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김현오, 스물네 살, 어지러운 늦여름
똑똑.
“현오야.”
나는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한숨을 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현오야? 준비 다 했어?”
다시 한 번 방 밖에서 김찬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슴팍에 힘을 주고 문을 열고서 나갔다. 바로 앞에 김찬이의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였다. 김찬이의 도톰한 입술이 매끄럽게 올라가며 호선을 그렸다. 입 주변에 보조개가 작게 파였다. 김찬이에게서 따스한 기운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딴딴한 얼음이라도 김찬이 옆에 가져다 놓으면 다 녹아 버릴 게 분명했다.
“갈까?”
김찬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다 한 걸 후회했다. 오늘은 일을 쉬는 날이다. 한 달에 몇 번 없는 귀중한 휴일을 김찬이와 보내게 된 거다.
‘한 번만 같이 놀아 줘. 싫으면 거절해도 돼.’
김찬이의 애절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찌나 안절부절못하며 말하던지. 애초에 술에 취해 무례하게 군 건 나였다. 그런데도 김찬이는 나에게 불평하지 않았다. 모든 걸 나에게 맞추려 한다. 그의 순정이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앞서 걸어가는 김찬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시선이 어쩌다 보니 김찬이의 입술에 닿았다. 김찬이는 지금도 흥분하고 있을까. 아래로 내려가려던 눈을 급히 다른 곳으로 돌렸다.
우리의 키스는 없던 일이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괴롭히곤 했다. 내 입술을 몇 번이고 핥던 혀, 내 뺨을 꽉 움켜쥐던 단단하고 큰 손, 내 허벅지에 닿았던 딱딱한 고간….
술에 취해 허튼 질문을 한 나를 죽이고 싶었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김찬이는 어째서 멀쩡할 수 있을까. 술에 취하지도 않았으니 다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는 아주 노련한 연기자였다. 김찬이가 흥분한 채 거칠게 키스할 줄이야. 그걸 겪고서도 김찬이의 얼굴만 보면 깜빡 속게 된다. 순간 김찬이가 순한 초식 동물처럼 느껴진다. 사실 키스는 다 꿈이었던 게 아닐까.
“현오야.”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김찬이가 불쑥 불렀다. 나는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 어?”
“더워? 얼굴이 빨개.”
“아니. 괜찮은데.”
나는 손등으로 뺨을 꾹 눌렀다. 민망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척하면서, 사실은 매일 그때의 키스를 떠올린다는 걸 알면 김찬이는 어떤 반응을 할까.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섰다. 낮이었으나 엄청나게 덥지는 않았다. 저번 주보다 햇볕이 약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시원하기도 했다. 여름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대로 완전히 여름이 막을 내리면 김찬이 집에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견디면 된다. 키스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굴자.
몇 분 후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서 시내로 향했다. 뭐 하고 놀지는 김찬이가 다 준비해 왔다. 이 지역에는 놀 곳이 많지 않았다. 영화관, 당구장, 피시방. 뭐 이 정도다. 우리는 우선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그러고는 수제 맥주가 유명한 맛집에서 저녁을 먹을 거란다.
어째 친구끼리 논다기보다는 데이트 코스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알겠다고 했다. 괜히 의식하면 불편해지기만 할 것이다. 유별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입술도 그만 훔쳐보자. 흥분해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하거나 궁금해하지도 말자.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옆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김찬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차창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퉁명스레 말했다.
“뭘 봐.”
“머리카락에 먼지가 붙은 거 같아.”
“그래?”
나는 그제야 김찬이를 돌아보며 내 머리카락을 쓱쓱 매만졌다.
“아니. 거기가 아니라 뒷머리인데…. 내가 떼어 줘도 돼?”
김찬이가 선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그러라고 했다. 김찬이의 길고 하얀 손가락이 조심스레 내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됐다.”
김찬이가 순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맥이 탁 풀려 작게 한숨 쉬었다. 인지 부조화가 찾아왔다. 김찬이 저것은 얼굴만 보면 절간에서 자라며 풀만 뜯어 먹게 생겼는데. 야동이라고는 전혀 안 볼 인상인데. 아가는 황새가 물어다 준다 해도 찰떡같이 믿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키스를….
또 뭉게뭉게 그 장면이 떠오르려 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털어 냈다.
잠시 후 영화관 근처에서 버스가 멈추었다. 영화관에 들어가자 달콤한 팝콘 냄새가 코에 들이닥쳤다. 영화를 보러 온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셈하여 보니 그 일이 있었던 후로 한 번도 가지 않았다. 5년 만인 거다.
요즘 영화관은 내 기억 속의 영화관과는 달랐다. 훨씬 세련되고 번쩍거렸다. 그때는 많은 사람이 대기표를 뽑고 기다렸다가 창구에서 표를 샀다. 이제는 창구가 한산했다. 대부분 모바일로 예매를 마치고 기계에서 표를 뽑고 있었다.
“팝콘 먹을래?”
주변을 멍하니 돌아보던 나는 김찬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응.”
“음료수도 사자.”
고개를 끄덕이며 김찬이의 옆에 붙어 섰다. 우리는 계산을 마치고 주문한 것을 받아서 상영관으로 올라갔다. 음료수는 김찬이가, 팝콘 통은 내가 들었다. 캐러멜 팝콘에서 훅 올라오는 고소한 버터와 달콤한 설탕 냄새. 마음이 들떴다. 내가 자주 접하지 못하는 기분 좋은 향기였다.
예매된 좌석은 정중앙이었다. 우리가 볼 영화는 한국의 재난 블록버스터였다. 자리에 앉으니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팝콘 통을 김찬이 쪽으로 살짝 기울인 채 들었다. 팝콘 한 개를 잡아 입 안에서 한참 굴려 먹었다. 혀끝에 서서히 퍼지는 단맛을 느꼈다. 나는 팝콘을 사 준 김찬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김찬이도 날 보고 있었다.
“맛있어?”
“…어. 너도 먹어.”
살짝 어두운 시야, 그 중간에 김찬이의 동그란 눈동자가 있었다. 유달리 김찬이가 하얘 보였다. 나는 어깨에 힘을 준 채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스크린 쪽에만 고정하려 애썼다. 팔걸이에도 팔을 올리지 않았다. 혹여라도 김찬이와 부딪힐까 봐.
영화는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완전히 몰입하여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은 아니었단 소리다. 중간중간 지루한 구간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내 감각이 스크린을 잠시 떠나 옆으로 쏠렸다. 쿠쾅, 높다란 빌딩이 쓰러지는 굉음이 상영관 안을 울렸다. 요란스러움 속에서도 나는 김찬이의 자그마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당황스러웠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상영관이 찬찬히 밝아졌다. 팝콘 통은 어느새 말끔히 비어 있었다. 김찬이가 날 바라보며 맑게 웃었다.
“나갈까?”
“그래.”
상영관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려들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신 채 바짝 몸을 쭈그렸다. 등에 김찬이의 가슴팍이 닿았다. 고개를 틀어 뒤를 바라보니, 김찬이와 반쯤 껴안은 상태였다. 머쓱해졌다. 김찬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지 씩 웃기만 했다.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기까지 했다.
“영화 재미있었어?”
“볼만하더라.”
“다행이네.”
나도 태연한 척 대답했으나 머리가 어찔했다. 설마, 김찬이는 지금도 흥분하고 있을까. 엄한 생각이 들었다. 얼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만을 바랐다. 띵. 일 층에 도착하자 참아 왔던 숨이 터졌다. 왠지 뒷목이 간지러운 것 같았다.
“밥 먹으러 갈까?”
이번에도 김찬이는 멀쩡해 보였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는 김찬이가 알아봐 둔 가게로 향했다. 저녁 여섯 시가 훌쩍 지났는데도 해가 반밖에 넘어가지 않았다. 거리 위 하늘에는 새벽처럼 연한 군청 빛이 주황과 함께 떠다녔다. 이 시간의 여름 하늘이 이랬지. 그제야 어렴풋이 생각난다. 하늘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늘 이때 가게 안에 있었으니까.
김찬이와 함께 있다 보면 자꾸만 예외가 생긴다. 내가 오 년 동안 공들여 쌓아 놓은 건조한 일상에 습기가 찬다. 괜찮은 걸까. 습기가 날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까. 아니면 곰팡이가 슬게 될까. 나도 모르겠다.
가게에 도착해서 맥주 두 잔과 안주 여러 개를 시켰다. 맛집이라더니 거짓이 아니었다. 맥주는 내가 여태껏 마셔 본 것 중에 제일이었고, 안주도 맛있었다. 나도 모르게 소시지를 마구 입 안으로 흡입했다. 그러다가 김찬이와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포크를 내려놓았다.
“현오야. 많이 먹어.”
“또 나만 먹고 있는 거 아니겠지.”
“그럴 리가.”
김찬이가 음식으로 채워진 자기 그릇을 가리켰다.
“야. 더 먹어.”
“응. 알겠어.”
김찬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만족하며 맥주잔을 집어 들려다가 멈칫했다. 너무 빠르게 마시는 건 좋지 않을 테다. 이전처럼 취하는 불상사는 없어야 하니까. 나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려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알딸딸한 기운이 차차 올라왔다. 머릿속으로 구구단을 열심히 셈해 보았다. 다행히 취한 것 같지는 않다.
배는 부르고 기분은 적당히 들떴다. 맥줏집에서 몇 시간 동안 마주 앉아 있었으나 딱히 불편한 건 없었다. 김찬이는 대화를 적절하게 끊고 부드럽게 이을 줄 알았다. 소소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가꿔 나갈 줄도 알았다. 예를 들면 요즘 오피스텔 근처에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든가 하는.
김찬이가 말했다.
“열 시네. 언제 갈까?”
“벌써 열 시라고?”
그럼 얘랑 여기서 세 시간 정도 이러고 떠들었단 말인가. 믿기지 않았다. 나는 누구랑 대화를 진득하게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더 먹을래?”
“어, 아니. 집에 가자.”
“아이스크림 사서 갈까?”
김찬이가 웃으며 물었고 나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침 나도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어….”
어쩐지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 든다.
김찬이가 계산하고 있을 동안 발을 두어 번 굴러 보았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약간 어지러웠다. 나도 모르게 꽤 마신 듯하여 불안했다. 그러나 몸이 기우뚱하거나 눈앞이 핑 돌지는 않았다. 오케이. 나는 지금 멀쩡하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몇 분 정도 남았다. 바깥은 캄캄했다. 이제 정말로 늦여름이구나. 밤바람이 이전처럼 후덥지근하지 않다. 취기로 적당하게 달아오른 뺨에 시원한 바람이 닿자 기분이 좋았다. 바람이 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끼다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시원하네.”
김찬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아직 좀 더운데.”
“바람이 시원하잖아.”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지.”
김찬이의 말투에는 어딘가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다. 김찬이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다시 열었다.
“오늘 괜찮았어? 불편하지 않았어?”
“어.”
예상보다 훨씬 편했다. 김찬이와 몸이 붙을 일만 없다면 늘 이럴 것 같다. 김찬이의 매력은 역시 같이 있는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언제나 많이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겠지. 세심한 다정함이 없다면 불가능할 일일 테니.
“다행이다.”
김찬이가 안심한 듯 웃었다. 그리고 저 순한 미소를 본다면, 그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못할 것이다.
“근데 너 돈 많이 썼겠다.”
“애초에 내가 놀러 가자고 부탁한 건데 내가 내야지.”
“나는 매번 집에서 음식도 축내고 있잖아.”
“그것도….”
김찬이가 다시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고집스러운 입 모양이었는데 그의 눈동자는 불안해 보였다. 김찬이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내가 부탁해서 우리 집에 사는 거잖아. 왜 그런 말을 해? 나갈 거야?”
순간 내가 김찬이를 괴롭힌 못된 놈이 된 기분이었다. 얼떨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있을 거지?”
“어. 아직 한참 여름이잖아.”
“맞아. 여름이야.”
“그래. 버스 왔다.”
나는 먼저 재빨리 버스에 올라탔다. 조금 전 대화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김찬이는 갑자기 절절해 보였다. 여름을 붙잡으려 안달 나 있었다. 그러나 김찬이도 느낄 것이다. 여름은 머지않아 끝난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김찬이에게 맞장구를 쳤다.
버스에는 자리가 모두 한 자리씩 차 있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맨 뒷자리로 가 나란히 앉았다. 따로 떨어져 앉아도 되었을 텐데.
버스가 출발했다. 가끔가다 덜컹거렸다. 그때마다 상체가 벌떡거리며 튀어 올랐고, 김찬이와 어깨며 허벅지가 살짝 부딪히기도 했다. 나는 일부러 목을 틀어 창밖만 바라보았다. 김찬이의 표정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차창에 비친 내 표정은 꼴사나웠다.
버스는 대로변 지나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리로 들어갔다. 과속방지 턱을 지나치며 버스가 크게 쿵 요동쳤을 때였다. 청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핸드폰이 빠져나와 아래로 떨어졌다.
“아.”
다행히 멀리 굴러가진 않았다. 핸드폰은 김찬이의 발 근처에 놓여 있었다. 다행인 게 맞나? 나는 상체를 한껏 숙여 핸드폰을 집었다. 다시 상체를 일으키려는데, 의도치 않게 보고 말았다.
김찬이의 고간을. 부풀어 있는 그곳을. 무릎을 꽉 쥐고 있는 손등을. 허연 손등에 불거진 힘줄을.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식은땀이 나는 것도 같았다.
나는 느리게 상체를 세웠다. 태연한 척하려 했다. 잘 되지 않았다. 심장이 펄떡거렸다. 왜 뛰는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주워 줘도 되는데.”
김찬이의 목소리에 흠칫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아니…. 내가 줍는 게 편할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다시 반대로 돌렸다. 어딘가 어색해 보였을까. 눈을 질끈 감았다. 쟤는 내가 왜 어색해하는 줄은 알까.
김찬이의 표정은 아주 맑고 순했다. 하반신 아래는 그런 꼴이면서. 너무 위아래 따로 노는 거 아니냐고. 날 보면 흥분한다는 김찬이의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이 세상에는 몰라야만 더 행복할 진실도 있다. 술을 먹지 말아야 했다.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 했다.
모르는 게 약이었다. 하지만 김찬이를 들쑤셔 스스로 그 약병을 내다 버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
요즘 나는 미칠 지경이다. 아니, 이미 미친 게 분명하다. 버스에서 김찬이의 그것을 봐 버린 후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김찬이가 옆에 있으면 그의 다리 사이에 자꾸 시선이 갔다. 그리고 대개 그의 중심은 부풀어 있었다. 김찬이는 연애 초반에 여자 친구 손만 잡아도 흥분하는 사춘기 애 같았다.
내 존재가 타인에게 성적 흥분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을 매일 마주치고 있는 셈이다. 온통 이해되지 않는 것뿐이었다. 김찬이는 저 상태로 어떻게 멀쩡하게 웃는 거지. 어떻게 나한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굴 수가 있지.
김찬이는 나와 몸을 일부러 맞대거나, 집적거리는 법이 없었다. 늘 일정 수준의 거리를 유지했고, 예의가 발랐다. 그의 얼굴은 욕정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말간 빛이었다.
김찬이는 도대체 나와 뭘 하고 싶은 걸까? 날 보면 흥분한다는 건, 섹스하고 싶다는 의미? 남자끼리도 그걸 할 수가 있는 건가? 아니, 하기야 하겠지만 어떤 식으로 하지? 그러면 김찬이는 그 얼굴을 하고서 속으로는 나와의 섹스를 상상한다는 걸까? 말도 안 돼.
“뭐 해.”
멍하니 서 있다가 바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몸을 돌려 보니 윤아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깜짝 놀랐잖아.”
“빨리 5번 테이블 치우러 가. 왜 멍 때리고 있어?”
“어? 아. 손님 빠졌구나.”
나는 고개를 좌우로 털며 테이블을 정리하러 갔다. 윤아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요새 넋 놓고 있는 때가 잦았다. 다 김찬이 때문이다. 얼마 지나 윤아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또 걸었다.
“근데 언제까지 찬이 씨 집에 있어?”
“뭐, 상황 봐서 나와야지.”
“여름까지 지내기로 한다 그랬나?”
“어.”
“그럼 곧 나오겠네. 요즘은 밤에 잘만 하더라.”
“그런가? 그 정도까진 아닌 거 같던데. 그래도 아직 여름이잖아.”
윤아가 또다시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오빠. 근데 아까부터 왜 이렇게 한숨을 쉬어?”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하지 마.”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일을 제대로 안 하니까 내가 짜증 나서 그런 거거든?”
“아…. 미안.”
“정신 좀 차려 줄래?”
나는 고개를 재빠르게 끄덕거렸다. 그러나 도통 마감까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피어오른 궁금증들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남자끼리는 어떻게 섹스하는지, 기분이 좋을지. 그리고 김찬이는 정말로 나와의 그걸 상상하고 있는지.
가게가 끝나자마자 나는 쏜살같이 집으로 튀어 갔다. 김찬이와 짤막한 인사만 나누고 재빠르게 씻고 나왔다. 방문을 꽉 닫은 다음 이불 속에 파묻혔다. 심호흡했다.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켰다.
지금 나는 생애 처음으로 게이 포르노 영상을 찾아보려는 중이다.
곧 이어폰을 통해 신음이 귓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움찔했다. 자그마한 핸드폰 화면 속에 적나라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근육질의 남자 두 명이 서로의 성기를 핥고, 엉덩이 골을 문지르고, 키스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숨이 턱턱 막혔다. 갑갑해서 두르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던져 버렸다.
화면 속의 남자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성기가 팽팽하게 발기해 있다. 얼마 후 성기가 항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좀 더 요란해진 신음이 내 귓속을 끊임없이 때렸다. 나는 멍하니 성기가 들어갔다가 나오는 걸 바라보았다. 몇 분쯤 보았을까. 갑자기 얼굴에 열이 확 올라서 영상을 꺼 버렸다. 더 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불에 엎드린 채로 숨을 내쉬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흥분해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성기가 단단해진 감각이 어색했다. 내가 성욕이라고는 없는 인간인 줄 알았다.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찾은 것도 몇 번 안 되었고 자위도 가끔가다 한 번씩 할 뿐이었다. 평소에 나는 이러다 발기 부전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 걱정이 무색하게 지금 내 성기는 완전히 발기된 상태였다. 남자 둘이 섹스하는 걸 보고서.
“아, 미친.”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가라앉기를 바랐다. 여기서 딸 칠 수는 없었다. 밖에 바로 김찬이가 있는걸.
눈을 꾹 감고 평화로운 장면을 상상했다. 푸른 하늘과 드넓게 펼쳐진 초록색 들판. 거기서 뛰어놀고 있는 자그마한 동물들. 이를테면 김찬이를 닮은 토끼….
“아.”
상상이 뚝 멈추었다. 여기서 김찬이를 떠올리면 어쩌자는 건지.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쥐어뜯었다.
김찬이는 정말 나와 이런 걸 하고 싶은 걸까? 왜? 어째서? 이게 기분이 좋을까? 날 엎어뜨리고 싶은 건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김찬이로 가득 찼다. 아까 본 영상에 우리 둘의 모습이 겹쳐졌다. 망상을 멈춰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분명히 영상을 껐는데 누군가의 신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김찬이의 나신은 새하얗고 늘씬할 테다. 내가 그의 옷을 벗기고 알몸을 어루만지면 흥분하겠지. 밀쳐서 침대 위에 넘어뜨리면 무슨 표정을 할까. 늘 평온하던 그 얼굴이 무너져 내릴까. 김찬이의 배와 가슴도 그의 뺨처럼 부드러울 것 같았다. 새빨개진 얼굴,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 살짝 벌어진 입술, 축축한 혀…. 나는 욕정에 사로잡힌 김찬이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곧 아랫배가 뻐근해졌다. 성기가 더 커졌다.
“…왜.”
울고 싶었다. 손바닥으로 성기를 꾹꾹 눌러보았다. 그런다고 가라앉을 리는 없었다. 입술을 깨물고 숫자를 속으로 세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김찬이의 생각을 떨쳐 낼 수도 없었다.
나는 찬물이라도 마셔야겠다 싶어서 조심스레 방 바깥으로 나갔다. 김찬이도 이쯤이면 자고 있을 테다. 발소리를 죽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현오야. 안 잤어?”
그러나 그곳엔 김찬이가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찬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내가 하려 했던 것처럼.
김찬이는 살짝 당황한 것 같았다. 우리는 어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먼저 불을 켜지 않았다.
“어, 잠이 좀 안 오네. 물 좀 마시려고….”
“내가 따라 줄게.”
“너는 왜 나왔어?”
“나도 잠이 안 와서.”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찬이가 물 한 컵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잽싸게 받아서 순식간에 컵을 다 비웠다. 그러나 찬물을 마셔도 진정되지 않았다. 난감했다.
하필이면 지금 김찬이를 맞닥뜨릴 줄이야. 나는 김찬이를 바라보기가 겁났다. 내가 한 파렴치한 상상을 들킬 것만 같았다. 어째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떠올린 건지….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말했다.
“혹시 냉장고에 술 있냐.”
“맥주 몇 캔 있을 거야. 왜? 술 마시게?”
“어….”
“혼자서?”
“너도 마시려면 마셔.”
“그러자. 거실에 있어. 술이랑 마른안주 가져갈게.”
나는 거실 불을 켜고서 소파에 앉았다. 자그마한 쿠션을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발기한 걸 숨기기 위해서였다. 초조하게 발끝을 까딱였다.
얼마 후 김찬이가 쟁반을 들고 걸어왔다. 나는 김찬이의 하반신은 바라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김찬이가 내 옆에 살짝 떨어져 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흥분이 도통 가라앉지 않았다. 이게 다 김찬이 때문이다. 김찬이에게 마구 따지고 싶었다. 너 때문에 내가 이상해졌다고. 김찬이만 아니었으면 내가 게이 포르노 영상을 찾아볼 일도 없었을 텐데. 김찬이의 하반신 사정이 이토록 궁금하고 신경 쓰이지도 않았을 거고.
맥주를 순식간에 다 마셨다. 탁. 빈 캔을 탁자 위에 올려다 놓고 김찬이를 바라보았다. 김찬이는 연하게 웃었다.
“이제 잘까?”
김찬이가 먼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 탓에 내 눈높이가 김찬이의 고간과 일직선이 되었다. 아니길 빌었으나 여지없이 김찬이의 중심은 부풀어 있었다. 눈앞이 어찔했다.
쟨 내가 저걸 못 볼 줄 알았나? 쟤가 저러니까 내가….
제기랄. 정말 미치겠네.
갑자기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숨을 푹 내쉬었다.
“너 그것 좀 가라앉혀 봐, 제발.”
“응?”
그리고 홧김에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렸다. 아.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손을 내리고 느리게 고개를 들어 김찬이를 바라보았다. 김찬이의 얼굴이 신호등 색깔처럼 새빨갰다.
“…현오야.”
김찬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흠칫 뒷목을 떨었다. 김찬이가 내 옆에 다시 앉았다.
“왜, 왜 다시 앉는 건데.”
“내가 널 불편하게 했어?”
“…….”
“미안해.”
김찬이는 풀 죽은 표정이었다. 나는 손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너무 당황해서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솟구친 열 때문에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도저히 김찬이의 눈동자를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내 발등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사과할 필요까지는 없고…. 짜증 났다기보다는. 그냥 신경이 좀 쓰인 건데. 너라도 그렇지 않겠냐. 네가 나 때문에 흥분해서 그러는데, 내가 어떻게 계속 모른 척을 하겠어.”
“그런데 내가 현오 때문에 흥분한 건 줄 어떻게 알았어?”
“네가 말했잖아. 나 보면 흥분한다고… 아.”
나는 뒤늦게 입을 꾹 다물었다. 망했다.
“그날 새벽, 기억하고 있었어?”
“…….”
“그랬구나.”
김찬이의 말투는 아주 차분했다. 나는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키스를 잊어버린 척하려 했는데 이제 그것도 소용없어졌다. 도망칠 길이 없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분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김찬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다 털어놓자 싶었다.
“그래! 기억 못 할 리 있겠냐?”
김찬이는 자기는 잘못 없다는 듯이 순진한 얼굴이었다. 그걸 보니 더 화가 났다.
“그, 그게 보통 뽀뽀도 아니고…. 갑자기 빡치네. 왜 너만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만 이래? 왜 나만 자꾸 의식하고, 신경 쓰고, 이러냐고.”
김찬이의 표정이 아주 미묘해졌다.
“…싫은 게 아니었어?”
“뭐?”
“키스. 기분 나쁘지 않았어?”
내 입술을 때리고 싶다. 그냥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 어째 말을 하면 할수록 쟤한테 말리지. 역시 똑똑한 놈은 다른 건가. 내가 입만 벙긋거리고 있자, 김찬이가 조금 더 가까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현오야. 날 의식하고 있었어?”
“…아, 아닌데.”
“방금 그렇게 말했는걸. 잠깐만 내 눈 봐 주면 안 돼?”
“안 돼. 좀 떨어져!”
나는 고간을 가리고 있던 쿠션으로 김찬이의 얼굴을 꾹 눌렀다. 김찬이가 아주 손쉽게 쿠션을 집어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김찬이의 얼굴이 코앞에 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 지금의 김찬이는 토끼가 아니다. 나는 저 얼굴을 안다. 키스할 때 지었던 그 표정이다. 나를 콱 물어서 죽여 버릴 것만 같다. 말간 얼굴 뒤에 숨겨진 매서운 송곳니를 나는 이미 보았다.
김찬이가 나를 응시하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나는 잽싸게 다리를 오므렸지만 이미 늦었다.
“현오야….”
“그렇게 부르지 마.”
“내가 어떻게 불렀는데?”
“막, 아련하고, 하여간 기분 이상하니까 그러지 마.”
“현오야….”
“이 자식이.”
“왜 흥분한 거야?”
“…….”
죽고 싶다. 그냥 이대로 발코니에서 뛰어내릴 것이다.
“응? 왜 흥분했어?”
“말 걸지 마라.”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려 했다. 김찬이가 내 손목을 붙잡아 나를 막았다.
“손 떼.”
“현오는 너무 이상해.”
“내가 뭘. 이상한 건 너잖아.”
“나는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현오가 자꾸 들쑤셔. 자길 보면 흥분하냐 물어보고. 이젠 날 의식한다고 말하잖아.”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김찬이의 말투는 차분하고 논리적이어서 반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네가 이러면 내가 기대하게 돼. 정말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아니, 난 너 안 좋아하니까 착각하지 마.”
“그래도 키스는 기분 좋았다는 거지?”
“야….”
“한 번 더 해 봐도 되는 걸까,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드네. 현오가.”
“…….”
“해 볼래?”
이미 김찬이는 내 입술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김찬이를 쳐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아찔한 기운이 내 뱃속을 어지럽혔다. 나는 간신히 입을 떼어 말했다. 내 숨결이 김찬이의 엄지에 닿았다.
“나, 난 널 좋아하지 않을 거야. 키스해 봤자 달라질 건 없다고.”
“괜찮아. 좋아해 달라고 한 적도 없잖아.”
“그럼 왜 이러는 건데.”
“좋아하지 않아도 키스는 할 수 있지.”
“문란해.”
“미안해.”
“너는 나랑 이런 짓이 하고 싶냐?”
김찬이가 이제는 다른 손으로 내 귓바퀴를 훑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우스꽝스러운 신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응.”
“…더한 짓도?”
김찬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매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응.”
변태 자식. 나는 소리치고 싶었으나 바로 입이 막혔다. 김찬이가 내 뒤통수를 꾹 붙잡아 누른 채 나에게 키스했다.
바짝 올라가 있던 어깨가 툭 아래로 떨어졌다. 몸에 힘이 빠졌다. 김찬이는 저돌적으로 내 입 속을 혀로 헤집었다. 코끝이 김찬이의 볼에 눌려 뭉개졌다. 언제나 나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있던 김찬이가 지금은 선을 훌쩍 넘어 버렸다. 성큼성큼, 내가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다가왔다. 김찬이가 혀로 내 잇몸과 안쪽 살을 문지를 때마다 신음이 나왔다.
손바닥으로 김찬이의 가슴팍을 확 밀쳐 낼까. 아니면 어깨를 때려 볼까. 분명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내 몸은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내 위에는 김찬이가 올라타 있고.
남자 두 명이 누워 있기에는 소파가 넉넉지 않았다. 우리의 다리는 틈도 없이 촘촘하게 얽혀 갔다. 발기한 성기끼리 가끔 부딪쳤다. 내 신음이 좀 더 커졌다.
허벅지 안쪽이 자꾸 오그라들었다. 누가 강하게 허벅지부터 골반을 두들겨 치는 듯했다. 김찬이의 손은 여전히 내 뒷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이미 흥분해 있던 탓인지 저번보다 더 미칠 것 같았다. 김찬이의 것인지 내 것인지 모를 침이 입 속에 흥건했다.
김찬이는 봐주는 법이 없었다. 숨 돌릴 여유 따위는 주지 않았다. 정말 죽지 않을 정도의 여유만 나에게 허락했다. 내가 참다못해 어깨를 떨 때면 김찬이가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는 숨 쉬라는 듯 반쯤 입술을 뗐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도 김찬이의 손길이 느껴지자 귀신같이 호흡이 진정되었다.
이게 키스는 맞는 걸까. 세상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런 키스를 하며 살고 있었단 말인가. 세상에 배신감이 들었다. 김찬이가 턱을 비틀며 깊숙이 입을 맞춰 왔다. 나는 벌벌 떠는 손으로 김찬이의 티셔츠를 붙잡았다. 몸이 간지럽고 뜨거웠다.
그때 김찬이가 살짝 입을 뗐다. 눈을 감고 있어도 나를 내려다보는 김찬이의 시선은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휙 틀었다. 김찬이를 보고 싶지 않았다. 볼 수가 없었다.
“현오야.”
“…….”
“현오야.”
“말 걸지 마.”
내 얼굴은 지금 어떤 꼴일까. 우스울까.
“이번에도 기분 좋았어?”
“말 걸지 말라고.”
평소에는 순한 양처럼 굴더니. 지금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김찬이의 목소리가 이렇게 낮고 거칠었던가.
“나는 좋았어.”
“…….”
“더한 짓도 해 볼래?”
“…뭐?”
김찬이가 제 골반에 힘을 주고는 내 쪽에 하반신을 바짝 붙여 왔다. 뜨거운 성기끼리 뭉개지는 감각이 아주 선명했다. 순간 가슴에 불씨가 달라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려 김찬이를 바라보았다. 김찬이의 얼굴이 빨갰다. 흥분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쟤는 지금 진심인 거다.
“미쳤어?”
“싫어?”
“너 그걸 나한테 넣으려고?”
김찬이가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넣는다는 말은 안 했는데.”
“그럼 나 보고 너한테 넣으라고?”
“아니야.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너야말로 갑자기 극단적으로 굴고 있잖아! 순진한 척하더니.”
“순진한 척한 적 없어….”
김찬이가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여하튼 비켜.”
“섹스하자는 게 아니야. 우리 둘 다 흥분했으니까 가라앉히기는 해야 하잖아.”
“아니, 진짜 미쳤냐?”
“그럼 이대로 방에 따로 들어가서 각자 자위할까?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너 차분하게 개소리하지 마라.”
“현오는 싫어?”
김찬이가 나긋하고 다정하게 물어보며 손가락으로 내 귓가를 쓸었다.
“흐읏.”
목을 움츠러뜨리며 나도 모르게 신음했다. 김찬이가 옅게 웃었다. 혀를 깨물어 죽고 싶었다. 김찬이의 손이 이번에는 내 이마 쪽으로 왔다. 김찬이가 내 앞머리를 정리해 주며 속삭였다.
“현오야. 땀 났네.”
“네, 네가 이러니까… 흣.”
김찬이의 손끝이 맨 이마를 스쳐 지나갈 때 또 신음이 나왔다. 난 도대체 왜 이럴까. 아까부터 왜 소리를 못 참을까. 입술을 꽉 깨물고 김찬이를 노려보았다. 김찬이는 전혀 기죽지 않고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현오는 가만히 있어도 돼. 싫으면 때려.”
김찬이가 갑자기 쭉 아래로 내려가더니 내 바지를 벗겨 버렸다. 팬티까지 한 번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팽팽하게 서 있는 내 성기가 드러났다.
“너, 너 뭐 하려고… 흐아!”
김찬이가 단숨에 내 성기를 입에 물었다. 나는 벌어진 입을 다급하게 손으로 틀어막았다. 김찬이의 입 안은 질척하고 뜨거웠다. 잔뜩 녹아내린 퐁듀 같다. 김찬이가 혀로 내 성기를 휘감았다.
“웁, 우윽!”
나는 눈을 꽉 감고서 얼굴을 소파 등받이에 처박았다. 아랫배가 경련했다. 이마는 열 때문에 화끈거렸다. 김찬이의 혀는 느리게 움직이면서 내 성기 이곳저곳을 핥았다. 혀끝으로 귀두를 눌러 살을 짓뭉개고 그 사이로 드러난 요도를 찌르기까지 했다. 헉 소리가 났다. 입을 막고 있는 손바닥이 금세 축축해졌다. 침이 자꾸 새어 나오는 탓이다.
“흐으, 으… 읍!”
나는 펄떡였다. 몸에 힘이 쭉 빠진 채 녹아내리다가도 김찬이가 귀두를 찌르면 전기 충격을 당한 것처럼 몸이 튀어 올랐다. 누군가 내 척추에 전기 충격기를 연결해 놓고 간 듯하다.
김찬이가 내 성기를 빨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포르노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 김찬이의 입 안 점막은 내 성기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완전히 집어삼킬 것처럼 더욱 강하게 빨아들일 뿐이다. 김찬이가 볼에 힘을 주면 목구멍 쪽이 좁아졌다. 사람의 입 속이 순식간에 이 정도로 작아질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축축한 비좁음. 내 성기를 짓누르는 압박감. 나는 흐느꼈다.
이건 흡사 섹스였다.
그런데 김찬이를 쳐 내지 못했다. 이 행위를 참지 못하겠다면, 정말로 역겹다면, 진즉에 그를 다리로 차 버렸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내 꼴은 어떤가. 발차기는커녕 다리에 힘이 쭉 빠져서는 흐물거리고 있을 뿐이다.
눈을 감자 청각이 더 예민해졌다. 츄릅. 내 성기를 사탕처럼 빨고 있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얼마 후, 탁탁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김찬이가 펠라티오를 하면서 자기 성기를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터지는 야한 소음의 향연. 귓구멍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신음을 참기 위해 입을 틀어막고 있는 탓에 더는 남는 손이 없었다.
여태껏 김찬이는 이런 걸 상상하고 있었나. 날 보면서 이런 흥분을 억누르고 있었나. 나쁜 자식. 아니다. 제일 나쁜 건 나다. 도대체 왜 흥분하는 건지. 배신감과 죄책감이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혔다.
한참 만에 김찬이가 내 성기를 입에서 뱉어 냈다. 하아. 그러고는 느린 한숨 같은 신음을 흘렸다. 순간 나는 움찔했다. 골반에 싸하고 아릿한 감각이 들었다. 신음이 야했다. 김찬이는 욕정을 갈무리할 생각이라곤 없어 보였다.
“현오야.”
생각보다 김찬이의 목소리가 너무 가까이서 들렸다. 상체를 내 쪽으로 숙이고 있는 모양이다. 뜨겁고 비릿한 숨결이 어깨 쪽에 닿았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 줘.”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나는 얼굴을 계속 소파 등받이에 처박은 채 신음을 참는 데에만 주력했다. 그때 김찬이의 두툼하고 커다란 손이 내 성기와 자기 것을 같이 움켜쥐었다.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에서 손을 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김찬이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침 때문에 미끈거리는 내 성기가 김찬이의 것에 비벼졌다.
꾹. 김찬이가 엄지로 내 귀두를 눌렀다.
“읍!”
또다시, 집요하게. 꾹.
“우윽!”
귀두를 짓누르면 내가 흥분한다는 걸 알고서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했다. 김찬이의 집요한 장난은 계속되었다. 성기를 빠르게 흔들다가도 예고 없이 내 귀두를 짓뭉갰다. 나는 속절없이 신음했고.
김찬이의 숨소리가 조금씩 가빠지고 있었다. 덥다. 척추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이마가 축축했다. 흥분하고 긴장한 탓이다. 반쯤 벗겨진 바지가 계속 신경 쓰였다. 내 엉덩이가 보일 텐데.
가장 큰 문제는 슬슬 내 성기가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거다. 곧 사정할 것 같았다. 김찬이의 손과 성기에 내 정액이 묻겠지. 죽고 싶다. 나는 골반을 비틀어 보았다. 그만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김찬이는 탄식하듯이 말했다.
“현오야. 어디 불편해? 왜 그래?”
왜 그러냐니. 묻고 싶은 건 나다. 넌 나한테 왜 그래.
“잠깐만 있어 봐.”
김찬이는 나를 다정하게 어르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오줌 마려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정 임박이었다. 나는 등받이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다급하게 들어 김찬이를 째려보았다.
김찬이는 놀라울 정도로 야한 모습이었다. 도저히 평소에 보던 그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 현오야.”
김찬이는 눈을 반쯤 찡그리고 있었다. 늘 단정하던 앞머리는 엉망이었다. 얼굴만큼 새빨간 입술은 윗니에 짓눌려 있다. 나는 숨을 참았다. 코끝이 찡해졌다.
김찬이가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눅눅하고 뜨거운 음성이다.
“현오야.”
김찬이의 손은 여전히 두 성기를 주무르고 있었다.
“힘들어?”
김찬이가 상체를 숙여 내 얼굴 쪽으로 다가왔다. 쌀 것 같으니 그만 놓아 달라고 말하려 했다. 근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을 막고 있던 손이 바르르 떨렸다. 김찬이가 축축한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윽!”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사정했다. 척추에 붙어 있던 전기 충격기가 최대치로 올라간 듯하다. 온몸이 경련했다. 가슴팍이 벌떡 허공으로 솟았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렸다. 숨이 콱 막혔다. 오르가슴이 완전히 내 몸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호흡할 수 없었다.
내 인생, 최고의 흥분이었다.
“많이 쌓였구나.”
딴딴하던 내 성기는 힘을 잃고 말랑해졌다. 김찬이가 이제야 내 성기를 놓아주었다. 질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내 정액이 김찬이의 손을 더럽히며 내는 소리. 나는 죽고 싶은 심정으로 눈을 꾹 감았다.
“잠시만.”
김찬이가 상냥하게 양해를 구하더니 내 위에서 자위를 계속했다. 앞이 안 보였음에도 내 몸 곳곳을 훑는 김찬이의 시선만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몇 분이 지났다.
“하아, 현오야.”
김찬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사정했다. 정액이 내 골반 쪽에 조금 튀었다.
***
나는 미쳤다.
여름은 멀어지고 있다. 공기 중에 사라진 열기가 내 몸속으로 옮겨 온 게 분명하다. 솟구치는 열을 잠재울 수가 없다.
“오빠!”
나는 멍하니 쟁반을 들고 서 있다가 윤아를 돌아보았다.
“정신 안 차릴래? 6번 테이블 주문!”
“아…. 미안.”
오늘도 윤아한테 혼났다. 요 근래 일주일 가까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윤아는 정신 빼 놓고 다니지 말라며 나를 타박했다. 요즘 정말 이상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감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사장님도 느끼셨던 모양이다. 영업을 마치고 정리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물어보셨다.
“현오야. 너 요즘 무슨 일 있니?”
“아뇨. 몸이 좀 안 좋아서….”
거짓말했다. 무슨 일, 아주 많다. 사장님은 머리를 긁적였다. 내 말을 못 믿는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정신 차릴게요.”
나는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내가 돌아갈 곳은 김찬이네다. 이제 내 단칸방에서도 그럭저럭 살 만할 날씨가 되었는데도. 잘 때 에어컨 튼 적이 며칠간 없었다.
우리가 세운 약속은 흐지부지되어 가는 중이다. 한 달 동안만 친구로 지내보자고 하더니. 매일 밤 짐승처럼 들러붙어 키스하는 사이가 친구는 아니니까. 여름 동안 머물기로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될까. 그것도 흐지부지될까? 길을 걷다가 우뚝 멈춰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미친 사람들 같았던 오늘 점심의 일을 떠올렸다. 일어나 보니 아직 김찬이가 집에 남아 있었다. 내가 물었다.
“너 학교 안 가?”
“일하는 거 끝났어.”
“그러면 계속 집에 있어?”
“개강할 때까진 그렇겠지. 토스트 먹어, 현오야.”
나는 비몽사몽간에 의자에 앉아 첫 끼를 먹었다. 김찬이는 이미 아침을 먹었는지 나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김찬이. 왜 그렇게 보냐.”
“그냥.”
“보지 마.”
“왜?”
“나도 그냥.”
김찬이가 소리 내어 웃었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경쾌한 목소리였다. 김찬이가 손을 조심스레 뻗어 내 팔을 건드렸다. 그러더니 다정하게 속삭였다.
“얼른 먹어.”
나는 어깨를 움찔했다. 이건 김찬이가 보내는 신호다. 토스트를 다 먹고 나면 일어날 일을 나는 알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깊은 대화를 피해 왔다. 김찬이가 왜 펠라티오를 했는지, 나는 왜 거절하지 않았는지, 이제 우리는 어떻게 지내는 게 좋을지. 핵심을 건드리는 이야기는 모두 속으로 묻었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는 법이 없었다. 중요한 건 최대한 미뤄 둔 채 미친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눈만 마주쳤다 하면, 김찬이가 다가와 키스를 했다. 내 뺨을 움켜쥐었고 다리로 내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런 키스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중 몇 번은 더한 짓으로도 이어졌다.
우리는 입술을 떼지 않고서 가쁜 호흡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바지를 벗겨 내곤 했다. 관절에 걸려 옷이 잘 내려가지 않을 때면 짜증이 났다. 반쯤 헐벗고 서로의 성기를 주물렀다. 장소는 다양했다. 식탁 앞, 화장실, 내 방, 김찬이의 방, 욕실, 거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면, 그렇게 했다.
내가 쾌락에 약한 사람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매번의 사정이 최고의 흥분 기록을 갈아치웠다. 나는 위험할 정도로 김찬이와의 행위에 몰두해 갔다. 김찬이는 이제 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너무 잘 알았다. 그를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눈만 마주쳐도 열이 올랐다.
토스트를 다 먹자마자 김찬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서툴게 반항을 해 보았다.
“비켜. 나 바빠.”
“알바 갈 때까지 시간 많이 남았는걸.”
“그래서 뭐 하려고.”
김찬이가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키스하려고.”
“됐어.”
“하게 해 줘.”
손바닥으로 김찬이의 단단한 복근을 밀어내려 했다. 밀리지 않았다. 김찬이는 상체를 한껏 숙여 내 턱을 와락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키스했다. 나는 자연스레 입을 벌렸다. 김찬이의 혀가 매끄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더라. 오랫동안 혀를 섞다가 김찬이가 갑자기 나를 식탁 위에 올렸던 것 같다. 내 바지를 벗기고 그 앞에 무릎 꿇었다. 나는 김찬이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김찬이가 내 성기를 입에 물었다.
“흐으, 아, 아….”
신음이 자꾸 거세졌다. 나는 오른쪽 손등을 이로 꽉 깨물었다. 김찬이는 내 신음이 작아지자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강한 힘으로 내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김찬이가 성기를 반쯤 입에 문 채로 웅얼거렸다.
“깨물지 마.”
김찬이의 숨이 내 성기에 닿았다. 식탁 아래에서 동동거리던 내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김찬이가 내 성기를 핥을 때면 울고 싶어진다. 김찬이는 늘 정성스럽게 펠라티오를 했다. 나는 한 번도 해 준 적 없는데. 저릿저릿한 감각이 오래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골반이 아렸다.
“그, 그만. 아, 흐읏, 그만, 야!”
사정감이 몰려왔다. 나는 다급하게 김찬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김찬이는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주먹으로 어깨를 때려 보았다. 김찬이의 어깨는 무쇠처럼 단단해서 얄팍해진 내 주먹 따위는 피해를 주지 못했다. 기어코 나는 김찬이의 축축하고 뜨거운 입 안에 사정해 버렸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너, 내가 그만하라고….”
김찬이가 느리게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김찬이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코끝이 찡해졌다. 정말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자 김찬이가 당황해했다. 나는 옆에 놓인 티슈를 뭉텅이로 건네며 말했다.
“빨리 뱉어.”
“…이미 삼켰어.”
“개자식아.”
“미안. 화났어?”
김찬이가 순한 눈망울로 내 눈치를 살폈다. 화난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건데. 이런 감정을 일일이 설명해 줄 기력도 없었다. 김찬이는 가끔가다 이상한 곳에서 고집을 부렸다. 집요하게 내 귀두를 짓누를 때만 봐도 그랬다. 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식탁에서 내려왔다. 반쯤 내려간 바지를 주워 입었다. 얼른 끈적거리는 성기를 씻고 싶었다. 성큼성큼 걸어가자 김찬이가 허둥지둥 내 뒤를 따라왔다.
“현오야. 화났어?”
“말 시키지 마.”
“미안해. 그런데 왜 화났어? 내가 네 정액 먹어서 그래?”
나는 우뚝 멈춰 선 채로 어깨를 떨었다. 머리에 피가 너무 쏠려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휙 째려보자 김찬이가 움찔했다.
“다시는 하지 마.”
“많이 싫었어?”
정액이 김찬이의 목구멍 안으로 울컥 쏟아지던 그 감각이 싫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좋았기에 더 짜증이 났다. 김찬이랑 붙어먹다 보니 나도 변태가 된 걸까.
“현오야. 너 얼굴이 빨개.”
“…….”
“싫었던 게 아니구나.”
차분하게 기뻐하는 김찬이를 내버려 두고 욕실로 들어왔다. 몸을 벅벅 문질러 씻으며 다짐했다. 내가 또 쟤랑 이런 짓 하나 봐라. 그리고 몇 시간 후였다.
“현오야….”
아르바이트 가려고 나서던 중, 현관문 앞에서 어쩐지 나는 김찬이와 다시 붙어 있었다. 조금 전의 다짐이 무색하게.
김찬이가 나를 붙잡아 세우더니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송곳니로 내 입술을 깨물고 손바닥으로는 내 척추를 하나하나 매만졌다. 발기할 것 같았다. 나는 김찬이의 어깨를 붙잡고서 애원하듯이 말했다.
“키스만.”
김찬이가 여전히 입술을 반쯤 맞댄 채 속삭였다.
“응?”
머리가 어찔했다. 김찬이가 혀로 내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키스만 해, 키스만….”
“알겠어.”
김찬이가 낮게 웃으며 다시 깊게 키스했다. 그러나 내 가랑이 사이를 파고든 다리는 치워지지 않았다. 뒤통수에 현관문이 닿았다. 복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 사람이 집 밖을 나온 모양이었다. 저벅저벅. 제삼자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밖에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문 하나를 두고 음탕한 짓을 하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게 바로 오늘 낮까지의 일이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나는 머리를 세게 흔들고 다시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김찬이가 말간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왔어?”
“어.”
갑자기 목이 콱 막혔다.
“간식 먹을래?”
“그래….”
광기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여름이 완전히 끝나면 열기도 사그라들게 될까. 이 집에서 나는 나가고 모든 건 없던 일이 될까. 애초에 나랑 김찬이는 지금 어떤 관계인 건가.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은 우리 사이에 그득히 쌓여 있었다. 답을 알게 되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변화는 두렵다. 원래의 것이 새것으로 대체되며 망가진다. 지금을 무너뜨리기 싫다. 그러느니 최대한 회피하겠다. 어차피 나는 늘 비겁하게 살아왔다.
“현오야. 잠시만 기다려.”
김찬이가 나를 보며 웃는다.
그런데 저 사랑스러운 미소만 보면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굴면 안 되는 건데. 무엇도 주지 않으려, 무엇도 잃지 않으려 하면서, 그의 달콤함만 취하고 있다. 김찬이는 정말 이런 나로도 괜찮은 건지….
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았다. 김찬이가 과일을 깎아 주었다. 나는 망고를 우물거리며 김찬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집에서 혼자 뭐 했냐.”
“게임 했어.”
“좋겠네.”
“오후에는 사장님 댁 가서 수학 과외 해 줬고. 그리고 현오 기다렸어.”
김찬이가 화사하게 웃었다. 화사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망고가 목구멍에 걸릴 것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김찬이의 시선을 피했다. 망고를 먹는 데에만 집중하려 했다. 허겁지겁 해치운 후, 잽싸게 일어나서 샤워하러 가려는데 김찬이가 나를 붙잡았다.
“현오야.”
“왜.”
붙잡힌 손목이 뜨거워졌다. 김찬이가 느리게 일어서며 내 뒷목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하지 마.”
“아무것도 안 했어.”
“이제 할 거잖아.”
“싫어?”
“…….”
“싫으면 안 해.”
김찬이가 상냥하게 물으며 조금씩 다가왔다. 얼굴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 들었다. 단내가 난다. 침을 꿀꺽 삼켰다. 김찬이의 입술이 나를 덮치려고 하는데도 나는 어째서 가만히 있나. 잠깐 죄책감을 무시하면 이후 찾아올 어마어마한 달콤함을 이미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김찬이와 입술이 닿았다. 촉촉하고 말캉했다. 김찬이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키스를 이어 갔다. 평소와는 다르게 키스의 템포가 느렸다. 혀를 넣지 않고 입술만 오물거리며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안달이 났다. 차라리 쾌락만을 위해 한다는 듯이 바로 혀를 섞는 쪽이 마음은 편했다. 지금은 꼭, 뭐랄까. 연인 간의 굿 나잇 키스 같달까. 쾌락만이 아니라 사랑도 여기에 있다는 듯이.
그게 견딜 수 없었다. 홧김에 내가 먼저 김찬이의 입 속에 혀를 넣었다. 김찬이가 깜짝 놀라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적은 처음이니까. 나는 제법 익숙하게 김찬이의 혀를 찾아 옭아매었다. 하루에 몇 번이고 했던 행위다. 그가 했던 것처럼 혀끝으로 잇몸을 건드려 보기도 했다. 김찬이가 짧게 신음을 흘렸다. 살짝 뿌듯함을 느끼려는 찰나였다.
김찬이가 두 팔을 내 허리에 둘렀다. 우리의 몸은 조금의 틈도 없이 밀착되었다. 가슴팍이 닿았고 다리가 겹쳐졌다. 김찬이가 턱을 틀어 저돌적으로 키스해 왔다. 어느새 키스의 주도권은 김찬이 쪽으로 넘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여유 없고 격렬한 키스였다.
김찬이의 성기가 발기한 게 느껴졌다. 내 하반신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찬이와 입만 맞대도 바로 흥분하도록 조련당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입을 떼지 않은 채 비틀비틀 걸어 소파로 향했다. 소파에 앉고서도 키스는 끝나지 않았다. 김찬이는 집요하고 끈덕진 구석이 있었다. 내 호흡이 부족해지고, 이제 키스로만은 안 되겠다 싶을 때쯤 김찬이가 입을 뗐다.
“현오야.”
나를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그윽했다. 김찬이의 손이 내 등허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명백히 유혹의 의미가 담겨 있는 손짓이었다. 내 심장은 세차게 뛰고 있었다. 내게 유혹을 거부할 의지라고는 없었다. 아니, 이 정도면 이미 받아들인 거라고 봐야겠지. 마음이 또 복잡해졌다. 내가 어쩌다가…. 오늘만 몇 번째인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
김찬이는 고개를 숙이더니 상냥하게 속삭였다.
“흥분했어?”
“왜 물어?”
“신기해서.”
“뭐가.”
김찬이의 손가락이 내 어깨를 스쳤다.
“현오가 나 때문에 흥분할 수 있다는 게.”
“난 네가 더 신기한데.”
“왜?”
“시도 때도 없이 세우잖아.”
김찬이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시도 때도 없이는 아니야.”
“내가 볼 땐 그랬거든. …아, 여하튼 안 되겠어. 이건 좀.”
“응?”
“매일 눈만 마주쳤다 하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이상하잖아. 서로 평정심 좀 되찾자. 각자 들어가서 야동을 보고 해결하든 해야지. 도대체가….”
김찬이가 울상을 지으며 제 이마를 내 어깨에 비볐다. 나는 움찔했다. 김찬이의 하얗고 기다란 뒷목이 눈에 들어왔다. 김찬이가 여전히 얼굴을 내 어깨에 파묻은 채 웅얼거렸다.
“야동?”
“싫어? 그러면 어떡하라고.”
“나는 너 말고는 흥분 안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진짜야. 평소에 자위할 때도 현오 상상하면서 했지. 딱히 뭘 보지는 않았어.”
“과장도 정도껏 해. 그게 말이 되냐?”
김찬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동그란 눈이 한없이 순수해 보였다. 모두 진실이라며 호소하는 눈빛이었다. 하반신 발기 이야기를 하면서 순수함을 들먹이는 것도 좀 웃기지만.
“진짜야.”
“징하다. 어쨌든 오늘은 안 돼. 도대체 아침부터 몇 번을….”
“그럼 너 혼자 해결할 거야?”
“그래. 난 내 방에 들어가서 야동 보며 혼자 할 거니까 넌 알아서 해. 상상으로 빼든가. 원래는 그랬다며.”
“눈앞에 실물이 있는걸. 현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아까는 현오가 먼저 키스해 놓고서…. 나 조금 기대했는데….”
김찬이가 얌전한 얼굴을 한 채 조심스레 투덜거렸다. 어쩐 일로 김찬이가 볼멘소리를 낸다. 나도 김찬이의 말에 양심이 약간 찔렸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내가 무시했으면 이 지경까지는 안 왔을 텐데. 같이 휘말리는 내 잘못도 있기는 했다. 김찬이가 가볍게 쪽쪽 거릴 때 그냥 밀어냈어야 했다. 머리가 어지럽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 빼. 대신 난 안 볼 거야.”
“그래도 돼?”
김찬이의 얼굴에 곧바로 화색이 돌았다. 나는 김찬이의 반대편으로 등을 돌려 앉았다.
“빨리 끝내. 그리고 나 건들지 마라.”
“응. 알겠어.”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기로 했다. 인터넷 뉴스라도 몇 개 읽어야겠다. 등 뒤에서는 곧 야한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손과 성기가 마찰하는 소리. 억누르며 참는 낮은 신음. 나는 소리를 무시하려 애썼다. 금방 끝나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테다. 토끼를 닮은 생김새와 다르게 김찬이는 사정이 빠르지 않았다. 내가 사정하고 기진맥진 늘어져 있을 때도 김찬이는 늘 팔팔했다.
나는 뉴스 기사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첫 줄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온 신경이 뒤통수 뒤로 쏠렸다. 김찬이는 정말 내 등을 보며 자위하고 있는 걸까. 간간이 튀어나오는 신음을 들어 보니 흥분이 되긴 하는 모양이다. 나는 몸매가 좋은 편도 아닌데 도대체 왜.
나라면 나 같은 뒷모습에 발기하지 않을 텐데. 김찬이라면 모를까. 김찬이는 몸도 좋고 피부도 하야니까. 지금쯤은 새빨개져 있겠지만. 자위하며 달아올랐을 김찬이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즘 들어 수없이 본 표정이었다.
흥분할 때면 축축해지던 눈동자. 지금도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 의식할수록 시선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김찬이가 내 뒷목을 샅샅이 훑고 있다. 점점 내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분명히 김찬이 혼자 하고 있는데 같이 자위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입 안에 흥건하게 침이 고여 있었다. 꿀꺽 삼켜 냈다. 아랫배가 저릿했다.
이런 건 이상하다. 내 몸이 정상이 아니게 된 게 분명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다시 뉴스 기사를 읽으려 했다. 이게 뭔 내용이었더라. 그러니까 북한이….
“현오야.”
“아, 깜짝이야.”
바로 뒤에서 김찬이의 젖은 음성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웠다. 뒷목에 김찬이의 뜨거운 숨이 닿았다. 나는 어깨를 한껏 움츠러뜨렸다.
“빨개.”
“뭐?”
“네 목. 엄청 빨개.”
김찬이의 입술이 내 뒷목에 닿을 듯 말 듯했다.
“거, 건들지 말라고 했다.”
“…목에 키스하고 싶어. 안 될까?”
김찬이가 울먹거리는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는 숨에 가득 찬 채 떨리고 있다.
“정말로 안 돼?”
흥분해 있을 때 김찬이는 평소와는 조금 달라진다. 한 번 꽂히면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김찬이는 내가 흔들릴 때까지 끈질기게 물어보곤 했다. 김찬이의 숨이 자꾸 내 뒷목에 떨어졌다. 피부에 오싹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흠칫 몸을 떨며 김찬이를 돌아보았다. 미간에 힘을 주고 그를 밀쳐 내려고 했지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김찬이의 눈동자는 물기로 촉촉했다. 반쯤 우는 모양새였다. 내내 깨물고 있던 입술은 립스틱이라도 바른 듯이 새빨갰다.
예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예뻐 보이는 남자는 김찬이가 처음이었다.
김찬이가 나와 이마가 맞닿은 채 중얼거렸다.
“키스 한 번만 하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너 진짜 이상해.”
“미안.”
김찬이가 속삭이며 내 콧잔등에 입을 맞추었다. 간지럽고 아찔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김찬이가 점점 내 얼굴 이곳저곳에 대담하게 키스했다. 뺨과 턱, 귓가, 눈꺼풀까지. 나는 부들부들 떨다가 눈을 꾹 감았다. 내 성기도 터질 것 같았다. 이상한 건 김찬이뿐만이 아니다. 김찬이는 원래부터 나를 좋아해 왔으니 그렇다 치고. 제일 이상한 건 나일지도 모른다.
“흡, 읏.”
얼마 안 있어 김찬이가 짧은 신음과 함께 사정했다. 나와 반쯤 입술을 걸친 채였다.
나는 느리게 눈을 떴다. 김찬이가 테이블에서 티슈를 뽑아 제 손바닥을 닦았다. 그러나 성기의 크기는 그대로였다.
“끝낼 수 있을 거라며.”
“그러게. 미안해.”
“속았잖아.”
“이제 어떻게 할까. 현오는 이대로 방에 들어갈 거야?”
나와 있으면 더 기분 좋아질 수 있는데, 김찬이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한숨을 내쉬자 김찬이가 내 어깨를 쥐고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현오야. 왜 그래?”
낮고 울림이 깊은 목소리가 나를 감쌌다. 김찬이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내 어깨를 어루만졌다. 어느새 그에게 길든 나는 저절로 몸에 힘을 풀었다. 김찬이에게는 정말로 사람을 무장 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으면 누구나 몇 분 이내로 그를 깊이 신뢰하게 될 것이다. 그가 나에게 해를 가하거나 거짓을 말할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다. 그에게라면 내 마음속 연한 속살을 드러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다. 김찬이에게 물러지고 약해지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김찬이가 나를 끊임없이 매만지며 속삭였다. 강압적이지는 않으나 쉬이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고민 있어? 말해 주면 안 될까?”
나는 얼굴을 들어 김찬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대로 김찬이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저 속은 아마 따뜻하고 안락하겠지. 마음이 약해졌다.
“무서워.”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왔다.
“응?”
“아…. 됐어.”
내가 고개를 옆으로 틀자 김찬이가 내 턱을 붙들어 자기를 바라보게 했다.
“말해 줘.”
“…무섭다고. 너랑 이러는 게.”
“내가 널 무섭게 했어?”
“너 때문이라기보다는. 아, 몰라.”
“현오야.”
내가 다시 말을 돌리려 하자, 김찬이가 힘주어 나를 불렀다. 나는 움찔하며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결국, 머뭇머뭇 다시 말을 이었다.
“그냥…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건가 싶어서. 이런 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하는 거잖아. 난 너를 좋아하지 않는데….”
나는 말하면서 김찬이의 눈치를 살폈다. 김찬이는 자길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표정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일주일간 묵혀 두기만 한 질문을 드디어 꺼내 놓은 참이다. 두려워했던 거에 비하면 별다른 게 없었다. 오히려 속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김찬이는 할 말이 있으면 더 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나는 입을 열어 속마음을 와르르 뱉어 냈다.
“이건, 뭐, 섹파도 아니야. 넌 날 좋아하잖아. 섹파는 서로 감정이 없어야 하는데. 우리한텐 감정이 있다고. 어쨌든 난 누군가와 관계 맺는 게 싫어.”
“알고 있어.”
김찬이의 대답이 너무 덤덤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현오 원하는 대로 해.”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김찬이. 넌 아무렇지도 않아?”
김찬이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연하게 웃었다.
“뭐? 너와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지내는 게?”
“어.”
“글쎄. 너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다 해도, 내가 뭐라 할 자격이 없으니까. 그런 건 조금 슬프겠다. 그래도 괜찮아.”
“그럼 계속 이대로 있겠다고?”
“응.”
“왜? 네가 왜 그래야 하는데? 다른 남자 만나. 너 잘생겼잖아. 충분히….”
김찬이가 내 턱을 꽉 붙들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흥분해서 따지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김찬이가 말했다.
“싫어.”
이토록 단호한 김찬이의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현오 네가 나랑 사귀지 않는 게 네 의지이듯 널 계속 좋아하는 건 내 의지야.”
“…….”
“나랑 있는 게 싫지는 않지?”
나는 고개만 느리게 끄덕였다. 싫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정말 싫었다면 진작 이 집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김찬이네는 안락하고 김찬이는 따스했다. 키스는 흥분되었다. 내가 아무리 불행 위에 누워서 그것과 친구 삼아 살아간 놈이라지만, 이런 안온함을 내다 버릴 정도로 심지가 굳지는 못했다.
김찬이는 나를 달래듯이 내 뒷목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그럼 지금은 그냥 좋아하게 내버려 둬. 알겠지?”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김찬이는 미련하고 멍청하다.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나를 사랑하는 김찬이. 김찬이는 좋은 사람이고, 나는 아니라고 했던가. 그 격차만큼 김찬이는 점점 불행해지고 말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김찬이가 미련하다고 생각하지만, 김찬이의 불행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김찬이는 불행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이대로 지내는 게 정말 괜찮은 걸지도 모르고. 겉만 보았을 때 그의 눈동자는 반짝였고 미소는 완벽했다. 그 누구보다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연기려나. 김찬이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아는 바였다.
“현오야. 무서워하지 마.”
나는 며칠간 쾌락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두려웠다. 김찬이와의 키스가 짙어질수록, 김찬이가 나에게 기대를 품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내가 자길 좋아하게 되리란 희망 같은 것. 기대는 늘 상처를 남기는 법이니까. 그런데 김찬이가 제 입으로 괜찮단다. 자길 좋아하지 않아도, 내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다고.
“어느 날 갑자기 키스가 하기 싫어진다면 안 하면 돼. 모든 건 네 뜻대로 할 거야. 난 그냥 제안할 뿐.”
김찬이는 길을 나에게만 열어 주었다. 선택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일방향이다. 나를 배려하는 거겠지만, 왜 이렇게 마음이 갑갑할까. 어느 시점부터 내 의지로 무언가를 정하는 게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내가 널 좋아하는 걸 잊고 지내. 그래도 관계를 딱 정의하고 싶다면… 섹파라고 부를까? 근데 엄밀히 말하면 섹파는 아니네. 아직 끝까지 안 했잖아.”
“농담하지 마.”
“농담?”
김찬이가 갸우뚱하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순하게 웃었다. 자기는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듯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얼굴이 뜨거워져 고개를 푹 숙였다. 김찬이는 어떤지 몰라도 나에게는 웃어넘길 수 없는 얘기였다. 나는 태연하게 보이려 애쓰며 물었다.
“김찬이. 너 혹시 나랑 그걸… 하고 싶냐?”
“응.”
김찬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김찬이가 손가락으로 내 귓바퀴를 매만졌다. 그리고 제안했다. 아주 정중하고도 예의 바른 목소리로.
“왜? 해 볼래?”
내가 간혹 미쳐서 김찬이와 얽혀 키스할 때면, 가끔 궁금해지기는 했다. 우리가 여기서 멈출지, 아니면 언젠간 끝까지 가게 될 건지. 포르노에서 봤던 것처럼 말이다. 영상 속 행위는 정말 기분이 좋을까.
“현오야. 생각해 본 적 있어?”
“야. 내가 미쳤다고. 없거든.”
나는 제 발 저려서 목소리가 커졌다.
“기분은 좋을 거야.”
“아, 됐다고.”
재빠르게 도리질 치며 질색하자 곧바로 김찬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났다.
“응. 알겠어.”
대신 여전히 발기해 있던 내 성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럼 이건 혼자 해결할 거지?”
“…….”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안 될까?”
김찬이는 그러고는 부리로 쪼듯 살짝 키스해 왔다. 혼자 방에 들어가서 포르노를 보겠다던 내 의지는 애교 섞인 키스에 점점 허물어지고 있었다.
김찬이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공은 나에게로 던져졌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유혹적이고 달콤하다.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군것질처럼, 김찬이도 마찬가지다. 김찬이의 상냥함은 너무 위험하다. 남에게 사랑받는 걸 치 떨려 하는 나에게는 결국 독이 될 거다.
그걸 알면서도. 왜, 또.
김찬이의 손이 내 허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입술을 서서히 열고 말았다. 기어코 소파 위에서 김찬이와 나란히 사정한 후에야 방으로 돌아갔다.
***
요즘 막다른 코너에 몰려 있는 기분이다. 섹스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지 말아야 했다. 김찬이는 그 말을 덥석 물고서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 물러난 건 그저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였을 뿐. 야릇한 분위기가 될 때면 김찬이는 어김없이 나에게 제안해 댔다.
“해 볼래? 기분은 좋을 거야.”
하도 듣다 보니 이제 세뇌당한 것 같다. 맞아. 기분 좋을 텐데.
김찬이는 아주 영리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내가 정말 질색했다면 더는 묻지 않았을 것이다. 김찬이가 내 심기를 완전히 거스르는 법은 절대로 없으니까. 김찬이는 내 망설임을 엿보았던 거다. ‘해 볼래?’ 하고 물었을 때 잠깐 열기가 돌던 내 눈동자를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솔직히 김찬이와 하는 야한 짓은 모두 엄청나게 기분이 좋았다. 가끔 그다음이 궁금해지고는 했다. 이거보다 더한 쾌락이 있다고 하니까. 욕심은 끝이 없었다. 쾌락을 맛볼수록 점점 더 강한 것을 원하게 되었다.
요즘 김찬이는 샤워하고 난 후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다. 나를 유혹하려는 거다. 미칠 노릇이었다. 어제는 바지만 입고 나오더니, 오늘은 골반에 수건 한 장 두른 게 전부였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기겁하여 말했다.
“야. 옷 좀 입어.”
“더워서.”
웃기는 소리다. 이제 여름은 정말 막바지에 접어드는 중이었다. 김찬이는 자기 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알고 있고 그걸 이용하는 거다. 그의 몸은 새하얗고 근육은 빈틈없이 짜여 있다. 노골적인 유혹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나, 내 시선은 도통 김찬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김찬이가 부엌에 가서 찬물을 들이켰다. 뒷모습이 붓으로 그린 듯 완벽했다. 넓은 어깨와 척추 주변으로 꽉 짜인 등 근육, 바짝 올라붙은 엉덩이 그리고 살짝 보이는 엉덩이 골까지. 엉덩이, 예쁘네…. 저기에 넣으면 기분 좋은가. 나 여자랑도 안 해 봤는데 이렇게 처음을 김찬이와 하게 되어도 괜찮은 건가….
김찬이가 어느새 옷을 입고서 내 옆에 털썩 앉았다. 멍하니 있다가 깜짝 놀라 김찬이를 돌아보았다. 김찬이가 예고도 없이 내 입에 뽀뽀하고 고개를 뺐다.
“뭐냐.”
“아까 내 엉덩이 계속 보길래. 서비스.”
“안 봤는데?”
“보던데.”
“아니라니까. 너 진짜, 와, 웃긴다.”
흥분해서 뒷목에 식은땀이 났다.
“내 엉덩이 만지고 싶으면 만져도 돼.”
“내가 미쳤다고.”
김찬이가 상체를 기울여 나에게 가까이 붙었다.
“현오는 거짓말을 못하는 것 같아. 특히 이런 쪽은.”
김찬이의 시선이 내 성기 쪽을 향하고 있다. 내 것은 반쯤 발기해 있었다. 어이가 없네. 언제 서 버린 건지.
“하고 싶은 기분이 들면 말해.”
“야. 됐거든….”
얌전하고 순진한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다니. 내 마음엔 아랑곳없이 김찬이는 산뜻하게 웃으며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치겠다. 자꾸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되는데. 사실 이미 서로 손으로 해 준 사이에 여기서 진도 하나가 추가된다고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점차 내가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자기합리화를 그만둬야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자, 김찬이가 언제 그걸 봤는지 제 엄지를 내 입 속에 넣었다.
“깨물지 마.”
김찬이가 엄지로 내 혓바닥을 꾹 눌렀다. 다른 한 손으로는 텔레비전을 껐다. 곧 거실에 적막이 덮였다. 나는 눈을 찡그렸다. 아랫배에 알싸한 감각이 돌기 시작했다. 내가 신음을 흘리자 김찬이가 엄지를 빼냈다.
“기분 좋을 텐데.”
김찬이가 마법을 걸듯이 나에게 또 한 번 속삭인다. 나를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툭 던지고 가는 제안 하나에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하게 된다면.”
“응.”
“내가 널 다치게 할 수도 있어.”
“왜?”
“나… 안 해 봤거든.”
“나도야.”
“넌 한 오백 번은 해 본 사람 같은데.”
“그럴 리가.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 봤을 뿐이지. 난 안 다치게 해 줄 자신 있어.”
쟤가 뭐라는 거지. 안 다치게 해 줄 수 있다니. 그럼 자기가 나한테 넣겠다는 말인가? 나는 화들짝 어깨를 떨었다. 김찬이의 축축한 엄지가 내 턱부터 귀를 훑고 지나갔다. 김찬이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나는 얼이 빠진 채 물었다.
“나는 내가 넣을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어?”
김찬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야, 넌… 넌….”
가끔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나를 눕힐 때면 겁이 나곤 했지만, 그래도.
“넌 귀엽잖아.”
김찬이가 입을 벌려 웃었다. 유리구슬이 도르르 쟁반 위를 굴러가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하얀 치아가 가지런하게 드러났다. 토끼같이 순한 눈망울은 반짝거렸다.
“현오도 귀여워.”
“미쳤냐. 나는 아니지.”
“하지만 나도 현오한테 넣고 싶은걸.”
김찬이가 양손으로 내 뺨을 감싸 쥐었다. 아, 물론 하게 된다면. 김찬이가 상냥하게 조건을 덧붙였다.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될까?”
“너, 어떻게, 그런 얼굴로….”
“내 얼굴이 어떤데?”
“귀엽고 예쁘고, 그, 토끼도 좀 닮았고. 하여간 순진하게 생겼다고.”
“토끼? 그런 말은 처음 듣네.”
김찬이가 정말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또 한 번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는 얼굴마저 또 토끼를 닮아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누가 탑을 해야 하나.”
“탑이 뭐야.”
“누가 넣느냔 말이야.”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찬이가 손바닥에 힘을 줘서 내 뺨을 뭉개고 만지작거렸다. 탑이 넣는 사람이군. 단어 하나를 깨우치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였다. 김찬이가 빙긋 웃더니 말했다.
“가위바위보 할래?”
“뭐?”
“처음이니까 가위바위보 해서 정하자. 이긴 사람이 탑 하기로.”
요즘 내가 집안일을 조금씩 도와주면서 우리는 심심찮게 가위바위보를 하곤 했다. 청소와 설거지 중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할 때 유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섹스 포지션의 문제 아닌가. 가위바위보로 괜찮은 걸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김찬이에게 가위바위보로 진 적이 없었다.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좋아. 가위바위보 하자.”
“삼세 판?”
“됐어. 단판으로 해. 무르기 없기다.”
“응. 알겠어.”
좋아. 내가 넣는 거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가위바위보를 외치고 보자기를 내밀었다.
“와.”
김찬이가 화사하게 웃었다. 김찬이의 패는 가위였다.
“…뭐야, 이거.”
말도 안 돼. 어떻게 매번 이기다가 딱 지금 질 수가 있지. 누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깜빡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얼이 빠진 나에게 김찬이가 씩 웃어 보였다.
“무르기 없는 거지?”
“…….”
“아, 근데 아직 안 씻었지? 우선 씻으러 가.”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분명히 나는 ‘만약에 정말 만약에’ 섹스하게 될 때를 상정하고 물어본 거였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곧바로 섹스할 것처럼 흐르고 있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욕실로 향했다. 망설이다가 샤워기를 틀었다
누가 거짓말이라고 해 줬으면 좋겠다. 하도 요새 섹스하자고 꼬시길래 인터넷에 검색해 보긴 했다. 이론과 방법은 대충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뒤로 잘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라던데. 갑자기 무섭다.
나는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공들여 씻고서 욕실 바깥으로 나왔다. 문 바로 앞에 김찬이가 서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냥 못하겠다고 할까. 긴장한 채 김찬이를 바라보았다. 김찬이의 첫마디가 무서웠다. 뭐라고 하려나. 아마도… ‘이제 침대로 갈래?’
그러나 김찬이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목마르지? 주스 마실래?”
갑자기 이전에 나누었던 대화가 0으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당황했다. 이쪽에서는 나름대로 만만의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 정말 말 그대로 씻고 오란 뜻이었나.
“어?”
“수박 주스 갈아 놨어.”
“어….”
“얼른 머리 말려.”
김찬이가 부엌 쪽으로 몸을 틀려는 찰나, 나도 모르게 그를 붙잡았다.
“야. 우리… 그거, 하는 거… 아니었어?”
김찬이의 눈이 커졌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내 얼굴은 지금 시뻘겋겠지. 김찬이가 나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현오가 딱히 지금 하자고는 안 해서….”
“그렇지만 왠지 분위기가….”
“어물쩍 넘어가는 건 싫은걸.”
김찬이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다정했다. 나는 열이 나서 죽을 것 같았다. 이럴 때 대충 저쪽에서 확 다가와 버리면, 나도 못 이기는 척 어쩔 수 없는 척 넘어가 볼 텐데. 꼭 내 입으로 먼저 섹스하자고 말해야 한다니.
김찬이의 눈빛은 정중하면서도 어딘가 얄궂었다.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했다. 이후에 내가 다른 말을 못하게끔, 확실히 해 놓으려는 거겠지. 언제나 그렇듯이, 정신을 차려 보면 김찬이가 차근차근 깔아 놓은 판에 내가 들어가 있었다. 친구 하자며 설득당할 때도, 이 집에 들어올 때도 그랬다. 김찬이는 영리하기 그지없다.
제기랄.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좀 궁금하단 말이다. 섹스하면 어떨지. 뒤를 쓰는 건 엄청나게 무섭지만 인터넷에 찾아보니 기분이 완전 쩔어 준다고도 하고…. 그동안 묵혀 왔던 것만큼 내 성욕과 호기심이 폭발하는 중이었다. 김찬이는 눈치가 빠르니 내 속을 이미 훤히 알고 있을 것이다.
“현오야. 왜 그래? 얼굴이 빨개.”
김찬이가 손바닥으로 내 뺨을 감쌌다. 나는 김찬이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김찬이가 목을 숙여 금방이라도 키스할 것처럼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할까?”
아랫배가 순간 움찔했다. 제안, 또 제안이다. 합과 불을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나의 몫이고. 내 뒷목이 바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극도로 긴장해 있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왔는데도 손끝이 금방 차가워졌다.
“어떻게 하고 싶어?”
김찬이가 정중하게 다시 물었다. 나는 김찬이의 티셔츠 끝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숨이 턱턱 막혔다. 한참 후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 방금 몇 분 동안 씻었더라.”
“한 이십 분은 넘은 거 같아.”
“평소엔 몇 분 만에 씻지?”
“오 분?”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이 뜨겁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들어 김찬이를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오래 씻었을 거 같은데?”
김찬이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져 갔다.
“나랑 섹스하려고?”
이래도 되는 걸까. 모르겠다. 머리가 어지럽다. 하지만 얌전한 얼굴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섹스를 말하는 김찬이가 못 견디게 섹시해 보였다. 이번에도 나는 그에게 휘말리고 말았다.
“정답이야?”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김찬이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이가 부딪칠 정도로 격한 몸짓이었다. 우리는 반쯤 끌어안은 채 정신없이 김찬이의 방 쪽으로 걸어갔다. 조금 전까지 김찬이는 평온한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나 보다. 김찬이의 몸이 엄청나게 뜨거웠다. 불덩이를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김찬이의 두 손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바삐 움직였다. 내 뒤통수를 움켜잡았다가 뒷목을 쓸었다가 뺨을 어루만졌다가 귀를 만지작거렸다.
평소의 그 격렬한 키스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김찬이는 두 배는 저돌적으로 굴었다. 분명히 코로 열심히 호흡하고 있는데도 숨이 부족했다. 우리는 뒤엉킨 채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내가 심하게 헐떡이자 김찬이가 잠시 입을 뗐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 하는 시간 아껴서 얼른 숨을 돌린 다음에 키스에 재돌입하는 편이 효율적이었으니까.
우리는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허겁지겁 입술을 맞대었다. 김찬이의 손이 내 티셔츠를 마구잡이로 움켜쥐며 벗기려 했다. 내 손은 김찬이의 골반 위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옷을 더 잘 벗기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움직여 댔다. 입술은 여전히 키스에 열중한 채로.
모든 게 급했다. 초조하고 정신이 없었다. 김찬이와 조금이라도 떨어질 듯하면 불안해졌다. 갓 샤워한 몸에 다시 땀이 났다. 다 끝나가던 여름이 이 방에만 다시 찾아왔다. 에어컨을 틀었음에도 후덥지근했다. 푹 익어 과즙이 줄줄 흘러내리는 열대 과육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들이마시는 숨, 내 목구멍으로 넘어온 침, 그 모든 게 아주 달게 느껴졌다.
우리는 팬티만 남기고 모두 탈의했다. 하반신 사정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이미 성기는 커질 대로 커져 있었고, 쿠퍼액이 팬티를 적신 채였다. 우리는 옆으로 누워 서로의 팬티마저 벗겨 버렸다. 김찬이의 손이 내 가슴팍 위에 올라왔다. 나는 김찬이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둘 다 섹스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어졌다. 그냥 몸이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현오야.”
몇 분 만에 처음으로 우리 사이에 말이 생겼다. 김찬이가 내 가슴과 겨드랑이로 이어지는 부분을 엄지로 꾹 눌렀다. 나는 목을 조금 움츠렸다.
“현오야, 현오야.”
“…왜.”
나는 이마를 김찬이의 어깨에 댄 채 웅얼거렸다. 내 손바닥 안에서 김찬이의 성기가 꺼떡거렸다.
“가슴 만져도 돼?”
“이미 만지고 있잖아.”
김찬이가 내 어깨에 키스했다.
“이렇게 말고 제대로.”
“제대로가 어떻게 하는 건데….”
“그러면 우선 한번 해 볼게?”
김찬이의 머리통이 갑자기 쑥 아래로 내려갔다. 김찬이가 양손을 뒤로 뻗어 내 엉덩이를 움켜쥔 채 혀로는 내 젖꼭지를 핥았다.
“윽.”
간지러웠다. 김찬이의 눈썹과 머리카락이 맨살에 닿아 거슬리기도 했다. 이걸 왜 하는 거지? 별 느낌 없는데. 김찬이가 이번에는 아예 입 안에 한 움큼 내 가슴살을 담고서 빨아 당겼다. 살짝 아릿해졌다.
나는 애매하게 뜬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김찬이의 등에 올려놓았다. 손바닥 아래에 탄탄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김찬이의 알몸은 아주 하얗고 미끈했다. 그러다가 군데군데 새빨간 곳이 있었다. 두 뺨, 귀 끝, 목, 손가락과 발가락 끝. 흥분의 증거였다. 빨강을 볼 때마다 가슴이 조금 일렁거렸다.
김찬이가 송곳니로 내 젖꼭지를 꾹 눌렀다. 그러고는 사과라도 하듯이 혀로 정성스레 핥아 주었다. 그는 이 행위를 두어 번 반복했다.
“읏….”
갑작스레 내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김찬이가 확 밝아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남자도 젖꼭지로 느낄 수 있는 거였나?
김찬이는 이게 먹힌다는 걸 확인하고서 거침없어졌다. 손으로는 내 엉덩이를 찰흙 다루듯 주물럭거리고, 입으로는 내 가슴을 계속 빨고 깨물었다. 젖꼭지가 평소보다 부풀어 오른 것 같았다. 아랫배와 가랑이 사이가 욱신거렸다. 나는 손끝을 세운 채로 김찬이의 등을 꽉 붙잡았다.
“읏, 야, 그만 좀.”
김찬이는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란 검지로 내 엉덩이 골을 꾹 눌렀다.
“하으!”
내 몸이 펄떡였다. 누군가 망치로 척추를 후려친 듯 날카롭고 아찔한 감각이 확 퍼졌다가 바로 사그라졌다. 한 번도 성감대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곳이 반응하고 있었다. 김찬이는 내 신음을 듣자마자 갑자기 상체를 일으켰다. 침이 묻어 있던 젖꼭지가 공기에 닿자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잠깐만.”
김찬이의 표정에 여유라곤 없었다. 김찬이가 엉금엉금 침대 위를 기었다. 침대 옆 협탁 맨 아래층으로 팔을 뻗더니 무언가를 빼내 왔다. 김찬이가 허겁지겁 나에게로 다시 오더니 내 콧잔등에 키스했다.
“이게 뭐야.”
“젤이랑 콘돔.”
“…그게 왜 여기 있어?”
“섹스에 필요하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건데?”
“며칠 전부터.”
“야. 너 나랑 섹스할 줄 알았어?”
내가 얼이 빠져 물었으나 김찬이는 그저 미소 짓기만 했다. 김찬이가 자기 손에 젤을 쭉 짰다. 반짝거리면서 찐득거리는 젤이 김찬이의 손가락에 들러붙었다. 김찬이가 내 옆에 누웠다. 곧 내 엉덩이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김찬이의 기다란 검지가 천천히 내 구멍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야….”
나는 김찬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 손등이 덜덜 떨리는 중이었다.
“왜? 이상해?”
차갑던 것이 점점 뜨거워졌다. 내 피부가 흐물거리고 있었다. 김찬이가 젤을 치덕치덕 넘치게 발라 댔다. 젤이 엉덩이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상해.”
“어떤데? 기분이 나빠?”
김찬이가 미간을 살짝 좁히며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발을 오므렸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나쁘다기보다는 오묘한 느낌이었다.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 엉덩이가 이렇게 질척거리다니…. 잠깐의 호기심 때문에 나는 너무 큰 걸 잃어버리려 하는 것 아닐까. 갑자기 걱정도 되었다. 김찬이가 내 이마에 입술을 붙인 채로 속삭였다.
“잠깐만, 잠깐만….”
김찬이는 아주 다정하게 말했으나 그의 검지는 멈추지 않았다. 점점 내 구멍 쪽에 가까워졌다. 푹, 검지 끝이 안으로 들어왔을 땐 나는 너무 놀라 숨을 참았다.
침범한 영역은 아주 조금이었다.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었다. 그런데도 벌써 버거웠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온몸이 멈춰 버렸다.
“아, 안 될 것 같아. 야. 그만, 그만하자.”
나는 겁먹어서 웅얼거렸으나 김찬이는 자꾸 나를 어르고 달랬다.
“잠깐만.”
도대체 뭐가 잠깐만이라는 건지. 나는 김찬이가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를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내가 미련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김찬이인데. 김찬이의 손가락이 자꾸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도저히 안 될 것만 같았는데 참 신기하게도 안이 꾸준히 늘어났다. 정신을 차려 보니 검지 하나가 통째로 내 안에 있었다. 김찬이의 손가락을 내 안이 빈틈없이 쥐고 있는 게 느껴졌다.
“허억….”
“현오야. 숨 쉬어.”
이마에서 땀이 마구 났다. 김찬이가 내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한없이 다정하게 굴면서 검지는 거칠게 움직였다. 김찬이가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내 아랫배도 같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오줌이 마려웠다. 아니다. 그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기분이다. 허벅지를 배배 꼬고 싶었다. 잠깐만, 잠깐만…. 김찬이가 또 되지도 않는 달래기를 하며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으려 했다. 나는 김찬이의 어깨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다급하게 들었다.
“미쳤어?”
“응?”
“안 들어가. 절대로.”
김찬이가 순한 눈망울로 웃는다.
“한번 해 볼게.”
제기랄. 자기 구멍 아니라고 말을 쉽게 하네. 김찬이가 좀만 더 못되게 생겼어도 되게 열 받았을 거다. 저런 수작을 부려도 쉽사리 욕할 수 없는 건 김찬이의 순하디순한 얼굴 때문이다. 도저히 얄미워 보이지가 않는다.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검지 하나 들어와 있을 뿐인데 나는 벌벌 떨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구멍 속 검지도 같이 요동칠 테고 그러면 그놈의 존재감이 더욱 명확해질 테다. 그게 싫었다. 내가 굳어 있는 동안 김찬이가 중지를 밀어 넣었다. 쑤욱, 거의 절반 가까이가 한 번에 들어왔다.
“흐으…!”
“됐다.”
김찬이가 웃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김찬이는 손가락 두 개로 내 안을 쿡쿡 쑤셨다. 아프지는 않았다. 쿨쩍, 쿨쩍. 소리가 민망했을 뿐. 김찬이는 섬세하게 여기저기를 눌러 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흐, 하아, 아….”
나는 신음을 참으려는 의지조차 상실해 버렸다.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구멍이 완전히 녹아내린 것 같았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게 분명했다. 입 안에 가득 고인 침이 침대 시트에 떨어지고 있었으나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눈물이 좀 고인 것 같기도 했다. 김찬이가 가끔가다 내 눈 주변을 닦아 주는 걸 보면.
도대체 엉덩이 구멍으로 이렇게 느낀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혼란스러웠다. 쿡, 쿡, 김찬이가 구멍 안쪽을 찌를 때마다 요의 비슷한 것이 밀려왔다. 찌릿하고 성기 주변이 꽉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아마 세상에 이것보다 더한 쾌락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현오야, 정신 차려.”
김찬이가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나는 간신히 눈을 떴다.
“…이제 끝났어?”
“아니. 이제 해야지.”
“뭘?”
“섹스.”
머리가 멍해졌다. 맞다. 아직 안 넣었지. 김찬이가 내 어깨를 꾹 눌러 나를 바로 눕히고는 내 위에 올라탔다. 흐물거리는 내 다리를 붙잡아 자기 허리에 두르게 했다.
“나, 나 더 못 할 것 같은데….”
“왜?”
“이미 느낄 만큼 다 느낀 것 같은데…. 죽으면 어떡해.”
나는 흐릿해진 정신을 붙들고 간신히 말했다. 김찬이가 작게 웃는 것 같았다. 아니, 왜 웃는 거지. 난 진심이었다. 여기서 쾌락을 더 느끼고 몸을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이미 녹아 버렸다. 거의 액체 같은 상태란 말이다. 하지만 김찬이는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김찬이가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더니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나는 김찬이의 성기를 응시했다. 저게 저렇게 컸었나. 오랫동안 흥분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성기는 붉고 굵었다. 아무리 손가락으로 내 안을 넓혀 놓았다 한들, 저게 들어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다. 찢어질지도 모른다. 나는 겁에 질린 채로 말했다.
“아, 안 돼.”
“하지 마?”
“찢어져.”
“찢어지지 않을 거야.”
진짜 자기 구멍 아니라고….
“잘할게.”
“아플 거 같다고.”
“아냐. 안 그래.”
“네가 어떻게 알아. 넌 넣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아프면 손 들어.”
“여긴 치과가 아니거든? 너 지금 나한테 무슨 짓 하려는 건지 알기는 하는….”
바들바들 떠는 내 입을 김찬이가 입술로 막았다. 그는 내게 살짝 키스하고 떨어져서는 나긋하게 말했다.
“현오야. 진정해.”
“으….”
“눈 감고 숨 마셔 봐. 응, 그리고 다시 내쉬어 봐.”
김찬이는 느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김찬이의 말에 따라 심호흡했다. 벌떡이는 내 심장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즈음에 김찬이가 내 귀 옆에 오른손을 짚었다.
“이제 괜찮지?”
“어? 아, 좀 괜찮아졌… 흐윽!”
퍽. 그때 김찬이의 성기가 예고 없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내 가슴팍이 거의 생선처럼 펄떡 뛰어올랐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가 눈물이 고인 채 꾹 감았다.
“안 찢어졌어. 아파?”
“헉, 어윽, 아….”
“현오야. 아파?”
나는 힘겹게 도리질했다. 아프지 않았다. 찢어지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대신 미칠 것 같은 흥분이 일었다. 굵은 성기가 내 안을 압박하고 늘려댔다. 꼬리뼈가 진동하면서 진한 쾌락이 나를 꽝꽝 두드렸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자 김찬이가 왼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아직 반밖에 안 들어갔어.”
“아, 흐으, 아, 빨리.”
“응?”
“빨리, 좀….”
내가 말해 놓고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빨리 그만두라는 건지, 빨리 넣어 달라는 건지. 온 세상이 요동치고 뒤바뀐 것 같았다. 몇 분 전만 해도 그때가 최고의 쾌락인 줄 알았다. 더한 것이 있었다. 나는 이제 쾌락의 한계치를 정해 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김찬이는 마법처럼 내 몸을 변하게 했다.
나는 손끝을 세운 채로 김찬이의 어깨를 벅벅 긁어 댔다. 눈에 자꾸 눈물이 고였다. 김찬이가 내 눈꺼풀에 입 맞췄다가 입술에 키스했다. 짠맛이 났다.
김찬이의 입에서 굵직하고 짧은 신음이 흘러 나왔다. 그의 성기가 끝까지 들어온 것이다. 안이 더 늘어났다. 뜨거운 성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덩이가 맞부딪혀 뭉개지고 달라붙었다. 젤을 그렇게 많이 발랐음에도 열기 때문에 어느새 젤이 반쯤 말라 있었다. 구멍이 뻑뻑했으나, 꾸역꾸역 성기가 드나들었다.
“하아, 현오야.”
눈을 살짝 떠 보자 김찬이가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야했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잽싸게 눈을 다시 감았다.
잠시 후 내 몸은 거의 반으로 접혀 있었고, 김찬이의 허리는 미친 듯이 빠르게 움직였다. 꺽, 꺽, 숨이 넘어갔다. 뻑뻑하던 구멍은 어느새 다시 미끈해졌다. 묵직한 성기가 안을 가르고 때렸다. 귀두가 깊숙한 곳을 짓뭉갤 때면 아랫배가 바들바들 떨렸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쾌락이었다.
내 울음은 점점 커져 갔다. 우리는 미쳐 갔고. 나는 반쯤 매달리듯이 김찬이에게 달라붙었다. 우리의 피부는 땀으로 끈적끈적했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김찬이와 골반이 꽉 맞붙을 때면, 섹스할까 말까 고민했던 것이 우스워질 정도였다. 발정이 났다는 짐승 같은 표현을 우리에게 써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한참 후 김찬이가 내 안에서 사정하고 나에게 입 맞출 때,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섹스는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섹스는 결국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좋은 것에는 늘 대가가 따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