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9/50)

00009 2 =========================

 컴백 첫 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2주차 첫날 보이는 라디오 녹화를 마치고, 오후 두 번째 스케줄은 라이브 앱이었다. 모바일 앱을 통한 30분짜리 라이브 영상인데 전세계에 방송되기 때문에 음악방송보다 더 긴장된다.

 오늘의 테마는 컴백 홍보다. 뮤비 비하인드나 자켓 촬영 에피소드, 새앨범 소개와 컴백 소감. 데뷔 8개월밖에 안 된 나도 벌써 세 번째 컴백이고, 항상 같은 홍보를 해왔는데 왜 거듭할수록 더 떨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회사 건물 1층의 카페에 오손도손 앉아서 라이브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문, 한새, 제이, 나, 야단이의 순서였다.

 테이블 위에 카페에서 판매하는 브런치 메뉴들이 올라왔다. 생딸기가 올려진 팬케이크에 블루베리크림이 발라진 베이글, 치즈퐁듀와 각종 빵들도 있었다. 겁나 탐스러워 보이는데.. 이건 누구 거, 하고 이름이 붙여진 것도 아니니 안심하고 먹어도 될 것 같다.

 “생방 1분 전이다. 자연스럽게 먹고 있어도 돼.”

 오예. 내가 자꾸 빵을 흘깃 하는 걸 알아 챈 건지 제이가 말해줬다. 바로 포크를 들고 팬케이크를 쿡 찔렀다.

 “이라, 배고팠냐? 어쩐지 아침 조공 도시락 안 먹더니, 쯧쯧.”

 “혀 차지 마, 새끼야. 아까는 배가 안 고팠거든?”

 “진짜 맛있었는데. 스물스타에서 해주는 도시락이 제일 맛있지 않냐? 다른 데는 조금 싱겁더라. 업체 바꿨으면. 크크.”

 “싱거운 게 건강식이라는 거지. 팬이 해주시는 건데 비교하지 말고.”

 “아씨.. 형은 너무 매사 진지해. 걍 농담이여, 농담.”

 “팬분들 가지고 농담하지 마.”

 “..녜녜.. 뭐 고전시대 선비신가..”

 한새가 문 형한테 쿠사리를 먹고 구시렁댔다. 당연히 문 형한테 한대 쥐어 박혔다. 푸흐흐. 난 둘의 콩트를 재미있게 관람하며 팬케이크를 오물오물 씹었다.

 “맛있냐?”

 제이가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응, 상큼하고 달달하고 맛있는데 다 먹고 나면 된장찌개 생각날 거 같아. 너도 먹어.”

 “난 배불러. 너나 많이 먹어라.”

 제이는 내 볼을 톡 건들고는 다른 빵 접시까지 내 앞으로 가져와줬다. 사양하진 않았다. 제새끼가 배부르다니 대신 막내한테 빵 하나를 포크로 찍어서 내밀었다.

 “야단아, 먹어. 맛있어.”

 “...감사해요, 형.”

 성장기 야단이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 방송 시작했나?”

 태블릿PC를 보고 있던 한새의 말에 우리 넷의 시선도 일제히 그쪽을 향했다.

 “오오, 시작됐나보다! 댓글 올라와.”

 “벌써 천오백 명 들어왔어, 으익, 순식간에 팔천, 앗 만 명 넘었어. 아하하.”

 “자자, 우리 인사부터 하자.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엔돌핀입니다!”

 팬케이크가 입안에 가득한 바람에 난 따라하지 못했다. 또 시작부터 욕먹을 거리를 만들어줬구나 싶어 한숨만 나왔다.

 이번 앨범은 타이틀곡 포함 총 6곡이라서 각자 1곡씩 소개하고 문형이 타이틀곡까지 소개하기로 했다. 나도 “리드미컬한 그.. 사운드에 브라스 그.. 연주로 이별한 남자의 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곡..”이라고 힘들게 외운 것을 소개했다. 멤버들은 대단하다며 박수를 치며 놀려댔다. 믿었던 야단이까지 그랬다.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자, 그럼 댓글을 읽어볼까요? 사실 댓글이 너무 빨리 올라와서 읽기가 어려운데, 문아 사랑해. 이라 귀여워. 제이 잘생겼어.. 너무 빨라요. 여러분 좀만 천천히 올려주세요.”

 문 형이 카메라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아마 전보다 저 빨리 올라올 것이다.

 “외국 분들도 많이 오셨네요. 아, 지금 새벽 3시인데 오빠들 보려고 깨있었어요. 하는 분도 계신데 얼른 자, 키 안 커.”

 “푸하하, 형 방금 큰오빠 같았어.”

 “형 여동생 있잖아. 미란이. 지금 고급인가?”

 딱 한번 본 적 있다. 교복 입고 숙소에 찾아와서 엄마 심부름이라고 반찬들을 주고 갔는데, 수줍음 많고 귀여웠다. 그 발그레한 볼이 생각나서 말하자 한새가 웃었다.

 “이라 너 막 실명 거론하는 거냐. 크크.”

 “헉, 잠만. 아니, 실명 원래 공개했었잖아?! 저번에 방송이랑 라디오에서도 말한 적 있지 않아???”

 “괜찮아. 걔 자기 언급하는 거 좋아해. 미란아 보고 있지? 제이야, 인사 좀 해줘라. 미란이가 네 팬이다.”

 “미란이, 안녕. 늦었으니까 끄고 자. 키 안 커.”

 제이의 무심시크한 인사에 빵터졌다.

 “그러고 보니 제이도 여동생 있었어. 푸하하하. 역시 오빠들은 다 재우려고 하네.”

 “이라 너도 남동생 있지.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동생한테 한 마디 하시죠.”

 “절대 안 볼 걸? 하하. 자고 있지도 않겠지만.”

 “다시보기로 볼 수도 있잖아. 한 마디 해봐.”

 “절대 안 본다니까. 야단아, 너네 형들도 보고 계실 수도 있겠다. 영상편지 고고!”

 내 얘기가 계속되면 팬들이 싫어할 거라서 야단이한테 토스했다. 감히 제 말을 거역한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제이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지만 모른 척했다.

 야단이는 말수가 적기 때문에 말 시킬 때가 아니면 입을 잘 안 연다. 그래서 난 주로 야단이한테 말을 많이 건다.

 형만 둘인 야단이는 무뚝뚝하게 영상편지를 남겼다. 부끄러우니까 보지 말고 얼른 잠이나 자라고. 멤버들과 팬들이 전부 다 빵터졌다. 야단이 형들은 명랑한 성격이신데 막내 혼자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성격이 달라서 재미있다.

 다음은 뮤비 촬영 토크가 이어졌다.

 평범하게 각자의 촬영기를 얘기하는데 제이가 내 얘기를 꺼냈다.

 “이라가 고생을 많이 했지. 모래바람 속에서 촬영해서 모래랑 흙이 다 목에 들어갔잖아.”

 “아, 아니 고생은 다 같이 했지.”

 “아, 맞아. 팬분들도 뮤비 내일 공개되면 보시겠지만 이라 단독 컷에서 모래바람이 부는데 그게 CG가 아니라 진짜였어요.”

 “그때 이라 속 안 좋아서 도시락도 못 먹었지 않나?”

 “우리 메보님 목 국보처럼 아껴야 되는데.. 아, 팬분들 지금 다 우시네요. 이라, 지금은 괜찮아요. 그렇지?”

 댓글창이 울음바다가 된 걸 보고 문이 형이 재빨리 수습했다.

 저 ‘ㅠㅠㅠㅠㅠ’ 중에 진심도 있을까. 아니면 전부 내 목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난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이 인간들이 오버한 거예요. 저 완전 멀쩡합니닷. 걱정 노노하구요. 그보다 사실 촬영날은 다들 고생 했죠~~ 제이도 몇 번씩 같은 검무 추느라 계속 움직였고, 야단이는 아예 모래찜질 장면이 있었잖아요. 야단아, 그때 고생 많았엉.”

 “...아니에요, 형.”

 그러자 댓글창은 다시 눈물바다였다. 문이 형과 한새도 야단이 그때 고생 많았다며 우쮸쮸 해줬다. 그러다 결론은 결국 스태프들도 다같이 고생했으니 뮤비 많이 봐달라로 끝났다. 노련한 문이 형!!

 둘째 매니저 형이 자켓 촬영 에피소드를 진행해달라고 사인을 보냈다. 한새가 재빠르게 먼저 입을 열었다. 촬영 시작하자마자 조명이 넘어져 큰 사고가 날 뻔했다는 얘기였다. 앨범이 잘 되려는 징조인가보다, 로 끝나려는 것 같길래 나도 얼른 거들었다. 그때 제새끼가 얼마나 멋있었는데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순 없다.

 “조명이 넘어졌을 때 제이가 멋있게 날아와서 오러로 잔해를 튕겨내 줬어요. 캬, 역시 모셔너!”

 “에이, 그건 아니죠. 멋있게 날아온 게 아니라 그냥 멀리서 오러만 보냈잖아.”

 “그것도 멋있죠. 응? 얼마나 순발력이 좋아. 완전 슈퍼맨 같았다니까? 히어로 같았어요. 갑자기 슝 하고.”

 “와, 이라 토크 만들려고 오버하는 거 봐라. 크크크.”

 한새 말에 난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자켓 촬영 때는 재미있는 일이 1도 없었기 msg를 첨가할 수밖에 없다구요~~ 안 그래요?”

 “그래. 별다른 일은 없긴 했지.”

 내가 슝 하고 손짓할 때부터 입꼬리가 풀어진 제이가 근사하게 미소 지으며 내 머리를 쓸었다. 아마 무의식인 것 같다. 나도 헤실헤실 풀어져 버릴까봐 얼른 얼굴 근육 단속을 했다.

 “그때도 팬분들이 도시락 보내주셨잖아. 제이랑 이라 타잉만 왕국 팬분들.”

 “맞다. 타잉만 음식들로 보내주셨지. 진짜 맛있었어!”

 “정작 이라 형은 속 안 좋아서 못 먹었죠.”

 이제 난 다른 의미로 얼굴 근육 단속을 해야 했다. 말 없는 야단이가 좀처럼 한 마디 했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빨리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겠는데 화제 전환할만한 게 뭐 있는지 모르겠다.

 “어, 진짜 그러네. 그때 이라가 좋아하는 등갈비였는데 그것도 못 먹었었구나.”

 “이 자식이 은근히 약하다니까. 틈만 나면 속 안 좋고, 속이 안 좋아서 맛있는 거 못 먹고 그럼 끼니를 걸러서 또 속이 안 좋아지고. 뭔 악순환이야.”

 혀를 끌끌 차는 한새를 문 형이 카메라에는 안 보이게 등 뒤를 툭 쳤다.

 “지금 팬분들이 ‘그럼 이라 오빠 뮤비 촬영 때랑 재킷 촬영 때 둘다 도시락 못 먹은 거예요ㅠㅠ?’ 하시는데, 걱정 마세요. 도시락 따로 챙겨줬으니까 나중에 먹었을 거예요. 맞지? 너 안 먹으면 내가 훔쳐 먹으려했는데 다음날 보니까 없더라.”

 “하, 하하. 내 거 건들 생각하지 마세요. 문 형이라도 안 돼. 다 내 거야.”

 “어련하겠어. 자,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구요. 막내는 자켓 촬영 때 기억나는 거 없어?”

 팬들 걱정시키는 걸 싫어하는 문 형 덕분에 야단이한테 토크가 넘어갔다. 난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편으로는 걱정됐다. 내 도시락을 노리는 게 제이뿐만이 아니었구나. 믿었던 문이 형까지.. 내 건 나만 먹겠다는 선언은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미니 냉장고를 하나 사서 내 방에 둘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