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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가 이어졌다. 오전에 샌드 싱잉 스테이지를 하나 마치고 라디오 생방도 했다. 오후에는 예능 녹화가 잡혀 있었다.
<마치런>은 6명의 MC 분들과 술래잡기와 각종 게임 대결을 하는 방송인데, 다행히 야외가 아니라 박물관 건물에서 진행됐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메인 MC인 대선배님께서 날 보고 “응, 이라야. 밥은 먹었니?”라고 물으셨다.
“이라, 밥 먹어.”
“밥 먹자, 이라야.”
“야, 밥이나 먹어.”
“형, 식사하세요.”
요 며칠 가장 자주 들은 말이었다. 방송국에서 연예인 분들도, 스태프 분들도,
“이라 씨, 식사하셨어요?”
가족 단챗방과 친구들 단챗방에서도,
[이라 밥 먹는 소리 좀 나게 해라!!]
라며 다들 엄청 압박을 주고 있었다. 마지막 통화를 어색하게 끝낸 민이조차 [밥챙겨먹어] 라고 톡을 보냈다. 내가 그렇게 말랐나?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 물론 말랐다는 건 인정하지만 건강은 별문제 없는데 다들 걱정이 과하다. 멤버들 앞에서 팬이 준 도시락 피할 변명 찾느라 머리도 아프고.
옷을 갈아 입고 대기 중에 폰이 울렸다.
권수한 [오늘 예능 촬영 있다며]
권수한 [잘해. 다치지 말고]
[넹ㅇㅇㅇㅇ]
[건강검진 결과는 아직 안 나왔어요?]
권수한 [아직]
권수한 [다음에는 커리 먹자]
권수한 [(사진)]
아하하..
그냥 커리 사진 한 장 보냈을 뿐인데 왜 웃음이 나오는 걸까? 난 ㅋㅋㅋㅋ로 한 바닥 가득 채워 보냈다.
촬영이 시작됐다. 빙판 위 줄다리기가 첫 번째 게임이었다.
“오러 쓰기 없어요~ 제이랑 야단이 오러 쓰지 마~!”
“선배님도 오러 쓰시면 안 돼요!!”
“어허, 우리를 어떻게 보고. 정정당당히 합시다~~!!”
선배님들 쪽엔 오러 스포츠 선수 출신의 B급 모셔너 한분이 계시고 우리 쪽에는 S급 모셔너와 C급 모셔너가 있다. 오러 대결을 한다면 우리 쪽 제이 혼자서도 다 이기겠지만,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 대결이니..
“우왓..”
“조심해.”
빙판 위인지라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다. 비틀 거려서 넘어질 뻔한 걸 제이가 잡아줬다. 제이는 불안한지 단단히 허리를 붙잡고 놓질 않았다. 난 자연스럽게 문 형의 눈치를 봤는데 아무렇지 않아 했다. 오히려 게임에 대한 것만 생각했다.
“앗, 근데 마치런 팀은 여섯 분이고 저희는 다섯이잖아요. 저희가 불리한데??”
“우리는 한 명이 여자잖아요, 에이~~~”
“저희도 한 명이 이라거든요??”
헐. 뭐래?
내가 어이없어 하는 사이 한새가 내 손목을 들어 보였다.
“얘 손목 보세요. 팔랑팔랑. 종잇장이란 말이에요.”
“야, 나도 나름 깡다구 있어!”
“하긴 그렇네. 우리 청하랑 이라랑 몸무게 비슷할 것 같고.”
“저 나름 힘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여자 분이랑 비교를 하다니 마음 상하시진 않을까 걱정됐는데 사실 겉보기에는 내가 더 적을 것 같긴 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4 vs 4로 붙어서 우리가 지면 청하가 막춤 한번 추고, 엔돌핀이 지면 이라가 막춤 한번 추는 거 어때요.”
으엑... 빙판 위에서 막춤이라니 말이 돼??
“오, 좋아요. 콜콜!”
“이라 막춤이라니, 푸흐흡흡. 완전 찬성합니다.”
멤버들은 배신을 때리고 호응했다. 청하 선배님과 내 의견은 상관없이 그렇게 벌칙이 정해졌다..
“오빠들 일부러 지면 나한테 죽는 줄 알아.”
청하 선배님이 주먹을 들어보였다. 나도 선배님을 따라서 멤버들한테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말했다.
“느네.. 을브르 즈믄 즉는드...”
“크크푸하하하. 이 새끼, 어금니 꽉 문 거 봐.”
“귀여워. 아하하.”
나는 심각해 죽겠는데 멤버들은 세상 고민 없는 얼굴로 웃었다. 특히 믿었던 제이는,
“이거 일부러 져야 하나..”
라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때까지도 제이의 손은 내 허리에 올려져 있었다. 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제이의 단단한 팔뚝을 붙잡았다.
“알자나 제이야.. 나 춤 못 춰.. ”
“와, 이라 제이한테 애교부리는 거봐.”
“제이야암..”
“..알았으니까 그만 귀여워.”
올려다보면서 깜빡깜빡 하자 제이는 큰 손으로 내 얼굴을 덮었다. 멤버들이 옆에서 넘어가지 말라고 왈왈 짖었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제이는 귀가 붉어진 채 줄다리기에 참전해서 팀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왔다. 청하 선배님의 막춤을 보면서 나는 제이에게 이 은혜를 평생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노래 대결이었는데 아마 게임을 못하는 나를 배려한 종목인 것 같았다. 0~9까지 적힌 20개의 공들 중 2개를 뽑아서 나온 숫자 두 자릿수와 노래방 기계 점수가 일치해야 했는데, 세 번 불러서 가장 오차범위가 적은 팀이 승리한다.
마치런 선배님들의 첫 번째 곡은 39점을 뽑았고 45점이 나왔다. 6점밖에 차이가 안 나다니.. 솔직히 놀랐다.
“야, 우리는 그냥 무조건 높은 것만 뽑자. 99뽑아, 99. 아니면 01 뽑아서 노래 안 부르는 것도 괜찮을 듯?”
“운 좋은 사람이 뽑자. 누가 운이 좋지?”
일단 나는 아니다.
“일단 이라는 아니네.”
“야단이가 뽑는 거 어때? 막내니까.”
나는 야단이 분량 1초라도 챙기기를 바라며 말했다.
“야단아, 고고!”
바로 정해졌다. 야단이는 굳게 작심한 얼굴로 공을 뽑았는데 4와 3이 나왔다. 43점.... 이걸 어떻게 맞추지? 우리는 심각하게 작전회의를 했다.
“이라가 한 키 낮게 부르는 건 어때?”
“형, 떼창해요. 다같이.”
“아니, 일부러 못 부르는 거 별로 안 어렵지 않아? 나 예전에 음치 연기 한 적 있어서.”
문 형이 지원했다. 형은 유명한 댄스곡을 불렀는데 놀랍게도 30점을 받았다..! 진짜 음치 같았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지고 있었다.
마치런 선배님들의 두 번째 곡 점수는, 72점을 받아야 하는데 90점을 받았다. 일부러 점수차이를 내신 것 같았다.
두 번째 공도 야단이가 뽑았다. 0, 9... 9점... 9점을 받아야 했다.
“이건 음치 연기로도 커버 못해. 어떡하지.”
“형들, 죄송해요..”
“아니야. 이라, 네가 부르자.”
“내가?!”
“어. 이 노래라면 9점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문이 형이 입력한 노래는 100% 랩으로 이루어진 곡이었다.. 내가 가사도 모르는..
난 마이크를 붙잡고 빠르게 지나가는 가사를 보면서 어버버 어법버버 거리다가 내려왔다. 멤버들이랑 선배님들, 스태프들까지 포복절도를 했다. 점수라도 잘 나오면, 그러니까, 못 나오면 억울하지도 않지. 29점이나 나왔다. 선배님들은 좀 비등비등한 상황을 만들고 싶으셨겠지만 너무 재밌는 그림을 얻었다고 만족하셨다.
세 번째 노래에선 선배님들은 44점을 뽑았고, 98점을 얻었다. 가수 출신 선배님이 엄청 노래를 잘 불러버리신 거다.
우리는 공 주머니를 가운데에 두고 둥글게 모였다. 멤버들이 너무 커서 나는 그림자 속에 있었다.
“야, 역전할 수 있어. 공만 잘 뽑아.”
“이번에도 제가 뽑아요?”
“내가 뽑을래. 나도 뽑아보고 싶어.”
한새가 냉큼 공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첫 번째 공은 0 그리고 두 번째 공 0.. 0이 2개 나오면 100점이라는 뜻이다.
“오오오오, 대박!! ”
“좋았으..! 역시 나는 짱이야. 으하하하.”
환호하는 멤버들을 보며 부담감에 배가 아파왔다.
“오, 운이 좋네~ 엔돌핀은 운이 좋아.”
“우리는 그냥 감상 타임 가져야겠네.”
“이건 우리도 좋아요. 이라 노래 한곡 공짜로 듣는 거잖아~”
“아, 우리 다 같이 부를 건데요?? 솔로 아니고 다같이.”
“마지막곡은 한분만 부를 수 있어.”
“그런 룰 없었잖아요!”
“방금 생겼습니다~~~”
난 다급히 단체를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하하하. 선배님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솔로라도 그 한 명이 내가 아닐 수도 있는데..
“이라, 홧팅!”
그러나 멤버들은 이미 나로 결정 지어버렸고, 스태프들 몇 분이 아예 다른 마이크대를 치워버리기까지 했다.
하아.. 난 긴장감에 입술을 축였다. 샌드 싱잉 때문인지 목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제이가 그새 눈치 채고 스태프에게서 생수를 빌려 왔다.
“고마워.”
“부담 갖지 말고 불러. 52점 이상만 받으면 이기니까.”
제이는 가볍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난 쓰게 웃었다. 점수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걸 안다. 엔돌핀의 팬들은 내가 여기서 100점을 받지 못하면 크게 분노할 것이다. 고유진의 자리를 대체한 메인보컬이 이런 노래방 기계로 100점을 받지 못하면..
잔잔한 노래보다는 방방 뛰는 노래를 불러야 점수가 잘 나온다는 팁을 듣고 고음을 지르는 신나는 곡을 선택했다. 선배님들은 본격적인 감상 타임이라며 맞은편에 조르르 앉았다. 그러자 멤버들도 따라가서 옹기종기 앉았다. 난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는 노래를 부를 때도 설레지 않는다. 혼자 완곡을 부르는 흔치 않은 기회임에도 두렵고 힘들기만 하다. 설렜던 기억이 너무 아득해서 마치 없었던 날들 같다.
노래가 끝났다. 지르는 부분이 많은 노래고 목 상태도 안 좋아서 처참했다. 한숨을 쉬면서 소매로 식은땀을 훔쳤다. 제이가 어느새 다가와서 볼을 두드리며 “잘했어”, 했다. 이제 점수를 봐야 하는데 선배님들이 계속 앉아계셨다. 왜인지 넋이 나간 메인 MC 선배님께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때야 정신이 든듯 벌떡 일어섰다.
“와, 하하, 이라 노래 처음 듣는데, 그러니까 실물로는 처음인데, 장난 아니네. 진짜로 다른 세계에 잠깐 다녀온 기분이야.”
“고음이 무슨.. 워후. 천장 뚫겠어요. 뚫려있으면 하늘도 뚫겠어.”
“잘해도 너무 잘하네요. 그리고 왜 이렇게 슬퍼? 이거 밤 새워 놀자는 신나는 노래인데 이렇게 슬플 일이에요?”
“신나는데 슬퍼. 어떻게 이렇게 불러?”
“우리 이라가 좀 장난이 아니죠. 후후.”
“아녜요, 진짜 못 불렀는데. 실수도 많이 하고..”
너무 민망해서 고개도 들 수 없었다.
점수는 100점이 나왔다. 고음 부분의 음정이 떨어지진 않아서 그 덕분인 것 같다. 이번 대결은 승리했지만 노래를 못 불러서 또 욕먹을 생각하니 심란했다.
“어떡하지. 자꾸 생각나서 진행을 못하겠네.”
다음 게임을 진행하려는데 선배님들 넋이 아직도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듯 버벅 거렸다. 렉걸린 캐릭터들 같았다. 결국 짧게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너 노래 너무 잘한다. 어떡하니? 우리 다 울 뻔했어. 신나는 노랜데.”
“이라가 인기 많은 이유를 알겠더라.”
“나는 완전히 팬 됐어!”
청하 선배님은 두 손을 꼭 모으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셨다.
“체구는 너무 작은데.. 자기 키만한 마이크대를 두 손으로 꽉 붙잡고 눈을 감고 열창하는 모습이 뭔가.. 뭔가 내 안의 뭔가를 자극한다고나 할까..”
“어우, 선배님. 민망해요. 저 너무 못 불렀는데.”
“아, 뭔지 알아요, 누나. 그게 바로 팬분들이 말씀하시는 이라의 매력포인트에요. 이제 누나도 라더기 됐네요. 으하하.”
“라더기??”
“이라 팬들을 라더기라고 부르거든요. 이라 덕후. ”
“그럼 나도 이제 라더기네. 너네들은 좋겠다. 옆에서 매일 듣고. 제이, 넌 이런 멋진 남자애가 옆에 있는데 안 반하고 배기니?”
그러자 제이는 씨익 웃었다.
“매일 반하죠. 당연히.”
난 얼굴이 빨개졌다가 파래졌다. 커밍아웃 한 새끼가 이렇게 농담을 안 가리면 어떡해..
문 형의 눈치를 살폈는데 의외로 웃고 있었다. 청하 선배님도 재밌는 농담을 들은 듯 껄껄 웃었다.
“사진 하나만 찍어줄래? 라더기 늘어난 기념으로.”
청하 선배님이 개인 핸드폰을 꺼내자 다른 선배님들도 같이 찍자고 끼어들었다. 결국 멤버들까지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 후에도 스태프 분들과 계속 사진을 찍으며 칭찬을 들어야 했다. 무척 민망해서 화장실에 간다 하고 빠져 나왔다.
변기 뚜껑을 내리고 위에 앉았다. 합류 초기부터 대국민 욕받이라는 소리도 들을 만큼 안티가 많은지라 선배님들도 엔돌핀 팬들이 나를 싫어하는 걸 알고계실 텐데, 조금도 내색하지 않는 모습에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감탄했다. 나도 그렇게 되어야지.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내 할 일을 다 하는 아이돌 가수가.
투두둑.
어.. 난 눈을 깜박였다. 허벅지 위로 점점이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 왜 울지?
눈물 흘릴 일이 전혀 없었는데 뜬금없이 터지는 눈물에 당황스럽다. 손가락으로 계속 맺히는 눈물방울을 훔쳤다. 심장이 불안하게 박동했다.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 조심스레 칸을 나왔다. 거울 속에는 눈가가 붉어진 창백한 소년이 서 있었다. 운 티는 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나 왜 울었지, 진짜? 갑자기 왜 생뚱맞게. 진짜 웃기는 일이다.
다음 게임은 술래잡기 피구였다. 박물관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찍찍이를 붙인 작고 가벼운 공을 상대팀에게 각 5개 이상 던지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었다. 찍찍이 조끼를 입고 운동화 매듭을 질끈 묶었다. 제일 먼저 죽진 말아야지..!
메인 MC 선배님이 워낙 게임을 좋아하셔서 누가 공격을 할지도 미니 게임으로 정했다. 피구였다. 이것도 그냥 처음 죽진 말아야지..! 했는데 제이가 게임 시작 전에 나를 중앙 자리로 옮기더니 속삭였다.
“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
그래서 진짜로 중앙에 가만히 있었는데 제이와 함께 끝까지 살아남았다. 제이는 공을 아무것도 안 피하고 다 받아내 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팀이 이겼고 수비를 택했다. 다들 공격하고 싶어 했지만, 작가님은 엔돌핀이 쫓기고 도망 다니는 그림을 원하셔서.. 미니 게임의 의미가 뭔가 싶었다.
나를 맡은 VJ는 어려보이는 스태프였다. 난 스태프 분에게 오늘 일 편히 하실 거라고 농담을 건넸다. 모쪼록 내 분량이 적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설렁설렁 하다 일찍 죽으면 그건 그거대로 욕먹을 터라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초반에 멤버들과 찢어지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미션 아이템을 발견했다. 의자 밑에 거꾸로 붙어 있었다.
“와! 이거에요? 저 한번에 찾은 거예요? 대박!”
VJ 분께 막 자랑했다. 그분은 흐뭇하게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으셨다.
미션템을 찾았으니 이제 멤버들을 찾을 차례였다. 4층 복도로 나갔는데,
“으아아아아!!”
하는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한새가 저쪽 끝에서 이쪽 끝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공을 두 개나 붙이고 있었다. 좀비인 줄 알았다. 난 바로 뒤돌아서 오른쪽 계단을 내려갔다.
“거기 서!! 한새, 너 내가 공 다섯 개는 붙인다.”
“아, 형. 왜 저한테만 그래요~~~ 끄에엑.”
한새의 처참한 비명 소리는 못 들은 걸로..
3층 복도로 빠져나와 조심스레 걷는데 갑자기 앞쪽 문이 열리더니 카메라 스태프가 나왔다.
“깜짝이야. 거기 누구 있..”
“이라다!”
선배님이 안에 계셨다. 바로 도망쳤지만 공을 붙여버렸다.
“헥헥...”
그렇게 몇 번 도망치고 쫓기다 보니 어느새 공을 4개나 붙이게 됐다. 아이구 힘들어.. 난 창고에 숨어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요, 이라 씨?”
“네, 괜찮아여.. 카메라 무겁져..”
“안 무거워요. 너무 힘들면 숨어 있어요.”
“아녜요. 숨만 고르고 나갈게요..”
VJ 분은 대단하다. 카메라 들고 달리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으시다.
“저 하나 더 붙으면 탈락이에요?”
“..룰은 설명 못하는데.”
“넹...”
난 창고를 나섰다. 나서자마자 한 10미터 쯤 앞에 선배님을 발견했다.
“흡!!”
“이라다!!”
선배님이 던진 공이 빗나가고 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다. 그때 중간에서 내 허리를 낚아채는 억센 손길이 있었다.
“..제이?”
“공 많이도 붙였네.”
“야, 저기 민정이 형 있어..!”
“어, 알아. 업혀. 도망가자.”
“업히라니.. 으앗.”
난 정신 못 차리는 사이 제이의 등에 업혔고, 제이는 나를 업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5층에 도착했을 때 내 표정은 @[email protected] 이런 상태였다. VJ님들은 푸흐흐 웃고 계셨다.
“너 너무 가볍다. 무게감이 없네.”
“야.. 니가 너무 힘이 센 거거든?”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난 제이를 째려보다가 무서운 사실을 발견했다.
“너 공 하나도 안 붙였어?? 어떻게 그래??”
“그냥 피했는데.”
“그게 피해지냐..?”
“피해지던데.”
어깨를 으쓱하는 이 녀석이 모셔너라는 걸 다시 한번 상기했다.
제이와 나는 같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중간에 선배님들을 마주쳤는데 제이가 날 막아주다가 공 하나를 맞아버렸다.
또 도망가다가 야단이랑 문이 형도 마주쳤는데, 한새는 대체 어딨냐는 대화를 하자마자 한새가 탈락했다는 방송이 나와서 다같이 빵 터졌다.
난 멤버들에게 미션템을 보여줬다.
“이거 있으면 우리 이긴 거 맞지? 내가 찾았어!”
“오, 잘했어. 여기 ③이라고 써져있네.”
“2개만 더 찾으면 되겠네요.”
문 형은 당연한 듯 동그란 미션템의 가운데를 열었다. 난 저게 열리는 건 줄도 몰랐다.
야단이랑 문이 형이 한 조, 나랑 제이가 한 조가 돼서 찾아다니기로 했다. 내가 게임은 못해도 관찰력이 좋은 건지 하나를 더 찾았다.
아직 한번도 안 가본 2층에 내려가는 사이 선배님 두 명과 마주쳤는데 제이가 내 앞을 가로막아서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쏜살같이 도망치고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못 움직이겠다는 나를 제이가 훌쩍 안아 들어 2층에 내려다주었다.
“와.. 진짜 힘들다. 선배님들은 이걸 어떻게 매주 하시지?”
“네가 너무 체력이 없다는 생각은 안 드냐?”
“이 자식이..”
투닥거리는 그때 문 형과 야단이가 탈락했다는 방송이 울러 퍼졌다. 난 깜빡깜빡 제이를 올려다봤다.
“이러다 지겠네. 어서 하나 찾자.”
제이는 말과는 달리 굉장히 여유로워보였다.
나는 공 4개, 제이는 3개를 붙이고 있고, 미션템은 하나 남아서 양쪽 다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시간 관계상 서로 갈라져서 찾고 있는 도중 선배님 세 분이랑 마주쳐서 공 세례를 받고 탈락했다.
“이라야, 수고했다. 4개로 오래 살아남았네.”
“네에. 쉬엄쉬엄 하세요, 선배님.”
1층 로비에 내려가니 문 형, 야단이, 한새가 소파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너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았네.”
“쟤 진짜 열심히 했나보다. 머리 봐. 푸하하하.”
“셋 다 되게 편해 보인다?? 아이스크림은 또 뭐야. 걍 빨리 죽을 걸.”
난 툴툴대며 내 VJ 분을 봤다.
“저 카메라 좀 봐도 돼요? 머리 이상해요?”
“아니, 귀여워요.”
“에이, 이상한가 보다. 막 헝클어졌어요?”
“귀여운데.”
“어, 겁나 이상해. 푸흐흐. 일로 와 봐. 형이 다듬어줄게.”
한새의 손에 들어가면 더 최악이 될 것 같아서 믿을 수 있는 야단이에게 머리를 맡겼다. 야단이는 커다란 손으로 어색하게 머리칼을 정리해줬다.
털썩, 소파에 앉으니 어우우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가 찍고 있어서 표정 관리 하느라 힘들었다.
언제 끝나지.. 생각하고 있을 때 드디어 게임이 끝났다.
제이가 미션템을 찾았고, 우리는 오러 보석을 상품으로 받았다. 다음 주 중에 회사로 배달된다고 했다. 다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 또 아까전의 노래방 칭찬을 당했다. 살 좀 찌우라는 조언도 받았다. 멤버들 아무도 편들어 주지 않았다.
제이는 옆에서 팔짱을 끼고서, “더 말해주세요. 우리 말은 듣질 않으니까.” 라고 거들기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