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김현오, 열아홉 살, 무너지는 봄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했다. 이유도 모른 채. 어느 겨울날 우리 가족은 도망치듯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목적지는 마산에 사는 외삼촌네 옥탑이었다. 그곳이 우리의 새집이었다. 거실에 작은 방 하나가 달려 있었다. 넷이 살기엔 좁았다. 사춘기가 시작된 여동생과 같은 방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와 아빠가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내 방이 없어졌으나 불편한 티를 낼 상황이 아니었다. 집이 좁은 만큼 가족끼리 더 자주 부딪쳤고 엄마는 늘 화나 있었다.
이사 오고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 아빠는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 청소업체였다. 아빠는 근처 건물 화장실을 청소하러 다녔다. 외삼촌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일을 구하지 못했을 거라며 엄마가 기뻐했다.
며칠 후에 엄마도 마트에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가 아니라 바닥에 이불 깔고 자는 게 아직 어색했다. 나는 새카만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빠.”
“…왜.”
아빠는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 개학이잖아.”
“응.”
“나 학교 꼭 다녀야 해?”
“무슨 소리야. 그럼 학교를 안 다니려고?”
“그냥 나도 일하면 안 되나. 어차피 공부도 별로 못하는데. 교복도 새로 사야 하고….”
아빠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네 엄마가 그러든? 너 일 구하라고 해? 나가서 돈 벌라고?”
“아니….”
“당장 네가 무슨 일을 할 건데. 쓸데없이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 대학은 가야지.”
“대학을 어떻게 가?”
이제 우리 돈이 없잖아,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어둠 속에서도 아빠의 눈이 붉어진 게 보였기에.
“어떻게든 널 대학엔 보내야지. 아니면 네가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든가. 현오야. 마음을 굳게 좀 먹어.”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아빠는 씩씩대다가 아예 옥상 쪽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고는 누군가와 통화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불 속에 파묻혀서 억지로 눈을 감았다. 분명히 서울보다 따뜻할 텐데 옥탑이라 그런지 집 안이 추웠다. 보일러를 안 튼 모양이다. 코끝이 점점 시렸다.
코를 손등으로 마구 문지르면서 생각했다. 왜 아빠는 나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을까. 왜 마산으로 왔는지, 왜 외삼촌네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지. 이사 오면서 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는지.
아빠 회사가 결국 망해 버렸나 보다. 빚도 쌓였겠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나이가 되었지만, 설명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꽤 컸다. 내가 이제 뭘 해야 할지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 주변을 둘러싼 모두가 변했는데, 나도 이전처럼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예를 들면, 일을 구해서 동생 학비에 돈을 보태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나보다는 동생이 공부를 훨씬 잘하니까.
다음 날 일어나서 엄마한테 슬쩍 그런 이야기를 해 보니, 엄마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고는 허튼 생각 하지 말라 했지만 좀 더 밀어붙이면 내 편이 될 것 같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외삼촌네 가게에서 무급으로 일을 도왔다. 엄마는 외숙모의 심기를 절대 거스르지 말라는 얘기를 매일 열 번씩 했다. 염치없이 얹혀사는 주제에 그러면 안 된다면서. 외숙모의 사투리는 마산 사람 중에서도 심하고 빠른 편이라 가끔 말을 못 알아들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숙모가 불같이 짜증을 냈다.
아는 애들한테서 간간이 연락이 오기도 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더는 볼 기회가 없을 얼굴들이다. 허겁지겁 서울에서 내려오던 그 날 마지막으로 봤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바쁘고 급작스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새하얀 인상이 떠올랐다. 아, 김찬이. 걔 괜찮을까….
마산에서의 시간은 서울보다 두세 배로 빨리 지나갔다. 가난에 적응해 나가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반찬이 줄었고 싱싱한 채소가 식탁에서 사라졌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나, 값싼 가공식품이 주로 식탁에 올라왔다.
“채소가 없어서 어떡하니. 현오가 샐러드를 좋아하는데.”
엄마가 울상을 지을 때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주니까 그냥 먹었던 거지 사실은 채소 싫어했다고. 지금부터 나는 채소를 싫어하는 척하기로 했다. 며칠 정도 그 말을 반복하니 점점 나조차도 내 거짓말에 속아갔다. 참 다행이었다.
***
개학 바로 전날 밤이었다. 나는 아직 교복을 구하지 못했다. 동생은 다행히도 근처 이웃한테 교복을 물려받았다. 내 교복도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았으나 아직 무소식이었다. 엄마는 내일 학생부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시간을 벌어 보자고 했다. 엄마의 월급이 들어오는 날까지는 아직 2주나 더 남아 있었다.
그동안 나는 뭘 입고 학교에 가야 할까. 예전 교복을 가져오긴 했나. 사복을 입어야 하나. 아마 애들 눈에 띄겠지. 처음으로 남의 시선이 겁났다. 지금까지 타인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몇 주간 바뀐 주변 상황에 맞게 나도 변한 것 같았다.
거실 구석에 늘어져 있는데 아빠가 나 보고 급히 나오라고 했다.
“오늘은 밖에서 자야 해.”
“밖에? 어디?”
“뭐, 찜질방이나 그런 곳.”
“갑자기 왜?”
“그렇게 됐어.”
아빠는 이번에도 나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죄인처럼 후다닥 건물을 내려가 외삼촌이 빌려준 봉고차에 올라탔다. 동생이 내 옆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내일 학교 가는데 오늘 찜질방에서 잔다고? 왜?”
조수석에 앉은 엄마도 아무 말이 없다. 봉고차 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나는 차창에 이마를 기대며 묻기를 포기했다. 아빠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가 살짝 진동하다가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건너편 길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엄마. 저기 외할머니 아니셔?”
동생도 할머니를 보았는지 먼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답이 없었다.
“할머니 맞는데? 왜 그냥 가? 엄마!”
대신 아빠가 대답했다.
“김현서. 조용히 좀 해. 할머니는 아직 모르셔.”
“뭐를? 우리 집 망한 거? 그래서 할머니 안 만나려고 도망가는 거야?”
동생의 꾸밈없는 질문에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좀 있으라니까!”
“왜 나한테 그래?”
동생이 울먹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이게 내 잘못이야?”
동생을 진정시키기 위해 어깨를 토닥이려는데, 갑자기 차 안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눈물을 터뜨린 거다. 점차 울음이 커졌다. 나는 엄마가 서럽게 소리 내어 우는 걸 처음 보았다.
“엄마. 왜 그래….”
동생이 조수석 쪽으로 손을 뻗으며 같이 울었다. 엄마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머지 손으로 동생을 쳐 냈다. 차 안이 금세 후덥지근해졌다.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마산에서 내려와서 처음으로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대로는 못 살겠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할 겨를도 없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을 마주할 시간조차 없이 바빴기에.
여기 살면서 행복해질 날이 올까. 내내 이럴까. 매일 싸우고 엄마는 울음을 애써 참고 그러다 간간이 터지고 아빠는 화내고. 이런 삶일까. 예전으로는 영영 돌아가지 못할까. 견뎌 낼 자신이 없다.
아빠는 뒷목이 벌게진 채로 고함을 내질렀다.
“당신까지 왜 이래? 애들 앞에서 그만 좀 울어!”
나는 아랫입술을 아플 정도로 꽉 깨물었다. 엄마가 무슨 잘못이냐고 제발 엄마한테 그러지 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눌렀다. 그때 아빠의 핸드폰 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아빠는 액정에 뜬 글씨를 힐끗 바라보고는 무시했다. 그러나 또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는 흐느끼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전화 받아. 계속 오잖아.”
“됐어.”
요즘 이 시간에 아빠는 옥상에 나가 전화 받는 일이 잦았다. 잠시 후 세 번째로 전화가 걸려 왔을 땐 엄마가 아빠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김사랑이 누구야?”
“아, 있어.”
“있긴 뭘 있어. 누군데. 내가 대신 받아?”
“내버려 둬.”
나는 속이 메스꺼워졌다.
“안 받으니까 계속 걸잖아! 누구냐니까!”
“아씨, 진짜. 운전하는데 귀찮게 왜 그래?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이야. 뭐 물어볼 게 있나 보지.”
“당신 여자 생겼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엄마는 외마디 비명처럼 아빠를 불렀다.
“현오 아빠!”
아빠가 급하게 핸들을 꺾어 갓길에 차를 세웠다. 동생은 상체를 완전히 숙여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 쪽으로 몸을 틀며 말했다. 아까보다 한껏 작아진 목소리였다.
“애들 앞에서 왜 이래. 진정 좀 해.”
“네가 사람이니?”
“은지야.”
아악! 엄마가 소리 지르며 아빠의 어깨와 가슴팍을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아빠가 엄마의 손목을 낚아채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아빠가 몸을 웅크리며 소리 질렀다.
“당신 미쳤어?”
엄마는 진이 빠질 때까지 아빠를 때리고서 숨을 몰아쉬었다. 동생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래! 미쳤다, 미쳤어! 어떻게 우리 오빠 집에 얹혀살면서 바람피울 생각을 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짐승이지!”
“오해하는 거라니까. 바람 아니야.”
“내가 당신을 몰라? 저번에 그 대리인가 뭔가 하는 여자랑 놀아날 때 그냥 이혼했어야 했어.”
“애들 보는데 못하는 소리가 없….”
“애들 걱정하는 척 그만둬. 네가 진짜 애들 생각했으면 이러지 못하지.”
“오해라고 했잖아. 왜 사람 말을 안 들어?”
“매번 그 소리. 나만 미친년 만드니까 기분 좋니? 회사 부도나고 갈 데 없을 때 당신 친척들은 다 외면하는 거 우리 오빠만 받아 줬어. 근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엄마의 말끝이 점점 흐려졌다. 엄마는 다시 울음이 북받쳐 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 아빠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현오야. 네 엄마 좀 말려 봐라.”
나는 입을 다문 채 아빠의 시선을 피했다. 도대체 뭘 말리라는 건지. 아빠를 위한 변명이라도 하란 뜻인가? 같은 남자로서 아빠를 변호라도 하라고? 엄마의 시선도 곧 나를 향했다.
“그래. 네가 말해 봐. 아빠 이상한 거 없었는지.”
매일 밤 아빠가 옥상에 나가 한참 동안 통화하고 들어왔단 이야기를 할지 말지 고민했다. 나에게 시뻘건 시선 두 개가 쏟아지고 있다. 동생이 내 왼쪽 무릎을 붙잡고 약하게 흔들었다. 어떻게든 해 보라는 듯이. 그러나 나라고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거짓말을 한다면, 엄마가 울지 않을까. 아니, 사실대로 말하는 게 엄마를 위하는 건가. 아빠는 정말로 김사랑이란 여자와 더럽게도 사랑하고 있었나. 마산에 내려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역겨웠다.
“현오야.”
“김현오!”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나를 불렀을 때 두통이 한계치에 이르렀다. 나는 충동적으로 차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빠가 소리 지르며 나를 불러 세웠다. 들리지 않았다. 얼른 저 봉고차 안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든 노숙하든 이런 가족과 찜질방에서 새우는 밤보다는 나을 거다.
사가리 쪽으로 쉼 없이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데 봉고차가 뒤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질색하며 걸음에 속도를 더 붙였다. 반쯤 뛰다시피 했다.
빠앙. 그때 사거리 북측에서 버스 한 대가 크게 경적을 울렸다.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 자세히 그쪽을 바라보니 버스가 정지선을 지나쳐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브레이크라도 고장 난 것처럼. 어, 하고 봉고차 쪽을 돌아보는 몇 초 사이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쾅! 버스가 좌회전하던 승용차 하나를 들이박으며 계속 돌진했다. 끼긱! 버스는 반 바퀴 정도 회전하고도 멈추지 못했다. 하나로는 부족한지 두 번째 충돌을 위해 무섭게도 달려갔다. 그리고 버스와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건 우리의 봉고차였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사람들의 비명이 요란했다. 으아앙, 아이 울음소리도 들렸다. 맞은편 인도에 일곱 살 정도 된 아이가 겁에 질린 채 서 있었다.
차창 안으로 우리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어떻게든 핸들을 꺾어 버스를 피해야 했다. 내가 있는 오른쪽과 아이가 있는 왼쪽. 잠시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가 무슨 선택을 하려 하는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된다고 소리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코앞에서 불행이 우리를 집어삼키는 걸 바라볼 뿐.
봉고차는 왼쪽으로 꺾였다.
아이의 이름은 영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