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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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었던 녹화가 끝나고 숙소 건물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속도가 오늘따라 왜 이리 느린 것 같은지. 어디에 기대고 싶은데 마침 내 뒤에 튼튼한 벽이 있었다.

 “...피곤하냐?”

 “으응.. 너 너무 딱딱하다.”

 제이의 가슴은 딱딱했지만 든든해서 푹 기댔다. 내 정수리 위에서 제이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이는 내 배에 팔을 둘러 감쌌다. 문 형이 힐끔 봤다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숙소 문을 열고 익숙한 거실을 보니 급 잠이 쏟아졌다. 나만이 아닌지 한새가 괴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우와아, 개피곤해. 개졸려!!”

 “그래도 오늘은 여섯 시간은 잘 수 있겠네요.”

 “씻기 싫다.... 그냥 침대에 눕고 싶어~~~”

 “어허, 어딜 올라가. 빨리 메이크업 지우고 누워.”

 한새가 외투도 안 벗고 침에 뛰어들다가 문이 형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한새랑 야단이는 같은 방을 쓰고 있어서 야단이가 제 방 욕실에 들어가고, 한새는 문이 형 욕실을 쓰기로 했다. 난 진짜 독방이라서 다행이다.

 메이크업은 꼼꼼하게 지워야 하지만 너무 졸려서 대충 씻었다.

 “콜록, 콜록.”

 샤워 하고 나오자마자 기침을 해버렸다. 감기 안 걸리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으허헝. 오늘 아침부터 목 상태가 안 좋더라니.. 낼모레 라이브 무대가 두 개나 잡혀 있는데 심해지면 큰일 난다. 아마 기침약이 상비해둔 게 있을 텐데.. 거실에 나오자 마침 제이가 자기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너 방금 기침 했지?”

 “어, 들렸어?”

 “어쩐지 컨디션 안 좋아 보이더라니..”

 “이라 감기 걸렸어? 큰일이네.”

 문 형이 근심어린 얼굴이 되더니 소파 옆 협탁을 뒤졌다. 금세 감기약을 발견했다.

 “얼른 먹고 자. 아니, 식후에 먹는 게 좋은데.. 이라 너 밥은 먹었나?”

 “아까 차에서 같이 먹었잖아.”

 “그건 식사가 아니지.”

 “내가 상 차릴게. 잠깐 기다려.”

 제이가 대답도 안 듣고 주방으로 갔다. 난 무척 피곤하고 졸리지만 그만큼 배도 고파서 그냥 먹고 자기로 했다. 지가 해주겠다는데 뭐.. 그동안 문 형은 방 온도를 높였다.

 “형, 내 방에서 씻을래? 한새 저 새끼 오래 걸리잖아.”

 “아, 그럴까 그럼?”

 “안 돼. 내 방 가서 씻어.”

 제이가 국자를 젓다가 말고 불쑥 끼어들었다. 난 코웃음을 치며 내 방 욕실 깨끗하거든??? 했는데 생각해보면 제이 욕실이 내 욕실보다 깨끗하면 깨끗하지 더럽지는 않을 것이다.

 “형, 내 방으로 가.”

 “...알았어. 이라야, 밥 잘 먹고.”

 “응..”

 문이 형은 진짜 착하다. 거실에 나랑 제이만 남고 난 제이를 확 째려봤다.

 “너 형한테 왜 그러냐.”

 “목소리가 아주 갔군.”

 크흠, 목을 몇 번 가다듬었다.

 “야, 그래도 내일 라이브 없어서 다행이지.”

 “다행은 무슨. 기어코 감기 걸려놓고 다행이 어딨어. 내일 라이브가 있든 없든 넌 빨리 나을 생각만 해.”

 제이는 잔소리하면서 순식간에 뚝딱뚝딱 한 끼 식사를 차려줬다. 햄야채볶음밥이랑 야단이네 부모님이 주신 치커리무침이었다. 제이랑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조용한 거실에 숟가락이 밥그릇에 부딪치는 소리와 오물오물 씹는 소리만 가득했다. TV라도 켤 걸 그랬나.

 “손가락은 어때. 봐봐.”

 “어? 아, 다 나았지. 그게 언제적인데.”

 “정신 좀 차리고 다녀라. 손가락을 가만히 두질 않냐.”

 칼질 하다가 왼쪽 손가락을 다치고, 면도날에 오른쪽 손가락을 베였다. 왼쪽은 다 나았는데 오른쪽은 아직이다. 옅은 상처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안 낫고 있었다.

 “콜록, 콜록.”

 기침이 튀어나왔다. 마침 입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다행이다. 제이가 쓴 것을 삼킨 듯이 인상을 썼다.

 난 밝게 웃었다.

 “야, 나 진짜 부상투혼 아니냐? 인정해줘야 돼, 진심.”

 “...건강검진 결과 나왔어?”

 건강검진 한 거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려다가 그때 메시지를 봤단 걸 깨달았다.

 “아직 안 나왔대. 보기보다 건강할 걸? 너도 검진 한번 받아봐. 오러 검진은 아프지도 않고 금방 끝나더라. 멤버들 다 받아 봐도 좋겠어.”

 “결과 나오면 알려줘.”

 “오키.”

 “천천히 먹어. 너무 빠르다.”

 “응.”

 우리는 조곤조곤 대화하며 밥을 먹었다. 평화로운 시간은 짧았다. 야단이는 씻고 바로 자는 듯 한데 한새는 머리칼을 수건으로 털면서 거실에 나왔다.

 “헐, 너 밥 먹냐? 기특한 짓을 하네.”

 “제이가 차려줬어.”

 “제느새끼, 우리한텐 밥 먹냐고 물어보지도 않으면서 너한텐 잘만 해주고..”

 “넌 그만 좀 처먹어야 돼.”

 “야, 너도 거들어. 많아.”

 “미쳤냐. 네 밥 뺏어 먹으면 나 저 자식한테 죽어. 많이 먹고 살쪄라, 이라야~ 형님은 맥주 한캔 마시고 잘란다.”

 한새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옆에 앉았다. 안주도 없이 꿀꺽꿀꺽 잘도 넘기는 모습을 보니 참 체력 좋다 싶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자 끔벅끔벅 눈이 감겼다. 난 진짜 동물인가.

 “이라, 다 먹고 자.”

 “어..”

 “그냥 재워라. 애가 이렇게 졸려하는데.”

 “두 숟갈 남았는데 이건 다 먹고 자야지.”

 “으으응..”

 눈을 처언천히 깜빡이는데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웃음소리를 반찬 삼아 두 숟가락을 마저 먹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물컵이 대령됐다. 제이가 너무 잘해줘서 좋긴 한데 부담스럽다.

 “콜록, 콜록.”

 원샷하고 나자 기침이 터져 나왔다. 아, 안 되는데.. 기침하면 안 되는데.

 “약 먹어.”

 제이가 손에 알약 2개를 쥐어줬다.

 “땡큐.”

 “너 감기 걸렸냐? 뭔 사내 새끼가 왜 이리 병약해.”

 알약을 삼키며 한새새끼를 노려봤으나 콧방귀도 끼지 않는다.

 “저번 활동 때는 이 정도로 약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흐음.”

 “확실히 몸이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지.”

 “제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 새끼 밥 안 먹어서 살도 마르고 건강도 나빠진 듯.”

 “혈색도 안 좋고.. 불면증도 심해졌고.”

 “또 잔소리 시작이냐. 난 양치하고 잘래. 제이, 밥 고마웡.”

 얼른 자리를 빠져나오려고 일어났다. 설거지통에 빈 그릇을 치워놓으려는데 제이가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진짜 부담스럽다. 근데 좋다..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열심히 이빨을 문댔다. 카악, 퉤. 치약 거품을 뱉을 때는 구역질이 나서 가끔씩 양치질 하다 말고 토하기도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했다.

 “콜록, 콜록.”

 입을 헹구자마자 기침을 했다. 후우. 이마를 짚고서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이 메시지가 왔다고 반짝반짝 하고 있었다.

 권수한 [숙소엔 잘 도착했고?]

 저 감기 걸렸어요ㅜ

 라고 쓰다가 식겁해서 다 지웠다. 내가 미쳤나 보다.

 [넹. 잘 도착했고 이제 자려구요]

 권수한 [내일은 스케줄 몇 시에 끝나지?]

 [오늘보다는 일찍 끝날듯요 왜요??]

 권수한 [아니 그냥. 잘 자라.]

 [님두요 ㅂㅂㅂㅂㅂ]

 1이 사라지고 곧 답장이 왔다.

 권수한 [ㅂㅂㅂㅂㅂㅂ]

 후훗. 실없이 실실 거리다가 사진첩에 들어갔다. 병아리짤과 팬의 글 캡처를 감상하다가 옆으로 넘겼다.

 [너 요즘 기고만장 하더라ㅋ

 기다려. 언젠간 내가 너 죽일 거니까.]

 그 쪽지는 버리려다가 다시 주워서 사진을 찍었다. 기고만장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보면서 되새길 것이다. 나는 미움 받고 있다. 다들 나를 싫어한다. 멤버들도 안다. 멤버들도 팬들이 나를 싫어하고 있다는 걸 안다. 착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고만장해지지 않기 위해.

 “야, 이라. 자냐??”

 거실에서 한새가 불렀다.

 “아니, 왜?”

 “야, 네 케이크 한 조각만 먹어도 되냐?”

 “안돼!!”

 난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안돼. 내 거 건들지마!!”

 한새는 냉장고 문을 연 채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옆에 제이도 있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갔다.

 “다른 거 먹어. 내 거는 안돼.”

 난 케이크를 빼앗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내 큰소리에 놀란 건지 문이 형이랑 야단이가 방을 나왔다. 한새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 많은데 하나쯤 나누는 게 그렇게 어렵냐?”

 아니야. 하나도 안 어려워. 하지만 이건 독이 들었을지도 몰라서 그래.

 “말했잖아. 난 내 거 나누는 거 싫어한다고.”

 “구라까지마. 연습생 때는 자주 나눠먹었으면서.”

 “팬들이 준 거잖아, 이건.”

 “그렇다고 시발, 그렇게 창백해져서 뛰쳐나올 일이야? 그렇게 큰소리까지 치면서?”

 아니지. 물론 아니지. 친구가 케이크 좀 먹겠다는데. 먹지 말라고 뛰쳐나올 일은 아니지..

 한새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진짜 짜증나게 하네. 너랑 내가 친구 맞냐? 존나 내가 케이크 하나 사줄게. 그럼 됐냐?”

 “..말 심하게 하지 마.”

 제이가 한새의 가슴을 툭 밀고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라는 지금 아파.”

 ..감기에 걸려서 아프다는 뜻이겠지만 내게는 다르게 들렸다. 맞다. 나는 아파. 나는 치료가 필요해. 권수한의 말처럼. 너희도 들으면 이해할 거야.

 “씨발, 아프고 뭐고 너무 심하잖아 진짜. 너도 한번쯤은 느꼈지? 식탐이라고 웃으며 넘겼지만 예전에 안 나눴던 것도 아니고, 시발. 짜증나게 굴잖아.”

 “말조심하랬지.”

 “...!”

 제이가 모션 오러를 방출했다. 한새는 뒷걸음질 치고 나는 제이의 옷자락을 잡았다. 문이 형과 야단이가 놀라서 다가왔다.

 “권제이, 진정해.”

 “제이 형. 한새 형은 노유저에요.”

 야단이가 오러로 한새를 감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새는 겁에 질려 있었다. 제이는 씨발, 나지막하게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오러를 거뒀다.

 “하아...”

 한새가 숨을 몰아쉬었다. 헐떡거리는 한새를 야단이가 토닥여줬다. 자존심을 크게 다친 한새는 나와 제이를 노려봤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찰나 문 형이 중재했다.

 “둘다 밤늦게 그만해. 한새 너는 케이크 먹고 싶으면 내 거 먹고. 이라한테 제대로 사과해.”

 “왜 내가...!!”

 “말을 심하게 했잖아. 인정할 건 인정해.”

 “....씨.”

 “맞아요, 형. 이라 형한테 사과하세요.”

 야단이도 편을 들어주지 않자 한새는 고개를 떨구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아니야.”

 내가 미안해. 문이 형도 야단이도 사실은 네 편을 들었어야 옳다. 내가 한새라면 지금 너무 너무 화가 날 것 같은데, 한새는 화를 숨기고 우물쭈물 변명을 했다.

 “케이크가 먹고 싶었던 게 아니라.. 넌 예전엔 같이 먹었었는데 요즘엔 혼자 벽 세우고 안 나눠주니까 씨, 친구도 아닌 것 같잖아. 서운하게시리..”

 “팬분들이 준 거라서 독점욕이 자꾸 생겨서 그래. 오해하지마.”

 “어..”

 나보다 커다란 놈이 처량해 보인다. 문이 형이 이번엔 내게 말했다.

 “이라, 너도 제대로 사과해. 친구로서 분명 서운한 부분이고, 네 반응도 예민했어.”

 나는 숨을 작게 들이키고, 한새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서운하게 해고, 예민하게 반응해서, 미안해. 한새는 아마도 아직 화가 나 있겠지만 멤버들 때문인지 괜찮다고 받아줬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사과할 사람이 한명 더 있었다. 문이 형이 나한테 눈짓했다. 난 팔짱을 끼고 상황을 관전하는 제이에게 말했다.

 “야, 너도 한새한테 사과해.”

 “.......”

 “빨리 안 해?”

 제이의 옆구리를 퍽 갈겼다. 제이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한새 귀 옆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며 미안, 했다.

 “...어우, 닭살 돋아.”

 한새는 제느의 사과는 안 받는 게 낫겠다며 농담조로 받아줬다. 분위기가 풀린 듯 했다.

 사실 요 근래 너무 바빠서 뜸했던 것뿐이지 다 사내새끼들이라 툭하면 싸우고 화해하고는 했다. 한새랑 야단이도 싸운 적 있고, 문 형이랑 제이도 싸운 적 있다. 유진이 형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고. 다만 오러까지 등장하는 일은 처음이다. 노유저한테 오러를 사용하는 건 제이가 말은 안 해도 지금 꽤 미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알아서 풀겠지.

 난 지금 너무 피로하다.

 콜록, 기침을 하자 제이가 부축하려는 시늉을 했다. 내가 환자도 아니고 참. 그치만 피곤한 건 사실이라 손길을 받아줬다. 문이 형의 시선이 따끔따끔 느껴졌다. 아, 진짜 모든 게 날 피곤하게 만든다.

 그 와중에 케이크를 냉장고에 다시 집어넣던 한새가 툭 내던지듯 물었다.

 “너 이 케이크 먹긴 할 거냐?”

 “..당연하지. 먹으려고 놔뒀지 그럼..”

 “그때 같이 먹는 것도 안돼?”

 “.......”

 “너.. 먹긴 할 거지?”

 왜.. 왜 이런 걸 물어볼까?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내 표정이 다시 굳어지자 멤버들이 다시 날 도와줬다.

 “한새, 그만하랬지.”

 “케이크에 왜 이렇게 집착해요, 형.”

 “아니, 아, 쫌, 다들 겁나 노려보네. 인터넷에 글 하나 올라온 게 생각나서 그래.”

 순간 나는 다들 멈칫하는 걸 느꼈다. 내 어깨를 붙잡은 제이의 손에 일순 힘이 들어갔다.

 “무슨 글?”

 내가 물었다. 괜히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멤버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한새는 내 눈빛을 피했다. 문이 형과 야단이도 똑같았다. 나는 제이를 바라봤다. 뜨거운 불길이 고요하게 타오르고 있는 눈. 한때 내가 너무나 신뢰했던.

 “무슨 글이 올라왔는데?”

 “...네가 팬이 준 음식은 안 먹는다고.”

 “.......”

 “팬이 준 음료를 버리려 했다고. 그런 글이 올라왔어.”

 맙소사. 어쩌면 제이 녀석은 내 심장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제이는 이어서 말했다.

 “사장님한테 바로 말해서 신고접수 했으니까 루머 따위에 걱정하지마.”

 ...사장님한테?

 “곧 해결될 일인데 이 녀석이 쓸데없이 얘기를 꺼냈어.”

 “아씨.. 미안하다. 나 아까 맥주 마시고 취했나봐.”

 “그래, 이라야. 그냥 잠깐 올라왔다가 사라진 글이야. 잊어버려.”

 “형, 신경 쓰지 마세요.”

 어.. 난 신경 안 써.

 라고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형이랑 너네가 심각한 반응이니까 진짜 심각한 글인 줄 알았다고. 별거 아니네. 하하. 그러고서 방에 돌아왔다. 들어오기 전 제이에게 팔이 붙잡혔는데, 내가 졸린 얼굴로 미소 짓자 보내줬다.

 방에 들어온 나는 우선 방 불을 껐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인터넷에 들어갔다. 뭐라고 검색해야 하지? 이라 음식, 이라 팬 음식. 글이 잘 걸리지 않았다. 혐이라. 수많은 글이 나왔다. 예전에도 보았던 적나라하고 원색적인 비난들이 그대로 다시 있었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글을 읽고 사과주스 때였다는 걸 알았다. 날 어떻게든 상하게 하기 위해 전량회수 조치된 음료를 구해서 줬던 어린 엔돌핀의 팬.

 어제 팬사인회에서 분위기가 안 좋았던 건 이 글 때문이었구나. 속이 메스껍다. 입을 막고 급히 욕실로 들어갔다. 변기를 붙잡고 위액만 나올 때까지 다 토해버렸다. 눈물이 같이 나왔다. 나는 다시 검색을 했다. 이라 청산가리. 이라 살인. 엔돌핀 이라 살인. 이라 독살. 독살하는 방법. 그런 것들을 검색해도 나와 관련된 건 아무것도 뜨지 않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으..”

 머리가 핑 돌았다. 난 화장실의 딱딱한 타일 위해 주저앉았다.

 사장님은 이 글을 알고 있다는 거야. 그럼 뭔가 대처를 해주시겠지.

 그러나 곧 웃음이 나왔다.

 대처?

 무슨 대처.

 사람을 싫어하는 감정을 어떻게 대처해. 싫어하지 말라고 말하면 싫어하지 않게 되나. 나도 참 웃기다.

 하지만 사장님이 이 글을 읽었다면, 이제 엔돌핀 팬의 음식 선물을 아예 안 받는다든지 어떻게 해주시지 않을까.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다. 다시 속이 메스꺼워졌다. 한쪽 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다른 쪽 손가락이 누른 곳은 사진첩의 병아리 사진이었다.

 <왜 병아리가 아닌거야??????ㅇ.ㅇ.ㅇㅇ.ㅇㅇ.ㅇ

 주머니에 넣어서 갖고다니고 싶은데 왜 병아리 아니야 ㅇ.

 핸드폰 액정에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흑....”

 모셔너가 숙소에 두 명이나 있으니 혹시나 들릴까봐 입을 틀어막았다. 가슴 속에서부터 히끅거리는 울음이 작게 새어나왔다. 난 너무 우울하고, 서럽고, 지치고, 힘든 상태라는 걸 내 몸이 머리보다 먼저 자각하고 있었다.

 이 병아리 팬분도 목격담을 읽었을까. 즐겨찾기의 팬사이트에 들어갔다. 병아라 팬분의 닉네임으로 검색해보니 1시간 전에 올라온 새 글이 있었다.

 제목은 <할 말이 없네> 였다.

 읽을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 글을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

 그 루머에 대해 이 분은 어떤 반응이실지,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나 나는 읽기로 했다.

 읽어보기로 했다.

 제목을 터치해서 들었다.

 <먹을 거 줘도 눈길도 안 줄 테부터 쌔 하긴 했는데...

 그래도 이라를 믿어보고 싶은데.. 자꾸 자기도 들었다는 스태프 목격담이 올라오니까, 후... 모르겠다.

 팬의 선물을 버리는 가수라니.. 난 그런 가수는 좋아하고 싶지 않은데....;;;;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겠음... ㅇㅅㅇ ..>

 나는... 차가운 벽에 상체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고.. 비워진 자리에 또 차올랐다. 가슴이 찌르르 아프게 진동했다. 난 심장 부근을 꾹 눌렀다. 난 괜찮아. 괜찮아. 미움 받는 건 당연한 일이야. 팬이 준 선물을 버리는 가수라니.. 누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어. 누가. 어차피 나는.. 고유진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미움 받고 있잖아. 어차피 미움 받는데..

 억울하다..

 억울함이라는 잊어버렸던, 잊어야하는 감정이 떠올랐다.

 내.. 잘못이.. 아니지 않나?

 유진이 형이 엔돌핀을 탈퇴하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

 팬이 준 음식을 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나는.. 나로서는..

 심장이 무너져 화장실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가슴이 텅 비었다. 공허하게.

 공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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