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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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비 촬영을 끝내니 내 몰골은 비 맞은 걸레짝을 헹군 세숫대야처럼 더러워졌다. 뮤비 배경이 모래가 흩날리는 사막 컨셉이라 흩뿌려지는 모래 속에서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을 찍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메인보컬에 소울러인 내 분량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 나만 다른 멤버들보다 2배는 더 모래를 흡입했다.

 뒷풀이가 고기집이었는데 목이 까끌거려 맛이 안 느껴졌다. 슬그머니 일어났다.

 “어디 가.”

 제이새끼는 나만 보고 있었나.. 제이의 물음에 또 나한테 시선 집중이 됐다.

 “뭐야. 너 또 어디 가?”

 “이라야, 밥 좀 먹어라. 또 어디 가는데?”

 “잠만 화장실 다녀올게.”

 “빨리 갔다 와라. 고기 식는다.”

 “내 고기 딱 남겨 놔.”

 장난스레 말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는 다행히 나밖에 없었다. 한 칸에 들어가 변기를 붙잡고 앉았다.

 “켁.. 컥.”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모래를 토해냈다. 괴로워서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어느 정도 토한 뒤 물을 내리고 나왔다. 세수 한번 해야겠다. 한숨을 쉬는데 앞에 사람이 있었다.

 세면대 앞에서 날 보고 있는데 워, 깜놀. 조각인 줄 알았다. 잘 생겼네. 조금 차가운 인상이긴 해도.

 “.......”

 입가에 침을 스윽 닦으며 세면대로 가자 남자가 자리를 비켜줬다. 남은 자리에서 어푸어푸 찬물 세수를 하고 휴지로 대충 닦았다.

 으, 추워.

 부르르 어깨를 떨며 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남자는 나를 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 있어 보이는 얼굴인데 알아본 건가? 이럴 때는 엔돌핀이 탑아이돌인 걸 실감한다.

 “아, 존나 배불러.”

 “그러게 많이 쳐먹는다 했다. 동물이냐?”

 “이라는 촬영 때는 굶으면서 뒷풀이 땐 많이 먹더라.”

 “너 그런 습관 속 버려, 인마.”

 난 걍 배부르다고 한 마디만 했을 뿐인데 잔소리가 쏟아졌다. 유일하게 말이 없는 막내 옆에 붙어갔다.

 “형, 속 안 좋으면 소화제 드릴까요?”

 “괜찮아. 가서 똥 한번 싸면 돼.”

 “.......”

 야단이 표정이 애매해졌다. 푸흐흐, 웃자 한새가 와서 머리를 헝클고 어깨동무를 했다.

 “아, 무거워. 새끼야.”

 “야, 여기 보는 눈 많다. 말조심해라.”

 “너 살쪘냐? 씨, 누르지 마. 키 안 커.”

 “안 눌러도 키 안 커. 아직도 포기 못했냐?”

 “스물다섯까지는 큰댔거든? 얼른 비켜라.”

 엔돌핀에서 나만 키가 너무 작다. 어떻게 3cm 정도만 더 커서 170대 중반은 갔으면 좋겠다.

 한새는 포기하라며 내 어깨를 더 눌렀다. 숙소 근처라서 지켜보는 팬들이 많아서 참지만, 숙소 가면 이 새끼 정강이를 차버려야지.

 어쩔 수 없이 눌림 당하는데 제이가 놔주라고 묵직하게 한 마디 했다.

 “애 쪼그라들잖아. 놔줘.”

 내가 뭐 간이냐? 쪼그라들게.

 시비 걸고 싶지만 어쨌든 한새 놈은 옙 하고 바로 놔줬다. 바톤 터치 하듯이 제이가 다가왔다.

 “키 크고 싶으면 하루 세끼 고루 고루 좀 챙겨먹어. 하루 1끼만 배부르게 먹는 습관은 위에도 안 좋아.”

 “먹으면 키 클 것처럼 말한다? 이라 희망고문 시키지 마, 크크크. 암튼 폭식은 고쳐야겠지만 말이다”

 “너네 그놈의 밥 잔소리 좀 그만해라. 내가 알아서 먹겠다구요.”

 “잔소리 안 하게 생겼냐? 오늘도 졸졸 굶다가 고기만 2인분 먹으면 뭐해. 그러다 큰 일 치른다.”

 “악담을 해라, 씨. 그리고 너도 편식하잖아. 치즈도 안 먹고, 튀김도 안 먹고.”

 “난 편식이 아니라 식단관리인 거고.”

 “지가 안 먹는 건 식단 관리래. 그걸 바로 내로남불이라 하는 거야.”

 “말이라고 하냐. 난 몸에 안 좋은 음식들을 안 먹는 거지. 경우가 다르지.”

 투닥거리면서 걷다 보니 숙소에 도착했다.

 용준이 형은 내일 아침 5시 기상이라고 알려주고 나갔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한새랑 막내 야단이 같은 방을 쓰고 있다. 문 형, 제이, 나는 각자 독방이라서 알람을 따로 맞춰 놨다.

 “이라야, 조공 온 거 냉장고에 넣어놨어. 너 거 못 먹은 거.”

 “아, 땡큐. 형.”

 문 형이 쓸데없는 짓을 해줬다.

 씻고 한숨 자다가 새벽 2시경에 몰래 일어났다. 살금살금 캄캄한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돌아갔다.

 냉장고에 떡하니 놓여 있는 서포트도시락 이라는 이름의 음식물 쓰레기를 꺼냈다.

 삐리릭.

 현관문을 열고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도시락 내용물을 통째로 버렸다. 도시락 통도 바로 옆에 분리수거했다.

 “으, 추워.”

 팔짱을 끼고 얼른 올라갔다. 현관문 비번을 누르고 여는데 거실 불이 켜져 있다.

 “어디 갔다 와.”

 “아, 시발. 깜짝 놀랐네. 너 안 자?”

 제이가 내 방 앞에 서 있었다. 문까지 열고서.

 “어디 갔다 오냐고.”

 이런 말 하긴 싫지만 워낙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썹도 짙고 체격도 커다래서 저렇게 분위기 잡고 가만히 날 내려다보면 가끔씩 쫄리기도 한다.

 “걍 바람 좀 쐬고 왔어. 아까 고기 먹은 거 소화 안 돼서.”

 “이 시간에?”

 “응, 너는 왜 깼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

 “그게 들렸냐? 이 새끼 잠귀도 밝네. 깨워서 미안하다. 얼른 들어가 자.”

 “네 도시락이 없어졌더라고.”

 와, 소름이다. 냉장고는 왜 열어봤지.

 “배고팠냐? 먹으려고 열어봤어? 있으면 먹으려고?”

 “먹었어?”

 “응, 내가 먹었지. 맛있던데.”

 “도시락 통은?”

 “바람 쐴 김에 나가서 바로 분리수거 하고 왔지. 야, 너는 뭘 네 거 먹었으면서 남의 걸 탐내고 그러냐? 몸 관리도 하는 녀석이 이 새벽에. 내가 먹어서 다행인 줄 알아.”

 “.......”

 “아, 졸리다. 너도 얼른 들어가 자. 새벽에 뭐 먹지 말고.”

 녀석의 대답을 듣지 않고 얼른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녀석이 방에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휴.. ”

 내 도시락 투기 완전범죄 경력에 금이 가는 줄 알았다. 멤버들은 한번 자러 가면 다시 나오는 일이 드문데, 제이는 왜 갑자기 깬 걸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안도하며 얼른 간단히 씻고 안전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서 도시락 안 먹고 버린 걸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괜히 서러워졌다.

 내가 왜 눈치 보면서 변명해야 돼?

 왜 몰래 야밤에 버리고 와야 돼?

 왜 내가 불안해하고 초조해 해야 해?

 말하고 싶다.

 멤버들한테.

 너무 말하고 싶다.

 살해협박을 받은 적이 있어. 살해 시도도 있었어. 어떤 팬이 내게 준 수제 바닐라 쿠키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어. 그 후로 팬들이 주는 건 못 먹게 됐어.

 얘기하고 싶은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난 가슴을 누르며 꾹 참았다.

 그게 나의 할 일이었다.

***

 오늘 오후에는 팬사인회가 두 차례나 있다.

 덕분에 멤버들은 아침부터 신이 났다. 한새는 샵 누나한테 아이라인 세게 그려 달라 조르고, 문 형은 계속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조용한 야단이도 발그레 홍조가 일었는데, 제이만 평소처럼 시니컬하게 폰만 만지고 있다.

 “이라, 메컵 끝났어. 가서 머리 기대지 말고 앉아 있어.”

 “네.. 앗.”

 “으악!”

 무릎에 물컵을 둔 걸 깜빡하고 일어나다가 물을 쏟아버렸다.

 “아, 죄송해요. 누나. 괜찮아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 긴장해서 아까부터 실수 연발이다. 오늘만 벌써 물을 세 번이나 쏟았다. 누나는 괜찮으니 가서 얌전히 앉아 있으라며 날 보냈다.

 소파 구석에 앉아서 어쩔 수 없는 초조함에 손톱을 질근질근 깨물 때 저쪽에서 폰 만지고 있던 제이가 다가왔다.

 “손톱 뜯지 마. 맨날 깨물어 대서 더 뜯을 것도 없는 게.”

 “아, 습관이라.”

 “넌 꼭 팬사인회 때 긴장하더라.”

 “나 말고도 다 그러잖아. 너도 긴장했지?”

 “전혀.”

 제이는 진심 멘탈짱짱맨이다. 무대에서도, 대회에서도 긴장하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

 “긴장 안 하는 법 좀 알려줘라. 뭘 먹고 자라면 너처럼 되냐?”

“ 긴장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 적당한 긴장감은 있어줘야 해. 다만 너는 긴장이라기보다는..”

 제이가 말끝을 흐리더니 내 손톱을 보고 인상을 썼다.

 “겁먹은 것 같아.”

 “.......”

 나름 숨기려고 하긴 하는데.. 티가 나겠지. 당연히. 일단은 손톱 물어뜯는 버릇부터 고쳐야겠다.

 “뭔 겁이야. 내가 겁을 왜 먹냐? 팬들 앞에 서는 건데.”

 피식 웃으며 대꾸했지만 제이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물끄러미, 라는 표현은 사실 적절하지 않다. 제이 눈빛은 항상 강렬해서 팬들도 압살당할 것 같다고 얘기하니까. 나도 내가 숨기고 있는 것들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느낌에 괜히 막 찔리고 그런다. 최대한 아무런 켕기는 게 없는 듯이 노려봤다.

 “뭐. 눈싸움 하자고? 말을 해, 새끼야.”

 “..지금은 아니지.”

 “뭐?”

 “조만간 진짜 눈싸움 해. 이번 앨범 활동 끝나면 이유를 들을 테니까. 나중에 얘기해.”

 “무슨 이유? 지금 해.”

 “왜 팬들을 무서워하는지.”

 난 픽 코웃음을 쳤다.

 “야, 솔직히 말해서 어느 정도 무서워할 수 있는 거지. 그럼 팬들을 마냥 편하게 생각할 순 없잖아. 돌아서면 가장 무서운 게 그 사람들인데. 게다가 나는 교체 돼서 왔는데 겁이 안 나겠냐, 솔직히? 아직 나 못 받아들이는 팬들도 많을 거고. 아직까지는 겁이 나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지금까지 말 안 했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해서. 그런데 더 심해지더군.”

 제이는 내 코웃음에도 아랑곳 않고 진지했다.

 “너 멤버로 들어오고 몸무게 얼마나 빠졌어.”

 “..다이어트 해서 열심히 뺐는데 왜 뭐.”

 “그딴 거짓말 듣기 싫어서 나중에 얘기 하자는 거였다.”

 난 한껏 입술을 내밀고 시선을 피했다. 왜 제새끼랑 내 몸무게가 빠진 이유에 대해서 얘기해야 하는 거지? 이유를 1도 모르겠고 그냥 지금 상황이 불편하다.

 솔직히 지도 알잖아. 팬들이 나 대하는 거 보면 딱 각이 나오잖아. 다 알잖아. 알면서 나보고 어쩌라고. 무슨 말을 기대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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