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1. 김현오, 스물네 살, 죽고 싶은 초여름 (1/13)

우리는 서로를 짐작할 뿐

01. 김현오, 스물네 살, 죽고 싶은 초여름

과거의 나를 죽이는 게 가능할까.

지난 오 년 동안 주변에 있는 과거를 하나씩 말살해 왔다. 원래 알고 있던 모두와 연락을 끊고, 집을 떠났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아무도 나를 알아서는 안 되는 곳. 그런 공간을 찾아다녔다. 60평대 아파트에서 반지하 단칸방으로 추락했지만, 내 주제에는 이제 여기가 더 알맞다.

그저께 TV에서 <코스모스>라는 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했다. 딱히 흥미는 없었다. 다른 채널에서 재미있는 걸 하지 않았기에 그냥 틀어 놨다. 눈은 TV를 향해 있었으나 좀처럼 집중되지 않았다.

막 고모부에게서 전화가 왔던 참이었다. 끈질기시다. 연락처를 차단해도 금세 다른 번호로 연락해 온다. 아예 내가 번호를 바꿔 버릴까. 또 그러기는 귀찮은데.

고모부는 몇십 초간 네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며 잔소리를 해 댔다.

- 도대체 지금 뭐 하자는 거니? 어? 그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곱게 큰 녀석이 혼자 뭘 어쩌겠다고. 그러지 말고 고모 집으로 들어와라. 네 부모만큼은 못해 주겠지만 그래도….

난 묵묵히 듣다가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 번호도 바로 차단해 버렸다. 그러고서 TV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시간적으로 과거를 보지 않으면 공간적으로 멀리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을 볼 때 사실 그 별의 과거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가장 가까운 나선 은하인 M31, 통칭 안드로메다은하도 200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죠. 오늘 우리가 M31에서 보는 빛이 지구를 향해 출발했을 당시 지구에는 인류가 태어나기 전이었-.]

TV를 꺼 버렸다.

끔찍했다. 내가 보는 별빛은 과거의 망령일 뿐이었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졌다. 과거를 없앴다고 생각해도 알고 보면 나한테 아직 들러붙어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보는 빛이 사실은 과거에서부터 날아온 것처럼. 나는 결벽증 환자 같이 한참 동안 팔뚝을 벅벅 긁었다.

별빛 하나에도 이렇게 소름이 끼치는데, 오 년 만에 나타난 동창이 나에게 울면서 고백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좋아해. 현오야.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좋아했어.’

‘난 전혀 몰랐는데.’

‘나 너랑 있었던 일 다 기억해.’

‘뭐?’

헐떡이는 숨소리. 그렁그렁한 눈동자. 꽉 깨문 입술. 내 눈은 망령이라도 본 듯이 공포에 젖어 갔다. 김찬이에게는 내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일은 있어서는 안 됐는데.

그 순간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나까지 죽이고 싶어졌다. 더불어 김찬이도.

***

김찬이와 재회한 것은 약 이 주 전이었다.

느지막한 오후. 가까스로 잠에서 깨어났다. 유월인데 벌써 덥고 습했다. 피부가 끈적끈적했다. 내 몸 하나 들어가면 꽉 차는 욕실에서 샤워하고 일터로 향했다.

일터에서 난 서빙을 하거나 불판을 갈고 숯불을 넣는 일을 한다. 새벽 늦게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내 몸에선 늘 양념갈비 냄새가 났다.

그래도 나름 좋은 일터다. 시급이 괜찮고 사장님도 친절하신 데다가 집도 가깝다. 고깃집에서 십 분 걸어가면 바로 집이다. 낡은 삼 층 주택, 그곳의 6평짜리 반지하 단칸방. 사실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지만. 뭐, 길바닥에서 잘 수는 없으니까 그냥 산다는 느낌이다.

내 인생도 그렇다. 당장 죽을 수는 없으니까 마지못해 사는 느낌. 어차피 자살은 못 한다. 나는 겁쟁이다. 내 목숨을 내 손으로 끊는다니. 그런 대단하고 엄청난 결기가 나한테 있을 리 없다.

고깃집에 도착해서 사장님에게 인사했다.

“저 왔어요.”

“어, 왔어.”

사장님은 주방에서 얼굴만 빼꼼 내미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대차게 기침했다.

“너 감기 걸렸니?”

“예.”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난 매년 여름마다 감기를 앓는다. 개만도 못한 인생이라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아저씨네 코코가 더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거든. 애초에 우리 건물에서 내 서열은 코코보다 한참 아래다. 코코가 반지하 방 창문에다가 오줌을 갈겨도 난 찍소리도 못한다. 그런 거에 열 낼 힘도 없다.

멍하니 영업 준비를 하는 내 등 뒤에서 사장님이 말했다.

“금요일이니 애들 많이 올 거야. 밑반찬 통 비면 바로 말해 줘.”

“예.”

벌써 피곤했다. 금요일 밤 대학가 고깃집은 지옥이었다. 원래는 금요일에도 가게가 한산한 편이었다. 가족 단위 손님만 가끔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판도가 확 달라졌다. 이 근처 대학은 서울 명문대의 분교였다. 그러다가 올해 본교에 있던 몇몇 과가 캠퍼스를 여기로 옮겼다고 했다. 본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이쪽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근방이 학생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사장님은 환호하셨지만, 사람 없는 곳을 찾아 새 둥지를 튼 나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시끄러워졌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이사 갈까 진지하게 생각 중이었다.

대학생? 싫다. 제일 싫다. 요란하고, 지나치게 뭉쳐 다니고, 무엇보다 내 또래다. 오 년 전 그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도 누렸을지 모르는 미래. 그 결정체들이 와글거리는 풍경이라니 끔찍했다.

아예 손에 쥘 기회조차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아쉽지 않다. 사장님이 페라리를 샀다면 부럽긴 하겠지만 아쉽진 않을 것이다. 내 손끝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해서는 꼴도 보기 싫다. 속이 뒤틀린다.

가게 문이 열리자 곧 테이블이 속속들이 채워졌다. 금요일 밤인 걸 감안해도 너무 바빴다. 사장님이 파채를 수북하게 담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오늘 애들 종강이래.”

“아, 그래서….”

“평소보다 좀 더 열어 두려고 하는데. 추가 수당 줄게.”

“몇 시까지 하실 건데요?”

“서너 시쯤? 윤아는 안 되니까.”

“예. 제가 남을게요. 저야 할 일도 없고.”

사장님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좋아.”

나는 대학생들이 불태우는 광란의 밤 사이로 떠밀려졌다. 이곳으로 이전된 캠퍼스는 이공계여서 손님들도 남자가 많았다. 그들은 한참 굶기라도 한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고기를 해치워 댔다. 불판은 금방 탔고 서빙할 건 많았다. 나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저녁 여덟 시가 되자 내가 거대한 돼지갈비라도 된 기분이었다. 고기 기름이 콧구멍에 달라붙었다. 숯불을 계속 나르느라 눈도 따가웠다. 작작 좀 먹지.

딸랑. 풍경이 흔들리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한 뭉텅이가 고깃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어서 오십쇼.”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다섯 명이었다. 또 종강 기념 술 파티겠지. 지겹다. 무리 중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자리 있나요?”

나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일 층은 다 찼네요. 이 층에 자리 있는데 올라가실래요?”

“네.”

앞장서서 그들을 이 층으로 안내했다. 빈자리를 가리키고 그 앞에 서서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내내 피부가 따가웠다. 손님 중 한 명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래. 나 뭐 묻었나. 슬쩍 뺨을 매만졌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우선 왕갈비 5인분이랑 소주 가져다드릴게요.”

찝찝하다. 주문을 받고서 후다닥 일어섰다. 도둑이 도망가듯이 허둥지둥. 잠시 후 밑반찬과 소주를 가지고 왔을 때도 그 시선이 느껴졌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고. 하지만 대놓고 시비를 건 것도 아니라서 뭐라 따질 수는 없었다.

시선은 끈덕지게 계속되었다. 숯불을 넣고, 고기를 가져다주고, 불판을 갈아 주러 올 때도. 슬슬 참을 수가 없어졌다. 최대한 상냥한 어투로 나를 노려보는 남자에게 말했다.

“혹시 뭐 더 시키실 거 있으세요?”

남자는 움찔하며 재빨리 도리질했다. 그러더니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댄다. 뭐야. 이상한 놈.

“예. 그럼 맛있게 드십쇼.”

고개를 꾸벅 숙이고 몸을 돌리려는 때였다. 확. 내 몸이 뒤로 당겨졌다. 그 남자가 내 손목을 붙잡은 탓이다.

“저기.”

“예?”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 현오 맞지?”

순간 발바닥 아래가 쑥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80층짜리 빌딩 옥상에서부터 끊임없이 땅으로 추락하는 느낌. 장기가 쿵 떨어져 발등에 붙은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그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기억을 뒤져 보았으나 도통 누군지 모르겠다. 과거에 나와 알던 사람인가? 갑자기 초조해졌다. 입술이 버석버석 말랐다.

“누구신지.”

“아, 기억 못 할 수도 있어. 우리 별로 친하진 않았으니까.”

남자는 허둥지둥 말했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 같았다.

“그, 동오 고등학교… 나 2학년 3반이었는데.”

동오 고등학교. 2학년 3반. 단어의 뭉텅이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었다.

남자는 불안한 눈빛을 한 채 손끝으로 제 앞머리와 턱 근처를 매만졌다. 아. 그제야 흐릿한 기억 속 누군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늘 저런 손짓을 하며 어깨를 둥글게 말고 다니던 애가 있었다. 걔 이름이 뭐였더라. 도통 생각이 안 난다.

“나 김찬이야.”

“…김찬이?”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 기억나?”

얘가 그 김찬이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름을 들으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 속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고등학교 때 김찬이는 유달리 하얗고 뚱뚱했었다. 다들 그를 돼지 새끼라고 불렀다.

지금은 몸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때와 변하지 않은 곳이라고는 찹쌀떡처럼 흰 피부뿐이었다. 얘가 이렇게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나. 눈은 크면서 동그랗고, 코는 오뚝했다. 순하고 다정한 인상이었다. 순정 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근처에 반짝이는 효과가 떠다닐 것 같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뭐랄까. 개? 다람쥐? 토끼? 그래, 토끼다. 토끼 같았다. 늘씬한 흰 토끼.

김찬이의 변화가 놀라웠다. 첫눈에 못 알아볼 만도 했다. 김찬이가 작게 헛기침했다. 그제야 너무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는 걸 깨달았다.

“너 많이 달라졌네.”

김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그의 귀와 뺨이 새빨개졌다. 쟨 고등학교 때에도 저랬다. 툭하면 얼굴을 붉히던 모습이 떠오른다.

“현오야. 너 여기서 살아?”

“어.”

“혹시 너도 우리 학교 다녀? 우리 과는 올해 이쪽으로 이전됐거든.”

얘는 왜 내가 당연히 대학생이라고 생각할까.

“아니.”

어쨌든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 짓는 게 좋을 것이다. 딱히 친하지도 않았고. 그의 변화에 놀라는 건 이 정도로 되었다. 과거의 사람을 계속 마주하는 건 고통스럽다. 무슨 이런 불행한 우연이 다 있나. 나는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럼 나 내려갈게. 맛있게 먹어라.”

“응? 아, 잠깐만.”

김찬이는 당황하며 내 쪽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나는 잽싸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일 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사장님이 물었다.

“왜 그래? 위에 뭐 문제 있어?”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심장이 꽉 조여든다. 나는 아까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움직였다. 김찬이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별일 아닐 것이다. 어차피 몇 시간 지나면 김찬이는 테이블에서 일어날 거고 자기 친구들이랑 함께 이 가게를 떠나겠지. 각별한 사이도 아니었으니 내 쪽에서 벽을 치면 김찬이가 더 다가올 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 김찬이는 늘 소심했으니까. 이게 우리의 마지막 접점이어야 한다.

가게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사이 김찬이네 테이블에서 추가 주문이 몇 번 들어왔다. 나는 무뚝뚝하게 주문을 받고 존댓말로 응대했다. 김찬이는 나를 끈덕지게 바라볼 뿐, 별달리 말을 걸지는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사나워 보이는 내 얼굴이 나름 도움이 된 것 같다.

휑해진 가게 이곳저곳을 쓸고 닦을 때였다. 이 층에서 우르르 사람들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김찬이네 일행이었다. 나는 힐끗 쳐다보았다가 바로 시선을 뗐다. 기름이 잔뜩 튄 테이블을 닦는 데에 열중했다. 그들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나는 김찬이가 얼른 이곳에서 사라지기를 기도했다.

“현오야.”

그러나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행주를 손에서 놓았다. 느리게 고개를 들자 코앞에 김찬이가 서 있었다.

“왜.”

김찬이는 고등학교 때보다 키가 더 큰 것 같다. 눈높이가 나보다 살짝 위였다. 나는 김찬이의 눈이 아니라 인중과 턱 사이를 바라보았다.

김찬이가 말했다.

“번호 좀 알려 줄 수 있어?”

이번에는 대놓고 내 입에서 큰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니.”

내 단호한 대답에 김찬이는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벽을 단단히 치자. 나는 너와의 재회가 전혀 반갑지 않다는 걸 알려 주어야 한다.

“음, 왜?”

“꼭 알려 줘야 하냐. 우리 별로 안 친했잖아.”

“아….”

이쯤 되면 당연히 김찬이가 물러설 줄 알았다. 내가 아는 김찬이라면 그래야 했다.

“이제부터 친해지면 안 될까?”

그러나 오 년의 시간은 꽤 길었던 모양이다. 김찬이는 더는 내가 알던 김찬이가 아니었다. 겉모습도 성격도. 하긴. 나만 해도 오 년 전과 동일 인물이라고 아무도 생각 못 할 정도로 변했다.

“안 되겠는데.”

“…….”

“좀 나가 주라. 청소해야 해서.”

김찬이가 순진해 보이는 눈을 끔뻑였다.

“현오야.”

나는 얼굴을 확 찡그리며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야. 그놈의 현오야, 현오야 좀 그만해라. 듣기 싫다고.”

할 수만 있다면 내 이름도 바꾸고 싶다. 그러면 완전히 과거를 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현오였던 시절, 그 지긋지긋한 시간.

“혹시 내가 너한테 뭐 잘못했던 거 있어?”

“없어.”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마음 편하게 김찬이를 쌩깔 수 있을 텐데. 김찬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는 그 시절 누군가에게 잘못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불쌍하고도 순결한 피해자였다.

나는 그저, 김찬이의 존재 자체가 버거울 뿐이었다. 그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해서가 아니라.

“좀 가.”

“…알겠어.”

나는 고개를 휙 돌려 다시 테이블을 행주로 닦았다. 내 등 뒤에서 김찬이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찮게 굴어서 미안.”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김찬이는 오 년이 지나도 철저하게 불쌍하고도 순결한 피해자구나. 김찬이가 가게 밖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야 나는 참아 왔던 숨을 내뱉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내 세상이 6평 반지하와 이 고깃집에 내내 머물러 있기를 기도했다.

아무와도 관계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누구도 이 좁은 세상을 넓히려 해서는 안 된다. 내 존재가 희미해져서 쓱 문지르면 없어질 정도가 되었으면.

이건 내가 오 년 동안 열심히 궁리하여 찾아낸 생존 비법이었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해서 진화한다던데, 나도 그랬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내 불행이 얼마나 큰지 실감 못 한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에게 닥친 불행과 함께 살았다. 벗어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빠른 물살에서 살아남으려 버둥대다가는 더 깊이 빠질 뿐이다.

행복하다는 감각을 잊어버려야만 한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불행해진다. 애초에 행복을 모르는 사람처럼,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굴어야 한다. 꽤 정교한 내면 연기가 필요하다.

나 자신도 속을 만큼 치밀해지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김찬이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돼서는 안 될 일이었다.

***

“쟤 도대체 누구야?”

사장님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테이블 정리를 하며 이마를 구겼다.

“현오 네 친구 맞지?”

“아니요.”

“뭐 쟤가 너한테 말 걸고 하던데. 쟤가 매일 고깃집 온 게 한 일주일 됐나? 왜 저런대? 나야 매출에 도움 되니까 좋지만.”

“…저도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다. 김찬이의 속내 따위 내가 알 게 뭐냐. 아무나 쟤 좀 내 눈앞에서 치워 줬으면 좋겠다.

김찬이는 매일 마감 시간 직전에 우리 가게에 왔다. 혼자 와 놓고서 주문은 무조건 2인분씩. 그걸 꾸역꾸역 다 먹고 조용히 나갔다.

처음에는 나한테 종종 말도 걸었다.

‘현오야, 미안한데 매일 알바 나오는 거야? 현오야, 미안한데 이 근처 살아? 현오야, 현오야, 현오야….’

결국 나는 폭발했다. 또 말 시키면 대걸레로 얼굴을 밀어 버리겠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번만 더 하면 죽여 버리겠다고도 했다. 김찬이는 ‘미,’까지 내뱉었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토끼를 닮은 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생당근으로 걔 정수리를 마구 후려치고 싶을 뿐이었다.

그 후로 김찬이는 말없이 나를 구경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재빠르게 시선을 돌리고 고기를 먹는 척했다. 나는 동물원에 갇힌 개코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가게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다. 매일 먹으면 물릴 텐데. 지치지도 않고 왕갈비를 먹어 대는 김찬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마감 시간인데요.”

“아, 네. 죄송합니다. 고기가 맛있네요. 이제 일어날게요.”

얘 진짜 또라이 아닐까.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나랑 지금 콩트라도 하자는 건가? 김찬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갔다. 사장님이 주방에서 정리 중이니 나 보고 계산하라고 했다. 나는 똥 씹은 표정으로 김찬이의 카드를 받아 들었다. 김찬이는 박하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영수증 드릴까요.”

“아뇨. 버려 주세요.”

“여기요.”

나는 서비스직으로는 알맞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카드를 돌려주었다.

“안녕히 계세요.”

김찬이가 고개를 꾸벅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뒤돌아서 가는 김찬이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야. 너 언제까지 이럴 거냐?”

김찬이가 화들짝 놀라더니 움찔했다. 일 초 만에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번호 안 알려 줬다고 나한테 시위하는 거냐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고기가 맛있어서.”

김찬이가 크로스 백 끈을 꽉 쥐었다.

“죽고 싶지?”

내 목소리가 커지자 주방에서 사장님이 빼꼼 고개를 내미셨다.

“현오야. 밖에 나가서 싸워라. 손님들 아직 계신다.”

“아, 죄송합니다. 너 따라 나와.”

내가 성큼성큼 앞장서고 김찬이가 그 뒤를 졸졸 따라왔다. 가게 밖으로 나왔다. 초여름 밤공기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사람들이 이래서 담배를 찾나 싶었다.

“왜 오는 건지 제대로 말해.”

“그러니까….”

김찬이가 홍당무 같은 얼굴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보고 싶어서.”

“도대체 누구. 사장님? 안 돼. 사장님 유부녀야. 윤아? 윤아 남친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네가.”

“뭐라고?”

얘가 지금 뭐라는 건지. 눈썹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김찬이는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오 너… 보고 싶어서 오는 건데.”

나는 입술을 벙긋거렸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김찬이의 말이 이해가 안 됐다. 진짜 얘 또라이 아니야?

“…내가 고등학교 때 너 많이 괴롭혔냐? 미안한데 내가 기억이 잘 안 나거든?”

“응? 아니. 안 그랬어.”

“나한테 앙심 품고 지금 엿 먹이려는 거 아니냐고.”

“그게 무슨 소리야. 현오 네가 나한테 얼마나 친절했는데.”

그래. 내가 고등학교 땐 좀 괜찮은 인간이었다.

“우리 반에서 너만큼 좋은 애가 없었어.”

“그럼 왜 이래.”

“다시 만나니까 너무 기뻐서. 네가 이렇게 부담스러워하는 줄은 몰랐어. 근데 나 이제 말도 안 거는데….”

“대신 계속 쳐다보잖아.”

김찬이가 흠칫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나 눈알이 커다랗고 투명한지. 그대로 눈알이 툭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내가 그랬어? 몰랐네. 미안.”

“그러니까 오지 마. 알겠어?”

이쯤 하면 김찬이도 수그리겠지.

“그런데 현오야.”

“뭐, 왜.”

“나는 너 보러 오고 싶어.”

기가 막히다.

“너 사람이 왜 이렇게 됐냐?”

그 순하고 말랑거리던 김찬이는 어디 간 걸까.

“어차피 내가 아무리 잘 보여 봤자 현오는 나랑 친해질 생각도 없는 것 같고. 그럼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 아닐까? 게다가 가게 매출도 착실히 올려 주고 있는걸.”

“또라이 새끼….”

마음속 말이 진짜로 튀어나와 버렸다.

“미안. 이제 쳐다도 안 볼게. 고기만 먹고 갈게.”

“야. 꺼져.”

나는 휙 몸을 돌려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 고등학교 때를 더듬어 보았다. 김찬이가 저렇게 고집이 셌나? 조금 특이했던 놈이었던 것 같긴 하다. 애들이 뭐 오타쿠라고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쉬는 시간에 늘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무언가에 열중해 있긴 했다.

나는 의자에 주저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장님이 기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뭔데. 왜 매일 오는 거래?”

나는 멍해진 채로 사장님을 바라보았다.

“이 집 고기가 맛있대요….”

“아하.”

사장님이 어깨를 으쓱대셨다.

***

어떻게 하면 김찬이를 떼어 낼 수 있을까. 이것이 내 며칠간 가장 큰 고민이었다. 김찬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가게에 매일 발 도장을 찍었다. 사장님은 김찬이가 매우 기특하다며 서비스를 얹어 주기 시작하셨다. 아주 미쳐 버리겠다.

김찬이는 약속대로 더는 나를 훔쳐보지 않았다. 묵묵히 고기만 먹었다. 마감 시간에 가까운 가게는 늘 한산했다. 가끔은 사장님과 수다를 떨기도 했다. 건너 들리는 대화 덕분에 김찬이에 대한 정보 몇 개를 알아낼 수 있었다.

김찬이는 물리학과였고 군대는 아직 안 갔으며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 했다. 천체 물리를 공부할 거라면서. 나는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른다. 별에 대한 공부일까. 얼마 전 들었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떠올렸다. 김찬이는 과거의 망령을 머리로 더듬는 일을 하는 건가. 그렇다면 아주 끔찍한 공부겠구나. 나는 그런 일 따위는 싫다. 나는 과거와 완전히 결별한 채 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찬이를 몰아내야만 했다. 김찬이는 내 공간에 똬리를 틀고 앉아 버렸다. 서로 모른 척해도 그가 내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그게 아주 불편했다.

어쩌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김찬이가 마감 시간에 맞추어 자리를 뜰 때였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야. 김찬이.”

김찬이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왜?”

“잠깐 밖에서 기다려. 할 말 있어.”

“응.”

김찬이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마감 정리를 다 하고서 가게 밖으로 나왔다. 골목 귀퉁이에 김찬이가 서 있었다. 초조한 표정이었다. 나는 성큼성큼 김찬이에게 다가갔다.

“야.”

“어, 끝났어?”

뺨이 달아오른 김찬이. 나는 너를 떨쳐 내고야 말겠다.

“나 백만 원만 빌려주라.”

김찬이가 눈을 깜빡였다. 친구도 가족도 돌아서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 바로 돈이다. 김찬이에게 질척거리면서 돈을 뜯어내는 나쁜 놈 역할을 해 보는 것이다. 김찬이도 이건 버텨 내지 못하리라.

“응. 계좌 번호 알려 줘.”

“……?”

“지금 보내 주면 돼? 폰뱅킹 할게.”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는 당황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 백만 원 정도야 쉬울 수도 있지. 동오 고등학교에는 잘사는 집 애들이 많았다. 그래도 엄청난 부자는 드물었다.

“아. 좀 더 가능해? 이백 얹어서 삼백만.”

이건 안 되겠지. 나는 뻔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삼백? 알겠어.”

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냐. 오백!”

“오백도 괜찮아.”

“생각해 보니 두 배는 필요하겠는데. 천만 원.”

아무리 잘살아도 천만 원은 선뜻 주기 힘들 거다. 이 새끼가 호구가 아닌 이상….

“응. 근데 천만 원이면 한 번에 이체는 안 되겠다. 나 내일 은행 가서 이체 한도 좀 늘리고 와서 줄게.”

나는 김찬이의 어깨를 퍽 쳤다. 김찬이가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미쳤냐? 이러면 안 되지!”

“어? 왜? 괜찮아. 나 돈 있어.”

나는 얼이 빠졌다.

“이 새끼 이거 진짜 큰일 나겠네. 너 이러다 사기당해!”

주변 사람들한테 다 보증 서 주고 다니게 생겼다. 순해 빠지게 생겨서는.

“급한 거 아니야?”

“안 급해! 그냥 달라고 한 거라고.”

“응. 알겠어. 줄게.”

“너 미쳤어?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나 안 미쳤어. 그리고 세상 무서운 거 알아. 근데 현오니까 빌려주는 거야.”

김찬이의 눈빛에는 어쩐 일로 흔들림이 없었다. 조곤조곤 말하는 그 목소리가 내 정신을 멍하게 했다. 목구멍 아래가 꽉 막혔다.

“나 천만 원 갚을 능력 없어.”

“그럼 갚지 마.”

“미쳤네…. 너 돈 많아?”

“응. 조금.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잘돼서.”

내 첫 번째 방법은 대실패였다. 김찬이도 못 떼어 냈고, 비참해지기까지 했다. 아하, 그래. 김찬이는 이제 돈까지 많구나. 잘생긴 졸부 집 아들이라. 아주 좋겠네. 누구는 반지하에서 고깃집 알바나 하며 벌어 먹고사는데.

김찬이는 정말로 돈을 줄 기세였지만 나는 받기 싫었다. 천만 원이 내 통장에 이체되는 순간, 영영 김찬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거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잠시 뒤로 젖혀 크게 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야. 꺼져.”

김찬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

그 후 내가 연달아 내건 패들도 김찬이 앞에서는 족족 실패로 돌아갔다.

“나 사실 강도질로 감방 갔다 왔어.”

“그렇구나. 그래서 연락이 안 됐구나.”

“그러니까 너도 당하기 싫으면 좀 가라.”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말하면 그냥 줄 건데.”

골이 띵해졌다.

“넌 돈을 되게 우습게 보나 봐.”

“우습게 보는 건 아니야. 현오니까 줄 수 있다는 거지.”

김찬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점심으로 먹은 햇반과 장아찌가 속에서 얹힌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어. 거짓말이야.”

“응. 그럴 줄 알았어. 현오는 착하니까. 다른 사람을 괴롭혔을 리 없지.”

“나 안 착하거든. 네 얼굴 계속 보다가는 강도로 데뷔할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꺼져, 좀.”

김찬이는 재미있는 농담을 듣는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농담 아닌데. 김찬이의 웃는 모습은 탄산 방울이 톡톡 터지는 것처럼 상큼했다.

나는 씩씩대며 사장님을 공략하기로 했다.

“사장님. 쟤 좀 쫓아 주시면 안 돼요?”

“찬이? 왜? 찬이 귀엽잖아. 난 쟤 보면 우리 집 말티즈가 생각나더라. 쓰다듬어 주고 싶어.”

김찬이는 말티즈보다는 토끼 아닌가.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장님이 말했다.

“여하튼 왜 그러는데?”

“제가 김찬이랑 사이가 좀 안 좋아요.”

“그래 보이지는 않던데.”

“보이는 게 다는 아니죠. 숨겨진 사정이 많달까.”

“뭐?”

나는 준비해 온 거짓말을 늘어놓으려 했다. 사실 김찬이 저 자식이 고등학교 때 절 막 괴롭혔어요. 쟤 얼굴만 봐도 그때 생각이 나고 트라우마가 도질 것 같다구요. 하지만 도저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좌절하며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세 치 혀로 순결했던 피해자를 가해자로 탈바꿈시키는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김찬이는 아직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에요.”

내가 말을 돌리자 사장님이 눈썹을 치켜떴다.

“뭐가 있긴 하니? 하긴. 요즘에 말도 안 섞긴 하더라.”

김찬이는 내가 다가가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말 걸거나 쳐다보는 법이 없었다. 약속한 걸 나름대로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벌이다. 김찬이에게 말할 수 없고, 말해 줘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됐어요. 그냥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제발 그렇게 해. 쫓아내기 싫어. 매출에 도움 되는 단골이란 말이야.”

“네….”

그날 밤. 김찬이와 재회한 지 이 주쯤 되었던 날. 나는 가게 마감하고서 대학교 대운동장으로 향했다. 주민들에게도 개방된 곳이었다. 속이 답답해서 몇 바퀴 걷다가 들어가려 했다.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운동장에는 커다란 LED 조명 두 개가 우뚝 솟아 있었다. 날벌레 몇십 마리가 조명으로 끊임없이 제 몸을 던져 댔다. 늦은 새벽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한 남자가 트랙을 뛰는 중이었다. 저 멀리서 빠르게 조깅하는….

“김찬이?”

세상에. 김찬이였다. 역시 운동 따위 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이렇게 똥을 밟는다. 나는 후다닥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김찬이가 나를 이미 발견한 후였다. 김찬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껑충껑충 내 쪽으로 달려왔다.

“현오야!”

김찬이가 밝게 웃었다. 조명이 김찬이의 얼굴을 더 환하게 비추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두 뺨은 아주 새빨갰다. 김찬이가 가까이 오자 땀 냄새가 훅 느껴졌다. 그런데 불쾌하지는 않았다.

“왜 말 걸어. 이제 말 안 건다며.”

김찬이는 헉 숨을 들이켜고는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미안. 밖에서 보니까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그럼 나 다시 뛰러 갈게.”

“됐어. 얘기 좀 해.”

“응.”

김찬이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이 새벽에 왜 혼자 조깅이냐.”

“그냥 매일 습관처럼 하는 거야. 고기 먹으면 속 더부룩하니까.”

“우리 가게 왔다가 매일 여기 돈다고?”

“응.”

“얼마나?”

“한두 시간 정도?”

나는 경악했다.

“그런 짓을 왜 해?”

김찬이가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안 그러면 살이 찌니까.”

“살 좀 찌면 어때.”

김찬이가 기겁하며 대답했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그런 목소리는 처음 들어 보았다. 나는 김찬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살이 찔까 봐 저렇게 무서워하면서. 고깃집에서 자기 혼자 2인분을 왜 먹어 치우느냔 말이다.

“그럼 가게에 오지를 마.”

“오고 싶어.”

김찬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김찬이. 너 진짜 이상해. 정말 나 보러 오는 거냐?”

“응. 그렇게 이상해?”

“어.”

날 보기 위해 이리도 쓸데없는 짓을 하다니. 짝사랑하는 애랑 같이 등교하려고 등굣길을 한참 돌아가던 열여섯 때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 이건 마치 김찬이가 나를….

“너 혹시 남자 좋아하냐?”

김찬이가 움찔했다. 그러고는 곧장 빠르게 도리질했다.

“아니. 아닌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사랑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 김찬이가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또라이라서 가게에 찾아오는 게 백만 배는 낫다.

그때 내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쓱 스쳐 지나갔다. 한번 시도해 보자. 이거면 김찬이를 떼어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만큼 끔찍한 것은 없으니까.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니면 찾아오지 마. 나 착각해.”

“응?”

“나는 남자 좋아하거든. 네가 자꾸 이러면 착각해서 곤란하다고.”

김찬이의 눈이 아주 빠르게 깜빡였다. 그의 날카로운 턱을 타고 땀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잠시 침묵이 깔렸다. 저거 봐. 당황했다. 이러면 김찬이도 내가 어색해지겠지. 이전처럼 자주 못 올 게 분명하다. 승리를 만끽하려던 찰나였다. 김찬이가 와락 내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차, 착각 아니야.”

“뭐?”

지금 잘못 들은 거겠지.

“나도야. 나도 남자 좋아해.”

김찬이가 헐떡였다. 나는 온몸의 피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나 건드려서는 안 되는 비밀이 있다. 어쩌다가 바깥으로 드러나면 더는 멀쩡한 척할 수 없는, 그것. 적당히 웃으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툭 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만 한다. 나에겐 오 년 전 사건이 그것이다. 김찬이에게는 지금 이 대화가 그 ‘결정적인 비밀’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무심코 툭 쳐 버린 거다. 김찬이는 이제 울려고 한다.

“아니라며. 방금 아니라고 했잖아.”

“그거야 바로 커밍아웃하면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나도 울고 싶어졌다.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좋아해. 현오야.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좋아했어.”

“난 전혀 몰랐는데.”

“나 너랑 있었던 일 다 기억해.”

이번에는 죽고 싶어졌다. 이런 무시무시한 일은 있어서는 안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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