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김현오, 스물네 살, 우리의 오늘
고모네 집에 온 지 두 시간 만에 진이 다 빠졌다. 고모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울었다. 나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5년 전을 생각해도 울지 못했다. 울어도 바뀔 것은 없다. 애초에 나에게는 울 자격도 없는지 모른다. 어쨌든 나는 살았고 그들은 죽었다.
고모가 휴지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여기서 고모랑 지내. 정말 괜찮다니까. 응?”
마침 고모네 집에 방이 하나 남았다. 얼마 전 고모 아들이 독일로 유학을 가 몇 년간은 그곳에서 지낼 거란다. 그래서 나를 찾았던 모양이다. 나 보고 들어와 같이 살자고 했다. 속이 갑갑해졌다. 내가 전혀 원치 않는 배려였다. 김찬이가 했던 제안과 같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때와 전혀 달랐다. 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과거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색이 바랠 만큼 오래된 사진 속에 갇힌 듯했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5년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어쨌든 살기 위해 과거에서 아등바등 도망쳤던 나날들. 그때 나도 같이 죽었어야 했다고 수없이 생각했으나 그래도 자살은 하지 못했다.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살아는 있어야 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수준이라 하여도. 눈을 꾹 감고 영진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영진에게 돈을 부칠 날이었다.
고모는 내가 아무 대답도 없자 덥석 내 손을 붙잡았다.
“현오야. 언제까지 반지하에서 살려고 그래.”
“저 지금 거기서 안 살아요.”
사람 잘 찾는 흥신소에 맡겼다더니. 최신 정보는 캐내지 못한 모양이다.
“그럼 어디서 지내는데?”
“친구 집이요.”
“친구?”
“네. 고등학교 동창.”
김찬이에게는 아직 연락하지 못했다. 오늘 내로 돌아가지 못할 텐데.
“하지만 친구 집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잖니.”
“당분간은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가족끼리 있는 게 좋지. 큰일도 있었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장례식 때 갑자기 사라져서는….”
나는 느리게 숨을 내쉬고 입을 꾹 다물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위액까지 다 게워 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절박하게 붙잡고 있는 고모의 손이 창백했다. 이걸 매몰차게 떨쳐 내자니 내가 너무 나쁜 놈 아닌가 싶었다.
고모도 어쨌든 살아 보려고 저러시는 걸 텐데. 고모가 죄책감에 죽을 만큼 시달렸다는 걸 알고 있다. 5년 전 아빠가 고모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크게 도와주지 못했고, 우리 가족은 결국 마산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죽었다. 나를 거두는 것으로 마음의 빚을 갚으려나 보다.
하지만 전혀 달갑지 않았다. 고모의 필요에 의한 호의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나는 고모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 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각 좀 해 볼게요.”
“생각할 게 뭐가 있니. 그런데 왜 일어나? 가려고? 시간 늦었어. 자고 가야지.”
고모가 다시 나를 붙잡으려 했다.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네. 가는 건 내일 갈게요. 머리가 좀 아파서요. 잠깐 누워 있어도 돼요?”
“아. 응, 그래야지. 내가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구나. 이리 와. 기석이 침대에서 자면 돼.”
고모가 허둥지둥 일어나 나를 기석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고는 옷장을 마구 뒤져 갈아입을 옷도 내주었다.
“편히 쉬어. 그러고 보니 저녁 시간이 지났네. 밥부터 먹였어야 하는데. 고모가 참 정신이 없다. 미안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고기도 있고. 참, 대게도 사 놨거든.”
“죄송해요. 저 저녁 먹고 왔어요.”
오래된 공복에 속이 쓰렸지만 뭘 먹을 상태가 아니었다.
“어머. 그럼 어떡하지. 내일 아침에 먹어도 괜찮겠니?”
“네. 그럴게요.”
고모가 어색하게 웃으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촌 동생 방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진정하려 애쓰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인이 떠난 방은 반쯤 창고로 사용되고 있는 듯했다. 책장 높은 칸에는 먼지 쌓인 액자가 주르륵 놓여 있었다.
그중 가운데 사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웃고 있는 아빠와 고모였다. 내 마지막 기억 속의 모습보다 훨씬 젊었다. 이십 대 중후반 정도일까. 놀랍도록 나와 닮았다.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두세 번 속이 뒤집히는 감각이 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속으로 책상 위를 더듬었다. 손에 티슈 갑이 잡혔다. 티슈 몇 개를 뽑아 침으로 흥건해진 입가를 벅벅 문질러 닦았다.
나는 힘없이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죽고 싶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 집은 온통 과거로 뒤덮여 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버텨야 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나 대신 무너져 버린 삶에 대하여.
다급하게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손끝이 떨려 자꾸만 액정을 잘못 눌렀다. 영진에게 오십 만원을 이체하고 난 후에야 호흡이 진정되었다.
곧 영진의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제 안 보내도 된다니까」
5년 전 그날 이후 영진은 걷지 못했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들 하였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버스가 사거리를 무섭도록 질주했고, 봉고차는 버스를 피하려고 다급하게 핸들을 꺾어 인도를 침범했다. 영진의 부모는 바로 그 거리에서 기사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영진은 자주 식당 밖으로 나와 혼자서 놀곤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지냈을 뿐이다. 영진의 잘못이라곤 없었다.
봉고차는 영진을 치고 가로수에 앞머리를 박았다. 그러나 얼마 후 승합차가 봉고차를 옆에서 들이받았다. 봉고차는 그대로 뒤집혔다. 사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충돌이 다섯 번 정도 있었고,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 나는 울면서 봉고차 쪽으로 뛰어갔으나 가족의 얼굴을 보지는 못하였다. 쾅! 새어 나온 기름에 불이 붙었고 봉고차가 터졌다.
내 세계는 그날 전후로 바뀌었다. 수만 번 넘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건가 고민했다. 모든 고민의 결론은 나에게로 향했다. 내가 그때 봉고차에서 내리지만 않았어도.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어떻게든 차에 남아 있어야 했다. 엄마의 편을 들며 아빠를 경멸하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아니면 모른 척하며 싸우지 말라고 애원이라도 하든지. 그래도 봉고차가 사거리로 향할 운명이었다면 어떨까. 가족과 같이 죽었겠지. 하지만 나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구차하게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죽음은 행복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아빠가 미웠다. 그때 영진이 아니라 내 쪽으로 핸들을 꺾어 주지 그랬느냐고, 왜 이중의 죄책감을 떠안고서 살게 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영진의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영진이 다리를 다친 후로 더더욱 나빠졌다. 영진을 대신해서 삶을 얻어 놓고도 내가 영진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빠가 나에게 남긴 거라고는 거대한 빚뿐. 나는 상속을 포기했고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영진에게 매달 몇십만 원이라도 부쳐 주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매달 이체 내역에 찍히는 그 숫자만이 내가 세상에서 부여받은 유일한 가치였다.
상실은 변화를 불러왔다. 더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그런 거였다. 가끔 행복을 느끼려 할 때마다 곧 부채감으로 이어졌다. 행복은 이제 내 인생에서 설 자리를 잃었으니, 지금 이 감정은 필시 미래에서 빌려온 것이겠구나. 주제도 모르고 행복을 끌어안다 보면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두 배로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느니 처음부터 행복을 모르고 사는 게 낫다.
나는 새우처럼 몸을 말고 침대에 누웠다. 아까 위에서 신물이 올라온 탓에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그때 내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을 열어 보니 김찬이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나 집이야. 알바 하는 중이지?
액정에 코를 박고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밤에는 집에 못 들어간다고 말해야 하는데. 여태까지 불행 위에 누워 잘 살아오지 않았나. 그런데 어째서 김찬이의 연락을 받자마자 울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걸까.
고모네 가족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내 상처를 일부러 후벼 파려 한 적은 없다. 나를 위해 주는 것뿐이다. 애정 섞인 호의일 테다. 그런데 못 견디게 불편했다. 김찬이의 호의는 염치도 없이 몇 개월 동안 잘 받아 놓고 말이다.
그저, 나는 김찬이었기에 괜찮았을 뿐이다. 김찬이었다면 괜찮았다. 그는 나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내가 헛구역질할 때까지 과거를 되새김질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여기서 벗어나서 너에게로 돌아가면 참 좋을 텐데, 행복할 텐데. 분수에 맞지 않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
잠시 그대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고모부의 노크에 눈을 떴다. 이십 분밖에 자지 않았는데도 스무 시간은 누워서 악몽을 꾼 것처럼 몸이 뻐근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고모부가 말했다.
“고모한테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며?”
“아, 네.”
고모부는 한숨을 쉬며 내 옆으로 왔다.
“왜 그랬어? 여기 사는 게 불편할 것 같아?”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고모네와 그리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명절 때만 만나서 가끔 어색한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다. 같이 사는 건 상상만 해도 버거웠다.
“그래도 고모부는 현오가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어. 고모가 많이 힘들어해.”
“…왜요?”
“못 도와줬던 게 계속 마음에 걸리나 봐.”
“안 그러셔도 돼요.”
“사람 마음이 뭐 마음대로 되니.”
고모부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으나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동안은 기석이 때문에 같이 살기 그랬지만 이제 기석이도 집에 없잖아. 친가 쪽 사촌이라고는 우리뿐인데.”
“…….”
“고모부한테만 솔직하게 말해 봐. 그렇게 싫어?”
“아뇨. 싫다기보다는….”
나는 애매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나의 안 좋은 습관이었다. 자꾸만 회피하려 하는 것. 도망치는 것. 진심을 그대로 내보이기가 망설여져서 모호한 언어를 쓰는 것. 가끔은 아닌 척 거짓말도 하는 것.
“…바로 결정하기는 좀 그래서요.”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먹고 살 수도 없잖아.”
“저는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는 어쩌고. 결국 자퇴했지?”
“네.”
“부모님은 네가 이렇게 사는 거 원하지 않으셨을 거다. 우리가 도와줄게.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하지 않겠니. 공무원 시험 같은 걸 준비해도 좋겠고.”
목구멍이 갑자기 따가워졌다. 공부를 더 해서 뭐 어떻게 하라는 걸까.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면 내 인생이 갑자기 행복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고모부의 눈빛에는 동정, 안타까움, 죄책감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집에 머물게 되면 매일 견뎌야 하는 감정들이다. 나를 불쌍해하는 사람들과 한집에 살아야 하는 거다. 가능할 리 없다.
내가 고집스레 침묵만 지키자 고모부도 포기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모부가 등을 돌리고 방 밖으로 나가려 할 때가 되어서야 나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고모부.”
“응?”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
“제 소식 누구한테 들으신 거예요?”
“이름이 뭐였더라. 아, 정수.”
“누구요?”
“박정수.”
나는 눈을 찡그렸다. 박정수가 누구였지.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깊숙이 봉인해 두었던 고등학교 시절 기억을 한참 헤집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아, 그 자식이구나.
“고모부가 박정수를 어떻게 아세요?”
“나도 그 애랑 아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고모부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얼마 전 박정수는 학교 근처에서 나를 보았다고 한다. 김찬이를 만나러 갔을 때일까. 나를 향했는데도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시선이라니. 소름이 끼쳤다. 박정수는 자기 아빠에게 내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 아빠, 박정수네 아빠, 고모부는 서로 알던 사이였다. 아빠가 죽고 나서도 고모부와 박정수네 아빠는 간간이 연락했던 모양이다. 내 행적은 그렇게 고모부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정을 들으며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김찬이는 박정수를 만난 적 있을까. 둘이 같은 학교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고모부가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그 아저씨도 너 걱정되니까 나한테 말해 주신 거야.”
“…박정수도 알아요?”
“뭐를?”
“우리 가족 사고 난 거요.”
“알지. 그때 장례식에 왔었대.”
장례식.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첫날엔 간신히 상주 노릇을 했으나 둘째 날부터 도망쳤다. 도저히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어째서 너 혼자서만 살아남았느냐고, 구차하지 않으냐고,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발인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의 죽음을 애도할 자격조차 없는 듯하여. 나는 놀랍도록 무르고 비겁한 사람이었다.
“정수도 너 걱정하는 것 같더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걱정을 주고받을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걱정보다야 호기심이겠지. 주변에서 쉬이 보지 못하던 불행에 빠진 내가 흥미로웠던 건 아닐까. 내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내가 알던 박정수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만약에, 걔가 김찬이에게 말하면 어떡하지?
“고모부. 박정수 번호 아세요?”
“없는데 정수 아버지한테 물어볼게. 연락하고 싶어?”
“네.”
고모부는 내가 친구를 그리워한다고 착각했는지 뿌듯한 미소를 짓더니 곧 박정수의 연락처를 넘겨주었다.
“감사해요. 제가 나중에 정수한테 연락해 볼게요.”
“그래. 지금 잘 거니?”
“네. 그러려고요.”
고모부가 한껏 다정한 표정을 꾸며 내다가 방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자마자 나는 곧바로 박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연결음 끝에 박정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세요?
얘가 이런 목소리였나. 알던 사이였는데도 생판 모르는 남을 대하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 누구시냐니까요.
침을 한 번 삼키고 대답했다.
“나 김현오.”
- 김현오라고?
“어.”
- 뭐야. 진짜 김현오야?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물어볼 거 있어서 연락했어.”
- 뭔데.
“너 김찬이 알아?”
박정수는 당황한 듯했다.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초조해졌다. 네가 뭔데 내 행적을 전했느냐고 따지고 싶다가도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박정수가 김찬이와 다시 만났는지, 지금도 알고 지내는지. 그렇다면 박정수가 김찬이에게 내 과거에 대해 언제 떠들어 댈지 모르는 거였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김찬이도 알게 된다면 더는 그 집에서 살 수 없다. 김찬이 곁에서는 가끔 내 분수를 잊곤 했다. 불행이라곤 겪어 본 적 없는 사람처 오래간만에 편히 숨을 쉬었다. 김찬이의 눈에는 동정심이 없었다. 김찬이와 시선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라고는 거대한 애정뿐이었다.
김찬이마저 나를 불쌍히 여긴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 김찬이? 알지. 동창이었잖아.
“아니. 지금도 알고 지내는 거냐고. 같은 학교인가 보던데.”
- 아. 같은 수업 들어.
심장이 쿵 떨어진 듯했다.
“말하지 마.”
- 뭐?
급한 마음에 앞뒤가 다 잘린 말이 튀어 나갔다.
“김찬이한테 내 얘기 하지 말라고.”
나는 작은 방 안을 계속 빙빙 돌았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손바닥에서는 땀이 나 피부가 끈적거렸다. 김찬이 때문에 이리도 동요하는 내가 낯설다. 한 손으로 눈을 감싼 채 숨을 느리게 내쉬어 보았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왜 이러지. 김찬이가 알게 되면 그냥 떠나면 된다. 아무도 내 과거를 모르는 곳으로, 구차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잘해 오지 않았나. 그런데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김찬이를 잃는 게 무서웠다. 나답지 않은 감정이었다.
박정수는 더듬더듬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네 얘기? 무, 무슨 얘기?
“가족들 사고당한 거.”
- 어….
박정수가 잠시 뜸을 들였다.
- 그거 이미 말했는데….
“뭐?”
갑자기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침대 끄트머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언제 말한 거야.”
흥분하지 않으려 노력해 봐도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 좀 됐는데. 이 주 전인가.
나는 숨을 몰아쉬며 김찬이를 떠올렸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김찬이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가끔 우울해 보이긴 했지만 날 안쓰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냥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신경 쓰이는 정도였다. 설마 박정수한테서 내 과거 이야기를 이미 들었을 줄이야.
“왜… 네가 뭔데 걔한테 내 얘기를 하냐.”
- 아니, 나는….
“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당황한 탓에 목소리가 저절로 날카로워졌다.
- 야. 화낼 것까진 없잖아. 너랑 김찬이랑 친해 보이길래 당연히 걔도 아는 줄 알고… 어쩌다 보니 말이 나온 건데.
“어디까지 얘기했는데.”
- 길게는 얘기 안 했어.
“너 앞으로 김찬이한테 말 걸지 마.”
- 아니, 난 뭔 사고였는지도 몰라. 그리고 네가 그러지 않아도 김찬이한테 말 안 걸 거든. 걔가 내 얼굴만 보면 질색하는데.
“왜?”
- 왜긴 왜야. 너도 알잖아, 새끼야.
“무슨….”
- 아씨. 그때 네가 옥상에서 나 죽일 듯이 패 놓고서. 모른 척하는 거냐? 때린 새끼는 기억 못 한다더니.
“옥상?”
- 아, 몰라. 끊어. 사람 기분만 더럽게. 괜히 끼어들어서 미안하게 됐네.
박정수가 먼저 전화를 뚝 끊었다.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옥상이라니? 무슨 소리지? 고통스레 옛 기억을 하나하나 들춰 보았다.
2학년 첫날의 이미지가 아직 남아 있었다. 김찬이와 짝이 되었던 날. 하얗고 동그란 애였다. 날 힐끔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긴장이 가득해 보였다. 겁먹은 북극곰 같다고 생각했다. 김찬이가 옆에 앉았을 때 좋은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향수는 아니고… 매일 정갈하게 잘 씻고 관리하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체향 같은 것. 내 친구들에게서는 맡아 본 적 없는 상쾌한 향이었다. 첫인상이 좋았다.
애들은 김찬이를 놀려댔었지. 왜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김찬이가 살이 쪄서? 그때도 충분히 귀엽게 생겼었는데. 난 한 번도 김찬이가 불쾌한 적 없었다. 친하진 않았지만 좋은 애 같았다.
심연에서 추억을 하나씩 퍼 올릴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그다음 것들이 따라 올라왔다.
그때 나는 가끔 김찬이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김찬이는 매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거나 PMP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김찬이와는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친구들과는 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들.
그 순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봐 주겠지. 성실하게 내 말을 들어줄 것이다. 하얀 뺨은 붉어질 테고.
우리는 통하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김찬이는 늘 내 호기심을 자극하곤 했다.
친해졌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내가 비겁해서다. 그때 교실 분위기를 생각하면 김찬이가 나에게 먼저 다가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먼저 그에게 다가갔어야 했다. 내 친구들이 나를 놀려도 개의치 않고, 김찬이를 꿋꿋이 옆에 끼고 다녔다면 어땠을까. 그 후로 내내 김찬이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면.
내가 이 정도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찬이의 다정함이, 순수함이, 그 사고 후에도 나를 지탱해 주었을 테니까. 그냥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는 내가 자기혐오에 빠져 내 삶을 놓아 버리게 놔두지 않았을 거다.
내가 더 적극적으로 굴었어야 했다. 김찬이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바로 곁에 있었는데도. 그저 얄팍한 호기심에서 그치고 말았다.
그때의 김찬이는 잘 웃지 않았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법도 없었다. 나는 김찬이가 쳐놓은 막 뒤에 숨겨진 따스함을 미처 몰랐다. 그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걸.
묻혀 두었던 기억이 돌아오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김찬이 없이 흘러간 오 년의 시간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단편적인 여러 기억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마지막으로, 아주 천천히 어떤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지가 점차 선명해질수록 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완전히 감쌌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아….”
내가 어떻게 그걸 잊고 지냈을까.
초록색 옥상, 붉은 피, 검푸른 멍, 그리고 날 올려다보던 새하얀 얼굴. 열아홉의 김찬이. 그 시린 겨울이 기억났다. 난 아직 너한테 못 갚은 빚이 많은데, 라고 말하던 스물네 살의 김찬이가 그 위에 겹쳐진다. 비로소 내가 김찬이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김찬이가 왜 그렇게까지 나에게 헌신했는지도.
피부가 화끈거렸다. 김찬이가 내내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내가 대단한 일을 했던 걸까.
어쩌다가 내가 김찬이를 구하러 갔던 건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몹시 정신없고 바쁜 날이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중이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십오 분 내로 집으로 오라 했다. 지금 당장 이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마산으로 갈 거라고. 아빠는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으나 불같이 화만 냈다. 내 방에서 내가 아끼던 것은 단 하나도 챙기지 못한 채, 서울을 떠나야만 했다.
그 바쁜 와중에 잠깐 생겼던 틈. 그때 옥상에서 김찬이를 보았다. 그를 구해 주었다. 분명히 마산에 가서도 얼마 동안은 머릿속으로 그 일을 신경 썼다. 김찬이가 걱정되었다. 많이 다친 걸까. 그때 걔는 왜 옷을 벗고 있었을까. 박정수가 도대체 걔한테 무슨 짓을 한 걸까. 정확히는 몰라도 아마 추악한 짓이었겠지.
그러다 점차 잊어갔다. 누군가를 걱정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당장 내 앞에 그득하게 쌓여 있는 고통을 헤치고 살아가기 바빴다. 과거는 일부러 무시했다. 조금이라도 뒤를 돌아보았다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해 버릴 게 뻔했다.
하지만 묻어 버린 기억 중에 꽤 멋진 것도 있었다는 걸 지금에야 깨달았다. 내가 과거의 나를 죽일 동안 김찬이는 과거의 나를 꽉 붙들고 있었던 거다. 그것도 몹시 소중하게.
김찬이가 보고 싶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현오야.
“김찬이.”
갑자기 목이 멨다.
- 응. 왜 전화했어? 지금 가게 아니야?
“아니야.”
- 가게 안 나갔어?
김찬이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걱정스러운 톤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쉬었어. 그래서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가. 내일 갈 거야.”
- 그렇구나….
“기다리지 말고 자라고.”
- 응. 알겠어.
전화가 끝났다. 김찬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쉬움이 가득한 말투였는데도.
나는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손끝이 조금 떨리는 듯했다. 김찬이는 절대로 먼저 날 헤집는 법이 없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내내 그럴 것이다. 늘 선택권은 나에게만 있었다. 그게 얼마나 세심한 배려였는지, 새삼 깨닫는다.
김찬이는 다 알고서도 나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와 있을 때만은 내가 사고로 일가족을 잃은 불운한 놈이 아니라 꽤 괜찮은 놈이 되었다. 그래서 그 집을 떠나지 못했나 보다. 김찬이가 해 준 밥이 맛있어서도, 섹스가 황홀해서도 아니었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매달 영진에게 보내는 몇십만 원 속에서 간신히 내 가치를 찾아내지 않아도 되었다. 어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괜찮았다. 김찬이만 곁에 있다면. 김찬이가 내 손을 잡고 키스하고 웃어 준다면 내 삶도 제법 살아갈 만했던 거다.
김찬이를 절대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내가 붙들고 있기에는 김찬이가 너무 좋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과연 다짐대로 잘하고 있었던 걸까. 아직도 행복해질 자신은 없는데, 김찬이를 떠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자신은 더더욱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김찬이가 필요했다.
이런 감정을 사랑이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 하나. 나는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핸드폰 액정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방금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김찬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그늘이라고는 전혀 없는 순한 미소도 보고 싶었다. 새삼 김찬이가 대단해 보였다. 고등학교 때 그런 짓을 당했는데도 어떻게 다정함을 전혀 잃지 않았을까. 내가 겪은 고통은 나를 다 죽여 놓았는데. 나는 사람을 믿고 애정을 나누고 상냥하게 말하는 법을 죄다 까먹었다.
김찬이에 대한 감탄은 곧 박정수를 향한 분노로 이어졌다. 기억을 되찾고 보니 아까 박정수가 했던 모든 말이 혐오스러웠다.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박정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뭐야. 또 왜.
“야, 이 개자식아.”
분노로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 뭐?
박정수가 얼떨떨해하며 대답했다.
“너 내 눈에 띄면 뒤질 줄 알아.”
- 가, 갑자기 왜 이래.
“양심도 없는 새끼. 씨발. 그 순한 애를 그렇게….”
- 뭐야. 김찬이 말하는 거야? 걔가 순하다고?
반성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 때문에 더 열이 솟구쳤다.
“너 대학교에서도 김찬이 괴롭히냐?”
- 야. 요즘엔 김찬이가 날 괴롭혔으면 괴롭혔지, 무슨….
“다시는 김찬이 건들지 마라.”
- 건들고 싶어도 못 건든다니까. 도대체 뭐라는 거야.
“김찬이한테 또 손끝 하나라도 대면 나한테 죽는다고 생각해.”
- 씨바. 말이 안 통하네.
박정수가 뭐라 지껄였지만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김찬이는 박정수랑 만나고서 괜찮았을까. 김찬이의 안색이 좀 불편해 보였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였겠지. 갑자기 김찬이가 걱정돼서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
박정수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나한테는 저래 놓고서 김찬이를 괴롭히고 다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그 순한 애가 얼마나 상처를 받겠는가. 사람이 부탁하면 딱 잘라 거절하는 법 없이 웃기만 하는 앤데.
침대에 누웠으나 생각이 많아져서 잠이 오지 않았다. 김찬이에게 박정수 얘기를 해야 하나 망설여졌다. 아예 그 화제를 피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전처럼 또 괴롭힘 당하면 내가 도와줘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김찬이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가 몇 시간이 흘렀다. 눈은 여전히 말똥말똥했다. 새벽 세 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몸을 뒤척이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김찬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었다. 김찬이는 지금쯤 자고 있겠지.
1
김찬이
나도 모르게 김찬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답은 어차피 내일 아침에야 받겠지만, 그냥 김찬이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응
그러나 예상외로 바로 답이 날아왔다. 놀라서 핸드폰을 얼굴 쪽에 떨어뜨릴 뻔했다.
왜 안 자
그냥. 잠이 안 와서
여기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김찬이를 상상해 본다. 너도 혼자 있는 집이 어색할까. 한참을 뒤척였을까. 어둠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너도 내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랬다.
손가락이 어느새 통화 버튼을 눌렀다. 김찬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숨을 죽였다. 연결음 한 번 만에 김찬이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들려왔다.
- 현오야?
“…….”
- 현오야.
김찬이는 아주 다정하게 나를 불렀다. 다짜고짜 전화는 걸었으나, 무슨 말을 할지는 정해 둔 바가 없었다. 그냥 잘못 건 거라고 할까. 내 오래된 습관대로 나는 망설였다. 자꾸만 회피하려 하는 것. 도망치는 것. 진심을 그대로 내보이기가 망설여져서 모호한 언어를 쓰는 것. 가끔은 아닌 척 거짓말도 하는 것.
- 현오야. 왜 그래? 응?
그런데 어쩐지 오늘은 너에게 그러기가 싫다.
“너….”
- 응.
“너 왜 아무것도 안 묻냐.”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물꼬가 트이자 그다음은 쉬웠다.
“내가 어디 간 건지, 왜 간 건지, 언제 올 건지, 안 궁금해?”
우리 사이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참 후에 김찬이가 대답했다.
- 궁금해.
나는 얼굴을 침대 쪽으로 파묻었다. 네게 뭉개진 목소리가 들릴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가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시큰했다.
“내가 왜 갑자기 이런 꼴로 살고 있는지는? 그건 어떤데. 그것도 궁금해?”
- …….
“박정수한테 들었다면서.”
김찬이가 작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왜 모르는 척했어.”
- 현오가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리려고.
“…….”
-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갑자기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김찬이가 어떤 표정일지 궁금했다. 지금 내 표정은 남한테 보여 주기 힘들 만큼 추하겠지. 얼굴에 힘이 잔뜩 들어가 턱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이런다고 감정이 제어되는 것도 아닐 텐데.
오 년 만에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김찬이에게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저런 말을 해 줄 누군가를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내 불행을 호기심 섞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 제멋대로 헤집지 않는 사람, 동정하지 않는 사람, 없었던 일인 척 천천히 기다려 주는 사람.
가슴이 지끈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다. 도대체 언제부터 내 안에서 네 존재가 이 정도로 커진 건지. 시작점은 모를지라도 비로소 자각은 하였다. 몇 개월간 너에게 놀랍도록 익숙해졌고, 너 없이는 하루 만에 버거움을 느낀다.
어째서 김찬이는 이리도 쉽게 나를 편안하게 해 줄까. 내 안에 쌓여 있는 숱한 고통을 단숨에 무찔러 준다. 마치 마법처럼.
“김찬이.”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 응?
내 못된 습관을 억누르며, 지금 내 진심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당장 김찬이가 보고 싶다는 것.
“나 여기 서울이야. 고모네 집.”
- 그렇구나.
“근데….”
나는 이불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까보다 조금 크게 말했다.
“근데 잠이 안 와.”
- 불편해?
“어. 여기 싫어.”
눈물이 날 듯하여 숨을 참았더니 목소리 끝이 괴상하게 떨렸다. 김찬이도 내가 지금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는 늘 섬세하니까.
“여기 있기 싫어….”
- 현오야. 내가 지금 거기로 갈까?
김찬이가 제안한다. 내가 내심 바라던 선택지만 딱 집어서. 이 시간에 두 시간 거리를 오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빈말이 아니란 걸 안다. 김찬이는 나에게 거짓을 말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걸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넌지시 내 앞에 놓아 둔다. 쉽지 않은 일을 매번 쉽게도 한다.
그러니 그를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응. 와 줘.”
- 갈게.
기어코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
새벽 다섯 시쯤, 나는 몰래 고모네 현관을 나섰다. 바깥이 아직 캄캄했다. 바람은 제법 찼다. 카디건 앞을 바짝 여미면서 아파트 단지 내를 걸었다. 입구 쪽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빨리 뛰었다. 내 눈은 단정한 검은 머리를 열심히 찾고 있다. 그때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오야.”
김찬이가 날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초록 불이 되자마자 김찬이가 내게로 뛰어왔다. 그의 머리는 단정하지 않았다. 뒷머리에 까치집이 져 있었다. 김찬이가 머쓱한 얼굴로 뒤통수를 매만졌다.
“누워 있다가 바로 나오느라.”
나는 또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까지 김찬이를 불러 놓고서 막상 얼굴을 보자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찬이는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목을 몇 번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 얘기 좀 할래? 근처에서.”
“응. 나 아까 택시 타고 오다가 공원 있는 거 봤어.”
“그럼 거기로 가자.”
나는 김찬이의 뒤를 따라 말없이 걸었다.
해 뜨기 전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구석에 있는 벤치로 가 나란히 앉았다. 추웠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서 내 발끝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김찬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김찬이에게 해야 할 말이 무엇일지 속으로 생각해 본다. 어렵다. 갑자기 또 아무 일도 없던 척 도망치고 싶어진다.
김찬이가 말없이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놀랍도록 빠르게 긴장이 풀렸고 나는 입을 열 수 있었다.
“김찬이.”
“응.”
“내가 널 편하게 생각하나 봐.”
김찬이가 엄지로 내 손등을 문질렀다.
“그래 줘서 고마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조차도 나를 구원하지 못하였는데. 어째서 완벽한 타인인 네가, 내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네가, 그걸 해내고 있을까. 무수한 다짐도 결국 소용없었나.
“…내가 널 좋아하나?”
김찬이의 손아귀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그런 것 같아?”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평온했지만 몸은 긴장하고 있었다. 내 손등에 닿은 김찬이의 피부가 순식간에 축축해졌다.
“잘 모르겠어.”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그냥….”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네가 보고 싶길래.”
내가 새벽 내내 느꼈던 거대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담아 내기에는 부족한 말이었다. 이게 한계였다. 나는 아직 조심스럽다. 같이 있으면 편하니까 사랑에 빠진다는 게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 정말 사랑이 맞기는 할까. 애초에 내가 사랑을 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다 제쳐 두고서, 어쨌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게 김찬이가, 김찬이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미 행복의 문제를 넘어섰다. 고단한 삶을 지속할 힘이 김찬이의 눈동자 속에 있었다. 김찬이를 만나고부터 그 외의 선택지가 희미해졌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가 싫었다. 사랑은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자꾸 주제넘게 욕심이 난다.
김찬이와 있으면 내 주변에 무형의 보호막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 무엇도 나를 괴롭히거나 상처 주지 못한다. 나는 아주 간만에 평범한 사람들처럼 숨을 쉬었다.
“현오야.”
김찬이가 비어 있던 손으로 내 왼쪽 뺨을 감쌌다. 살짝 힘을 주어서 내 턱을 자기 쪽으로 향하게 했다. 김찬이와 눈이 마주쳤다. 김찬이의 눈가가 붉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자길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더니. 지금 김찬이는 매우 필사적이었다. 내 뺨을 더듬는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해 놓고서도, 너도 점점 사랑에 욕심이 났던 걸까. 나처럼.
“김찬이. 내가 널 좋아하면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김찬이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달라질 거 없어. 지금처럼 같이 지내겠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무언가가 변화하는 거라고 김찬이에게 말했었나. 그런 적 없는 것 같다. 실제로는 많은 게 달라지겠지. 그럼에도 김찬이는 내가 안심할 만한 답을 내놓았다. 신기하다. 내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받을 거란 기대는 허상임을 알면서도 김찬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김찬이에게라면 제일 무른 속살을 드러내도 괜찮을지 모른다. 나는 우리 사이에 금지되었던 주제를 입에 올려보았다.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응.”
“나 어땠냐.”
“말해도 돼?”
김찬이가 조심스레 다시 확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 대해 기억나는 거 말해 줘.”
김찬이가 나와 두 손을 맞잡았다. 이른 아침 공원에 조깅하러 나온 사람이 한두 명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신경 쓰이거나 김찬이에게서 손을 빼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신경은 온통 김찬이의 입술 쪽에 쏠려 있었다. 김찬이가 무슨 말을 할지가 중요했다.
“현오는… 나랑 출석 번호가 붙어 있었지.”
“그랬나?”
“응. 그랬어. 덕분에 학기 시작하고 짝이 됐잖아.”
“아, 기억난다.”
“그리고 교과서를 자주 두고 다녔어.”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서.”
“내 교과서로 둘이 같이 봤지.”
“불편했겠네.”
김찬이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니. 좋았지.”
“…….”
“너랑 붙어 있을 수 있어서 좋았어.”
김찬이의 목소리는 나긋했다. 얽힌 손가락 사이가 뜨겁다. 내 이야기인데도 남이 말하니 영 낯설었다. 마치 오래된 동화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현오는 책을 많이 읽었지.”
“너 알고 있었어? 그래서 저번에 책 사 왔냐.”
“응. 한 권 읽었더라.”
“그냥, 뭐, 밤에 잠이 안 와서….”
“잘했어. 참, 현오는 글도 썼는데.”
“내가?”
“응. 네가 나한테 말해 줬잖아.”
나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안개가 낀 기억을 이리저리 헤집어 본다. 글을 썼었나.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했던 적이 있던 것도 같다. 내가 놓았던 과거를 김찬이는 쥐고 있었다. 신기하고 부끄러웠다.
“난 까먹고 있었어.”
“그럴 수도 있지.”
“또 기억나는 건?”
우리 앞에 강아지를 데려온 남자 하나가 요란스레 지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잠시 고요가 찾아왔을 때야 김찬이가 입을 열었다. 비밀 얘기를 알려 주듯, 속삭이며.
“나 죽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현오 때문에 살았어.”
“…….”
“기억 안 나지?”
나는 손끝을 꿈지럭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김찬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날 향하고 있었다. 분명히 힘든 기억일 텐데도 김찬이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기억날지도 몰라.”
내가 망설이다가 대답한 후에야 김찬이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정말?”
“응.”
“아….”
김찬이가 숨을 크게 내쉬더니 이마를 내 어깨에 툭 기댔다. 나는 밀쳐 내지 않았다. 하늘은 점점 밝아지고 있다.
“김찬이. 너 그때 죽으려고 했어?”
“응.”
어깨에 김찬이의 축축한 숨이 느껴진다.
“다 끝나면 옥상에서 뛰어내리자 싶었어.”
“왜….”
“그냥. 그런 기분이었어.”
김찬이가 고개를 들어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현오가 갑자기 짠 나타났어. 그러더니 날 구해 줬지. 무슨 영웅처럼.”
“그, 별건 아니었는데. 그냥 나는 별생각 없이….”
“아니. 아무 이유 없이 구하러 와 줘서 더 고마웠어. 그때 네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
“뭔데?”
“어쨌든 살아야지.”
“…….”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지금처럼 살 수 있었을까?”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빳빳하게 목에 힘주고 있기가 버겁다. 그러나 김찬이의 눈동자를 좀 더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꾸역꾸역 고개를 들고 있었다. 거짓이라고는 모를 듯한 순수한 눈. 내가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일 리 없을 텐데.
나로 인해 삶을 잃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얻은 사람도 있다는 걸, 내 존재가치가 김찬이임을,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널 좋아하게 된 거야.”
세상에 이것보다 무겁고 진실한 고백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듣고 있는 내가 저절로 숨이 막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있다. 나는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현오야.”
머리 위에서 김찬이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만도 버거웠다.
오 년간 쌓아 왔던 모든 걸 뒤로하고 너를 잡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어쩌면 나도 그럴 자격이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아니라 특별한 관계가 되면 어떨까.
너를 붙잡을 수 있겠지. 살아 숨 쉬는 내 존재가치를 영영 내 곁에 둘 수 있겠지.
김찬이를 사랑하고 싶었다.
“왜 그래, 현오야.”
김찬이가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두드렸다. 나는 답하지 못했다, 김찬이의 애타는 시선이 느껴졌다. 김찬이가 결국 내 뺨을 움켜쥐어 자기를 바라보게 했다. 김찬이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었다.
“현오야. 왜 울려고 그래?”
“…내가?”
“응.”
나는 멍하니 김찬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입을 움직였다.
“몰라, 모르겠어.”
“현오야.”
“…나 무섭나 봐.”
“왜? 뭐가?”
“곧 널 좋아하게 될 것 같아.”
아니, 이미 그럴지도 모른다.
기어코 말해 버렸다. 우리 사이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김찬이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눈동자는 어느새 눈물로 일렁이고 있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고백 아닌 고백에도 김찬이는 운다. 그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가슴팍이 뻐근해졌다.
이런 감정이, 사랑이 아닐 수 있을까.
“무서워도 해 보면 안 될까?”
김찬이가 애원했다.
“현오야….”
“…….”
“너 없으면 못 살 것처럼 부르는 거 싫다 그랬지. 미안. 그런데 나 한 번만 더 구해 주면 안 돼?”
김찬이는 헐떡이면서도 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랑하고 싶어. 안 그러면 살기 힘들 것 같아. 욕심 부리기 싫었는데 이렇게 돼 버렸어. 미안해.”
기어코 김찬이의 뺨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사실 구원자는 내가 아니라 김찬이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지. 하지만 말이란 참 교묘하다. 김찬이가 저렇게 말하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내가 마치 대단한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김찬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그와 사랑을 해야만 하는.
내 부담을 덜어 주려고 김찬이가 부리는 마법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 그에 속아 넘어가고 싶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기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삶의 두 번째 분기점에 서 있음을 느꼈다. 오 년 전 봉고차에서 도망쳤을 때가 첫 번째였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나는 잔뜩 잠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까.”
“…응?”
“무서워도….”
너무 긴장한 탓에 목이 멨다.
“무서워도 해 볼래.”
김찬이의 얼굴은 곧 터질 것처럼 새빨갰다. 나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진심만을 담아 말했다.
“…우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김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뺨을 손으로 감싸고 문질렀다. 나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 피부가 축축하다.
***
고모네 집을 나서자마자 몸에 힘이 풀렸다.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는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옆에 달린 거울을 바라보며 심호흡했다. 괜찮다. 잘해 냈다. 나쁜 습관을 이겨 냈다. 회피하지 않고 제대로 말했다.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고모에게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돌아왔다. 고모가 과하게 차려 준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서 못 산다고. 나는 지금에 만족한다고. 어쩌면, 행복하다고. 고모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나는 눈가를 손등으로 비볐다.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급작스레 피곤이 몰려왔다.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했다. 거의 뛰다시피 아파트 정문으로 향했다. 김찬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흰 얼굴을 발견한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김찬이가 내 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환하게 웃으며.
우리는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어제와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할 날이 올까.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게 변할지라도, 심지어 무너질지라도, 날 사랑하는 너만 변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다.
어쨌든 살아갈 것이다. 어떻게든 사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