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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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수한이 날 향해 팔을 벌렸다. 내 몸이 갑자기 사장님을 밀어내더니 그에게 뛰어들었다. 부지불식간의 일이라서 나 스스로도 놀랐다. 진득하게 휘감아오던 오러가 사라지고 온화한 오러가 새로 채워졌다.

 “이라, 너 뭐하는 거니!”

 “...안 그래도 만나 뵈려고 했는데, 이렇게 뵙는군요. 신동우 사장님.”

 권수한은 날 끌어안았다. 단단하게 허리에 팔을 둘렀다. 나는 그에게 몸을 맡겼다. 뭐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안도감이 들었다.

 “궈, 권수한 선생님. 이곳엔 어쩐 일입니까? 우리 이라한테는 무슨 일로,”

 “어댑터셨습니까.”

 “공식적으로는 비밀입니다! 어댑터 신변 보호 프로그램(어댑터임을 알리지 않고 노유저로 살아가는 프로그램. 어댑터로서의 능력, 권리, 의무를 포기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어댑터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전제조건일 텐데요.”

 “바, 방금은 이라가 너무 혼란스러워 해서 달래주고자..”

 권수한이 코웃음을 쳤다. 목소리에서는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가슴팍의 울림이 느껴졌다. 권수한은 내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화가 무척 많이 난 것 같은데, 날 달래주는 손길과 오러만은 너무 온화하고 따뜻했다.

 “청산가리, 밝히십시오. 그쪽 회사에서 해명하지 않는다면 국과원 쪽에서 먼저 기사를 내겠습니다.”

 “어떻게 그 일을, 국과원이라면, 권진호 씨와는 비밀 유지 서약을 했습니다만.”

 “일이 이 지경인데 비밀 유지는 무슨 개소리입니까.”

 권수한의 품 안에서 나는 살짝 몸을 뒤틀었다. 사장님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가셔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불편해졌다.

 “이라는 잠시 내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이라가 괜찮다면.”

 권수한의 말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장님을 볼 때의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과는 다른 따뜻한 염려가 담긴 눈이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권수한도 까딱했다.

 “가족에게도 이쪽에서 알리도록 하죠. 나머지 얘기는 통화로 하는 게 좋겠군요.”

 “자, 잠깐만요! 잠깐, 이라야.”

 사장님이 나를 보았다. 사장님은 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너 그때도 말했잖아. 다 알아 들었다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이해한다고. 분명 그렇게 얘기했잖니!”

 “네,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사장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도 안 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요.”

 사장님도 용준이 형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난 사장님을 보면서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냈다.

 “어차피 멤버들이 그 일을 알아도 저처럼 팬들을 두려워하지는 않을 거예요. 엔돌핀의 팬들은 저만 싫어하는 거니까.”

 “...뭐라고?”

 “제가 경솔하게 쓰레기 버리는 걸 목격당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해요. 해명 기사는 내주시면 좋겠지만, 안 내주셔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사람들은 저를 싫어하니까요. 절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죠.”

 “당연하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대체.”

 “제가 원하는 건 그냥 멤버들한테는 알리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래야 걔네 팬들이 주는 것들을 먹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잖아요?”

 사장님이 휘청거리며 차체와 부딪쳤다. 왜 저렇게 충격 받는지 알 수 없었다. 본인에게는 좋은 일 아닌가?

 “너, 대체 무슨 그런 극단적인 소리를..”

 용준이 형은 거의 황망하다는 얼굴이었다.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사실을 밝힌다면 속상해하는 팬들이 있긴 하겠네요. 살인 미수로 끝나서 안타까워하겠죠. 살인미수범을 붙잡지 않았으니 더 용기내서 계획만 해두었던 일들을 시도하려고 할 수도 있구요. 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각오는 해둘게요. 저는 이제 상관없어요. 사실을 밝혀도 안 밝혀도. 다만 멤버들한테는 알려줘야 다음 활동이 편해질 것 같다는 거예요.”

 “이, 이라야, 우린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너 지금 진심이니?”

 “네, 진심이에요.”

 “..너 완전히 정신,”

 그때 권수한이 갑자기 날 끌어당겼다. 안 그래도 품 안에 있었는데 더 몸을 붙이고는 양 손으로 내 귀를 막았다. 창백해진 사장님이 뭐라 말하고 있었는데 들리지 않았다. 권수한의 가슴팍이 울리는 걸로 봐서 그도 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귀를 기울여 봤다.

 “...이렇게.. ...당신들이 자처한...”

 분명 내 얘기인데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호기심이 일기에는 내가 너무 지친 상태였다. 권수한은 말을 끝나고 귀를 놔주었다. 사장님과 용준이 형은 몹시 충격 받아보였다.

 “이라야.”

 권수한이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이제는 가자는 뜻인 것 같았다. 사장님도 용준이 형도 잡지 않았다.

 난 이제 익숙해진 차에 올라탔다. 그의 차라는 사실만으로 긴장감이 풀어졌다. 권수한은 안전벨트를 매주고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좀 자고 있어라. 도착하면 깨울게.”

 “네..”

 대답은 했지만 사실 잠은 오지 않았다. 권수한은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피곤하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주차장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급히 나오는 게 보였다.

 제이였다.

 “잠깐만요!”

 난 다급히 외쳤다. 권수한은 들었을 텐데도 그대로 지나쳐가는 듯 했으나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갔다. 제이도 날 봤는지 달려오고 있었다. 난 창문을 내렸다. 운전석에 앉은 권수한을 본 제이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라, 너 뭐야. 왜 권수한.. 너 울었어? 왜, 아니, 지금 어디 가는데?”

 “권수한 씨네 집에 가.”

 씨발, 제이가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이 상황에서 저 어댑터 집에는 왜 가는데. 제대로 말해줘야지! 대체 왜 죽..는다는 그런 말을 하는데?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나는 모른다고!”

 “아마 사장님이 얘기해줄 거야.”

 “너는, 도저히 네 입으로는 설명해줄 수 없다는 거냐?”

 “그만하지.”

 권수한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차를 출발시키고 싶은 듯 눈썹을 삐딱하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면, 이라의 입에서 직접 듣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할 거다. 너네 사장은 주차장에 있으니까 얼른 가서 설명 들어.”

 “..씹, 왜 저 새끼는 알고 나는..”

 제이한테는 권수한의 말이 아는 자의 거들먹거림으로 느껴진 것 같았다. 나는 제이를 이해했다. 그만큼 우리는 각별한 사이였으니까. 제이에게 손을 뻗었다.

 “.......”

 뭐라고 말을 해야 되지? 뭐라고.. 입술만 달싹거리자 제이가 손을 잡아왔다.

 “연락할 테니까 전화 받아.”

 “응..”

 제이는 너무 괴로워 보였다. 나만큼 힘들어 보였는데 내가 너무 지친 상태라서 제이를 배려해줄 여유가 없었다. 얽혀있던 손가락을 풀고 창문을 올렸다. 권수한이 차를 출발시켰다.

 제이의 모습이 멀어져 갔다. 제이는 차가 코너를 돌 때까지 계속 이쪽을 보고 있었다.

 권수한의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권수한이 안아주지 않았다면 난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다. 난 그의 가슴팍에 매달려서 부탁했다.

 “오러 치유해주세요.”

 “..그래. 밥 먼저 먹고.”

 “지금 먹으면 백퍼 체해요.”

 “안 체할 만한 걸 먹자.”

 제이만큼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사람이라서 날 거뜬히 안아 들었다. 권수한은 침실에 나를 눕히고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흑백색 단조로운 톤의 깔끔하고 넓은 침실이었다.

 나는 지금 양말도 안 벗고 비하인드 녹화 때문에 한 메이크업도 안 지운 상태였는데 거리낌 없었다. 권수한은 두툼하고 가벼운 이불을 끌어올려 가슴까지 올려주고 툭툭, 두어 번 토닥인 다음 방을 나갔다.

 난 권수한이 나가자마자 눈물을 떨어뜨렸다. 베개에 흘릴까봐 옷 소매로 눈을 눌렀다. 이불 안에 웅크려서 히끅, 히끅 하는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을 막고 훌쩍 거렸다.

 진짜 다들 극복하고 사는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 이제 난 어떡하면 되지? 어떡해야 돼?

 너무 막막하고 그냥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만 싶다. 이미 도망쳤지만..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야..?

 누군가가 대답해줬으면 좋겠다. 알려줬으면 좋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분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침대 한쪽이 눌리는 느낌이 났다. 권수한은 말없이 앉아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이불을 들추려는 기미가 없어서 안심하고 계속 울었다. 얼굴이 눈물범벅이 됐으며 이미 소매는 축축해졌고 베갯잇까지 젖었는데, 권수한은 이걸 가지고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끝까지 날 깨우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울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이튿날,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는 손길과 나지막하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려는데 몹시 쓰라려서 앓는 소리를 내자 차갑고 보드라운 천이 눈가에 닿았다. 어느 정도 쓰라림이 사라지고 끔뻑 끔뻑 눈을 떴다.

 “개구리 같군.”

 조금도 잔 것 같지 않은 말끔한 얼굴의 권수한이 피식 웃었다. 난 입술을 내밀었다. 요 며칠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당연히 퉁퉁 부어 있겠지, 뭐..

 “물 마셔.”

 마치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시원한 냉수도 줬다. 몸을 일으켜 한 모금 들이키는데 콜록, 기침이 터져 나왔다. 목구멍이 쓰라리고 아팠다. 권수한은 묵묵히 내 손에서 냉수를 가져가고 다른 물컵을 쥐어줬다. 미지근한 온도였다. 목구멍이 쓰라렸지만 꿀꺽 꿀꺽 한 번에 마셨다.

 “잠 깼어?”

 “네..”

 맙소사. 목소리가 엉망이다. 부끄러울 정도로 쇳소리밖에 없었는데 권수한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그럼 밥 먹자.”

 “속 안 좋아요.”

 “그래서 더 먹어야 돼.”

 권수한이 단호하게 나와서 난 끄응 앓으면서 일어났다. 하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너무 무거워서 걷기가 힘들었다. 권수한은 내게 세수만 마치고 침대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세수 하면서 거울을 봤는데 너무 처참해서 어디 가서 아이돌이라고 하면 한대 맞을 인상이었다.

 밍기적 침대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자 권수한은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죽그릇을 가지고 왔다. 맹맹하지도 않고 되게 맛있었다. 분명 속 안 좋은 거 맞는데 두 그릇이나 먹어버렸다. 이 사람이 해주는 건 항상 두 그릇 이상인 것 같다.

 배불리 먹은 뒤에는 권수한이 새로 사 온 듯한 칫솔로 깨끗이 양치질도 했다.

 “잠은 다 깼을 거고. 배도 부르고?”

 “네, 배불러요. 잘 먹었습니다.”

 목소리는 여전히 맛이 갔지만.

 “그럼 이제 편히 앉아서 들어.”

 권수한은 내 등 뒤에 쿠션을 받쳐주고, 이불을 허벅지까지 꼼꼼히 덮어준 뒤에 의자를 끌고 와 침대 옆에 앉았다. 바로 얘기를 시작할 줄 알았는데 말이 없길래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신중하게 내 표정을 살피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권수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오후 2시고. 네 회사가 해명문을 발표하지 않아서 내가 네 담당 주치의로서 입장문을 올리려고 해. 엔돌핀의 이라는 독극물이 들어있는 음식물을 선물 받은 이후로 팬이 준 음식을 먹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겼으며, 아티스트를 보호하지 못한 기획사에 대해 깊이 유감이라는 내용으로. 바닐라 쿠키와 사과주스의 청산가리 검출 기록을 준비해 놨어. 동생이 인증해 줄 거고.”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직 발표하진 않았어. 중요한 건 네 의사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니. 모르겠다. 누가 넌 이렇게 하라고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어린애도 아닌데.. 다 큰 성인인데. 이런 거 하나하나 다 권수한한테 결정 내려 달라고 할 수는 없는데.

 내가 고개를 떨어뜨리자 권수한은 이불 위를 토닥여줬다.

 “이건 다른 사람이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야. 네 앞날이 달린 일이니까.”

 “..알아요. 고민을 좀 더 해볼게요.”

 “더 궁금한 거 있어?”

 “형, 말투 되게 부드러워졌네요. 닭살 돋는당.”

 “...어제부터 네 부모님 전화가 굉장히 많이 오고 있어.”

 “아.”

 나름 분위기 가벼워지라고 한 소리였는데 권수한은 웃지도 않고 핸드폰을 줬다. 어떻게 이걸 깜빡할 수 있지? 얼른 받아서 통화목록부터 훑었다. 멤버들, 아이돌 동기들, 학교 친구들 많은 사람들한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제이에게서는 백 통 가까이 부재중 전화 기록이 있었다. 엄마랑 아빠, 동생은 의외로 몇 통 없었는데 권수한이 이유를 말해줬다.

 “내가 대충 설명 드렸어. 기사 난 정도로 심각한 일 아니고, 네 신변에 위험도 없다고. 지금은 밥 잘 먹고 잘 자고 있으며 일어나면 연락드리겠다고 했지.”

 “네, 고마워요.”

 목이 말이 아닌데.. 그래도 부모님을 더 이상 걱정하게 만들 수는 없어서 전화를 걸었다. 권수한은 자리를 비켜주는 매너는 없었고 오히려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앉았다.

 엄마는 생각보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권수한이 안심할 말을 해준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화가 많이 나셨다.

 -내가 아이돌 하지 말라고 했지! 왜 괜히 아이돌 해가지고 욕이나 먹고 고생이냐. 그냥 다 그만 둬. 내 아들한테 욕하는 새끼들은 다 고소해버리고 다시는 네 노래도 듣지 못하게 해야 지들이 잘못한 걸 알지!

 너무 흥분하셔서 혈압이 걱정될 정도였다. 아빠는 내가 달래드릴 겨를도 없이 막 화내시다가 갑자기 전화를 끊더니 영상 통화를 거셨다. 나 지금 몰골이 말이 아닌데. 받기를 주저하자 권수한이 긴 팔을 주욱 뻗어서 통화를 터치해버렸다.

 “아, 왜..!”

 -이것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아주 펑펑 울었네! 너 당장 아이돌 관두고 집으로 와. 너 행복하라고 보냈지 울라고 보낸 거 아니다, 아빠는!

 “아빠, 생각만큼 심각한 일 아니고 나 잠 많이 자서 부은 거야. 루머는 해명하면 되는 거고.. ”

 -어디서 아빠한테 거짓부렁이야? 다리몽둥이 부러뜨리기 전에 네 발로 와!

 -여보, 너무 그러지 마. 애 겁먹게.

 -당신도 아이돌 같은 걸 허락하니까 애가 어? 이렇게 마른 거 안 보여? 얼굴이 반쪽이잖아! 목도 맛이 갔고. 애가 맛없으면 빵 좀 버릴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애를 아주..!

 -어휴, 진짜 시끄러워 죽겠네. 핸드폰 줘 봐. 내가 통화할게. 민아, 아빠 좀 모시고 방에 들어가라.

 민이도 있었구나. 화면 너머로 흥분해서 얼굴이 검붉은 색이 된 아빠가 사라졌다. 엄마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 영상 우리도 봤는데 빵은 왜 버린 거니? 권수한 선생님은 말씀해주지 않더라.

 “이유가 있었어. 이제 곧 입장 발표할 거야.”

 -우리한테 먼저 말해주지 않을 거니?

 섭섭하시겠지? 너무 서운하실 거야. 하지만 차마 이렇게 얼굴을 보고서 내 입으로 직접 말할 수가 없다. 지금 와서는 정말 해명문을 발표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실까..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

 “진짜 별 일 아니라서 그래. 해명문을 좀 부풀려서 낼 건데 엄마랑 아빠가 걱정할까봐 지금 말해줄게. 예전에, 작년에 팬사인회에서 쿠키 선물을 하나 받았는데 그게 좀 상한 거였거든. 그래서 그 후로 팬이 준 건 먹지 않고 있었는데 들켰네. 사람들 다 볼 수 있는 장소에서 버린 내가 잘못이지, 뭐.”

 -팬이 상한 걸 줬어?

 “어, 종종 있는 일이야. 나 인기 많은 만큼 안티도 많으니까. 심각한 일 아니라고 했잖아.”

 -옆에 권수한 선생님이야?

 권수한의 팔에 카메라에 걸렸나 보다. 내가 옆을 보자 권수한은 “네, 안녕하십니까.” 인사 하면서 화면에 들어왔다.

 -우리 이라 상한 거 먹어서 몸이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주치의로 계신 거고?

 난 불안한 눈으로 권수한을 보았다. 권수한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

 “상한 걸 먹고 탈이 나거나 건강이 안 좋아진 적은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부모님께서 너무 근심하시면 오히려 그게 더 이라한테 좋지 않습니다.”

 우리 엄마한테 뭐라는 거야! 확 째려보았지만 권수한은 냉정한 눈으로 휴대폰만 볼 뿐이었다.

 -유명한 어댑터 분이시니까, 믿을게요. 잘 좀 부탁드려요.

 “예.”

 -이라야, 안티가 쓰는 글 찾아보지 말고, 괜히 인터넷 들어가서 악플도 보지 말고. 알았지?

 “응. 아빠 좀 잘 달래줘.”

 -그래.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우리까지 머리 아프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네 아빠 단순해서 먹을 거 주면 금방 풀어질 테니까 걱정 말고 쉬어. 이따가 또 전화할게.

 “응, 엄마도 쉬어.”

 전화를 끊자 권수한이 핸드폰을 가져갔다. 그는 협탁 위 충전기에 폰을 꽂아놓았다.

 “부모님이 너와 안 닮았군.”

 많이 듣는 말이다.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다고 밝히면 걱정하실 텐데, 그냥 밝히지 말까 봐요.”

 “네 회사 사장과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난 이불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무척 복잡했다. 어떤 방법이 옳은 건지 정말 모르겠다.

만약에 독살 시도가 있었다고 알리면, 이번에야말로 부모님은 아이돌을 관두게 하시겠지. 엔돌핀의 팬들은 그때의 범인을 잡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찾지 않을 거라고 안심하고 시도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죽을 뻔한 나를 동정하게 될 사람들은 없을까?

 멤버들은 어떤 반응일까. 용준이 형이랑 사장님처럼 이해 못할까, 아니면 권수한처럼...

 제이는 어떤 반응일까.

 아니, 애초에.

 “사람들이 믿을까요? 저 관심병 있다고.. 욕하진 않을까요?”

 “청산가리 검출 기록을 준비해놨어.”

 아, 맞다. 준비해 놨다고 얘기했었지. 진짜 머저리가 돼버렸나 보다.

 “콜록, 콜록.”

 기침이 튀어 나오자 권수한이 바로 물컵과 알약을 줬다. 난 순순히 받아먹었다. 권수한은 휴지로 입가까지 닦아줬다. 내가 아기도 아니고 말이다. 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권수한 씨는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세요? 동정심인가요?”

 “..내가 너한테 잘해준다고? 이건 당연한 행동이야. 누구라도 너한테 이렇게 대했어야 해.”

 그 말은 사장님과 용준이 형이 잘못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부분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다. 사실을 발표하면 많은 혼란이 있을 것이다. 나만 참고 넘어가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멤버들한테만 알려주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아마 권수한도 알고 있겠지.

 “권수한 씨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질문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미 해명문을 준비해놓은 이 사람에게는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발표하기 위해 사장님의 손아귀에서 나를 빼온 건데. 그래서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이어서 말했다.

 “죄송해요. 저 존나 답정너 같죠.”

 “...이라야.”

 -딩동.

 갑자기 벨 소리가 들려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권수한은 이때쯤 벨이 울리길 예상이라도 한 듯이 아무렇지 않게 내 어깨를 다독여줬다.

 “동생이 왔나 보군. 한번 통화한 적 있지?”

 “네, 그, 국과원분.”

 이름도 기억난다. 권진호.

 그 사람은 사장님에게 청산가리 검출 사실을 알리며 경찰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사장님이 돈까지 쥐어주며 만류했지만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내게 전화하게 했다.

 「이거 국과원 직원 번호니까 전화해서 외부로 유출하지 말라고 하렴. 당사자가 말하면 듣겠지.」

 내가 전화하자 그 사람은 무척 당황스러워 했다. 정말 괜찮으냐고 연신 물었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 정말 괜찮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니까 유출하지 말아달라고 사장님의 말을 그대로 읊었다.

 “들어오게 해도 될까?”

 “네? 그럼요. 여기 권수한 씨 집인데요.”

 “널 보러 오는 거다.”

 권수한은 내 머리를 어린애를 달래듯이 쓰다듬었다.

 “계속 널 만나고 싶어 했어.”

 권수한이 문을 열어주러 갔다. 그 사이에 나는 또 코끝이 시큰해졌고, 어떻게든 울음을 멈춰보려고 했지만 결국 눈물이 흘러내려서 욕하면서 소매로 닦는 그 사이에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들어왔다. 권수한보다는 마른 체형의 안경 쓴 남자였다. 누가 봐도 형제라고 할 만큼 닮아 있었다. 그 사람은 외투도 벗지 않고 달려와 침대에 앉아 내 손을 잡았다.

 “맙소사. 이라야, 아니, 이라 군.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계속, 계속 만나고 싶었어.”

 “권, 권진호 씨?”

 나는 당황했다. 놀랍게도 이 사람은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그렇게 외면해서는 안 됐는데. 스물한 살짜리 어린 아이돌에게, 내가 조금 더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권진호가 날 와락 껴안았다. 바깥 바람 냄새가 훅 풍겨 왔다. 난 당황해서 권수한을 올려다보았는데, 그는 한쪽 입 꼬리를 올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권진호는 날 끌어안고서 그동안 쌓인 것들을 다 토해냈다.

 “본인이 말했으니 괜찮다고만 생각했어. 어린 목소리를 다 듣고도 그랬어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이 혼자서 삭히고, 혼자 두려워하고. 이렇게 마를 때까지.. 미안해요, 이라 군. 미안해. 사과주스 때라도 관심을 조금 더 기울였어야 했는데.”

 히끅 거리면서 토해냈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나도 울고 있었기에 잘 안 들렸다. 권수한은 자기 동생이 울고 있는데 내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다.

 나는 권진호에게 껴안긴 채 사과를 받으면서, 물기에 젖은 안경이 비뚤게 걸쳐 있는 모습을 보면서, 결정을 내렸다.

 해명문을 발표하기로.

 권수한은 작성해놓은 해명문을 올리기 전 내게 미리 보여줬다. 나는 꼼꼼히 읽어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5시 쯤, 권수한의 SNS 계정에 글을 올렸다. 나는 반응은 읽어보지 않고 창을 닫았다.

 굉장히 막막하고 정말 이게 맞는 걸까 아직도 의문이긴 하지만, 내 마음은 조금, 아주 조금은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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