠지만 순간에 치기로 쓸모없는 패를 잃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며 서하가 잠들어 있는 병실에 들어갔다.

침대맡에 하준이 앉아 서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승언도 고개를 내려 서하를 봤다.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지 색색거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서하의 의지만은 칭찬해 줘야 했다. 이 모든 게 계획된 일이었다.

“서하야…….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었어?”

정신은 잃은 서하는 답을 해 주지 않았지만, 승언은 서하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준에게 서하가 깨어나면 다시 오겠다고 한 뒤 승언은 병원을 벗어났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집에 도착한 승언은 방 안으로 들어가 모아 둔 서하의 사진을 보았다.

발현하고 난 후에는 웃는 사진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 서하와 찍은 사진에는 하나같이 활짝 웃고 있었다. 특별한 날에 찍은 사진도 아니었는데, 뭔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 찍은 사진만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책상 위에 툭 하고 던졌다.

“서하야……. 근데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쓰레기여서 못 놔줄 것 같다.”

***

이번에야말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한 모양이었다. 숨을 쉬는 간단한 행동조차 목이 찢어지는 듯했고, 거친 숨소리가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원치 않은 고통을 느끼며 살아 있음을 확인받은 서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팔에 부딪히는 물체에 시선을 돌려 확인하니 침대맡에서 불편하게 자는 하준이 보였다. 새로운 청승에 불쾌해져 손을 들어 팔을 차니 하준이 부스스 일어났다. 실시간으로 커지는 눈을 본 서하는 뒤로 물러나며 하준과 거리를 뒀으나 하준이 팔을 잡아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윽, 놔.”

“…….”

한 마디 내뱉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무의식적으로 목을 만진 서하는 움푹 들어간 목이 낯설어 계속해서 쓸어내렸다. 거울을 보고자 하는 서하였지만 하준은 서하가 목의 상처를 보고 패닉이 올까 거울 근처에 다가가지 못하게 몸으로 막아섰다.

“그만 만지고…… 침대에 앉아. 오랜만에 깨어나서 정신이 없을 테니.”

“…….”

“뭐 필요한 건 없나? 그래, 목이 마르겠지.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하준 혼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렸다. 물을 가지러 가던 하준은 그사이에 서하가 또다시 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자 발걸음을 멈췄다.

“…….”

의문이 담긴 눈동자에 하준은 서하를 응시하며 정웅에게 카톡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웅이 트레이에 컵과 물병을 가지고 들어왔다. 자살을 방지할 용도임을 눈치채고 입이 찢어질 듯 입꼬리를 올렸다.

목이 아파 소리를 내지 않고 입꼬리만 올린 행세가 기괴한지 정웅이 두려워하는 게 보였다. 조금만 더 골려 줄 생각에 손을 뻗는데 하준이 몸으로 사이를 가로막으며 종이컵을 쥐여 줬다.

“안, 큽. 마셔.”

“하…….”

종이컵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린 서하는 방바닥에 서서히 퍼지는 물을 응시하는데 하준이 고함을 질렀다.

“윤서하!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자살이라도 하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았나? 그렇게 생각했으면 지금이라도 단념하는 게 좋아.”

“…….”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에 고개를 서서히 든 서하는 하준을 바라보았다. 신장의 한계로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뭐 어떠냐. 자신이 죽을까 봐 아등바등 떨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는 알파인데.

“있잖아……하. 읍. 너 지금, 웃겨.”

“뭐?”

더 길게 말하고 싶었으나 힘들어 최대한 짧게 말했는데도 먹혀든 모양이었다. 표정의 변화가 없던 하준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의사가 집에 와 서하의 목을 소독하고 치료했다. 깨어난 날 승언이 집에 왔는데 말도 없이 치료하는 과정만 보다가 돌아갔다. 감시가 심해질 줄 알았으나 두 사람은 오히려 일에 몰두했고 서하는 홀로 남아 목줄이 사라져 휑한 느낌에 목을 계속해서 만졌다.

“크흡. 아, 아.”

이따금 따가우면서 무언가 걸린 느낌이 나는 목에 물을 마시기 위해 거실로 나가니 호철이 아닌 다른 경호원이 있었다. 부엌에 들어가기도 전에 정웅이 막아서며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 몸을 물렸다. 시간을 맞춰 간식이 나왔고 식기들이 하나같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없는 일화용 용기들이었다.

“입맛에 안 맞으십니까? 집사님께 말씀드려서 다른 걸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호철……. 그분은 어디 가셨나요?”

개인 사정상 휴가를 냈다는 말을 듣고 서하는 눈을 감았다. 하긴 불까지 꺼 주고 갔는데 그사이에 자살을 시도했으니 충격이 이래저래 컸을 것이다. 하준과 승언에게 엿을 줬으니 보복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쩔쩔매고 있었다. 문득 하준이 어디까지 허용해 줄지 궁금해져 소파에 앉았다.

“필요한 거라도?”

“저, 3층 올라가고 싶습니다. 제가 원래 쓰던 방.”

이제 막 배치됐는지 경호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으나 서하는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부엌에서 나온 정웅이 설명을 해 주자 곤란하다는 기색을 비췄고 안 되나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정이 많은지 경호원이 하준에게 연락해 허락을 받아 냈다.

“먼저 앞장서시면 뒤따라가겠습니다.”

“그러든가요.”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온 서하는 침대에 앉았다. 하준의 방에 있는 침대에 비하면 많이 좁았으나 오히려 안정감을 줬다. 침대에 앉아 방을 둘러보다가 책상 서랍장을 보았다. 몸을 일으킨 서하가 서랍장에 손을 뻗는데 경호원이 막아섰다.

경호원이 동의를 구했고 딱히 중요한 건 없었던 거 같아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 용품만 가득 차 있었고 흥미가 사라질 찰나 경호원이 굳이 맨 아래 칸 서랍장까지 열어 줬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 여기며 눈으로 흘끔 서랍장을 보니 신용 카드가 노트 위에 올려져 있었다.

서하가 몸을 낮춰 신용카드를 집어 들자 경호원이 하준이 준 카드냐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잊고 있을 수가 있었을까……. 아버지가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줬던 카드였다. 카드를 손에 쥔 서하는 부모님이 생각나 눈물을 흘렸다. 보고 싶었다.

“서하 님……? 어디 편찮은 데라도……. 지금 당장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무전을 잡으며 보고하려는 경호원의 소매를 잡아 말린 서하는 카드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부모님은 보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가면……. 가기만 한다면 부모님이 도와줄 것이다.

저녁을 준비하던 정웅은 안색이 파리해져 내려온 서하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입을 꾹 다물고 바닥에 깔린 러그만 쳐다보던 서하는 나가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앞에 경호원과 정웅은 어찌한다고 하더라도 정원에 경호원이 몇몇이 있을지가 미지수였기에 막막했다.

다리를 떨며 고민하던 중 경호원이 따뜻한 코코아가 담긴 컵을 내밀었다. 생긴 건 험악하게 생겨서는 답지 않게 남을 챙기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코코아를 받아 든 서하는 두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침착해지자 집 안에 있는 경호원과 정웅조차 완력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을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위험한 것들은 사라졌고, 코코아가 담긴 컵마저도 종이여서 쓸모가 없었다.

‘뿌려 버릴까.’

그러기에는 앞에서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경호원에게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몇 명의 경호원에게 공격을 가하기는 했으나 오늘 초면인 경호원은 왜인지 모르게 공격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슨 사람이 저렇게 올곧은 눈을 가지고 있는 건지 접해 본 적 없는 분류라 건들고 싶지 않았다. 치아로 컵을 잘근잘근 물며 두리번거리던 서하는 저녁을 준비하는 정웅을 보았다.

일정한 속도로 칼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아 왼손으로 소파를 톡톡 누르며 남은 코코아를 입에 털어 넣었다.

잘 마시는 서하를 해맑게 바라보던 경배는 의뢰인을 잘 지켰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겼다. 바지 주머니에서 얼핏 보이는 카드 윤곽이 궁금했으나 말단인 자신을 믿고 맡겨 준 호철을 위해 호기심을 숨기고 경호에만 몰두했다.

“저기…….”

“넵, 뭔가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혈색이 돌아온 서하가 처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경계심을 풀었다는 생각에 기뻐져 뭐든 시켜 달라고 하니 코코아 한 잔을 더 부탁받았다. 부엌으로 달려가 정웅에게 전달하자 금방 새로운 코코아가 나왔다.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최경배라고 합니다.”

경배에게 코코아를 전달받은 서하는 살포시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컵을 입에 댄 서하는 혀가 데인 척 의도적으로 컵을 떨어뜨리고 가까스로 피한 척 다리를 소파 위로 올렸다.

하얀 러그에 퍼지는 갈색 빛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들어 경배를 쳐다보았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우물쭈물하며 치우겠다고 하니 경배가 앉아 있으라며 다용도실로 들어갔다.

소파에서 일어나 다용도실에서 청소 용품을 찾느라 고군분투하는 경배를 뒤로하고 서하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름 소란스러웠는데 정웅이 왜 눈치채지 못했나 했더니 이어폰을 꽂고 있었고 멀리 있는데도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인상을 찌푸렸다.

재료를 손질하는 정웅을 부엌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구경했다. 거실에서는 보이지 않고 싱크대 옆에서 요리하고 있는 정웅도 의식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위치였다.

정웅은 이어폰에서 음악이 멈춰 음악 재생 목록을 처음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 식탁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찾는데 이상하게 시야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어폰을 빼내고 경배를 부르기 위해서 입을 여는데 허리춤에 무언가가 닿았다.

“쉿. 소리 지르면 찌를 거예요.”

“서, 서하 군? 언제……. 아니, 그것보다 무슨…….”

정웅이 식탁으로 간 사이 도마에 놓인 칼을 쥔 서하는 정웅에게 붙어 위협했다. 정웅의 입을 막는 데는 성공했으나 청소 도구를 찾았는지 경배가 거실로 돌아왔다.

“……서하 님?”

“…….”

상처받은 눈빛과 마주친 서하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정웅을 인질로 삼아 빠져나가기 위해 칼을 쥔 손으로 목 근처에 대고 문을 향해 걷게 했다.

경배는 서하의 돌발 행동에 당황했으나 인질로 잡힌 정웅을 구하기 위해 서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움직이지 말라며 칼이 정웅의 목 쪽으로 더욱 향했고, 서하를 진정시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으나 오히려 서하는 흥분했다.

“서하 님, 제가 마음만 먹으면 제압할 수 있습니다. 지금 멈추시면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집사님도 묵인하실 거죠?”

정웅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임을 표했으나 서하는 미친 소리 좀 작작 하라고 했다. 누가 보면 선량한 시민을 공격하는 범죄자인 줄 알겠다. 정웅은 경배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칼을 잡은 손이 약간 틈이 생긴 걸 보고, 머리를 뒤로 세게 움직여 박았다.

“악!”

정웅과 비슷한 키였던 서하는 코를 맞아 손으로 붙잡으며 몸을 숙였다. 코피가 나지는 않았으나 욱신거렸고 그사이 정웅은 서하에게서 빠져나가 경배의 허리춤을 붙잡고 몸을 떨었다. 하준이 들인 오메가는 다른 오메가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고 칼부림까지 할 줄 몰라 영준에게 보고하여 하준에게서 떼어 놓고자 다짐했다.

“아씨……. 개 아파.”

“서하 님……. 칼 이리 주시지요.”

이대로 탈출은 물 건너간 건가 싶어 망연자실해졌다. 경배가 서서히 다가왔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정웅과 경배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보다는 하준의 분노일 것이다. 하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람들이었다.

‘최하준이 싫어할 만한 방법…….’

머리에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서하는 반쯤 놓은 칼을 다시 붙잡았다. 서서히 칼을 위로 올리니 경배가 소용이 없다며 소리쳤으나, 방향을 잘못 잡았다. 타인을 찌르려는 게 아니었다. 얼마 전에도 죽으려고 했으니 또 시도한다면 최하준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서하는 칼을 목에 가져다 댔다. 서늘한 촉감이 목에 가감 없이 느껴져 손이 떨리고 입이 바짝 말랐으나 서하는 태연한 척 웃으며 경배와 정웅을 쳐다보았다.

“당장 칼 내려놓으십시오!”

“그러기에 왜 도망갔어요. 할 수 없이 나라도 찔러야지.”

사색이 된 표정들을 보니 거의 넘어왔다. 하준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하거나 자신에게 협상을 시도할 테다. 그 기회에 빠져나가면 됐다.

경배는 서하에게서 칼을 빼앗기 위해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스스로 찌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기에 단순히 목숨을 담보로 한 협박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서하의 비위를 맞추며 걸음을 옮겼고 두 걸음 정도의 거리로 좁혀졌다.

이대로 조심히 칼을 빼내고, 서하를 달래 주기로 했다. 오메가는 유약하니 다독여 준다면 눈물을 보이면서 무너질 게 분명했다. 남은 한 걸음, 서하의 어깨가 곧 잡힐 듯해 숨을 죽이고 다가갔다.

“…….”

“…….”

“세상에…….”

무표정하게 칼을 목으로 가져다 댄 서하였고 피부가 찢겨 피가 흘렀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으나 서하의 눈은 떨리지 않고 담담히 떨어지는 피를 내려다보고 있어 경배와 정웅은 경악했다.

“못 할 줄 알았나 봐요.”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당신 머릿속 말해 줄까? 오메가가 칼이라도 제대로 잡을 수 있나? 아니면 위협하다가 엉엉 울겠지. 둘 중 하나겠죠. 봐 봐, 표정 보니 맞나 보네.”

씨익 웃으며 서하가 다가가자 경배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피를 흘리고 있어 안색이 나빴으나 곧 쓰러지기보다는 오히려 모두를 죽이고 당당히 걸어 나갈 것 같았다. 서하가 칼을 오른손으로 잡고 까닥거리며 비키라고 하자 경배는 순순히 옆으로 비켰다.

“잡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저러다 도망가면…….”

“그렇다고 집사님을 찌를 수는 없잖아요.”

“보내 주시죠…….”

다가가면 본인의 목숨을 위협하기에 섣불리 다가갈 수도 없었다. 서하가 집 밖으로 나가면 하준에게 보고할 생각이었으나 서하가 왼손을 펼치며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핸드폰을 넘겼으나 눈으로 욕을 하는 서하에 잠금을 풀고 핸드폰을 건네주니 무언가 생각난 듯 돈까지 달라고 요구했다. 카드를 건네자 재차 무언의 욕이 날아오면서 현금을 요구했고 경배는 지갑을 통째로 넘겨줬다.

“아……. 이럴 필요는 없는데. 안에 위치 추적 달려 있는 건 아니죠?”

“저 같은 알개 경호원에게 그런 게 달려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찜찜해하던 서하는 만 원짜리 3장을 꺼낸 후 지갑을 돌려줬다. 남은 건 정원에 있는 경호원들을 제쳐야 한다는 건데 경배를 이용하고자 했다. 경배의 뒤에서 재킷 안쪽에 칼을 넣고 앞장세워 현관문을 나가니 정원에 있던 경호원들이 일제히 쳐다봤다.

“윤서하 님께서 왜 나오신 겁니까?”

“들어가십시오. 보고 받은 게 없습니다.”

“이사님의 명령으로 나가는 거니까. 시선 처리 똑바로 하십시오. 이사님은 지금 중요한 회의에 들어갔으니 괜히 쓰잘 데 없는 짓 하지 마시고요.”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어지지 않았다. 두려운 건 사실이었기에 경배에 뒤에서 딱 붙어 정원을 지나 대문을 나왔다. 이제 집으로 들키지 않고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경배가 난색을 보이며 지금이라도 돌아가자고 했다.

“혼자 대중교통이라도 이용하시려고요?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당신이랑 같이 갈 수는 없잖아요. 비켜요.”

경호원들이 하준에게 보고하기 전에 떠나고자 몸을 돌리니 곧바로 어깨를 붙잡는 손에 변심한 건가 싶어 노려보는데, 한숨을 크게 쉰 후 결심했다며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겠다 하였다.

“하, 뭐라는 거야. 데려다준다고 하면 제가 아이고, 감사합니다, 라고 할 줄 알았어요? 뭘 믿고 내가 병신 같은 짓을 해요…….”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보내고 큰일이라도 나면 제가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징계받을 테니, 마음이 편한 쪽으로 행동하겠습니다.”

표정을 보니 거짓은 말하지 않은 것 같아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있어 경배가 차고에서 차를 끌고 나왔고 경호원들도 의심을 풀었다고 했다. 어디로 가야 하냐는 경배에 말에 한동안 입에 담지 않았던 동네 이름을 꺼냈다.

“그곳이 서하 님 집인가요?”

“묻지 마요. 아직 칼 들고 있어요.”

운전하는 경배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으니, 경호원이 된 이야기를 꺼냈다. 가족 중에 오메가 있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고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 오메가 경호원을 한다고 했다. 경계를 풀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겠으나 더더욱 경배를 보는 눈이 싸늘해지고 역겨워졌다.

“가족으로 여기지도 않는 거 같은데요. 그리고 사라졌으면 신고를 하든 찾든 해야지 잘 지내길 바라? 개 같은 소리하네.”

“아…… 맞습니다. 분명히 소중한 형이었는데 오메가로 발현이 된 순간부터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마찬가지였고.”

서하는 경배에게 시선을 거두고 카 매트를 내려다봤다.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으나, 주머니에 넣어져 있는 카드를 꾹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섣부른 판단은 불안감만 낳을 뿐이었다.

경배에게 갈취한 핸드폰으로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되뇐 번호였기에 누르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아…….”

엄마가 집에 있는 걸 확인한 서하는 전화를 끊었다. 소리를 낼 생각은 없었으나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집에 가서 어디든 좋으니까……. 마음 편히 있어 보고 싶었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할까요?”

“계속…… 직진이요.”

동네에 다다랐고 익숙한 건물들이 보였다. 친구들이랑 야자 중간에 간식을 사기 위해 들렀던 편의점과 부모님과 외식하기 위해 나왔던 음식점 등 어떤 것도 스쳐 지나가는 법 없이 눈에 밟혔다.

“…….”

“…….”

운전하다가 흘끗 서하를 본 경배는 두 손을 허벅지에 올리고 눈물을 참고 있는 모습에 조용히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무릎에 올려 줬다. 얼핏 듣기로는 대학교 때부터 집을 나왔다고 들었는데 몇 년 만에 보는 동네는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으읍……. 흑. 저, 내려 줘요.”

“아직 큰길인데요. 좀 더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내려 달라고요.”

집 근처 골목길에서 차가 멈췄다. 서하는 블랙박스에서 SD카드를 제거하고, 내비게이션의 경로 검색 내역을 삭제했다. 차에서 내려 경배에게 함구하라고 한 뒤 통화 내역을 삭제하고 핸드폰을 돌려줬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고른 게 신의 한 수였는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때까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현관문 앞에 멈춘 서하는 8년 만에 보는 집에 심호흡했다.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눌러야 할지, 초인종을 눌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초인종으로 손을 뻗다가 문득 목에 패인 상처가 떠올랐고 비디오폰으로 볼 부모님이 놀라지 않도록 옷을 여며 목을 가렸다.

딩동-.

초인종이 울려 퍼지다가 이내 소리가 사라졌다. 실소를 지은 서하는 애써 부정하며 초인종을 다시금 눌렀다.

딩동-.

딩동- 딩동-.

띵동띵동띵동띵동!

끝내 열리지 않은 현관문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강박증 환자처럼 미친 듯이 초인종을 누르며 소리쳤다. 방금까지 집 전화를 받았던 엄마였다.

“엄마! 아빠! 나야……. 서하. 안에 있잖아……. 왜 그래. 제발……. 열어 줘.”

자리에 주저앉은 서하는 한참을 소리를 죽여 울었다. 너무나 무섭고, 몸이 떨리는 와중에도 건너편 집에서 사람이 나올까 봐 소리를 삼키고 또 삼켰다.

비척거리며 일어난 서하는 그사이 외출했을 수도 있고 이사를 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 회로를 돌렸다. 한참을 계단에서 앉아 있다가 1층으로 내려와 우편함으로 갔다.

뒤집혀 있는 청구서를 손에 쥔 서하는 이름이 있을 위치를 가린 채 뒤집었다. 봐도 되는 게 맞을지, 후회하지는 않을지 갈등이 생겼다. 우편함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자 입구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봤다.

평소에는 사람들의 눈길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무섭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이 버리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하고 싶었다. 서하는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윤정호…….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여전히 이 집에서 살고 있었던 거다.

손에 힘을 주자 청구서가 처참하게 구겨졌다. 서하는 청구서를 쥔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도어 록을 빤히 보다가 위로 들어 올렸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듯 불이 들어온 도어 록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숫자를 하나씩 누를 때마다 삑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다 누른 서하는 떨리는 손으로 도어 록을 닫았다.

삐비빅-.

틀렸다는 소리와 열리지 않는 문을 바라보던 서하는 또다시 도어 록을 올렸다. 0018, 초등학생 때부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울음을 억누르며 서하는 비밀번호를 눌렀다. 행여 두 번 눌리지 않았을까, 인식이 잘 안 돼서 그랬던 건 아닐까 꾹꾹 누르는 손길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총 3번의 시도가 실패로 이어졌고 나가라는 듯 도어 록이 시끄럽게 울려 댔다.

“없는 거지……. 없어서 못 열어 주는 거지……. 나 버린 거 아니지…….”

사람이 없는 복도엔 서하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맞아, 둘 다 공사다망하니까……. 아직 퇴근 안 한 거잖아……. 맞아……. 그래.”

비밀번호는 바꿀 수도 있다. 0018 얼마나 쉬운 번호인가. 엄마와 아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바꾸는 게 맞았다. 그게 맞는데, 맞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쨍그랑-.

집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나 서하는 현관문에 귀를 가져가 댔다. 흐느껴 우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오래된 아파트라 방음이 불만이기는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알게 해 줄 꿈에도 몰랐다.

“나…… 이제 가 볼게. 안녕 엄마, 아빠.”

현관문에 손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다. 엄마와 아빠는 중산층에 평범한 베타이다. 오메가 자식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한편으론 하준이 건들지 않은 거 같아 다행이라 여겼다.

바지에서 아빠가 준 카드를 꺼내 청구서와 함께 현관문 안으로 밀어 넣고 아파트에서 나와 무작정 걸었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번화가에 온 서하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고자 했으나 걸음을 멈췄다.

왜 도망가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돌아갈 곳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해가 저무니 가을밤은 쌀쌀하니 그지없었고 얇게 입고 도망친 서하는 몸을 떨며 거리를 걸었다.

“사훈 형 보고 싶다.”

문득 사훈과 지호가 생각나 서하는 베타로 보이는 사람에게 핸드폰을 부탁해 연락하기로 했다. 목표가 생기자 죽은 눈에 생기가 조금 맴돌았고 서하는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저 멀리 교복을 입은 학생이 걸어오고 있어 서하는 학생을 향해 걸었다.

“오메가 아냐?”

“오메가가 미친 거 아니고서야 이 거리를 활보하겠냐?”

뒤에서 오메가라는 말이 들렸으나 서하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고 걸었다.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걸으면 눈치재지 못할 거였다.

“야, 무시해?”

목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왔고 서하는 보폭을 넓혀 걸었다. 떠보는 거다. 잡히면 안 된다. 이렇게 잡힐 수는 없다.

“아악!”

“오메가 맞아? 베타면 큰일 나.”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쳐다본 서하는 무리에게 잡힌 남자를 보았다. 옅게 맡아지는 자몽 향기는 오메가가 맞았다. 서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탓하며 뒤를 돌고 학생에게로 다가갔다.

“저……. 학생.”

“네? 저요?”

이어폰을 뺀 학생이 당황한 듯 가방끈을 붙잡으며 경계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서하는 무리가 사라진 걸 확인한 후 학생에게 핸드폰을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떨떠름해하는 학생에게 핸드폰을 근처에서 잃어버렸다고 없는 일을 지어냈다.

사훈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건 서하는 사훈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수신음 끝에 전화가 연결됐고, 서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입을 떼고자 했다.

[여보세요?]

“형.”

[아직 서하 소식은 없는 건가요? 저번에 서하 가뒀던 알파가 또다시 가두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 사람은 아니야. 최근에 내가 떠봤는데 오메가를 놓쳤다며 분해하더라고……. 아마 다른 알파한테 붙잡힌 거 같아…….]

사훈 옆에 지호가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승언은 예상치 못했다. 사훈과 지호가 포기하지 않고 찾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으나, 승언은 지호에게 뻔뻔하게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조용히 좀 해 봐, 안 들려! 누구신가요?]

“…….”

[형. 누구예요?]

[몰라, 아무 말도 안 해. 잘못 건 거 같아.]

[요즘도 장난 전화 하는 사람이 있나. 줘 보실래요?]

지지직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핸드폰이 승언에게로 넘어간 듯 사훈과 지호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더불어 누구냐고 묻는 승언 목소리.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전화를 끊은 서하는 학생에게 핸드폰을 돌려주고 번화가를 벗어나기로 했다.

“으흑……. 그만, 놔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왜 혼자 돌아다녀.”

오메가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몰골이 처참했으나 무리 중에 베타만 있었는지 강간은 당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안 그런 척 흘끗흘끗 오메가를 보고 있었다. 서하는 구역질과 함께 행여나 불똥이 튈까 걸음을 바삐 놀리다가 행인과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앞 좀 보고 다니세요.”

“민폐 끼치지 좀 마라.”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 뒤 몸을 옆으로 비켜 벗어나고자 했다. 남자는 오메가를 붙잡은 무리와 일행이었는지 멀리서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고, 온몸에서 도망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야, 저것도 오메가 아냐?”

“이분? 설마.”

미심쩍어하면서도 남자는 서하의 팔을 붙잡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서하는 불쾌한 듯 오메가가 아니라고 화를 내며 팔을 뿌리치고자 했으나 남자는 놓아주지 않았다. 어차피 베타이기 때문에 서하는 당당히 밀고 나가기로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신고하겠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여서 분간을 못 하는 거 같은데 예의 없는 짓이니까 놓으십시오.”

“아……. 죄송합니다.”

강경한 서하의 태도에 남자가 죄송하다며 붙잡은 팔을 놓았다. 어느새 무리가 다가왔고 남자가 멋쩍은 듯 무리에게 욕을 하며 다그쳤다. 무리가 아웅다웅하는 동안 서하는 발걸음을 놀렸으나 무리 중 한 명이 추월해 앞을 막았다.

“아무리 봐도 오메가가 맞는 거 같은데.”

“학생. 그만 비키시죠.”

“진짜 오메가 아니에요?”

울고 있는 오메가를 끌고 온 남자가 오메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해 주면 더는 건들지 않고 풀어 주겠다는 말에 오메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메가는 페로몬 맡을 수 있다며. 저 사람 오메가야? 아니야?”

“…….”

서하가 눈빛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오메가는 어깨를 쥐는 손길이 세지고 대답만 하면 풀어 주겠다는 제안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오메가가 맞다고 했다. 남자는 활짝 웃으며 오메가를 놓아주고 서하에게 다가왔다.

“오메가 맞다는데요?”

“도망가고 싶어서 거짓말했나 보지. 아까부터 뭐 하는 거지?”

“음……. 그러기에는 티 나요. 가슴 부분. 오메가든 변태든 어쨌든 공개되면 쪽팔릴 거 같은데.”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을 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무리가 에워싸고 있었다. 몇몇은 가던 길을 멈추고 흥미로운 듯 일행들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남자는 서하의 유두 부분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고 무리에게 말했다.

“뭐야, 오메가 맞아?”

“방금 놓아준 오메가는 맞다고 했는데 잘 모르겠고. 가슴에 뭐 달아 놓은 건 확실한데.”

“하루에 오메가 두 명 만나기 쉽지 않은데.”

낄낄거리는 무리는 보여지는 거 싫지 않냐며 서하를 반강제로 끌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밀어 넣었다. 막힌 골목길에 서하는 절망하는데 무리가 점차 거리를 좁혔다.

“그래서 오메가예요?”

“…….”

한 명이 다가와 서하의 상의에 손을 가져다 댔고, 서하는 손을 쳐 냈다. 비아냥거리던 무리가 돌연 정색을 하고 다가와 서하의 어깨를 붙잡고 벽에 밀쳤다. 입고 있던 맨투맨 속으로 차가운 손이 들어왔고 소름이 끼쳐 소리를 지르고 팔꿈치로 무리를 쳐 냈으나 잡힌 어깨를 놓아주지 않았다.

“미친……. 존나 변태 새끼 아니야. 양쪽에 달고 있어.”

“왜 색은 다르게 한 거야? 오메가들 유행인가?”

오메가라고 단정했는지 무리는 존대를 버리고 서하를 하대했다. 서늘한 공기가 가감 없이 전해지자 상체를 웅크리고자 했지만, 어깨를 잡은 손이 자세는 바르게 해야 한다며 어깨를 뒤로 당겼다.

“가슴 없는 건 내 취향 아니다.”

“네 취향이어도 너랑은 관계없을 듯.”

“아악! 놔! 놓으라고!”

양쪽 피어싱을 잡고 당기는 남자에 서하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연약한 유두가 당겨지고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아 눈물이 맺혔다. 피어싱을 잡고 놀던 남자는 얌전해진 서하의 행동에 반대로 피어싱을 유두에 파묻을 기세로 눌렀다.

“으윽……. 놔줘, 제발…….”

“아까 기세는 어디로 갔어요?”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표정을 감상하던 남자는 손을 잠시 떼 냈다. 고통이 상당한지 숨을 헐떡이는 서하를 보며 다시 유두에 손을 뻗으니 기겁하며 고개를 저어 댔다.

“그럼 아래는 스스로 벗어 봐요. 우는 모습만 보니까 나쁜 짓 한 거 같잖아.”

“……뭐?”

무리가 휘파람을 불고, 껄렁이는 자세로 서하를 위협했다. 얌전히 돌아가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협박에 서하는 바지에 손을 댔고 지퍼를 내렸다. 커지는 함성에 눈을 감으며 바지를 내리고 속옷을 벗었다.

“속옷까지 벗으라는 말은 안 했는데, 변태 맞네.”

“일부러 알파한테 박히고 싶어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무뎌진 서하는 무리의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얼굴이 달아올라 팔로 얼굴을 가렸다. 완전히 나체가 된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엎드려 다리를 벌리라고 했다. 설마 강간이라도 할 참인가 싶어 떨고 있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인생 종 치고 싶지는 않거든. 오메가는 발현하면 여성기도 생길 수 있다는데 봐 보고 싶어서.”

“…….”

서하의 신발을 툭툭 쳐 대며 말한 남자는 빨리 움직이라는 듯 고개를 까닥했다. 실외기에 앉아 있는 몇몇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았으나 몇몇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아까 부딪혔던 남자는 뒤에 서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분위기라 서하는 몸을 뒤로 돌리고 서서히 자세를 낮췄다. 바닥에는 담배꽁초와 가래들이 가득해 빈말이라도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위로 들어 올렸다.

“있냐?”

“없는 거 같은데. 아까 걔도 없었잖아.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봐.”

“근데 징그럽기는 하겠다. 알파들은 둘 다 있는 게 좋나?”

품평하는 대화를 들으며 서하는 흥미를 잃은 것 같아 안심했다. 이대로 보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 있던 남자가 쭈그려 앉았고, 서하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봤다. 순간적으로 머리채가 잡히고 눌려 뺨이 아스팔트에 스쳐졌다.

“으…….”

“아까 왜 거짓말했어. 사람 잘못 본 줄 알고 사과까지 했는데 재밌었겠다?”

“…….”

“아까부터 왜 입을 안 열어. 말할 줄 몰라?”

“아악!”

머리가 떴다가 그대로 다시 땅에 박혔다. 허리까지 무너졌고 작은 돌들로 인해 온몸이 긁혔으며 화끈거렸다. 물리적 폭력은 당해 본 적 없던 터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고개가 들어 올려져 눈이 마주쳤다.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고, 공포감에 몸이 떨려 왔다.

“재미없다. 그냥 놔줄까?”

“하긴, 아까 그 오메가가 더 재밌기는 했어. 울고 벌벌 떨고……. 근데 이건 젖꼭지에 피어싱만 했지 개노잼이네.”

무리가 흥미를 잃은 듯하여 서하는 내심 기뻤다. 이대로 조용히 가 주길 기도하고 있는데 몸이 뒤집혀 등이 바닥에 닿았다. 일어나려고 하자 가슴을 손바닥으로 누른 채 한 손을 허벅지 사이에 넣고 다리를 벌렸다. 활짝 벌어진 자세에 수치스러워 오므리고자 하니 큰 손이 여린 허벅지 안쪽을 때렸다.

“보내긴 뭘 보네. 나이도 있으니 경험도 많을 거 아냐. 쑤시면 존나 느끼겠지?”

“살려…… 줘. 아니, 살려 주세요.”

베타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아직 대학생인 학생들이라 물불 가리지 않고 욕망만 좇을 거 같아 불안감이 엄습했다. 왼쪽 허벅지는 손에 짓눌려 바닥에 완전히 닿았고, 오른쪽 허벅지는 스스로 벌리라고 남자가 말했다.

“이제 쑤셔 봐. 앞으로 싸면 놔줄게.”

“진짜……?”

“아, 하나 더. 입으로 중계해요. 오메가는 음란해서 말하면서 싸는 거 좋아한다며.”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떠도는 이야기였으나 오메가를 접해 본 적 없는 베타들 중 더러는 사실로 믿고 있었다. 서하는 손을 구멍으로 가져갔고 검지를 서서히 밀어 넣었다. 딱딱한 바닥과 메마른 구멍은 침입을 거부하며 밀어냈고, 고통이 느껴져 숨이 가팔라지고 몸이 뒤틀렸다.

“흐, 읍, 못…… 해. 너무 아파.”

“많이 안 썼나. 원래 이래?”

“말했잖아요. 싸면 놔준다고. 반대로 말하면 못 싸면 놔줄 생각 없다는 거고.”

절망이 깃든 눈빛을 보며 남자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서하는 이를 악물고 구멍에 손가락을 후비듯 밀어 넣었다. 고통만이 느껴지고 식은땀이 흘렀으나 몸이 천천히 받아들이면서 아픔이 가셨다.

남자는 서서히 빨라지는 손길을 구경하다 고개를 숙여 가슴을 보았다. 달빛을 받은 피어싱이 은은하게 빛이 났고 호기심이 동해 유두를 간지럽혔다.

“제발, 으읏. 싫어……. 보내 줘.”

“손 누가 멈추라고 했어? 젖통 잡아당겨지고 싶어?”

서하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계속해서 움직였으나 발기가 되기는커녕 겁에 질려 성기는 반응하지 않았다. 남자가 유두를 만지자 비음이 새어 나왔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참았지만 조금씩 신음이 새어 나갔고, 항문에서는 애액이 울컥 터져 나왔다.

“와……. 구멍 축축한 것 봐.”

“이 상황도 즐기네. 진짜 오메가는 대단하다.”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아 서하는 속도를 높였으나 누군가 손을 제지했다. 고개를 올려 쳐다보니 다리 사이에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일행들에게 좋은 걸 보여 줄 테니 잘 지켜보라고 했다. 몸을 뒤틀며 위로 올라가고자 했으나 어깨를 내리누르는 손길에 제압당했고 떨리는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겁에 질려 떠는 서하의 구멍에 두 개의 손가락을 넣고 무분별하게 여기저기를 찔러 댔다. 몸이 파드득 튀며 고통스러운 반응이 나왔으나, 중간중간은 고통보다는 쾌감이 서려 있는 신음이었다.

“그, 그만! 내가, 내가! 할게, 풀어 줘…….”

“여기서 속도 더 올리잖아? 그럼 반응 대박이다.”

속도가 빨라지자 서하의 반응이 격해졌고, 어깨를 누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떠올랐다. 유두를 만지는 손길도 점차 농염해져 갔으며 좁은 골목길 내에서 서하의 신음만이 울려 퍼졌고 단말마와 함께 사정했다. 배에 정액이 흐트러졌고 충격으로 인해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

“지갑은 없는데 옷은 비싼 건데?”

“그럼 그거라도 가져가.”

“이거 알파가 나중에 보복하면 어쩌냐.”

안전하게 골목길에 넣어 줘서 감사할 거라며 왁자지껄 떠들며 무리가 골목길을 벗어났다. 유두를 희롱하던 남자는 마지막으로 나가며 옷을 가져갔다. 더러운 골목길에서 옷을 뺏긴 서하는 몸을 웅크린 채 숨죽여 울었다. 울고, 머리가 아프고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졌지만 딱히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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